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karamos/220108445097 정리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 신27:11~26 2011.08.07.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말씀도 무시하고 삽니다.
대신에 철저히 ‘힘의 논리’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자기에게 힘이 있으면, 이웃 나라도 얼마든지 침범하면서, 그게 잘못인지도 모릅니다.
80년 전에, 일본이 힘이 있다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범한 대동아 전쟁을 일으켰죠.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성경말씀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일본이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더 부강해지고, 존경 받는 나라가 되었습니까?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일본은,
아시아에서 대체로 외면 받습니다. 왜냐면 침략국이란 오명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동남아 국가들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과거 역사를 잊지 않습니다.
인터넷 통계에 보니, 1931년 만주사변 이후 1945년 태평양 전쟁 끝날까지
일본군 총 전사자 수 2,849,805명, 부상자 수 1,553,002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군 공습과 원폭 투하로, 일본 민간인들도 수 십 만 사망했습니다.
약 3백만에 달하는 아들, 남편, 동생을 전장터로 내보내서, 전사의 슬픔을 겪었던
일본 국민들, 각 가정의 비애와, 극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일본이 전쟁을 하지 않고, 그 자원을 다른 곳에 투자했다면,
일본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부강하고, 또한 존경받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도,
중국이 대만을 군사력을 통해 합병하려는 것도
기본적으로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을 거스리는 것이요,
그 결과는 좋지 못할 것입니다.
△출애굽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진입할 때도,
하나님은 에돔 족속과 싸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면 에돔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신2:5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나중에 다윗 왕때, 에돔 땅을 한 때 점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그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다 내쫓은 것이 아니라,
에돔이 이스라엘의 남쪽 국경을 자꾸 어지럽게 하니까, ‘역내 안정’을 위한 조치였죠.
이스라엘에 병합시킨 것도 아니었습니다. 침략 요인을 제거한 것이었습니다.
최근 뉴스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이 전쟁이 곧 끝나면,
가자 지구에는 팔레스틴 정부가 세워지고, 팔레스틴 자치권을 인정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건 성경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빼앗는 것이 아니라,
침략 요인만을 제거하고 물러나는 것이니까요.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지난 과거 역사를 보면,
앗수르 제국도, 바벨론 제국도, 헬라 제국도, 로마 제국도,
결국은 자기들이 힘으로 점령했던 모든 나라들을, 결국은 토해내어야 했습니다.
그 제국의 길이가 영구하지 못하고, 역사 속에서 길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힘이 있으면,
이웃 나라도 집어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경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살다가는,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가까운 역사에서 일본을 보십시오!
사람은, 인간적 욕심으로, 주변의 나라들을 자꾸 합병하고 통합해서
거대 제국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제국의 힘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 원리로 맞지 않습니다.
혹시 이미 통합을 했더라도, 최대한 자치권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스스로 원해서, 제국에 잔류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문제 없습니다.
그런 나라들이 지금 세상에도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독립하려는 데도, 제국의 결속을 운운하며 힘으로 민족의 독립을 막는 것은
‘경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성경적 원리에 어긋한 것이며,
뭐든지 성경적 원리에 어긋날 때는... 그 결과는 앞으로 역사에 좋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은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거죠. 앗수르, 바벨론, 헬라, 로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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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 자녀에게 ‘기도하고, 성경 보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저 명문대가 우선이 아니라요.
신27: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신명기 27: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큰 돌) 위에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인간의 머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꼭 남겨야 할 일, 잊지 말아야 할 역사는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그래서 늘 잊지 않고 읽고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제가 수요일마다 갈릴리교회 25주년 역사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기록이 별로 없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록을 잘 해둘 것을..’ 하는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갈릴리교회 연혁이 25년이 되니, 역사가 되어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데, 기록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잊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예전에는 종이에다 썼는데, 지금은 인터넷에 기록합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기록하는 것은, 다 날아가기도 하고, 파일을 잊어버리기가 쉽니다.
또 종이에다 기록하면 바래고 찢어집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타임캡슐을 만들어 땅에 묻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대대손손 잊지 말고 잊지 말아야 할 말이기 때문에
‘돌 위에 기록하라’고 한 것입니다. 신27:2~3
돌에 기록하려면 징을 가지고 깨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돌에 기록한 것이 가장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광개토대왕비 등 여러 가지 돌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통해,
역사를 알게 되는 일을 흔히 보게 됩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도록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서
한 자 한 자 돌에 기록하여 이스라엘 후손들이 잊어버리지 않고
영원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 말씀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축복의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정말로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자녀들이 진심으로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에게 잘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게 해주십시오.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수능 시험 좋은 점수받게 해주십시오."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아이들 수능 시험을 앞에 두면 교회마다 새벽기도 자리가 꽉 찬다고 합니다.
자식을 위해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기도를 많이 합니다.
병약한 아이들을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부모로서 그런 기도드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보다 더 앞서 기도해야 할 것이 "이 아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주일이 되면 하나님 앞에 나와야 예배를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기도하는 법만 잘 가르친다면,
기도하는 아이로만 양육한다면 그보다 더 자식을 잘 가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할 줄 아는 아이로 가르치면
그 아이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동안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어려운 일 당하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도, 자식들 평생 옆에서 도와줄 수 없습니다.
해주고 싶어도 못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해도, 자녀 대신 공부해줄 수 없습니다.
부모가 꼭 알아야 할 것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언제든지 필요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기도와 말씀)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아이들이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돈 많이 벌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기도해주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기도하는 아이들, 열심히 예배드리는 아이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줄 아는 아이가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부모는 기도해야 합니다.
저도 젊어서는 그렇게 잘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가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아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주일에 교회에 와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아이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돌에 세워서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그 돌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하라는 것입니다.
당대만이 아니라, 자손들도 돌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자신의 잘못된 삶도 깨닫고, 잘못 들었던 인생의 길을 되돌이키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 뿐만 아니라, 자손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축복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돌들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어디에서든지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이 자손에게 무엇을 남기게 될지 모르지만
손으로 성경 말씀을 써서 자손들에게 가보로 남겨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시고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남겨줄 것은 없지만, 축복의 비밀이 담긴 인생의 신비한 책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중하니까 돌 위에 새겨서
오고가면서 이 말씀을 보고 생각하고 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이 말씀을 오고가며 보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신27:15절 이하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싫어하시고 적대시하는
12가지 저주의 항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을 하나님 대신 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믿음의 싸움을 하며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상과의 싸움입니다. 보이지 않는 심령의 싸움입니다.
내가 스스로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네 믿음을 스스로 시험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스스로 내 마음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돈하고 하나님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가?
정말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하나님보다 자식에게 더 쩔쩔매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자식 생각을 더 많이 하고,
하나님보다 돈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냥 놔두면, 하나님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에서 자꾸 뒤로 밀리게 됩니다.
2번이 되었다고 3번이 되고 4번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을 싸워서 자꾸 뒤로 밀리는 하나님을,
우리 삶의 맨 앞으로, 제1 우선순위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입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자식 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보다 하나님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힘들고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합니다. 피눈물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이런 싸움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7족속과 싸워서 그들을 몰아냈는데,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내 속에 있는 일곱 족속, 일곱 우상을 몰아내는 영적 전쟁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주례할 때 늘 하는 말인데요,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사랑이 예전에는 3년이 간다고 했는지
요즘에는 3개월 간다고 합니다. 사랑은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부도 마찬가지고, 모든 일이 다 변하게 마련입니다.
사랑은 노력하고 애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도바울은 사랑을 오래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참고 참아야 하면 모든 것을 다 견뎌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좋은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 것을 향하여 자꾸 기울어지는 우리의 마음을 추슬러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믿음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을 공급받는 것이 기도입니다. 말씀입니다. 예배요 찬송입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오고
이 피눈물나는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매일 기도해도 힘듭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일주일에 한번, 주일날 두 장 찬송 부르는 것이 다라면 이길 수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 읽는 성경만으로는
세상의 끝없는 유혹을 이길 수 있는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또 하나는 이기적인 우리의 마음과의 싸움입니다.
욕심많고 나만을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엇 하나 선뜻 내놓지 못합니다.
인색하고 이기적인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신령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 중에 특히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말씀을 살펴봅니다.
17절에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경계표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지계표’라 했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경계표를 옮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역을 우리가 침범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경계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잠시 하나님의 것을 빌린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경계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주인인줄 압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경계표를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인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경계표를 옮기는 것입니다.
▲남의 것 을 내가 가지지 있는가 생각해보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내가 가진 것 중에 종업원이 가져야 할 것을 가진 것은 없는가?’
‘경계표 옮긴 것은 없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이것은 너희 회사 종업원 것인데 네 것으로 가져왔구나." 하시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을 안 주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경계표를 옮긴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보면, 내 이름으로 헌금한 것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헌금한 것으로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헌금하기는 했는데, 다른 사람의 몫을 가지고 있다가
자신의 이름으로 헌금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다른 사람이 헌금한 것이므로
그 사람의 몫으로 계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부자들이 헌금한 것, 사장님이 헌금한 것 중에 그런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남의 것이 있는지 꼭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직분에 맞는 경계표를 잘 세워야 합니다.
서로 침범하면 안 됩니다.
교회의 돈을, 개인의 돈으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저 같은 목사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교회 돈을 자신의 돈으로 생각하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경계표를 잘 지켜야 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경계표를 잘 지켜야 합니다.
간섭해야 할 것도 있고 간섭하지 않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우스개소리 중에 집에서 쫓겨난 남자들에게 ‘왜 쫓겨났느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늦게 들어와서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다가, 쫓겨났다고 했다고 합니다.
경계표입니다. 아무리 남편이지면 ‘어디 갔다 왔느냐, 무엇을 하고 왔느냐’
꼬치고치 캐물어 보지 않는 것이 경계표입니다.
교회 안에서나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경계표를 넘어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이고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머리가 어떻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경계표를 넘어선 것입니다.
자신의 머리가 아니면 말하면 안 됩니다. 보기 싫으면 보지 않으면 됩니다.
옛날에 우리 교회에서도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치마가 너무 짧으니 좀 길게 입으라’고
제게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신의 며느리이니까 본인이 직접 말하라’고 했습니다.
자신과 관계없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쿨 해야 합니다.
자기와 관계없으면 말하면 안 됩니다. 경계표를 옮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하기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있고 말이 많은 것입니다.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클 때, 방문에다 "요(要)노크!" 라고 써 붙였었습니다.
자식들 방이지만 노크를 하라는 것입니다.
경계표를 넘나드는 데서 생기는 자식들과의 갈등을, 부모들이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 일도 아닌데 간섭하고 염려하고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집에서든지 밖에서든지 반찬투정을 안합니다.
옛날에는 이것도 없어서 못 먹었는데,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에서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자기가 만들어 먹으면 됩니다.
정 안 맞으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부부간에도 경계표를 지켜야 합니다.
밥은 꼭 여자가 하라는 법이 없으니, 입맛이 맞지 않으면 자기가 만들어 먹으면 됩니다.
우리가 이런 경계표를 잘 지켜야 가정에서도 편안하고 교회도 편안합니다.
목사와 교인들의 경계표도 잘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편안합니다.
▲15절 이하에, 여러 상식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인 일이 나옵니다.
19절에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억울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삽니다.
제 마음속에 "사람들에게 좋은 일은 못할지언정 억울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나 때문에 큰 은혜를 입었다는 말을 듣지 못할지언정, 나 때문에 억울하다는 말은 듣지 말자.”
를 마음속에 좌우명처럼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속에 새겨서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사랑받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16: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성도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기업, 구역, 경계표 안에서
만족을, 아름다움을, 감사를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성도가, 남의 경계표를 옮기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구역을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만족하는데, 남의 기업에 왜 탐을 내겠습니까?
특히 젊은이들은, 이 원리를 남녀 교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교제하고 있는 이성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짝이 아니라면,
깊이 교제하거나 깊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남의 경계석을 내 임의로 옮기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결혼하지 않은, 미혼의 남자를/여자를 건드리는 것이니,
남의 가정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쉽게 생각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습니다. 넒게 생각해 보면,
그가 아직은 미혼이지만, 결국 머지않은 장래에 가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내가 교제하는 이성이, 미래에 남의 배우자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가정하고, 교제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의 배우자가 될 사람을, 마치 자기 배우자인 것처럼 대우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남의 경계표를 옮겨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고,
그런 불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남의 집 경계석은, 무단으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호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
주1) 제 동생은 공부를 참 잘했습니다. (펀 글)
그 동생이 어디를 가서나 공부로 인해 인정 받았습니다.
동생은 공부하기전에 꼭 성경을 3장에서 5장씩 읽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하는 공부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우선 할수 없고,
또한 자신의 공부가 하나님을 위해 쓰여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였습니다.
동생이 한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맞이 했을 때의 일입니다.
늦가을에 치뤄지는 수능 시험의 준비가 막바지로 치닫는 시기라서
고3의 여름방학은 수험생 뿐 아니라 수험생 부모,
그리고 수험생을 담당하는 교사가 모두 초 긴장하는 시간입니다.
이때 여름 보충 수업때문에 저희 동생이 교회에선 하는 여름 수련회를
못가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수련회 때문에 보충수업을 빠지면
겨울에 대학교 원서를 안 쓰겠다고 엄포를 놓으시는 선생님 앞에
제 동생과 부모님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수련회가 학교 공부로 영혼이 말라 버린 동생에게 필요할 뿐 아니라,
수련회를 안가고 보충수업을 보낸 것이 하나님 보다는 공부가 우선임을 나타내는 것이라
제 동생을 수련회에 보내기 위해 선생님을 설득 해 보기로 했습니다.
어머님께서 선생님을 찾아가 케익도 사드리고 사정 했지만, 선생님은 더 완강해 졌습니다.
결국 무단으로 결석하고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무지 하게 화가 나신 것은 당연합니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수능을 보고 제 동생의 성적이 잘 나오니까
원서를 안 써준다고 한 선생님께서
직접 원서를 써서 오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좋은 대학을 가서 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이 저의 동생의 삶에 어떠한 임팩트를 남겼는지는 여러분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제 동생에게 그렇한 삶의 분기점이 올 때
이 친구가 같은 결정을 내릴수 있는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