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요구되는 큰 비용이 아주 작은... 제자도 시리즈 4 - YouTube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요구되는 큰 비용이 막10:17~31 ☞ ▣ 제자도
아주 작은 희생인 이유
▲도입 예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요구되는 큰 비용이
아주 작은 희생인 이유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시멜로 실험'이라고 일컬어지는 교육학 분야의 유명한 실험이 있는데요.
1972년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인 심리학자 월터 미셸은
자신의 연구팀을 이끌고, '지연된 만족 Delayed gratification' 주제로 연구한 내용입니다.
한 유아원에 가서, 그곳에서 4~6살 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심리학 실험을 한 내용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마시멜로 한 개를 주고,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으면 두 개를 주겠다'
라고 약속을 하고, 이 아이들을 관찰한 거예요.
놀랍게도 그 마시멜로 한 개를 먹지 않고 두 개를 먹기 위해 15분간 참은 아이들의 삶을
계속 추적해서 조사를 해보니
그렇게 인내심을 보인 아이들이, 나중에 대학교를 갈 때 더 나은 SAT 성적을 얻고,
더 나은 학업 성취도를 받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 실험이 나중에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으로 쓰여져서
일본과 한국에서 아주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여러분은 몇 년 전에 EBS 교육방송에서 이 스토리를 다룬 영상물도 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이 실험이 나름 일리가 있는 실험이었지만,
스텐포드 대학교 실험팀이 간과한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험 대상이 된 아이들의 '가정 환경'이라는 것이죠.
가정 환경이 어떠한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 마시멜로 실험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다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018년에 뉴욕대학교의 한 연구팀이 발표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이 잘 되고/ 못되고는.. 인내심이 아니라
가정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라는 연구가 또 발표됐어요.
아이들이 마시멜로를 먹고/ 안 먹고는
'인내심'이 아이의 장래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그 보다는 '가정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낸 실험이었죠.
즉 부유한 집 아이들은
나중에 부모가 아이스크림 혹은 마시멜로를 사주겠다고 약속했을 때,
분명히 사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부모임을 믿기 때문에, 아이들이 참는다는 거예요.
인내심이 발휘된다는 거죠.
하지만 부모가 가난해서, 자신이 한 말이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가 나중에 아무리 큰 걸 준다고 약속해도,
그 눈앞에 있는 마시멜로나 아이스크림을 참지 못하고 먹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게 뭐냐면
우리가 오늘을 인내해서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는
그 원리만큼은 옳다는 것입니다.
'마시멜로 하나 안 먹고 참으면 두 개 줄게!'
자 지금 잠깐 인내했을 때, 15분에 더 나은 미래가 주어진다는 거죠.
그 실험이 완벽한 실험은 아니지만,
그 원리 자체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더 나은 시험 결과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죠?
시험 기간에 인내하면서 더 열심히 시험준비를 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더 나은 그 결과를 얻기도 하고요.
또한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젊은 시절에 남들이 다 놀 때,
내가 도서관에 가서, 또 집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 나가면
더 나은 직장을 얻는 것은, 사실 전 세계에 이미 통용되고 있는 올바른 원리이고
그 생활의 진리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 아이가 되셔서, 이 마시멜로 실험에 참석하고 있다고
지금 한번 상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모두가 지금 한 6살 정도 되는 아이에요.
자 그런데 방에 딱 앉아 있는데, 한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마시멜로 하나를 나에게 쥐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약속을 하는 겁니다.
근데 이 아저씨가 마시멜로 한 봉지를 딱 들어보이면서
'네가 지금 마시멜로 하나를 안 먹고 15분을 참으면, 내가 100개 들은 봉지째 줄게!'
만약에 1972년도에 처음 실험했던 어린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두 개가 아니라, '마시멜로 100개 줄 게' 하고 약속했으면,
분명히 마시멜로 하나를 포기한 아이들이 많았을 겁니다. 왜죠?
그 주는 보상이 마시멜로 두 개가 아니라, 100배잖아요.
100배를 주면, 누구든지 다 쉽게, 그 작은 것을 포기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가 걷는 제자도의 보상이
마치 마시멜로 한 개를 안 먹으면, 100개를 받는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는 것과 같다.. 라고 가르치신 사실을, 여러분 모두가 아시는지요?
자 그런데 우리 기독교 안에 문제점이 있어요.
뭐냐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고, 불평하고 있다 라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너무 고되고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간과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죠.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오는 그 보상이,
마시멜로 하나 대vs 마시멜로 100개처럼,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란 '하나 (한 개)'의 삶을 예수님께 던져서 드릴 때,
이게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단 하나밖에 없는 삶이기 때문이죠.
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그 하나의 삶에 대하여,
100배의 보상을 해 주시겠다... 라고 이미 약속해 주셨어요.
그래서 이것이 오늘 설교의 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보상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며 치르는 희생을, 아주 가벼운 희생으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희생이 작기 때문인가요.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는 큰 희생을 치르는 게 맞아요.
하나밖에 없는 내 인생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니까요!
자 그런데 이게 작은 희생이 될 수 있어요. 왜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중에 주실 보상에 비교해 보면,
우리의 그 희생이 너무나 작은 희생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1. 예수님께서는 제자인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십니다.
본문에서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막10:17~22 각자 찾아서 읽어봅니다.
그가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왜요?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이 본문 안에 나오는 수많은 아주 중요한 진리들을,
전부 다 강해해서 설명하진 않을 거예요.
다만 우리가 예수님과 이 부자와의 대화 속에서 기억해야 할 아주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그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자신을 따를 수 있다고 강조하고 계시다는 사실이에요.
전통적으로 일부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이
본문에 나오는 부자의 문제가
'그가 명령을 지켜서 행위를 통해 구원에 이르려 노력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해 왔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인데,
이 부자는 자신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했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기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이 젊은 부자를
꾸짖고 계신 것이다.. 라고 설교를 많이 하셨어요.
자 그러나 저는 본문을 조금 다른 각도로 접근하고자 합니다.
물론 저는, 성도의 구원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만을 통해서 온다는 것은 완벽하게 믿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온 부자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의 원래 초점이 이게 아님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시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신
이 부자의 문제는, 행위구원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이거예요.
그의 궁극적인 사랑과 충성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 예수님이 아닌,
자신의 재산을 향하고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본문이 씌어진 원래 목적은 제자도임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선 예수님께서, 젊은 부자가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행위구원이 본문의 포커스라면, 그의 행위구원적 말을 들으시고 그를 꾸짖어야 되는데)
예수님은 그를 직접적으로 꾸짖지 않으셨기 때문이에요.
19절을 보세요.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고 십계명을 쭈욱 말씀하시죠.
20절에서 그가 말하죠.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그의 '행위구원론'을 꾸짖고자 하셨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어리석은 사람아, 왜 행위로 구원받으려고 하니? 나를 그냥 믿어라!'고 말씀하실 텐데,
그게 아니라 21절에 '예수님께서 그를 눈여겨 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라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어요. 그를 나무라지 않으시고요.
무슨 말이냐면, 지금 젊은 부자가 '어려서부터 지켰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도 그 점은 인정해 주신다는 거죠.
빌3:6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유대인으로서 율법의 의로는 흠잡을 데가 없는 blameless 사람이었다.'
자신이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는 거예요.
본문에 나오는 젊은 부자는, 바울처럼 율법에 열심이 있던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도 했고요. 나름 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율법에 대해 열정을 가졌었지만
진리이신 예수님의 가치를 몰라서,
예수님을 따랐던 그리스도인들을 도리어 핍박했었던 것처럼,
이 부자 청년도, 예수님의 참된 가치를 잘 알지 못해서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던 중이었어요.
이 부자의 문제가 뭐예요? 바로 예수님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던 거예요.
즉 자기가 가진 부를, 예수님보다 더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가, 예수님과 자신의 가진 부를 서로 저울질 한 거예요.
'뭐가 더 중요하지? 뭐가 더 가치가 있지?'
근데 이 사람에게는, 자신의 재산이 예수님보다
훨씬 더 무겁고 가치있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던 겁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의 참된 가치는 잘 알지 못했던 사람이죠.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기를 원하긴 했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눈앞에 두고도
그분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다 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는 거죠.
21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한 가지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나서 너는 와서 나를 따라라'
22절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부자에게, 왜 이런 극단적인 명령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부자 청년이,
자신이 가진 재산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아주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자신의 재산을 더 사랑하고, 더 신뢰했던 이 청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자기 눈앞에 두고도,
그분을,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는 메시아로서 바르게 인식하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만약 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정체와 가치를 정확히 알고, 믿고 있었다면
그는 지체 없이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을 거예요.
그러나 이 청년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와, 최고의 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막대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물질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이 청년은, 돈을 향한 자신의 충성과 사랑을 포기할 수 없기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떠나갔던 것이죠.
자 아시겠죠? 이 부자가 왜 이렇게 슬퍼하고 예수님을 떠났는지...
▲이 부자 청년을 향한 예수님의 극단적인 명령을 들을 때,
아마도 여러분들은,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나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 하실 수도 있어요.
'부자청년에게 주신 예수님의 극단적인 명령이,
본문의 부자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듣고 지켜야만
구원받는 것인가?' 하고 염려하실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명령은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집과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고 난 후에도
가버나움에 자신의 집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었고요.
그 집에서 자신의 장모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무리 중에, 꽤 부자였던 자매님들이 몇몇 있었어요.
그 자매님들도 예수님을 따르고 난 후에, 계속해서 자신을 재산을 갖고
예수님의 사역을 금전적으로 도왔다.. 라고 누가복음 8장은 기록합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몸이 누인 무덤이 있어요. 그 무덤은 아리마대 요셉의 소유였죠.
성경은 그가 부자였다고 기록합니다. 마27:57
무슨 말이냐면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기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재산을, 나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대로 사용해 나가면서 예수님을 계속 따를 수 있다는 말이냐?
또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예수님을 따른다고 재산 다 정리하고, 사업 다 정리하고, 직장 그만두고,
모든 것을 다 팔아서,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예수님을 따르실 필요는 없는데,
그 말이 곧 우리가 우리 가진 돈 다 내 마음대로 흥청망청 쓰고 살아도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에게는 '너희 재산을 다 팔아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난 뒤에,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이
이미 자신의 재산을 예수님의 것이라고 인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명의만 안 바꾼 거예요.
여전히 내 이름의 그 집문서, 땅문서, 통장이 있어요.
근데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는 사람은
'여기 문서와 통장에 내 이름이 적혀 있지만
이것은 모두 나의 주님이신 예수님 거야!' 라는 것을 이미 알고 믿은 사람들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이죠.
▲제가 예를 들어 볼게요.
삭개오는 세금을 유대인들에게 걷어서, 로마제국에 바쳤던 사람이었죠.
그런데 로마 제국만 섬긴게 아니고, 과세를 할 때 세를 더 많이 걷어서
자기 잇속을 차렸던 사람들을 우리가 세리라고 부릅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고, 굉장히 부자였어요.
그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에 이르렀을 때,
눅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
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당시 세리들은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돈을 벌었어요.
그런데 삭개오가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자신의 전 재산을 지금 다 팔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마음을 이미 먹은 겁니다.
:9~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참된 구원에 이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때,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명령을 주시기도 전에 스스로
'자신의 재산이 모두 예수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하고,
또 그렇게 사용하겠다'고 스스로 맹세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지금 삭개오한테 '네 재산을 팔아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명령하셨나요?
안 하셨어요. 그래도 삭개오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죠.
자 그렇다면 삭개오는 예수님께 자신의 재산만 속겠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렇지 않죠.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시간과 자신에게 딸린
모든 가족들과 식솔들까지, 모두가 다 예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던 사람임이 분명해 보여요.
자 이러한 자세가 바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마음가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모든 것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나 스스로 나 자신을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고 믿고 고백할 때,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이, 이제는 모두 다 예수님께 속했다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는 모든 사람(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가 될 사람들을 어떻게 부르고 계시는지,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서 들어보세요.
마10:37~38절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여러분 자녀도 예수님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아닙니다.
예수님께 다 맡기실 수 있어야 돼요.
또 여러분 생명, 여러분에게 소중하시죠.
그 생명도 예수님께 다 내어 드려야 합니다. :38
왜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요.
▲눅14:25~26절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수많은 무리가 있었죠. 아직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않은 사람들도 끼어 있었어요. :25
그런데 예수님의 전도법이 어떤 건지 보세요. 아주 래디컬합니다. 눅14:25~26
요즘 교회들은 이런 얘기 할 수 없어요. 믿지 않는 분들한테.
자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믿지도 않는 사람(무리)들에게, 이런 엄청난 명령을 주십니다.
26절에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녀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 말이 곧 우리가 이제 예수님을 따르려면 가족의 연을 다 끊으라는 건 아니죠.
우리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너무 커서,
내 부모님을 향한 사랑, 내 자녀를 향한 사랑이, 마치 미워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우리의 사랑과 충성이 예수님께 드려져야만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눅14:33절 '그러므로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서 누구라도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앞서 말씀드렸죠. 이 부자 청년에게 주어진 명령이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아니에요.
근데 그 말이, '내가 가진 내 재산을 내 마음대로 사용해야지, 그건 다 내 것이지!'
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지 않으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게 목사님들에게 쓰여진 건가요.
이게 장로님들, 권사님들한테만 쓰여진 건가요?
아니요. 이미 신앙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예수님을 믿으려고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려고 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그 얼굴에 대고 (대놓고) 말씀하신 거예요.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이 너무 극단적이고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부자청년이 아직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지 않았고,
또한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었어요.
그의 궁극적인 사랑과 충성은, 예수님이 아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재산을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예수님이 아닌 자신의 재산을 선택하면서
슬픔에 잠겨 예수님을 떠나간 거예요.
22절을 다시 보세요.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새번역
우리는 이 부자가 왜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왜 자기 눈앞에 나타나신 이 하나님의 아들을
자신의 왕으로 모시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었을까요?
이미 우리가 결론을 내렸던 것처럼,
그는 예수님보다 자신의 재산을 더 소중히 여기고,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그런 결론을 내렸던,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그가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치르는 모든 희생을,
무한대로 보상하시는 분이심을 믿지 못했다는 거예요. *서두의 마시멜로 이야기의 예
이 부자는, 자기가 지금 이 재산을 다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러나 진실은, 예수님께서 그의 희생에 무한한 보상을 해주실 분이었기에,
예수님께 그에게 요구하신 희생은, 무리한 요구, 극단적인 희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희생이었다는 것이죠.
◑2. 그래서 오늘 두 번째 요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희생을, 아주 큰 보상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자신의 많은 재산 중,
자신의 재산을 선택하고 떠나가는 이 젊은 부자를 바라보는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제자도에 관한 아주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막10:23~27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과 나누신 대화 내용이
'우리가 율법을 완벽히 지켜서 구원받아야 된다'고 가르치신 내용이 아님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돌아가는 것, 혹은 구원에 이르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 낙타가 얼마나 큰 동물이에요?
사실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낙타가 가장 큰 동물이었어요.
그리고 바늘귀는, 구멍 중에 가장 작은 구멍이죠.
그런 큰 낙타가, 아주 작은 바늘귀로 들어가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요? 불가능한 일이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그거보다 더 어려운 일이래요.
예수님이 꼭 부자에게만 말씀하신게 아니죠.
부자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라는 것을 말씀하셨어요.
무슨 말이냐?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내 힘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은 없다 라는 것이죠.
오직 오직 예수님을 믿은 사람,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자 그런데 제자들은 왜 이렇게 놀랬을까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못 돌아간다'는 말에 왜 이렇게 놀랬나요?
바로 구약성경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잘 섬긴 자들에게, 많은 부를 약속해 주셨어요.
그런 일로 인해서, 1세기 때 유대교 유대인들은
부자를 보면 '저 사람은 하나님과 더 가까운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완전 다른 가르침을 말씀하시죠.
'이것은 너희의 재산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자인 사람들,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왕국에 더 들어가기 힘들다'
라고 지금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구원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주어질 수 있습니다.
27절이죠.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 모든 일이 가능하다.'
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보내신 메시아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가 은혜로써 구원 받을 수 있고요.
이분에게 제자로서 따르기로 충성을 맹세한 자에게만, 은혜로써 주어지는 겁니다.
이 사건의 여운이 다 가시기도 전에, 베드로는 다시 한번 생각해요.
'저 부자가 그렇게 떠나갔는데, 나를 포함해서 12제자들은 여기 남아 있는데
우리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하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막10:28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이 말은 뭐냐면, '예수님, 저 부자는 자기 길로 가버렸같죠?
우리는 예수님 곁에 남았잖아요. 우리 잘했죠? 그럼 우리는 어떤 보상 받나요?'
라고 묻고 있는 거예요.
자 베드로와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말이 :28
곧 그들이 실제로 모든 것을 다 팔고 예수님을 따랐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베드로 여전히 자기 집을 갖고 있었죠.
근데 베드로가 하는 말이 뭐냐면 이거예요.
'우리가 예수님께서 3년 동안 지상 사역을 하실 때,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다 뒤로 젖혀두고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이 베드로의 물음에 대답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은혜로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29~3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몇 배나 받는다는 거예요? 100배나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설교 서두에, 여러분께 '자신을 마시멜로 실험에 참가한 아이라고 상상해보라'고 했습니다.
'만약 마시멜로 한 개를 안 먹고 15분 버티면, 마시멜로 100개 받을 수 있는데
어떻게 하실까요?' 라고 물었을 때,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다 어떻게 대답하셨죠?
당연히 마시멜로 하나 안 먹고 15분 참고 말죠.
왜냐면 100배면 얼마나 많은 마시멜로예요? 당연히 참아야죠.. 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우리 모두는 당연히 마시멜로 한 개를 기쁘게 희생하며,
잠깐 인내하고 마시멜로 100개를 얻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같은 종류의 제안을 하고 계신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려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과,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재산과,
우리가 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우리의 삶을, 예수님 자신에게 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명령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100배의 보상을 주시기 위함이에요.
여러분, 왜 예수님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지 아세요?
'너의 삶을 나에게 다 달라
너의 재산을 나에게 다 달라
너의 가족과 너의 사랑하는 모든 존재를 나에게 다 달라'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는, 나의 왕은
이 세상의 어느 것들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라는 거죠.
그것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그게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뭐 보상할 이유도 없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백배로 보상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백 배의 보상을 바라고, 권리 포기하며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당연히 나의 구세주로서 주님을 따르지만,
덤으로, 예수님은 백배의 보상까지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백배는, 꼭 문자적으로 백배라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무한대로 갚아주시겠다는 뜻인 거죠. 만수 10X10인 거죠.
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의 십자가를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오는 보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 우리가 우리를 겸손히 낮추고 예수님의 공을 따라 서로를 섬길 때
오는 보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자 우리가 우리의 죄를 미워하고 죽기까지 죄와 싸우며 예수님을 따를 때
따라오는 보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자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우리의 가치 없는 삶을 내어 드릴게
돌아오는 보상이 무엇입니까? 29절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백배와 영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백배는, 교회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축복을 말씀합니다.
왜냐면 마12:49~50절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무리들을 보시며)
보아라, 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이생에서 백배로 주신다는 약속은,
교회를 통해서 헝제, 자매, 부모가 백 배로 더해질 것을 약속하신 것이며,
땅과 전토를 백배를 주신다는 약속도, 교회를 통해서,
그 제자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백 배로 더 늘어날 것을 약속하셨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의 날에, 이 보상은 더욱 확실하게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