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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키우고 자신을 지키라 P2

LNCK 2024. 1. 30. 11:40

2014 Origin - 둘째날 저녁집회 설교(이관형 목사) (youtube.com)

*위 설교 56:20~ 녹취                        ☞ ▣제자 양육

 

사람을 키우고 자신을 지키라 P2   딤후2:11~13, 막10:45    ☞ ▣ 지난 글 보기 


◑2:11~13절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2:11~13절까지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즐겨 불렀던 찬송시 입니다. 오늘날의 찬송가죠.
바울은 이야기하죠. '디모데야, 우리가 함께 불렀던 찬양이 있지 않느냐?' 

그런데 이 찬양이라는 것이 무섭습니다. 
저는 노개가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을, 
옛날 운동권 애들 집회할 때 보면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때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원조 보컬 그룹)라든가 
아니면 이런 아주 초기 그룹들이 막 생길 때였어요. 

그때 학교 캠퍼스 야외 공연장에 가면 수만 명들이 모여 있어요. 
그러면 노찾사 같은 보컬 그룹들이 있거든요.
 
그런 가수들 5명이, 통기타 다섯 대 딱 들고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소위 말해서 '운동권 찬양(노래)'을 합니다.  
그 노래를 들으면, 온 몸에 전율이 흐릅니다. 전율!

저는 우리 교회 찬양팀을 생각하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모델이 뭐냐? 
그때 그 수만 명의 학생들 앞에서 통기타 하나 들고 다섯 명 정도 노래를 불렀던 
그 노래 패들, 그 보컬 그룹이 생각납니다. 

저는 '최소한 교회 찬양팀이 저 정도 돼야 되지 않나?' 
그러니까 그네들 노래를 들으면, 학생들이 다 눈물이 주루룩 흐르죠. 그리고 몸에 전율이 흘러요.  

그리고 다같이 떼창을 부르며, 다함께 하나가 되지요. 그러면서 다 (데모하러) 뛰쳐나가요. 
저는 노래가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을, 그때 생생하게 경험을 했어요.

여러분, 노래는 있잖아요. 그냥 어떤 사운드라든가 이것만 있는게 아닙니다. 
앞에서 부르는 사람들의 희생, 고난, 아픔.. 이런 것들이 응어리져 녹아있어야만 
그 노래가 사람들을 완전히 몰아가는, 감동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어요. 

2:11~13절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였을 때 불렀던 노래입니다.
그 고백이 뭔가 하면 

'미쁘다 이말이여'
믿을 만한 말이다! 라는 뜻이죠.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이런 찬양을 불렀다는 거죠. 
'디모데야, 이 찬양을 우리가 불렀지 않느냐? 
누가 살아나느냐? 주와 함께 죽는 자들이 살아난다. 
누가 왕 노릇 할 거냐? 주님을 위해 참는 사람, 영혼을 위해 참는 사람들이 왕 노릇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님이 맡기진 이 일에 동을 돌려 버리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다
우리는 미쁨이 없지만 faithless, 그분은 항상 미쁘신 faithful 분이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과거에 함께 불렀던 찬양을 기억시키면서, 
그에게 도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혼을 섬기는 일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고된 일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함께 왕 노릇하고, 살고, 영광에 도달하는.. 
나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는 길이다!'  
이렇게 바울은 디모데에게 도전을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 같은 대학생들보다 조금 나이가 더 들었어요. 
제가 요즘 가면 갈수록 느끼는게 있어요.  

여러분들이 봤을 때는 (섬기는 그 일이) 보잘 것 없고, 

여러분 자신도 그 섬김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주님을 위해서, 주님이 맡기신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희생하고 자신을 드렸던 그 수고를, 
하나님은 결코 잊어버리시지 않습니다. 

▲제가 내수동교회 대학부를 섬겼어요. 
정말 저는 제 20대를 드렸어요. 

그런데 제 20대를 주님께 드리면서, 제게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제가 내수동교회 대학부를 섬기면서 보니까, 거기에는 너무 똑똑한 애들이 많아요. 
소위 엘리트, 좋은 재목들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그런 회의가 생겼어요.
'이 제자양육이라는 것도, 잘난 사람을 더 잘 나게 해주는 거 아닌가?' 
그런 질문이 제 마음속에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람 세우는 이 일이 
꼭 잘난 사람들을 더 잘나게 해주는데만 쓰여야 돼나?'

'혹시 이 시대의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역사가 가능한 것인가?'  

그래서 저는 내수동교회 대학부 전도사 사역을 마무리하고, 
난지도 빈민가로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곳이 지금은 상암동 축구 경기장이 들어섰지만, 
그때는 서울시의 쓰레기 매립지였어요. 지금 상암동이 그때는 난지도였어요. 

난지도에  우리 후배들이 거기 '반석교회' 라는 곳에서 교사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소위 '빈민선교'를 한 것이죠.

그래서 제가 후배들을 그곳에 앞서 보냈기 때문에, 
제가 대학부 전도사 사역을 마무리하고,  *제 교육전도사 시절

거기서 중고등부 전도사를 했어요.  *제 강도사 시절

또 주일 밤 예배 때 설교하고, 우리 할머니들 모시고 성경공부 하고, 
소위 제자훈련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제 인생에,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귀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였던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목회자로서, 제가 갖추어야 될 가장 귀한 것들을 
하나님은 그곳에서 제게 가르쳐 주셨어요. 

제가 그곳에서 설교를 배웠어요. 
저는 그 전에 대학부에서 설교할 때, 좀 속된 표현으로 하면, 
저는 대학부를 말아 먹은 사람입니다. 

제가 대학부를 맡을 때 대학부가 200명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3년 섬기고 나서, 거의 반토막이 됐습니다. 

제가 화종부 목사님께 물려받아서 대학부를 이끌다가
화목사님이 군대 제대하시고, 또다시 화목사님이 맡으셨어요. 

화목사님이 대학부를 다시 맡으시고, 석 달 만에, 
반토막 됐던 대학부가 다시 원상복귀했어요. 

그러니까 누가 봐도 대학부가 반토막된 것은 저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웃으시지만,  
제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곳이지만, 
저는 대학부 후배들을, 말씀으로 제대로 섬기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그것이 저는 너무나도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나도 미안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난지도 가서 6개월 정도를 요양을 했습니다. 

'왜 나는 가장 사랑했던 대학부 학생들, 나의 모든 것 쏟아부으면서 사역했는데, 
왜 나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래서 제가 그때 설교하고 나면, 
그때 우리 집사람과 한 7년을 교제했거든요. 

제가 설교 끝나고 나면, 우리 집사람은 대학 동기라서 흉허물이 없이 서로 이야기했어요. 
'형제님의 설교는 호러블, 테러블이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설교가 너무나 시끄럽고, 너무나도 길고,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집사람이 제게 했던 이야기가 
'내용이 자신이 없으면, 빨리 끝내서라도 은혜를 끼쳐라'  

저는 지금도 설교할 때 제일 무서운게 뭐냐? 
(회중석에서 설교를 듣고 있던) '우리 집사람이 시계를 쳐다봤다...' 
그러면 그 날 설교가 내용은 없는데, 길다는 반응이지요... 그게 제일 무섭습니다.
제가 설교에 대해서, 그런 쓰라린 좌절을 맛봤어요. 

근데 난지도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너 어른들 설교 한번 해 봐라' 

그런데 제가 지난 3년을, 대학부 학생들에게 설교를 통해 고문했잖아요. 
'하나님, 제가 또 설교를 통해 고문해야 됩니까? 
하나님 만약에 제가 다시 설교하는 것을 원하신다면,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때 제가 대구에, 구정 연휴라서 잠깐 내려갔는데, 
평소에 새벽기도 안 나가시는 우리 어머님이, 구정 명절맞이 새벽기도를 가셨어요.  

그래서 저도 따라갔습니다. 이제 서울에 올라가면, 설교 본문과 제목을 미리 알려줘야 되는데, 
그때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설교를 가지고 또 고문해야 됩니까?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때 우리 주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갑자기 본문을 하나 보여 주시면서, 제가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설교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어떻게 이것을 표현하고, 어떻게 표정을 하고...' 
하나님께서 (기도 중에) 가르쳐 주셨어요. 저는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가르침을 받고, 시계를 보니까 30분이 훌쩍 지났어요. 
저한테는 놀라운 체험이었어요. 

제가 그때 하나님이 주셨던 그 본문을, 설교 제목으로 알려드리고  *주보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서 주일날 난지도에서 어른들에게 처음 설교를 했습니다. 
주님께 배운 그대로 설교를 했는데, 그때 설교 마치고 나오니까 집사람이 이야기했어요. 

"야~ 별일이 다 있다. 오래 살다 보니까" 
"뭐가 별일이고?" 
"당신 설교에 내가 은혜를 받다니..."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그렇게 설교를 배웠어요.  

▲또 제가 난지도에서 중고등부 애들, 학교에서 거의 포기했던 애들이죠.  
근데 그 아이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서 자란) 애들이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까? 
예배시간에 마구 돌아다니죠. 

제가 너무너무 화가 나서, 부임한지 한 달이 지나도 계속 돌아다니니까, 
제가 열 받아서 나가 버렸어요.  '이놈들,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러면서 제가 나와 버렸어요.  

나와서 난지도를 제가 한 바퀴 도는데, 
앞서 내수동교회에서 대학부 맡았을 때 받은 상처가 다시 도졌어요. 
'하나님, 저는 여기서도 결국 안 되는 겁니까?' 
하나님, 저는 좋은 뜻으로 여기에 왔는데, 이 애들이 저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뭐 하십니까? 제가 설교하면 하늘에서 가만히 계시지 말고, 
내려오셔서 애들도 좀 자리에 가만히 앉혀주시고, 그래서 저를 도와주셔야지, 
지금 애들을 방치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그렇게 막 씩씩거렸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음성을 주셨어요. 
'내가 네 설교를 들어도 (아이들처럼) 돌아다니겠다...' 

이거는 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음성이었어요. 
정말 하늘의 음성이었어요. '내가 네 설교를 들어도 돌아다니겠다' 
기분이 확 잡치잖아요. 안 그래도 마음이 상해 있는데...

그래서 제가 질문을 했어요. 
'하나님, 제가 설교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그때부터 가끔씩 외부집회도 강사로 나갔거든요. 

'아니 그래도 하나님, 저도 웬만큼 잘 나가는데, 
제 설교 들으시고, 하나님도 정서불안으로 돌아다니시게 할만큼 
설마 그정도로 제가 설교 못하는 거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또 도전을 하셨어요.
'네 설교를 한번 돌아봐라, 애들한테 무슨 설교 했는지?'  

그때 제가 난지도 애들한테 무슨 설교를 했냐면, 
"얘들아, 프랑스 혁명이 어떻게 일어난 줄 아느냐?
너희들, 러시아 혁명이 어떻게 일어난 줄 아느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사는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이런 압제, 그런 어떤 사슬에 묶여져 있지만  
이제 말씀을 듣고 일어나서 분연히 깨어나야 돼!"  

그래서 입만 벌리면 제 입에서 '민족적, 역사적, 사회적...' 
무슨 적, 무슨 적, '적' 자가 빠지면 말이 안 됐어요. 

비로소 저는 깨닫게 됐어요. 
'중고등부 애들이 돌아다니는데, 애들에게 문제가 있는게 아니고, 
나한테 문제가 있는거다.' 비로소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 제가 주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애들의 마음에 떠들고 싶은 생각이 안 나도록 설교해라' 

저는 그게 난지도에 3년반 있는 동안에 제게 화두였어요. 
'어떻게 하면 예배시간에 돌아다니는 이 아이들에게 
떠들고 싶은 생각이 안 나도록 설교할 수 있을까?' 

제가 당시에 IVF 간사를 했는데, 그때 저는 귀납적으로 성경해석 하는 걸 배웠어요. 
그것이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것을 배워서 난지도 아이들에게 적용시키면서 
'어떻게 하면 얘들이,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안 나도록 설교할 수 있을까?'  

제가 그런 감동받고 그 다음 주일 설교하는데, 애들이 여전히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제가 몇 마디 했는데, 갑자기 돌아다니는 애들이 딱 멈추더니만, 
저를 한번 쳐다보고 씩 웃어주고, 또 계속 돌아다녔어요. 

그거는 저한테 기적적인 사건이었어요. 
'아니 이 인간들이 왜 지금 나를 보고 한 번 멈춰서 웃어 줬나?' 
그 순간만큼은 돌아다니는 것보다, 제 설교가 재밌었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집에 가서, 제 설교를 리뷰하는 거죠.
계속 묵상하고 리뷰하다 보니까, 그때 제가 사용했던 표현이 있었어요. 
그래서 설교원고의 그 대목에, 별표 치고, 빨간 줄 빡빡 그어놓았어요.  

그런데 애들하고 같이 지내다 보니까, 애들은 언제 제 설교에 재미있어 하느냐? 
'우리 가정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하나님 말씀 속에, 믿음 속에, 
우리 부부가 같이 나누었던 경험들... 

그때 집사람이 미국에 친정이 있기 때문에, 미국에 다니러 갔어요. 
가니까 애들이 너무 좋아해서 "사모님이 가셨다"  
그래서 애들이 방학 내내 우리 집에 왔어요. 
매일 라면 끓여 먹고, 놀고, 막 그랬어요. 

그러면 제가 설교할 때 "야~ 우리 집에 와서 그렇게 빈대 치면서 
(그때 제가 강도사 였는데) 강도사님 집에 라면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끓여 먹은 놈들,
이 나쁜 놈들..." 

그러면 애들이 갑자기 막 돌아다니다 멈춰서, 저를 보고 
"강도사님 저놈입니다!" 막 그렇게 서로를 가리키고, 

또 수련회 가면, 강원도 골짜기에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그냥 물놀이 하는데, 
애들이 저에게 물을 먹이는데, 그때 서울에서도 유명한 애들(학폭?)이 있었거든요.  
정말 제가 '야 이러면 죽는구나' 할 정도로, 애들이 저를 물을 먹여요. 

그러면 애들이, 제가 죽을 만하면 꺼내줘요. 
'이게 부활이구나..' 
제가 그때 너무너무 물을 많이 먹었어요.

제가 설교할 때 "나를 순교의 영광된 자리로 이끌려고 했던 놈들..."
그러면 애들이 이야기하죠. "저놈이 그랬습니다.."  

제가 3년반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저는 애들이 은혜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거는, 애들이 자리에 그대로 붙어 앉아 있었어요. 

그 후에 제가 중고등부 외부 집회에 가보면, 
많은 교역자들이 제게 미리 이야기해 줍니다. 
"목사님, 우리 애들은 설교에 집중을 잘 안 합니다." 

그러면 제가 묻죠. "애들이 혹시 앉아는 있습니까?"
"자리에 앉아는 있는데, 딴 짓하고 설교를 듣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제가 "뭐 걱정하지 마시라고..." 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돌아다니는 애들 앉히면서 설교한 경력이 있는데, 
자리에 앉아서 딴 짓 하는 애들 정도는, 충분히 쉽게 다룰 수 있게 된 거죠.

제가 지금 드리고 싶은 말씀은 뭔가 하면 
저는 제 삶에, 난지도에서 우리 할머니들하고 성경 공부했어요. 
한글도 잘 모르는 할머니들...  

'자 우리 암송 구절 체크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러면 50대, 60대는 할머니들이, 갑자기 속치마, 몸빼 바지속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요. 
종이나 도화지에, 성경 한 구절, 암송구절을 볼펜이나 크레용으로 막 써서
그걸 구겨가지고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외우신 거예요. 
 
그 당시는 난지도가 쓰레기 매립이 중단됐기 때문에, 이분들이 식당에서 일을 하셨어요.
대부분이 몸쓰는 일을 하신 거죠. 

그래서 식당에서 그렇게 일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숙제하느라고,
바지 춤에서 도화지 꺼내 가지고, 그 말씀 한 구절씩 암송하다 보면,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을 위로해 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암송 숙제하시죠? 여러분들은 하루에도 몇 구절씩 암송할 수 있잖아요. 
저는 지금까지 청년들, 어른들 모시고, 많은 성경공부를 인도했지만, 
난지도에서 그때만큼 내 마음을 뛰게 했던 적이 없어요. 

야~ 이분들에게, 그 말씀이,
'사회 밑바닥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체험했던 거죠.

▲제가 난지도를 떠나서 대구에 내려갔어요.  *아마 대구내일교회  
저도 서울에서 좋은 교회로 부임해 가고 싶었지만, 
제가 고향 대구에서 원래 좀 뺀질이었는데, 서울 내수동교회 대학부에서 저는 새 사람이 됐어요. 

그런데 고향에 내려가서 보니까, 
우리 모교회 후배들, 또 우리 친구들은 
과거에 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영적인 체험이 뜨거웠던 애들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서울에 있다가 내려가 보니까,
애들이 거반 다 교회를 떠나서, 그 뜨거웠던, 그 경건했던 애들이 다 교회를 떠났어요. 
그러니까 제 마음이 너무너무 무거웠어요. 

'하나님, 결국 서울에 있어야 예수님도 잘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 아이들이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느냐? 
그들을 돌봐주고, 붙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마음에 무거운 짐이 생겼어요.
'하나님, 우리 고향에 있는 애들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 후배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다가 마음에 제가 결심을 했어요. 
'하나님, (대구 행이) 화려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제가 지방에 내려가겠습니다'

여러분, 아시죠? 지방에 있는 애들은 어떤 모습에 비유하느냐? 
한쪽 날개가 잘린 청년들입니다. 새로 비유한다면 한쪽 날개가 잘렸어요.     주1)

날개가 이미 잘려 버린 애들입니다. 
지방에는 '자신의 삶이 빛날 수 있다는 기대를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잘라버린 저 한쪽 날개, 
제가 말씀으로 붙여줄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거기에 가서 저는 나름 최선을 다하면서, 
'우리 지방에 있는 청년들, 어떻게 하면 말씀으로 이들이 새 사람이 될 수 있나?' 
'정말 말씀을 통해서 역사의 주인공으로 이들이 설 수 있을까?' 

그 일에 저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어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라,
저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 인생의 꿈은 무엇이었느냐? 

저는 섬김을 받는 자리에 올라가는 거였어요. 
모두가 제게 절하는, 모두가 존경하는 그 자리에 내가 앉아있는 것이었어요. 

예수님 잘 믿는 내가, (복 받아) 그 자리에 올라가서, 
모든 사람들의 섬김을 받으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이렇게 잘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제 인생의 꿈이요,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대학부에서 말씀을 공부하고, 선배들과 같이 말씀을 공부하다가 
비로소 깨닫게 됐습니다. 

제 인생을 바꿨던 또 하나의 말씀, 예수님이 스스로 말씀하셨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막10:45
예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 삶의 목적을 비로소 바꿀 수가 있었어요. 
'하나님, 더 이상 제가 섬김 받는 자리에 올라가려고 발버둥 치지 않겠습니다. 
대신 하나님이 제게 주신 시간, 기회, 모든 것 통해서 
예수님처럼 섬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제 작은 인생이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저도 예수님처럼 생을 드릴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저는 대학부에서 성경공부하다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삶의 목적이, 섬김을 받는 자리에 올라가는게 아니라 
오히려 섬기는 것이다. 

특별히 주님의 '충성된 사람'을 택해서, 
그들을 이 시대 예수님의 제자들로 세우기 위해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다..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2:2

그 제자들을 위해, 기꺼이 나의 삶을 포기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다... 

▲지금 사도 바울이,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도전을 합니다. 
사도바울, 그는 인간적으로 청년의 때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는 소의 유학파였어요. 가말리엘 문하의 최고의 학문을 마쳤고 
당대에 가장 소위 엘리트, 장래가 촉망되던 그가, 어느날 예수님 만났습니다. 

그가 예수님 만나고 나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나를 의롭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저도 제 인간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가리기 위해서, 마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고 자신을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렸잖아요. 

지금도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은, 그 벌거벗은 자신, 그 부끄러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서 
때로는 학벌이라는 것, 아니면 외모라는 것, 이런 걸 통해서 자신을 꾸밉니다.  
그렇게 꾸미지만,  마음에 무엇이 있습니까? 두려움이 있지 않나요?

'이것을 가지고 나는 다 가려질 수 없어요. 
남들이 나를 향해서 좋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언젠가 저들이 내 정체를 알게 될 텐데.. 부끄러운 나 자신, 
내가 봐도 부끄러운 나 자신, 언젠가 저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될 텐데..' 

 

나를 가리고 있는 그 무화과 나무가 나를 올바르게 포장할 수 있습니까? 
영원히 보장해 줄 수 있습니까, 가려질 수 있습니까? 

저는 언제나 제 삶이 '섬김을 받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다'
'내 삶을 다른 사람을 위해 드리는 것이다' 라는 것을 깨닫고,
제가 부족하지만, 그 일에 제 자신을 드리게 될 때,
제 삶 속에 놀라웠던 것 또 한 가지는, 저를 비로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다닐 때, 제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 언제 저도 한 번 웃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저는 웃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을 보면서도 웃을 수 없고,
나 자신을 보면서도 저는 웃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님을 만나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제 인생의 목적이 되었을 때, 
그때부터 저는 웃음의 사람, 기쁨의 사람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어요.  

바울이 우리들에게 도전을 합니다. 디모데를 통해서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어디에 헌신하겠습니까? 
'충성된 사람을 키우는 일,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람을 키울 수 있는 충성된 사람을 키우는 일'에  2:2
여러분 자신을 헌신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드리십시오  희생하십시오. 막10:45
그것이 여러분의 삶을 빛나게 하는 길입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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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어느 뉴스 매체에서 보도하기를
지방 고등학교 출신 졸업생들의 10년 후를 전수 조사해 보니까,
그 중 70~80%가 서울로 떠났고, 20~30%가 고향에 잔류했는데,

서울로 떠난 동기생들은, 거의 대부분 아직 결혼을 못 했고, 직장, 주거도 10년이 지나도 안정되지 못했으나,
지방에 남은 동기생들은, 거의 대부분 다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또 직장, 주거도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세상 가치로) 좋은 직장, 좋은 주거는 아니지만, 일단 안정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