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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LNCK 2024. 2. 5. 18:05

내 안에 거하라 #1]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 요한복음 15:4-7 - YouTube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요15:4-7            ☞ ▣임재, 교제, 친밀함
  [내 안에 거하라 #1]                                   

어느 초등학생이 '중독'이라는 이렇게 시를 썼습니다. 

「틈만 나면 게임 한다고 중독이라 하지만 
난 학교 갔다 와서 할뿐 
난 학원 갔다 와서 할뿐 
난 밥 먹고 할뿐 
난 똥 싸고 할뿐 
학교도 안가, 학원도 안가, 밥도 안 먹어, 
틈도 없이 하는게 중독이지, 
틈도 없이 잔소리하는 엄마가 중독이지」 

이런 시를 썼는데, 
실제로 예수를 믿고도 마치 무슨 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그게 도무지 해결 안 되는.. 크고 작은 죄가 우리 안에 계속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 이렇게 살면 안 돼.. 이건 내가 고쳐야 될 것 같아..' 
그런데도 이번 주간에도 여전히 과거와 똑같이 살았고.. 
그런 결심을 하면 오히려 더 나빠지기도 하고.. 
그런 문제들을, 우리가 예수를 믿고도 여전히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 내가 예수 믿는데도 왜 그렇지요? 
우리가 믿는 복음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이고, 
그래서 얼마나 변화되면 '거듭났다'고 까지 말합니다. 

그런 복음인데.. 나는 분명히 예수 믿었는데.. 복음도 내가 아는데.. 
왜 나는 안 변하지요? 

애들은 애들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서로 답답하게만 하고, 
교우들 사이도, 사실 조금만 형편을 알아 보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예수 잘 믿는 거 같고, 교회를 위해서 큰 일꾼 같은데, 
조금만 개인 삶 속으로 들어가 보면 
무너지고 망가진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예수 믿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여러분 왜 이렇지요?
예수를 믿어도 안 되는게 아닙니다.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예수를 잘못 믿고 있나 봐.. 내가 어딘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으면, 
그러면 반드시 성경이 말한 그 변화된 놀라운 삶, 
거듭남의 삶이 우리 가운데 주님이 놀랍게 허락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누구시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시죠.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에 대한 매우 중요한 메시지죠.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그 메시지만 전하고 계신게 아닙니다. 
또 하나 예수님에 대해서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데, 
그 예수님이 모든 믿는 자들 마음 안에, 우리 주님으로 와 계신다는 것이죠.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고후13:5절에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니라' 

왜 예수님을 믿어도 내 삶이 안 바뀌나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만 아는데데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이 되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내 마음 안에 와 계시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사실 건성으로 알고 있어요. 
그게 실제 자기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삶이 안 바뀌는 거예요. 
예수 믿고도 여전히 마치 뭐 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도무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그런 딜레마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기는 다 알아요. 
내 안에 주님이 와 계신다는 것!  내 안에 주(왕)으로 와 계시죠.

여러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어떤 병자도 고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다 믿으시지요? 네, 우리는 그렇게 믿어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세요. 

그런데 '내 안에 오신 주님'은, 전지전능하시다고 안 믿어요.
주님이 내 안에 오셨다고 그렇게 고백하면서도, 
천지를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 지금 내 안에 오셨다고 안 믿어요.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고, 몸이 아프고, 뭐 뜻대로 안 되고... 
그러면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분명히 믿기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고 믿으면서도 
절망과 좌절, 낙심에 빠져 버리는 우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되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는 알지만, 
그분이 내 안에 계시다고 하는 것은.. 건성으로 믿고 있는 거예요. 
엄밀히 말하면, 안 믿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반드시 해결해야 될 문제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그 말씀이 반드시 우리에게 체험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능력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정말 체험해야 될 말씀이 요15:5절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진짜 예수를 믿었다면, 정말 체험해야 될 말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씀에요.
이 말씀을, 오늘 또 본문으로 정합니다. 
이 말씀이 실제가 될 때까지, 계속 여러분께 이 말씀으로 도전을 드립니다.

이제 하나님의 어떤 때가 되었다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까지 해 온 사역의 소정의 열매를 거둘 때
우리는 좀처럼 안 바뀌는 존재잖아요. 그죠? 
어지간히 한두 번 설교를 들어가지고는 우리가 안 바뀌는 존재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이제는 말씀으로, 우리의 중심을 움직이시는 역사를 이루실 때가 됐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성령 집회 때, 요15:5절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들과 한동안 계속해서 이 말씀 앞에 서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게 아니고,
이 말씀을 진짜 믿고 삶에 실제화 시키는 거예요. 

'주님은 포도나무고 나는 가지고,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이 말씀을 
이제는 머리로 아는 데서만 그치지 말고, 정말 믿어 보자는 것이죠. 

▲지난 월요일에, 전국에 계신 우리 목사님들이 30명 정도 함께 모이셨어요. 
근데 전국에서 오셨어요. 부산에서 대구에서 이렇게 오셨으니까요.
우리 '예수동행운동' 파트너 목사님들이 기도 모임을 가졌습니다. 

전체 목회자들의 기도 모임을 준비하면서, 사전 준비 모임을 한 거죠. 
'먼저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다' 해서, 그 모임에 강사도 없었어요. 
'그냥 한국교회를 위해서 모여 기도만 하자'는 취지였죠.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위해서 우리를 기도하게 (감동) 하시니 
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우리 모여서 기도합시다.' 

마18:19~20절 말씀을 붙잡았어요.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러면 됐지요. 주님이 우리 가운데 같이 계시면 그러면 된 거죠. 
강사가 뭐 필요하겠어요? 그 믿음으로 그냥 모셨어요. 

'주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실 것이다.' 
그 주님을 기대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같이 나누면서 기도하고, 
그러면서 쭈욱 기도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무슨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하나, 주님이 진짜 우리와 같이 계신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 말씀 하나만 붙잡고, 기도 모임을 가지고 끝났죠.

그런데 이런 정도의 (단순한) 기도시간을 가지려고, 
부산에서도 오시고, 대구에서도 오시고... 
그 멀리서 오고 가게 하신게 조금 미안하다는 느낌도 좀 들었어요. 
'앞으로 이런 식으로 계속 해도 될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졌어요. 

그 다음날 새벽에 제가 새벽 기도하려고 교회로 올라오는데 
제 마음이 평소 같지가 않아요. 그렇게 마음이 간절해요. 
새벽기도회에 올라와서 기도하는데, 기도가 너무 마음이 뜨거워요. 
'오늘 아침엔 왜 이렇게 내 마음이 뜨겁지? 
어제 그 기도 모임 때문인가?'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어요. 

특별한 강사님이 계셨던 것도 아니고, 
기도 모임 속에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으니,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다.' 
그래서 그분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리고 어떻든지 깨닫는 대로 순종하려고 했어요. 

대가 지불이 꽤 있었습니다. 
호주에서 오신 목사님도, 그 한국에서 지내는 며칠 안 되는 시간을 
할애해서 참석하셨고, 다들 희생이 있는 기도 모임이었어요. 

아 그런데 제 마음에 심령이 이렇게 변화된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이제는 진짜 예수님, 그분에게 초점을 맞춰 보세요.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고...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다 사람을 바라보는 거죠. 
'이번에는 강사님이 누구셔? 이번에는 설교를 누가 하시지?' 하면서, 
사람에게 주목하지, 우리는 주님께 주목하지 않아요. 

▲여러분 중에도 전화하고 오늘 나오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금요일마다 교회에 전화가 온대요. '오늘 설교 누가 하세요?' 
'오늘은 어느 목사님이 성령 집회 인도하십니까?' 
거기에 따라서 오고/ 안 오고를 결정한다는 거예요.

물론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런데 이제는 거기서 한 계단 더 깊이 들어가야 돼요. 
여러분이 사람에게 자꾸 의존하면, 결국은 진정한 은혜의 세계로 못 들어갑니다. 
결국 사람 때문에 또 영적으로 막히게 될 수도 있고... 사람은 한계가 있어요. 

여러분이 이제는 진짜를 붙잡으셔야 돼요. 오늘 이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그렇게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될 분은 오직
'지금 내 안에 계신 주님,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주님, 
지금 우리 가운데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그 주님'이세요. 

여러분들이 그 주님께 계속 주목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일이 
여러분에게 이제는 자연스러워져야 돼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일상생활 속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돼요.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다고요. 
그런데도 주님의 역사를 경험 못하고, 주님이 뻔히 보시는 앞에서 엉뚱한 짓 하고,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신데 말실수를 하고, 그래서 집안 다 뒤집어 놓고... 
좋은 관계 다 깨뜨리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축복을 다 잃어버리고...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이 정말 얼마나 동탄하실 일을, 우리가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예요. 우리가 진짜 안 믿는 거예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모이면 우리 중에 계시다고... 
그 예수님께 기대를 가지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계속 사람에게 연련하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도 자라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는 여전히 사람에게 의존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주님은 진짜 포도나무시고, 나는 그 가지다' 그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요?
있어요.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어요. 

로마서 15:17~18절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로 말미암아 역사하셨던 그거 외에는 
내가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고백했어요. 

그러니까 요15:5절 말씀이 그대로 사도 바울에게 이루어졌죠. 
'나는 포도나무고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그가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요15:5절이 자기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그가 고백했어요. 롬15:18

예수님의 말씀은 그냥 뭐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실제로 성도들의 삶 속에 그대로 이루어지는 말씀이에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사도바울처럼 나도,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주님이 내 안에서 나를 통해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좀 이렇게 좀 신앙생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놀랍겠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지요? 

주님은 아주 간단하게 말씀하셨어요. '먼저 내 안에 거하라' 
요15: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여러분, 이 말씀을 이제는 정말 붙잡아야 돼요. 주님은 말씀합니다. 
'먼저 내 안에 거하라' 

'내가 주님 안에 거한다'는게, 우리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입니다. 
사도바울은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이었어요. 
항상 그게 그분의 고백이었어요. 사도 바울이 서신을 읽어보면 
'그리스도 안에' 라는 표현이 164회나 그가 썼습니다. 엄청나게 많이 쓴 거예요. 

사도 바울이 삼층천에 올라갔던 체험을 간증할 때도, 그는 이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고후12:2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을 고백할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어요.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누구에게 고백할 때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도록 살면 돼요. 
그것이 여러분 자신이 자연스럽게 
여러분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한 고백이 될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예수님 안에 거하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까? 
여전히 '나는 주님 안에 있다는게 뭘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어' 하신가요? 

여러분, 한번 그냥 잠잠히 여러분을, 예수님 안에 이렇게 둬 보세요. 
'내가 지금 예수님 안에 있다...' 그러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저는 가만히 묵상해 보니까, 제가 예수님 안에 있다 그러면, 
주님을 완전히 믿는 것, 주님께 완전히 맡기는 것 ,주님께 완전히 의지하는 것, 
예수님 안에 있으니까요! 그게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거예요. 

예수님을 완전히 믿는 것, 예수님을 완전히 의지하는 것, 
예수님께 나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것... 

나 자신을, 내 인생을, 완전히 주님께 맡겨 드리고
완전히 주님만 의지하면, 
그러면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놀라운 삶을.. 그때부터 내가 살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엡3:17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바뀌고 터가 굳어져서...'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게 하옵시고' 
여기서 말하는 이 믿음은, 
주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주님께 완전히 의탁하고, 주님께 완전히 드리고, 
주님께 완전히 맡기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편안하고 놀라운 건지 아십니까? 
우리의 문제가 뭐죠? 내 문제를 내가 붙잡고 있고, 내가 해결해야 되고, 
내가 고민하고... 그것 때문에 내가 싸우고, 몸부림치고, 
그러느라고 다 우리가 지치고 깨지고 온 거잖아요.

근데 뭐 어디에다 맡길 데가 없으니까 그러는 거죠. 
아니 내 인생을 누구한테 맡겨요? 맡겨져요? 누가 맡아 주기나 해요. 
그러니까 내 문제를 내가 가지고 고민하고, 
이것 때문에 속상해하고, 답답해하고, 괴로워하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잖아요. '내 안에 거하라' 
우리 주님께 맡기라는 거예요. 우리 주님만 의지하라는 거죠. *주제

▲이렇게 설교할 때, 실제적인 예가 필요해요. 
'그런 사람이 있나? 어떻게 주님께 완전히 믿음으로 맡기고, 
주님과 온전히 연합한 사람이, 성경의 사도바울 말고, 또 어떤 사람이 있나?' 
있어요.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이 그랬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믿음"에 대해 눈이 열리게 된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우리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소개를 드리고 싶어요. 
오늘 여러분들이 진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에 대해서 눈이 열리게 되기를 
제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허드슨 테일러를 증인으로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립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이 중국선교사로 가셨는데, 중국에 가서 그가 쓰러지셨어요. 
1869년이었어요.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낙심이 되고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 핵심은 '나는 하나님 앞에 바로 살 수가 없는 존재다' 라는 점이었죠. 
선교사까지 갔는데, 정말 바로 살고 싶고, 정말 경건하게 살고 싶지요. 
이제 주님과 온전히 연합한 자로 살고 싶지요. 그런데도 안 되는 거예요. 

거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의 열망이 있으면 있을수록.. 좌절은 더 커지는 거예요.
허선교사님은 생각하기를 거룩한 삶은 어떻게 살아지나? 
'경건한 생활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내가 온전히 거룩한 사람이 될거다' 처음엔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자기는 자기가 알잖아요. 
자기가 영국에서 중국으로 선교사까지 왔고, 세월은 꽤 많이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나는 변했나?, 성화되었나?' 오히려 더 악화가 됐어요. 

짜증도 많이 내고, 신경질도 많이 내고... 스스로가 너무 무너지는 거예요. 
그분은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매일 거의 매시간마다 죄의식이 나를 억눌렀다.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고, 한순간도 그분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나,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무감이 주는 중압감 때문에 오히려 몹시 괴로웠고, 
너무나 지쳤고, 자주 그분을 잊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신경이 너무도 예민해져서 
화를 잘 내게 되었고, 거칠고 불친절한 말을 하는 등 
나 자신을 더욱 통제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나는 매일 죄와, 실패와, 능력의 부족을 경험해야 했다. 
참으로 내가 원함은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내가 정녕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끊임없이 갈등하고 패배하다가,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체험이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중국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선포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강해지는 대신, 점점 약해졌으며, 
죄에 대항하는 권능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을 미워했다. 나는 나의 죄를 미워했다. 
그러나 그 죄에 대항하는 힘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었다. 
내 마음에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는, '아바 아버지라고 외치라'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은 누려지지 않았다. 
나는 내 힘으로만 거룩에 도달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나는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주님께 도움과 힘을 달라고 구했다. 

때로 나는 그분께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저녁에 돌이켜보면, 슬프게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슬퍼해야 할 죄와 
실패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 마음은 너무나 자주 그런 상태에 이르렀고, 대부분 절망으로 끝났다. 
더 이상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분, 곧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실 구주로 여겨지지 않았다. 

때로 주님 안에서 화평을 누리거나, 기쁨을 갖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얻느냐가 문제였다. 

실로 그분은 부유하시지만, 나는 가난하였다. 그분은 강하셨지만, 나는 약하였다. 
나는 나무에, 그 몸통과 뿌리에 풍부한 부유함이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보잘 것 없는 '나의 작은 가지' 안으로 끌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믿음만이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붙들고 
그 충만함을 나의 것이 되게 하는데 유일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 믿음을 갖지 못했다. 
믿음을 구하려고 애썼지만, 내게 임하지 않았다. 
힘써 얻고자 시도하였지만 헛수고였다. 

나는 불신의 죄에 빠졌다. 믿음을 구했지만 믿음은 임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네, 이게 허드슨 테일러가 절망에 빠졌을 때의 고백이에요.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정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이런 절망감에 빠진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겉으로는 훌륭하고, 믿음도 좋고, 다 주변에서 존경하는 분들 중에도 
내면으로는 허드슨 테일러가 가졌던 고민을,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나는 왜 그렇게 잘 믿어 보고 싶은데 안 되는 거죠?'
그렇게 몸부림치는데... 

나는 진짜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주님과 하나 되고 싶은데, 
그래서 그것 때문에 눈물로도 기도하고, 그런 은혜를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고, 
또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서 결심도 했고... 그런데 왜 안 되지요? 
도대체 믿음이라는 건 어떻게 오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허드슨 테일러의 고뇌가 깊어졌을 그 정점에, 
메카디 라는 동료 선교사님으로부터 편지가 왔어요. 

그 편지속에서,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믿음의 눈을 뜨게 됩니다. 
그 편지 속에는 이렇게 써 있었어요. 

「어떻게 믿음을 강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믿음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분을 의지하는(맡기는)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충격을 받았어요.
이 말씀에서 뭔가 확 눈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 무슨 눈이 열렸을까요? 
"믿음은, 믿음을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그분께서 결코 나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알았을 때, 오 얼마나 기쁨이 넘쳤던가! 

메카디는 또 이렇게 썼다. 
"우리가 믿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그분께서는 변함 없이 신실하시니"
이 구절을 읽고 '오 거기에 안식이 있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동안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기 위해 헛되이 애써 왔구나. 
이제 나는 결코 더 이상 애쓰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나와 함께 거하시겠다고,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결코 나를 저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던가!' 

그러나 이것은 그분께서 보여주신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내가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하여 생각했을 때에 
복되신 성령께서 빛을 내 혼에 쏟아부으셨다. 

그분으로부터 수액, 곧 그분의 충만함을 얻고자 했던 일에서 
나는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가. 

나는 '예수님께서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내가 그분의 몸과 살과 뼈에 한 지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내가 보는 포도나무는, 단지 뿌리만 아니라 모든 것, 
즉 뿌리, 줄기, 가지, 어린 가지, 잎, 꽃, 열매... 예수님은 그것만 아니시다. 
그분은 흙이요. 빛이요. 공기요. 소나기요. 
우리가 꿈꾸고 원하고 필요로 했던 그 모든 것보다 수만 배 더한 분이시다. 

오 진리를 보는 기쁨이여! 
부디 여러분의 영적인 눈도 밝아져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부유함을 알고 누리기를 기도한다. 

오 부활하시고 높혀지신 구주와 진정으로 하나되는 것,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는 부유하신데, 나는 가난할 수 있는가? 
너의 오른손은 부유한데, 왼손이 가난할 수 있는가? 
너희 머리는 잘 공급받는데, 몸은 굶어 죽을 수 있는가? 

은행원이 고객에게 그 수표를 쓴 것은, 당신의 손이지, 당신이 아니요 라거나, 
'나는 이 금액을 당신 손에 지불할 수 없으며, 당신에게만 지불할 수 있소'라고 말할 수 있는가? No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그분의 지체인 까닭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당신의 기도나, 나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비성경적이거나, 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어떤 다른 것을 요구할 경우... 그리스도께서는 응답하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분께서 들으시는 것이라. 
우리가 그분께 구하여 청원한 것들을 가진 줄 아느니라」 

여러분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이 이렇게 고백했던 것이 
아직도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의 것이 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으실 거예요.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에게 눈을 열어 주십니다. 
믿음은 가지려고 몸부림치는게 아니고, 그냥 주님께 맡기는 거예요. 
받아드리는 거예요.

주님이, 여러분에게 믿어지게도 하시고, 
여러분의 삶을 바꾸기도 하시고... 다 주님이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렇게 되려고 애쓰면, 오히려 주님은 못 하세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주님께 진짜 맡기는 거예요. 

여러분이 정말 변화된 삶을 살고 싶습니까? 
도무지 끊지 못하는 죄에서, 여러분이 끊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을 믿는 것 밖에 다른 게 없어요. 그걸 해주실 분은 주님이세요. 

그럼 믿는다는게 뭐지요? 맡긴다는게 뭐지요? 
주님 안에 거한다는게 뭐지요? 더 이상 그것 때문에 고민 안 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내가 안달 안 하는 겁니다. 주님께 맡겼으니까! 

▲여러분, 아주 버릇없는 아이가 있는데, 부모 심정에 이 아이를 좀 바로 잡아주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요. 엄마 아빠 말은 도무지 안 들어요. 

근데 소문을 들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선생님이 계신데, 
그분께 맡겨진 아이들은 다 변화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이를 데리고, 그 선생님 집으로 갔습니다. 
선생님은 '나에게 맡기세요. 자녀를 맡기고 가세요' 

부모가 그 순간에 얼마나 갈등이 되겠습니까? 
'이 아이를 선생님 집에 맡기고 가도 될까?' 

근데 그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거밖에 없어요. 맡기고 가야 돼요.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다시 데리고 가면 안 돼요. 
진짜 맡겼으니까 이제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가야 돼요. 
그러면 그 선생님이 그 아이를 바로 잡아줄 수 있어요. 

우리가 주님께 맡긴다는게, 꼭 이와 같은 거예요.
우리 힘으로 도무지 해결이 안 돼요. 아무리 고쳐보려고 애를 써도, 해결이 안 돼요. 

왜 이렇게 답답한지 모르겠어요. 
예수를 믿어도 왜 나는 이렇게 변화가 안 되는 거지요? 

우리 주님이 보실 때는, 주님께 진짜 맡김이 없어서 그래요. 
주님 안에 거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는게 주님 안에 거하는 거냐고? 우리는 막 몸부림쳐요. 
주님 안에 거하고 싶은데, 그 믿음의 눈이 진짜 열리지 않는 거예요.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이,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내린 참 놀라운 결론은, 그냥 받아들인 거예요.

즉, 주님과 나는 이미 하나예요. 
내가 또 잘못했어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이 나를 바로 잡아 주실 것을, 진짜 믿는 거예요. 
주님께 나 자신을 완전히 맡겨 버리는 기예요. 더 이상 걱정 안 하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분명히 선포하는 거예요. '주님이 나를 바로 잡아 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속에 믿음의 싸움이 일어나요. 

'너, 그게 상식적으로 맞는 이야기냐? 
아니 너 자신이 이렇게 부끄럽고, 추하고, 의지도 약하고, 
이런 저런 죄의 종노릇 하고 있는 너 자신인데, 
그냥 예수님께서 너를 고쳐 주실 것이라고.. 너 그렇게 하면 진짜 될 거라고 생각이 들어?' 

여러분 우리가 싸우는 건, 죄와 싸우는게 아니에요. 
마귀가 심어주는 의심과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찬양합니다. 
내가 너무나 속물이고, 내 육신 속에는 죄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승리는 내게서 나오는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내가 아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변화가 되었다면, 그건 주님이 하신 거예요. 그건 복음에 영광이 돌아가죠. 

그리고 주님이 그렇게 하실 것을 정말 믿어요. 

▲허드슨 테일러는 동생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자기가 변화되고 난 다음에, 아델리아 라는 누이에게 편지를 썼어요. 

「이제 부담과 중압감은 모두 사라졌다. 
아마도 요즘 며칠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던 것 같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것은, 새롭거나 이상하거나, 놀라울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모든 것이 새롭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눈이 멀었다가, 지금은 본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달콤한 것은,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가 가져오는 안식이다. 

이것을 알기에, 나는 더 이상 염려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나를 어느 곳에 어떻게 두시든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도 내게 은혜를 주시고, 
가장 어려운 상태에서도 그분의 은혜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인에게 값싼 물건을 사러 보내건, 가장 비싼 물건을 사러 보내건,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경우에든, 그에게 필요한 돈을 내가 지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몹시 당혹스러운 경우에 처하게 하신다면, 
마땅히 내게 많은 지침을 주시지 않겠는가. 
몹시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하신다면, 마땅히 많은 은혜를 주시지 않겠는가. 

큰 압박과 시련 가운데 처하게 하신다면, 마땅히 큰 힘을 주시지 않겠는가. 

네가 긴급한 경우를 당할지라도, 그분의 것으로 감당치 못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믿는 이와 그리스도의 하나 됨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믿음의 의해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 안에 거하셨기 때문에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나는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으며, 또한 부활하였고 승천하였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심이요. 내가 육체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이전과 같이 죄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에 대해, 결코 이전에 그 어느 때보다도 다.르게 깨닫는다. 

그분은 죄를 범할 수 없으시다. 그분은 내가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지키신다. 
내가 이 빛을 본 이후로,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고백해야 하는 것이 부끄럽구나. 

그러나 죄를 범할 필요가 없었다고 느낀다. 
게다가 빛가운데 걸으면 걸을수록, 나의 양심은 더욱 부드러워졌다. 

죄는 끊임없이 나타났고, 나는 고백했고, 용서 받았다. 
그리고 완전히 고백을 하지 않고, 자아를 정당화하려고 시도했던 때에 몇 시간 동안 
화평과 기쁨이 돌아오지 않았던 한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화평과 기쁨이 즉시 회복되었다.」 

여러분 허드슨 테일러가 누렸던 이 은혜는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누리게 해 주시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이 요15:5절 말씀을 
실제로 여러분이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조금 낯설겠지만, 그렇게 안 살아 봤기 때문에 조금 낯설겠지만 
이제는 내 안에 오신 주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내 문제를 완전히 주님께 맡기고, 
잔소리하지 않고, 투정하지 않고, 
입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삶을 살지 않고... 

투정은 주님께 맡기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가 진짜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러면 좀 힘들어도, 그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낙심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요즘 좀 이른 무더위 때문에 고생하시죠? 그러나 가을이 오는 거 아시죠? 
이 시즌을 지나겠지만, 여름에 더위로 고생도 하겠지만, 그러나 가을은 오는 거예요. 
우리는 확실히 믿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지간해도 다 견뎌 나가지요. 

우리가 주님을 진짜 믿고, 주님께 진짜 맡기고 나면, 
때때로 실패가 오고, 좌절이 와도.. 불평하지 않아요. 
우리 입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나를 고쳐 주실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미리 감사하고, 그리고 주님이 역사하실 것을 선포하게 됩니다. 

▲저는 저 자신이 도무지 극복이 안 되는 죄 문제, 
제 내적인 나쁜 습성의 문제와 지금까지도 계속 싸우고 왔어요. 

근데 한 가지 결론은, 제가 고쳐 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저에게 깨우쳐 주신 것은, 이 요15:5절 말씀이에요. 
'주님 안에 거하는 것, 주님께 맡기는' 거예요. 

'주님 저는 못합니다. 저는 교회의 담임 목사까지 됐지만, 
저는 제 육신의 소욕이 너무 강합니다. 주님, 저는 형편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은 이미 제 안에 오셨고, 제 생명이 되셨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못 고치지만, 주님은 저를 고치심을 믿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정신 나간 사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주님은 저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그게 너무너무 제 마음이 믿어지지 않으면, 저는 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주님은 나를 고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내 생명이시고, 나는 이미 주님과 함께 죽었고, 주님이 나의 왕이십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요, 주님이 제게 승리를 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안 되던 것이.. 고쳐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알아요. '주님은 저와 같이 계십니다.' 
'정말 말씀 그대로 저에게 역사하시는구나' 

▲오늘 장로님께서 이번 특별새벽기도 기간 중에 뉴스를 보시다가 
보좌관이 대통령과 함께 이렇게 걸으면서 대화하는 TV 장면을 보고 
너무 인상 깊으셨다고 했어요. 

그렇죠. 대통령 옆에 보좌관이, 대통령과 가까이서 귓속말로 서로 대화하면서 걸어가면,
그 자체가 대단한 참 권력이요, 특권이죠.
대통령과 함께 그렇게 가까이서 대화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이죠. 

근데 여러분, 우리는 대통령과 비교가 안 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렇게 가까이 교제할 수 있는 자예요. 근데 실제로 그걸 누리지를 못해요. 
왜냐면 그렇게 안 살아 봤기 때문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복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돼요.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께 내 모든 문제를 맡기고,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그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은혜를 내가 경험하고... 

그래서 주님을 더 알게 되고, 
나중에는 정말 주님과 귓속말로 소곤소곤할 정도로 주님과 그렇게 깊이 교제할 수 있는 
그 특권! 이것은 오늘 결심했다고 내일 당장 이루어지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여러분이 그런 믿음을 가지고 계속 주님과 교제해 나가기 시작할 때 
그때 어느 순간에, 여러분이 주님과 그렇게 깊이 교제하는 자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영성일기>를 쓰시고, 그렇게 꾸준히 그렇게 살아 보시도록 권하는 거죠. 
영성일기를 쓰기 시작하라고 권했던 때가, 지금부터 7년 전입니다. 

7년이 지났는데, '또 한 번 더 7년이 지나가면, 
그러면 우리 교우들 안에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까?' 
제가 상상해보면, 정말 황홀할 정도예요. 

여러분들이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정말 친밀해지고, 자연스러워지고 
여러분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지고, 
그래서 주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알게 되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든지, 교회적으로든지 
우리에게서부터 주님의 열매가 맺어지고, 
우리를 통해 주님이 하시기 시작하는 거예요.

남편에게 주님이 역사하시고, 아내에게 주님이 역사하시고, 
우리를 통해 우리 자녀들에게 주님이 일하시고... 
직장에서 나를 통해, 주님이 직장 동료들에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시고 
이 교회를 통해 주님이 친히 한국교회에 일하시고, 한국 사회에 일하시고...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아직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게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조금 삐걱거리기도 하고, 좀 실망스럽기도 하고, 좀 답답하기도 하죠. 

근데 지난 7년이 얼마나 많이 우리를 바꿨나요? 그 점에 대해서 동의하십니까? 
지난 7년간 얼마나 우리가 많이 바뀌어졌나요. (많이 바뀌어졌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다시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15:5절 말씀을 정말 붙잡고 
'주님, 제가 이 말씀이 제게 그대로 경험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이제는 진짜 주님과 나는 포도나무와 가지인 것을 정말 믿고 나가겠습니다.' 

'마귀가 나에게 계속 좌절을 심어주고, 또 실패를 보게 하고, 
믿지 못하게 자꾸 역사한다 할지라도 
주님 저는 이제는 믿음을 고백하고 나가겠습니다. 
나를 변화시켜 주실 분은 주님이시고, 이기게 하실 분도 주님이시고, 
중독 같은 죄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실 분도 주님이시고, 
중독 같은 죄의 사로잡히는 우리 아들을 벗어나게 해 주실 분도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내 (부모의) 잔소리가 아니고, 주님이 하십니다. 믿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