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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실패 프로세스

LNCK 2024. 1. 12. 17:38

[신명기 05] 실패 프로세스 (신1:19-39절)│2024.1.7 - YouTube

영적 실패 프로세스       신1:19~45       2024.01.07.   ☞시리즈 보기

◑도입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실패하는 인생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뭐 사업이 실패하던, 입시에 실패하든, 
하여간 모든 실패에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데, 그것은 영적인 실패입니다. 

적어도 크리스천에게는 그래요. 
적어도 크리스천에게는, 삶이 어떤 종류에 실패했든지, 
뭐 관계가 실패했던, 아니면 사업에 실패했던, 취업에 실패했던, 입시에 실패했던, 
하여간 어떤 종류의 실패이든지간에, 적어도 크리스천에게는 
그 원인은 '영적인 실패'에서부터 기인합니다.              

자 '영적인 실패'라는 것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대로 안 했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실패가 시작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적인 실패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에 실패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대로 하지 못한 거예요. 불순종 한 거죠.

그것이 영적인 실패인데, 하여간 우리 인생의 모든 실패는, 
적어도 크리스천에게는, 이 영적인 실패에서부터 기인합니다. 

그렇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대로 했는데, 실패할 리가 없지요. 
아니 하나님이 하라고 그러시면, 하나님이 그 길을 닦고 여시고 직접 책임지신다는데 
어떻게 실패합니까? 실패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뭔가에 실패했다는 것은, 하여간 중간에 뭔가 삐끗한게 있는 거예요. 
알고 (불순종) 그랬던, 모르고 (불순종) 그랬던, 중간에 삐끗한게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르지 못한 거지요. 

그래서 (40년 후에 찾아온) 두 번째 기회 앞에서 
모세가 이제 권면하는 건 뭐냐면 
첫 번째는 "왜 실패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자"는 거예요. 
두 번째는 "영적인 실패가 아니라, 영적인 성공을 원한다"는 거죠. 

자 그래서 오늘은,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이야기들을 본문을 통해 살펴보면서 
우리 삶 가운데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만이 역사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물론 이 성공과 실패라고 하는 것은, 영적인 걸 얘기합니다. 
실패가 뭐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에 실패한 거예요. 
성공은 뭐예요? 사업이 잘 되고, 입시에 붙고, 그런 거는 다 부차적인 거고,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요. 

성공은 뭐냐면, 하나님이 하라 그러신 대로 했는가? 
하나님이 인도하신 대로 했는가? ... 했다면,  그게 영적인 성공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런 영적인 실패는 왜 일어날까요"
거기에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실패, 또는 불순종은 
한 번에 갑자기 일어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실패하는 과정이 있어요. 

그래서 본문 말씀을 보면, 가데스바네아에서 실패했던 이야기를 모세가 쭉 회상하는데, 
처음부터 천천히 따라 읽어가다 보면, 한 단계, 한 단계 실패가 진행되는게 보입니다. 

그래서 이 실패의 과정을 잘 이해할 때,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실패를 끊어 내야 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가데스바네아에서의 실패를 통해서, 
영적인 실패에 이르는 과정, '영적인 실패 프로세스'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돌아보고 반추함으로써 
2024년도에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 역사하는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영적인 실패에 이르는 프로세스 1단계는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것입니다.

1:21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영적인 실패,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에 실패하는 것은, 언제나 여기서 시작해요. 
언제나 예외 없이 여기서 시작해요. 두려움과 주저함! 

그래서 혹시 여러분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함에 있어서 
주저 주저하는 마음이 있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실패 프로세스가 시작되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프로세스를 끊어 내셔야 돼요. 
내 속에 두려움과 주저함의 마음이 들 때 
딱 기도의 자리에 나가서 '성령님, 약속하신 대로 담대함을 주십시오' 

성령께서 주시는 담대함으로 내 마음이 채워져야, 성공의 프로세스로 들어갈 수 있지,
그렇지 못하고 주저함과 두려움을 계속 여러분 마음에 두시면 
'실패의 프로세스'가 진행되게 됩니다.

두려움이란 것은, 우리의 영을 움직이지 않아요. 두려움은 오히려 영을 마비시켜요. 
두려움은 영을 마비시키고, 혼을 움직이게 합니다. 

꼭 두려움이 아니라도, 주저하는 마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주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부담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뭐 그렇게까지 해야 돼?' 하는 마음들...

하나님이 뭔가 이렇게 푸쉬하시는 거 같은데 
'아이 뭐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이렇게 좀 부담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아유 뭐 꼭 거기까지 해야 돼?' 이게 뭐냐면 주저하는 거거든요. 

모세의 설교에 의하면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것' 그게 실패의 시작점이었다는 거예요. 
처음에 그들이, 가나안 땅을 들어가 차지하기를 두려워하고 주저했다는 거예요.
그 마음이 여러분 안에 들어오는 순간, 인생 40년 허비가 시작되는 겁니다. 

▲자 이것이 왜 실패의 시작점이냐 하면,
이 두려움 또는 주저함은,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요. 
두려움이 어디서부터 옵니까? 믿음이 없음에서부터 오는 거예요. 

신1:30~32절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으면, 
하나님이 먼저 가셔서, 너희를 위해서 먼저 일하시고, 
너희 목전에서 일을 다 행하시고, 마치 아비가 아들을 안고 가듯이 
그렇게 안고 가실 것이고... 다 해주실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너희가 그걸 믿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게 두려워하고 주저했던 이유인 거죠. 

그러니까 두려움하고 주저함이 왜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냐 하면,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요. 
단순히 두려워하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실 거야,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거야, 
하나님이 앞서 일하실 거야, 하나님이 앞서 싸우실 거야!' 
이런 믿음이 없을 때 생기는게.. 두려움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두려움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당연히 영을 움직일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생기는게 두려움인데, 그 두려움이 어떻게 영적인 일을 행하겠어요?
그러니까 사람에게 두려움이 들어오면 부지런히 혼(자기 지, 정, 의)으로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영(성령의 인도)이 안 움직이니까, 
내 두려운 상황은 어떻게든지 타파해야 되겠고.. 꾀를내는 거죠. 

그 꾀가 뭐였어요? '정탐꾼 보내 봅시다!' 이런 거잖아요. 
아니, 언제 하나님이 정탐꾼 보내라 그랬어요? 그냥 가서 치라 그랬죠. 

그냥 순종해서 올라갔으면, 당연히 하나님이 앞서 싸우시고 승리하는 건데
꾀를내는 거죠... 두려움 때문에, 광야 이스라엘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그 일을 회상시키면서, 2번째 찾아온 기회는, 두려움으로 실패하지 말라는 거죠.

▲반면 '주저하는 마음'은 뭐냐면, 사랑의 문제예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주저하는 거예요.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계산하지도 않고, 재 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엄마가 또는 아빠가 보니까, 자기 아이가 위험에 처하잖아요. 
서너 살 되는 애가 뚜벅뚜벅 걸어서 갑자기 도로 가운데로 들어가요. 
그러면 엄마는 앞뒤 안 가립니다.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보지도 않아요. 
그냥 뛰어가서 애를 구해 냅니다.  1초도 망설이지 않아요. 

저는 그 상황에서 망설이는 엄마는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애를 보고 좇아가서, 애를 붙잡아 구해내요. 왜요? 사랑하니까! 

주저한다고 하는 건 뭘까요? 아이가 위험한 차도에 들어갔는데 
'어휴, 차가 달려오는데 내가 가도 돼' 이러고 있는 건 무슨 의미예요? 
아예 사랑하지 않는 거죠. 
사랑하면, 그 외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뛰어들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여러분 10의 1조 하라 그러면 10의 2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전 십일조예요. 세후 십일조예요?'
뭐 이런 거 물어보는 사람 있으면, 제가 속이 터져요. 사랑이 없는 거죠.

하나님이 받기 원하시는 건, 여러분의 돈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마음이지요. 
그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으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인데, 너무 따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랑이 없다는 표시죠.

그래서 신명기에 보면 지겹도록 반복되는 말씀이
'너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랑하면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휴, 그렇게 까지 해야 돼?'
사랑이 부재하기 때문에 자꾸 계산하게 되는 거죠.
사랑이 부재하면, 당연히 영적으로 성공할 리가 없겠죠. 
사랑이 부재하면.. 그래서 주저주저 하면.. 실패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당연히 영적으로 성공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인생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엎드려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요!

여호와를 사랑하고 여호와를 의지할 때, 우리가 성공가도로 들어설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두려워하고 주저할 때.. 
여호와를 믿는 마음도 없고, 여호와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그럴 때는 
실패의 프로세스가 시작되는 겁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뭔가 부담이 되고, 주저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지금 실패의 프로세스가 시작된 거예요.
거기 1단계에서부터 끊으십시오! 

◑2. 영적인 실패 프로세스의 두 번째 단계는 <혼의 꾀를내는> 것입니다. 

1:22절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두려움과 주저함이 있으면, 사람은 꾀를 내기 시작합니다. 
영은 움직이지 않고.. 영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믿음은 발휘가 안 되고, 
이거 어떻게든지 여기서 헤쳐나가긴 해야겠고... 
이때는 혼을 굴리면서, 꾀를 내기 시작하는 거죠.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올라가서 치라' 하셨는데 
이스라엘은 꾀를 내서 '차마 안 됩니다. 못 가겠습니다.' 그렇게는 말 못 하니까
'정탐꾼을 한번 보내 보죠.' 자 그렇게 얘기합니다. 

말은 좋습니다. 정탐꾼을 보내서
어느 길로 올라가야 될지,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될지 살피겠답니다. :22

23절에 보면, 모세도 이 생각에 찬성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전쟁을 하려면 전략이 있어야 되니까, 정탐꾼을 들여보내자' 
그러고 찬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마음은 두려움과 주저함이죠. 
잘못된 마음에서 시작된 전략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동기가 잘못됐는데,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잘못된 동기로 정탐하니까, 정탐하는데 이 정탐꾼들은 뭐만 찾냐 하면,
'가나안에 못 들어가야 될 이유만 찾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런 경험도 몇 번 해보셨죠? 
내가 이거를 두려워하고 주저하고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냥 '안 한다'고 얘기하기는 좀 어려워요. 
그럼 그 다음부터는, 그 일을 안 해야 될 이유만 찾잖아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이게 불가능하고 저게 불가능하고 
이렇게 하면 이 문제가 생길 거고, 저렇게 하면 저 문제가 생길 거고...' 
계속 그것만 찾죠. 안 되는 이유만 찾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이 정탐꾼을 보냈는데
이 정탐꾼이 가서 뭐만 본 거예요? 
그중에 열 명은, 가나안에 올라가면 안 되는 이유만 찾아 본 거예요.

-어휴, 거기 가 보니까 사람들이 장대한 아낙 자손이야, 거인들이야.. 
-어휴, 거기는 성벽이 엄청 높아, 저걸 어떻게 올라가서 정복하겠어? 
-성문도 아주 튼튼하게 잠겨 있어, 성이 무지 튼튼해! 
'어휴, 저기는 못 올라갑니다!' 하며, 안 되는 이유만 찾는 거예요. 

만약 동기가 '저건 우리가 반드시 정복할 거야' 이게 확정됐으면 
뭘 찾았을 것 같으세요? 전략을 찾는 거죠. 
'어디로 올라가야 될까, 어떻게 쳐야 될까?' 이걸 찾았을 텐데 

정탐꾼들의 동기가 두려움과 주저함이니까, 안 될 이유만 찾는 거예요. 
기억하십시오. 우리 마음이, 우리가 무엇을 쳐다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우리가 무엇을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거예요. 

마음이 확정된 사람은, 될 이유만 찾아보고요. 
마음에 두려움과 주저함이 있는 사람은.. 안 될 이유만 찾아봐요. 
우리 마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요단 서편 전쟁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당연히 지혜가 필요하지요. 전략도 필요하고요. 
또 어느 길로 올라가야 될지도 알아봐야 되고요. 
그래서 모세도 정탐꾼 보내는 일에 찬성한 거 아닙니까. 

자 그렇지만 지혜는, 하나님의 사명을 더 잘 이루기 위한 지혜가 되어야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지혜여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아니,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뭘 할지 말지를 또 지혜를 짜 내겠어요? 

그래서 여러분 '지혜'라는 이름으로 실수하지 마십시오. 
지혜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더 잘하기 위한 것이 지혜이지,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를 결정하는게.. 지혜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라 그랬으면, 그냥 순종해서 하는 거예요. 
여하튼 열정을 가지고 정탐해보세요. 보이는게 다를 거예요. 

 

제가 사람들과 함께 일해 보면, 사람들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안 할 이유를 찾는 사람이 있고요, 할 이유를 찾는 사람이 있어요. 
같이 일해보면 그게 딱 보여요. 

자 두 부류 중에 누가 성공할 것 같으세요?
하나님은 누굴 사용하실 것 같으세요?

하려는 사람에게는, 안 보이는 길도 보이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안 되는 이유만 찾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3. 영적인 실패 프로세스의 세 번째 단계는 <부정적인 말>입니다.

1:26절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자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말합니다. 그들의 보고는 부정적이었죠. 
안 된다는 거예요.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렇죠. 어차피 안 되는 마음으로, 안 될 이유를 찾았으니까 
당연히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지요. 
안 된다는 마음의 결론을 짓고, 안 될 이유만 찾아다녔으니까 
거기서 갑자기 '된다'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말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 부정적인 말을 하는 순간, 그게 거역의 시작이 됐어요. 

물론 우리가 "마음"에 불편해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올바른 마음의 태도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연약하기 때문에, 살다 보면, 그런 마음이 생길 수도 있죠.

그러면 하나님 앞에 나가서, 정말 성령님 앞에 담대함을 구하고, 
그러면서 담대한 마음을 주시면, 앞으로 순종해서 나가서 돌파하게 되는 거죠.

건데 이걸 이제 "부정적으로 말해 버리는 순간"이 있단 말이에요. 
이게 바로 거역으로 딱 확정되는 순간이 됩니다. 
그 말을 내뱉은 후로는, 계속 거역의 길로 미끄러져 내려가게 되어 있죠.

정말이에요. 말을 하는 순간 딱 확정되는 거 아십니까?
그래서 말은 진짜 중요해요. 

▲요즘은 제가 어떤 생각이 드냐면, 
신앙훈련, 영성훈련, 제자훈련들을 하는데 
'결국 신앙 훈련의 본질이 뭘까?'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그렇지, 말하는 거 훈련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의 과거 인생 중에 힘들었던 순간들을 보시면 
항상 뭐가 있냐면, 잘못된 말이 있었어요. 

자 부부싸움할 때 생각해 보세요.
'그 한 마디만 안 했으면...' 그랬으면 싸움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이혼도 마찬가지죠. '그 한 마디 말 때문에...' 결국은 배우자가 이혼을 결심하게 돼죠.
 
딱 한마디 때문에, 부부싸움이 일어나는 거거든요. 
말하는 순간 확정되어버리는 거예요.

물론 부부싸움 하기 전에, 그 말이 나오기까지 
마음에 화나는 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고 그렇죠. 
그렇지만 그 순간을 딱 인내하면서 넘어가면, 말을 참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그런데 말을 딱 해 버리면, 거기서부터 전쟁이 일어나죠. 
그래서 말이라고 하는 건, 여러분, 거의 확정되는 순간인 거예요. 

27절에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원망의 말을 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요.

민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딱 우리가 말하는 순간, 그 거역이 확정되는 거예요. 
생각까지는 아직 거역은 아니에요. 
그러나 말을 아는 순간 이제는 빼박입니다. 실체가 돼요. 

말은 여러분 실체입니다. 
거역의 순간이 언제입니까? 말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1차 저지선은, 물론 마음에서 두려움과 주저함을 막아야겠지만 
2차 저지선은, 말이에요. 
어쩌면 여기가 훨씬 더 중요한 저지선이에요. 말! 

성령의 제어함을 받아서 말을 제어하십시오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마세요. 
그냥 의지적이라도 '된다'고 말하십시오.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신 것은 '된다!'고 믿음으로 말하십시오. 

그러면 신기하게 생각은 따라와요. 저도 그런 경험들이 많습니다. 
마음속으로 '이게 정말 될까?' 이런 것들이 있지요. 

뭐 하다 보면 '이거 무조건 돼!' 항상 이런 것은 아니잖아요. 
살다 보면 두려울 때도 있고, 이거 안 될 거 같은 생각도 들고,
그러나 하나님이 명하신 일은, 그냥 믿음으로 저지르는 적이 많아요. 

그리고 우리 스탭들 모아놓고 '이거 합니다. 됩니다!'
그러면 참 재밌는게 뭐냐면, 그 다음부터 제 마음이 '되는 이유'를 막 찾아죠.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제 입이 '왜 되는지'를 사람들을 설득하고 다녀요. 

여러분 참 신기하지 않아요? 분명히 제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될까, 안 될까?' 막 망설이고 고민하고 그러던 제가,

딱 '된다!'고 얘기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제 마음이, 될 이유를 막 찾아다니고 
제가 돌아다니면서 '그 일은 된다'고 얘기하고 다니고,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다닌다는 거예요. 이게 뭐예요?

▲여러분 말은 능력이에요. 
말은 영이에요. 
영적인 존재만 말을 해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천사가 말하고, 마귀가 말하고, 사람이 말을 합니다.
즉 영적인 존재만 말을 해요. 말은 영에 속한 거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말하는 순간, 그것이 창조하는 거예요. 
내 삶이 어떻게 될지를 창조해 나가는 거예요.

된다고 얘기했으면, 되는 것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고, 
안 된다고 얘기했으면, 미안하지만 안 되는 걸 창조해 가는 거예요. 

말을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의지적으로 제어하십시오. 
여러분의 미래가, 또 여러분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말'입니다. 
결국 말이 결정하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것도 말로 부흥하는 거고요. 
교회가 어려워지는 것도 말 때문에 어려워지는 거에요. 
뒤숭숭한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교회가 어려워지는 거죠. 

왜 부정적인 말을 여러분의 입에 담습니까? 그건 거역입니다. 
2차 저지선에서 막으십시오. 여기서 막지 못하면 끝이에요.
이 말이라고 하는 2차 저지선에서 막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실패까지 직행합니다. 
말은 창조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은 실패를 창조해 가는 거예요... 

◑4. 실패 프로세스의 네 번째는 <원망, 불평>입니다.

1:27절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안 된다'는 부정적인 하나님을 향해, 그리고 사람을 향한 <원망>으로 바로 이어집니다. 직행합니다.
'안 된다'고 얘기해 보십시오. 
그럼 그 다음부터 원망이 바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안 된다'고 얘기해 버린 이스라엘은 
당연히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까지 원망했습니다. 

실패의 네 번째 단계는 원망과 불평이에요. 
여러분의 입을 살펴보십시오. 어떤 말을 하고 있습니까? 
계속 불평하는 말이 나옵니까, 부정적인 말이 나옵니까?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여러분은, 실패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뜻이에요. 

어디서부터 실패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실패하는 고속도로를 가고 있다는 거예요.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은, 그 마음과 말에 감사를 담고 있지, 
불평과 원망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불평이 나오고 있다면 조심하십시오. 
멀지 않아 광야 40년의 시간이, 실패의 시간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게 여러분, 안 하려니까 불평이 나오는 거지, 
하려고 하는 사람은 불평이 안 나와요. 
'어떻게 할지' 거기에도 바쁘고 정신이 없는데, 뭐 불평까지 하고 있겠어요?
일을 하려는 사람은, 불평이 안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 행하려는 사람이, 원망과 불평이 나오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의 반응은 뭡니까?
'그래, 그렇게 하기 싫어? 그럼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뺑뺑 돌다가 죽어!' 
그리고 40년 광야 방황 길을 보내신 거잖아요. 

이렇게 여러분, 실패하는 인생 되면 안 되잖아요. 원망하지 마십시오. 
계속 감사하는 말을 하세요. 

◑5. 실패의 프로세스의 다섯 번째 단계는 <낙심>

28절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이제 모든 의지가 꺾여요. 힘도 빠지고 소망도 없어집니다. 
마음은 온통 우울하고 어둡습니다. 이게 실패에 다섯 번째 단계인 낙심입니다.

낙심이 무서운 이유는 뭐냐면, 낙심은 전염성이 크다는 거예요.
정탐꾼 10명이 낙심하니까요. 그 수많은 수십만의 백성이 다 낙심합니다. 

낙심까지 왔으면 이제 실패에 문턱입니다. 8부 능선을 넘은 거죠.
사실 돌이키기에는 좀 늦었어요. 그 전에도 일으켜야 되는데... 

낙심의 또 다른 특징은 뭐냐면, 원수가 커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28절에 보면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성곽은 하늘에 닿았고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나는 작고, 세상은 커 보입니다. 하나님은 안 보이고, 상황과 세상만 커 보입니다. 
그리고 커보이는 세상과 상황이 나를 압도합니다. 이게 낙심된 상태예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뭐가 커 보이세요? 
하나님이 커 보이신다면 할렐루야! 그것은 성공가도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잘 안 보이고, 나는 작아 보이고, 상황은 커 보이고... 
그렇다면 조심하십시오. 낙심한 마음입니다. 그 실패의 문턱에 있는 가까이 다가간 거예요. 

◑6. 실패의 프로세스 여섯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안 들어와요>

29~33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여기 보면, 분명히 모세가 백성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 너희는 주저하지 마, 
하나님 지금까지 어떻게 하셨는지 봐봐. 
10가지 기적을 베푸시면서 출애굽하게 하셨고, 광야에서 돌보셨고 다 하셨잖아?' 

그런데요. 낙심한 백성의 귀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와요. 
실패의 여섯 번째 단계가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리는 거예요.
뭐라고 말씀하셔도 내 귀에 안 들어와요. 

설교 말씀도 안 들어오고, 성경을 펼쳐도 눈에 안 들어오고, 아예 펼치지도 않아요. 
또 주변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의 말도 안 들어오고, 
배우자가 얘기하는 말도 안 들어오고, 셀에서 얘기해 주는 말도 안 들어오고... 

여러분 실패를 달리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안 들어가요. 
저도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뻔히 보여요. 

'저 사람, 저렇게 계속 가면 큰일 나는데...' 
주위에서 보면 보이는데.. 그래서 얘기해 주죠. 조언해 주죠. 

그런데 아무리 얘기해 줘도.. 망할 사람은, 그게 자기 귀에 안 들어와요. 
아무리 얘기해도 못 알아 들어요. 자기 욕망이 너무 커서, 
거기에 반하는 어떤 말도, 자기가 접수하지 않습니다.

이게 실패의 여섯 번째 단계예요. 이미 (부정적인) 말로 선포해버리고, 원망하고, 낙심하면,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귀에 안 들어옵니다. 
이제 실패가 현실화된 거예요... 

◑7. 실패이 프로세스 일곱 번째 단계는 <진노와 심판> 입니다.

34~37절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자 이제 이미 실패한 겁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실패가 선포됩니다. '너희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너희는 그리로 들어가라' 하는 동안에 빨리 돌이켜야지, 
'너희는 거기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37
그래서 38년의 방황이 시작된 거죠. 잃어버린 세월 38년이 시작되는 거죠.
그게 바로 징계요, 심판인 거죠.

▲자 그런데 감사한 것은 뭐냐면,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두 번째 기회를 약속하신다는 거예요. 참 감사하죠. 

1:38~39절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두 번째 기회를 주십니다. 
2024년은 우리 하나님께서 두 번째 기회를 주신 해가 될 겁니다. 
두 번째 기회는 실패하지 맙시다. 

39절을 보시면, 좀 딴 얘기긴 하지만 39절이 재밌는 것은 
'어린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거라고 하는 신학적인 근거입니다.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 자녀는 그냥 들어갈 거래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을 심판하셨지, 선악을 분별하지 못했던 아이들까지 심판하진 않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침례교에서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자라다가,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고 믿어요. 
그래서 4~7살 때까지, 아직 선악을 분별할 수 없는 나이 때까지는,
'(사망해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믿는게 침례교의 신학이에요. 

그러니까 그 얘기는 뭐냐면,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의지로 예수님을 알고 영접할 수 있는 나이가 돼야 
그 다음부터 구원이라고 하는게 의미가 있는 거지,

그 나이 전까지는, 그냥 하나님께서 심판을 넘어가게 하신다. 
그것에 대한 근거가 되는게 위 39절 말씀입니다. 

그렇잖아요. 분명히 똑같이 죄를 지었는데,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아이들한테는 죄를 묻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시 가데스바네아에서 불순종해서 단체 징계를 받았는데,
거기서 20세 이하는 면제되었다는 거죠.

민14:29~32 '너희 중에서 20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위 말씀이, 가데스바네아에서, 12정탐꾼들의 보고로 야기된 원망과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이거든요.
그러니까 약 38년 후에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면,
이스라엘의 최고령자가 58세였다는 거죠. *20세 + 38년
20세 이상은 광야에서 다 죽었으니까요.

◑8. 실패로 가는 프로세스 마지막 여덟 번째는 <실패한 후 뒷북 치기> 

1:40~41 '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41 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무기를 가지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4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43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

44 그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에게 마주 나와 벌 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이른지라

45 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46 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날 동안 머물렀나니 곧 너희가 그 곳에 머물던 날 수대로니라'

마지막 여덟 번째 단계는 뭐냐면, 실패하고 난 다음에 뒷북치는 거예요. 
종교적 열심을 낸 것입니다. 

실패와 심판이 선포되자, 이스라엘은 그제야 정신이 듭니다. 
'아이쿠 이게 뭐야, 이러면 안 되는 건데?' 

하나님의 징계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면 이제 뒤늦게 열심을 내요. 
혼의 열심이죠. 

분명히 하나님이 뭐라 그러셨냐면 '너희 이제는 그쪽으로 못 가! 
너희는 반대로 방향을 돌려 홍해 길로 가' 

그러는데 이스라엘은 듣지 않고 뒷북 칩니다. 
'올라가라' 할 때는 울고 불고 안 가다가,
'올라가지 마' 하니까, 그때부터 또 올라갑니다.

그래서 산지로 올라갔죠. :41
혼적인 열심, 종교적 열심을 낸 것입니다.
이것이 실패를 더욱 심화시킵니다. 

그냥 그때라도 '네, 징계를 달게 받겠습니다'하고 순종하고 갔으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았을 텐데, 
거기서 또 종교적 열심을 내는 바람에, 산지로 올라갔다가 전쟁에 패해서 죽잖아요. :44
실패가 더 심화됩니다. 

호렙산의 불을 못 받은 사람은, 내 생각, 내 열심을 가지고 (혼의 힘으로) 싸웁니다. 
용감하게 전쟁에 나가지만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그 용기는 내 감정이었기 때문에 그래요. 

또 회개도 그렇습니다. 이들이 돌아와서는 통곡하면서 여호와 앞에 회개했대요. :45 
그런데 참 무서운게 뭐냐면, 하나님께서 그걸 듣지도 받지도 않으셨대요. :45b

'용감한 헌신, 그리고 통곡하는 회개' 
아마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봤다면 
와,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고 우러러 봤을 거예요. 

그래서 '종교'라고 하는 건 참 분별이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가 잘 속습니다. 
감정적인 (혼적인) 열심을, 영적인 열심이라고 생각하고 
감정적인 (혼적인) 회개를, 영적인 회개라고 착각합니다. 

꼭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뒷북치지 마십시오. 
실패했으면 그때라도 겸손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지, 
거기서 뭐 종교적인 열심을 내려 하면 안 됩니다.

그런 경우 봤거든요. 뭔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어요. 
실패하고 나면 죄책감에 헌금을 왕창 하시더라고요. 
그게 뭐냐면 하나님한테 퉁치자는 거죠. 
그보다는 하나님은 통회하는 마음, 상한 심령을 먼저 받으시는 거죠.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성공은 종교적인 열심으로 성공할 수 있는게 아니에요. 
성공에 제일 중요한 열쇠는 뭐냐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거예요. 
그게 성공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지, 나를 신뢰하면 안 돼요. 그건 교만이에요. 
겸손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 그것이 성공인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 마무리합시다. 실패를 답습하지 맙시다. 아멘! 
2024년도에는 하나님께서 두 번째 기회를 주실 겁니다. 
이제 기어를 쉬프트업 하십시오. (고단 기어를 넣으십시오) 
금년에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저지선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에 혹시라도 두려움과 주저함이 있다면, 
하나님의 일을 순종함에 있어서 두려움과 주저함이 있다면,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게 실패가 시작되는 프로세스의 시작이에요. 

거기서 여러분, 기도의 자리에 나가십시오. 
그리고 담대함이 임할 때까지, 성령님 앞에 머무셔야 됩니다. 
'주님 내 마음에 두려움이 있고, 내 마음에 주저함이 있습니다. 주여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하늘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감사와 담대함이 나올 때까지 
기도의 자리를 사수하셔야 돼요. 그래야 실패를 저지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그 두려움과 주저하는 마음이 계속 돌아가도록 놔두시면 
두 번째, 세 번째 단계로 도미노처럼 쭉 이어서 가다가... 결국 실패로 결판나게 됩니다. 

거기서 중간에 끊으십시오. 두 번째 방어선에서 끊어야 됩니다. 
혼적인 꾀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정탐꾼을 보내서 정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순종할 합리적 이유를 찾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방어선은 <부정적인 말>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시면 필패 합니다.
안 될 이유 찾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셨는데, 왜 안 됩니까? 

아무리 거인이 커보이고, 아무리 성읍이 높아 보여도 
하나님이 하라 그랬으면, 내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예요. 
안 될 이유 찾지 마시고요. 될 이유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된다고 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