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뉴폿 뉴스 교회들 연합성회 둘째 날 - YouTube
0:00~28:55까지 녹취 ☞▣ 김철기 허운석 선교사 설교 모음
◈내 자아가 부인될 때 비로소 생명에 거합니다 P1 눅9:23~24, 잠16:4
(즉 영생을 얻고, 현세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아마존은 동물과 식물들이 낙원을 이루고 살아가는 곳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달라스에서 청년부들이 단기 선교를 아마존에 왔어요.
그래서 제가 인디언 마을에 모시고 갔는데, 거기서 점심을 대접하는데
원주민들이 원숭이 탕을 만들어 대접을 했어요.
아마존에는 원숭이가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많이 서식하는데...
그래도 참 감사한 거는, 아마존 사람들은 뱀도 안 먹고, 개도 안 먹어서
제가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같이 안 먹어도 되니까요)
그런데 원주민들은 원숭이를 가장 맛있는 요리로 인정하고,
원숭이를 이렇게 잡아서 대접하는 문화가 있는데요. (*TV나 영화에도 나옵니다)
단기팀이 한 10명이 왔었거든요.
10개의 접시에 이렇게 원숭이가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모습,
또 원숭이 머리,
이렇게 음식이 쫙 나왔는데, 한 사람도 안 먹고, 다 쳐다만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하고 집사람이 그 원숭이의 다리와 발과 손과 머리를 다 걷어서
우리 앞에 가득 쌓고 그냥 우리가 포식을 했습니다.
저희도 처음에 원숭이 고기를 먹을 때 참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원숭이 요리를 제공하는 우리 원주민 형제들의 눈빛이...
저희를 다 쳐다보고 있잖아요.
우리가 그 원숭이 고기를 맛있게 먹으면,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우리가 먹지 않으면, 그들이 복음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한 영혼을 위해서 우리가 원숭이 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한 30년이 지나서, 그냥 뭐 원숭이 고기의 팔도 맛있고,
또 머리 껍질도 맛있고, 골을 깨서 골에다가 레몬하고 소금을 좀 쳐서 먹으면
마치 돼지 간, 소 간처럼 맛이 있습니다.
▲저희 선교회 이름이 '아마존 은혜의 강선교회'입니다.
왜 이름을 그렇게 붙였냐면, 아마존이 참 은혜가 아니다.. 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늘 기도해야 되는 곳,
또 (30년이 지나) 지금도 적응이 잘 안 되는 곳, 그래서 늘 기도해야 하고,
우리의 인내가 많이 시험 되는 곳이니까, 늘 은혜를 구하게 되는 곳이지요.
'항상 새로운 은혜를 받아야 일할 수 있는 곳이어서 참 좋다..' 라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자아 Ego 가 죽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자아)를 부인하고..' 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제가 아마존에서 동역할 선교사를 오래전부터 요청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죽어 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아마존 선교사로 오십시오!'
옛날에 저희들이 예수 믿을 때는, 저희들은 주님을 위해서 죽어드리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해서 내가 죽어 드릴까요?' 라고 기도하곤 했지요.
그래서 목사가 되기로 하고, 선교사가 되기로 하고,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아까 이곳 목사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말했습니다.
'지금도 21세기 한국 교회에, 주님을 위하여 죽어 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랬더니 이곳 목사님은 '그런 사람은 지금은 중국에도 없고,
북한에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곳 성도님들 중에
'나는 주님을 위해서 좀 내 목숨을 바치고 싶다' 그런 분이 계시면
아마존 선교사로 오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 놀라운 계획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냐면? 내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기 원하시는데, 내가 문제입니다.
(자아가 죽지 않는 나 자신 때문에, 그 풍성한 삶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 라는 아주 유명한 영국의 영성가가
"자아는 죄다"라는 윌리엄 템플이 쓴 글을 읽고, 은혜를 받고 위로가 되고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라고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어떤 영성가는 말하기를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갈망은 (자아가 죽고)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태어나던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그 연합의 갈망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지으신 것이, 그분을 위해서 우리를 지으셨고...
그런데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했기 때문에에
우리가 내 자아의 죽음을 통해서만, 그분과 연합이 가능하고,
영적인 죽음(자아의 죽음)을 통해서만 죄를 끊고, 세상을 끊고,
마귀의 모든 역사를 끊고, 우리가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내 자아의 죽음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도 자아를 죽이셨습니다
주님은 물리적인 죽음으로 직접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죽으신 것이 정말 그분에게 유익했습니다. 그렇게 믿습니까?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게, 그분을 위해서 유익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그분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모든 게 자아의 죽음에서 출발했죠!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으시고
막달라 마리아의 말에 초대를 받아 이 땅에 내려와서
만약 오랫동안 살다가 아이 낳고 뭐 살다가 죽으셨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요) 주1)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부활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하늘로 승천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오늘도 우리가 모든 무릎을 그 앞에 꿇어서
모든 입술로 주님으로 고백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고
그렇게 영광을 차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으로 죽으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매일 (날마다) 십자가를 지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눅9:23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내 자체가 악이다, 내 자체가 죄 덩어리다,
내가 악의 축이다.. 라는 것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라'고 그랬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눅9장에 보면 이렇게 연결이 됩니다.
'너희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고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9:24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구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본회퍼라는 신학자는 '제자가 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제자가 되지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라는 그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그리고 마9:25절에 보면 '너희가 온 천하를 얻고도 너희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러니까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초대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우리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그래서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면, 구원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서 구원을 받으려면,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전15: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아무쪼록 우리 성도님들께서 날마다 죽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자아가 죽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래야 주님의 생명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의 자아 부인
우리의 일생은 구원을 완성해 가는 기간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최고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원인은,
저는요 '제 집사람이 제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왜냐면 (생전에) 집사람이 너무 지혜로운 여인이었고, 영적인 여인이었고,
거기에다가 살림도 잘하고, 설교도 잘하고, 아이들도 잘 가르치고,
데코레이션도 잘하고... 그래서 항상 제가 집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어서 살았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저한테 여러가지 이야기를 많이 했는지요.
우리 목사님 사모님들이 여기 많이 오셨는데,
사모님들이 책을 많이 읽으시고, 목사님들에게 인스피레이션(영감)을 제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권사님들, 집사님들도 책을 많이 읽으시고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좀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집사람은 책을 많이 읽는 여자였어요.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의 영성에 관한 책뿐만 아니라,
많은 책을 읽고서 저한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그런데 아내가 남편에게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우리 목사님들은 어떻게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시는지 궁금합니다만)
저는 우리 집사람이 "여보, 얘기 좀 해요!" 그러면,
제가 마지못해서 "그래, 이야기해요"라고 그리고
한 1분이 지나면 제가 이렇게 꾸벅꾸벅 졸았어요.
그럼 집사람이 얘기하다가 화가 나서, 그냥 굉장히 고통스러워했는데
집사람이 그렇게 저한테 뭐 그냥 잔소리와 더불어서
여러가지 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때, 제가 속으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우리 집사람의 잔소리 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우리 집사람을 초월하게 해 주세요.'
제가 우리 집사람을 뛰어넘는 영성과, 뛰어넘는 지혜와 능력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우리 집사람이 저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아휴 밴댕이 소갈딱지..."
(*아량이 없고 속 좁은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
혹시 아내로부터 그런 얘기 들어보신 분 계세요?
근데 많은 여자들이 자기 남편에게, 남자가 이렇게 체격이 크잖아요.
그리고 남자가 가정에 가장이라고 그러는데, 마음은 반대로 소심하다는 거죠.
근데 제 집사람이, 폐암2기에서 말기 암으로 진전이 되고,
생명의 불이 꺼져 갈 때, 그때 제가 비로소 철이 들었어요.
그리고 우리 집사람이 제게 했던 많은 이야기들은
저를 조정하고 통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찌질한 저를 세워서, 하나님께 데려다 주고 싶었던 열망이 있었던 겁니다.
▲아내가 소천한 후에, 제가 부부 세미나 강사를 여러 번 했습니다.
집사람이 떠나고 난 다음에, 제가 회한의 슬픔으로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니니까
어느 교회에서 코비드 기간 동안에, 부부 세미나를 해 달라고 저한테 요청을 했어요.
제가 6개월 동안 준비해서 온라인으로 부부세미나를 했는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가 리서치를 했는데
모든 여자 성도님들이 남편에게 이야기하는 많은 것들이
'남자를 조정하거나 통제하려고 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제가 발견했어요.
어떻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권사님, 여집사님들
남편을 자기 손에 쥐고 그냥 들었다 폈다 하고 싶은 마음 가운데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십니까?
아니면 남편이 좀 잘 되기를 그냥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십니까?
근데 남자들은 99.9%가, 자기 아내가 무슨 얘기를 시작하면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나? 또 뭘 괴롭히려고 이렇게 하나?'라고 하는..
진짜 속좁은 남자의 마음을, 제가 부부 세미나 리서치를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 우리 목사님들이 와서 앉아 계시잖아요. 목사님들께 부탁합니다.
목사님들은, 사모님의 조언에, 사모님의 몸부림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사모님이 행복해야 목사님의 목회가 잘 이루어지고,
사모님이 행복해야 목사님이 오래오래 사모님과 행복하게 사실 수 있습니다.
사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도록 하려면, 그냥 저처럼 꾸벅꾸벅 졸아도 괜찮습니다.
사모님이 말을 시작하려고 그러면, 고개를 싹 돌려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제가 우리 집사님이 떠나고 난 다음에, 너무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렇게 우리 집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영적인 이야기, 하나님에 대한 얘기,
경건서적을 읽고 영감 받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 때,
제가 잘 들었더라면... 우리 집사람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건강하게 인생을 오래오래 살았을 텐데...
제가 그런 얘기를 전혀 듣지 않아서...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에 슬픔을 갖고...
'그래서 혹시 암에 걸리지 않았을까?
혹시 내가 간접 살인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 많이 슬퍼하고 회한(후회와 한탄)에 젖을 때가, 제게 참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 목사님들 여기 많이 계신데, 사모님이 오래 사셔야 합니다.
왜냐면 사모님이 오래 사셔야 우리 목사님이 목회를 잘 하실 수 있으니까,
사모님의 그 몸부림치는 조언에 귀를 잘 기울이십시오.
남자 성도님들이 여기에 그냥 가뭄에 콩나듯이 있는데
우리 장로님, 남자 집사님들, 부인의 이야기를 잘 들으셔서
아무쪼록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제 집사람이 제 인생의 불행의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분들은 '누가 내 인생에 불행의 요소인가요?'
뭐 남자들은, '어휴 저 말 안 듣는 마누라.. 나한테 순종하지 않는 저 인간..
나를 발에 때만도 못하게 여기는 저 마누라...'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속 썩이는 자식, 가난, 또 뭐 직장 상사,
그 다음에 과거의 상처, 질병...
이런 것들을 다 내 인생의 불행의 요소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사탄은 종종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피해자야, 네가 진짜 그거 때문에 네 인생이 불행한 거야'
라고 계속 얘기를 합니다.
과거에 저도, 한 때 그걸 (제 불행의 이유를) 초월하게 해 달라고 제가 기도를 엄청 했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전혀 안 들어 주셨어요.
우리가 '내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요소를 없애 달라'고 기도하잖아요?
하나님이 없애 주시겠어요, 안 없애 주시겠어요? (안 없애주세요. 바울의 3번 기도처럼)
나를 불행하게 하는 요소, 그게 자녀질 수도 있고, 환경일 수도 있고,
가난일 수도 있고, 질병일 수도 있어요. 근데 하나님은 그걸 안 없애 주세요.
대체로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기도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인지 아세요?
'내 인생의 불행의 요인이 바로 나 자신, 내 자아 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피해자다!' 라고 하는 이 열등의식에서 우리가 벗어나기를 원하시거든요.
근데 내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요소가, 나 자신이 아니라,
'너 때문이다' 라거나,
아니면 '그 무엇 때문이다' 라고 이렇게 우리가 손가락질 하면,
그러면 나는 남은 평생 피해자로 살아갑니다.
평생 찌질하게 살다가 인생을 마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우리 인생의 무게는, 내 자아의 무게이다'
내가 자아가 깨진만큼, 우리 인생이 자유롭고, 행복하고, 기쁘게 살 수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진짜 주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내가 주님을 살해한 살인자고, 내가 내 문제의 중심이고,
내가 악의 축이고,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누구도 내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요소가 아니고,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내 과거도, 내 상처도, 내 슬픔도, 내 질병도,
나를 불행하게 하는 요소가 아니라
'내 인생에 내가 최고의 원수다!' 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저는 가장 성령 충만한 표식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인데,
그게 바로 지정의가 가장 정상적으로 활동할 때가
가장 성령 충만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 권사님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도록 지음받지 않았고요,
남자는 일을 사랑하도록 지금 받았습니다.
남자는 목표를 지향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task oriented
그래서 남자는 대체로 아내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남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지만
그러나 남편은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죠. (부부가 둘 다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거죠)
이 큰 갭 가운데서
'내가 가해자다' 라는 인식이 들어오면
그러면 비로소 진짜로 거듭난 것입니다.
진짜로 이게 지정의가 완전히 딱 정상적으로 활동하면
그때 정말 구원이 확정된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구원을 확정해 주겠습니까?
24시간 같이 있는 여러분의 아내요, 남편입니다.
'정말 우리 집사람이 이제 나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정말 우리 남편이 나를 이제 사랑한다.'
그때 우리의 구원이 증명되고, 우리가 거듭난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변화가 되는데
여러분 그 확증을 꼭 받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령의 은혜가 우리 안에 충만할 때,
정말 지정의가 똑바로 서게 되며
남자는 '야, 내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내가 아내의 몸부림에 내 귀를 딱 막고 듣지 않았구나' 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아내를 사랑하게 되고요.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지 않다가,
진짜 성령이 충만하면 남편을 존경하게 될 때,
그때 남편이 감동을 받고 덩달아 은혜를 받게 될 줄 믿습니다.
근데 아내와 남편 중에, 누가 먼저 존경하고 사랑하느냐?
오늘 저녁에 여기 참석하신 여러분께서
여러분께서 먼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면요.
거기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영성가가 '자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옛 자아는 타인의 수용과 인정에 집착한다.
과거의 성취와 아첨에 행복해하고, 엘리트 집단에 속하기를 원하고,
종속관계의 전형이다.
옛 자아는 나를 두려움 속에서 살게 하고
기만하고, 남의 마음에 들고 싶은 욕망으로 자신을 속인다.
그래서 사람과, 일과, 사업에 과도하게 자신을 내어주고 (일 중독이 되고)
자아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위장하고, 완벽하게 보이고 싶어서
다른 사람에게 비위를 맞추면서 수용과 인정을 얻기 위해
흥분과 우울이 왔다 갔다 한다.
돈과, 권력과, 외모와, 성적 쾌락과, 인정과, 지위의 추구를 통해
내가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고,
성공의 환상을 늘 가지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높은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해서
유력한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자아이다' 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자기 부인, 자아의 죽음의 예
제가 되게 좋아하는 리차드 리오 라는 영성가는
<위쪽으로 떨어지다> 책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인생이 몰락하고 실패해야
영적인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주님께 갈 수 있다'
제가 선교사로 파송받고 아마존에 가서 사역을 하면서
뭐 매일 무더운 더위, 많이 물리는 벌레들, 높은 습도,
말라리아, 댕기열 같은 질병... 이런 것들이 우리를 참 많이 힘들게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힘들게 했던 것들은
저희를 그 땅에서 쫓아내기 위한 사탄의 공격이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원주민은 저희가 마시는 샘물에다 독을 타서 우리를 살해하려고 했고요.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꼬투리를 잡아서 경찰에 고소를 해서
제가 경찰서, 법정에 여러 번 섰습니다.
중상모략을 하고, 투서도 하고
또 어떤 청년이 큰 정글도 machet 을 들고 저를 죽이려고 좇아오기도 했어요.
여러 가지 이런 저런 핍박의 역사를 많이 받았고요.
어느 선교사가 '선교의 열매가 많이 맺어졌다'고 간증하잖아요.
그럼 그 뒷면은 배신의 역사예요.
얼마나 많이 배신을 당하는지...
그 배신만 당하면 괜찮은데, 등 뒤에 와서 칼을 꽂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이런 일을 참 많이 당하면서
'하나님, 이 핍박을 멈춰 주시옵소서, 핍박을 멈춰 주시옵소서!'라고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님, 제가 그를 용서합니다. 정말 용서하고 축복합니다.'
라고 새벽마다 눈물 콧물 쏟으면서 기도를 많이 했는데,
기도를 마치고 나와서 몇 시간 지나고 나서,
'그 사람들이 또 저한테 무슨 일을 작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아침에 용서하고 축복하고 눈물 콧물 쏟으면서 기도했던게 다 무위로 돌아가더라고요.
여러분, 배신 많이 당해 보셨습니까?
배신의 아픔은 참 크고 쓰라린 일인데요. 근데 예수님도 배신 당하셨잖아요.
믿었던 사람들한테 배신당할 때, 제가 아주 아주 힘들었어요.
근데 어느 날 아침에, 또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제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저보고 '회개하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회개를 왜 제가 합니까? 누가 저를 괴롭히는데요?
그 사람들이 작당을 해서 저를 괴롭히고, 뭐 고소하고, 중상모략하고, 투서를 보내고,
모든 인디오 마을에 편지를 보내서
김철기 선교사는 이단이다. 김철기 선교사는 잘못됐다. 그를 만나지 말라 라고 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회개는 저들이 해야지요' 그랬어요.
그랬더니 주님이 뭐라고 그러시냐면
'그들이 너를 미워하지만, 그래서 핍박을 시작했지만
네가 그 핍박을 받으면서 그들을 미워했던 그 미움을 생각할 때,
말하자면, 그들의 미움과 너의 미움을 비교할 때
네가 그들을 미워한 미움이 작냐, 크냐?' (제 미움이 더 크다는 거죠)
근데 제가 하도 핍박을 받으니까
진짜 그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여러분도 배신당하고 고통당하면,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으세요?
너무 착하셔서 한 번도 없으셨습니까?
저는 진짜 죽이고 싶은 생각이 막 들더라고요.
근데 하나님이 제게 '회개하라'고 하시면서
'그가 너를 미워했지만, 네가 그를 미워하는 것은 더 큰 것이고,
그리고 너는 공부도 많이 했고, 너는 가진 것도 많은데,
그가 너를 미워했다고 해서, 너가 그를 향한 그 증오와 분노와
살해의 의도까지 가진 너는 더 악하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회개를 시작하는데, 우리가 회개를 도매금으로 하고 싶어 하잖아요.
'하나님의 전부 용서해 주시옵소서네' 그게 아니에요.
마귀가 우리한테 들어오잖아요. 근데 마귀는 우리의 허락을 받고 들어옵니다.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데, 마귀가 자기 임의로 들어오지는 못합니다.
내가 분노를 일으키고, 미움을 일으킬 때,
그 분노와 미움을 통로로 해서, 사단이 이렇게 우리 속에 들어오잖아요.
그럼 그게 일종의 교두보처럼, 내 속에 거점을 만들어 갖고,
우리 마음 속에 꽉 차기까지 점점 자기 영역을 확장해 나가게 되는데,
이거를 처음부터 한 사건 한 사건을 통해서, 이거 회개하고 뽑아내고,
그 다음 것도 회개하고 토설하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가운데,
도매금이 아니라, 소매로 아주 상세하게,
내 마음을 토하고, 내 마음을 주님께 토설하게 될 때,
그것이 (분노의 영, 미움의 영이)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얼마나 시간이 많이... 몇 달이 걸렸어요.
회개를 계속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또다시 계속 그런 일이 일으키는데
제 마음에 이제는 격동 되지 않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래서 '야 내가 비로소 믿음의 방패를 가졌구나'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방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믿음의 방패는, '네가 나를 미워해?
나는 네가 아무리 나를 미워해도, 나는 너의 미움에 상관없어!'
그리고 딱 내밀면서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믿음의 방패를 가졌어!'
이렇게 외친다고 사탄이 물러가지 않아요.
그래서 물러갈 사탄이면, 애당초 그렇게 공격하지도 않죠.
우리가 그 사탄의 공격에, 내가 정말 사건 하나하나마다
다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그렇게 계속 회개하면은요,
내 마음속에 이 사단이 심어 놓은 미움과 분노와 고통의 에이전트(교두보, 거점)가
이게 쑥 빠져나가면서, 우리 마음이 아주 평안해지고,
사람들이 무슨 일을 꾸며도
그들이 저를 향해서 쏘는 독화살이 (제게 미치지 못하고) 그냥 밑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을
제가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회개를 다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저한테 영감을 주시는데,
'야 누가 너의 은인이냐?'
'하나님, 제 은인은요, 제가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많은 분들입니다'
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 주시고, 헌금을 보내오셔서
제가 50~60명 그렇게 신학교 안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제공하면서
기숙사에서 학용품도 제공하고 모든 것을 제공하면서, 인디오들을 공부를 시키거든요.
한 달에 들어가는 생활비가 얼마나 많겠어요.
거기에다가 또 병원선이 한번 출항해서 전도와 치료의 일을 하잖아요.
그럼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겠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저희를 위해 헌금해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사역이 계속 이루어지는 그분들이 제게 은인 입니다.. 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하나님은 '그래, 그분들도 참 네게 은인이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그런데 또 네게 은인이 있는데, 누가 너를 내 앞에 데려왔느냐?
누가 너를 눈물 콧물 빼고, 네 무릎을 내 앞에 꿇렸느냐?' 라고 주님이 반문을 하시더라고요.
생각해 보니까, 제 눈에 눈물 콧물을 다 빼게 해 준 사람들,
저를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겸손하게 하고, 회개하게 한 사람들은
'악인도 악한 날에 사용함을 받는다'고 그랬는데 잠16:4
그 사람들이 저를 주님께 데려다 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 눈이 확 열렸어요.
'아 그렇구나, 나는 지금까지 그들(핍박자들)을 생각하면서 몰랐는데,
그들이 정말 나를 도와준 사람이었구나...
그들이 나를 주님 앞에 주님 앞에 데려다주고, 겸손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구나...'
하나님이 그런 감동을 제게 주셨을 때,
비로소 그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존에서 제게 좋은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정말 제가 기뻐하고 감사했던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기뻐하고 좋은 일 좋았던 일들은, 일주일만 지나면 잊어버리잖아요.
근데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많은 사건들은
정말 내게 깊은 교훈을 주었고
'내가 고난받은 것이 유익이라. 내가 고난을 통해서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시편 119:71절이 말씀하는 그런 사건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래서 '야 정말로 고난이 나를 주님께 데려다 주었고,
악한 사람들이 나를 주님께 데려다 주었구나' 라는 것을 제가 생각하게 되면서,
이제는 '고난이 올 때, 또 좋은 일이 올 때
그것에 그렇게 감사하지 그렇게 너무 감격하지도 않고, 그렇게 너무 슬퍼하지도 않고,
그런 것들을 잘 핸들링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좋은 일에 너무 감격해하는 것도.. 적당히 감격하는 것이 좋지요.
고난에 너무 괴롭고 슬퍼하는 것도.. 다 주님께 가까이하게 하니까 좋은 계기가 되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풍성한 삶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이 풍성한 삶은, 내 자아의 죽음을 통해서,
즉 우리의 영적인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고후1:8~10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사도바울은 '아시아에서 우리가 받은 환란이 너무 커서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살 소망까지 다 끊어졌다' 고 회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까, 주님이 그렇게 섭리하신 것은
'우리가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하는
사도바울의 감사의 찬양이 있었습니다.
1:9 '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
주1)
근데 과거에 이런 반기독교적 영화가 있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딱 달려 있는데
막달라 마리아가 내려오라고 그러니까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따라서 예수님이 거기서 내려와서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살았는데
아주 노인이 되어서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회상하는
그런 반 기독교적인 영화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