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Q8I_qUMOOnc
*위 동영상 1:26:40초~끝까지 녹취, 정리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P2
2014 대학부 집회 셋째날 저녁집회 설교 ☞첫째 날, 둘째 날 설교 보기
(*지금부터 40년 전에는, 교회의 사회참여 문제가 교회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대체로 교회의 대학청년부는, 사회적 시류에 부합해서
'군사 독재에 맞서서, 교회 청년들도 사회참여(데모)를 해야 된다.
그것이 정의다' 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지요. 그게 대세였습니다.
그래서 일부 대학가 옆에 위치한 교회들은,
데모대가 자기 학교 정문 앞에서 데모하다가,
또 근처 교회로 달려가서 화염병을 투척하고... 그랬습니다.
왜냐면, 대학생들이 주일날 되면, 학교 근처의 교회로 나가서 예베를 드렸는데,
그 목사님 설교를 들어보니 '대학생들은 데모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고 하니까,
그러면 안 되는데, 데모대들이 평일에 교회까지 몰려와서 화염병을 투척했죠.
그러면 교회도 빨리 셔터를 내린다든지.. 아니면 불을 끌 물을 준비한다든지 대응에 바빴습니다.
평일에 대학생 데모대들이 수 십~수 백명 몰려오면, 교회가 당할 재간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교회의 사회참여 문제가 핫 이슈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5~6공화국 때.)
그래서 당시에는, 교회 대학청년부들도, 모이면 날마다 서로 싸웠어요.
'국가와 나라에 복종해야 된다'는 부류와
'정의를 위해서 교회청년들이 일어서야 된다'는 부류로 서로 의견이 갈리었죠.
성경에 둘 다 나와 있으니까, 서로 논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시절에, 제가 1987년도 6월에 내수동교회 대학부 여름수련회를 갔어요.
그때 '우리가 사회참여 쪽으로 교회가 가야된다'는 여론이 강해서,
가장 과격한 세미나를 다 준비했어요.
근데 그날 아침에 6.29 선언이 발표되었어요. 우리들 마음에 큰 혼란이 일어났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러던 와중에 수련회를 갔는데, 그때 수련회 강사로 정근두 목사님께서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셨어요.
그때 정근두 목사님께서 저희들에게 '복음의 핵심'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수련회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그렇게 사회 참여를 부르짖고, 교회의 부패함과 세상의 부패함에 대해서 분노했던 저희 대학생들이,
그 말씀 듣는 시간을 통해서 '내 자신이 얼마나 부패했는가' 하는 것을
그 밤에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그때 주님이 그 수련회 때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놀라운 영적인 은혜를 부어 주셨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때 바뀌신 분이 누군가 하면, 화종부 목사님이십니다.
그때부터 화목사님(당시 대학부 리더)께서 말투도 바뀌고, 다 달라졌어요.
우리 후배들이 적응하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그분은 정치학과 출신이잖아요.
근데 그때 '복음만이 인간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그분이 확인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희들이 사회참여의 관심은 유지하면서,
세상보다 더 병든 것이 우리들의 심령이다.. 라는 것을 깨닫고
정말 우리들의 심령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말씀의 능력, 성령의 역사, 그리고 부흥에 대해서 갈망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우리 대학부 학생들이 미친듯이 기도했습니다.
정말 우리 기도 모임이 있었는데, 아마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그리워지는 과거의 순간이었어요.
그때 정말 미친듯이 기도했습니다.
우리 자매들 몇 사람하고, 우리 화목사님이나 저나
정말 미친듯이 기도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많은 소위 '대언의 말씀'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
우리들의 심령을 치유해 주시고,
그때 우리가 뼈저리게 했던 기도 제목이 뭐냐?
'이 땅에 더 이상 무고한 자들의 피가 흘려지지 않도록 기도해라'
저희들이 그때 기도하면서 깨달았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보다도, 하나님은 더 정확하게 이 세상을 알고 계셨어요.
그리고이 세상이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지, 그 길도 하나님은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때 저희들이 정말 2년 정도, 미친듯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내수동교회는 그 위기(사회참여 문제로 인한 분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위기는 인간이 절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저도 담임목사가 되어서, 교회 속에 많은 문제들을 처리하면서 보니까,
사람이 손대면 더 망칩니다. 문제가 더 커집니다.
사람은 정확하게 팩트도, 해결책도 몰라요.
저희 교회도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는데, 밖에서 수많은 소리들이 들려와요.
그런데 저희 교회의 문제는, 담임목사인 제가 제일 정확하게 알잖아요.
정말 터무니도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마치 미친 바람처럼 교회를 힘들게 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뭐가 뭔지 잘 몰라요.
그리고 그 문제를 인간의 지혜로 해결하려고 해 보십시오. 문제는 더 어려워져요.
그냥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교회에 머리 되십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믿음의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지면,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모든 판단을 그냥 보류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광풍이 지나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십시오.
우리가 잘못했다면 깨닫게 해 주시고, 거기서 돌아서게 해 주시고,
거기에 걸맞는 징계를 받게 해 주시되,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힘, 버틸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시고,
다시 한번 우리 교회 속에 회복의 은혜를 부어 주십시오'
이렇게 주님 앞에 몸부림을 치며 은혜를 구하다 보면,
제가 5년 동안 교회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때,
여러분 싸움에 대한 해결책은 뭐냐?
야고보서를 보면 '더 큰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약4:6
어느 사람이 나쁜 사람, 어느 사람이 좋은 사람...
구분해서 싸움이 끝나는게 아니고,
싸움은 언제 끝나느냐?
더 큰 은혜를 받을 때 끝이 납니다.
여러분, 더 큰 은혜가 교회 속에 부어치면,
하나님이 직접 일어나셔서 손을 보십니다. 손을 대십니다.
여러분 지금 사도 바울이 우리들에게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되셔야 돼요. '그러나 너는' 딤후3:14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선배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들은 달라야 돼요.
왜요? 디모데가 바울을 따라왔듯이,
여러분은 선배들을 따라 왔으니까!
그리고 여러분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돼요.
'여러분은 달라야 돼! 왜냐면 나를 따라 왔으니까'
그리고 이제 바울은 이어서 계속 서신을 통해 말씀합니다.
▲딤후3:13절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거하라'는 원어로 '끝까지 그 상태를 유지하며 머무르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신자들 중에 유대교 출신들은, 자신들의 율법을 숭상하며, 율법을 버리지 않았죠.
이에 이방인 출신 성도들은, 그 율법주의의 유혹에 넘어가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의 바른 진리를 굳게 믿고, :13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즉 계속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했습니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디모데는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들을 그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배웠으며, 1:5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진리는 바울로부터 배웠습니다. 3:10~11
▲14~15절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부터 배운 것을 알며, 어려서부터 너는 성경을 알았나니'
여러분들처럼 바른 디모데에게 이야기합니다.
'어려서부터 너는 성경을 알았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5
여러분, 이 엄청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성경을 알았는데, 성경은 어떤 책이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여러분 이 엄청난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네!
그런데 우리는 이 구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
그러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즉 예수님 믿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 이렇게만 알고 있죠.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정말 너무 궁금했어요.
디모데가 누굽니까? 디모데는 선교사였고, 목회자였고.
바울을 이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있는 영적 지도자인데 *당시 에베소교회 담임
그 목회자한테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이다' 그러면서
그 고통하는 때를 헤쳐 나가는 방법으로,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너에게 준다.' :15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너에게 준다.'
여러분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살면서, 여러가지로 어렵고 힘든 순간을 만날 때,
여러분은 무엇과 씨름하셔야 되냐 하면,
이 말씀 통해서 보니까, 성경과 씨름하셔야 됩니다.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너에게 준다.' :15
성경에서 '구원'은 아주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소테리아
-우리 영혼 구원
-전쟁의 적들의 포위속에서 구원 (구출)
-기근이나 질병에서의 구원 (곤경 탈출)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일차적으로 영혼 구원을 뜻하지만,
그외에도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여러 문제, 난관, 사면초가, 곤경에서의 구출, 질병 치료도
'구원'으로 볼 수 있죠. 실제로 예수님이 병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실 때는
일차적으로 치료의 의미로 '구원'이란 말을 쓰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씨름하면
그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느냐?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 즉 곤경과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준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그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되면서,
나 자신을 그분에게 맡겨 드리면,
그 문제와 곤경의 상황을 신비하게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이 주어집니다.
내가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주님은 어떤 기가 막힌 해결책을 제시해 주시기 보다는,
주님의 사랑을 나에게 뜨겁게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게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거죠.
내가 주님을 신뢰하게 되고, 더욱 확실히 믿게 되면서,
인내가 생기고, 저력이 생기고, 학신이 생기면서, 그 문제를 차츰 돌파해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해결해 나갈 지혜도 주시죠. 먼저 멘탈에서 해결되는 것입니다. '나는 뚫고 나갈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말세의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서,
이렇게 짐승 같은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교회가 경건의 모양을 상실해가고,
그 속에서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받고 혼란과 갈등이 있을 때,
그때 우리는 무엇과 씨름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씨름하면, 말씀은 우리를 누구에게로 인도하느냐?
어떤 말씀을 봐도, 성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께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는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을 굳게 재확인하면서,
내가 처한 곤경과 어려움을 굳세게 이겨나갈 수 있는, 힘과 인내와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를, 꿋꿋이 이겨나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삶의 난관에 봉착했을 때,
세미나 참석하고, 인터넷을 뒤져서 해법을 찾아보고, 사람들에게 상담도 받아보고...
관련 책도 읽어보고... 물론 나름대로 조금은 도움이 되기는 해요.
그러나 거기에 결정적인 구원(여기서는 '도움'의 뜻)의 길이 없습니다.
그냥 거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말세 고통하는 때에 살면서, 수많은 문제와 부딪힐 때,
우리는 근본적으로 성경과 씨름해야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주십니다.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그분의 사랑을 더 확실히 믿을 때,
그분을 굳게 믿고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 사랑이, 그 지혜가.. 그 문제를 꿋꿋이 헤쳐나가고, 이겨나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이 지혜가 성경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이 여러분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말세에 고통하는 때를 살아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길은 성경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성경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되기를 도전합니다.
제가 이제 담임목사가 되고, 저희 교회도 대구에서 규모가 작지 않은 교회입니다.
제가 교회를 섬기면서 저 자신의 한계, 부족함..
그런 것들을 뼈저리게, 정말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리고 때로는 도저히 제 힘으로 풀 수 없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만납니다.
그때 제가 사람을 찾아가고, 사람의 도움을 구했다면, 저는 참 어려워졌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조용한 곳에 가서 성경을 펼쳐 놓고, 성경을 그냥 쭉 읽다 보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제게 길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이 길, 이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을 우리 예수님께서 앞서 걸어가셨고
그리고 제가 당하는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들고 이런 모든 일들을,
우리 주님은 알고 계시고, 그리고 '그분 안에 구원의 길이 있구나' 하는 것들을
말씀을 통해서 끊임없이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좀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보내면서 저희들은 딴 거 안 했습니다.
1년 동안에는 전반기 후반기 이렇게 두 번, 40일 특새를 했어요.
40일 동안 특별새벽기도 하면, 그 기간동안 성경 한 권, 또는 성경 한 부분을 끝냅니다.
-사도행전도 끝내고,
-이사야서 40장부터 66장까지도 읽고 설명하고 끝내고,
-다윗에 대한 이야기
-요한계시록
이런 성경들을 한 장씩 그냥 차분하게 같이 읽고, 주해하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그렇게해서 40일간 기도하면서 그냥 보내요. 가을에도 또 그렇게 하죠.
성경의 일정 부분을 계속 읽고 공부해 나가면서,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풍랑을 또 잠잠케 해주시고,
또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또 40일간 모여서 말씀을 묵상하며 같이 기도하고...
이렇게 말씀 보고 기도하고 그러다 보면, 우리 성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정말 이 특별새벽기도회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말씀 묵상하고 함께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고 이러다 보니까,
그 큰 풍랑이 또 잠잠해지고, 그 풍랑을 넘어서는 더 큰 은혜를
하나님이 부어주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더라고요.
저는 그 고백을 정말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어떤 어려움과 절망이 찾아와도
여러분이 말씀을 펼쳐놓고 묵상하고, 그리고 그 말씀 붙잡고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면,
여러분, 성경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성경 속에 있습니다.'
저는 청년들을 보면, 그래도 요즘은 제가 좀 마음이 아쉬울 때가 많아요.
여러분은 지금이 가장 머리가, 지적 활동이 왕성할 때잖아요.
이때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 말씀을 많이 머리와 가슴에 담아두셔야 돼요.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암송하고, 많이 묵상해서 담아두고,
그래서 여러분의 학업에 방해가 안 될 정도로,
지하철 타고 가면서도 말씀을 묵상하고, 캠퍼스 벤치에 앉아서도 말씀을 묵상하고...
그래서 이 말씀으로 여러분이 철저하게, 좋은 뜻으로 세뇌가 되셔야 돼요.
이 말씀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것은 사람의 글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는 걸 여러분들이 확인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정말 가면 갈수록, 청년들도, 성도들도.. 너무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아요.
오늘날 설교가 많은 부분 어떤 설교냐? '감동을 주는 설교'입니다.
그거는 잘못하면 해가 됩니다. 여러분 설교는 감동만 주면 안 돼요.
설교는 뭐가 있어야 되느냐?
설교가 끝나고 나면,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남아 있어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이 남아 있으면, 지금은 여러분이 조금밖에 못 깨닫더라도,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 놓으면, 장차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장래에 여러분의 삶에 위기와 어려움이 찾아올 때, 주님 앞에 나아오면,
여러분 마음에 새겨진 그 말씀을 아웃풋 시키는 거죠.
하나님도 그 말씀이 기억나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능력을 발휘해서, 헤쳐나갈 가장 적절한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렇게 여러분을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요즘 설교에 '성경말씀'이 없어요. 전부 다 그저 (인간적인) 감동만 주려고 합니다.
눈물도 있고, 감동도 있는데... 나중에 왜 울었는지 물어보면, 자기도 몰라요.
여러분 오늘날 기독교가 이렇게 약해진게, 교회가 소위 말해서,
칼 막스가 이야기했듯이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진통제만 준다는 거죠.
그 문제의 뿌리를 알고, 그 문제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고칠 수 있는 그런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으로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스턴트 감동만 주는 거예요.
그래서 잠시 감동을 받을지는 모르겠는데, 교회를 나가면 하나도 달라지는게 없어요.
그러면 기독교는 '민중의 아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는 않지만, 경계심을 갖자는 취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만이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15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이 구절을 통해 '성경은 무오하다. 틀린 것이 없다.' *성경무오설
하나님의 감동으로 씌어졌기 때문에! 라고 해석하죠.
그러나 여러분, '모든 성경은 하나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라는 구절에서
'말씀은 무오하다. 틀린 것 없다' 이것이 16절의 핵심이 아닙니다. 강조점은 그 뒤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의 문자적 의미는 '하나님이 호흡을 불어넣으셨다'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호흡을 불어넣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6B
이것이 16절의 강조점입니다.
하나님의 그 입술 기운, 호흡이 불어넣어져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경은 틀린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거죠.
그래서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꿈틀거리고 있어요.
하나님의 호흡이 불어넣어져서 만들어졌으니까,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생명이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글거리는 그 생명과 능력에
우리들 자신을 접속시키는 겁니다.
접속시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그 하나님이 이글거리는 능력이,
-우리를 교훈해 줍니다. 우리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를 책망해 줍니다.
-우리를 바르게 해 줍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르게 믿고 살아야 될지 교훈해줍니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우리 개신교의 모토 중에 하나가 이거잖아요.
'우리는 이 땅을 사는 동안 누구도 완전히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이냐?
날마다 우리들 자신을 고치는 (개혁하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서면, 하나님의 그 이글거리는 능력이 우리들 속에 흘러 들어오면
그때 우리는 바르게 함과.. 바른 교훈을 받고,
그리고 책망을 받아 돌아서게 되고
하나님이 정하신 그 의를 향하여 끊임없이 우리들 자신을 트레이닝을 시킬 수 있습니다.
▲17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성숙)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뭐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지금 본문 17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은 일반 성도들을 향한 호칭인데요.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쓸 때, 그 서신을 마무리하는 6장에서
디모데를 향해 이렇게 불렀습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6:11
바울이 디모데에게 특별히 귀하게 사용했던 표현이 바로 이겁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제 그의 유언적인 서신(디모데후서)이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에서
바울은 한 번 더 이야기하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
그 때문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서
너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격을 온전하게 (성숙과 같은 뜻) 하고,
그가 감당해야 될 사명을 능히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만든다'는 거예요.
성경이, 그로 하여금 인격(:16)과 사역(:17)을 준비하게 해준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 이 호칭은 엘리야 선지자를 보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왕하1:9
엘리사를 보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왕하6:9
그리고 또 여로보암 때, 북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섬길 때,
그것을 향하여 책망한 스마야 선지자를 보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죠. 왕상12:22
(그리고 엘리 삼상2:27, 사무엘도 삼상9:7)
'하나님의 사람'은 구약에서 언제 가장 많이 사용되었을까요?
열왕기상하 입니다.
그 때는 배교의 시대였습니다. 반역의 시대였습니다.
엘리야, 엘리사가 활동하던 시절이었죠.
아합 시대로 대표되 배교와 반역의 시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렸던 배교와 반역의 시대에,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었던 사람,
그들을 향해 성경은,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은,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은 구약에 나와 있는 그 표현,
반역의 시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주었던 하나님의 사람들...
그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현을 가져와서 디모데에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디모데야, 너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되느냐?
말세의 고통하는 때를 살아가지만, 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된다!'
그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들의 인격을 온전하게 하고,
선을 행할 능력을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이냐? 바로 성경입니다!
▲정리하면, 본문 딤후 3장을 통해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갈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하는 것을
지금 여러분들이 아마 느끼고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디모데처럼 말세에 고통하는 때를 살아갑니다.
여러분, 세상 때문에 놀라시면 안 돼요.
말세 때, 고통하는 때가 오는데,
사랑의 대상이 뒤틀리고, 인격이 뒤틀리고, 신앙이 뒤틀리고, 열심이 뒤틀리고...
그래서 사는 것 자체가 지긋지긋한 고통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갑니다.
이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이냐?
여러분이 바로 바울처럼, 우리 후배들에게
'너는 달라야 된다. 왜?
너는 나를 따라왔으니까 달라야 돼!' 라고 말할 수 있는
바울 같은 사람이 되셔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셔야 됩니다.
성경에는 앞으로 여러분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성경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이르는 지혜가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습니다.
저는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경을 대할 때마다,
이런 벅찬 기분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 제가 말씀을 읽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이글거리는 능력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이글거리는 생명과 능력이, 내 삶 속에 흘러들어오게 해 주십시오'
'오늘도 말씀으로 저를 교훈하여 주시고, 저를 책망하여 주시고,
저를 바르게 하여 주시고, 저를 의로 교육시켜 주셔서,
이 반역의 시대, 배교의 시대, 이 말세의 고통하는 때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이 청년의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한 인격을 갖추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저를 무장시켜 주십시오.'
과거에 서울대 다녔던 학생들은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누가 민족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해라"
이런 다소 건방진 말을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정말 저는 이런 표현이 멋있을 것 같아요.
"누가 민족의 미래를 묻거든,
한국 교회의 갈 길을 묻거든,
눈을 들어 OO교회 대학부를 보게 해라"
저는 우리교회 대학부 학생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야 우리가 비록 대구에 있지만,
우리 청년들, 성도들에게
'누가 민족의 미래를 묻거든, 갈 길을 묻거든,
눈을 들어 우리 교회를 보게 해라'
바로 여러분들 때문에, 성도들이 그리고 이 민족이
다시금 소망과 꿈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공동체로
여러분 대학부를 세워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소원이 하나 있네' 이 찬양을 다같이 부르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으로
예배를, 교회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교회를 교회 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