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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두려워하는 당신을 위한 메시지

LNCK 2024. 2. 25. 16:54

돈 때문에 두려워하는 당신을 위한 메시지   마6:24~34       설교녹취, 정리

◑도입                     

우리 모두가 가진 문제점은 바로 이것이죠. 
물질주의에 깊이 물들어서, 우리는 돈과 미래에 대해서 끊임없이 걱정합니다. 

돈이 적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걱정하죠. 
또 돈이 많은 사람도 걱정해요. '이 돈을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더 불려나갈까?' 
끊임없이 고민하죠. 

직장이 없거나,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은 
'어떻게 하면 직장을 얻고, 더 나은 직장을 얻을까?' 고민하고요. 

또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직장이 있는 분도 
'내가 이 직장을 잃지 않을까?' 매일 두려워하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가졌는지, 갖지 않았는지'로 
자신의 삶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죠. 

많은 젊은이들이 '집이 없어서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에게 집 장만을 해주지 못함'에 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죠.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 결혼할 수 없고, 
또 돈이 많은 사람은 또 나름대로 더 나은 배우자를 찾아야 돼서 
혼기를 놓치는 경우도 굉장히 흔한 세상입니다. 

▲한국의 젊은 남녀들에게 '왜 결혼하기 힘드냐?'는 질문을 했을 때 
어떤 대답이 1등을 했을까요?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결혼하지 못합니다' 라고 대답했어요. 

근데 여성분들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여성분들 이렇게 대답했어요. 
'괜찮은 사람이 없어서 결혼하기 힘듭니다' 자 무슨 말이죠? 
'경제적으로 여유 있으면서 외모가 마음에 드는 분이 많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요즘 젊은 부부가, 아이를 갖지 않은 이유를 들을 때, 저는 정말 안타까워요.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경제적 불안정'으로 꼽습니다. 

물론 저는 대한민국이 살기 쉽지 않은 나라는데,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자 유치원, 아니 산후조리원부터 시작되는 뜨거운 경쟁... 너무 뜨겁죠. 

쉽게 오르지 않는 연봉이 있고요. 
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와 집값을 생각하면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지.. 이해가 어느 정도는 되고요. 
또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의 낮은 출산율이 
오직 경제적 문제에서만 기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를 살펴보면,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살기 힘든 나라들이 정말 많아요. 
근데 그 어떤 나라에서도, 출산율이 1 이하를 기록한 나라는 없다는 겁니다. 

2012년 이후 경제적으로 끝없이 추락을 거듭하여 
지금 나라가 망한 베네수엘라를 한번 생각해 볼게요. 
이 나라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파탄이 났던지, 
2019년에만 인구 3천만 명 중에 15%에 해당하는 500만 명이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외국으로 떠났어요. 
15%의 국민이 나라를 버리고 떠난 나라! 

그런데 그 나라의 2019년에 출산율이 몇인지 아십니까? 2.25예요. 
그러니까 두 사람이 애를 최소한 두 명 이상은 낳는 나라가 베네수엘 라는 겁니다. 

한국이 아무리 살기 어렵다고 해도, 한국의 2021년에 출산율 0.81은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단순히 돈이 모자란 현실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돈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점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돼요. 

▲아래 조사를 보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2021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Pew Research Center는
한국을 포함한 17개국 선진국들의 성인 거의 2만명 가량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가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조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대답이요 정해진 객관식 대답이 아니었고요. 
자기 마음대로 다 쓸 수 있는 주관식 문제였다는 거예요. 
나중에 그 주관식 대답들을 모아서, 위의 표로 분류한 거죠.

조사 결과, 17개의 나라 중 14개 국가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가장 의미 있는 것이 '가족'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3개 국가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가족이 아닌 다른 것을 얘기했어요. (도표 맨 왼쪽 첫 칼럼)

스페인은.. '건강'을 가장 최우선 순위에 뒀어요. 
스페인이 사실 건강의료보험이 굉장히 발달했습니다. 
사람들의 정서가 건강에 되게 꽂혀 있어요. 

대만은요.. 역시 중국에서 나온 나라답게 '사회 혹은 국가'가 
자신의 삶의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했죠. 

그런데 흥미로운게 있죠. 
한국은 '돈이 최고'라고 대답한 유일한 국가입니다.  

17개국의 선진국 중에서 한국만이 '경제적 풍요'를, 자기 삶에서 가장 의미있는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는 겁니다.
저는 이 조사가 한국인들 사이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를 
명백히 보여준다 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돈이 모자란다면 
삶이 얼마나 괴롭고 두렵겠습니까.  *우리 국민들이 대부분 이렇게 여기죠.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인 돈이 없으니, 돈이 많이 드는 결혼은 하기도 힘들고요. 
돈이 더 많이 드는 애 낳고 기르는 건, 당연히 엄두도 못 되는 것이 현실이 되는 거죠.

▲자 그렇다면, 세상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떠하냐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 돈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이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10년 전에 가장 염려하셨던게 뭔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또 '5년 전에 내가 제일 많이 염려했던게 뭐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1년 전에 내가 고민했던게 뭐지?' 생각해 보시고요. 
'지난 주에 내가 고민했던게 뭐지? 어젯밤에 내가 고민했던게 뭘까? 
또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내가 걱정했던 것이 무엇인가?' 
한번 곰곰히 돌아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습관이란 뜻이죠.

만약 여러분의 걱정이 '내가 어떻게 돈을 더 벌까,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을 얻을까, 어떻게 하면 내 사업을 더 번창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내 노후 자금을 최대한 마련할까?'는 생각으로 주로 이루어져 있다면
안타깝게도 여러분은 신앙이 없는 여느 한국인과 전혀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계셨던 겁니다. 

사실 돈에 대한 걱정은, 한국인들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전 인류가 돈 때문에 많이 고생해 왔고요. 계속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아셨던 예수님은, 
이 문제에 해답을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에 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마6:24~33절까지 보십시오.

자 오늘 말씀의 주제는 이겁니다. 
"우리의 삶의 최우선 순위는, 세상의 재물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1. 첫 번째 요지, 돈에 대한 성도의 태도,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충성은 재물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께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을 향한 우리의 태도에, 많은 관심이 있으세요. 

그게 하나님이 돈을 사랑하셔서 그럴까요? 아니죠.
돈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하나님께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바로 우리가 돈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태도로 다루느냐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하나님께 다가가냐를 보여주기 때문이죠.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본문 바로 직전에 
이미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늠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6:19~21절이에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돈을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그곳에 
바로 여러분의 마음이 있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본문 24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러면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돈을 향한 자세를 주의 깊게 상고해 봐야함'을 보여줍니다. 

이 땅 위에 살면서, 물질을 향한 사랑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이해하셔야 될게 뭐냐면요. 
저도 그런 유혹이 항상 있어요. 사람이기 때문에. 

인류의 타락과 함께 모든 인류의 마음은 죄로 물들었죠. 
죄에 물든 우리의 마음은, 태어나면서부터 탐심으로 가득차서 태어납니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에 휘발유를 부으면, 불길이 치솟죠.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삼키죠. 자 그런 것과 같아요. 

우리의 탐심으로 가득한 마음에, 재물이라는 것이 들어오면, 
우리 인생에 그냥 불길이 치솟는 거죠.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마6:14절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재물에 대한 탐심은, 우리를 재물에 대해 충성하도록 만든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우리의 충성이 재물을 향할 때, 우리의 재물과 시간과 열정을, 재물에 대해 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충성의 양이 제한되어 있음을 너무나 잘 아셨어요.
무슨 말이냐면, 여러분 저는 제 아내 한 명으로 족합니다. 
제가 만약에 아내가 두 명이고, 세 명이고, 네 명이 되면 
제가 아내를 향한 사랑이 점점 더 커지는게 아니에요. 

제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양은 항상 정해져 있는 거라는 거죠. 
자 그런데 우리가 돈을 사랑하고 충성하기 시작할 때, 
어떻게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 향해야 할 사람과 충성이, 돈을 향하므로 
우리가 이제 하나님을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골3:5절에 '탐욕이 우상숭배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에 충성하는 시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돈을 우리의 신으로 여기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아닌 이방인들을 섬겼던 이스라엘이, 어떤 결말을 맞았느냐? 
그들의 삶의 끝은 파멸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배하기보다 재물을 경배하는 이들은, 
자신의 혼의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디모데의 전서 6장은 말하죠. 

딤전6:9~10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요,  딤전6:9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강박적인) 마음이 문제인 겁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삶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립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는 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 성경이 쓰여졌을 당시 1세기 교회에는, 사실 이게(돈) 조금 작은 문제였을 수 있는데 
대한민국를 교회 한번 보세요. 미국 교회를 한번 보세요. 
교회들이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서, 돈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고 있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많은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은 성적인 죄에 대해서는 
나름 높은 경각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성적인 죄를 덜 짓는다는 게 아니라
'성적인 죄가 큰 문제가 된다'는 건 안다는 거죠. 경각심이 있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요. 돈에 대한 욕심과 탐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돈을 향해 충성하는 사람이 
성적으로 문란하게 사는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자 엡5:5절을 보세요.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음행하는 자나, 행실이 더러운 자나, 돈을 사랑하는 자가 
다 똑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는 거예요. 모두가 우상숭배자와 같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몫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생명,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할 뿐더더
나중에 저 천국에서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을 깨어서 들으셔야 돼요. 
내가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 끝에 결말이 뭐라고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고 지금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충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그리스도인도 먹고 살아야 하죠. 또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에요. 

다만 우리가 참된 그리스인이라면, 생계 자체가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퇴 후에 안락한 삶만을 위해, 돈을 벌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은퇴하기 위해 돈 버시면 안 돼요. 그거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그게 삶의 최우선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이 아니라, 돈에 충성하는 삶이죠. 

재물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재물은 단지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잘 보세요. 순서가 중요합니다. 

돈을 벌지 마시라는게 아니고요. 돈을 벌되 그 돈이 수단이 되어서, 
더 큰 목적을 이루어야 된다는 거죠.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죠.

이 목적과 수단의 자리가 뒤바뀔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섬기게 된다..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자 우리가 단 한 주인만을 섬길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여러분의 삶의 주인은 누구시죠?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재물입니까? 

▲2. 두번째 요지는, 믿음이 없으니까 물질 문제로 두려워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돈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우리의 신뢰의 문제 (믿음 없음) 라고 말씀하세요. 

재물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은, 단순히 남들보다 더 예민한 내 성격 때문이 아니에요. 
여러분 많은 분들이 착각할 수 있는데,

25절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죠?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먼 미래를 위한 노후자금'이나, 
혹은 '우리가 투자한 그 돈'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지금 오늘 우리가 먹고 마시지 않으면 
내일 굶어 죽을 수 있는 사람들과, 
오늘 옷이 없으면, 오늘 밤에 추위 속에 얼어 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내일 뭘 먹을지, 오늘 뭘 입을지 염려하지 말아라'

여러분 실제로, 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있던이 사람들은
대다수가 당시에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업은 농부 아니면 어부 아니면 무직이었는데,
하루에 두 끼 먹으면,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에요. 

당시에 무슨 농업 기술이, 어업 기술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생산성이 아주 낮았지요.
그리고 소작인들은, 농사지어서 주인에게 다 갖다바치고,
또 로마당국에 세금도 내야 했으므로, 다들 대단히 가난했다고 합니다.
정말 입에 풀칠이다 하면 다행이었을 사람들이었어요. *5병2어 때 보세요.
 
단벌신사처럼, 집에 옷이 단 한 벌만 있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고요.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지금 예수님이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음식이 모자라서 고통받는 불쌍한 사람들, 
지금 예수님께서는, 그런 다큐멘터리에나 나올 법한 그런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는 먹을 것이 없을 때, 마실 것이 없을 때, 또 입을 것이 없을 때 
그것들에 대해서 염려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요. 그렇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세요. '그게 당연한게 아니다!'
'그건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자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2천년 전에 갈릴리 사람들,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던 그 사람들이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없을 때에도 
물질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모습이라면, 

오늘날 우리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있음에도 
미래에 대해 염려하는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더 어리석은 모습일까요? 

여러분 제가 사역자죠. 저는 돈 많이 솔직히 못 법니다. 
그래도 저희 집에 가서 보면, 냉장고 열면 음식이 가득 찼어요. 

밤에 아내가 항상 제게 얘기합니다. '자기 전에 제발 드시지 마세요.' 
자 그래도 아내가 잠들면 제가 어떻게 할까요? 주방에 가서 제가 먹고 싶은 거 다 먹죠. 

여러분도 마찬가지인데, 제가 저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도 옷이 많은 사람이에요. 여러분도 저도, 옷이 여러 벌 있죠.
어떤 여성 분은, 옷이 수 십 벌 있으신 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러함에도, 만약 돈에 대해서 걱정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죠. 
'영휘야, 너는 너무 어리석구나!' 라고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런 가난 속에서도, 
우리 생명을 유지시켜줄 생활 필수품에 대해 염려하지 말아야 할까요? 

먼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과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십니다. 
마6:25절 마지막에 나오죠.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자 하나님께서 음식보다 소중한 목숨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옷보다 소중한 몸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당연히 음식과 옷 또한 허락해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과 몸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십니까?
마6: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여러분, 우리가 그때 예수님의 표정을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이 지금 이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을 참 측은히 여기시는 표정으로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마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자 미래에 대한 염려도 없는 새들과 또 꽃들도요.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그렇다면 새보다 더 귀한 자신의 백성인 우리는 
얼마나 더 신실하게 먹이시고 입히실까요? 

그런데, 뒤에 나오지만, 무위도식 하고 게으르게 빈둥거리는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채워주시지는 않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부지런히, 열심히)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채워주시죠.
많은 경우, 성도가 필요를 채움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부지런히, 열심히) 구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죠.

자 하늘의 새와 들의 꽃도, 신실하게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들을 얼마나 더 신실하게 돌보시겠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진리를 알면서도 
물질에 대한 염려하는 우리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마6:30절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작은 자들아'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필요가 모자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의 문제는요. 우리의 믿음의 부재, 또는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적용

 

오늘 본문 마6:24~34절, <크리스천과 사역자의 물질에 대한 문제>는
대표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믿지 않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다 채워주신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현실적으로 다 채워주심을 경험치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말씀은 말씀이고, 현실은 현실인가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사역자들은, 
오늘 본문 마6장 후반부, '물질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사실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성도가, 자신이 받은 첫 직장의 첫 월급을 전액 헌금했습니다.

또는 어느 성도님이, 주님의 감동을 받고서, 
자기 집을 팔아서 주님께 드렸습니다.

또는 어느 선교사가, 
자신이 가진 재산을 정리해서 전액 기부하고,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이런 분들 중에, 나중에 물질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은 '주님의 채워주심'을 당연히 믿고서, 그런 결단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주님이 채워주시지만,
자기가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풍족하게 채워주시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이런 딜레마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높은 연봉이 보장되는 직장이나 사업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래서 주의 종이 되었는데, 

남은 평생 극도로 가난한 삶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자녀 대에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다 갚아주시고 채워주심을 봅니다)

자기 생전에는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아요.

그럼 본문의 주님의 약속(마6:24~34)은 잘못된 것일까요?

사역자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꼭 해결해야 됩니다.
왜냐면 사역자들 중에, 대부분은 극도로 가난하거든요.

이 문제에 대해서, 너무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단순화해서 설명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본인이 받은 소명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소명을 받았다 하지만, 어쩌면 명예심으로 주의 길로 자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올바른 소명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살펴봅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필요 이상의 것들을 원한다는 것이죠.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만 내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상대적 빈곤감 때문이죠.

-이때 주님이 채워주시는 '필요치'가 언제나 정답입니다.
 재정이 모자라면, 사역이 실패할 것 같지만, 
 실제로 사역이 실패하는 이유는, 재정이 넉넉하기 때문에,
 넉넉한 재정만 믿고 사역에 임하다가는... 거의 다 실패합니다. 

 사역은 돈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요. 사역은 기도, 인내, 인격, 연단 극복으로하는데,
 이런 자원들은, 돈으로 채워지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재정을 조금만 주십니다.
 사역에, 재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죠. 기도, 인내, 인격, 연단 극복 등입니다.
 
 과거에 어떤 사역자들은 '교회 건물이 없어서 목회를 못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그만 상가 건물을 임대해서는, 목회가 안 된다는 것이죠.
 만약 그런 분이, 어떤 기적적인 일이 있어서, 훌륭한 교회 건물을 얻었다고 할 때,
 그 다음부터는, 그럼 목회가 탄탄대로를 싱싱 달렸을까요? No. 여전히 안 됩니다!
 
 선교지도 마찬가지인 거죠. 선교사는 돈이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럼 원하는 재정이 갑절로 채워졌다고 해 봅시다. 선교사역이 확 열매가 맺일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오히려 사역이 그 남는 물질 때문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이 그걸 다 내다보시니까,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은, 내가 필요만큼만 채우십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풍족하면 오히려 역효과 날 때가 많으니까요. 파리떼들도 많이 꼬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에 길들여진 우리는 부의 축적이 선하며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살아가요.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라고 
디모데전서 6장 8절에 말씀합니다. 

어느 가난한 선교지에, 한국 의료선교팀이 와서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와서 의료선교팀이 놀랐고, 거기서 사역하는 선교사도 놀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검진받으러 온 현지인들 중에.. 성인병 제로.
그러니 뭐 치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현지인들이 성인병 제로인 이유는, 너무 가난해서 아주 적게 먹다보니, 
다들 몸이 호리호리한데, 아주 건강한 것입니다.
다만 병이 있다면, 영양실조, 비타민 부족 등이었습니다.

오늘날은 한국은 30대, 40대 젊은이들도 각종 성인병 증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게 다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입니다. 단순한 비만이 아니라,
위장병, 대장 이상, 간 이상, 혈압, 당뇨, 신장질환... 너무 많이 먹어서이고,
또 특별히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들이죠.

그런데 농촌에서, 물질이 부족해서, 밥하고 텃밭에 채소만 뜯어서 드시는 분들은, 
또한 그 자녀들은.. 의외로 대단히 건강한 것입니다. 주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사역자들에게, 꼭 필요한 물질만 주시는 것은, 그런 이유도 있는 것입니다.

또 먹을 것과 입을 것 말고도, 다른 것이 풍족해 보세요.
그러면 성도들은 꼭 '딴 짓'을 하게 됩니다. 돈이 없으면 '딴 짓'도 못할 텐데,
돈이 풍족하면 사람들은 '딴 짓'으로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래 저래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게, 꼭 필요만 채워주신다는 거죠.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으므로, 풍족하고 유족한 삶'을 바라지만,
정반대로 하나님은 '성도들이 세상적으로는 좀 가난해도, 영적으로 부유하기를' 바라십니다.
그게 영생에도 좋고, 유익하다는 거죠.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오늘날 성도와 사역자들은, 
우리의 목숨과 몸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이것이 체험되어져야 합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체험되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확실히 믿게 되죠.

어떤 성도님이 목사님께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제 몸에 이상이 감지되었고, 병원에 가니까 의사가 수술을 할 것을 권고하는데,
당장 죽을 병은 아니랍니다. 제가 수술 해야 되나요, 말아야 되나요?'

목사님은 이렇게 권면했다고 합니다.
'수술비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수술비를 마련해 주시면.. 수술하십시오.
하나님이 수술비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수술하지 마십시오.
(병원에서 과잉진료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절대로, 의사 말만 백프로 신뢰해서, 억지로 돈을 마련해서, 돈을 짜내서 수술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은 신실하신 아버지시니, 
그 자녀가 수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수술비도 순적하게 마련해 주신다는 논리죠.

이건 수술 뿐만 아니라, 사역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또한 하나님의 타이밍이면,
하나님이 반드시 거기에 필요한 물질을 채워주십니다. 100% 채워주시든지,
혹은 80%만 채우실 때도 있습니다. (20%는 사역자인 너부터 내라)

그러니까 물질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건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이 아닌 거죠.
그러니 그 프로젝트는 추진하지 않거나, 연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열정이 과도해서, 억지로 강제로 재정을 갹출받아서 추진했다고 칩시다.
나중에 그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결국은 애물단지 (white elephant)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물질에 훈련된 사역자는, 물질에 대해서 자유합니다.

얼마를 주시든지, 그는 자족합니다.
-자신의 생활비를 포함해서, 필요한 물질은 하나님이 공급하십니다. 필요한 만큼,
 사실은 필요보다 조금은 넉넉하게 공급해 주시죠. 
 그야말로 홍해의 갈라짐 같은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채우십니다.

-만약에 물질이 모자란다... 계속해서 모자란다...
 그러면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닐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거 하지 말라는 거죠. 그런 방식으로 하지 말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재정을 말리십니다. 자연히 못 하게 되는 거죠.

오늘날 사역자들은, 너무 물질적으로 사역을 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뭔가 외형적으로 번듯한 것이 있어야만 (건물, 사무실, 유급직원들, 장비들)
사역이 되어질 것으로 여깁니다. 

만약 그게 다 채워진다면... 글쎄요, 1~2년은 사역이 장비나 건물 덕분에 지속되겠지요.
그러나 그런 '외형'이 사역의 본질이 아니므로, 결국은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식당의 예를 들자면, 아주 좋은 건물에, 좋은 인테리어에서 식당을 하지만, 
음식이 별로 라서.. 점점 파리를 날리다가.. 결국면 몇 년 끌다가 문을 닫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어떤 식당은, 아주 허물어져가는 건물에, 인테리어도 옛날 것 그대로고,
장소도 매우 협소합니다. 손님은 '이래서 식당이 될까?'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거기서 10년 20년 30년 단품요리를 파는데, 먼곳에서도 손님이 찾아옵니다.
서울 사람이 막국수 먹으러 파주까지 찾아가는 일들이 생깁니다. 
본질로 승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쨌든 훈련된 사역자는 '물질에 대해 자유'하며, '물질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6장의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당연히 진리이며,
우리는 반드시 이 말씀을, 우리 몸으로 체험해내야,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해 내는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역자들은, 뭐 코로나 위기다.. 환율이 올라갔다.. 성도들이 헌금을 안 한다.. 
이런 걱정이나 푸념을 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은 (그것보다 조금 넉넉하게) 주님이 채워주신다!'를 믿기 때문이고,
본인이 체험해서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보통 사역자들에게 물질을 박하게 주시는 이유는,

요즘도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과거에 신혼부부들이 '없게' 결혼하고서

살림을 하나 하나 사 모으는 재미로 산다고 그랬습니다. 그때는 실제로 그랬고, 그런 재미도 있었어요.

 

우리가 물질이 아주 넉넉하면, 매사에 기도 안 해도 됩니다. 왜냐면 자기 통장에서 빼서 쓰면 되니까요.

그러나 물질이 빠듯하면, 매사에 기도하게 됩니다. 마치 살림 하나 하나 사 모으듯이요.

 

여러분은, 삶이나 사역에서 무슨 몫돈 들어가는 일이 있을 때,

자기 돈 인출해서 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주님의 응답을 받아서 하기를 원하십니까? 어느 게 기쁨이 더할 것 같습니까?

당연히 후자죠. 물질이 빠듯한 사역자는, 모든 것을 작은 것 하나라도, 응답받아서 하게 됩니다.

그러면 기쁨이 늘 넘치는 거죠... 그런 목적에서, 주님은 사역자들을 넉넉하게 대우하지 않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생각해 봐요. 여러분의 어린 자녀가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엄마 아빠, 오늘 우리 뭐 먹어요?' 걱정하는 거죠.

그리고 아침에 학교를 가야 되는데 막 울상이에요. 
'왜 울어?' 그러니까 
'오늘 준비물을 사서 가야 되는데, 우리 집에 돈 없는 거 아니에요? 제가 걱정이에요'

아이가 그러면, 부모님인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그러고 있다는 거죠!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에 대해서 염려합니다.
물론 이해는 되요. 수입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자꾸 치솟으니까요.

그렇지만 마치 고민과 염려를 통해 
자기 삶의 안녕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돈에 대해서 끊임없이 염려해요. 
마치 그 염려가 뭔가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염려하신다는 것이죠. 
그 고민과 염려는, 단지 우리를 영적인 우울감에 더 몰아넣을 뿐이죠. 

여기서 우리는 
왜 끊임없이 돈에 대해 염려하고 두려워하는지 그 이유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삶에 대해 끊임없이 염려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우리의 삶이 고달프기 때문만이 아니에요. 

진짜 문제는, 내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없기 때문인 거죠.
성경을 읽어보고 교회 역사를 공부해 보세요. 
우리보다 훨씬 더 고달픈 상황 속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염려하고 고민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요.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서, 결국 승리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한국의 상황이 우리 어렵다고 하죠?
그런데 여러분, 6.25 때보다 더 어려울까요? 임진왜란 때보다 더 어려울까요? 
그렇지 않죠. 

근데 지금 우리보다 더 어려운 상황 속에 살면서도, 
여전히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며 
기쁨 속에, 만족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 역사 속에 끊임없이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우리의 고달픈 상황이 아니에요. 
'우리의 진짜 문제는, 우리가, 자녀(성도)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시작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인 성도들, 우리가 염려할 것은요,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고, 염려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있나, 아닌가? ... 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잊지 말고 살아야 하는 진리는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큰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걱정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면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즉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중국 동북삼성에서 탈북민 성경읽기 사역을 하던 최광 선교사는, 
완전 빈지갑, 빈털터리, 맨손으로 중국에 가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만 3년 동안
작게는 20명에서, 나중에는 200명까지 탈북민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의식주를 모두 해결해주며 성경통독 사역을 했는데요, 

물질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들 금식했데요.
'금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신기하게 또 물질이 채워졌대요. 조지 뮬러처럼 채움을 받았던 거죠.
급할 때는, 하나님이 중국 조선족 동포들을 통해서 채우실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을 서너 번 겪고 난 뒤로는, 탈북민 성도들을 포함해서
아무도 물질을 걱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님이 채워주실 것을 믿었고, 혹시나 물질의 도착이 늦어지면, 
또 금식하면서 신실하게 기다렸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금식 훈련'을 시켜주시기 위해서,
또한 물질을 보내시되, 가끔은 천천히 보내시기도 하시는 겁니다.

다만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걸 구하지 않고서, 베짱이처럼 놀면서
하나님의 채우심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금식해도 해결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