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뉴포뉴스 교회들 신년 연합 성회 첫째 날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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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성도의 구체적인 증거 4가지 P1 요10:10 ☞▣ 김철기 허운석 선교사 설교 모음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뉴폿뉴스 VA 한인교회 연합집회라고 해서, 제가 가슴이 좀 더 뜨거워졌습니다.
왜냐면 저도 아마존에서, 여러 교회들과 연합해서 집회를 하고 싶어서 제가 시도를 많이 했는데,
저희 교회가 식사를 대접할 때는 현지인 목사님들이 많이 오지만
기도하자고 모일 때는 몇 사람만 오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몇 십 년을 그렇게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짜증이 나서 요새 치워버렸거든요.
그런데 여기 와서 도전을 많이 받고 돌아가서
다시 또 그래도 우리 브라질 목사님들, 또 인디오 목사님들을 초대해서
제가 (다시 연합지회를) 해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다시 들어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제3세계의 선교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신학교를 다녔는데
하나님이 저를 선교사로 부르셔서, 지금은 아마존에서 이렇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적도를 중심으로 해서 위와 아래의 아주 큰 면적이 다 아마존 유역입니다.
얼마나 큰지 그 아마존 강 유역이 미국 본토보다 약간 작은 그런 아주 큰 면적입니다.
열대 우림 기후에 비가 많이 내리고, 또 아주 습해서
저녁에는 90%까지 습도가 올라가고, 낮에는 80%
그래서 참 좋은 것이 아마존을 숨 쉬기가 좋습니다. 습도가 많아서!
제가 건조한 곳에 가면 숨쉬기가 되게 어려운데
아마존은 참 숨쉬기가 좋은 곳입니다.
또한 동물과 식물들이 낙원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해가 전혀 없기 때문에, 또 사람이 들어가서 자연을 해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모든 아마존 지역이 태고의 신비가 서려 있다' 라고 말합니다.
아주 아름답고, 시야가 툭 틔어서 보이는, 공해가 전혀 없는 투명한 시야,
정말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도 4시간,
이렇게 종횡무진 비행기를 타고 4시간을 가도, 정말 푸른 양탄자에
굽이굽이 강이 흘러내리는, 아주 정말 어메이징한 그런 곳이 아마존입니다.
세계에 아름다운 자연 관광지들이 많이 있는데,
아마존도 가장 아름다운 곳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33년을 아마존에 살았는데, 지금 보아도 아마존은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이 관광을 많이 다니실 텐데, 일생에 한번 아마존에도 와 보시고
하나님이 이렇게 넓고 광대한 자연, '세계의 허파'라고 불리는 곳인데
전 인류에게 산소를 제공하는 아마존이라는 곳을
여러분이 한번 오셔서 직접 확인해 보시면 대단히 좋겠습니다.
◑아마존 선교사가 되기 전까지 받은 훈련
저보고 '어떻게 아마존까지 갔느냐?'고 많은 분들이 되게 궁금해 하십니다.
제가 광나루 신학교를 다녔는데, 집사람이 저보고
'새벽기도를 매일 하지 않는 신학생하고 살아서 무슨 미래가 있겠느냐고..
우리 각각 따로따로 가자고 (이혼하자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신학생이 새벽기도 게을리 하다가 이혼 당했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제가 궁여지책으로 40일 금식기도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서울 북한산, 기도하는 사람들이 삼각산이라고 부르는
삼각산의 통일봉에 올라가서 1월 초에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북한산 만경대
엄청나게 춥고, 그리고 산꼭대기이기 때문에 막 바람이 많이 불고
영하 17도, 18도 내려가는 곳에서 제가 40일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금식기도가 끝날 때쯤에, 하나님이 저한테 이런 감동을 주시는 거예요.
'농촌에는 목회자 없이 비어있는 교회가 많이 있다. 거기 가서 그들을 좀 돌봐라.
네가 나사렛과 갈릴리에서 가난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이게 아마존 선교사 훈련을 받은 것이었죠. 그때는 몰랐습니다)
옛날에는 한국 농촌에, 목회자 없는 교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한 분이 4~5개 교회를 순회하시면서 돌보셨어요.
그래서 제가 40일 금식기도 끝나고 난 다음에 찾아간 곳이,
경상북도 금릉군 부항면 월곡리 학동이라고 하는, 13가구가 모여사는 마을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전도사님이 목회하시다가 오래 전에 떠나시고
교인들 몇 사람이 남아서 교회를 지키고 있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가 그 교회에 가서 이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서울에서 저도, 제 집사람도 둘 다 전도사를 하다가,
그 농촌 교회로 내려갔는데
여러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가난한게 또 한 가지 어려웠어요.
근데 하나님이 '가난을 배우라'고 그래서 저희가 그곳으로 간 거잖아요.
그 교인들이 다 농사를 짓는 분들이었어요.
그 금릉군 부항면이라는 데가 삼도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한쪽은 충청북도 영동, 한쪽은 전라북도 무주구천동, 한쪽은 경상북도 금릉군
이렇게 3개 도가 인접한 산이라 해서 삼도봉이고, 그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농사를 지어서, '성미'라고, 밥할 때마다 쌀을 한 숟갈씩 퍼서 놔뒀다가
주일날 교회 와서 성미함에 넣으면, 목회자들이 그 쌀을 먹고 살아갔지요.
그래서 쌀은 충분히 갖다주셔서, 배는 안 고팠습니다.
그렇지만 뭐 반찬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사례비로 주시는 돈이 얼마나 작았는지,
저는 '계란 여러 개를 한꺼번에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집사람은 '고등어 자반을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희가 6년 동안 거기 농촌에서 살았는데, 옷을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었어요.
왜냐면 옷을 사 입을 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에요.
저희 매형이 독일 사람이거든요.
저희 누나가 오래전에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독일 침례교회에서 매형을 만나 결혼했어요.
그 매형이 키가 190 cm 되는 분인데, 그 분 입던 옷을 저한테 보내왔어요.
그래서 윗도리도 줄여서 입고, 바지도 줄여서 입고,
그렇게 하고 제가 매주일 설교를 하면서, 서울 광나루 신학교로 통학하면서
저희가 6년을 거기서 살았습니다. (신대원 때는 주말부부였던 셈이죠)
그런데 정말 주님이 제게 가난을 가르쳐 주셔서, 거기서 가난을 배웠습니다.
그건 뭐냐면, 가난한 사람들은 늘 부끄러워해요.
옷 입은 것도 부끄럽고, 다른 사람들이 선물할 때, 자기는 선물도 못 하니까 부끄럽고...
이래 저래 많이 부끄러워 합니다.
근데 제가 그 시골에서, 저희도 엄청 가난하게 살고 있으니까,
늘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6년을 살았고,
그리고 또 감사했던 것은, 하나님이 거기서 선교사 훈련을 다 시켜 주셨어요.
농한기, 모 심어 놓고 한 7~8월 되면 이제 쉬잖아요. 농한기 입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농촌 교인들이니까 농사를 안 짓고 쉬었어요.
그 농한기 때는, 제가 예수님 영화를 보여주며 전도를 했었어요.
24인치 텔레비전에 (80년대 당시에는 큰 TV), 비디오 테이프를 넣어서 봤는데,
그때 김천 기독서점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주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지역의 동네마다 찾아다니면서
마을 회관에서 예수님 영화를 보여주고 전도했어요.
또 농촌 사람들이 가난하니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예의바른 인사로 그분들을 인정해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길에서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고개를 많이 숙여서 인사를 했고,
또 동네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부역(단체 노동)에도, 제가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도로가 훼손되거나 하면, 주민들이 모두 나와 도로를 고치고 했지요.
제 손이 까지도록 열심히 삽질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전도사님 너무 일을 잘 한대이..' 하면서
교회 안 나오는 동네 사람들이 다 저를 칭찬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 마을에 한 6년 살았더니,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처음엔 무척 어려웠지만, 6년 정도 지나니까
'야 여기서 그냥 우리 부부가, 가난한 농촌 교인들, 할아버지 할머니들하고 살다가
여기서 죽어서 여기 양지바른 곳에 묻혀도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어느 지역에 보내서 훈련을 시키시는데,
하나님은 다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으세요.
'정말 나는 여기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내가 잘 겪었다'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다른 곳으로 또 인도하시거든요. (*적응될만 하면, 보내십니다)
거기서 제가 6년을 지나고 '우리 내외가 여기서 죽어서 양지 바른 곳에 묻히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할 때쯤에, 하나님이 저희에게 다른 인생의 장으로 열어가셨습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목사고시를 준비를 하던 중에 *장로교 통합측
마침 인도에 단기선교 다녀온 한 15명의 신학생들이,
인도에 다녀온 직후에 저를 만나게 됐어요.
그 중 몇 사람이 저를 만나서,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 열심히 하는데,
제가 듣고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와 정말 인도에 선교사가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질문했어요.
'그럼 그 15명 중에 몇 사람이나 인도 선교에 헌신을 했느냐?' 그랬더니
아직 아무도 전임선교사로 헌신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더라고요.
그날 저녁에 제가 이렇게 혼자 누워 있는데, 제 생각속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어요.
'인도에 그렇게 선교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데, 아무도 선교사로 갈 사람이 없다고 그런다.
그럼 너라도 선교사로 가야 되지 않겠느냐?'
그때 제가 그 내면의 질문을 듣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아무도 안 가는데..
내가 서울에서도 집사람과 전도사를 하면서 소박하게 살았고,
또 농촌에 가서는 진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고, 그리고 고생을 했는데,
내가 왜 인도에 (더 고생하러) 선교사로 가냐?' 라고 제 스스로 거절을 했어요.
근데 그 질문이 제 마음속에서 또 올라오는 거예요.
제가 또 거절을 했어요.
근데 그 질문과 거절을 하는데, 그 방에 제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요. *장신대 게스트하우스
아주 깜깜한 방에 제가 혼자 누워서 있는데,
그 질문과 대답을 저혼자 계속 여러 차례 반복하고, 계속 그게 새벽까지 지속되니까
막 피곤하고 짜증나고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하도 괴로워서 "(주님) 그렇게 원하세요? 제가 해 드릴게요!"
제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딱 고백을 했는데
그 순간 비로소 잠이 들어서, 제가 잠을 푹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일어나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김천시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서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내가 우리 집사람한테 뭐라고 설명을 하면 좋을까?'
라고 기도하면서 궁리하다가,
'그렇지, 아내에게, 내 친구들이 얘기해 준 얘기대로 똑같이 하면,
우리 집사람 귀에 좀 설득력있게 들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똑같이 얘기를 했어요.
'인도는 그렇게 뭐 정말 미신과, 우상과, 가난이 그냥 온 나라에 찌들어 있다고 그런다.'
그랬더니 아내가 '거기 선교사가 필요하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어제 밤에 그런 일이 있었다..
제가 인도에 선교사로 가면 어떻겠냐?' 그랬더니
아내가 '노 No!'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편으로 기뻤어요. 왜 기뻐했냐면,
'아니 하나님이 아무리 저를 선교사 보내고 싶어도,
뭐 마누라가 싫다는데...' 뭐 이건 진짜 최고의 명분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마음 한편으로 무척 기쁘더라고요.
▲옛날 한국 농촌교회는 다 마룻바닥 이었어요.
예배실 뒤에는 방석을 많이 쌓아 놨잖아요.
제가 이제 새벽예배 끝나고 난 다음에, 방석을 가져와 깔고 앉아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정말 제가 선교사로 가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뜻입니까?"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데, 한 14일이 지나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 보여주셨는데
'너 전에 삼각산 통일봉에서 40일 금식기도할 때, 너는 나한테 이렇게 말했잖아?
너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네 목숨을 바치겠다고 그랬는데
내가 네 목숨을 받고 싶다'고 그렇게 (내적음성으로) 말씀을 하셨어요.
아주 그냥 절묘한 시간에, 하나님이 저한테 딱 그 생각이 떠오르게 하시는데,
제가 두 손을 들었어요. (항복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두 손을 들고 항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선교사로 가겠다는 항복이었지요.
당시에 아주 어린 애들도 둘이 있었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그 후에 (제가 장로회 통합측 파송 선교사거든요)
서울에서 무슨 교단 행사가 있어서 총회 본부에 가게 됐는데,
그 총회 본부에서 행사하는 동안에, 보니까 거기 총회 선교부 사무실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잠깐 짬을 내서, 세계 선교부 사무실을 방문하게 됐어요.
그곳 간사에게 '제가 인도에 선교사로 갈 마음이 있으니까 인도에 보내 주십시오'
그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간사가 제 얘기를 듣더니
"브라질 아마존에서 6개월 전부터 선교사 요청을 해왔는데
아무도 지원자가 없어서 보낼 사람이 없습니다.
인도에 갈 마음을 가졌으면, 아마존에 가 주세요" 라고 얘기를 했어요.
근데 우리가 누가 뭘 부탁할 때, 자기가 거절하고 싶을 때는 이렇게 둘러 얘기하잖아요.
"기도해 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려해 보겠습니다'라고 하죠.
제가 그분 얘기를 듣고, 얼른 이렇게 대답했어요. "제가 기도하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선교부 사무실 문을 딱 나서는데, 이런 생각이 제 머리에 떠오르더라고요.
'어려운 부탁은 친한 친구, 믿는 친구에게 한다는데,
하나님이 참 나를 그래도 믿어 주시는구나...'
그래서 조금은 고마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그렇지, 하나님이 아무리 나를 믿어 주시더라도,
큰 아나콘다 뱀이 사람을 통째로 집어 삼킨다고 하고,
원주민 인디오들이 창을 던져서 사람을 죽인다는 그런 곳에, 나보고 가라고 그러시다니..'
이런 생각이 들면서 또 제 마음이 슬프더라고요.
조금 고맙고, 또 슬프고... 이런 상반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저는 또 농촌교회로 내려가서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 내가 인도에 가서 죽으나, 아마존에서 뱀에게 먹혀서 죽으나, 창에 맞아 죽으나...
죽는 건 다 마찬가지인데, 뭘 그렇게 죽는 장소를 따지고 있냐?'
그런 생각이 들어서, 기도하다가 결심하고,
제가 총회 선교부로 연락을 드려서
아마존의 선교사로 자원했습니다.
그리고 총회선교훈련원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브라질로, 아마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근데 아마존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참 감사했던 건,
3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잘 적응이 안 돼요. *1990~
너무 더울 때도 있고, 벌레에 많이 물릴 때도 있고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 아마존에 보내 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라고 속으로 기도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실 편안하면 기도하지 않게 되고, 좀 게을러지거든요.
근데 환경이 어렵고 척박해지만, 사람이 바짝 긴장하게 되고,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뜻이죠.
제 집사람 허운석 선교사가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2013년 지병으로 소천
저하고 둘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성경에는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그랬는데,
그래서 우리가 다시 태어날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어디에서 태어나서 무슨 일을 하고 살까?'
'만일에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가 그때도
다시 아마존에 선교사로 와서
우리 자아를 죽음에 넘기고, 주님과 연합하는 삶을 살자!'고
우리 부부가 함께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적응이 잘 안 되지만,
'하나님이 아마존에 살게 하신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여기 뉴폿뉴스에 오기 전에, 얼마 전에 뉴저지를 들러서 왔거든요.
거기는 너무 추워서, 제 다리가 냉동실에 있는 것처럼 떨렸어요. *특별히 추웠던 주간
그래서 뉴저지 한국 마켓을 뒤져서, 기모가 든 바지를 사서 입고 왔는데,
여기 오니까 아주 따뜻하고 좋아서, 여기 오니까 기도할 마음이 싹 없어지네요.
뉴저지는 너무 추우니까, 오들오들 떨리니까
막 '하나님, 너무 추워요. 살려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봄날처럼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기도 안 해도 그냥 아주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좋은 장소는, 어느 장소냐 하면요.
기도해야만 하는 장소, 주님을 의지해야만 하는 장소입니다.
주님만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장소가 좋은 장소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 안 해도 잘 살 수 있는 장소,
주님을 의지 안 해도 잘 살 수 있는 장소,
내 육신의 조건이 다 좋고 편안해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그런 장소는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장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이 저를 아마존에 보내 주신 것이 되게 감사하고,
지금도 아마존에 사는 것이 감사하고,
또 앞으로 아마존 살다가 죽을 것에 대해서, 아주 감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P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