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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LNCK 2024. 1. 23. 20:47

https://blog.naver.com/kaikk/60017653362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삼상 7:1-11       *원제목 : 미스바 대성회

 

오늘 본문에는 대단히 밝고 아주 명랑한 말씀이 눈길을 끈다.

그 동안 엘리와 엘리 가족,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큰 화가 있어서

그들의 불경건함과 불신앙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큰 화가 있었고,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기는 일 등이 있었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게 되었고,

전쟁을 만났을 때,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서 해결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저들은 법궤를 메고 나갈 정도로 그들은 불경건했고, 불신앙적인 사람들로 전락해 있었다.

 

이 결과로 4천 명이 죽고, 또 3만 명이 죽는 그런 비참한 패배를 당했고, 4:2, 4:10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지배를 받는 그러한 불행한 민족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법궤, 이 빼앗긴 법궤는 블레셋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들은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보낸다.

 

그것을 벧세메스 사람들이 영접한다. 이 법궤가 가는 곳마다 질병이 있었고 재난이 있었지만,

경건하게 이 법궤를 대하는 암미나답의 집에 와서는, 이 법궤는 20년 동안 평안했고

또 그 주변 환경도 축복 가운데 진행되었다.

 

삼상7: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니 법궤를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 놓고

그 아들 엘르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그 법궤를 지키게 하였다. 이점이 중요하다.

거룩히 구별하고 또 거룩한 마음을 가질뿐더러

거룩히 구별한 사람을 선택해서 그리고 이 법궤를 지켜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삼상7:2

 

이러한 경건, 이러한 신앙이 이제 저들에게 축복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20년을 조용히 지나는 가운데서 저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것이 뭐냐하면 오늘 본문에 "온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여호와를 사모하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그것이.. 소망적인 것이다.

다른 것은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정치, 경제, 문화, 이 모든 문제는.. 그것이 결정적 문제가 아니었다.

결정적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바로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바로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이제까지 환난도 있었고, 재난도 있었고, 질병도 있었고, 고통도 있었던 것이다.

‘온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참으로 아름다운 말씀이다.

 

▲이제 바로 이런 순간에 사무엘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을 한다.

 

가만히 보면,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말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을 사모하게 된 것이 아니다.

저들이 고난 때문에, 너무나 많은 세월 동안 많은 어려움을 당했기에,

고난과 질병과 고통... 이런 것들 때문에 저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가 소홀히 여겼다.’

저들이 스스로 반성하면서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리게 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비로소 사무엘이 이렇게 백성들 앞에 외치게 되는 것이다.

 

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 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자, 이제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려거든 전심으로 돌아오라’ 이것이 중요하다.

전심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이건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 외의 다른 우상을 섬기며 돌아와서는 안 된다.

또 하나님과 우상을 겸해서 섬기겠다는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더 중요한 것은, 이 고난 때문에 돌아온 것 가지고는 안 된다.

죽을 지경이니까 '아이고,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런 마음만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빌어서, 오늘 평안함을 찾겠다는

그런 소극적인 마음만을 가지고는 안 된다.

 

‘하나님을 섬김으로 인해, 지금보다 더 불행해도 좋다.

하나님만 섬기는 것을 먼저 우리의 생활 근거로 삼겠다’고 하는

바로 그 마음을 말한 것이다. 이게 전심이다.

 

▲우리가 때때로 그런 용어가 있잖아요.

그저 어떤 사람하고 우리가 사귄다던가, 친구를 사귄다고 할 때도

그 사람이 잘되면 사귀고, 내게 이로우면 사귀고, 또 해로우면 그만 두고.

그런 생각과 자세... 이건 전심이 아니다.

 

전심으로 사귀고, 전심으로 교제한다는 말은 7:3

그가 병들어도, 그가 실패해도, 설사 그가 죄인의 누명을 쓰고 있어도

나는 그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게 전심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올 때에 자기 중심적으로,

혹은 이기적인 생각에서 자기 어떤 소욕을 위해서 돌아오는 그런 마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자기들이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뉘우치는 마음도 있고, 후회하는 마음도 있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겠다는 사모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전심으로 돌아와야 된다는 것이다. 7:3

 

하나님께 완전히 생명을 위탁하는 것이다. 운명을 맡겨 버리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바로 해야 된다는 그런 마음이다.

전심으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7:3

 

▲그 다음 전심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다.

그러려면 먼저 우상을 버리라는 것이다.

모든 이방 신을 너희 중에서 제해 버리라고 그랬다. 그리고 돌아오라고 그랬다.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7:3b

 

이방 신을 제해 버리라. 그 동안에 의지했던 것, 이래저래 만들어 놓았던 우상,

이것을 다 제해 버리라는 것이다. 바알신과 아스다롯을 제해 버리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우상, 여러 가지 모양의 우상이 있다.

특별히 나(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고, 내 명예가 우상이 되고..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재물이 우상이 되고 그렇다.

그리고 재물을 더 사랑하는 마음도 우상이다. 재물이 우상인 것이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도 못한다.

그러니 우상들을 다 제해 버리라. 이것이 먼저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여기 보니까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7:3C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신다.

그분만을 섬기라.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라.

그러니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으로 가득 채우라는 것이다.

 

우상을 섬기는 생각이나, 혹은 자기 자신의 형편에서부터 좀 벗어나려고 하는

이러한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다 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만 섬기라’  :3

‘섬긴다’는 말의 뜻은, 보통은 봉사한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경배한다’는 것을 뜻하며, ‘예배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만 섬기라.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은 제하라고 말씀한다.

 

사무엘이 이렇게 말할 때, 백성들이 사무엘의 말에 이렇게 반응한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7:4

 

우리는 이제 여호와 그분만 섬기겠습니다.

이제 여호와만 섬긴 후에, 그 다음에 되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책임을 지신다. 이것이 믿고서 하나님, 그 분만을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여기 본문에 유명한 <미스바 대성회>가 나온다.

 

7: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이 집회는 나라를 건지는 집회였다. 미스바 집회, 미스바로 모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미스바로 모인다.

때에 사무엘이 여기서 말하자만 대성회를 인도한다. 큰 부흥회를 하는 것이다.

 

7: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미스바에 모여서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이것이 바로 회개를 말하는 것이다. 정결함을 말한다.

그 동안의 어지러워지고 더러운 마음을 다 씻는 그런 집회인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그래서 이를 ‘각성성회’라 표현한다.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금식은, 인간의 욕망이나 혹은 향락적인 생각을 다 버린다는 뜻을 상징한다.

그런데 우리가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우리가 사회에서 세 끼를 먹고사니까

가만히 보면 정말 예배하고 뭐하고 할 때도, 그저 조금 있다가 또 먹을 것 준비해야 되고,

또 조금 있다 먹어야 되고 그렇다.

 

그러나 저들은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뭐 긴 기간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금식한다.

예배에 집중하는 것 말고, 식사 준비, 배식, 식사 취식.. 이런 것으로 마음이 분산되는 것을

막는 취지에서, 아예 금식해 버리는 것이다. 예배 말고 다른 것은 일체 하지 않는다는 자세다.

 

여기서 생각해야 될 것은, 이 금식이 며칠씩 하는 그런 금식은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는 금식은 보통 한끼 정도다. 이런 대중적인 집회에 있어서는 한 끼다.

그래서 예를 들면 아침에 식사하고 점심 한끼를 굶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 식사한다.

그런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금식이다.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만 금식)

 

본문에 ‘그 날 종일 (금식)’은, 낮에 종일 금식했다는 뜻이다.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그런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6세기에 생겨난 이슬람도 라마단 때, 낮에만 금식한다.

히브리어 '욤 day'은 종종 밤(라일)의 반대 되는 개념으로 성경에서 쓰인다.

 

어느 연합집회 때 보면, 교회별로 광고를 하더라고요.

‘어느 교회는 어느 식당으로, 어느 교회는 또 어느 식당으로 가십시오’ 하더라.

이거 참 먹는 것 때문에 문제다. 먹는 일 때문에, 집회가 상당히 지장이 많다.

그런데 ‘낮 한 끼’ 정도는 얼마든지 금식할 수 있다.

우리도 연합집회 때 이랬으면 좋겠다. 마스바의 집회를 본 받아서! 7:6

 

모여서 지금 기도하고 통회 자복하는 이런 중요한 대집회를 하는 중인데,

그것 하다 말고 ‘점심 때 되었으니, 일단 먹고 하자’ 이렇게 해 보라. 그러면 분위기 다 깨어지고 말 것이다.

 

먹는 것 좀 다 잊어버리고, 한끼 두끼 굶는다고 굶어 죽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자. 이런 마음의 자세가 금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금식 자체를 뭐 대단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여튼 그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말한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7:6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지요. 법궤를 소홀히 여기는 범죄를 했지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했으니 범죄했지요.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으로 우상을 섬겼으니 범죄했지요.

이런 등등의 씻을 수 없는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백성들이 거기서 ‘우리가 범죄했습니다’하고 통회하는 회개운동을 하게 된다.

 

이건 몇 사람의 일이 아니다. 온 백성이 그렇게 한 것이다.

모름지기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이 다 모인 것이다. 미스바에 모였다.

그리고 전체가 같은 마음으로 통회 자복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각성운동을 일으켰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7:2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7:6

참으로 귀한 말씀이다. 범국민적인 영적 대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사무엘은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이렇게 부흥성회를 하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부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참 좋은 기회다. 바로 이때 쳐들어가서 완전히 멸망시켜야 되겠다.’

블레셋은 이걸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온다.

 

그러자 곧바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포위한 상태에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럴 때에 저들이 지금 부르짖는다.

‘이제 꼼짝없이 여기서 포위된 상태에서 죽게 되었는데 어찌하느냐고 야단하게 된다.’

 

그럴 때 여기 사무엘이 말하는 바를 보라.

‘걱정하지 말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를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랬다.

 

전쟁준비를 하지 않았다. 저들은 먼저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문제의 해결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또다시 예전처럼 법궤를 메고 나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저들은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스바 집회에서 얻어진 결론이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만 바로 되면, 하나님 앞에만 바로 서면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다. 저들은 전쟁준비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다.

앞으로 얼마나 번영할 것이냐에 대해서도 생각이 없다.

다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그렇게만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확실하게 믿고 있다.

 

▲그래서 저들은 오늘 여기 본문에 보는 대로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통회 자복하고, 그리고 대표자 되는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다.

 

지난 날에는 (삼상1~5장) 바로 이것이 없었다.

블레셋 사람과 싸울 때, 기도 없이 나갔다. 하나님 앞에 묻는 것도 없었다.

그대로 군사만 많으면 될 줄 알고, 수만 명을 데리고 나가 싸웠지만, 3만 명이나 죽었다. 4:10

전쟁에 패하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군사의 수에 의해서 이길 수 있는 백성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 특별히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될 것은, 몇 사람이 나가서 싸웠다는 말이 없다.

군사의 숫자가 없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전쟁은 있다.

하나님께서 우뢰를 보내서 저들로 하여금 어지럽히게 하고

저들이 흔들릴 때, 여기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 나가서 저들을 치게 된다.

 

그래서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그랬다.

그러니 분명 나가서 싸웠다.

그런데 몇 명이 나가서 싸웠다는 말이 없다. 그런데도 이 전쟁은 승리로 끝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게 되고, 하나님이 싸워 이기시고,

백성들은 그 뒤 혼란해진 군사들을 친 것뿐이다.

그래서 아주 피해가 없는 승리를 이루게 되었다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생각해야 된다. 모든 문제 그 근본 문제는 도덕적인 문제요,

도덕적인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신앙적인 (영적인) 문제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여서 통회자복을 하고 금식을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저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고 그렇게 될 때 이제 아무도 저들을 치려 하지 못한다.

 

▲그 다음에 있는 말씀은 13-14절에 있는 말씀인데,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이 얼마나 좋은가? 전쟁 없는 평화가 있었더라.

다시 나라를 회복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막아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막아 주셨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그건 이스라엘의 경건의 지표다.

이스라엘의 믿음의 지표다.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사무엘이 살아있는 동안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때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