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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 비유

LNCK 2024. 1. 25. 08:10

누룩 비유       마13:33              설교 스크랩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13:33

 

▲누룩 같이 변질된 사람, 살짝 맛이 간 사람이, 온 반죽을 변화시킵니다.

가루 서 말은 리터로 환산하면 22리터래요. 1리터짜리 물병 22개니까 꽤 크죠?

10명의 식구가 하루 3끼를 먹을 정도는 되죠.

 

예수님께서 누룩을 가지고 반죽하던 어머니들의 부엌살림을 눈여겨보시다가

천국을 설명하시는 비유로 사용합니다.

 

누룩은, 썩은 겁니다. 변한 것이에요. 맛이 갔다는 얘기죠.

기존의 밀가루는 누룩이 작용할 때 변합니다.

 

그러니까 천국의 작용은 뭔가 맛이 간 것이 있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것이 기존의 세상살이 속에 들어갈 때, 반죽이 부풀리듯, 변하는 역사가 있다.

- 이것을 이 비유의 기본 틀로 보고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맛이 간’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천국이 이루어져 간다는 것은, 이렇게 맛이 간 요소가 있음으로써

천국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맛이 갔다’는 것을 인격적으로 적용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쉽게 말하면, ‘저 사람 미쳤어. 제 정신이 아니야.’ 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맛이 간 사람을 통해, 하늘나라는 역사하게 됩니다.

 

천국적인 어떤 사건이나 천국적인 요소에 미쳐버린 사람이, 누룩 같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접촉되는 환경/사람들은

밀가루가 변하듯이 변할 뿐 아니라, ‘염병’처럼 퍼져나갑니다. 행24:5

 

그렇다면. 천국에 미쳤다는 게 어떤 내용일까요.

 

▲서예에 미친 사람

조선조에 최흥효 라는 서예가가 있었어요.

이 사람이 글씨를 연습할 때, 꿈이 뭐였냐면 왕희지 체를 그대로 흉내 내보는 거예요.

그런데 천번 만번 연습해도 그게 안 돼요.

 

그러다가 이 사람이 과거시험을 보게 되었어요. 시험지를 받아 답을 쓰는데,

그렇게 평소에 애를 쓰고 연습을 해도 안 되던 왕희지 체가 그 날 써지는 거예요.

과거 시험장에서.

 

그는 답안지를 붙잡고 고민하다가, 답안지를 내지 않고 집에 가지고 와버렸습니다.

그만큼 자기가 쓴 글씨에 대한 애착이 큰 거죠.

 

과거시험을 몇 년을 준비했겠어요? 시험 봤으면 당연히 답안지를 내야죠.

그런데 그걸 들고 집에 간 사람... 미친 거죠.

 

그러나 이렇게 미치는 것.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된다든지,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다 미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뭔가에는 미쳐야 합니다.

 

▲아들아, 너 미쳤구나

제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목회할 때, 어머니가 오셔서 몇 개월 계셨거든요.

 

26km 되는 먼 곳에 있는 교회에,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하러 갑니다.

어머니가 따라붙어서 함께 새벽기도를 하고 오는 어느 날,

어머니는 제가 밴쿠버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 지켜보셨죠,

 

그리고 새벽기도 갔다 오는 차안에서 어느 날,

‘승철아, 너는 미쳤구나.’ 그러세요.

‘너 사는 것을 보니 예수님에게 미쳤다’ 그러세요.

 

‘3개월 동안 네가 벤쿠버에서 사는 것을 봤더니,

바람 쐬러 드라이브를 한 번 가냐?,

시간 내서 여행을 갈 생각을 하길 하냐?.

집구석에 앉아가지고 기도하고 성경보고 책 읽고 하는 게 다인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냐. 그건 미치지 않고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어머니가 해 주신 말이라 기억에 남아요.

 

▲모든 분야의 모든 대가들은, 그 분야에 미친 사람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유럽에 있는 친구가, 아인슈타인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을 듣고

수표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봉투도 열지 않고

그대로 책갈피에 끼워두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보고 물리학을 생각하고 연구하느라 돌아버린 상태로 산 사람입니다.

아내와 자식은 굶어도 물리학이 좋습니다.

 

미친다는 것은 그 미치는 대상 말고는,

아무것도 다른 것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상태를 미쳤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다른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수가 없어요.

 

뭐에 미치면, 그 미친 것 하나 말고는 다 망해요.

그 대상에 대해 전문가가 되는 것 말고는, 다른 분야에는 바보가 돼요.

 

과거시험에 합격하기를 온 가족이 기다려도,

최흥효는, 왕희지 체가 몇 개 써졌다고,

몇 년 준비한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집에 가 버립니다.

이런 삶들에 의해 서예가 발전하고, 물리학이 발전합니다. 대단한 일이죠.

 

▲교육학에서는, 인간에게 126가지 능력이 있대요.

그 능력 중에서, 사람들은 적어도 한 가지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대요.

 

그런데 그렇게 한 분야에 두각을 나타낼수록,

나머지 125가지 능력은 거의 바보수준의 사람이 되겠죠?

 

우리나라 교육은 모든 분야에 대해 다 잘하는 아이들로 키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조금씩 적당하게 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아요.

 

모든 분야에 대해 다 관심을 갖고 잘 하는 사람들이 무난하고 원만하지만,

결코 그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기는 쉽지 않아요.

 

교육학에서도 미쳤다고 하는 얘기를 긍정적으로 ‘몰두한다’고 높이 사지만,

다른 영역은 피폐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런 사람이에요.

시장 가서 돈 버는 일을 시키면, 바보 천치에요.

 

▲기독교의 ‘누룩’과 세상적 ‘몰두’의 차이 점

세상적 몰두는.. 자칫 잘못하면 주위 사람들을 다 피폐하게 만듭니다.

 

국회의원 되는 일에 몰두해서.. 집안 망조 나게 만드는 사람,

영화 찍는 일에 몰두해서.. 처자식 길바닥에 나앉게 만드는 사람,

그런 식으로 자칫 잘못하면 주위 사람들을 피멍, 골병들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경의 누룩(맛이 가는 것, 미친 것)은

그가 미치면 미칠수록, 반죽 덩어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몰두하면 4차원의 세계와 연결됩니다.

세상에서도 ‘신들린 연주’... 이런 말을 쓰는데,

몰두하면 신기 神技에 가까운 그런 능력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예술, 운동하는 세상 사람들도 그런 능력이 나오는데,

하물며 성령에 취한 사람들이야 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누룩처럼 먼저 변화되어,

그 십자가의 도에 완전히 미치면, 신기 神技에 가까운 능력이 나옵니다.

 

그래서 자기 주변 사람들이, 자기 주변 환경이.. 막 변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활동이 시작 됩니다.

 

하나님의 4차원적인 창조활동이, 나의 3차원적 생활에 가로막혀 활동을 못 했는데,

내가 성령에 몰입하고, 십자가의 도에 몰입하면,

 

그래서 누룩이 변화(변질)되듯 내가 미치면

하나님의 4차원적인 창조활동이, 나를 통해서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적 표현을 빌리면, 신기神技에 가까운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누룩이 뭡니까. ‘맛이 간 떡’으로 누룩을 만듭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맛이 간 사람’이 되어야.. 반죽을 변화시키는 ‘누룩’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남편과의 관계가 천국적인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미치지 마세요.

다른 모든 세상일에 대해서는 미치면 안 되죠.

 

사업한다고.. 부인 생일 잊으면 삐지잖아요.

좋은 남편은 사업 열심히 하다가, 또 틈을 내서 아내와의 외식을 준비합니다.

 

▲예수님으로 맛이 간 인격이 되면서

옆에 사람들도 똑같이 맛이 가게 만드는 염병의 전염성을 갖고 있습니다.

 

바둑에 미친 사람들은, 바둑을 두다가 버스타고 가는데

누가 체크무늬 옷 입었잖아요, 거기다가 대고 바둑을 둔대요.

누워서 보는데, 천장 무늬가 바둑판이면, 천장에다가 바둑 두고요.

 

우리가 십자가에 미쳤다는 것은,

바둑에 미친 사람이 모든 게 바둑판으로 보이듯,

예수님을 밥 먹을 때도 보고, 일 할 때도 보는 겁니다.

그것만 하는데, 이상해요. 주변이 난리가 납니다,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변화가 일어나고 하는데,

그 변화들 속에서 내 옆에 사람도 같이 변화하더란 말이죠.

염병과 같은 일을 하게 됩니다.

누룩이 원래 주변을 변화(변질)시키지 않습니까...

 

▲담벼락에 바라보고 서서, 미친 듯 펄쩍펄쩍 뛴 소년

시카고 무디 교회의 목회자며 저명한 라디오 설교자였던 폴 레이더

(Paul Rader, 1879~1938)는 평소에 이 예화를 종종 들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보니,

한 소년이 길가의 담장에 얼굴을 대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때때로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일인데 저 애가 저렇게 난리지?

혹시 저 애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애는 담장 너머에서 벌어지는 야구 경기를

그 구멍을 통해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애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안타 칠 때마다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행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던 그 아이는

행인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과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미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정의해야 합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에 대해 반응하면서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미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 반응하는 것은.. 미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그분에게 반응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 못하기에

우리가 그분에 대해 열광하는 것을 보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에게 보이는데, 세상의 비웃음이 뭐 그리 큰 문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