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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경을 넓혀 주소서

LNCK 2024. 1. 11. 20:46

https://blog.naver.com/karamos/80124839650

 

내 지경을 넓혀 주소서    대상4:9~10, 마6:21   2010.12.20.  ☞ ▣ 삶의 통찰력

 

여러분 혹시 제 휴대폰의 컬러링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 휴대폰의 컬러렁이 오늘 우리가 읽은 역대상 4장의 ‘야베스의 기도’입니다.

 

저에게 전화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컬러링이 좋다고 합니다.

 

어떤 때 제가 전화를 못 받아 미안하다고 하면

“아닙니다. 덕분에 좋은 컬러링을 잘 들었습니다.”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제 전화의 컬러링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제가 제 전화에 전화를 걸어 컬러링을 듣기도 합니다.

 

▲역대상 4장 10절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야베스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경을 넓혀달라’는 말은 땅을 더 많이 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여기 저기 땅을 많이 가져서 땅부자가 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더 많은 땅을 가지고 싶어하는 여러분에게

더 많은 땅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드리고자 합니다.

 

*‘지경을 넓혀달라’는 말씀을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또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영향력의 영역을 확대하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이 설교는, 그런 관점에서 풀어가고 있습니다.

부차적으로 부동산 개념도 첨가될 수 있겠죠.

 

▲혹시 여러분 중에 베트남에 땅을 가지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베트남이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베트남에 땅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트남 베트남에 땅을 가지는 것이 별 문제가 없습니다.

40만원이면 됩니다.

 

사실은 우리 교인들 중에도, 이미 베트남에 땅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베트남에 송아지(40만원)를 보내는 것은

나의 지경이 베트남까지 넓혀졌다는 것입니다.

 

어느 이름 모를 농부가 기르고 있을 베트남 들판에서 뛰노는 송아지,

내 이름으로 보냈으니, 영원히 내 송아지입니다.

 

내가 보낸 송아지가 베트남 들판을 뛰노는 한,

내 삶의 길이가 그만큼 길어진 것이고, 베트남에 내 지경이 넓혀진 것입니다.

 

40만원으로 온 가족이 맛있는 음식을 사 먹었으면,

하루 저녁이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졌을 것이고,

옷을 사 입었으면 그냥 옷장 안에 걸려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돈을 베트남에 보냈더니, 영원히 내 이름으로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내가 보낸 송아지가 새끼를 낳고, 또 새끼를 낳고,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내가 보낸 송아지가 베트남 땅에 살아가는 한,

내 지경이 영원히 넓혀질 것입니다.

 

베트남에 송아지를 보내는 이유는,

선교적 차원에서 보내기도 하겠고,

또 한 가지는, 박대통령 때 베트남에서 전쟁을 했던 일에

조금이나마 사죄한다는 표시로,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5천 년 역사 가운데 민족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에게 잘못한 일이 없는데,

딱 한 번 있었던 적이 바로 베트남에서 전쟁을 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베트남에 군인을 보낼 때는 당시의 불가피한 상황이 있었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전쟁을 해서 무고한 백성을 살상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지적 견해는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으시더라도 참아주세요.

지금 정치가 아니라 복음선교를 논하는 자리라서요)

 

▲북한에도 땅을 얻고 싶으십니까?

북에서 내려온 많은 분(실향민)들이, 죽기 전에 통일이 되어

북한의 자기 땅을 찾아야 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 바로 북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북한에 지경을 넓힐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금년에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북한 어린이 돕기는

북한 땅에 우리 지경을 넓히는 일입니다.

 

내가 보낸 양식으로 수백 명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가 북한에 우리 삶의 지경을 넓히는 일입니다.

나의 삶의 자취를 남기는 일입니다. 얼마나 가슴 설레는 대단한 일입니까!

 

우리의 삶의 끈이 북녘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지경이 북녘까지 뻗어나간 것입니다.

북녘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먹이는 일입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군인 같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정치적 논리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 갈릴리교회 교인들은 몽골에까지 지경을 넓히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몽골은 참으로 넓은 광활한 평야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땅을 사서 나무를 심었습니다.

몽골에까지 우리의 지경을 넓힌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등기를 해야 내 땅이지, 그 땅에 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고

그게 어떻게 내 땅이냐? 하시겠지만,

아닙니다. 땅은 절대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땅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만 내 이름으로 내 발자취가 남으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이 사는 지경이 아주 좁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에 가서 일하고, 저녁이면 집에 와서 자고 평생을 살다가

인생을 마감합니다.

더불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곤 자기 식구와 직장 동료들 친구들 몇 명뿐입니다.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아십니까?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는지 아십니까?

세상의 일이 단지 무엇을 입고 먹고 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많은 이슈들이 있습니다.

평화, 환경, 인권 등 여러 가지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이슈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아름다운 일, 즐거운 일, 영원을 꿈꾸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에 우리의 마음과 삶이 닿아 있어야 합니다.

 

밤낮으로 집에서 직장으로 왔다갔다 생각없이 지내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발자국이 커야 합니다.

집안에서 직장에서 동동거리는 그런 발자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눈을 크게 뜨고 큰 발자국을 내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서울의 구석 구로동에서 살지만, 우리의 삶의 지경이 넓어져야 하고

우리의 삶의 끈이 세계를 향하여 뻗어나가야 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하신 여러 말씀 중에

예수님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궁금하게 생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마태복음 6장 21절의 말씀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재물을 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꾸로 말씀하십니다.

 

먼저 물질이 가야, 내 마음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투자한 일이나 사람에게, 내 마음도 관심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물질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먼저 주어야 그 사람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하는 일에 돈을 쓰겠지만, (이건 상식적인 일이고)

돈을 쓰면, 그 일이 좋아진다는 것이 ...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삶의 통찰력이죠)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목회학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말씀 중에 이제야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회할 때 꼭 기억할 것이

목사의 도움을 받은 교인은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틈만 나면 목사를 반대하고 배신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목사에게 잘하는 사람, 목사에게 물질을 쓰는 사람은

절대로 목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때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목사가 교인들에게 무엇을 받으라는 말처럼 들려

참으로 치사한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인들에게 무엇인가를 얻어먹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 말씀이 정말 맞는 말입니다.

물질이 와야 마음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굶주린 북녘 동포들에게 절대로 양식을 줄 수 없다는 사람들은

북녘에 양식을 한 번도 보내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한 끼라도 양식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북녘 동포들에게 양식을 보내면 내 마음이 자연히 따라가게 되고

그만큼 북녘 동포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북녘 동포들을 한 번도 도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마음도 가지 않는 것입니다.

북녘 땅에 내 물질이 먼저 가야, 내 마음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지경이 북녘 땅까지 넓혀졌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가 있는 곳이 내 삶입니다.

자식에게 내 마음이 전부 가 있으니까, 자식이 내 삶의 전부입니다.

 

이웃을 향한 물질이 가지 않으니까,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먼저 이웃을 향한 물질이 가야, 물질을 따라 내 마음도 가는 것입니다.

 

아무 이유없이 다른 사람을 물질로 돕는 사람이,

마음으로도 이웃을 사랑하고 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말씀입니다. 물질이 가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21

 

여러분의 삶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도 따라가고, 우리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지난 일 년, 여러분의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사셨습니까?

여러분이 걱정하는 걱정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자식이나 직장이었다면 거기에서 평생 맴돌다가 죽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삶의 영역이 좁고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저는 걱정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식량을 보내던 북녘의 아이들이 이 추운 겨울에 무엇을 먹고 지내는가?

몽골의 바양노루에 심은 나무는 잘 자라는가?

베트남의 송아지가 새끼는 낳았는가?

 

금년 12월에 다시 찾아가겠다고 했는데 얼마나 기다렸을까?

캄보디아 프놈펜 기술학교 아이들은 공부는 잘하고 있는가?

가나의 컴퓨터 기술학교의 기숙사를 지어야 한다는데 어떻게 할까?

 

우리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 800명이 넘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지금까지 신앙생활은 잘 하고 있을까?

 

토요일마다 도시락을 기다리는 구로동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금년에는 12월 25일 성탄절, 1월 1일 설날이 토요일이어서

일할 사람이 없어서 도시락을 배달하지 못하는데 얼마나 기다리실까?

 

아프가니스탄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색출해서 처형한다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저는 구로동에 살고 있지만 제 마음이 세계 이곳저곳으로 왔다갔다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 몸은 여기에 있지만, 제 지경이 세계 도처에 뻗어져 있기 때문에

새벽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곳에 내 기도가 있고, 발자취가 있고, 소중한 물질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 땅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갈릴리교회의 목사로서 늘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의 목사님들은 기도를 열심히 하셔서 병든 사람이 낫고

수능 점수도 잘 받았다는데.. 저는 그런 면에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삶의 지경을 세계로 넓히고

종종걸음이 아니라 큰 걸음으로 인생을 살도록 돕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위에 있는 몇몇 사람과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과

이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걱정하는 사람들과

여러분의 삶의 지경이 그들과 맞닿게 하고

그런 인생을 살도록 돕는 것을 큰 보람과 자랑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평생 살면서 밤낮 생각하는 것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생각하며 집과 직장을 왔다갔다 하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인생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눈을 크게 뜨고 인생을 바라보십니다.

 

넓고 넓은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넓은 걸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옛날 야베스는 삶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의 지경을 넓혀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금년 일년의 끝에 서서 기도합니다. 2010.12.20.

‘갈릴리교회 모든 성도들의 종종걸음을 큰 발걸음으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좁디좁은 직장에 매여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지경을

베트남으로, 몽골로, 아프리카로, 저 동남아시아로 넓혀 주시옵소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

이 땅의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 정의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시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해주십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던 것처럼

오늘 여러분을 위한 저의 기도

그리고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년 한 해 더 큰 걸음으로 우리의 삶의 지경을 넓히는

그런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