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옛사람과 새사람 (골14강)

LNCK 2024. 2. 19. 14:56

내일교회 2022-07-31 주일예배 // 옛 사람과 새 사람 - YouTube

*위 동영상 41분 부터 녹취

 

옛사람과 새사람              골3:9~11                2022-07-31
  골로새서 14강                                          ☞이전 글 보기  

◑3:9절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위의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죽이고,  3:2, 5
그리스도를 따르는, 본받는 삶을 살아야 된다..  
이렇게 바울이 교훈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있어서
바울에게는, 가장 선명한 가르침이 뭐냐면, 
옛사람을 벗었고, 새사람을 입었기 때문에
거기에 어울리게 살아야 된다.. 이것이 소위 바울의 실천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옛사람(3:9)은 뭐고, 새사람(3:10)은 무엇이냐?

이것을 오늘 중점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저도 이 말씀을 공부하면서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벗어버린 옛 사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입은 새 사람이 정확하게 무엇이냐?’
이 질문에 대해서, 저 자신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골3:9~11절을 토대로
바울이 가르치는 옛사람, 새람이 뭔지 살펴보겠습니다.

▲옛사람, 새사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해는 뭔가 하면,
옛사람이란.. 거듭나기 이전에 우리의 본성입니다.
새사람이란.. 거듭난 이후에 우리가 가진 (변화된) 본성, 새로운 본성을 일컫습니다.
이것이 옛사람과 새사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해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성경신학에 대한 많은 가르침들, 연구들이 축적되면서
위의 이해가 타당성은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이 말하는 옛사람과 새사람은
단순히 본성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이 부분을, 제가 오늘 설명합니다.

먼저 바울의 다른 서신들이 있습니다. 본문 골로새서 말고도요.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의 가르침을 통해서,
바울이 다른 서신들에서는 ‘옛사람과 새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는지, 그것을 살펴보면서 본문을 해석할 때, 더 정확한 해석이 나오겠죠.

 

오늘은 로마서에서 설명하는 '옛사람과 새사람'의 예를 통해서, 

본문 골3:9~10절의 '옛사람과 새사람'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내증이라 그러죠.

▲로마서의 옛사람과 새사람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로마서에서는 여기에 ‘옛사람’이란 표현이 한 번 등장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입니다.

죄의 몸이 죽어’
‘죄의 몸’은 ‘옛사람’과 같은 뜻입니다.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죄의 몸’도 2가지 해석이 있는데,
-이 죄악덩어리인 몸.. 그것을 의미하는가? 몸 자체가 죄악덩어리란 말이냐?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몸.. 두 개가 비슷하지만,
 이 몸이 (죄악덩어리 라기 보다는) 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말이냐?
 후자가 맞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 몸이, 이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게 더 이상 다시는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다’  롬6:6
이렇게 바울이 교훈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골3:9절에 등장한 ‘옛사람’은, (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은 뭐냐면)
롬5:12~21절을 배경으로 한다고 봅니다.

그 내용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롬5:1~11절을 보면, 이것은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본문입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롬1~4장)   
그 결과, 의롭게 된 성도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롬5:1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 그들의 구원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데) 두 가지의 강력한 장애물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고난으로 대표되는 외적인 장애물입니다.  
-두 번째는 이것보다 더 강력한 장애물인데, 
그것은 ‘죄’라는 내적인 장애물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의롭다 하심을 받아서 하나님으로부터 평화를 누리게 된 사람은 
이 수많은 고난 과 라는 장애물을 넘어서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약속하신 구원을 누리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롬5:1~11절까지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구원은 확실하다’ 
이게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은 참 좋죠. 기분은 좋지만 
두 가지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1 첫 번째 질문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완벽한 순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한 분 때문에, 어떻게 모든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가요?

 

예수님 한 사람으로, 지구 인류 수십 억 명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상식적으로 좀 납득이 안 됩니다.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 있죠.

2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예수님 한 분 때문에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의 구원이 확실할 수가 있느냐?

인간의 악함과 연약함이 얼마나 강력한데, 
세상에 얼마나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극복해서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을 다 누릴 수 있다? 이거는 말이 안 된다는 거죠. 

이 질문을 상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 롬5:12~8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게 뭔가 하면 
5:12~21절에 나와 있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입니다. 

그래서 좀 딱딱한 말씀이지만  
여러분이 이 말씀을 정말 잘 이해를 하셔야 돼요. 
이 내용은 옛사람과 새사람의 비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져 있습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이것은 창세기 3장의 내용이죠. 
'한 사람'은 아담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죄 때문에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위12절

'한 사람 때문에 죄가 들어오고, 죄 때문에 사망이 들어와서' 
아담이 모든 인류를 대표하게 됐다는 거죠.  *'대표설'을 설명하는 중

롬5:12b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느니라'
여러분, 참 듣기 거북하지 않나요? 
아니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왜 그 아담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이 되나요? 
아담이 모든 인류의 대표이고, 아담 안에 모든 인류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죠.  주1)

 

분명히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왜 모든 사람이 죽어야 되나요? 
아담은 바로 모든 사람의 대표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 그를  인간의 대표로 창조하셨다는 거죠. 

일제 식민지 36년을 기억하시면, 그때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그 문서에 싸인한 사람들은 누구죠? 일곱 명 정도의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대표로, 한국이 일본에 합병되는 문서에 싸인했습니다. 

우리는 그 싸인에  참여도 안 했어요. 그때는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한국인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36년간 일본의 식민지 백성이 되었어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또한 아담처럼, 모든 인류를 대표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은 옛사람의 대표라면,
예수님은 새사람의 대표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100% 인간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류의 대표가 되실 수 있죠)

이어지는 17절을 보십시오.
롬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이 되십니다. 두번째 인류의 대표자란 뜻이죠.

롬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옛사람)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새사람)이 되리라'  

예수님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어떻게 됐습니까?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아담을 통해서 볼 때, 예수님 누구시냐? 
새로운 두 번째 아담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완벽한 순종은 누구의 것이 되었습니까?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의 순종이 되었습니다.

 

(법적으로 이렇게 되었다는 거죠.

그 이후로는, 성도가 점점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 성숙되어져 갑니다.

이 말은, 자동적으로 의인이 되었으니, 성도의 순종이 면제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담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것처럼,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께 속한 모든 사람들은 의인이 된 거죠.  

롬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아담 한 사람의 죄 때문에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사망과 죄가 아담의 모든 후손들의 삶을 지배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순종, 예수님의 그 의로우신 행동 때문에  
예수님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은혜와 생명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아담의 후손 중에 어떤 사람도, 죄와 사망의 지배를 이기지 못했던 것처럼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여건이 아무리 고난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이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은혜와 생명의 통치, 은혜와 생명의 지배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속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일이 일어났죠. 
1) 하나는 예수님이 하신 행동(순종)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보실 때 의인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한 행동 때문에, 그 모든 후손이 죄인이 된 것처럼 
이제는 예수님이 하신 행동 때문에, 그분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보실 때 의인이 되었습니다.  

2) 두 번째, 아담에게는 죄와 사망이 그들의 삶을 지배했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들은, 은혜와 생명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롬8장에 가면 이 은혜는 무엇으로 바뀌느냐? 성령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령과 생명이, 바로 우리들의 삶을 지배해서 
아무리 우리가 부족하고, 우리가 아무리 고된 삶의 역경 속에 놓여져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그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우리는 반드시 그 구원, 즉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삶이 되도록 
하나님이 만드신다는 겁니다. 

다시 롬6:6절을 보시면, 여기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옛 사람은 바로 아담입니다. 

우리가 이미 죽었고, 우리가 벗어 버린 옛 사람은 누구냐? 아담입니다. 
아담에게 속했던 우리의 신분, 그 특성,

우리는 아담에게 속했을 때, 죄인이고,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는 특성을 가졌죠.
이 옛사람을 벗어버렸고, 우리가 입은 새 사람은 누구냐? 한마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갈3:27절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예수님과 세례를 통해 하나가 된 사람은,
우리의 옷이 바뀌었는데, 새사람을 입었고, 그리스도로 옷입게 되었습니다.  

고대시대에 옷은 바로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면, 그 사람의 신분과 역할을 알 수 있어요. 

우리는 아담이라는 옛사람을 벗어버렸고.
이제는 그리스도라는 새사람을 입었습니다. 

그 특성이 무엇이냐? 
'나는 의인이고, 나는 은혜와 생명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옷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롬13:13~14절 처럼 살도록 점점 지향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을 바꾸었던 말씀인데요. 은혜와 생명의 지배를 받아서 그렇게 되어져 갑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성도는 누구냐?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본문 갈3:10절의 '새사람'이란 누구냐, 어떤 존재냐?

로마서를 통해서 볼 때, (대표이신) 예수님 안에 속한 사람,

갈라디아서를 볼 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 입니다.

 

그 혜택이 뭐냐, 근데 왜 제가 이걸 강조했느냐? 
바로 이것을 우리가 깨닫게 될 때,  
두 가지 명확한 이해를 갖게 되는데, 

1) 첫 번째는, 앞으로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건가요?  
여러분이 예수님 믿으면서 궁금하시지 않나요?
예수님을 믿고 있는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렇게 고난이 많고, 나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인데, 
예수님 안에 있는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답은, 성도의 옷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처음으로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저한테 말씀을 하셨어요. 
'야, 나는 너를 참 부끄러워하지 않아' 
그때 저의 인간으로서 가지는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이 
그때  정말 사라지게 됐습니다. '나는 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음성을 듣고서요. 

 

그런데 하루가 지났을 때, 제 속에 정말 격렬한 영적인 싸움이 있었습니다. 
질문이 생긴 거죠. 
'야 네가 어제 느꼈던 그 천국의 경험은 진짜야! 
생각해 봐,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동자를 가지고 계시고, 
그분은 거룩하고 의로운 분이신데, 

너는 누구냐? 죄악 덩어리, 모순 덩어리인데 
어떻게  그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불꽃 같은 눈동자를 가지신 하나님이 
너 같은 놈을 부끄러워 하시지 않을 수 있느냐? 그건 모순이지.. 
네가 어제 느꼈던 것은 가짜야, 가짜!' 

정말 제가 격렬한 영적인 그런 갈등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 정말 주님은 사랑 때문에 거룩을 포기하셨습니까?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저와 같은 사람을 보고 부끄럽지 않다. 
의롭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저한테 주신 교훈이 
'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너를 보고 있다.'

정말 제 삶을 바꿔 놓았던 교훈이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너를 보고 있다! 
너는 누구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이죠? 
바로 내가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냐?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옆사람을 한 번 쳐다보십시오. 뭐가 보입니까?
입고 있는 옷밖에 안 보이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무엇을 통해서 보시느냐?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를 보고 계시니까  
하나님은 저를 어떻게 보십니까? 

바로 '너는 의롭다, 나는 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유는, 네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네가 입고 있는 옷인 그리스도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다'

 

2) 두 번째는, 나는 은혜와 의와 생명의 지배를 받는 자게 된 것입니다. ↙

   (*지적 동의가 아니라 진정 회심한 경우)

◑골3:10절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또 하나 놀라온 것은, 이것은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봐주시는 것만 아니라,
저는 누구의 지배를 받느냐? 
예수님을 통해서 바로 은혜와, 의와, 생명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죄가 나를 다스린 것처럼, 마찬가지 원리로)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께서 제 삶을 은혜와, 의와, 생명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저는 점점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 형상을 본받게 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금 바로 10절에서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그래서 그 그리스도를 따라서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워지고 있는 자가 누구냐? 
바로 새사람이라는 거죠.  우리는 점점 새로워지게 됩니다. 

왜요? 바로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의와 생명으로 
우리들의 삶을 다스리고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리 환란이 많아도, 아무리 우리가 약해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저는 제 삶의 가장 위대한, 가장 귀한 결단이 그거였어요. 
저는 제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게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인 거죠.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내 자신의 힘으로 이 수많은 환란과 수많은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는 사람입니까? 
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을 
아무리 부족해도, 아무리 연약해도  
우리들의 삶에 아무리 많은 고난이 있어도 
그분이 우리를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가십니다. 

그걸 본문 10절은 이렇게 말씀하는 거죠.

10절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또 하나, 이 가르침은 나 자신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바로 함께 주님을 섬기고 있는 성도들에 대한 이해, 
성도들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죠. ↙

◑골3:11절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나와 마찬가지로, 옆에 있는 성도들은 나와 똑같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새사람인 것이죠.

내 옆에 있는 성도들은 누구냐? 
혹시 민족적인 배경이 다르고, 문화적인 배경이 다르고, 신분의 배경이 다르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다(그리스도가 만유시다)' 이 말은,   :11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민족, 피부색, 신분, 문화 이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든 성도들과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에게 일어나게 될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내 주위의 성도들에게도 그 일을 행하고 계시는 거죠. 

그러니까  내 주위의 성도들은 어떤 분이십니까? 
새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앞으로 새롭고 영광스럽고 거룩한 사람들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되는 거죠.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위의 것을 찾고. 땅의 지체를 버리고'  
(다음 본문 골3:12~)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야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옛사람인 아담을 벗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새사람인 그리스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보실 때, 그리스도 때문에 의인입니다. 
내 삶은 무엇이 나를 지배하고 있나요?  
은혜와 의와 생명이 우리들의 삶을 지금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요?
롬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
이 말은 '우리는 새사람입니다. 새사람인데, 이 땅을 살고 있기 때문에 
자꾸만 사단이 우리가 옛사람에게 속한 것처럼, 우리를 착각하게 만드는 거죠. 

 

그래서 우리 죽을 몸을, 옛주인이었던 죄가 지배하려고 하는데 
그거를 허락하지 마! 
너희는 지금 어디 있느냐? 그리스도의 나라에 살고 있다는 거죠.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죄의 지배를 받지 말고, 
(13절) '너희 지체, 몸의 부분 부분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처럼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여러분, 이건 평생 기억하셔야 돼요. 
'나는 새사람입니다. 내가 입고 있는 새 옷은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의인이고, 의와 생명과 은혜가 내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의 구원은 확실합니다.
이 새 옷을 입고 살 때, 
매 순간마다 내가 마치 옛사람인 것처럼 부추기는 
그 사단의 목소리,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새사람을 입고 우리 몸의 부분부분을, 우리 몸의 지체 하나하나를 
바로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성도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나 이제 주님의 새생명 얻은 몸' 찬송을 부르시겠습니다.

▶그러니 창조의 흐름이, 가짜에서 진짜로 나아가지요.

가짜가 먼저이고.. 진짜가 나중이지요.

 

그래서 성경에선 항상 먼저 나온 자는 가짜이고.. 나중에 나온 자들이 진짜로 나타납니다.

 

육이 먼저이고.. 영이 나중이에요.

아담이 먼저이고.. 예수님이 나중입니다.

 

가인이 먼저이고.. 아벨이 나중입니다.

이스마엘이 먼저이고.. 이삭이 나중입니다.

 

에서가 먼저이고.. 야곱이 나중입니다.

레아가 먼저이고.. 라헬이 나중입니다.

 

사울 왕이 먼저이고.. 다윗 왕이 나중입니다.

육적 이스라엘이 먼저이고.. 영적 이스라엘이 나중입니다.

 

우리 개인에게 적용하면 땅에서 난 자가 먼저이고.. 하늘로서 난 자가 나중이에요.

옛 사람이 먼저이고.. 새 사람이 나중입니다.

 

아브람이 먼저이고.. 아브라함이 나중입니다.

야곱이 먼저이고.. 이스라엘이 나중입니다.

 

언약도 동일합니다.

옛 언약이 먼저이고.. 새 언약이 나중입니다.

옛 언약은 죽이는 것이고.. 새 언약은 살리는 것입니다.

 

▲'영등포의 슈바이처'로 불린 요셉의원 선우경식 (63) 원장이

2008.04.18일 오전 4시 서울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했다.

 

21년 동안 극빈층과 노숙자에게 무료로 진료 활동을 펼친 선우 원장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5일 뇌출혈을 일으킨 지 3일 만이다.

 

1969년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한 선우 원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킹스브룩 주이스 메디컬센터에서 내과학을 전공했다.

미국에서도 잘나가는 병원에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선우 원장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한림대 병원에서 잠시 근무하던 그는 83년부터

당시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관악구 신림동에서 무료 의술 봉사를 했다.

 

당시 변변한 의료시설이 없었던 그곳에서 선우 원장은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환자를 업고 다니며 자원봉사를 펼쳤다.

 

봉사활동을 이끌던 한 신부가, 그에게 계속 남아 진료해 줄 것을 부탁했고,

그는 87년 8월 신림 1동에 무료 자선 병원인 요셉의원을 세웠다.

'호의호식'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간 것이다.

 

당시엔 전 국민 건강보험이 시행되기 전이라

빈민들은 아파도 병원을 찾기가 어려웠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의 병원은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개원 초기 운영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의료기구는 성모병원에서 쓰던 것을 얻어 와야 했다.

의약품을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한 한 회사는

유통기한이 지난 약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러나 선우 원장은 가난한 병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버텼다.

요셉의원은 97년 5월 영등포 역사 뒤편에 있는 쪽방촌으로 옮겨 왔다.

 

지금까지 42만 명의 영세민 환자와 노숙자, 외국인 근로자가 이 병원을 거쳐 갔다.

현재 요셉의원은 자원봉사에 나서 교대로 무료 진료를 해 주는

80명의 의사·간호사와 일반 봉사자 600여 명이 꾸려 가고 있다.

 

매월 2천여 명의 후원자가 1천원에서 몇 만원까지 보내 주는 기부금이

재정의 전부다.

 

선우 원장은 결혼도 하지 않았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61년 선친이 지은 작은 집에서 그대로 살아왔다.

 

미국에 사는 여동생들이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오라고 강권했지만

그는 "나는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고 거부했다고 한다.

 

선우 원장은 2003년 호암상(사회봉사 부문)을 받았다.

"폐인이 다된 사람이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어요.

취직이라도 해 바나나 한 봉지 사 들고 찾아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 맛을 알면 이 일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죠."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에 중독 된 사람 같았다.

"주머니가 부르면 딴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주변에 말해 왔던 선우 원장은

의사자격증 하나만을 남긴 채 영면의 길을 행했다.

 

'영등포의 슈바이처'로 불린 요셉의원 선우경식 (63) 원장이

08.04.18일 오전 4시 서울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했다.

 

21년 동안 극빈층과 노숙자에게 무료로 진료 활동을 펼친 선우 원장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5일 뇌출혈을 일으킨 지 3일 만이다.

 

1969년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한 선우 원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킹스브룩 주이스 메디컬센터에서 내과학을 전공했다.

미국에서도 잘나가는 병원에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선우 원장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한림대 병원에서 잠시 근무하던 그는 83년부터

당시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관악구 신림동에서 무료 의술 봉사를 했다.

 

당시 변변한 의료시설이 없었던 그곳에서 선우 원장은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환자를 업고 다니며 자원봉사를 펼쳤다.

 

봉사활동을 이끌던 한 신부가, 그에게 계속 남아 진료해 줄 것을 부탁했고,

그는 87년 8월 신림 1동에 무료 자선 병원인 요셉의원을 세웠다.

'호의호식'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간 것이다.

 

당시엔 전 국민 건강보험이 시행되기 전이라

빈민들은 아파도 병원을 찾기가 어려웠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의 병원은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개원 초기 운영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의료기구는 성모병원에서 쓰던 것을 얻어 와야 했다.

의약품을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한 한 회사는

유통기한이 지난 약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러나 선우 원장은 가난한 병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버텼다.

요셉의원은 97년 5월 영등포 역사 뒤편에 있는 쪽방촌으로 옮겨 왔다.

 

지금까지 42만 명의 영세민 환자와 노숙자, 외국인 근로자가 이 병원을 거쳐 갔다.

현재 요셉의원은 자원봉사에 나서 교대로 무료 진료를 해 주는

80명의 의사·간호사와 일반 봉사자 600여 명이 꾸려 가고 있다.

 

매월 2천여 명의 후원자가 1천원에서 몇 만원까지 보내 주는 기부금이

재정의 전부다.

 

선우 원장은 결혼도 하지 않았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61년 선친이 지은 작은 집에서 그대로 살아왔다.

 

미국에 사는 여동생들이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오라고 강권했지만

그는 "나는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고 거부했다고 한다.

 

선우 원장은 2003년 호암상(사회봉사 부문)을 받았다.

"폐인이 다된 사람이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어요.

취직이라도 해 바나나 한 봉지 사 들고 찾아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 맛을 알면 이 일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죠."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에 중독 된 사람 같았다.

"주머니가 부르면 딴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주변에 말해 왔던 선우 원장은

의사자격증 하나만을 남긴 채 영면의 길을 행했다.

 

................................

 

주1) '대표설' 설명 중 중략된 부분 

이것이 정말 듣기 거북하지만 
이것이 뿌리칠 수 없는 거부할 수 없는 진리 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게 

아담의 후손들 중에, 최소한 한 명이라도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사람이 만약 나왔다면, 위 구절 롬5:12절은 틀린 거죠.

그런데 위 구절이 맞는 사실인 게,
아담의 후손들 중에 어느 누구도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고,
다 죄를 짓고 다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외

이것은 무엇을 나타냅니까? 
위 롬5:12절이 (아담의 후손은 우리는 억울하지만) 사실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