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영향을 준 세 분 <교사> ▣ 삶의 통찰력
◑1. 있으나 마나한 지도자가 아름답다
꽤 오래 전 양재동에 있는 어느 미션 스쿨에서 설교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학교에 가기 전, 교장 선생이 참 훌륭하신 분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설교를 마친 후 교장실에서 교장 선생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삶의 교훈 하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저에게 ‘저는 있으나 마나한 교장이 되려고 힘씁니다.’
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들어왔습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있으나 마나한 사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
당연히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컸습니다.
그런데 그 교장선생님은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힘쓰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 보다 높은 차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최고의 리더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제 소원과 기도는
‘저도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가 되었습니다.
◑2. 1997년도 브라질에 갔을 때 브라질에서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했었는데
그 교회에서 참으로 충격적인 일 하나를 목격했습니다.
담임목사는 이제 갓 40이 된 젊은 목사였고
그 담임목사를 보좌하고 있는 부목사는 70이 다 되신 늙으신 목사이셨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전에는 담임목사가 지금의 부목사님의 부목사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담임목사님이셨던 지금의 부목사님이
당시 자기를 도와주는 부목사가 가능성이 있어보이자,
그 부목사를 유학을 보내어 공부를 시키고
그가 공부를 마치자 교회로 돌아오게 하여
그를 담임목사로 앉히고, 자기는 그 밑의 부목사 된 것이었습니다.
◑3. 사고뭉치들만 모아 놓은 대안학교(세인)가 있었습니다.
선생님 앞에서도 담배를 피워대고 담배를 끄라고 야단치는 선생 앞에서
그 담배를 씹어 삼키는 살벌한 아이들,
심지어는 선생님을 야구 방망이로 패기 까지 하는 아이들이
그 학교에서 점점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렸습니다.
상식적으로 전혀 대학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던 아이들이
90%가 넘게 정규 대학을 갈 만큼, 아이들이 변화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변하게 한 일등 공신 중에 한분은
그 학교의 수위 할아버지 였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었는데, 나중에 학생들은
그 분이 은퇴하신 전직 교장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들에게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수위 할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고
존경하는 어른이 생기게 되자, 아이들은 변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처럼...
당시 세례요한의 인기는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말을 듣기 위하여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세례요한은 실제적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하고 열광적이게 하는 것은
돈이 있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품의 사람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 됨을 보고 따르는 것은, 돈을 보고 따르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돈이 사람을 따를 때도 사람은 위험합니다. (돈의 힘을 마구 휘두를 때)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따를 때, 사람은 가장 위험합니다. (수퍼스타가 될 때)
많은 목회자들이 그런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바로 거기에 넘어집니다.
세례요한에게도 그와 같은 위험이 있었습니다. 아니 많았습니다.
그 위험의 클라이맥스가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은 찾아와 ‘당신이 그리스도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그리스도 즉 메시아로 알고,
인정하려고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 세례요한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는 따로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그 분의 신들메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더 기가 막힌 고백을 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세례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었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세례요한처럼 죽을 자리는 찾고 싶습니다.
남들이 서고 싶어 하는 자리에서는 물러나고
남들이 서고 싶지 않은 자리에는 서고 싶습니다.
죽을 자리에서 죽음으로.. 내 인생과 목회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