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에서 사도바울이 채택한 선교전략 행18:1-8 2009.06.14.스크랩
▲한국식 선교방식의 특징
흔히 외국의 선교 전략가들이 한국인들의 선교 방식을 말할 때
‘열정의 선교’라고 말합니다.
정말이지 우리 한국인들은 한번 불만 붙기만 하면
아무도 못 말리는 불같은 열정을 가지고 선교하는 민족입니다.
그것이 우리 한국교회가 복음을 수용한지 불과 120여년 만에 세계에서 2번째로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국가가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슴으로 선교하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선교를 비평적으로 언급하는 이들 중에는 한국 교회가
‘전략이 없는 선교’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 선교에는 가슴은 있는데, 머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 전문가들이 전략 없이 무조건 가서 부딪치는 선교 방식을 말할 때
영어로 ‘korean way of doing mission’ 즉 ‘한국식 선교’라는 말을 합니다.
저는 이 말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받아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서구 교회들이 수많은 회의를 반복하며
과연 그 선교지에 갈 것인가/말 것인가를 논의하며 어떤 결론도 도출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한국 선교사는 벌써 선교지에 가서 말뚝 박아놓고 교회를 시작해 놓고 보는
그 저돌적인 모험성, 그 개척성이 오늘의 한국 선교의 성과를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선교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보다 효율적인 선교 열매를 위해서
진지하게 선교 전략을 고심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서구 선교는 한국인들에게 열정을 배워야만 한다면
거꾸로 우리 한국인들은 서구 지도자들에게서 전략을 배워야만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 바로 전략입니다.
우리의 선교의 최고의 귀감은 바울 사도입니다. 그는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전략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 사도로 하여금
1세기 범세계적인 초대 교회의 기초를 놓게 한 비밀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선교 전략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고린도 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울 사도의 제2차 전도여행의 사실상 마지막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린도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고린도에서 떠난 후 잠시 에베소를 들리지만
에베소는 경유만하고, 다시 에베소로 돌아올 것을 언약하고
그는 선교 여행의 출발지였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행18:21-22
그러나 그는 제2차전도 여행중 가장 오랜 시간을 고린도에 머물며
괄목할만한 선교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고린도라는 도시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자, 그러면 이 고린도를 변화시킨 바울의 선교 전략은 무엇이었을까요?>
◑1. <도시 선교 전략>입니다.
도시 선교(Urban mission)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인구가 집중하는 도시에
우리의 선교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농촌에도 섬 지방에도 부지런히 선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구가 집중하는 대도시의 복음화 없이는
세계 복음화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중요한 선교 자원과 선교 역량은 도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뚜렷한 한 변천 현상을 가르쳐 ‘도시화’(urbanization)
라고 말합니다.
1850년에는 전 세계에 100만 이상의 인구가 사는 도시가 겨우 4개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에는 225개, 2000년대에 들어서며 500개가 되었습니다.
소위 1천만 이상의 인구가 사는 거대 도시(mega-city)는
1950년까지는 런던과 뉴욕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25개 도시(수도권 포함)가 되었습니다.
세계 인구 사전에 의하면 1위가 동경(3천3백 8십만), 2위가 서울(2천3백 9십만),
3위가 멕시코(2천2백9십만)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인구 학자들은 서기 2030년이 되면 세계 인구가 81억이 될 것인데
그 중 60%인 50억이 수도권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것을 메가시티 트렌드(megacity trend)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교학자들도 이런 메기시티 트렌드에 따르는 세계 복음화 전략을
가장 중요한 미래 선교전략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래 전에 이 중요성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살던 당시 소위 그레코로만 세계의 3대 도시는 로마, 고린도, 에베소였습니다.
당시 로마 인구가 약 100만, 고린도 시는 절정에 인구 75만을 거느리고 있었고
에베소가 50만이었습니다. 바울은 아직 로마에 갈 상황이 못 되었고
그렇다면 바울이 어디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요? 그렇습니다.
에베소와 고린도였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3년, *3차전도여행
그리고 고린도에서 약 1년 반(행18:11)을 머물며 선교한 것입니다. *2차전도여행
얼마나 전략적입니까?
그는 도시의 복음화 없이는 세상의 변화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악마는 도시에 살고, 천사는 농촌에 산다고 했지만
그러기에 더욱 도시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시의 고린도는 가장 번영하는 무역도시였고 문화의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매 2년마다 지금의 올림픽과 비슷한 체육 축전(Ithmian games)이 벌어지고 있었고
해발 600m의 아크로코린토 바위 언덕 정상에는 유명한 아프로디테(비너스)신전이 있어
거기 고용된 1천명의 여인들이 공개 매춘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인처럼 행동한다’는 말은 매춘한다는 의미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도시는 복음이 필요한 도시가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 도시에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올인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바울의 이 도시 선교 비전 그리고 도시 선교 전략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2. <자비량 선교 전략>입니다.
바울은 이 도시 고린도에서 자기 평생에 힘이 될 동역자 부부를 만납니다.
그가 바로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였습니다. 본문 2-3절을 읽겠습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 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라’
바울 당시의 유대인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만약의 경우 생존 전략으로 한가지 씩 기술을 꼭 가르쳤다고 합니다.
바울은 유대인 학자 가말리엘에게 배우며 학자의 훈련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에게는 ‘천막 만드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울로 하여금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피해
고린도로 온 ‘천막 업자’(tentmaker) 아굴라 부부와의 만남과 동역을 가능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아굴라 부부는 주상 복합체 스타일의 건물에 살면서
아래층에 공장을 설치하고, 위층에 거주하며 살고 있었는데
바울이 취직하러 가서 아굴라 부부를 만났을지 모른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바울은 취직하러 간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낮에 일하여 돈을 벌면서
저녁과 밤으로 아굴라 부부와 함께 전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남들에게 전도비를 받지 않고 전도하는 것을 ‘자비량 선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래 자비량 선교라는 말은 지금은 고인이 된 아프칸 선교사요 고든 콘웰 신학교
선교학 교수였던 크리스티 윌슨 Christy Wilson 박사가 그의 책
<현대의 자비량 선교사들 Today's Tentmakers>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여
보편화된 말이었습니다.
그는 20세기 이후에는 자비량 선교가 아니면
세계 선교의 과업을 수행할 수 없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이미 전 세계의 상당한 나라들은 선교사나 목사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선교 목적의 비자를 발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라의 대부분은 여전히 전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방문하여, 그 직업으로 기여하는 것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한 교회가 아무리 선교에 헌신한다 해도
여전히 우리의 선교 재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시대에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지상명령의 과제를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그 대답이 바로 자비량 선교 혹은 전문인 선교인 것입니다.
자기 직업을 갖고 일하면서 여전히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를 가르쳐 <평신도 선교>라고 부르고
이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평신도 선교사라고 부릅니다.
우리 교회의 사명선언문은 우리 모두가 목장교회를 통해
‘평신도 선교사’가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울 사도에게 배운 자비량 선교의 전략인 것입니다.
◑3. <셀 목회 전략>입니다.
바울 사도는 처음 고린도에서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한 선교를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본문 행18:4절에 보면 ‘안식일 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고 했습니다.
베뢰아에 두고 온 동역자들인 실리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하자
(바울이 먼저 고린도로 내려온 상황, 두 사람이 후에 합류함)
바울은 더욱 힘을 얻어 열심히 전도합니다. 5절을 읽겠습니다.
‘실리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18:5
바울은 단순한 복음 예수는 구주, 곧 예수는 그리스도임을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했고, 이것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회당 중심의 선교는, 이내 장벽에 부딪힌 것으로 보입니다.
6절 말씀은 바울이 대적과 비방을 당했다고 증거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의 새로운 선교 전략이 탄생합니다.
그것이 바로 셀 교회(목장 교회)전략이었던 것입니다.
7-8절을 보겠습니다.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학자들은 디도 유스도가 아마도 이방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학자들은 바울이 회당에서 핍박을 받으면서 모임 장소를 회당에서
유스도의 집으로 옮긴 것이
바울의 이방인 선교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유스도와 힘께 회심한 것으로 보이는 회당장 그리스보는
또한 이 고린도 도시에서 영향력을 갖는 걸출한 지도자이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회심과 헌신은 결정적으로 바울의 고린도 선교의
기폭제가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유스도의 집에서 모인 셀 모임이었지만, 그 모임의 영향력은 적지 않아
본문 8절의 증언처럼 수많은 고린도인들이 이 모임을 통해 주께로 돌아왔고,
18:10에 보면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흔히 셀 목회의 가치를 말할 때, 셀 목회의 생명은 전도에 있다고 말합니다.
전도가 없고 아웃리치가 없는 것은 셀 모임의 존재 의의를 상실한 것입니다.
고린도 유대인 회당 옆에서 모인 작은 셀 모임
그러나 이 모임이 바로 고린도를 변화시키는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의 핵심 마당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땅 밟기는, 정복의 의미보다 축복의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밟고 온 그 땅에 ‘무엇을 하고 왔느냐’ 보다
‘무엇을 남기고 왔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방문한 그 곳에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사랑을 남기고 온다면,
복음을 남기고 온다면 바로 그 사랑이 그 복음이 그 땅에 축복이 되는
그 날 우리는 단기 선교의 기회를 주신 주님을 영원히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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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선교 역사에 있어서 소수의 힘
세계 선교 역사를 보면, 창조적 소수minority들이
선교의 역사를 이끌어오다시피 했습니다.
개신교가 탄생하기 전 중세 천주교 시대에,
세계 선교는 주로 수도원과 수도사 중심이었습니다.
'미션' 영화로 유명한 예수회, 그 외 프랜시스 수도회, 도미니크 수도회 등
이들 수도회들은 로마 가톨릭이라는 거대 교회에서 그 차지하는 위치가
변방이요, 소수minority요, 선교사업에 있어서 천주교회의 정식 인준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자생적 종단order들이었습니다.
처음엔 정식 교회도 아니었던 셈이지요.
그러나 그 소수들이 큰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남미가 지금까지 천주교화 되었습니다.
그것은 개신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 소수 모라비안 운동
개신교 세계 선교는 18세기에 할레 대학에서 기원을 갖고 출발합니다.
할레 대학은 당시 약 반세기만에 6천 명의 사역자를 배출했는데,
그 중 60명이 개신교 최초 해외선교사로 자원해서
인도와 신대륙 등지로 떠났습니다.
이 할레 대학은 ‘경건주의’라는 일종의 소수minority 집단이었습니다.
개신교식 프란시스회, 도미니크회 같은 수도원 운동인 셈이지요.
할레 대학에서 배출한 걸출한 인물은 진센돌프(1700-1760)입니다.
그는 할레에서 7년간 수학했고, 공동체herrn hut를 조직해서
‘제2의 할레’를 꿈꾸었습니다.
그는 그 유명한 모라비안 선교회를 조직해서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그들이 단 20년 만에 이룬 선교의 업적들은
앞서 2세기 동안 영국 국교회와 개신교 전체의 해외선교 사역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2) 소수 웨슬리 운동
진센돌프와 모라비안 공동체의 또 하나의 큰 업적은
그 유명한 요한 웨슬리의 회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대서양 풍랑 이는 배속에서 모라비안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고,
또한 영국의 올드스게이트에 있는 모라비안 집회소에서
모라비안들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을 때인 1738년 5월 24일에
그는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후에 그는 대륙의 모라비안 공동체를 직접 방문해서 진센돌프를 만나며
그에게 영감을 받습니다.
웨슬리는 후에 킹스우드Kingswood라는 공동체 학교를 세웠는데,
그것과 모라비안 공동체 herrn hut 와 하루 일과표를 비교해보면,
거의 똑 같습니다. 거기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존 웨슬리와 교육」 알프레드 버디, 감리회 교육국 출판, pp.41-46
▲「가톨릭 교회사」의 교훈 (펀 글)
저는 개신교 교인이요 목사이지만, 가끔 개신교보다 교회의 역사가 훨씬 더 긴
천주교를 통해 교회에 관한 소중한 것을 배우게 됩니다.
특별히 제가 교회에 관하여 많은 가르침을 받게 된 교회사 책이 한 권 있었는데
그 책은 알란 슈라크 라는 신부님이 쓴
<가톨릭 교회사>라는 책입니다.
그 책을 보면 2000년 교회의 역사를 말하면서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교회에 힘은 언제 주어지는지를 잘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역사적으로 힘을 얻게 된 것은 3차례 큰 사건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1) 첫 번째는 바로 종교개혁 때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떨어져 나갔을 때,
가톨릭교회는 그때까지의 선교의 방법을 다시 수정하는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가톨릭 쇄신 작업의 첫 열매가
바로 그 유명한 <예수회>였는데,
이 예수회에서 동양에 파송한 선교사가 프란시스 자비에르와 마테오리치 였습니다.
프란시스 자비에르는 일본에 복음을 전해 준 첫 선교사였고,
마테오리치는 중국에 복음을 전해 준 첫 선교사입니다.
2) 1870년 중부 이탈리아의 교황령이 결국 군사력에 의하여 탈취되었을 때입니다.
교황이 세속적인 힘을 잃었을 때,
그와 함께 가톨릭교회가 유럽에서 정치적인 세력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1천 여년의 기나긴 역사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황이나 많은 가톨릭 신자의 눈에는
이런 교황령의 멸망과 진보적인 입헌 정부들의 등장이 비극으로 보였으나,
실제로는 이것이 하나의 축복이 되고, 가톨릭교회로서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국가의 연대가 종식되자
가톨릭교회는 가일층 분명하게 그 본연의 임무인 영성 개발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3) 마지막으로 20세기 이탈리아를 통치하던 무솔리니에게
교회는 모든 것을 내 주어야만 했을 때입니다.
무솔리니는 현재의 바티칸으로 로마 교황청의 땅을 축소시킨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톨릭교회로서는 망하는 것과 같은 치욕의 사건이었지만
그 때가 바로 교회로서는 커다란 은총의 시기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교황의 권위가 지상 왕국을 소유함으로써 주어진다고
생각 했던 시대의 종말>을 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적인 힘을 잃으면서 본래의 영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역사학자의 눈은 정확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왜 지난 20년 동안 개신교회는 서서히 위기 속에
개신교 신자가 줄어들고, 가톨릭교회의 신자가 급증하는가에 대한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는 말
신앙인의 힘은 잡으려 하지 않고, 놓으려 할 때 나타납니다.
교회의 힘은 높아지려 하지 않고, 낮아지려 할 때 나타납니다.
약대 털옷과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을 때
비로소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하고도 참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돈의 힘을 의지하고, 사람(숫자)의 힘을 의지하려 할 때,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소유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어떤 사람은 1시간을 한 뒤에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건 우리 학교, 서울에서, 한국에서, 아시아에서, 세계에서
나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요즘에는 워크 하드(work hard)보다는 워크 스마트(work smart)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워크 하드, 즉 열심히 일하는 것의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워크 스마트는 오랜 동안의 워크 하드의 결실입니다.
에디슨의 명언처럼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지며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의 별명’입니다.
꾸준한 노력이 사람을 천재로 만들고, 또 승리자로 만듭니다.
주님의 은혜, 주님의 성령, 주님이 주시는 사명감은
나로 하여금 노력하는 사람 hard worker을 넘어서
스마트 워커 smart worker로 만들어줍니다.
그러면 '천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요즘 '달인'이라는 말을 더 잘 쓰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