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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6:1~4 ☞▣행복한 가정
※맨 아래 단락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예”는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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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6:1~4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사도 바울은 지금 에베소서, 이 편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교리,
예정과 섭리에 대한 그런 교리적 교훈을 다 말씀하고
이렇게 믿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것을
윤리적인 면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내 선택에 여유를 주지 않고,
선택의 자유 없이 주어지는 관계가 부모-자녀의 관계입니다.
어떤 면은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은 부부관계도 내가 선택하는 줄 알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요런 아버지하고 요런 어머니 속에서 태어나면 좋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태어난 사람 있습니까? 이건 아무도 아니에요.
이거야말로 주어진 운명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대로 두 사이에서 태어나도록 하나님께서 운명지어 준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노 초이스, 내게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이런 것을 본래적이고 원천적 관계라 합니다. 이거는 요지부동한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부모든 나쁜 부모든, 혹은 좋은 자녀든 나쁜 자녀든
여기에 대해서는 절대로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신앙적 이해입니다.
남편과 아내도 하나님이 짝지어 주었다 라고 생각해서 요지부동이에요.
운명이라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그거보다 훨씬 더 깊은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부모 사이에, 어떤 시대에 태어났든지 이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운명지어주신 관계입니다.
▲자, 이제 부모님이 마음에 안 든다고 남의 부모하고 바꿔치기 하겠습니까?
내 자식이 시원치 않다고 남의 자식하고 바꾸겠습니까?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걸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관계입니다.
내게 위임된 것이에요. 이거는 변함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부터 생각을 해야지요. 그것이 오늘 본문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에 대하여 여기서 두 가지를 말합니다. 오로지 두 가지.
순종하라, 공경하라 그겁니다. 이것이 옳으니라.
순종하라, 공경하라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는 사랑하라가 아닙니다. 순종하라 에요. 또 공경이올시다.
이런 데서 높은 차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의 순종이라는 말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휘파쿠오' 라고 하는 말인데 *휘포+아쿠오
'휘포'란 말은 '밑으로' 하는 말이고 under
'아쿠오' 라는 말은 '듣는다'는 말입니다. hear
그 어원을 조금 살필 필요가 있어요.
순종, 우리는 그렇게 말합니다마는 헬라어 원문대로 보면은 '밑에서 듣는다'는 뜻이에요.
‘밑에서 듣는다’ 이거 재미있잖아요.
우리가 말씀하실 때 밑에서 들어요. 그것이 순종이에요.
그대로 듣는 거예요.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들어서, 그대로 행하는 것이에요.
이게 순종이에요.
여기는 내 선택이 없습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 뭡니까?
신앙적으로 주안에서 공경하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부모님, 하나님이 내게 은혜로 주신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
이렇게 받아들이면서 신앙적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찬양하면서,
그렇게 순종하고 그렇게 공경하라... 주 앞에서 공경하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옳으니라’ 의가 된다는 거예요. *디카이오스
부모님께 순종하면 의가 된다. 이것이 옳은 일이다.
그렇게 할 때 이게 하나님의 의가 그 관계에서 실현된다 하는 말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게 옳은 일인 것은 인정하겠는데,
그게 하나님의 의가 실현된다는 말은, 약간 비약처럼 들리겠지만, 그런데 보세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그럽니다. 6:2
십계명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한 것이 4가지이고, 사람에 대한 것이 6가지이지요.
사람에 대한 6계명 중에 첫 번째가 ‘부모를 공경하라’죠.
그래서 여기 중요한 계명에 대한 신학이 있습니다. 이 계명은 약속이 있어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그 전부 거기에는 축복의 약속이 있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계명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그 약속이 있는,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이 있는 계명, 그 중의 첫째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그 약속이 있는 계명인고로 이것을 지킬 때에 의로운 것이고,
네가 잘될 것이다...
구약의 모세오경에는 땅에서 잘 되는 축복의 약속들이 종종 나오지요.
그것의 대표가 십계명인데, 그 중 축복의 약속 첫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고,
부모를 공경할 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요. (구약은 행위언약 이잖아요)
의롭게 되어서, 약속된 복을 받는 것이지, *신8장, 28장 등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하면, 약속된 복을 못 받고, 오히려 저주를 받지요.
▲그래서 물질적으로도, 명예에 있어서도, 지위에 있어서도 잘될 것이다..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는 장수하리라 그랬어요.
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저는 생각나는 게 하나 있어요. 얼마 전에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연구한 건데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는 사람하고, 안 나가는 사람을 비교해 보니까
수명이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10년 더 산 대요.
그래서 내가 가만히 계산해 보니까, 저녁 예배에 나오는 사람은 20년 더 살고,
새벽 기도에 나오는 사람은 30년 더 살고...
여러분 앞으로 관찰해 보세요. 이 분명해요.
‘하나님 잘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면 장수하리라’
하나님도 영적인 부모이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육신의 부모도 공경하지요.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은, 육신의 부모도 공경하지 못하지요.
십계명의 순서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저는 그런 분들을 많이 보아요.
주일날 되면은 꼭 이렇게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서 같이 예배드려요.
근데 그 아들이 지금 몇 살이냐? 72살이에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몇 살이겠어요? 다 장수하는 집안이지요.
꼭 같이 와서 예배드릴 때, 제가 보면서 저는 참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저희 어머니가 94세까지 계셨는데, 이거 보면서
‘참 행복한 어머니다, 참 행복한 아들이다’ 생각합니다.
대개 보니까 이렇게 연세가 높도록 잘 모신 분들, 그 자녀들이 잘되고,
또 자녀들도 또 오래 살아요. 건강해요.
장수의 복을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이건 계명에 약속하신 거예요. 계명 속에 있어요.
약속 있는 계명이에요. 잘되고 장수하리라. 그런고로 부모에게 효도하라 그랬지요.
◑이어서 이제 부모들에게 “아비들아 그 자식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하는데)
첫 번째는 노엽게 하지 마라” 그랬어요.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의 교양으로 양육하고,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극적으로는 노엽게 하지 마라 그랬습니다. 자녀 교육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엽게 하지 말라’ 하는 말을 우리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자녀들을 내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내 맘대로 하는 것처럼 착각을 해요.
뭐 자녀들 앞에는 뭐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처럼. 그건 큰 잘못이에요.
'파트리아 포테스타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라틴말인데요,
Father’s Power 라는 말이에요. 아버지의 능력. *PATRIA POTESTAS 가장권(家長權)
로마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권세가 있었어요.
2000년 전에 아버지가 얼마나 능력을 가지고 권세를 가졌느냐 하면
가정의 군주요, 아버지는 자녀를 노예처럼 팔아먹을 수도 있었어요.
때로는 말을 안 들으면 쇠사슬에 묶어가지고 노예처럼 부려먹었어요.
그리고 벌을 주어서 맘에 안 들면 죽여버리기도 했어요.
그래도 살인죄가 성립이 되지 않았어요. 이게 로마법에 있었어요.
그러니 자녀들이 얼마나 부모 앞에 힘들었겠어요? 아버지가 자식을 막 죽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자녀를 낳자마자 먼저 아버지 발밑에 갔다 놓았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안아주면 아들이고, 밟아버리면 그만이에요. 이것이 옛날 로마법이에요.
그래서 옛날 2000년 전에 있었던 힐라리 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자기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아주 고전 문서가 남아 있어요.
그 아주 유명한 옛날 편지가 하나 남아 있는데, 그 편지에 긴 얘기가 있는데
남편이 여행 중에 쓴 편지에요. 그 내용 중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내가 집을 떠나올 때, 당신이 애를 가진(임신) 걸 보고 왔소.
지금쯤은 아이를 낳았을 것 같은데, 아들이면 살려두고 딸이면 없애버리시오!’
라고 그렇게 썼어요. 이 편지문이 고대문서로 남아있어요. 다시 말하면 아버지가,
그 부모가 자식을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살리고 죽이고 그냥 이렇게 했어요.
자, 이건 로마 사람들이고, 당시 크리스천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예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6:4
△그런데 아직도, 그 비슷한 아버지들이 많아요. 비록 아이를 죽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알아요.
자기 어머니가 자식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알아요.
아니에요.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해야 되고 신앙적으로 대해야 되는 것이에요.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자기 인격을 지니고 있어요.
요즘 아버지는 IQ, 어머니는 EQ 그럽디다마는, IQ든 EQ든 그 어디에서 나온 건대요?
그런데 아이들 공부 못한다고만 얘기하면 되겠어요? 공부는 머리가 있어야 하는 거지요.
머리가 나쁜데 어떻게 합니까? 더구나 요새 보세요.
예술성이 없는 아이들을 갔다가 예술을 가르치겠다고 그러고, 소질 없는 걸 말이에요.
강제로 말이죠. 그래 아이들을 다 죽여놓잖아요. 이거 아니거든요.
그런고로 용기를 잃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쓸모가 있어요.
자기에게 꼭 필요한 일이 있어요.
꼭 공부라는 길을 통해서만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공부에 목을 매거든요. 그거는 부모의 허영이에요.
어떤 때는 못된 심리가 있어요. ’내가 못했으니 너라도 해라‘
어쨌든 자녀의 용기 절대로 잃어버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를 노엽게 말고‘ 6:4
△저는 프린스턴에서 공부할 때 아인슈타인이 살던 집을 몇 번 둘러 보기도한 일이 있어요.
거기에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어요.
아인슈타인이 고등학교 다닐 때 하도 공부를 못해서, 그 학적부에 이렇게 나와 있대요.
’이 애는 앞으로 무슨 공부를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음‘
이 성적표를 가지고 왔을 때 어머니는 어땠겠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아마 상갓집 됐을 거예요.
그런데 그 어머니는 그렇지 않아요. "너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하면 같아지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할 때는 너는 특별한일을 할 수 있느니라. 걱정하지 마라".
이래서 아인슈타인이 나온 거예요.
거기서 어머니가 "아이고 가문 망쳤다"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끝난 거지요 뭐.
절대로 자녀에게 용기를 잃게 해서는 안 되요.
낙심하고 좌절케하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너는 안 된다‘ 이런 말아죠!
또 ’노엽게 하지 마라‘라는 말은
’인격적으로 대해야 된다. 소중하게 대하고, 용기 있고 소망 중에 자라갈 수 있도록‘
우리는 그에게 지혜를 주어야 하겠고, 그 다음에는 신앙적으로 해야 돼요.
하나님께서 네게 위탁한 것이에요. 공부를 잘하든 못 하든, 키가 작든 크든,
잘생겼든 못생겼든, 능력이 있든 없든 여러분, 꼭 잊지 마세요.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거예요. 내 소유가 아니에요.
내게 주신 축복이요, 내게 주신 사명이에요. 위탁받은 사명이에요.
이제 이건 내가 감당해야 돼요. 내가 책임져야 돼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노엽게 하지 말 것이고, 상당히 이건 감성을 조심하라 하는 그런 얘기로 들려집니다.
▲그 다음에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양육은 기른다는 말이에요.
양육할 때 먼저 육체를 균형 있게 길러야지요.
영양도 주고, 운동도 시키고, 양육, 이거 필요한 거예요.
육체를 건강하게 키워주는 거는 부모 책임이에요.
건강 관리도 우리가 그들에게 습관을 주어야 돼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제 할아버지로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는 법을 하나 배웠어요.
그건 할아버지가 내게 양육해 준 거예요. 체질적으로 새벽 체질이에요.
이건 대단한 축복이에요. 그래서 내게 건강을 물려줍니다.
보세요. 그런고로 양육한다는 것은 육체를 건강하게 할뿐만 아니라
육체를 따르는 습관, 생활 습관까지도 훈련을 시켜서 습관, 좋은 습관을 물려주어야 돼요.
좋은 습관을, 양육이니까.
그런가 하면 정신적으로 또 순종하는 마음, 존경하는 마음, 이웃을 돌보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러한 좋은 정신, 좋은 마음을 가르쳐야 되겠지요. 영적으로도 양육할 게 많아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야 돼요.
언제든지 기도하는 법,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법, 거룩이 주일을 지키는 법,
특별히 교회 봉사하는 법 이거 다 영적인 양육이에요. 다 길러요. 디시플린, 제자훈련이올시다.
내가 본을 보이면서 가르치는 거예요. 이건 우리 책임이에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말씀은 뭐냐 하면 '주의 교양과 훈계로' 그랬어요.
내 뜻으로가 아니에요. 주의 교양으로, 주의 말씀으로.
△중요한 말씀 하나가 있습니다.
독재자 히틀러의 아버지는 아주 충실한 공무원이었답니다.
세상에 나가서는 공무원인데 집에 돌아오면 엄청나게 나쁜 아버지였답니다.
술만 취하게 되면 야만적으로 부당한 행위를 했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보는 데서도 부인에게 매질을 하고,
또 모든 사람이 보는 데서도 아이들을 아주 무자비하게 매질을 하고,
그렇게 가학을 하는, 가학적인 그런 아버지였대요.
거기서 쫓기면서 아버지를 미워하며 자랐답니다.
그런데 결국 그렇게 자라서 독재자가 된 거라고요.
대체로 사랑 못 받고 자란 사람들이 뒤에 독재자가 됩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겁니까?
오늘 우리가 꼭 자녀들을 가르칠 때 주의 교양과 훈계로 그랬어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예
제가 어느 때 한 번 책을 보니까 그런 말이 있대요.
아이들이 잘못할 때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이건 잘못됐다.
내가 네게 말하는데, 그건 잘못이다. 이렇게 말하지 말고,
가능하면 성경을 딱 펴놓고 "요 성경 구절은 네가 읽어라".
자기 손으로 들고 읽게 해요.
그걸 읽고 나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말씀에 비추어 보니까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래 이 말씀대로 살자" 하고 기도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성경이 네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렇게 가르치라는 거예요.
'내가 네게 말한다.' '내가 명령한다' '나를 따르라' 이거 아니에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주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성경으로 가르치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본을 따라서 가르치는 거예요.
이게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는 겁니다.
이렇게 할 때에 그들은 앞으로도 자기가 어떤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기도하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상고하게 된다는 거지요.
그렇게 길을 터놓아야 돼요.
그러한 사람으로 양육해야 된단 말입니다.
이렇게 발동이 걸리면 그 일생은 경건하게 된다는 겁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자,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난 그런 생각을 해요. 가장 잘 믿는 사람이 누구겠어요?
밖에서는 잘 믿는 것 같고, 굉장히 요란한 것 같은데
개인으로는 자녀교육에서 틀렸어요. 부부 사이에서 틀렸어요. 그러면 망조에요.
그러면 당신의 신앙은 잘못된 거예요. 사회에서도 열매를 맺겠지만
먼저 가정에서 열매를 맺어야 돼요.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러기 때문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녀를 그리스도 안에서 잘 양육하고 이것이 기본입니다.
그리하게 될 때 교회도, 나라도, 세계도 밝은 미래를 맞게 되는 것이고
축복된 미래를 맞게 되는 것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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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전문 설문 조사를 거행하는 Barna group에서
16세 부터 29세 까지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왜 교회에 오지 않느냐?’에
‘교회가 위선자들로 가득찼기 때문에 외면당한다’는 답이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의 답변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판단에도, 사실 어느 정도의 진실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많은 크리스천 자녀들이 교회를 등한시 하는 이유는
부모의 위선 때문이라는 결론을 낼수가 있습니다.
위선하지 않는 부모가 되기는 쉽지 않지만, 어린 자녀의 눈에는 그걸 포용하지 못하는 거죠.
하나님이 우선인 삶을 살아간다고 하면서 자녀들에게는
다른 것을 더 우선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모,
또한 다른 것이 더 우선이라고 가르키는 부모를 바라보는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를 비롯한 다른 모든 크리스쳔들이 위선자라는 인식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만이 문제는 아니지만,
제가 많은 학생들을 지도해본 경험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우선으로 섬겨야 한다고 교회에서 말합니다.
크리스쳔인 이상 부모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 하시던 간에
부모님께서 그렇게 살기를 기대하는 것이 자녀들의 바램입니다.
그 안에서 소중한것이 있기에 부모님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 확신을 갖게 되고,
자신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면서, 돈을 더 우선을 삼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는 자녀들...
하나님을 우선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어른들을 보는 자녀들...
하나님을 우선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면서, 주일 예배는 여행 또는 학원과 같은 일들로 인해
스킵해도 된다고 인정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는 자녀들...
하나님을 우선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유익보다 나만의 유익을 위한 사는 듯한
어른들을 보는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어른들이 위선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자세에서 하나님을 향한 우선순위가 우려져 나와야
자녀들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의 향한 우선순위가 바로 잡혀 지는 것입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그것을 삶으로 살아가는 부모님 밑에 자라났습니다.
저에게도 방황의 시기가 있었지만,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방황의 시기에도
소망이 있었고,
하나님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과 그들의 삶의 자세가 저를 이곳까지 오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