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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환상을 보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겔1:1~14 ☞ ▣ 꿈, 비전, 소명
◑도입/ 오늘날 그발 강가의 포로들과 비슷한 실정
구약 성경의 예언서들은 대부분 그 예언이 행해진 시기와
그 예언자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거의 공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예레미야서는 "베나민의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다니엘서는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야기가 먼저 나옵니다만
바로 이어 다니엘이 용모가 아름답고 지혜롭고 학문이 뛰어난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요엘은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다른 예언서들도 대동소이합니다.
▲에스겔서도 예언이 행해진 시기가 먼저 나오는 점은 같습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겔1:1
"서른째 해"는 에스겔의 나이가 삼십이 된 해라는 뜻입니다.
에스겔은 자기를 제사장이라고 불렀습니다.
3절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유대 법에는 서른 살이 되어야 제사장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는 기원전 593년입니다.
에스겔서는 유일하게 예언자가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한 장소가 시작 부분에 나옵니다.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1:1
에스겔서에는 그발 강가에서 환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발 강가는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입니다.
그발 강은 실제로는 자연적인 강이 아니고, 운하들 가운데 하나의 이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으로부터부터 약 2,6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의 형편이 그발 강가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와서 그발 강가에 살았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욕심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심, 명예를 누리고 싶어 하는 욕심,
인기에 대한 욕심, 쾌락을 누리고 싶어 하는 욕심,
정치하는 사람은 정권을 잡겠다는 욕심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이 욕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부작용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또 겪고 있습니다.
또 센세이셔널리즘(인기주의, 문학에서는 선정주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우-'하고 몰려가기를 좋아하고, 들뜬 흥분의 포로가 되기를 잘 합니다.
△지금 중병에 걸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코미디안 이주일(본명 정주일) 씨의 인터뷰 기사가
여러 매스컴에 실리고 있습니다. 그 분은 이런 욕심이 누구보다도 강했던 분입니다.
인기에 대한 욕심이 강했고, 정치에 대한 욕심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제 그런 욕심에서 해방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되고, 중요한 것은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끼고 사는 사람들, 욕심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는 현대인들,
그발 강가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그발 강은 운하였다고 말씀드렸는데
유프라테스 강을 끌어들인 길이 400리 가까운 대운하였습니다.
최근에 발견된 한 비석의 비문에는 이 그발 강이 '대운하',
당시의 말로 '나르 가바리'(Nar Kabari)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당시 바벨론의 발달된 토목기술이 총집결해서 이뤄낸 작품입니다.
그 옆에 팔레스타인에서 잡혀온 유대인들이 초라한 모습을 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운하 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필요하지 않아서 개발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구약성경을 아무리 열심히 보아도 운하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예 큰 강이 없으니, 수상 운송이 전혀 발달하지 못했죠.
오늘날 과학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했습니다.
컴퓨터 공학, 유전자 공학, 상상도 못하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편리한 과학의 이기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옆에서 어리둥절해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발 강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요.
▲그발 강은 힘든 포로생활의 탄식과 슬픔이 배어 있는 곳입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는 합창곡이 있는데, 그런 우울한 노래가 들리는 곳입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꼬(느부갓네살)' 중
포로들의 노래인 시편 137편은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그 강도 그발 강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발 강가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눈물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발 강은 위축되고 주눅 잡힌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 암울한 시대 정황 가운데
그발 강가에 살고 있는 많은 포로들 가운데 하나인 에스겔은 어떤 일을 합니까?
그는 그발 강가에서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본 것입니다.
본문 겔1장에서 ‘그가 기도했다’는 말은 안 나오지만, 그가 놀랍고 어마어마한
환상을 본 것을 미루어 볼 때, 그는 평소에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암울한 현실속에서 환상을 본 에스겔
비탄에 사로잡혀 소망을 갖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까?
'시간을 죽인다 killing time'이라는 말이 있는데, 시간을 죽이며 보냈습니까?
아닙니다. 환상을 보았습니다. 에스겔서는 환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에스겔의 별명이 “환상의 예언자”입니다.
이사야는 믿음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고난의 예언자,
다니엘은 묵시의 예언자,
호세아는 사랑의 예언자,
요엘은 성령의 예언자,
아모스는 정의의 예언자,
예언자들은 이와 같이 별명이 있는데 에스겔은 환상의 예언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환상은 대부분 비전(Vision)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비한 세계를 보거나 미래에 될 일을 보는 것입니다.
▲1 그가 본 첫 번째 환상, 겔1장
보세요, 먼저 여호와의 영광을 환상 가운데 봅니다.
1: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이것은 바벨론 사람들의 침략을 말합니다.
(에스겔은 2차포로로 잡혀 왔죠. 주전 597년.
예루살렘 함락은 11년 후인 주전 586년에 이루어집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장차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침략에 망할 것을 본 것입니다)
폭풍과 구름이 오는 것을 보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이어집니까?
비바람이 이어집니다.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1:4
이 구절 뒤에는 ”비바람을 품고 있더라” 또는 “큰 수해가 나겠더라"해야 되는데 아닙니다.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1:4
에스겔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을 봅니다.
▲2 그가 본 대표적 두 번째 환상, 37장 (이 설교에서는 대표적 환상만 다룹니다)
그가 본 환상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37장의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환상입니다.
마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뼈들이 연결되고
생기가 들어가고 그들이 큰 군대가 되는 환상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가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마른 뼈 골짜기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 마른 뼈들이 일어나 생명을 얻는 환상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른 뼈들이 생명을 얻는 역사는 말씀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유능한 의사가 들어가서 뼈들을 맞추고 살을 입히고 주사를 주니까
마른 뼈들이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이 마른 뼈들을 향해서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며
말씀을 대언할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겔37: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말씀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죽은 영혼들을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로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겔37:12
우리는 환상을 봄을 통해서, 또한 말씀 선포를 통해서,
이 시대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고
그발 강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소망을 갖도록 해야합니다.
요즘 (2000년 경) 비무장지대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나고
통일에 대한 소망이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3 그가 본 민족 통일에 대한 환상
에스겔서 37장에는 통일에 대한 환상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겔37:15~17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포로가 되기 이전에도, 다시 말씀드려 통일에 대한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하나가 되는 일에 대한 이와 같은 분명한 꿈이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북왕국은 앗수르에게 완전히 멸망당하고
남왕국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는 때에,
다시 말씀드려 재생과 통일에 대한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때에
통일에 대한 이와 같은 분명한 약속이 선포됩니다.
어떻게 보면 역설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감동적입니다.
△저희가 예배드리는 이 교육관 예배실에 창이 없기 때문에
불을 켜지 않으면 아주 깜깜합니다.
지난 주일부터 어느 청년이 헌물한 촛대에 불을 늘 켜두고 있습니다.
예배실 문을 열면 어둠 속에 십자가가 보입니다. 매우 인상적입니다.
▲4 큰 네 번째 환상, 성전이 회복되는 환상
에스겔서에 기록된 환상 가운데 오늘 저희 교회에게 가장 큰 감동과 도전을 주는 것은
47장, 성전 동쪽을 향한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흘러내려 가며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환상입니다.
저희 교회가 이 곳, 수지읍 동천리로 옮겨왔을 때 이 말씀을 자주 드렸습니다.
공교롭게도 저희 교회 본당도 동향이고 저희가 있는 곳이 동천리(東川里)인데
동쪽으로 흐르는 시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에스겔서 47장 9절의 말씀을 우리의 과제로 받아 들여야합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생명의 역사가 이 곳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에스겔서의 환상은 ‘거룩한 성읍’에 대한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회복된 성전(47장)에 이은, 회복된 성읍(48장)입니다.
이것은 계21~22장의 천상의 새 하늘과 새 땅, 새 성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완전한 성취이고,
오늘날 우리 현실세계에서는, 그 ‘부분적 성취, 예표적 성취’가 일어나야 하는 거죠.
결국 에스겔이 본 환상 대로, 그 부분적 성취가
1차 포로된 후 70년 후부터 1차 포로귀환이 시작되면서,
성전 재건, 성읍 재건이 착수되었고, 그의 예언은 부분적 성취가 이루어졌습니다.
에스겔서의 끝장 끝절인 48:35절은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환상, 얼마나 벅찬 것입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나옵니다. 주1)
이 같은 이름들 가운데 여호와 삼마,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두려운 것이 없으며
세상의 세력이 우리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모든 필요한 것의 준비와 승리와 평화와
치유와 인도와 공의와 공정한 보응이 이루어집니다.
▲마치는 말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 삶의 정황도 여러 가지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과학문명과 물질문명이 우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발 강가에서 포로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환상을 보아야합니다.
암울한 시대에는 환상을 보는 사람들이 꼭 필요합니다 에스겔처럼요!
먼저 오늘의 본문처럼 하나님의 변함없이 영광스러운 모습을
환상 가운데 보아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공해가 심하고 불빛이 많기 때문에 별을 잘 볼 수 없습니다.
몇 주일 전에 유성들이 비처럼 떨어지는 우주 쇼가 있었는데
좀 더 잘 보려는 사람들은 먼지가 적고 불빛이 적은 산꼭대기로 갔습니다.
오늘 날 세상의 많은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거나
희미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분명하고 강하게 보아야합니다.
말씀으로 생명의 새 역사가 일어나는 환상을 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읍에, 우리가 사는 여호와 삼마의 환상을 보아야합니다.
우리도 소망을 새롭게 하는 가운데 그발 강가의 에스겔처럼 환상을 보어야합니다.
우리도 그발 강가와 같은 형편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 밝은 소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시는 환상을 보고,
마른 뼈들이 여호와의 군대로 회복되어지는 환상을 보고,
분단된 조국이 통일을 이루는 환상을 보며,
이 땅 위에 성전이 회복되고, 성읍에 ‘여호와 삼마’가 임하는 환상을 보아야합니다.
세속 역사도 그렇고, 하나님 나라는 더욱 그렇고,
환상을 보는 사람들에 의해서, 즉 꿈꾸는 자들 dreamers 에 의해서
미래 역사는 열어져 갈 것입니다.
공군에서는 매년 전투조종사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조종사를 뽑아 탑건의 칭호를 줍니다.
탑건이 되는 것은 모든 조종사들의 꿈입니다.
올해 탑건이 된 조종사는 자기가 탑건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잠자리에 들 때 내일 훈련 나갈 코스를 머리에 그리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습니다",
그 조종사는 틀림없이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환상도 가졌을 것입니다.
가정복음화의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온 가족이 손을 잡고 교회에 나오는 환상을 품으세요.
건강의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힘차게 뛰는 환상을 품으세요.
주님의 뜻 가운데 이뤄집니다.
우리 삶의 정황이 그발 강가의 유대인들과 같더라도 소망 가운데 환상을 품고
에스겔처럼 그 환상을 전파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기한 것은, 에스겔이 본 신기루 같은 환상을,
‘헛 것을 보았겠지..’ 하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었는데,
(무시했던 자들도 많이 있었죠)
포로민 이스라엘은 에스겔의 예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었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환상은, 말씀은, 대언은.. 반드시 효력을, 성취를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면, 반드시 환상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행2:17
*원제목 : 그발 강가에서 환상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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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14에는 여호와 이레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준비하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7:15에는 여호와 닛시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기"라는 뜻입니다.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사사기 6:24에는 여호와 살롬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평강이라"라는 뜻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싸움터에 하나님이 여호와 살롬으로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는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 라파입니다.
이사야 1:9에는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호와 체바오트입니다.
이사야 58:11에는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여호와, 여호와 나카입니다.
예레미야 23:6에는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의 공의가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 치드케누입니다.
예레미야 51:56에는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보응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게물롯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