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처럼 살라 (골15강)

LNCK 2024. 2. 29. 21:21

2022-08-07 주일예배 //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처럼 살라 - YouTube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처럼 살라     골3:12~14    2020.08.07.
   골로새서 15강       ☞이전 글 보기  

 

◑복습    주1)

◑본문의 개요   주2)

오늘(15강)과 다음 주(16강) 두 번에 살피는 골3:12~17절 말씀은 
새사람을 입은 우리는, 그러면 적극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을 합니다. 

............................ 절별 해석 및 강해 ........................

◑3:12a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바울은 한번 더  새사람 (:10) 즉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들이 누구인지를  표현합니다. 

위 구절은 '사랑받는 자 처럼'으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사랑받는 자로서'라는 뜻이죠.

성도는 누구입니까?
성도들은, 첫 번째,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은, 두 번째,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은, 세 번째, 성도는 누구냐 사랑받는 자들입니다.  이게 12절이죠.

누구로부터 누구로부터 사랑받는 자들이겠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표현은, 구약시대 구약 성경에서는 
누구한테 이 세 가지 표현이 적용되어졌는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실은 이 표현이 배타적으로 적용되어졌습니다.
이 세 표현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성경구절이  신7:6~8절입니다.

이 구절을 보면, 모세가 출애굽하고 광야 40년을 거치고,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곧 죽게 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모세가, 가나안 땅에 곧 입성하게 될  출애굽 2세대에게
마지막으로 고별 설교하는 내용이 신명기입니다. 

그 중에 한 부분인 신7:6~8절을 보면
신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신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7: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본문 골3:12a절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이것은 바울이 신7:6~8절에 근거해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위에 밑줄 그은 것을 보면, '거룩하고'는 신명기에 안 나오지만,

'택했다'는 표현에는 '거룩하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거룩하다'는 '따로 떼어놓았다'는 뜻인데,

하나님이 세상의 수많은 민족들가운데 이스라엘을 '택했다'는 것은,

그들을 따로 떼어놓았다,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했다..는 뜻을 담고 있는 거죠.

그래서 바울은 신7:6~8절을 축약해서, 본문에 인용한 것이 맞습니다.

 

△참고로, 성경에서 '거룩'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위해 따로 떼어 놓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성전에 사용되는 기구나 그릇들은  
거기에 관유를 붓게 되면, 다른 용도로는 못 씁니다. 
하나님을 위한 용도로만 쓰기 위해서 따로 떼어 놓는 것을.. '거룩'이라고 이야기하죠. 

너희는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을 위해 따로 떼어 놓은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거죠.  

그런데 이 세 표현(택함, 거룩, 사랑받는)을, 바울은 누구한테 적용하느냐? 
골로새 성도들에게 적용합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이방인들이죠. 
그들은 이방인들이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해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새이스라엘이 되었는데, 새사람이 되었는데 (:10)
육신적 이스라엘이 새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하게 된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인 너희들이 새 이스라엘이 되었다..  
바울은 선언하는 겁니다. 그게 신7:6~8절을 인용한 이유죠.

▲여러분 '택하셨다'는 말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강조점은 무엇이죠? 
누구의 행동입니까, 누구의 행동이 결정적이죠? 

내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결정적이지, 내 선택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거죠. 

바울은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이다.  
너희는 거룩한 사람들이다.  너희는 누구냐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자들이다.'  :12
이렇게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골로새서 2장을 다룰 때, 
골로새 교회를 힘들게 했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그때 세 가지 정도로 편의상 정리를 했습니다. 
-첫 번째는 율법주의적인 거짓 교훈,  
-두 번째는 신비주의적인 거짓 교훈, 
-세 번째는 금욕주의적인 거짓 교훈, 

여러분, 율법주의적인 거짓 교훈을 가진 사람들은, 
골로새 성도들을 보고 뭐라고 이야기했냐면
'야 너희들은 이방인이라서,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너희는 율법에 대해서 무지하고, 그래서 율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너희들은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이야'하고 비난을 했겠죠.  

그리고 신비주의자들은 또 어떻게 비난했겠습니까? 
'너희 (골로새교인들) 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면서 
천상의 체험도 갖지 못하는, 영적으로 둔하고, 영적으로 어리석은 자들이야...' 
이렇게 비난을 했겠죠.  

금욕주의자들은 '너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먹는 거 하나 통제하지 못하냐?' 
그러면서 먹는 것에 대해 탐욕적인 사람들로 그들을 비난하고 정죄를 했어요. 

그런데 그들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거짓 교사들은 그렇게 비난하고 정죄했지만, 
사도바울은 그들을 보고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너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라는 새옷을 입었기 때문에 
너희들은 하나님이 택한 자들이고,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들이야'  
하고 그들에게 교훈을 주는 거죠. 

▲적용 / 저는 참 이 말씀이 제 마음에 깊이 다가왔던 것은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면, 항상 저는 어떤 고통이 있었느냐? 
'아, 나는 참 나쁜 놈이구나. 하나님의 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나는 참 문제가 많은 놈이구나..' 

또  성도님들이나 친구들 중에,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막 했다고 하면, 
'하나님, 저 사람들한테는 하늘도 열어주시고, 놀라운 영적인 세계도 보여주시면서,
왜 내한테는 하늘을 꽉꽉  닫아두고 계신 겁니까?'
'난 왜 이렇게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인가?' 항상 그 열등감...  

또  정말 저는 먹는 것도 좋아하고, 축구하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래서 과거의 주일날이 되면, 예배 마치고 학생들, 청년들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축구하는 것이 제 기쁨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 (주일날 오락에 치중하는) 그게 죄라는 얘기를 또 듣고 나서부터는 
'왜 나는  참 이런 운동 같은 것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이런 쾌락적인 인물인가?' 
'나는 왜  이렇게 문제가 많나?' 

그래서 저는 예배만 드리고 나면, 많은 세월동안, 참 제 마음이 무거웠어요. 
'나는 참 하나님 율법도 잘 안 지키고, 영적으로 무지하고, 
내 자신도 잘 절제하지 못하는.. 정말 문제 많은 인간이구나...' 자책했죠. 

그런데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네가 예수님과 연합되었고, 
예수님이 너의 삶의 대표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 때문에)
너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니까, 
'바로 너는 내가 택한 자고, 너는 거룩하고,  너는 바로 나의 사랑받는 자다.' :12a

이거를 하나님이 확인시켜 주셨을 때 
저는 정말 그때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그러면서 말씀을 대하는게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고 정죄해도, 예수님 앞에 나아가면, 
끊임없이 들려주는 얘기가 '야, 너는 내가 택한 자야,  너는 누구냐? 너는 거룩한 자야!  
너는 누군가 하면, 나에게 사랑받는 자야!' 하나님이 항상 확인시켜 주셨죠. 

저는 여러분이, 이 거친 세상 속에서 믿음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려면 
첫 번째 해야 되는게 무엇이냐?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성경이 들려주시는, 이 사랑의 음성을 내 것으로 가지셔야 됩니다. 


◑3:12b절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2절의 주동사는 '옷 입으라'입니다. 
'새 사람인 너희들 옷 입어라!' 무엇을 옷 입는가 하면 
'5가지 미덕을 꼭 옷 입어야 된다' 이렇게 바울은 도전을 합니다. 

그 5가지 내용은 세트로 기억하시면 좋습니다. 
'긍휼과 자비'
긍휼과 자비.. 사실 비슷한 뜻이죠. 

1) 긍휼은.. 헬라어로 자비, 자비의 창자들, 자비의 창자들(을 옷입으라) 

어려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그 자비, 
그런데 그 자비의 창자를 가져라.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을 보면, 쉽게 말하자면, 창자가 뒤틀리는.. 

그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라는 거죠.

창자는, 고대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내부, 가장 깊은 속을 표현할 때 
내장, 또는 창자라고 이야기한 거죠. 가장 마음 깊은, 진심 어린 그 자비를 가져라, 
이것으로 옷 입어라...  

2) 자비 .. 대부분 영어 번역은 kindness, 친절 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어떻게 되죠? 그분에 대해서 친절하게 되죠. 
친절하게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 친절함은 '선함'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친절하고 선함'  

여러분 우리가 첫 번째 옷 입어야 될 것이 무엇이냐? 긍휼과 자비인데, 
긍휼의 창자를 가지고, 친절함(선함)으로 대해라.

△저는 대학교 1~2학년 때, 제 나름대로 말씀에 대한 기쁨을 깨닫고,
제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한번 받아 보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근데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그 노력은 항상 좌절로 끝났습니다. 
3일은 거룩하게 살다가, 4일이 되면 또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그래서 아무리 필사적으로 노력을 해도, 
저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망에 빠져 있었죠. 

그런데 주님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는 의로운 사람이다' 라고 저를 찾아와 격려해 주셨을 때,  

여러분, 저한테 생겼던 역설적으로 큰 깨달음이 무엇이냐? 
제가 그때 가지게 됐던 게 뭔가 하면, '인간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었어요. 
역설적으로... 

제가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모든 사람은 바로 나와 같은..
인간의 무거운 짐을지고 있구나. 그 무거운 죄짐을지고 있구나...'  

여러분, 사람은 의롭게 안 사는게 아니고, 못 삽니다. 
성경으로 이야기하면, 사람은 거룩하게 살 수 있는데, 살아가지 않는게 아니고 
사람은 거룩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죄와 사망의 강력한 통제 속에 있기 때문에 
어떤 인간도, 이 강력한 (죄성의) 통제를 벗어날 수가 없죠. 

저는  주님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걸 깊이 조금은 맛보게 됐어요.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야 참 사람은 불쌍하구나. 사람은 참 불쌍한 존재구나'
'이 근원적인 수치심, 이 근원적인 무거운 짐을지고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은 좌절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구나...' 

여러분,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예수님이 를 향해 가지셨던 마음이 
'창자가 뒤틀리는' 바로 그 긍휼히 여기는 마음,  
또 그들을 향해 자비(친절과 선함)을 베푸는 마음을,  
주님이 가지셨죠. 그래서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옷 입어라 

두 번째 세트는, 겸손과 온유입니다. 
이것은 고대의 가르침과 차이가 있죠. 

3) 겸손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는 겸손을 무엇과 같은 걸로 생각했느냐? 비굴함으로 생각했어요.  
겸손을.. 비겁함과 비굴함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이것은 덕목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러 기독교에서, 이 겸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는 거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 그리고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낮춥니다.  
왜 우리가 자신을 낮추겠습니까? 
왜 성도들한테 '내가 분명히 나도 뭐 괜찮은 사람인데..' 
왜 내가 그들 앞에 자신을 낮추겠습니까? 

그들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굴해서가 아니라, 그들 속에는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가 그들을 바꾸실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들 앞에 나자신을 낮추는 거죠. 

래서 빌2:8절을 보면,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낮추셨죠. 자신을 낮추셔서 어떻게 했느냐? 
'죽기까지 복종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겸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셨죠. 
그래서 빌2:3~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 일이라든지 다툼이나 허용하라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이 구절을 다 외우셔야 해요.

겸손은, 바꾸어 말하면,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겁니다.  
참 이것만 되면...  
목회자들이 성도님들을 자기보다 더 낫게 여기고, 
또 어론 세대가, 새롭게 자라나는 청년 세대들을 더 낫게 여기고, 
오래 교회 다니신 성도들이 새로 오신 성도들을 더 낫게 여긴다면...

그 이유는 그들(상대방)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빌2:4 '각각 자기를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고' 
자기 입장만 소위 돌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먼저 돌아보아서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해라'  

이게 겸손에 대한 가장 탁월한 정의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

그리고 자기 입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입장도 먼저 돌아보아서 
이게 하나님을 정말 기쁘시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겸손을 옷 입어야 되고, 또 하나 세트는 온유입니다. 

4) 온유는..  마5: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뜻은, 
부동산을 많이 갖게 된다는 뜻이 아니고, 역사에 진정한 승자가 된다는 겁니다.  
진정한 승자가 될 때, 땅을 차지하게 되잖아요.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가 넓어지는 겁니다.

성경에서 '온유한 자'라는 말이 가지는 가장 핵심적인 뜻은 무엇이냐? 
'잘 길들여진, 잘 다듬어진' 이라는 뜻입니다.  

'온유한 자' 이거는 그냥 젠틀한 사람을 이야기하는게 아닙니다. 
'부드러운 사람'을 이야기하는게 아닙니다.   

야생마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야생마가, 정말 탁월한 주인을 만나서 잘 길들여지면 
그 야생마가 명마, 준마가 됩니다. 

그것처럼, 야생마 같은 내가, 진정한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에게 잘 다듬어지고 길들여지는 것, 이게 뭔가 하면 바로 '온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죠. 

온유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모세입니다.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40대의 모세는 최고의 스펙을 가졌지만, 그것가지고 불의한 이집트 사람을 바로 죽여버렸죠. 
최고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온유하지 못했고, 혈기에 지배당했습니다. 

그러나 40년 뺑뺑이 돌고,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보내면서 
그는 하나님께 철저히 다듬어지고 길들여져서, 
모세를 평가할 때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이야기하죠. 우리가 무엇을 옷 입어야 되느냐? 
겸손와 온유! 
'하나님, 저의 과격한 기질, 저의 분노와 자만심을 
하나님 잘 통제할 수 있도록, 잘 길들일 수 있도록, 하나님 저를 다듬어 주십시오' 

마11:29절에 예수님이 자기를 소개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예수님의 자기소개입니다. 
이것을 너희도 옷 입어야 된다는 거죠. 

5) 마지막  다섯 번째는 무엇하라고 했습니까? 
'오래 참음'
분노, 정말 우리를 힘겹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오래 참아야 된다...  
이것은 사도 바울 자신이  경험을 한 거죠. 

딤전1:16절  이거는 바울의 자기 고백이 나오는데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가 주님에 대해서 뼈저리게 깨닫고 느낀게 뭐냐? 
'그분이 일체 오래 참음으로 나한테 보여 주셨구나. 참 그분이 나를 오래 참으셨구나'  

성경은 구약에도 이야기하죠.  주님은 누가 누구시냐? 
'노하기를 더디하는 분이시다.' 
참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 5가지로 너희도 옷 입어야 된다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이렇게 유교적으로, 윤리적으로 살아야 된다.. 가 아니라,
진정 내면이 변화된 성도는, 이렇게 살게 된다는 것이죠.
이렇게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되는데, 구체적으로는 5가지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는 거죠.

여러분이 오늘 교회 나오실 때, 남자분들은 치장하는데 별로 오래 안 걸리셨겠지만, 
여자분들은 좀 시간이 걸리셨잖아요.   
여성분들은 화장대 앞에, 이 구절을 붙여놓으시기 바랍니다.

화장도 해야 되고, 옷도 입어야 되지만 
성도가 옷 입어야 될 진정한 미덕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3:12절에 나오는 이 다섯 가지, 바로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으로 
옷을 입어라... 이 구절을 화장대 앞에 거울에 꼭 붙여놓으시고, (옷 입고 거울 보실 때)

육적인 옷만 입지 마시고, 영적인 신령한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3:13~14절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래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은, 13절과 14절에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아까 12절의 5개 덕목은 '내면적 변화'라면,
13~14절은, 그 내면적 변화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외형적 열매입니다.

▲1 '서로 용납하라'  :13
이것은 아래 구절의 '견디다'와 같은 말입니다.   *아네코, forbear, endure

살후1: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여기 '견디고 있는' 말이 본문 13절의 '용납하라'와 같은 말입니다.

'용납하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견디는 것입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정말 나한테 불만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나를 힘들게 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대할 때, 성도가 첫 번째 해야 되는 일은 무엇인가?
견뎌야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용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빨 깨물고 그 상황을 견뎌내야 된다는 거죠. 
이거 누가 제일 잘하는가요?  
자녀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제일 잘 하시는 겁니다. 견디는 것!  

애들 키울 때 보면, 애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울잖아요. 밤중에도 울죠.
그러나 엄마가 참고 견딥니다. 밤중에도 일어나 우는 아이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달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은 이상한 요구를 합니다. 그런데  엄마들은 그거 다 견뎌냅니다. 

바울은 첫 번째, 정말 우리들을 힘겹게 하는,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 
첫 번째 해야 되는 일은 무엇이냐? '견뎌내라' 본문 13절에는 '용납하라'
엄마가 울고 보채는 갓난아기를 참고 견디는 것처럼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2 '용서하라'  :13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는,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이웃을 용서합니다.

성경에서 '용서'란 말의 뜻은 무엇이냐? (빚을) 탕감해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잘못한 거, 그게 다 죄이고, 다른 말로 빚이거든요.
그걸 탕감, 깨끗하게 청산해 주는 것입니다.

마18장에도 1만달란트 빚진 사람이 탕감을 받았잖아요. 
그가 자기에게 1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탕감해 주지 못할 때 주인이 분노하잖아요.  

용서는 무엇이냐? 탕감해 주는 겁니다. 
그 많은 부채를 다 탕감해주면, 빚이 전혀 없는 것처럼 돼 버리는 겁니다.  

성경에서 용서는 무엇이냐? 일회적인 게 아닙니다.  
오늘 말씀 듣고 집에 가서, 서로 붙잡고 '용서해 줄게' 이러다가
3일만 지나면 다시 과거로 돌아와서 '너 옛날에  나한테 이렇게 했지?' 
이거는 용서가 아닙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용서는 무엇이냐? 
지속적이고 탕감해 주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주님이 하신 것처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탕감해 주고 나서, 그거 계속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사실 탕감해 준 게 아니죠.

▲3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14

1) '이 모든 것'은, 12절에 언급했던 5가지 미덕과
13절의 '용납'과 '용서'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합니다.
 
'이 모든 것들 위에 사랑을 더라라'
이 모든 미덕들과 그 행위의 열매들 위에,
마치 화룡정점처럼 '사랑을 더하라' 
그때 이것은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띠가 된다' :14  

앞에서 언급했던 모든 덕목들, 행위의 열매들이 
하나의 온전한 작품이 되려면, 거기에 무엇을 더해 줘야 되느냐? 
'사랑을 더해 줘야' 된다는 겁니다. 

2) 근데 또 한 가지 해석은 뭔가 하면 
'온전하게 매는 띠'를 미덕으로 이해하지 않고, 
'다양한 성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띠'는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이다. 
그 무엇보다도 사랑을 더해야 된다. 

믿음, 소망, 사랑이 있으면, 그 중에 최고는 사랑이고, 
모든 율법은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랑은, 개인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거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니까 '사랑을 더하라'  이렇게도 해석합니다.

사도바울은 5가지 미덕을 가진 성도들이   :12
우리를 힘겹게 만드는,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세 가지 도전을 했습니다. 

-용납하라 .. 견뎌라, 참으라는 뜻이죠. forbear  
-용서하라 .. 주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해 줘라  
-거기에 사랑을 더하라 ..  이렇게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교훈을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의 삶이란 뜻이죠.

▲적용
혹시 사람들 때문에 고생한 적이 많거나, 
또 참 억울함을 많이 겪었던 분들은 
아마 이 설교 듣고 나면, 갑자기 또 뚜껑 열리실 분이 있을 것 같아요. 

'목사님  좀 그만 하십시오 아니 언제까지 도대체 견디라는 겁니까? 
언제까지 용서하라는 겁니까? 언제까지 도대체 사랑을 더하라는 겁니까? 

저 자들을 보십시오. 나를 그렇게 망가뜨리고, 힘들게 해놓고, 
저렇게 뻔뻔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억울하게 고통당하고 힘겨워 하는데, 또 나보고 참으라 그럽니까? 
또 용서하라 그러니까? 또 사랑하라 그럽니까? 그만 좀 하십시오!' 
혹시 이런 분들 계시나요? 

저는 이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목사님, 그것밖에 없습니까? 
왜 억울한 내가, 이렇게 망가진 내가, 
저 뻔뻔한 놈들을 내가 왜 참아야 됩니까, 왜 내가 용서해야 됩니까? 
왜 내가 그들한테 사랑을 더해줘야 됩니까?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는데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 앞에 물어봤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억울한 사람들도 있는데, 
또 참고, 용서하고, 사랑해라 ... 그러면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저한테 주셨던 깨달음이 하나 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 이것은 내가 원하는 법이다.' 

여러분 견디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런데 성경의 이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일어나는 가장 놀라운 일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무엇을 통해 일하시나요?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주님께서 일하셔요. 

주님의 답변이 뭐냐?
'너희가 아무리 억울하고, 아무리 미칠 것 같아도
너희가 내 말씀대로 참고, 용서하고, 사랑을 더해 주면 
(제가 잊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놈들 반 죽여 놓을게!'  
이게 정말 하나님이 저한테 주신 깨달음이었어요. 
'내가 그놈들 반 죽여 놓을게! 너희가 손 볼 필요 없다!'

예수님을 믿고 선한 사람들은, 절대로 악당들이 이길 수 없습니다. 
악당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 악당들이 가지고 있는 뻔뻔함,  
악당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 악당들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  
그게 아무리 방대해도... 예수 믿는 선한 사람들을 절대로 못 이깁니다. 

근데 내가 주님께 순종해서, 그래서 내가 이빨 깨물고 견디고,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해서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향해서 사랑을 더해 주면, 그때부터 어떤 일이 생기느냐? 
하나님이 일하셔서.. 둘 중에 하나입니다. 
'반 죽여 놓던가, 아니면 회개하든가' 둘 중에 하나로, 하나님이 그들을 몰고 가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나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들,  
오늘부터 그냥 한번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애써 보십시오.
'주님, 다시 한번 제가 견디겠습니다. 제가 용서하겠습니다. 제가 사랑을 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이제 주님이 어떻게 그 사람들을 손 대시는지,
아니면 주님이 그들을 회개의 자리로 몰고 가시는지... 그거 지켜보면 됩니다.

내가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분노에 사로잡힐 때, 
이런 본문 말씀을 듣기만 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그때는 정말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교회로 달려오셔야 됩니다. 
교회로 달려와서 말씀을 듣는 자리,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 
내 몸을 담고 있으셔야 됩니다.  

나 혼자서는 이 분노와 미움, 이것을 통제할 수 없어요. 대단히 어렵습니다.
혼자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 자신만 비참해져요. 여러분 자신만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혼자 계시면, 무조건 뛰쳐나와서,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교회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말씀을 듣고, 함께 찬양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면, 
성령님께서 어떻게 하시느냐? 

내 억한 심령을 풀어 주셔서, 나로 하여금 용납하고, 견디고,  용서하고, 
사랑을 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나의 삶에는 누구의 역사가 나타나느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망가지고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은 우리들의 가정도, 일터에도 
거기서 다시금 하나님을 통해 생명샘이 솟아나고,  
그곳에 다시금 찬양과 웃음소리가 넘치게 되는 그날을, 주님께서 만들어 가십니다. 

성도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착하게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정말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다는 뜻)

그들이 주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할 때, 그들을 통해 누가 일하게 만드시느냐? 
하나님이 일하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정말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러므로 함부로 대하시면 안 돼요... 


.........................................

주1) 지난 시간 복습
골로새서 3장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과 연합한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하는 것을 교훈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첫 번째 교훈은 '위의 것을 찾아야 된다'.  골3: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위의 것을 찾아야 된다.  

두 번째 교훈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된다.'  3:5~8  
'땅에 있는 지체'는, 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그래서 땅에 있는 지체, 성적인 죄악들, 말로 범하는 잘못들, 
마음에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를 갖고, 사람들을 향해서 비방하고 욕설하는 
이런 언어적인 잘못들도 죽여야 되고,  

공동체 모든 신뢰를 무너뜨려 버리는 거짓말을 우리가 벗어버려야 된다, 죽여야 된다고  
교훈을 했습니다.   

3:9~11절까지는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런데 (지난 주에는) 우리가 벗어버린 옛사람은 무엇이며,  
우리가 입은 새사람은 무엇인가? 

옛사람은, 과거에 우리가 아담에 속했던 신분, 그 특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새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새 신분, 그 특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담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를 옷 입고 있는 사람들이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옷 입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3:10~11절에는, 새사람은, 예수님의 형상, 예수님을 따라서 
지금도 계속 새로워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계속 새로워지고 있는 사람이고, 
이 새사람 안에는 민족적인 장벽, 
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 
종교적인 장벽,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문화적인 장벽,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신분적인 장벽, 종이나 자유자나 ... 이런 것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가 없고,
새사람 안에는, 사람이 만든 모든 차별과 장벽의 벽들이 무너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고, 그리스도가 가장 중요한 분이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 안에 계시기 때문에, 
모든 성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사람이 만든 모든 차별의 벽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 안에서 무너졌다..
라고 바울이 가르쳤습니다.  

 

주2) 본문의 개요
3:12~14절까지 말씀은, 교회가 그 배경이 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는, 많은 분들을 교회 속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가요? 
이 가르침은,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또는 일터에서도 적용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세 부분으로 다루게 될 텐데, 
1) 첫 번째 문제는 
12a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사도바울은 다시금 성도들이 누구인가, 성도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한 번 더 언급을 합니다.
새사람을 입은  성도들은 누구인가? 하는 것을 다룹니다.

2) 12b절에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의 5가지 덕목들이 나오게 됩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이것은  새사람인 성도들이 입어야 할 입어야 할 5가지 덕목에 대해서 바울이 교훈합니다.  

3) 3:13~14절은, 이런 미덕들을 옷입은 성도들이
실제 현실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구체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교훈합니다.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