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가 토한 강물에 떠내려가는 성도 계12:7~17 설교녹취, 정리 ☞영적전쟁
※아래 설교에서, 오늘날 성도들이 너무 현세적인 이슈에 관심을 많이 쏟는 것은,
'사탄이 강물을 토하여 홍수에 떠내려가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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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은 머리가 일곱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계12:3
이 말은, '사탄은 머리가 좋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머리가 완전 수 일곱이니.
뭐 당연히 우리 같은 사람하고는 비교가 안 되겠지요.
사탄의 역사는, 주로 교회와 성도를 공격하는 일인데, 어설프게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공격의 분명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명확한 타격 지점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지점을 치면, 나 Satan 의 공격이 효과가 있다'라고 하는 분명한 타격 포인트를
가지고 공격을 하지, 그냥 공중에 헛발짓을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사탄과 그 졸개들인 악령들을 통해서
교회에 어떤 부분을 타격하는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런 사탄의 공세는 오늘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하나님의 천사 미가엘과 그의 군대가
붉은 용과 그의 군대를 무찔렀다고 했습니다.
계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그래서 이 붉은 용의 군대가 더는 하늘에서 자기의 거점을 확보할 수가 없게 되고, :8
하늘에서는 더 이상 역할을 할 수 없게 돼 버린 거예요.
하늘은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너무너무 분통이 터져서, 이 붉은 용(사탄)의 군대가 땅을 향하여
총 공세를 펼치게 됩니다. '그들은 땅으로 내어쫓겼다'고 했으니까요. 계12:9 주1)
눅10:18~19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래서 사탄과 이 땅을 향하여 총 공세를 펼치게 되는데, *하늘에서 거처를 상실함
여기서 교회와 교인이 타겟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이 땅에 살고 있는 성도들과,
사탄과 사탄이 이끄는 군대와의 싸움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천년 전에도 교회는 그들과 싸웠고,
오늘날에도 그 싸움은 계속 되고 있죠.
▲그런데 성도가 어떻게 이기느냐?
'어린양의 피와 그 어린 양에 대한 증언을 통하여 이긴다'라는 말씀하세요.
계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어린양의 피' .. 십자가 신앙을 의미하죠.
'그 어린 양에 대한 증언' .. 십자가 신앙의 전도라고 볼 수 있으나,
'삶의 전도'를 뜻합니다. 자기가 십자가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걸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세상에 전도가 되는 것이고, 그게 마귀 사탄을 이기는 방도가 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래에 계속 설명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선 땅에 치중하여 모든 공격력을 땅으로 퍼붓는
사탄이 성도를 타격하는 포인트가 어딘가를 먼저 살펴봅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마음이 예수님이 계신 하늘(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요.
우리 마음이 하늘(하나님 나라)로 올라가면,
마귀는 더는 하늘로 쫓아올 수가 없기 때문에, 마귀를 쫓아내는게 돼 버립니다.
내가, 내 몸과 관계된 생활 영역에서,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 버리면 (천국 신앙을 가지면)
나의 삶의 영역에서 마귀가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게 돼 버린다는 거예요.
이 얘기가, 미가엘 천사의 군대가, 붉은 용의 군대를 무찔러서
마귀가 하늘에서 거점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이 되는 겁니다. :8
그럼 마귀를 내쫓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면, (천국신앙, 아래에서 설명함)
마귀는 하늘로 올라간 사람에 대해서 어떠한 힘도 발휘할 수가 없게 돼 버린다는 거예요.
▲계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는 출 19:4의 반복입니다.
여기서 '독수리의 날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출19:14, 신32:10, 사40:3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에서 구출되어 시내 광야에 이른 것은,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한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그래서 '뱀(용)이 여자 뒤에서 떠내려가게 하려고 강물을 토해낸다'
이 말씀을 무슨 재앙이나 천재지변, 이런 거로 받아들이면 안 돼요.
히2:1절에 '들은 바 말씀에 말씀을 굳건히 붙잡아서 너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라'
그런 의미인 거예요.
결국 여자 뒤에서 강물을 토해서, 여자(성도, 교회)를 떠내려가게 만드는 것은,
성도와 교회가 하늘을 잊어버리게 만들겠다 라는 겁니다. 이게 사탄의 전략인 거죠. *주제
사탄이 물을 토해낸다는 것은 교회를 둘러싸고
이 세상에 관심거리들을 홍수로 만들어 교회를 공격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가 관심을 일들이 엄청나게 많아지는 거예요.
그렇죠. 우리 성도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관심거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늘로 올라가는 한 가지만을 유일한 관심거리로 삼아야 될 교회와 성도에게
사탄은 끊임없이 이 세상을 향한 관심의 거리와 영역을 넓히도록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복음에 대한 물을 타는 것이고, 관심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것이지요.
이게 교회를 향한 사탄의 향한 공격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탄의 공격 포인트를 모르니까, 교회와 성도들이
다 '종교'로 넘어가 버립니다.
'교인들 전체가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자!'라는 얘기를 날마다 교회가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늘(하나님의 나라, 현세+내세신앙)이라는 걸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거기는 죽은 다음에 가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성도가 이 세상에서, 천국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오직 현세적 신앙으로만 산다는 것이지요,
오직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관점을 두고서, 거기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세상 미디어의 관심이나, 교회의 관심이 똑같아 버립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게 아니라!
그러면 강물이나 홍수처럼 쓸어가버리는
이 사탄의 공격에 의해서
이미 그것은 교회가 아닌 것이 돼버린 것이고,
그것은 '이마에 인친 자들'의 모임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거죠.
▲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땅이 용이 토한 강물을 삼키니'
팔레스틴 땅이 주로 모래로 구성되어 있어서, 어떤 큰 홍수가 일어난다 해도
얼마가지 않아 땅 위의 물을 모두 흡수하게 되는 지리적 환경을 반영한 표현입니다.
어쨌거나 사탄이 일으키는 홍수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있다는 거죠.
안 그랬으면, 지난 2천년 사이에 교회가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결국은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보호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성도는, 용(마귀)의 공격에서 피하고 보호되려면,
하늘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곧 하늘 나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성도의 관심은 위에 것을 찾아야 하며, 골3:1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하며, 마6:33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엡1:3
내 마음이 날마다, 하늘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께로,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거죠.
왜냐면 성도는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인천공항을 가서 창문 밖으로 우두커니 보면, 그 활주로가 얼마나 넓습니까?
활주로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나사 NASA 가 로케트를 쌓아 올리는 그 주변을 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목적인 곳에는,
이 땅에 있는 것을 아름답게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뭐 활주로 옆에 아름답게 정원을 만든다든지, 인공폭포를 만든다든지, 이런 일은 없죠.
뭐 아름답게 높은 건물을 짓는다던지 하는 일은, 오히려 이륙(승천)에 방해가 됩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곳이 주목적인 곳에는, 이 땅의 것은 아무것도 놔두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뭐예요? 모든 교인들의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는 곳입니다.
근데 사탄은, 하늘은 자기의 취약점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총 공세를 펼쳐서, 강물을 홍수같이 토해낸다는 거예요.
근데 진짜 인침을 받지 못한 자들과 교회는
그 강물같이 쏟아지고 있는 세속적 관심거리의 홍수에 다 떠내려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꼭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시간에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는 주유소처럼, 주유를 받고 충전을 하는 시간이에요.
이제 가정에서, 직장에서, 나의 삶의 현장에서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기본적 삶의 자세라는 것이죠.
고전15: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요3:31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엡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rfcdrfcd.tistory.com/15981417
골3: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빌3:19~20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오늘날 우리 한국 기독교 신앙에 정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은 '현실에 뿌리내린 영성'도 필요하지요.
그런데 100% '현실에 뿌리내린 영성'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거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소리소문 없이, 오늘날의 기독교가 '땅에 속한 종교'가 되어버린 경향이 강합니다.
예수 믿어 구원 얻었으니, 그건 따 놓은 당상이니,
이제 남은 것은, 이 땅에서 복 받아 잘 되자는 것이죠.
이것은 땅에 속한 사람이, 땅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3:31
그러나 진정한 교회와 성도는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부활)을 받았으면,
이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내 영혼이 하늘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져서,
하늘나라의 삶을 매일 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적용
천국의 삶의 일례를 들자면, 팔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산상수훈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의 법인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성도는, 이땅에서 그렇게 산다는 것이죠.
하루 아침에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방향성으로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이럴 때, 하늘에 속한 성도를, 사탄은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는 거죠.
오히려 손을 댔다가는, 자기가 큰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라 이름하고, 교회라 이름하는 많은 지역 교회들이
이미 이 강물처럼 토해내는 사탄의 공세에
결국은 먹혀버려서 떠내려갈 수도 있다는 거죠.
그 증거가 뭐로 나타납니까?
세상에 대한 관심거리가 그 안에 가득 찼다는 거예요.
교인들도 모이면, 성도의 교제를 나눈다는 것이
온통 '주식 이야기, 부동산 경기, 아니면 해외 여행이나, 무슨 정치 이야기' 등
땅의 것으로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건 교회가 아니죠. 세상 모임이죠.
이게 일곱 머리 사탄의 공격 포인트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갈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물론 이 구절은, 바울이 율법주의에 대비되는 '십자가 복음'을 말한 것이지만,
오늘날 교인들은, 너무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론적으로만 생각하고,
자기 삶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나의 십자가와 나의 부활'을 생각하지 않고,
그래서 온통 '땅의 것으로 머리에 가득 들어 찬'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다고요?
용(마귀)이 토한 강물에, 떠내려 휩쓸려가 버리고 만다는 것이죠!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십자가를 안 쳐다본다는 게 아니라,
'밝히 보지 않는다'는 거죠. '꼬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갈3:1
십자가를 잊어버린게 아니라, 십자가는 잠깐 쳐다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오락 등 세상 것들을 너무 골몰하여 쳐다보다가
결국 세속에 떠내려가 버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탄에게 꼬임을 받는 거죠.
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그러나 참으로 이마에 인침 받은 자, 참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기적적으로 땅이 입을 벌려서, 강물을 삼켜서
세속에 떠내려가지 않게 도와 주십니다.
그래서 그들 '참 성도들'과 '용'의 전투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지죠. ↙
그래서 오늘날에도 우리와 사탄의 영적 전쟁은 계속 되는 것입니다.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그럼 내가 요즘 마음에 돈 문제를 늘 생각한다...
24시간 일주일 내내, 낮이나 밤이나 돈 벌 궁리만 하고 있다...
이게 꼬임을 당했기 때문에 그렇고, 홍수에 떠내려가고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쳐다봐야 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이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럼 돈은 당장 현실적인 문제인데요? 하늘에서 뭐가 떨어집니까?
물론 아니죠. 그러나 없는 가운데서도 '자족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자기가 낭비했던 것도 회개하고요.
그리고 매사에 자기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우선적으로 살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기적적인 채워주심을 받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즉 '많으나 적으나 돈에 대해 자유하는 인생'으로 성숙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에 신경 쓰지 않고, 사명과 하나님 나라에 신경 쓰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여러분,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적은 사람 중에
누가 더 돈에 관심을 많이 쓸 것 같습니까?
의외로 돈이 많은 사람이, 돈에 대해 관심을 더 많이 쏟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가난하게 하심은,
돈에 대해 잊어버리고 살아라는 것이죠. 그거에 관심 쏟다가는
정작 관심을 쏟아야 될 천국에, 영생에, 사명에, 관심을 잃어버리게 되니까요...
△또 십자가를 안 쳐다보고, 그냥 세상적인 눈으로
아내를 쳐다보고, 남편을 쳐다보고, 자식을 쳐다봅니다.
죄다 불만투성이고, 죄다 잘못하는 것만 보이죠.
십자가를 안 쳐다보고, 세상적인 눈으로 내 몸을 보고 내 건강을 봅니다.
그러면 죄와 저주로 점철되어진 내 몸과 건강만 보이는 거예요.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을 쳐다보면서, 내 몸과 내 건강을 보면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나가는 거죠. 내 건강은 주님께 온전히 다 맡기고,
거기에 '떠내려가지 않고', 담대하게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는 거죠.
▲예수님은 사랑에 대해 말씀하실 때, (펀글)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마19:5)라고 하는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그러니까 세상 창조 때부터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에 가졌던 모든 꿈은
부모나 세상으로부터 받은 애정에 함께 들어온 것들입니다.
그 꿈들은 부모나 세상이 자신도 모르게
우리를 자신들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이용하기 위해 넣어준 것들입니다.
그러니 먼저 이전에 가졌던 꿈을 접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과 함께 주입된 그 꿈이, 나를 가두어놓기 때문입니다.
그 꿈을 그대로 유지하면
그 사람이 만나는 사람들은
그 꿈을 이루는 도구가 됩니다.
사랑하지 못하고 이용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까지도 그 꿈을 위해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들릴 수가 없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면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물고기를 잡아 풍족한 삶을 사는 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꿈은 부모를 포함한 세상으로부터 주입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는 그 꿈을 접었습니다.
요21장에서, 제자들은 뚜렷한 목적 없이 고기를 잡으러 나갑니다.
그리고 몇몇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갑니다.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없어진 것입니다.
꿈을 접은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니 밤새 고기를 잡았는데도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크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호숫가에서 어떤 낯선 이가 오른 편에 그물을 한 번 더 던져보라고 하니
그 말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아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알아봅니다.
그분임이 너무도 확실하여 누구시냐고 묻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의 꿈을 접고 하나님의 꿈을 입으면 좋은 결과를 내게 되고
그럼으로써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하나님 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이 주는 꿈은
그 목적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에 삶이 지칩니다.
그래서 그 불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현세의 쾌락에 쉽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은.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고통이 없기 때문에
현재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니 구약의 요셉처럼 현세의 모든 유혹도 쉽게 이기게 만들어줍니다.
그 이전에 이길 수 없는 나를 이기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기적을 체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과까지 기적적으로 좋으니
주님의 현존, 임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목적지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기를 하는 것을 그만두고
잠시 멈추어 설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심지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으려합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부모님이 심어준 그 아이들의 꿈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꿈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애정을 통해 넣어준 것입니다.
대부분 아이들의 꿈은 부모를 만족시키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바쁜 것입니다.
그 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고 가르쳐야합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꿈을 찾으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는 자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몰라 불안해 할 수도 있지만
종국에 가서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마치 요셉처럼 참 꿈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는 방법입니다.
부모는 자신이 부모가 아님을 말해주고
참 부모는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이라고 알려 주어야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하나님도, 이웃도 사랑할 능력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요21장에서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는
장차 그들이 참으로 사랑하여 새롭게 탄생시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됩니다.
제자들은 그 자녀들을 키우려는 새로운 비전을 가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꿈입니다.
...................................
주1)
엡2:2절에 마귀를 '공중 권세 잡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이 '하늘에서 내어쫓긴 자'와 모순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공중'은 그야말로 air 입니다.
하늘에서 내어쫓긴 하늘은.. heaven 이죠. *우라노스
그러니 '공중 air'은, 하늘의 영역에 아니라
땅의 영역에 속한 곳입니다.
*원제목 : 교회와 교인 향한 사탄의 타격 포인트 2024.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