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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며 향락을 멀리하는

LNCK 2024. 1. 21. 08:34

◈하나님을 경외하며 향락을 멀리하는..  잠23:17~35     2023.12.12.  <변증>


◑23:17~18절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7절에서 '죄인의 형통, 악인의 형통'을 말씀합니다. 
'악인의 형통, 의인의 고난' 이 두 가지가 신정론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고 핵심 주제죠. 

'악인을 어떻게 하나님은 형통하게 그냥 놔두실 수 있느냐?' 
'어떻게 의인에게 고난을 주실 수 있느냐?' 신정론은 이 두 가지 질문이에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보고, 이제 성도의 마음이 어려운 것이죠. 
자 그런데, '하나님, 왜 악인을 형통하게 놔두십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죠? 

'그 질문을 하는 너는, 악인에 해당이 안 되냐?' 
세상 사람들은 오십보 백보입니다.
하늘 위에서 보면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막 목에 핏대를 세우고 
'도대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악인들이 형통하는데, 그냥 놔둘 수 있느냐?'고 항의하면, 
그러면 나도 포함해서 다 없애셔야 되잖아요

반대로 '하나님, 어떻게 의인에게 고난을 주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래, 네가 얼마나 의롭냐?'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래서 신정론神正論은 (*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이론 theodicy
신이 전능하면서도 선하다면 어째서 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하는가를 묻는 물음에 대한 대답)

'하나님이 과연 이렇게 하시는 것이 바른 것이냐?' 
즉 하나님을 피고석에 앉혀 놓고 저울질을 하는 것이거든요. 

근데 오늘 말씀 가운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라' 잠23:17
부러워하면서 '나도 저기를 갈까? 
저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내가 힘을 얻고, 권력을 얻고, 돈을 얻지 않을까?' 
그거 부러워서 닮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분노하지 마라'  
원수를 갚으려고 하고, 악을 악으로 이기려고 하고... 그렇게 악을 쓰다가는 망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성경의 원리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 

여러분 '악인의 형통'을 너무 묵상을 하면, 
나의 내면이 병들게 돼 있죠. 내 영혼이 망가집니다. 내 신앙이 망가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 

그래서 토기장이 비유에서 많이 나오는 얘긴데 
'네가 감히 토기장이 하나님께 이래라 저래라 하겠느냐?'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겠느냐?' 선을 넘었다는 거죠. 

신정론은, 까딱 잘못하면 선을 넘게 되어 있어요. 
'내가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을 텐데...' 

하나님이 이해가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용납이 안 되는 거죠.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용납하고 말고 하겠습니까'

성경에서는 신정론적 질문에, 물론 하나님은 진지하게 답변하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의 영역에 선을 넘는 것을 결코 좋게 보진 않습니다. 

그래서 '신정론'이란 주제에, 저도 관심이 많아서 나름 많이 연구했는데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지혜와 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거예요. 

▲새가족부에서 최근에 '무신론, 유신론, 진화론, 창조론'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한 분이 이런 얘기를 꺼냈어요. 

현대 정신사조가 '무신론적 진화론, 무신론적인 인본주의, 다원주의' 
오늘날 이렇게 극단적으로 흘러가니까,  
오늘날 상실된 도덕성의 근간이 사라지고, 도덕성의 근거 자체가 사라진 시대가 됐어요. 

도덕성을 논하기 이전에, 
절대적으로 지켜야 될 가치, 도덕성의 토대 자체가 사라진 시대이기 때문에, 
왜냐면 모든 것이 다 극단적인 상대화잖아요. (성경 같은)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거죠.

자기가 막 이런 얘기를 꺼냈더니
자기 친구가 하는 말이, 
'너는 나를 도덕성도 없는 인간으로 몰아세우는 거냐' 그리면서 화를 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거를 싸워야 됩니까? 이런 얘기를 계속 해야 됩니까?' 하고 제게 질문하는 거예요.
제가 '계속 얘기 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그 친구랑 싸우는게 아니라 
'그래서 너는 유신론자 진영에 있는거다. 무신론자 진영이 아니라!' 
이렇게 말해주라고 코칭했습니다.

'너는 나를 도덕성도 없는 인간으로 보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자체가 
그의 내면에는 '도덕적인 근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랬더니 갑자기 그분이 '아 그럴 수 있겠네요.' 하면서, 뭔가 만족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무신론자와 싸워라는 얘기가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악인들을 놔두실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한다거나 

'어떻게 세상에 윤리도덕의 근간이 없을 수 있느냐?'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무신론이나 인본주의 진영이 아니고, 
유신론, 절대주의 진영에서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너의 사상 자체가, 너가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얘기를 해 주시면 되거든요. 

이제까지 본문 17절이 '신정론적인 질문'을 하기에
거기에 대해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잠23:19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야만, 바른 길로 인생을 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은 선하신 역사의 주관자 이심을, 내 마음 가운데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뭐 설명이 안 되는 것들 많죠. 
그런데 그것을 너무 단순 논리로 설명하려고 하면, 그게 오히려 자가당착에 빠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선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선하신 일만 하시고, 
세상의 악한 일들은 사탄이 다 일으키는 것이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이원론적으로 설명을 하면, 아주 쉬울 것 같지만 

 

그러면 '사탄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도록, 하나님께서 손을 대지 못하고 계신다?'
그러면 사탄과 하나님이 같은 레벨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사탄과 하나님의 영적 전쟁에서 누가 이길지 모르는 거예요. 

성경은 그런 구도로 얘기하고 있지 않아요. 
하나님 한 분이 온 우주 만물을, 즉 인간계와 물질계와 영계를 다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탄도, 욥기에서도 나오는 거지만, 
'내가 욥을 공격하는 것도, 하나님의 허용이 없이는 
사탄도, 그 졸개들인 귀신들도 수족을 제 마음대로 놀릴 수 없어요. 

하나님 한 분이 다스리신다 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강조되지만 
'그러면 하나님이 그런 (세상의 악, 성도의 고통)것을 어떻게 허용하시는가?'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고통을 통해서도 
세상의 어두움을 통해서도 
결국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여전히 신정론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가 다 이해가 안 되죠.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이 악을 허용 이유는 사랑 때문입니다. 

왜냐면 사랑의 핵심 요소는 자유의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사랑해서 '넌 나만 사랑해야 돼' 
그리고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그를 자기 방에 가둬두고, 몸을 묶어놨어요. 
이게 사랑인가요? 아니죠, 공포죠. 

실제로 그렇게 강박집착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면에서 아이들에게도, 여러분은 너무 강박 집착에 빠지시면 안 돼요.
대부분의 가정들이 그러기 쉽습니다.

우리의 자원하는 사랑을,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그 반대편을 선택할 수 있는, 엄청난 선택권을 주신 거예요. 

그래서 '왜 선악과는 만들었느냐,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줬느냐?' 
그러면 그냥 그걸 안 주고, 우리를 고급 장난감으로 만들면 되는 거예요. 
우리를 고급 로봇으로 만들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어요. 

여러분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는데, 
자식이 정말 뭐 최근에 나온 챗GPT나 AI 빅데이터, 
그런 기계들보다 조금 더 사양이 좋은, 고급 로봇이.. 여러분의 자녀이기를 원하세요. 

그 아이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키우다보면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일어날 거예요. 
그 아이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말도 엄청 많이 안 들을 거예요. 부모 속도 많이 썩일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자녀와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는 거지, 
고급 기계를 원하는게 아니에요. 

여러분 인간도 그런데... 
하나님은 더더욱 우리에게 진정한 인격적 관계를 원하시는 분이시죠. 

그래서 저는 '하나님은 너무나 큰 거를 거셨다.' 
'자기 자신이 거절당할 수 있음을 걸고' 사랑을 선택하신 거예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이 시대가 사랑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가는게,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어요. 
사랑하기 때문에 평생에 남편을 위해, 아내를 위해서, 자기 인생을 다 부숴지도록 헌신하는 것, 
자기 인생을 자식을 위해서 다 부숴지도록 헌신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길입니다. '인격적 관계!'
하나님과 성도의 인격적 관계, 부모와 자녀의 상호 인격적 관계!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야만 
인간이 사랑을 선택할 수 있고 
하나님도 사랑을 선택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길을 가시는 것이고, 

그래서 악을 허용하시는 것이고, 
사탄이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하신 거예요. 

그러나 제한적 시간 동안! *욥기 1장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결국 정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면, 선하시다면, (악과 죄를) 심판하셔야 되지 않습니까?' 
심판하실 거예요. 무섭게 심판하실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지옥은 왜 만들었습니까?' 또 정반대의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요.
인간은이 이렇게 두 가지 양극단의 질문 사이에 서 있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의 공의는, 내가 상상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공의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의 날, 하나님의 그 무서울 만큼 강력한, 
다이아몬드 칼날과 같은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가 경험하게 될 것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악인들에게도, 선인과 악인에게 햇빛과 비를 고루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 그 넓은 사랑... 
'어떻게 저런 것들을 가만히 둘 수 있으실까?' 

이때 우리는 생각해야 돼죠. '내가 너도 가만히 두고 있지 않느냐?'
이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은 가만히 두고 기다리고 계시는... 

이해가 다 어려울 정도로 대양보다 넓은, 우주보다 넓은 그 하나님의 사랑!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사이즈이고, 깊이이기 때문에 
그 공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를 보면, 마치 시계추가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괘종시계의) 시계추가 한쪽 끝으로 갔다가 다시 반대편 끝으로 가잖아요. 

그러니까 '북한을 보면 희한하다' 이렇게 보이는데 
왜냐면 근대사에서 3대 이상 독재정권이 이어진 역사가 없거든요. 

역사의 시계추는, 너무 극단으로 가면, 이거를 반대편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발생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거예요. 

그래서 악인들이 세상에서 모든 걸 다 맘대로 할 거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악인들의 형통, 악인들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거 같은 이런 역사' 
이런 세상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이 어딨냐? 
이렇게 얘기하면 또 문제가 되는 것이, 

여러분, 성경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계시록을 보시고, 또 마24장의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볼 때, 
세상 역사가 나중에 마지막에는, 너무너무 아름답게 결말이 나나요, 유토피아로 결말이 나는가요?

계시록이 예언한게, 유토피아로 끝나요, 디스토피아로 끝나요?
티스토피아로 끝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다 예고하신 거예요. 
세상이 이런 방향으로 갈 거라고, 이미 하나님이 다 성경에 알려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 역사를 기대하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의 구원 역사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기대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으셔야 돼요. 

세속사, 인간사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사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하나님의 지혜로 얻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0~21절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과음, 과식, 인간의 탐욕과 탐식, 탐심.. 이런 걸 주의하라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좀 조심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러나 한국 사람들 워낙 많이 먹긴 하죠. 

살다보면 각종 명절, 파티, 잔치, 회식... 과음하고 과식할 일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주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팬데믹이 끝난 뒤라서, 사람들이 소비를 해도 보복 소비를 하고, 
여행을 해도 보복 여행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그동안 팬데믹으로 못 했는데, 이제 한을 갚아야지!'

과도하게 음식을 먹고, 과도하게 술을 마시는 것, 
이게 심리적 보상으로 되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말이 있는데,  이제 보상심리거든요. 

그래서 사람이 과로하면, 오버워킹을 하면, 
그러면 그 사람이 반드시 과도하게 향락을 즐기게 되어 있어요. 

이거는 고대사에서부터 그랬습니다. 
그래서 헬라의 도시들이 그랬고, 우리나라도 대학가가 향락 가잖아요. 직장가가 향락가이고요.
과도하게 공부하고, 과도하게 일을 하고 나면, 사람이 보상심리를 추구하게 되는 거죠.
이게 문제가 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대학가나 직장 근처에 향락가가 아니라, 
주택가가 향락가가 되는 건 진짜 심각한 거죠.

이런 심리적인 보상은, 글쎄요. 마음을 달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 건강에 손해잖아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여러분의 내면에 문제가 생기게 돼 있어요. 
그리고 먹는 것 이것은,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안 좋게 돼 있어요.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내면의 허기짐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지 않고, 
심령의 가난함, 심령의 허기짐을 하나님의 임재로 채워야 되잖아요. 천국으로 채워야 되는데, 
그걸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다른 것(식욕, 탐욕)으로 채우려 할 수 있죠.

빌4:11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11절에는 자족하기를 배웠다, 
12절에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그래서 이 두 구절을 합쳐서, '일체만족의 비밀'을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배우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제가 훈련받을 때, 음식을 어느 단계 이상 과도하게 먹으려고 그러면 
성령께서 '그 입을 이제 좀 다물어라' 그러시더라고요. 
그게 여러분의 내면의 음성으로 들려야 돼요. 

이것이 내가 심리적으로 하나님 한 분으로 채우지를 못하고, 
뭔가 세상의 다른 것으로 채워야 되는 심리.. 그게 신앙적으로 좋지 않아요. 

그래서 여러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마음도 영성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연말에 여러분, 열심히 자기 훈련하기 굉장히 좋은 시즌이에요. *각종 모임이 있으니까
먹는 것의 절제에 관해서 말입니다. 

◑29~30절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20~21절에서 과음 과식을 한번 언급했다가, 
29~35절까지 음주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연말에 직장인들 회식 자리가 많기 때문에, 이것도 뭐 좋은 본문인 거 같아요.  *12월 설교 
게다가 요즘은 사람들이 그냥 맥주나 와인을 편하게 드시는 분위기잖아요. 
그래서 가끔 심방을 가면, 진열장에다가 양주를 쭉 해 놓으신 가정들이 있으시더라고요. 

엡5: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 구절을 예를 들면서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했죠. 어디 술 마시지 말라는 소리가 있느냐?'
라고 따지는 분들이 있죠.

제가 이렇게 답변을 드리죠. 
잠23:31절에 보면 '포도주를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엡5:18절을 근거로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싶으면, 성경을 제대로 보고 얘기를 해야죠. 

또 '예수님도 포도주를 드셨는데...' 
예수님을 당신과 동급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스라엘은 물 부족 국가이기 때문에 
음료 대용으로 쓰는 개념이 강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문화가 아닙니다. 

그리고 29절에 이미 우리가 본 것처럼, 술로 인해서 생기는 병폐가 너무나도 많잖아요. 
얼마 전에도 한 운동선수가 술자리에서 후배하고 폭행사건이 있었던 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더라고요. 

여러분 술 마시고 폭력을 행하잖아요. 음주운전 사고 내고, 
술 마시고 들어와서 집에서 가정폭력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근데 가정폭력이 아빠들만 하는게 아니라, 엄마도 술 마시고 가정폭력 하는 집안이 있어요. 

또 술 마시고 음란으로 이어지고, 외도하고, 그것 때문에 이혼하게 되고... 
이런 문제가 우리나라 사회에 엄청나게 많아요. 
술자리에 가는 것은,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삶의 바운더리를 약간 넘어보고 싶은 
그런 일탈심리가 사람들에게 있죠. 

그러니까 내가 얌전하게 낮에는 살다가, 밤에는 좀 일탈을 하면,
그러면 내 인생에 내가 너무 (모)범생처럼 살다가, 
이 선 한번 넘어 보고 나면 자유가 있나요? 거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나요?

주님 안에 진정한 자유가 있죠. 
내가 진짜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찾는 거예요.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술 안 마셔도 자유합니다. 여러분 자유하시잖아요. 아닌가요?

또 술 마시고 나서 막 카드 긁으시는 분들 있잖아요. 과소비로 이어지죠.
대한민국 사회는 술에 취한 사회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버스를 타고 가면서 묵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타고서, 
'이 사회는 술에 취한 사회인데, 하나님, 저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그들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런 기도를 했어요. 
초등학생 때 제가 그런 기도를 했었어요.

여러분, 술에 취한 사회... 그래서 술로 망가지는 가정들, 술로 망가진 관계들, 
술로 망가진 인생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술 마시지 않고도, 사람들이 얼마나 자유할 수 있고, 얼마나 행복할 수 있고, 
얼마나 충만할 수 있는지... 
그 돈 아껴서 얼마나 좋은 일들을 많이 할 수 있는지... 
그럼 그런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30절에 혼합한 술, 혼합주, 폭탄주.. 이런 거 자랑스러워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고, 
35b절에 '내가 언제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거죠.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 라고 하죠. 주객이 전도된 거죠. 

술을 마시다보면, 통제불능의 상황에 빠집니다. 이게 중독 상태죠. 
중독자들의 특징은 '난 언제든지 끊을 수 있어'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니요. 당신은 지금 이미 술을 끊을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그걸 인식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술을 끊을 수 있는가요? 술에서 자유해질 수 있는가요? 
그것은 여러분이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면, 
여러분을 얽어매고 있던 것에서 다 자유해질 수 있어요.

사람이 셀프 컨트롤, 자기 통제가 아무리 강한 사람도 
자기를 온전하게 살려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붙들려야만, 내가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래서 여러분, 우리 인생은 뭔가 한 가지에는 미치게 돼 있거든요. 
아무리 성격이 차분한 사람도, 뭐에 한 가지는 미쳐서 살게 돼 있어요. 
돈에 미치든, 술에 미치든, 사람에게 미치든, 자식에게 미치든, 
하여튼 뭔가 하나에는 미치게 돼 있는데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길에 내 인생을 올인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다른 것에 내 마음을 뺏기며 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께 미쳐서, 주 안에서 참된 자유와 승리와 충만함과 기쁨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