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호렙산의 불

LNCK 2024. 1. 16. 14:24

[신명기08] 호렙의 7가지 불 (신4:10-14절)│2024.1.11 신년기도회 - YouTube

호렙산의 불           신4:10~14          2024.01.11.      시리즈 보기

▲도입                          
신명기는 모세가 마지막으로 행했던 3편의 설교를 모아놓은 것이라고 했죠. 
그중에 1~4장까지가 첫 번째 설교입니다. 

첫 번째 설교의 주된 내용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는 겁니다. 
'어떻게 우리가 출애굽을 했고, 어떻게 첫 번째 가데스바네아 에서 실패했고, 
그 결과 어떻게 38년을 광야에서 방황했고..'  이런 얘기들을 쭉 회상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있었던 바알브올 사건과, 또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점령한 
그 얘기까지를 쭉 풀어내면서, 
주제는 '처음엔 너희가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라' 하는 메시지를 주고 있죠.
이것이 첫 번째 설교의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 설교로 들어가면, 구체적으로 지키고 행해야 될 규례와 율법에 대한 말씀들을 
긴 분량을 할애해서 모세는 얘기하고 있고, 
거기 보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십계명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규례들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설교의 마무리가 신4장인데요. 
이 마무리에서 모세가, 과거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또 한 사건을 픽업합니다. '이 사건 기억하지?' 그러면서 
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는데, 그게 뭐냐면 '호렙산 사건'이었어요.

(*출19장의 시내산=호렙산에서 율법을 수여받고,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사건)  

사실은 이 날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그 당시 백성들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어요. (*그 전에는 결혼식 없는 관계, 그날 결혼식 후 정식으로 살게 됨)

바로 호렙(시내)산에서 여호와를 뵙던 날이에요. 
그날이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이 시작된 날이고, 
거기서 언약을 받았고, 거기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거기서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받았던 날이에요.  

그 언약의 내용이 뭐예요?
한 마디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라는 그 언약의 말씀을 받지요. 

물론 이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이지만,
4백년이 지나서, 그 언약이 새롭게 갱신된 거죠.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제 '나의 하나님'이 되는 그 사건이 
호렙산에서 일어난 거죠.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날을 꼽으라고 하면 
바로 이 날이라는 거예요. 호렙(시내)산에서 여호와 앞에 섰던 날! 

그래서 '너희가 생존하는 날 동안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해야 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호렙산에서 여호와 앞에 섰던 날이다...' 라는 식으로 얘기합니다.  신4:9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날이 있으십니까? 
저는 이 구약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는, 그리고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기록되어 있는
이 호렙에서 여호와의 불이 임했던 것이, 그냥 문자적으로 진짜 불이 임했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당연히 팩트를 기록한 것이지, 뭐 이렇게 상징적으로 돌려서 돌려서 
말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것은 그냥 있었던 일을, 그대로 모세가 기록한 겁니다. 

물론 시편이라든지 계시록이라든지, 이런 상징을 사용하는 책들은 좀 다를 수 있지만 
신명기는 상징적으로 기록한 책이 아니죠.

그렇다면 우리 인생 가운데도 똑같은 사건이 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임하는 날이 있다는 거예요. 

그 사건이 신약에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오순절 날, 여호와의 불이 임하잖아요. 

성령의 불이 임하면서, 이 호렙산에서 있었던 사건이 똑같이 재현되지요.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도, 이런 똑같은 사건이 재현되게 되기를 기대하고 축복합니다. 

자 신1장에서도 우리가 이 날에 대한 것을 살펴보긴 했는데요. 
오늘 다시 반복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중요하니까요. 
중요한 거는 무한 반복하는 거예요. 

신명기는 뭐라 그랬죠? 제가 '무한반복의 책'이라 그랬죠. 
신명기 읽어보면, 모세가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를 계속 반복합니다. 
왜 그러냐면,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고, 또 깊이를 더한다고 하는 것은 
계속 새로운 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는 것에 깊이가 생겨요. 

사실 반복할 때 깊이가 생겨요.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다시 반복해서 묵상할 때 
두 번 반복하고, 세 번 반복할 때.. 거기에 깊이가 생기는 거예요. 

자 그래서 <호렙의 불>에 대해서,
그 특징에 대해서 오늘은 함께 나눠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가운데도, 이 호렙의 불이 임하고
이 불 가운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똑같이 우리 자신들에게도 행하시기를 기대합니다. 

◑1. 호렙의 불의 특징 중 첫번째는 <여호와 경외함>을 배우게 합니다.

출19장과 신5장에 보면, 이날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출19:16~19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신5:24~27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에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보았나이다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에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이 날이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강렬했는지, 출애굽기에 보면 
'산이 흔들리고 백성이 모두 떨었다'는 거에요. 

여호와의 임재가 나타나고, 불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 그 놀라운 임재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위엄이 나타났는데 
그 앞에서 백성들은 다 죽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신명기에 보면 '이제 그만하게 하십시오. 그만 하십시오. 우리가 다 죽겠습니다.'
백성들이 여호와의 불 앞에 섰을 때,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자기들이 죽을 것 같았다는 거예요.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두려움과 충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 바닥에 납작 엎드립니다. 
그리고 뭐라고 그랬냐면 "우리가 다 행하겠나이다. 우리가 다 행하겠나이다." 

여러분 사실 '순종'이라는 건 어디서 나오냐면,
이 압도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할 때, 
'와~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이렇게 크시고, 이렇게 강하시고, 이렇게 거룩하고,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분이시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될 때, 그 앞에 그냥 엎드러지는 거예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거예요. 어디 감히 숨을 쉬어요? 
숨을 죽이고 '말씀만 하십시오. 저희가 다 행하겠습니다.' 이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거지요. 
그래서 '여호와의 불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신 일 중에 하나는 
경외함을 백성들로 배우게 하신 거예요. 
자 이 날이 호렙산 앞에서 여호와 앞에 섰던 날입니다. 

▲여러분은 이 날이 있으십니까? 이 날로부터 시작하셔야 돼요. 
우리 신앙의 여정은, 이것을 기초로 시작해야지, 
이거(경외함) 없이 시작하니까, 아예 기초가 없는 거예요. 
불이 없으니까, 불의 체험이 없으니까, 경외함이 없고, 아예 기초가 안 된 거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위험이 뭔지, 
그분에 대한 경외함, 그분에 대한 두려움... 그 기초가 없으니까 
그 위에 은혜를 얘기해도, 그 은혜가 굉장히 싸구려 은혜 cheap grace 가 돼요. 

왜냐하면 뭐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경외함도 없는데 
'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하는 게, 깊이 있게 이해가 안 되죠.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시고, 십자가를 지셨다고 하는 것이 
이게 너무나 큰 은혜로 우리에게 인식되기 시작하는데, 

여호와를 경외함이 없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가치를 알 수가 없어요. 
'그냥 그러셨나 보다.. 아이고 십자가, 그냥 좋은 건가 보다..' 그러고 말죠. 
그러니까 신앙의 여정이 제대로 진행되지가 않아요. 이 날로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자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이 날이 있었어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이날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이 날을 맞이하죠. 
사6:1~5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게 이사야가 경험했던 '호렙의 날'이지요. 
여호와의 불이 이 날 이사야에게 임합니다. 

자 그러자 어떻게 됩니까? 이사야가 땅에 납작 엎드립니다. 
땅에 납작 엎드려서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사람이 죽을 거 같이 되는 거예요. 
왜요? 타락한 존재, 죄 가운데 있는 존재가 하나님을 뵙게 되니까 
이건 정말 죽을 거 같은 압박인 거예요. 

그래서 영광의 하나님의 불속에서,
이 불이 어떤 불이냐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조명해 주는 불이에요. 
그 불 앞에 우리는 어떤 존재냐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서면 안 되는 존재예요. 

우리는 그냥 '아 내가 그때 이런 거 잘못했구나, 저런 거 잘못했구나, 회개해야지' 
이런게 아니라, 그냥 내 존재 자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있으면 안 되는 존재에요.
존재 자체가 어둠이고, 존재 자체가 죄악 덩어리에요.

그런데 평상시엔 그런 거를 못 느끼죠. 그냥 내가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살아요. 
그런데 '여호와의 불' 그 영광이 임할 때, 
그 영광 앞에 딱 서면, 하나님의 영광의 불이 우리를 조명하기 시작해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될 때, 내가 그 앞에 딱 서게 되면, 내 존재가 적나라하게 보입니다. 

이게 너무너무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그 앞에 서면 안 되는, 
그런 죄악된 존재 임을 조명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여러분 회개예요. 

회개는, '내가 이런 죄를 지었고, 저런 죄를 지었고.. 용서해 주세요'
'어렸을 때 엄마가 헌금하라고 줬는데, 그걸로 게임 한 거 이런 거 잘못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회개지만, 근데 이거 하고는 차원이 다른 차원의, 깊이가 다른 회개가 있는데, 

그건 뭐냐면 '여호와의 불' 앞에서 내 존재를 보는 거예요. 
'아 나는 있으면 안 되는 존재구나, 나는 그냥 존재하지 말아야 될 존재였구나' 
그걸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렇게 표현한 거죠.

그랬을 때 어떻게 되냐면 이사야처럼 죽은 자같이 되어 엎드리는 거예요. 
호렙산 앞에서 여호와의 불을 대면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은 반응이었죠.
'우리가 죽겠나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불 앞에서, 더 이상 서 있다가는 다 죽겠습니다. 

모세가 그냥 대표로 듣고 대언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못 서있겠습니다)'
 
◑2 호렙산의 여호와의 불은, <내 자아를 소멸시키는 불> 또는 <회개의 불>

여호와의 불은 어떤 불이냐 하면 '소멸하는 불'이에요. 
나의 자아, 나의 죄성, 나의 옛사람, 나의 타락한 원죄의 유전... 들을 다 소멸시킵니다.

사6:5절에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망한다'는 말은, 이게 자기가 '죽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마, destroy, cease 
죄인이 하나님을 대면하면 바로 죽는 거죠.

그래서 여호와의 불을 대면하면, 이제 '소멸하는 불'인 알게 됩니다. 
우리의 죄성을 소멸하는 불, 내 옛자아를 소멸하는 불,
그래서 그 불을 대면한 사람은, 빨리 자리를 뜨고 싶죠. 호렙산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 소멸하는 불앞에, 못 견디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히12:29

그래서 출애굽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뭐라 그러셨냐면
'이 백성이 더 이상 내게로 가까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라 
내가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들에게 돌격할까 하노라'   출19:24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그냥 그 죄를 보시면, 소멸하시는 분이세요. 
하나님의 속성상, 죄를 보시면 소멸할 수밖에 없는... 죄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세요. 

그런데 그런 하나님 앞에, 우리가 딱 그분을 대면해서 서게 될 때 
여러분 그런 거 있잖아요. (이런 것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그래도 비유하자면)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걸 모르고 살다가 
나하고 전혀 다르게 사는, 진짜 훌륭한 사람 앞에 딱 서면... 일순간 부끄러움을 느끼죠. 

다니엘은 을레 강변에서 이제 그 '호렙의 불'를 맞게 되는데 
그때 성경은 뭐라 그러냐면 '다니엘이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그래요. 

단10:8~9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

새번역에 보면 '죽은 자 같이 되었느니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그 때에 나는 힘이 빠지고, 얼굴이 죽은 것처럼 변하였으며, 힘을 쓸 수 없었다.' 단10:8 새번역

이 불 앞에 서면, 죄인인 우리 인간들은, 그냥 죽은 자 같이 된다는 거예요. 
뭐가 죽는 걸까요. 뭐를 소멸하는 걸까요? 
우리의 옛자아를 죽이는 거죠. 여호와의 불이, 나의 타락한 옛자아를 소멸하는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한꺼번에, 내 자아와 죄성이 일순간에 다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 안에 있는 자아를 소멸하기 시작하는 날이, 
그것이 여호와의 불을 최초로 대면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불은 두 번째로 어떤 불이냐면 '캐노시스의 불'이에요. 
우리의 자아를 죽게 하는 불이에요.  *캐노시스, 헬라어로 비움, 빌2:7 

그래서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광야 38년이라고 하는 기간은 
우리의 자아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기간이라고 했죠. 

그런데 자아가 부인되는 광야의 캐노시스는 꼭 38년 걸릴 필요가 없어요. 
호렙에서 그냥 하나님을 내면하고 엎드리면 캐노시스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38년으로 길게 늘어나는 것 뿐이에요. 
호렙에서 우리의 자아가 죽는 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뜻에서, 모든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호렙에서 여호와의 불을 대면한 날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사이에서 이 날을 맞았고, 
다니엘은 을레 강변에서 이 날을 맞았고,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 날을 맞았고,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이 날을 맞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호렙산 앞에서 이 날을 맞았습니다. 
때와 장소는 달랐지만 그 내용은 정말 놀라우리만큼 똑같아요. 

제가 이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면하는 장면들을 다 찾아서 비교해 보니까
이 내용과 순서가 거의 똑같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불'이 임할 때 일어나는 현상은 다 똑같다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 일들이 일어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뒤에서 그 이야기를 좀 자세히 살펴볼 테지만, 기본적으로 얘기하면
여호와의 불이 임했을 때, 그 앞에서 내 존재를 보게 됩니다. 
그 소멸하시는 불 앞에서, 내가 타락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되고,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경외하게 되고, 
그러면서 <내 자아가 소멸되고 부인>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날 자아가 완전히 부인되는 건 아니겠지만, 하여간 우리 자아가 다뤄져요. 
그분 안에서 다뤄지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고 하는 언약이 임하고, 
그리고 자기 사명이 임합니다. 앞으로는 사명의 길을 살게 되는 거예요.

◑3. 호렙산의 '여호와의 불'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사명>을 받죠. 

여호와의 불을 대면한 사람들에게 말씀이 임하고, 그 말씀을 통해서 <사명>을 주십니다.  
이사야에게 임하고, 다니엘에게 임하고, 모세에게 임하고, 바울에게 임합니다. 

사6:6~8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단10:10~11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

 

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행9:3~4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여호와의 불속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그 말씀은 위로의 말씀이고, 용서의 말씀이고, 회복의 말씀이고, 
동시에 언약의 말씀이고, 사명의 말씀이에요. 

우리가 뭘 해야 될지도 말씀하시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도 말씀하시고, 
'너는 내 백성이야, 너는 내 자녀야' 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도 말씀하시고,
 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말씀, 사명의 말씀 등, 하여간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이사야에게도, 다니엘에게도, 바울에게도.. 사명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과 함께 선지자로서의 이사야의 삶이 시작되고,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모세의 여정이 시작되고, 
사도로서의 바울의 사명이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모세도, 이사야도, 다니엘도, 사도 바울도, 그리고 이스라엘도, 
모두 호렙에서 그 여정이 시작되는 거예요. 

모세는 떨기나무 사이에서 이 날을 맞았고, 
그의 인생이 이날을 기점으로 180도 바뀝니다. 
그 전까지 양치는 자에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180도 바뀌고요. 

다니엘은 을레 강변에서 그날을 맞이하고, 엎드려 죽은 자처럼 되었고요. 
그 다음에 다니엘서를 기록합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세계역사 가운데 행하실
놀라운 일들을 예언하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이 날을 맞이하고, 선지자로서의 직분이 시작됩니다. 
남유다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고, 닥쳐올 심판을 피하게 하는 사명이었죠.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선포하는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불'을 대면한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돼요. 
사도바울도 다메섹도상에서 그날을 맞이하고 인생이 180도 바뀝니다. 
사도바울은 아나니아를 통해서 자기 사명을 최초로 받죠.

행9:15~16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그 날 이후로, 예수를 핍박하던 자에서, 예수를 전하는 자로 180도 바뀌는 거예요. 
바로 호렙의 날, 호렙의 불로 임하신 여호와의 임재 가운데서 
그 인생이 180도 바뀌는 거예요. 완전히 새로운 인생 여정이 시작되는 거예요. 
무슨 여정? 사명의 여정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사명이 없고 비전이 없는 것은, 
호렙의 불 체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호렙에서 여호와의 불을 대면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호렙에서 여호와의 불을 대면한 사람은, 이사야처럼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건 그냥 자동적으로 나오는 반응이에요. 
무슨 헌신도 아니고, 자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동적으로 나오는 반응이에요. 

▲여러분 호렙에서 여호와를 대면하시고, 여호와의 불을 대면하기를 바랍니다. 
2024년 호렙과 함께 시작하는 해가 되기를 도전하고 축복합니다.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가운데,
여러분에게 주시는 사명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생이 참 비참해요. 
우리가 신명기 계속 따라오면서 살펴봤던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사명이 없는 인생은, 그냥 광야 38년 떠도는 인생인데, 
그렇게 38년 빙빙 돌다가, 결국 시간 되면 하나님께 가는 거란 말이에요. 

그럼 뭐하러 이 땅에서 38년을 고생 고생합니까? 지금 바로 천국가는게 낫지요.
여기 이 땅에서 사명도 없고, 뚜렷이 할 일도 없고, 
특별히 뭐 볼 일도 없는데, 뭘 여기서 38년씩이나 돌다 가요? 그냥 바로 가버리는게 낫죠.

오늘도 내가 이 땅에 머무는 이유는 뭐냐면, 사명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 땅에서 내가 해야 될 일이 있다는 거예요.
차지해야 될 (가나안) 땅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명의 길을 가지 않으면, 삶이 비참해집니다. 
삶이 정말 무의미해지고 허무해져요. 
38년을 계속 빙빙 돌긴 하는데, 38년 동안 
그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그거 걱정하면서 소일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38년 지나고나서 광야에서 다 죽었어요. 
여러분 참 허무하고 참 슬픈 인생 아닙니까. 

사명이 없는 자는, 예수를 믿어도 그냥 그렇게 믿어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채워주시는 하나님.. 그 차원을 넘어가지 못해요. 
내 삶을 도와주지는 하나님, 내 삶의 어려움을 풀어 주시는 하나님.. 
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해요. 

물론 그 하나님도 좋은 하나님이시긴 하지만, 
미안하지만 그건 38년 광야를 뱅뱅 도는 삶이거든요.... 

우리는 광야에서 빙빙 돌다가 소멸되는 인생이 아니라, 
땅(하나님의 나라)을 차지해야 되는 인생이고, 
요단강을 건너가서 영적전쟁을 해야 되는 인생이고, 
그래서 하나님이신 사명을 이루어야 되는 인생인 거예요.

이 일을 행할 때 우리 안에 도파민과 엔돌핀이 막 나오는 거예요. 아시겠습니까? 
이거 안 하고 있으면 맨날 우울한 거예요.

할렐루야! 이 '호렙의 날'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결혼, 언약체결의 날
그래야 여러분을 향한 데스티니가 시작되요. 
광야를 빠져나와서 요단을 건너서, 하나님이 주신 땅과 기업을 차지해야 돼요.

이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 영이 살아나는 거예요. 
우리의 영이 살아나고, 열정이 살아나고, 생명이 살아나고, 
'아 크리스천의 삶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고, 고백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다 이것들을 경험하고, 똑같이 살아냈으면 좋겠어요. 

'아휴 목사님, 그건 청년들에겐 참 좋은 설교인데요. 
제 나이가 지금 50인데요, 60인데요?' 

죄송하지만 모세가 여호와의 불을 대면한 때는 80세였어요. 
모세 80세에 시작했거든요. 늦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불을 붙이고 늙어서 소천하면, 자녀세대가 반드시 바턴을 받아서
그 불을 계속 꺼지지 않게 유지해 나갈 거예요.

언제까지 그렇게 신세 한탄하는 신앙생활을 하시겠어요?
언제까지 신세 한탄하면서, 늘 남 원망하면서, 늘 과거에 상처받은 거 곱씹으면서,
언제까지 어렸을 때 상처가 어땠고...  언제까지 그렇게 사시겠어요?
그거 참 피곤한 인생이거든요. 

여러분, 문제가 완전히 해결돼야 앞으로 나가는게 아니더라고요. 
그냥 어느 정도 됐으면, 그냥 치고 나가야 돼요.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기다렸다 나가려면, 평생 못 나갈 수도 있어요.
물론 치유도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됐으면 그 다음에 믿음으로 앞으로 나가야 돼요. 

 

이걸 안 나가고, 계속 거기만 뱅뱅 돌고 있으면, 
끝까지 그냥 뺑뺑이 돌다가 내 인생 다 끝납니다. 아멘! 
여호수아처럼 앞으로 나가십시오.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죠. 

그리고 이 사명은 어디서 주어진다고요? 
여호와의 불 앞에서! 
그래서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셔야 되는 거예요. 
모여서 예배할 때, 여호와의 불이 임하겠죠. 어디 딴 데서 임하겠습니까? 

▲근데 오늘날 <인본주의 기독교의 함정>은 뭐냐면,
이 '첫 번째 단계'를 빼요. *호렙산의 불 

그리고 그냥 세상에서 잘 살라는 거예요.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자기 생각으로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그냥 직장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 
그것만 강조하는데... 
그런데 그 삶을 살 힘이 어디서부터 나옵니까? 

여호와의 불을 대면 했을 때, 그 삶을 살아낼 힘이 나오는 거지, 
여호와의 불을 대면한 적도 없는데, 그런 삶을 살 힘이 어떻게 나오겠어요? 

그래서 여러분, 모든 시작점은 예배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예배에서 여호와의 불이 임하는 거예요. 
그 여호와의 불 가운데,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앞에서 엎드리고, 
그 앞에서 회개하고, 그 앞에서 감격하고, 그 앞에서 자원하고... 

이러고 난 다음에, 그걸 가지고 세상에서 승리하는 거죠. 
그 다음에 각자 부름 받은 곳에서 사명을 이루는 싸움을 싸우는 거지, 
여호와의 불이 없이, 무슨 사명을 이루는 싸움을 삽니까? 

여호와의 불도 없는데, 뭐라고 내게 말씀하셨는지 듣지도 못했는데, 
무슨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겠어요? 

그러니까 혼으로(자기 지, 정, 의에 의존해서)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성령의 인도함으로 살지 않고, 맨날 자기 혼으로 삶을 사는 거예요. 

▲제가 과거에 미국 교회에 갔다가, 너무너무 감격됐던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 
한 미국 자매인데, 이 자매가 22살에 선교사로 헌신해서, 이라크에 가 있던 자매였어요.

근데 이 자매가, 자기가 헌신했던 얘기를 해 주더라고요.
그때 거기가 전쟁 중이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포로로 붙잡힙니다. 
그래서 동료 선교사들은 다들 '죽었겠거니'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구출해내셨어요. 

미군이 이제 어느 지역을 비행기로 공습을 하는데, 
이라크 사람들이 급하니까, 트레일러 하나를 그냥 버려두고 도망갔어요. 
그런데 열어 보니까 포로들이 나온 거예요. 

뭐 그래서 자매가 구출이 돼 가지고, 그때 전 미국이 떠들썩헀죠. 
2000~2001년 경이었어요.

그때 이 자매의 간증을 직접 들은 일이 있었는데,
이 자매가 이제 선교사로 나가려고 할 때 
그 예수 믿은지 얼마 안 됐었대요.

그래서 아직 좀 준비도 덜 되고, 미성숙하고, 그래서 선교사 안 보내 줄 거 같아서 
예배 때마다 자매가 뒤에서 손들고 펄쩍펄쩍 뛰었다는 거예요.
 
근데 그렇게 찬양하면서 뛴 이유가 뭐냐면 
'제가 여기 있어요. 하나님, 제가 여기 있어요. 
하나님, 나를 좀 선교지로 보내 주세요!'
 
혹시 하나님이 못 보셔서 잊어버리실까봐
자기는 예배실 뒤에서 매 시간마다 찬양하며 펄쩍펄쩍 뛰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자매를 이라크로 가게 하셨는데, 
그렇게 포로로 붙잡혔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나서, 
미국에 돌아와서 1~2년 정도 쉬었다가, 다시 이라크로 들어갔어요. 

다시 두 번째는 모로코로 들어갔다고 제가 들었는데 
하여간 그렇게 들어갔던 그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여러분 사명을 이루는 삶이라는 것은, 기뻐서 펄쩍펄쩍 뛰는 삶이지, 
막 두려움과 부담감으로 주저주저 하는... 이런게 아니에요. 그건 뭔가 잘못된 거예요. 

사명을 이루는 삶은, 그거에 내 인생을 다 집어넣어도 아깝지 않고, 
막 거기에다 나의 인생 전부를 다 쏟아 넣어도, 전혀 아깝지 않고 
막 그게 나의 모든 관심사이고, 
그래서 진짜 하나님 앞에서 '나 여기 있어요!'하고, 손들고 펄쩍펄쩍 뛰는 거예요. 

그게 이사야서 6장입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꼬?' 하셨더니 
이사야가, 혹시 자기 말고 다른 사람 보내실까 봐, 
바로 손을 번쩍 들고 '나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그렇게 자원한 거죠!
혹시 다른 사람 보내실까봐요... 

이게 여러분이 그 사명의 불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에요. 
이 불을 받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이 불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글에서 찾다가 못 찾았습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