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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일상이 되다 행3:1~10 ☞ ▣ 신유 축귀 기적
※짧게 읽으실 분들은 ◑2의 '보라색' 글씨만 보세요! 지금 이 글씨가 보라색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매일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아마 질문이 좀 어색하게 들리실지 모르겠는데,
우리 안에 일어나는 복음의 역사가 믿어지고,
주님이 우리 안에 일하시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면,
교회와 우리 삶의 현장에는 분명히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일어납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 안에 어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믿음의 눈을 들어 보아야 하는 것이죠. 찾아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역사를 증거하고 확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적 중에 기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 삶에서 분명히 믿어지는 그런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오후 3시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가는 이들이, 늘 반복해서 오고 가는 그 길을
베드로와 요한도 걷고 있었던 겁니다.
바로 그 길을 가다보면, 성전 미문이라 불리는 곳이 나오는데
거기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를 누구나 만나게 됩니다.
왜냐면 사람들이 그가 구걸할 수 있도록, 늘 그곳에 데려다 주었으니까요.
미문은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곳인데,
그 앞에서 구걸할 수밖에 없는 자의 삶에 형편이, 현실이 있습니다.
진짜 안타까운 일이고 아이러니한 일이죠.
아름다운 성전 문 앞에, 구걸하는 자의 삶이 있는 거죠.
근데 더 마음 아픈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가, 자기 자신의 삶의 처지를,
이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거예요.
'내 문제는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생각으로 살고 있었다는 것,
철저한 세상의 절망의 구조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살고 있었다는 것,
이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전 문 앞에서, 어떤 기대도 없고,
자기 삶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어떤 믿음도 없는 삶,
어쩌면 이것이 '걷지 못하는 삶'의 처지보다 더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 그 길을, 수많은 기도자들, 예배자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면서 못 걷는 자'가 품어온
평생의 고통과 아픔을, 아주 익숙하게 그냥 별 관심 없이 지나쳐 갔습니다.
그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도, '여기 앉아서 구걸하고 있는 자의 삶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런 기대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동전 몇 개를 던져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도 변화에 대한 갈망과 기대가 없었다...
이게 진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주일 예배를 드리러 우리 성도님들이 교회로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어떤 기대와 믿음이 있으십니까?
'주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면, 내 삶을 사로잡으시고. 깨닫게도 하시고. 가르치셔서
내 삶을 변화시키시고 이끄실 것이다'... 여러분 이런 기대와 믿음이 있으십니까?
'오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분명히 나에게 역사하신다' 그 믿음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오늘 본문 속의 수많은 기도자들처럼
그저 성전을 다녀오는 일에 만족하고, 거기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예배의 현장에서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 일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성전 문 앞에 걷지 못하는 자가, 늘 하던 대로 구걸을 했습니다.
익숙해진 삶의 관성이 진짜 무서운 거죠.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삶의 관성을 넘어섭니다.
본문 사도행전 3:4~5절을 보니까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 그 존재를 주목합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자의 삶을,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본 거예요.
제자들은 이제 하늘만 쳐다보는 믿음 생활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이 땅의 사람들을 주목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게 정말 놀라운 변화입니다.
더불어 주목하던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를 보라'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동냥 얻을 것만 쳐다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라는 거예요.
여전히 미문 앞에 앉아서, 나면서 걷지 못하는 그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마음에 온통 그 생각 뿐인데...
그런데 그는 진짜 중요한 것을 그가 못 보고 있는 거예요.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에게,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뭘까요?
걷는 것 아닙니까. 자기 삶이 온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신조차도, 그것을 스스로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그것에 관하여 구할 믿음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세상이 가르쳐 준 대로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그렇습니다. 진짜 우리 삶의 비극은, 믿음 없이 사는 삶입니다.
기대하지 않고 사는 삶이에요.
우리 모두도 오늘 이 시간, 다시 점검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진짜 진정 주님께 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언가를 더 얻고, 어떤 자리에 오르는 것이, 우리 삶에 진정 중요한 것입니까?
아니면 살아계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매일 누리며 사는 것이, 진짜 중요한 것입니까?
베드로가 그에게 선포하는데, 진정 베드로 안에 계신 예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행3:6절, 너무 유명한 말씀이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진짜 놀라운 말씀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에게 동전 하나라도 없었던 걸까요?
아마 베드로는 은과 금이 있었더라도,
베드로가 나면서 못 걷는 그에게 정말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베드로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귀한 것, 곧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신 거죠.
베드로에게는 자신의 삶에 귀한 분인 오직 예수 그리스도 증거하고
그리고 그의 삶에도 예수님이 일하고 계시다... 그것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2 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제 마음에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속의 교회에,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믿음, 그 간절한 마음이 있는가요?
요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은과 금은 있을지 몰라요. 돈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과연 계신가요?
과연 예수님을 온전히 증거하고 있는가? 하고 되묻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이요, 성도들이죠.
'성도들과 우리 교회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온 마음이 열려 있는가?'
우리가 점검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기존의 그저 당연히 여기며 받아들였던
세상과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킵니다.
돈 몇 푼 던져주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나갔던 그 일에 대하여
균열을 일으키는 거예요.
베드로와 요한은 세상의 그런 방식에, 등 돌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걸으라!'
여러분, 나면서 걷지 못했던 그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했던 것은,
자기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은, 걷는 겁니다.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조차 잊고 살고, 아니면 완전히 포기하며 살았던 그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뒤바꿔 놓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자신도 포기하고 살아왔고,
심지어 잊어버리고 사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 가운데 적당히 타협하고, 좋은게 좋은 거라 살아가면서
이미 잃어버린 하나님의 꿈이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두려워서, 전혀 엉뚱한 삶을 살면서도,
그것으로 위안받으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진짜 믿어지면, 그분의 역사하심이 믿어지면,
선포는 달라집니다. 고백이 달라져요.
그리고 주의 마음으로 그 다른 사람의 진짜 필요가 보여집니다.
그래서 그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내가 쓰임을 받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모두의 삶이, 주님께 사로잡혀 쓰임 받는 삶,
변화를 일으키는 통로가 되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우리를 보라' 이렇게 말할 때, 3:4
사실 그는 자기 자신 안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외친 것이죠.
구걸하는 일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정말 선포하고, 그리고 담대히 나아간 것이
너무나 대단하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여러분 너무 익숙한 본문이지만
여러분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렇게 선포했을 때,
전혀 아무 일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베드로는 얼마나 난처하고 민망했을까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역자, 성도들이 신유기도를 자유롭게 하지 못함은,
혹시나 낫지 못하면, 망신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렇게 선포할 때
엄청난 믿음으로 담대히 선포한 거죠.
심지어 사도라는 이들이, 전혀 아무 권능도 일으키지 못하면,
그러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런 마음이 베드로에게는 없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담대히 예수님만을 증거했어요.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분명히 일하실 것이다' 이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그러니 일어나 걷게 되는 역사도 기적이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일하실 것이다'
이것을 기대하고 믿는 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 한다고 하지만,
때로 교회 다니는 것, 그리고 기적을 살아가는 삶,
이거는 별개라고 우리가 생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믿는 자의 삶에, 변화를 기대하는 일이 없어요.
믿음을 사용하여 주의 말씀대로 사는 삶... 여기에 대한 소망이 없는 겁니다.
▲제가 오래 전에 금요성령집회 에서 안수사역을 이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안수하며 기도는 해 드리지만
질병으로 고생하는 성도의 삶에, 만약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
마치 베드로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는데
만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목회자로서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일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러니 두려운 마음도 들고,
그러다 보니까 자꾸 눈에 보이는 현상(결과)에 주목하려고 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깨닫게 된 것이 이것입니다.
'신유기도에 있어서 진짜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일하실 것이다!' 하는 이 믿음이었어요.
그래서 안수 사역을 할 때, 내가 자꾸 현상에 주목하는 것이
여전히 기도의 중심이 나중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기도하고 나서, '나를 통해 역사가 일어나나/ 아닌가?' 여기에 집중하면,
아무 역사가 안 일어나는 것이 너무 민망하고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주님이 하실 것이다' 이 믿음으로 기도하면,
'결국 모든 것이 주의 뜻대로 이끌린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안 일어나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구나'
그게 믿어지니까 더욱 담대하게 (안수)기도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 하면서도, 교회에서 성도들과 교제하고 나누게 될 때로
우리가 마음이 속상하고, 때로는 섭섭하고, 때로는 판단하게 되는 일이 있는 것은,
여전히 내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그렇죠.
믿음 생활에 내가 중심이니,
나에게 자꾸 뭐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는 것.. 다 내 눈으로만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끄시는 대로 사는 거죠.
그러니 여러분, 우리 삶에 주님이 살아 일하고 계시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역사하고 계심이 믿어지십니까?
'주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실 것이다' 이게 믿어지십니까?
이게 믿어지는 것이,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만, 여전히 '내 삶의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나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얼마나 아파하고, 고민하며 살아왔습니까?
이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포는 우리가 담당할지라도,
믿음의 역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어키신다!'
이게 믿어지면 달라집니다.
믿음으로 담대히 선포하며 나아갈 때,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때 내 자존심 다 내려놓고
'오로지 주님이 일하신다. 주님께 주목하면, 결국 주의 뜻대로
주님의 때에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믿는다' 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그 믿음을 우리가 꼭 갖기를 원합니다.
◑3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못 걷는 자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렇게 외치고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어요.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가 주님이 일하실 것을 온전히 믿었기에,
베드로는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되어, 그를 일으켰어요.
여러분에게 믿음의 선포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믿어지면,
이제는 삶으로 실천하게 됩니다. 믿음과 실천은 함께 가는 거예요. 늘 함께 가는 겁니다.
그렇게 보니까 '베드로는 어떻게 주님의 손이 되어 그를 붙잡아 일으킬 수 있었을까?'
그런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베드로가 지켜보면서 그대로 배웠겠구나'
그게 깨달아졌어요.
여러분 베드로의 장로가 열병으로 고생할 때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기억하십니까?
막1:31절에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어요.
귀신 들린 아이의 손도, 예수님은 잡아 주셨습니다. 일으켜 주셨어요.
막9:27절에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님의 마음으로 그 앉은뱅이를 바라본 베드로,
예수님이 사랑으로 행하신 일, 바로 그 일을,
베드로가 보고 배운 대로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실 베드로 안에 일하시는 주님께서 이 일을 하신 거죠.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제가 말씀 전하며 성령 집회 때 안수 사역했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했는데,
그 이후에 계속해서 아픈 성도들, 어려움에 있는 성도들을 위한 기도 사역을 계속 섬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토요일에, 제가 길을 가고 있었는데,
한 성도님이 아주 반갑게 제게 인사를 해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누구신지를 순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그분이 감사하게도 자기소개를 해주시는 거예요.
얼마 전 성령집회 때 나와서, 기도 받는 시간에, 목사님께 (제게) 기도를 받았다는 거예요.
'아 그러십니까?'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
'그때 기도해 드렸는데 어떤 일이 있었을까?' 제 마음이 궁금하더라고요.
근데 그분이 말씀을 하시기를, 그때 허리가 오랫동안 너무나 아프고 그래서
그냥 일상적인 생활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는데
그날 예배드리며 '기도 받아야 겠다'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서
나와서 기도를 받았는데, 감사하게 회복이 되었다는 겁니다.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제가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셨네요'
그분이 밝게 웃으시면서 계속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제가 주님께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할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기도하다가,
교회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장애인 학생을 섬기는 사역에
특히 교사가 모자라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자원했습니다' 라는 거예요.
'나같은 사람도 필요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라 생각하고 자원해서
오늘 토요일마다 사랑부(장애인부) 선생님들이 기도하는 시간이라,
지금 그 시간 맞춰 교회에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제는 그 성도님 안에 일하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장애인 학생들 섬긴다고 하니까
'야 이게 진짜 주님이 하고 계신 일이 맞구나'
이게 제 마음속에 확증이 되더라고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의 일하심이 믿어지기 시작하면, 그 일은 그저 감사해요.
그리고 주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도 변화되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은 분명히 우리의 일상 가운데 강하게 일하십니다.
진짜 문제가 뭘까요?
우리 안에 기대가 없고, 믿음도 없다는 겁니다.
기대가 없고, 믿음이 없는 자의 삶의 반응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주님이 하신 일을 자기 눈으로 보아도,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주님이 하신 일로 믿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주의 역사는 내 일상 가운데 계속되고 있는데,
이를 이루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산다...
그 현상에만 주목하고 있다...
이것처럼 어리석고 비참한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 전혀 힘이 없어 걷지 못했던 자가 있었잖아요.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자가, 베드로의 그 기도의 선포를 따라 일어납니다.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나게 되었는데,
주님이 일하시는 현장, 성령께서 우리를 사로잡아 이끄실 때의 역사는 폭발적입니다.
'그가 겨우 겨우 천천히 일어났다'고 말씀은 기록하고 있지 않아요.
'뛰어 서서 걸었다'고 했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그가 온 몸을 통해 하나님을 높여 찬양합니다.
이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거예요.
변화가 조금 조금 일어난게 아니라, 전적으로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역사하심은, 이처럼 우리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합니다.
좁은 길, 어려운 길 같아 보여도, 생명의 길을 걷도록 이끕니다.
문제는,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님,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주님이
내 삶의 해답임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의 문제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여전히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이 믿음이 없으면, 엉뚱한게 내 뜻대로 구하며 삽니다.
정말 고집스러울 정도로, 내 의지대로 믿는다고 억지 부리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에, 진짜 점검해야겠습니다.
말씀 앞에 정직히 서서, 주님 앞에 스스로 대답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 내 안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가장 귀하고 중요한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나?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매일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사실 진짜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왜 성전을 향하여 성전에 들어가려고 하는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증거하고 선포하는가?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기쁨과 감사로 예배하고 있는가?
나는 주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는가, 믿는다면 진짜 믿는 대로 행하고 있는가?'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니,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주의 마음으로, 주의 시선으로, 선포하고 행했을 때.. 삶은 변화됩니다.
여러분 베드로와 요한, 그들이 더불어 내 (베드로와 요한) 안에 가장 귀한 것,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리고 선포하고 그를 붙잡아 일으켰을 때, 놀라운 일 벌어졌습니다.
여러분 그 중에 진짜 기적 중에 기적이
'예수님이 믿는 자들 안에 계시다'는 거예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믿음을 따라 행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의 선포를 통해, 주님이 일하시도록 담대히 나아가는 일상,
이게 진짜 기적인 것이죠.
우리 안에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의 역사 한복판에 여러분이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두의 삶을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세요.
여러분 우리는 기적으로 사는 삶입니다. 은혜로 사는 삶입니다.
이와 같은 기적이 일상이 되는 은혜를, 여러분 모두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