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m-RtgYgQg3Q *이 설교 전반부 1시간 녹취
◈바울이 자기 후계자에게 주신 권면 P1 딤후1:1~7 2014년대학부여름수련회
☞ <청년, 젊은이>
◑도입
오늘부터 저희들이 4번에 걸쳐서 디모데후서 말씀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유언적인 서신입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때, 그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가 하면,
개인적으로 바울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평생을 통해 섬기고 세웠던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특별히 박해가 아주 심해졌고, (AD64, 로마 대화재 후 네로 핍박 시작)
내부적으로는 거짓된 교사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떠나서, 배교하게 됩니다.
교회 안과 밖으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교회는 박해가 심화되고, 거짓된 교사들이 일어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배교하고, 교회 안팎이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만약에 교회를 책임져 갈 지도자들이 강력하면,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이어서 교회를 섬겨 가야 될 그 영적 지도자 디모데는,
많은 부족함과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기질적으로도 아마 굉장히 좀 연약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는 아주 마음이 곱고, 선한 분이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참 약하죠. 바울과 비교해 보면 기절적으로 약합니다.
교회를 이끌어나가야 될 지도자는 아주 약합니다.
그런데 상황은 아주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디모데는 복음과 교회를 지켜야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 놓여 있는 디모데에게, 바울은 순교,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기 다음 세대 지도자 디모데에게 주었던 영적 권면의 말씀이, <디모데후서>입니다.
'이 서신을 통해서 디모데가 감당해야 될 사역, 사명이 무엇인가?'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고, 무엇을 꿈을 꾸고,
또 어떻게 사역해야 되는가?' 하는 것들을, 바울은 명확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우리들이 디모데후서를 살펴보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또 앞으로 세워 가야 될 세상과 교회는,
어쩌면 당시 디모데가 직면했던 상황과 많은 부분에서 저는 유사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뭐 누가 설명할 필요가 없이, 우리 한국 교회는 큰 위기에 부딪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금 한국 교회를 '침몰해 가는 타이타닉'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 교회는 급성장해서,
너무나도 빨리 놀랍게 성장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이제 한국 교회는, 또 급속하게 쇠퇴하고, 자기 모순에 휘말려서
(급속하게 쇠퇴해서) 세상을 또 놀라게 하고 있다.' 이런 어떤 자조 섞인 말도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큰 교회에 계시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현실을 조금 덜 느낄 수도 있습니다만,
제가 많은 청년 사역자들, 특별히 대학부를 지도하는 사역자들을 만나보면
그분들이 이야기합니다. "지금 대학생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5%가 채 되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1980년대 초
한국 교회 가운데, 가장 뜨겁고 열정적이었던 사람들이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놀라운 부흥에는
한 30년 전에, 그때 대학생들이 부흥되고(학원 선교회의 부흥),
교회 대학부가 부흥되어졌기 때문에,
그 열매를 사실은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 부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대학부
또 대학생 선교단체가 빠른 속도로 약화되고 있습니다.
지금 또 지역 교회는 뭐 교회마다 난리입니다.
서울도 그렇고, 지방에도 몇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교회의 고령화가 심각합니다.
그러니까 교회 속에서 청년들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교회 속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상황이라면, 20년만 지나면, 그냥 저절로 문을 닫게 될 교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또 나아가서 지금 지역교회는 내부적으로 극심한 혼란과 침체를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세상은 교회를 막 결심한 듯이,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2014년 상황
수많은 이단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나 지하철 역에서나 만나서 전도하는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신천지입니다.
저희가 대학생일 때는, 학교나 어디서든 전도하는 사람은 대학생선교회였습니다.
예를 들면 내비게이토, IVF, UBF, CCC 등 많은 선교 단체들이
학교나 지하철이나 버스 속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단들, 특별히 뭐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이런 이단들의 그 전도 방법들을
기존의 교회들이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지금 이단들이 정말 우리 한국 사회에는 활개치고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아시겠지만, 세상과 교회는 급속도로 세속화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시기 직전의 상황이 어떨 것이냐?
많은 분들은 '7년 대환란'으로 비유될 수 있는 극심한 환란과 핍박이 있을거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의 상황을 무엇에 비유했느냐?
'그때는 롯의 때와 같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그 직전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각하는 일에
몰두되어져 있었던 롯의 때와 같을 것이다.' 눅17:28
또 그때는 또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다' 눅17:26
정말 홍수를 통해서 멸망 받기 직전까지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마음이 빼앗겨 있게 될 거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그 상황은 어떤 상황이 될 거냐?
세속주의가 극도로 발달할 것이라는 겁니다.
교회의 성도들까지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으로 대표되는
이 세속의 관심사에 완전히 지배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서 있는 시기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제는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그 세속주의에
점점 교회는 사로잡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라도, 놀라운 영적 지도자들,
다음 세대의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것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다면,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가고, 교회는 점점 더 무기력해져 가고 있는데,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다음 세대의 영적 지도자들이
한국 교회 속에 과연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일이지만, 우리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다음세대 지도자들은 마치 디모데처럼 연약하고 약합니다.
이 세상의 강력한 도전에, 이단들의 강력한 도전에,
또한 교회가 안팎으로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다툼과 분쟁들을 넉넉히 헤쳐 나가기에는
영적 지도자들은 너무 약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실마리를, 이 디모데후서를 통해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디모데후서 1장 1절을 한번 보시면 바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딤후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다 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인상적으로 덧붙이는 표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생명의 약속을 따라서'
여러분,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길이 무슨 길인가 하면, 참된 생명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아직 젊기 때문에, '생명'이라는 말에 대해 그렇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바울에게, 가장 귀한 약속이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의 약속'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따라서'
'자기는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생명'이라는 말을 대할 때마다,
(이분에 대한 평가도 지금은 반반이 되어가고 있는데)
저희들에게 도전을 주는 부분이 많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굉장히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개인용 비행기도 있고,
부모가 고등학교 졸업하자 아들 빌에게 선물로 세계일주 여행을 보내주기도 하고,
그래서 빌 하이벨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계의 아름다운 곳을 다니다가
이제 브라질의 리오데 자네이로에 왔습니다.
거기 고급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젊은 빌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요.
근데 자기 옆 테이블에 늙은 노부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리오의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죠.
그 아름다운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옆자리의 노부인이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보, 정말 우리가 평생 동안 고생하고 열심히 살았던 보람이 있는 거 같아요.
왜냐면 지금 이 리오의 아름다운 항구를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노후를 평안히 넉넉하게 보낼 수 있다는 뜻인듯)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빌은 옆자리에 앉은 빌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빌 하이벨스는, 그 말을 듣고 자기 마음에 분노가 일어났어요.
왜냐면 '아니 사람이 평생,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서
그 결과물이 고작 리오데자네이로의 비싼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아름다운 리오 앞바다와 항구를 바라보면서 즐기는 것...
그것이 사람이 평생 수고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라면,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허무한가? 과연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는 말인가?'
라는 질문이 빌의 마음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빌 하이벨스가 거기에서 결단합니다.
'나는 내 인생을 영원한 것에 드리고 싶다.
정말 이런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나는 내 인생을 영원한 것에 드리고 싶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를 원하는 그런 아버지의 제안을 다 거절하고,
청소년 사역을 하는 친구를 도와서, 그는 청소년들을 돕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 청년들이, *지금 대학부 여름 수련회 상황, 2014년
빌 하이벨스가 가졌던, 이런 관심을 여러분도 똑같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꿈꾸고 희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과연 영원한 것, 영원한 생명에, 여러분들의 삶을 헌신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잠시 화려한 것 같고, 멋있는 것 같지만,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에, 거기에 여러분의 삶을 헌신하고 싶습니까?
사도 바울은 지난 평생 복음을 위해서 살았고 *33세에 회심
그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기를 소개할 때 *지금 66세, 순교 직전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생명의 약속을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살아왔다' 라고 자기를 고백합니다.
◑1:2절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는데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세 가지를 빌어줍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서신을 쓸 때마다, 정말 그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축복해 줍니다.
그런데 그 축복의 내용은 뭔가 하면 '은혜와 평강'입니다. *긍휼이 빠짐
은혜는,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와 사랑입니다.
평강 또는 평화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은혜의 결과물입니다.
바로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 바로 그것이 '평화'입니다.
바울은 언제나 성도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디모데전서와 후서에서,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위해서 서신을 쓸 때, 바울은 꼭 한 가지를 덧붙여 줍니다.
그것이 뭐겠습니까? 긍휼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긍휼,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그 마음,
하나님의 그 불쌍히 여겨 주심.. 그것이 네게 있기를 원한다!
이 고백 속에, 이 축복 속에 담겨져 있는 바울의 마음을 헤아리겠습니까?
앞으로 디모데가 살아가야 될, 그가 섬겨야 그 많은 일들은
무엇을 필요로 하느냐?
하나님의 긍휼을 필요로 할만큼, 그것은 어렵고 고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위하여 긍휼을 빌어줍니다.
▲저는 특별히 여러분들을 대할 때, 좀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 정말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이들에게 은혜를 부어 주시고,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저와 여러분은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하나님의 호의와 사랑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 은혜를 통해서, 여러분 속에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평화를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지만 또 한 가지! '하나님 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긍휼
이런 기도들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과거에 약 5년 동안 토론토 대학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영성신학을 공부하다 보면, 기도와 묵상, 특별히 침묵
이런 것들을 공부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걸 공부하다 보면
과거에 우리 믿음의 선진들, '평생 기도에 자신을 드렸던 사람들이 어떻게 기도했는가?'
하는 것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옛날부터 정말 평생 기도에 자신을 드렸던 많은 선조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많이 기도했던 표현 중의 하나가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Have mercy on me' 였습니다.
여러분이 혹시 기도가 안 될 때는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또 마음에 아무 생각이 안 나고 머리가 복잡하면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프란체스코 같은 분이 밤새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궁금해서 '우리 선생님이 도대체 뭐라고 기도하시나?'
그래서 밤새도록 기도하는 그 프란체스코의 기도를 엿들었는데
그가 밤새도록 기도한 것이 무엇이냐?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밤을 새우면서, 때로는 평생 동안 그들이 기도했던
가장 귀한 기도의 제목은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정말 주님 앞에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정말 이 고백을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기도
◑1:3절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절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지금 여기 많은 소그룹 리더들, 그리고 공동체를 앞장서서 섬기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정말 소그룹 리더로서, 한번 이 구절을 잘 한번 고백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조원들을 향해서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나는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한다.
너를 생각할 때면,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너희들을 생각하면, 내 마음에 감사가 넘쳐난다.
네 눈물을 내가 생각하고 너 보기를 원한다.
너를 보기 원하는 것은, 너희를 보면, 내 기쁨이 가득해지기 때문이다.'
혹시 여기 순장들, 소그룹 리더들,
'이게 꼭 내 마음 같다' 혹시 그렇게 생각이 드시나요?
'순장님들,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우리 형제 자매들을 생각하십니까?'
'그들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까?'
여러분들이 섬기고 있는 그 영혼들을 생각하다가,
그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 좀 감사를 드렸던 적이 있으십니까?
참 우리 조원들,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까?
아니면 보는 거 생각만 해도 끔찍하십니까?
그들을 보면 기쁨이 막 가득해질 것 같습니까?
아니면 '나는 너를 보면 밥맛이 뚝뚝 떨어져!' 이렇습니까?
▲저도 서울 내수동교회 출신인데,
내수동교회 대학부에 첫 번째 전도사님이 오정현 목사님이시고,
두 번째 전도사님이 오정호 목사님이십니다.
세 번째가 박승규 목사님,
네 번째가 화종부 목사님이십니다. (*모두 당시에 전도사)
제가 다섯 번째로 내수동교회 대학부 전도사로 섬겼습니다.
제가 내수동교회에 있으면서, 그때 선배들을 통해 가장 도전 받았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참 우리 선배들이, 여기 나오는 것처럼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했다' :3
그때 우리 선배들은, 저희 후배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 주셨습니다.
그때 우리들에게 최고의 기쁨은 무엇이었느냐?
시험에 합격하는 것,
우리가 정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
그것이 우리들의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저희들의 기쁨은 무엇이었느냐?
우리 믿음의 후배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 세상을 복되게 하는 예수의 젊은이로 세워지는 것이,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후배들의 영혼들이, 우리들에게는 감사의 제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참 후배들을 보고 싶어했어요.
우리 선배들이 가끔 한 번씩, 저희들이 머물고 있는 기숙사에 불쑥 찾아오셨어요.
'왜 오셨습니까?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그러면,
우리 선배들이 '야, 내가 뭐 다른 이유가 있냐? 그저 보고 싶어서 왔지!'
여러분, 그때 참 저희 후배들은
선배들을 만날 때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너무 좋았던 나머지, 저희들은 공동생활을 했어요.
'그냥 드문드문 만나지 말고, 아예 그냥 같이 살자'
저도 공동생활을 7년을 했습니다. 선후배가 함께 만나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그들을 보면, 당시 우리들의 마음이 무엇이 있었느냐? 기쁨이 가득했어요.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져 가고, 교회가 우리를 실망시킨다 할지라도
바로 이들(후배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에,
예수의 젊은이들이 주 안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그때 저희들은 정말 그들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꿈을 꾸었습니다.
▲여기에 대학부 청년들이 수련회로 모여 있는데,
여러분은, 이 정신을 가장 생생하게 물려받은 사람들이잖아요.
고 옥한흠목사님, 정말 그분의 마음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있었잖아요.
성도님들을 너무너무 보고 싶어 하셨잖아요.
그들 때문에 감사했고, 그들 때문에 기뻐했고, 모든 것을 어디에 두었느냐?
섬기는 영혼들.. 거기에 그들 선배님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다시 한번 우리 한국교회 대학부 가운데, 놀라운 부흥들이
다시 한번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바로 우리 앞선 자들 마음속에
바울이 품었던 이 뜨거운 열정들, '나는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너희들을 생각한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무엇을 기도하십니까?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기도는 뭐냐? '개나발'입니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한국교회가 대표적으로 가는 기도제목은 '개나발'인데,
개인과, 나라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눈만 감으면 그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예수님 안 믿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우리의 기도가 '개나발'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우리가 섬기는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 기도가 회복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저도 과거를 돌아보면, 제가 대학부에서 리더로 섬길 때, 그리고 사역자로 섬길 때
토요일 날, 좀 시간이 나니까 교회에 일찍 갑니다.
리더 모임 하기 전에 일찍 가서, 때로는 1시간씩 2시간씩 기도를 해요.
-제가 섬기는 우리 영혼들을 위해서,
-함께 섬기는 동역자들을 위해서,
-또 함께 섬기는 우리 선배들을 위해서, 한 명씩 한 명씩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다 보면
정말 마음속에 이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섬기는 영혼들, 후배들, 동역자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면
정말 그 속에 감사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도 소망이 됩니다.
저는 특별히 요번에 이 수련회 통해서, 우리 앞선 리더들이
바울과 같이, 자기가 섬기는 영혼(순원)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을 너무너무 보고 싶어하고,
그들 속에서 기쁨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리더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1:4절 '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바울은, 디모데를 너무너무 보고 싶어 했습니다.
도대체 디모데가 어떤 사람이었길래,
보기만 하면 바울의 마음에 기쁨을 줄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보면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생각할 때, '네 눈물을 생각하여'
(첫번째로) 바울은 디모데를 떠올리면 무엇이 생각났느냐?
그의 눈물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그래서 디모데의 트레이드 마크는 무엇이었느냐? 눈물이었습니다.
이 '눈물'이 뜻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연약함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눈물은, 그 속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또 이 눈물 속에는 무엇이 담겨져 있느냐?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눈물의 사람이다' 그 말은 무슨 뜻이죠? 기도의 사람인 겁니다.
디모데가 눈물의 사람이라는 말은,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4
또 디모데는 어떤 사람이었느냐?
그 속에는 진실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5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두번째로) 디모데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첫번째는 눈물의 사람
'거짓이 없는 믿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희생과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믿음과 복음을 지킬 수 있는 것.. 이것이 '거짓이 없는 믿음', 즉 '사심이 없는 믿음'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비판받는 이유가 무엇이죠?
'너희들의 믿음에는 사심이 있다'는 겁니다.
세상이 우리들을 향해 욕하는 거, 믿음에 대해서 그들이 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너희들의 믿음에는 사심이 있다'는 거죠.
돈에 대한 야망, 권력에 대한 야망,
'그 사심이 너희들의 믿음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디모데처럼 거짓이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가 살아가려면
가장 중요한 시기가 언제냐? 바로 대학생 시절입니다. 청년 시절입니다.
이때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가꾸지 않으면,
평생 거짓이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저는 청년시절에 들이 반드시 정말 한번 맛보고, 또 꿈꾸고 싶은 모습,
'하나님, 제가 거짓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정말 사심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계속에서 5b절에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세번째로) 디모데는 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외할머니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처럼,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신앙과 믿음의 유산을 계승한 사람이었습니다.
할머님이 가지셨고 어머님이 가지셨던 그 '거짓이 없는 믿음'을
잘 계승해서, 자기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여러분 과거에는, 대학에 와서 예수님을 처음 믿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기면서
교회 속에 많은 대학생들 청년들이 언제부터 믿음을 시작했느냐?
어머니 때부터, 어떤 사람은 할머니 때부터 믿음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도 목회자로서 가장 귀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누구냐?
할머니, 어머님이 가지셨던 그 거짓이 없는 믿음을 잘 계승해서
자기의 것으로 가지고 있는 그런 젊은이들을 보면.. 그렇게 귀할 수가 없습니다.
디모데와 같은 청년입니다.
▲중간 정리하면, 바울에게 기쁨을 주었던 디모데는 어떤 사람이었느냐?
1) 먼저는 눈물의 사람, 즉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그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4
2) 그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5
3) 그 믿음은 할머니 어머니가 가졌던, 그 앞세대가 가졌던 그 거짓이 없는 믿음을
잘 계승하여 자신의 믿음으로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5b
우리 형제 자매들이,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디모델처럼
눈물의 사람이 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이런 광고 있잖아요.
"우리 아빠, 우리 부모님은 저에게 잘해줘요.
사람들이 쳐다볼 때만!"
그 TV광고를 볼 때, 정말 가슴이 뜨끔하다고요.
근데 저는 조금 패러디를 하면,
우리 예수님을 믿는 형제 자매들은, 눈물을 흘려요.
(언제 흘립니까?) 좀 찬양할 때, 그래서 조금 몽롱해질 때,
그때는 눈물을 좀 흘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혹시라도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드리면서
여러분들의 눈에 눈물이 흐를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다.
△제가 며칠 전 아침에, 우리 교우분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근데 전화를 안 받으셔요. 휴대폰으로 전화를 안 받으니까, 집전화로 했죠.
그러니까 그의 아내가 받으셨어요.
제가 '아니 왜 남편이 지금 전화를 안 받으시고 뭐 하십니까?' 그러니까
그 아내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 우리 남편은 기도하고 계십니다!'
제가 25세에 사역을 시작해서, 사역한지 25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2014년 설교
그 말이 너무 낯설게 들리더라고요.
'전화를 안 받는데, 남편이 지금 뭐 하십니까?'
'네, 우리 남편은 지금 기도하고 계십니다.'
과거에는 어디를 가도, 기도하는 청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에 가도 있었고, 아니면 때로는 벤치에 가도 볼 수 있었어요.
교회는 말할 것도 없어요. 구석구석에 하면, 어딘가에는 청년들이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이제는 완전히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눈물의 사람, 기도의 사람을 찾기는, 이제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우리 사역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와 같은 사역자들도, 점점 제게도 느껴지는게 뭐냐?
눈물이 점점 다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쩌면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가장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홀로 골방에서, 하나님을 갈망하기 때문에,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
주님 한 분께만 집중하며 기도하다가,
그 눈에 눈물이 흐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저는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대학부 청년들 가운데
정말 눈물의 사람들이 많이 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거짓이 없는 믿음을 회복하고,
나아가서 앞선 세대의 믿음을 잘 계승할 수 있는 그런 청년들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1:6절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6절부터 바울은 디모데에게 구체적으로 세 가지 권면의 말씀을 줍니다.
▲그 첫번째는, '불일듯 하게 하라' 입니다.
무엇을 불일듯 하게 해야 되느냐?
디모데가 사역자로 세움을 받는 그 때, 바울이 그를 안수할 때,
하나님께서 디모데가 감당해야 될 사역을 위해서 디모데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많은 학자들은이 하나님의 은사가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연관되어져 있지 않았겠느냐
라고 이야기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은사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이 안수했을 때, 바울도 알고 있고, 디모데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과거에 바울이 안수할 때,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주어졌었는데,
그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참 재밌지 않나요?
이제 안팎으로 어려워서 있는 교회를 섬겨 가야될 지도자 디모데에게
바울이 첫 번째 도전한 것은,
-예를 들면 공부 많이 해라,
-새로운 세미나 많이 좇아다녀라... 이런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 그 은사를 불일듯 하게 해라,
이렇게 바울은 도전을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를 불일듯 하게 하는 것, 이것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저는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저는 청년시절에 많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많은 혼란을 겪다가, 그때 우리 선배들이 저를 붙잡고 도전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니까, 그 말씀에 네가 세뇌되어야 된다.'
'이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을 볼 수 있어야 된다.
이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유일한 진리다.'
저는 그 선배들의 그런 도전을 통해서, 대학을 다니면서
그 많은 혼란과 갈등 속에서도,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제게는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은사'
'말씀을 깨달아서 말씀을 통해 나를 보고,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과 교회와 영혼들을 볼 수 있는'
그런 눈들을 조금씩 조금씩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느끼고 있어요.
'하나님은 제게 말씀을 깨닫는 그런 은사를 주셨구나'
그래서 제 개인적인 삶의 어려움과, 좌절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어디로 인도하시느냐?
다시금 말씀을 볼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조용한 곳에 가서 성경을 펴놓고,
말씀을 쭉 읽고 공부를 하다 보면, 갑자기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제가 처한 상황에 대한 답변을 주시고,
그리고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가야 되는지, 그 실마리들을
언제나 하나님은 제게 말씀을 묵상할 때 깨닫게 해 주셨어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은사를 제게 주셨기 때문에,
문제에 부딪히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못할 때, 저는 언제나 거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또 다른 '지식의 은사'를 가지신 분도 있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은사를 가지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불일듯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외국에 한 5년 살면서,
외국 사람들과, 우리 한국 사람들과는 참으로 큰 차이가 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한국 사람들은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나 자매들에게 '야 너는 그거 참 잘한다' 그렇게 칭찬하면,
좋아하는 청년들을 저는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제가 '너 이거 정말 잘한다' 그러면,
'아이고 목사님, 이거 뭐 제가 조금 하는 것 같지만, 제가 못 하는 게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을 보면, 잘하는 게 많은데도
'잘한다' 그러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자기가 잘 못하는 것 때문에, 좌절을 하고, 낙심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캐나다에 한 5년 있었는데,
제가 같이 공부를 하다 보면 얘들의 특징은 뭐냐?
조그만 일에도 기뻐한다는 것이죠.
그가 정말 조금밖에 몰라요. 그런데도 '아 내가 이것을 알다니, 나는 이거 아는 사람이야!'
하면서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것이죠.
자신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있죠.
'너는 이것도 모르잖아?' 그러면
그들이 하는 말이 '야, 사람이 다 아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런데 그들은, 자기가 모르는 것 때문에 낙심하게 보다는,
자기가 잘 하는 것, 자기가 알고 있는 것 때문에
너무너무 기뻐하고, 또 막 감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정신이 참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은사를 주셨어요.
그 은사에 감사하면서, 그 은사를 불일듯 하게 하는 가운데,
여러분의 삶의 꼬였던 실마리들이, 언제나 풀려질 수 있습니다.
▲저는 제 개인적인 바램이... (지성과 영성의 균형입니다.)
우리 교회 분들이, 우리 성도님들이 저를 보시면 좀 헷갈려 하세요.
왜냐하면 저는 설교를 할 때는, 성경을 가지고 그대로 강해합니다.
한 절 한 절 해석해 나갑니다. 정말 성경적인 목사 같아요.
근데 제가 기도를 할 때는,
금요일 날 심야나, 아니면 여러 공적인 예배를 할 때는
제가 방언으로 기도도 많이 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헷갈려 하세요.
제게 '목사님은 장로교입니까, 아니면 순복음입니까?' 너무 헷갈린다는 거예요.
설교 들으면 장로교 같은데,
기도할 때는 순복음 같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저는 모태신앙으로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우리 중학생 후배들 사이에 놀라운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어요.
중학생들이 막 방언을 하고... 애들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제가 평소에 알고 있던 후배들이 아니고, 완전히 새사람이 됐어요.
또한 그 중심에 누가 있었나 하면, 제 남동생이 있었어요.
'저는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이 바뀐다'는 것을 처음 본게, 제 동생이었어요.
옛날에는 동생이 저와 똑같았으니까 몰랐어요.
그런데 동생이 은혜받고 나서부터는, 이게 저하고 너무 차이가 나는 거예요.
저는 땅에 속한 사람이고, 제 동생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게 뭐 상대가 안 되는 거예요.
제가 동생과는 두 살 차이고, 제 동생이 덩치가 컸기 때문에 매일 싸웠는데,
얘가 은혜 받고 나서부터는, 제가 한번 쥐어박으면
동생이 '형님, 왜 이러십니까?' 그냥 한마디 하면,
그 말에 영적인 권위가 있어서, 제가 압도 되는 거예요.
그때 저는 고등부 회장이었고, 제 동생은 중등부 회장이었는데
동생이 맡고 있는 중등부는, 100명에서 200명으로 늘어났는데
제가 맡고 있는 고등부는, 까딱도 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때 모태교인이었는데, '신앙생활에 영적인 세계가 있구나, 뭔가 신비한 세계가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느꼈어요. 또 막 방언하는 것을 듣잖아요.
'이런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신비한 세계가 있구나'
그래서 저도 방언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후배들이 통성으로 기도할 때, 제가 막 따라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 동생은 한번 무릎 꿇었다 하면,
중학교 때부터 1시간, 2시간씩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저는 무릎 꿇고 눈 감고 아무리 길게 기도해도, 3분을 넘겨 보지를 못했어요.
그러면 3분 기도하고 동생과 집에 같이 가야 되니까,
1시간을 '내 동생이 언제 기도 마치나?' 하며 기다리는 거예요.
저는 아무리 기도해도.. 소위 '기도의 문이 안 열렸어요.'
그래서 제가 방언을 하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어요...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그때 대학부 수련회 가면,
제가 종종 타임 키퍼, 전체 기획을 제가 맡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강사로 군목 목사님이 오셨어요.
이분은 자기를 소개할 때, 자기는 누구냐?
'귀신 잡는 해병대, 그 해병대를 맡고 있는 군목인데,
내가 오늘 귀신을 잡겠다' 그러는 거예요.
막 그러면서 설교를 했는데, 도대체 무슨 내용의 설교인지, 제가 알아듣지를 못 하겠는 거예요.
그런데 그 설교를 듣는데, 갑자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러분의 삶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드리는 것이 가장 귀합니다.'
이런 내용의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학생들 틈에 중간 쯤에 섞여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여러분의 삶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드리는 것이 가장 귀합니다' 라는 말이
그 강사 목사님의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에
갑자기 저한테 "뻑!" 소리가 나더니만
제가 그 말씀에 소위 꼬꾸라져 버렸어요. 그냥 말씀을 (돌맹이 맞듯이) 맞아서 쓰러져 버린 거예요.
그러고 나서부터 제가 엎드려 가지고 한국말을 못했어요.
막 방언을 하는 거예요.
그때 제가 타임 키퍼인데,
제가 앞에 나와서 타임 키퍼로서 수련회 이후 진행 상황을 발표해야 되는데,
제게서 한국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저는 그때 한번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한 거죠.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른게 아닙니다.
저는 머리를 굴리는 사람이에요. 저는 전공이 물리학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수학이었어요.
저는 수학을 좋아했고 사랑했습니다.
저는 수학, 물리학 이런 걸 너무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머리를 굴리는 사람이라서, 신비 체험, 영적 세계.. 이런 것은 믿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저를 완전히 깨뜨리셨어요.
▲그 후에 제가 한 선배를 만났는데
제가 그 후로는, 방언을 쓰면 좀 느낌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방언을 쓰지 않았어요.
그때 한 선배가 제게 하는 말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네가 왜 함부로 경홀히 생각하느냐? 네가 좀 사용을 해라'
그분의 권면을 받고 나서, 제가 이런 은사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게
제가 대학부 때, 화종부 목사님이 당시 대학부 담당 전도사님이셨고,
제가 대학부 전체에서 제일 고참 선배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총신 신대원에 입학을 했어요.
한 6개월이 지나면, 제가 내수동교회 대학부 담당 전도사를 하기로 돼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학부 수련회를 갔습니다.
수련회를 가면, 종종 영적인 체험이 막 나타났어요.
특별히 자매들 가운데 넘어가는 애들, 거품 품으며 넘어가는 애들이 항상 있었어요.
저는 거기에 대해 너무 대책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모르시는데, 그때 담당 교역자님은 정말 영파이십니다.
이분이 그런 것들을 잘 컨트롤 하셨는데,
그 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또 한 자매가 또 막 영적으로 이상해졌어요.
막 벌벌 떨고 난리가 났어요.
그때 담당 교역자님이 안 계시니까
그다음은 제가 서열이 두 번째였으니까, 그 자매를 저한테 데리고 왔어요.
저는 그 벌벌 뜨는 자매를 볼 때
'이제 드디어 나의 영력을 보여줄 때가 왔다!'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제가 그 자매 위에 손을 딱 얹으면,
벌벌 떨던 자매가, 제가 손을 얹는 순간에 잠잠해질 거라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데리고 왔던 사람들도 그렇게 믿었던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벌벌 떨던 자매에게, 제가 손을 딱 얹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벌벌 떠는 자매가 잠잠해진게 아니고,
잠잠했던 제가 벌벌 떨리기 시작했어요.
(*마치 전기에 감전되듯이, 접촉이 없으면 괜찮으나, 접촉이 일어나면 금방 전이되지요.
방언도 마찬가지로 쉽게 전이됩니다. 다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
제가 손을 얹는 순간에, 이 자매도 벌벌 떨고, 저도 같이 벌벌 떨리는데
그런데 통제가 안 돼요. 제가 스스로 통제가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때 우리 집사람이 제 옆에 서 있었는데,
제가 하도 막 벌벌 떠니까
집사람이 저를 툭툭 쳤어요. '전도사님,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저는 그때가, 정말 제 삶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 중 하나였어요.
제 영이 그 자매에게 전이 되게 아니라, 그 자매의 영이 제게 전이되었던 거죠.
그때 제가 깨달았어요.
저는 그 당시까지 해도, 정말 말씀 묵상을 주로 많이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말씀 묵상을 많이 했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많은 은혜를 부어 주셨어요.
그런데 그 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방언이나 영적 체험에 대해서는 좀 경험이 없었어요.
그런 필요를 전혀 못 느꼈어요.
왜냐하면 말씀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기도하며 교제하다 보면
제 삶의 가졌던 모든 질문들, 모든 문제에 대한 선명한 답변을, 하나님이 다 주셨어요.
저는 그거면 충분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런 말씀을 통한 은혜를 받았지만,
제가 벌벌 떠는 자매 하나를 잠잠하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그때부터 고함을 지르며, 부르짖으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게도 영적인 능력을 주십시오.
하나님 제게도 영적인 권세를 주십시오.
주 예수의 이름 속에 담겨져 있는 능력과 권세를 제게도 좀 주십시오.
성령의 신령한 은사들을 제게도 부어 주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싶은 것은 뭔가 하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첫 번째로 권면했습니다.
'네가 받은 은사를 불일듯 하게 하라' :6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에게도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꼭 성령의 은사 말고도, 재능의 은사도 있고, 직분의 은사도 있습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그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불일듯 하게 하셔야 돼요.
또 바울이 이야기합니다. 또 하나 더 불일듯 하게 해야 되는 것은...
◑1:7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다.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고, 능력, 사랑, 절제,
그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영, 그 영을 우리가 받았다' 바울은 이렇게 편지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는 두 번째 도전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라,
능력 사랑, 절제하는 마음이요,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 영, 그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보통 영은, 우리 마음에 거합니다. 우리 마음을 통해 역사합니다.
그래서 '영'과 '마음'을 혼용해서 써도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7절 말씀을, 저는 대학시절 때 잊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대학교 때 너무 사는 게 힘이 들었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했고, 참 대학교에 가 보니, 저보다도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저도 과거에 고등학교 때는 좀 머리가 괜찮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서울) 대학가서 동기생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나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고,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정말 저들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전교 1~2등 하던 애들이 다 모여있으니, 그 속에서 또 스트레스 받는 것이죠)
저는 갑자기 사는게 너무너무 무서웠습니다. 하루하루를 보내는게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1학년을 겨우 끝냈는데, 이렇게 대학을 졸업한다는 게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그런데 그때 정말 그 두려움과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셨던 말씀이 뭔가 하면
바로 본문 딤후1:7절이었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능력과 사랑과 (과거 번역은 근신하는 마음이니) 절제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은 무엇이냐? 두려워하는 영이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무엇이냐? 능력, 사랑, 절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영,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이것을 불일 듯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첫 번째 권면을 했습니다. "불일듯하게 해라"
1) 하나님이 네게 주신 그 은사를 불일듯 하게 해라 :6
2) 하나님이 주신 마음, 그 능력과 사랑과 절제, 그 영을 불을듯 해라 :7
바울은 이렇게 편지를 써서 도전을 했던 것입니다.
다음 호 P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