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9o4NTkRwdk4
20:50초부터 녹취
◈로잔 운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 ▣ 해외 선교
1974년 제1차 로잔대회, 스위스 로잔, 로잔언약 Lausanne covenant
1989년 제2차 로잔대회, 필리핀 마닐라, 마닐라 선언 Manila manifesto
2010년 제3차 로잔대회, 남아공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 서약 Cape town commitment
'로잔 운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박형진 교수
◑제1차 로잔대회 Lausanne I 스위스 로잔 1974
로잔운동은 1974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계 내에서, 자유주의 운동에 대한 복음주의 진영을 결집하는 대회였습니다.
두 분의 지도자를 통해 시작되었는데,
존 스토트 박사님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입니다.
저는 로잔운동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섭리가 느껴집니다.
왜냐면 바로 이 두 분의 콤비에 의해서 로잔운동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빌리 그레이엄은 대표적인 복움전도자 evangelist 이시죠.
과거 미국 기독교계의 아이콘이셨죠.
그런데 이분이 사실은 굉장히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파트너가 영국의 존 스토트 목사님, 이분은 신학자입니다.
그래서 신학자와 전도자와,
머리와 가슴,
머리와 손과발이 같이 만난 것입니다.
이것이 로잔운동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균형의 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두 인물이 갖고 있는 상징성은,
로잔의 어떤 균형 balance 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
한 분은 미국 분이고, 또 한 분은 영국 분이세요.
미국과 영국이 같은 서구권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기질의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볼 때, 미국은 굉장히 실용주의적이고, 굉장히 액티비스트, 즉 활동 중심적이고요.
그런 멘탈리티와 스피릿이 있다면,
영국은 좀 더, 어떻게 보면 사고형이고,
굉장히 중립적인 입장,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는...
영국이 갖고 있는 '신사도' 문화도,
영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별한 기질인데,
언제나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그러한 성향이 영국 사람들한테 많이 있어요.
그래서 같은 '복음주의'라 하더라도
미국적 복음주의는, 나가서 전도하고, 캠페인 하고, 이런 활동적인 것이라면
영국의 복음주의는, 조금 다른 면이 있어요.
그리고 영국은 미국보다 훨씬 산업혁명 같은 것을 일찍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대표적인 복음운동주의자 중에 한 분이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죠.
웨슬리 목사님 당시에 벌써 영국은, 산업혁명, 산업의 문제들이 너무 심각하게 나타나서,
단지 복음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 산업사회 속에서, 노예제도, 도시 노동자,
이런 데서 나타나는 그 사회의 음지들을 너무 많이 본 거예요.
노예해방운동도 미국보다는 영국이 먼저 일으킵니다.
그래서 '사회적 관심'이 많은 것이, 영국의 복음주의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존 스토트 목사님 외에도
영국의 복음주의자 가운데 마틴 로이드존스는, 설교가로서 유명하신 분이죠.
그분도 상당히 래디컬한 면이 있었어요.
그래서 영국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어떤 교리적인 이슈,
성경에 대한 어떤 이슈에 있어서, 첨예한 갈등이 있었을 때
로이드존스는 떨어져 나오려고 그랬어요. '나는 같이 못 나오겠다. 떨어져 나오겠다'
이랬을 때, 그 떨어져 나오는 것을 반대했던 분이, 바로 존 스토트 목사님입니다.
그러한 어떤 균형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로잔 운동이 갖고 있는 어떤 균형,
로잔 운동이 강조하는 복음전파와 아울러 사회적인 영역에 대한 관심의 균형,
또 로잔 운동이 놓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연합의 문제,
이런 것들은, 만약 미국 독자적 주도하에서 이 운동이 시작이 되었다면,
사실 그런 그림이 그려지긴 어려웠을 거예요.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온 분들이라서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운동을 하다 보니까
대단히 많은 분파가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영국은 좀 상황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러한 미국과 영국,
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과 존 스토트 목사님,
전도자와 신학자의 컴비네이션이
어떻게 보면 로잔 운동이 갖고 있는 하나의 구조요, 어떤 기질, 틀입니다.
1974년 로잔대회는 이런 것을 형성한 처음의 단초였습니다.
▲한 분을 더 소개할게요.
1차 로잔대회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바로 랄프 윈터 박사님입니다.
당시에 풀러에서 선교학을 가르쳤던 교수님이시죠.
자 이분이 얘기했던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미전도 종족>에 관한 이론입니다.
1차 대회에서 랄프 윈터 박사가 주창한 것은, '종족 people group' 개념이었습니다.
선교 모라토리움(선교 더 이상 안 해도 된다)을 1973년 경에 얘기가 나왔을 때,
당시 선교사들이 이해했던 세계 지도는 '국가 중심의 선교 현황'이었어요.
국가 중심으로 보니까, 이미 세계 모든 국가에
선교사들이 거의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전 세계에 선교사가 안 들어가 있는 나라가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을 이제 다 하지 않았느냐?
이제는 거기있는 현지 목회자나 현지 지도자들의 몫이다.
우리가 가서 괜히 방해 하지 말고,
우리가 괜히 그들의 역할을 빼앗지 말고, 더 이상 선교사를 안 보내도 될 거다'
라고 얘기했지만, (로잔 대회 직전의 세계적 추세, 분위기)
여기에 반전을 가져오신 분이 랄프 윈터 박사입니다.
'그게 아니다. 우리가 선교를 이해할 때는, 국가 단위가 아니라
언어와 종족 (피플 그룹) 단위로 봐야 된다.
그러면 지구에 22,000개가 되는 엄청난 많은 종족이 있고,
그 종족 가운데 아직도 절반 이상이 복음을 듣지 못했다. *1974년 상황
그리고 자국 선교사들, 혹은 자국 목회자들에게
미전도 종족 선교를 맡겨야 되는 건 맞지만,
처음에 그것을 돌파시키는 에너지는, 자국 사람들에게는 한계가 있다..'
라고 얘기를, 랄프 윈터 박사가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 선교를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은,
외국 선교사가 나가서, 선교의 돌파구를 열어주어야 된다고 주장했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한국 안에 일본 사람들이 사는 어떤 지역이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갖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서로가 앙숙이잖아요. (해방 직후에 심했죠)
그러면 한국인들이 쉽게 전도하러 안 갑니다.
이럴 때 자국 사람들한테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제3지역에서 오신 선교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돌파구를 여는 거죠.
그래서 그곳에서 성도들을 일으키고 세우고 훈련시킨 다음에
거기서 자체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게 될 때, 미전도종족 선교가 성취되게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선교사는 더 들어가야 되고, 계속 들어가야 되고,
더 많이 들어가야 된다 하는 얘기 입니다.
이렇게 랄프 윈터 박사님의 <미전도 종족론>이, 로잔 대회를 통해서 전세계로 알려지고,
우리 한국 교회까지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선교운동이, 외국으로 무조건 선교사를 내보내는 것이었다면,
로잔 대회 이후로, 세계 선교의 방향이 '미전도 종족 선교 우선'으로
그 초점이 모아지게 된 것이죠.
로잔 언약을 기초한 분이 존 스토트 목사님이 되십니다.
◑제2차 로잔대회 Lausanne II 마닐라 1989
두 번째 로잔 대회가 열린 곳이 마닐라 대회 입니다.
(스위스) 로잔 대회가 열린지 15년이 지나서였죠. 이때는 어떠한 변화들이 있었는가요?
이때 나온 운동이 "AD 2000 and beyoud movement"가 나옵니다.
이때가 1989년도니까, 이제 11년만 지나면 21세기가 되고, 3번째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그런 시기를 앞두고 있었죠.
그 시기에, 정말 복음 전도의 열정이 있었던 사람들이
'이 남은 11년 동안 총체적으로 한번 미전도종족 선교에 진력해 보자'
그렇게 해서 나온 운동이 바로 AD 2000 and beyoud movement 입니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두 분이
토마스 왕 목사님과 루이스 부시 목사님이시죠.
한 분은 중국 분이고, 한 분은 아르헨티나 분이십니다.
앞서 로잔 대회 1974 의 리더십은 영국과 미국이었죠.
1989년 마닐라 대회에서는
중요한 리더십에 아시아권, 남미 권에서 지도자가 나왔다는 것은
로잔 운동이 비서구권에 확대되기 시작했고,
비서구권의 지도자가 부각되고, 부상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리고 '마닐라 선언'을 채택하죠. Manila Manifesto
그래서 1974년도에 시작한 운동이,
1989년도에 마닐라 운동과 함께
AD 2000 and beyoud movement 로 발전되면서,
1995년도에 이르러서 미전도 종족사역에 좀 더 효율적으로
사역을 하자는 '여호수아 프로젝트' 그 다음에 '지코위 모임' 이 생겨나게 되고,
위 두 모임은 로잔 운동의 파생 모임, 하위 대회.
특히 지코위 모임은 1995년도에 세계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열렸죠. 주1)
1995년도에 화두가 '미전도종족 선교'였고요.
'이것을 어떻게 한국교회가 감당할 것이냐?'가 중요한 과제였는데,
여기에 영향을 받으신 분이 하용조 목사님, 그리고 온누리교회였습니다.
(이 시기에 횃불 신학교도 로잔 운동의 백그라운드 가운데 태동됐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흐름이 지난 역사에 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한국교회도 로잔 운동에 깊이 연관이 됐었고
이 로잔 운동이, 미전도종족 복음화, 또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기대했던 것은
우리 한국교회의 인력과 능력과 헌신이, 로잔 운동에 충분히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1995년도에 전략적인 모임이 한국에서 있었습니다. *GCOWE 대회, 온누리교회
◑제3차 로잔대회 Lausanne III 남아공 케이프타운 2010
이때는 누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느냐? 두 분인데요.
미국의 더그 버드셀 목사님이 의장으로서 서게 되고요.
존 스토트 목사님이 신학적인 어떤 골격을 형성하신 것처럼,
케이프타운 서약의 골격을 갖추신 분은 크리스토퍼 라이트 박사입니다.
이분은 존 스토트의 후계자요, 제자이신 분입니다.
(*198개국에서 온 4,200여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2010년 10월 16~25일간 케이프타운에서
세계복음화를 위한 제3차 로잔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대회의 규모는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에서 참여한
수천 명의 참가자들로 인해 더 확대되었고, 케이프타운 서약을 채택합니다.)
*1차, 2차, 3차 로잔대회 선언문 보기 https://gospel.tistory.com/428
https://wcnlink.tistory.com/2510967
◑로잔 운동의 변화 추이
로잔 운동이 시작된지 지금까지 50년이죠. 반 세기 동안 긴 시간을 거쳐 왔어요.
그럼 우리가 1차, 2차, 3차 로잔대회를 거쳐오면서
<로잔 운동 내에는 어떠한 변화, 어떠한 추이가 있었을까>를 살펴볼 필요가 있죠.
제(박형진 교수)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1974년에서 1989년 케이프타운으로 가면서
먼저는 유럽, 스위스 로잔에서 모였잖아요.
그 다음에 1989년도에는 아시아, 필리핀에서 모였고
그 다음에 2010년 아프리카 남아공에서 모였어요. (대륙을 옮겨다녔어요)
그러니까 로잔 운동이 글로벌화 되어졌다는 거죠.
또 비서구적인 많은 리더십들이 여기에 조인하게 되는
"리더십의 확장"이 있게 됩니다.
동시에 로잔 운동에서 얘기하고 있는 화두,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확장도 있었습니다.
1974년 로잔대회의 모토는 'Let the Earth Hear His Voice
온 세상으로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라'
1989년의 마닐라 대회의 모토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를 선포하라:
온 교회가 온 세상에 온전한 복음을 전하라는 부름” 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죠.
Proclaim Christ Until He Come:
Calling the Whole Church to Take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
198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170개국에서 약 3,000여 명이 모였습니다.
여기서부터 'whole 온전한' 이라는 말이 강조되기 시작했어요.
자 여기서 이제 '통전적(온전한) 복음' 이라는 개념이, 로잔운동 안에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974년 로잔 언약은 '우리 개인의 문제'를 중점해서 다루었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살아야 되는가,
또 인류가 감당하고 있는 문제들,
사회가 감당하고 있는 문제들.
그러니까 개인-사회-인류 라는 세 영역의 문제들을, 로잔 언약이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개인전도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문제, 또 사회적인 이슈도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1989년도에 오면서,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됩니다.
그게 바로 영적인 영역 spiritual realm 입니다.
비서구 세계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영적인 싸움, 축사, 신유,
이런 것들은 과학화된 서구의 세계관 속에서 좀 외면 당하고 있는 현실인데,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정말 기도하지 않고서는 병이 나을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없어요.
이것이 굉장히 신학적으로 중요한 영역이었습니다.
이것이 빠져 있었는데, 이게 마닐라 선언문에서 추가되고 상당 부분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선언문 채택한다고 뭐가 현실적으로 크게 달라지는게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방향성 제시, 세계의 흩어진 지체들의 공통된 추구점 제시 등에는 의미가 있겠죠.
로잔운동은 결집력이 상당히 약한게 흠이라면 흠입니다. 공통된 결집 기반이 없으니까요)
2010년도 케이프타운 서약의 주제는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하시는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
God in Christ, Reconciling the World to Himself 고후5:19' 입니다.
'화해' 이것이 중요한 화두였어요. 또한 남아공이 '흑백의 화해'가 사회적 화두였죠.
그러면 1989년도의 마닐라 선언에서
2010년도 케이프타운 대회로 지나오면서, 또 한 가지 요소가 여기에 첨가되었는데,
바로 '환경, 생태 문제' 이슈 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환경, 생태문제는 로잔대회에서 첨예한 이슈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2000년도가 넘어서면서 지구온난화, 공해, 환경 오염 문제
이런 것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되기 시작했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질서를 다시 회복하자는 환경 이슈의 대두가 필요하지만,
이런 이슈들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중생-회심-새사람-성령 등 복음의 원래 요소들을
희석시킬 위험성도 있습니다. '또 다른 사회복음'으로 나아갈 수 있죠.
이전의 사회 복음은 민주화, 반독재, 인권 회복이 그 주제였고요.
그렇지만 로잔은 포괄적인 통전적 복음 whole gospel 을 추구합니다)
또 이전에는 이런 이슈들이, 복음주의권이 아닌
에큐메니칼 (WCC) 진영에서 주로 다룬 이슈들이었습니다.
근데 2010년 케이프타운 대회부터, 로잔운동이 이제 이런 이슈들을
손 대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이렇게 로잔운동은, 대회를 거듭할수록
리더십 뿐만이 아니고,
로잔운동이 커버하고는 영역과 주제들도
처음보다는 매우 확대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확대 속에서 통전적 선교'라는 말로, 함축해서 설명할 수 있죠.
▲Why Lausanne? 왜 로잔운동이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로잔운동이 도대체 오늘 우리와, 나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정말 이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를 물을 필요가 있죠.
로잔 운동의 특징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또 우리가 얘기하는 이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나타난 여러 가지 이슈들을
우리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로잔운동의 특징을, 저는 이렇게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대단히 압축해서 말씀드리는 것이고, 비약해서 말씀드리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은 1974년, 1989년, 2010년의 이러한 하위 모임들, *지코위 같은
또 그 중간 중간에 있었던 많은 로잔의 문건들을 종합해 본다면,
로잔운동은 두 가지를 같이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첫째는, 복음전도입니다. 대위임령에 대한 헌신입니다.
이거는 로잔이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로잔운동이 확대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해도,
만약 이것이 빠지게 되면, 로잔의 존립 기반이 없는 거죠.
복음전도, 해외선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로잔의 중요한 이슈고, 목표고, 또 화두입니다.
동시에 사회적 책임이 점점 비중이 강조되고 있죠.
그래서 로잔은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에 균형을 맞추고 있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2) 두 번째, 사회적 책임을 얘기할 때, 우리가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
근데 이제 우리가 논리의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는 것이죠.
WCC가 사회적 책무에 대한 얘기,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로잔이 또 사회적인 얘기를 많이 해요. 그러면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어요.
'로잔이 WCC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로잔이 WCC와 타협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사회적 책임'은 로잔드 그렇고,
WCC가 같이 얘기하고 있는 공통적인 영역입니다.
그럼 지금 뭐가 로잔과 WCC를 차별화시키는가요?
그건 아까도 말씀드린,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
또 죄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이 무엇인가?
이것이 결국은 로잔과 WCC,
혹은 복음주의와 비복음주의를 나누는, 그런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WCC가 대체로 자유주의 쪽으로 기운다면, 로잔은 복음주의 쪽을 견지하죠)
'로잔도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고?
그러면 WCC와 비슷하네.. 좌파네...'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판단일까요?
복음에는 전도 명령과 더불어 문화 명령도 있습니다. cultural mandate
성경에는 하나님의 창조 영역과, 하나님의 구속 영역에 강조가 균형 있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교적 책무를 얘기할 때도, 로컬과 글로벌 두 영역이 동시에 강조되죠.
미전도 종족, 해외선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서구에서 또 반성적인, 자성적인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쪽에만 치우치는 것에 대한 반성입니다.
또 한국에도 요즘 소개되고 있는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 가 부상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에 너무 로컬 처치(지역교회)에 대한 관심이 컸고,
글로벌 처치(세계적인 교회)에 대해서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에 대한 반성이죠.
또 반대로, 우리가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에는 관심이 있었는데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로컬에 관심이 없었다는 반성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로컬 과 글로벌 간의 균형, 로잔은 그것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전도와 연합,
우리가 아무리 전도도 중요하고, 아무리 우리가 믿는 신앙의 확신도 중요하지만,
그 확신 때문에, 내가 옳다는 어떤 그런 입장 때문에,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분열을 많이 해왔고, 화해하지 않고, 통합하지 않고...
이런 연합의 문제도 복음주의 안에서 심각한 반성의 이슈로 로잔이 제기합니다.
마치는 말
우리가 이제 '복음주의 Evangelical'라고 얘기하고
복음주의적인 입장에서 로잔 운동을 얘기 할 때,
로잔운동은 우리에게 어떠한 도전과 시사점을 주고 있는지, 정리해보았습니다.
복음전도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복음대로 살아내느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이제껏 중요하게 잘 강조해 왔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복음을 정말 우리 삶 속에서, 우리 인격속에서 드러냈느냐?
데몬스트레이션 했느냐, 위트니스 했느냐? 성경적 표현으로 '증인이 되었느냐'
이 부분을 굉장히 로잔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로잔운동은 양날의 칼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유주의에 대한 반박입니다. 당연하죠.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또 죄의 심각성에 대해서 반박으로 일어난 운동이 로잔이었다면,
-또 하나는 복음주의 안에서의 반성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다는 거죠.
사회적인 영역, 생태계와 환경적 이슈들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다는 거죠.
또 로컬에 대한 무관심, 이런 것들에 대해서
로잔운동은 또 한번 각성을 하자는 거죠.
이것이 로잔운동이 갖고 있는 특징의 '양날의 칼'입니다.
..........................................
주1) 지코위 대회 http://torchcenter.org/03_world/world_0101.html
'95 세계선교대회 (GCOWE : Glob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는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전인류적 총체, 총력 선교의 필요성에 따라
세계선교전략을 의논하기 위해 1995년 5월17일~26일까지
대한민국 서울 횃불선교센터와 충현교회, 사랑의교회에서 동시에 진행된 국제적인 선교행사.
이 대회는 제3세계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자비량 선교대회이기도 했다.
"AD2000년까지 지역마다 교회를 사람마다 복음을" 이라는 주제로 열린 본 행사에는
217개국에서 4,700여명의 대표와 한국 대학생 7만여 명 등 총 10만여명이 참여하여 진행되었다.
의의와 목적
10/40창이라는 선교전략 개념은 북위 10도에서 40도 사이에 미전도 종족이 밀집되어 있는데
이곳을 선교요충지로 보고 선교하자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본격화는
1995년에 횃불선교센터에서 열린 GCOWE’95 (Glob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로 시작되었다.
1. 전세계적인 사역의 환경을 점검하고 21세기까지 지상명령을 성취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개발하는 것
2. 국가단위 선교 전략에서 종족 단위의 선교전략으로 완전한 전환을 이루는 것.
3. 미전도 종족이 집중된 10/40 미전도 창문지역을 중심으로 사역을 전개하고,
각 사역별 대단위 협력을 이루는 것.
결과
1. 참석자 4,500명 가운데 80%가 이런 국제적인 선교대회에 처음으로 참석하였고,
25%가 여성이며, 약 70% 이상이 제3세계 국가에서 왔기 때문에
대회 분위기가 제3세계 교회지도자들이 세계선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됨.
2. 10/40 창문 지역에 있는 미전도지역에 초점을 맞추어 전세계 교회가
합심하며 기도하며 이 지역을 복음화시키자는 선교적 도전에 기여.
3. 대회 기간 중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 모였던 SM2000 집회에서는
8만 명의 기독청년들과 기도하는 어머니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며 헌신.
그리고 이런 대학생 대상의 SM2000 세계복음화 운동은
전세계 교회 기독청년들에게 확산되는 열매를 가져다 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