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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성령입니다

LNCK 2024. 3. 13. 20:05

https://blog.naver.com/karamos/80050442668

 

결론은 성령입니다         행2:1~4                ☞▣ 성령론

 

맨 아래 “▲후지야 마쓰요 장로 일화”는 교훈적입니다!

 

▲목사님들이 축도를 할 때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고,

마지막으로 성령의 교제를 구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꼴찌의 영이 아니냐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계급이나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같습니다.

축도에서 성령의 교제를 맨 끝에 말하는 것은, ‘성령이 결론’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해야 은혜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이 결론입니다!

 

▲"결론은, 성령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했던 많은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20세기 신학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칼 바르트와

역시 20세기 교회 부흥운동의 거장인 부흥사 빌리 그래함이

스위스에서 같이 휴가를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빌리 그래함은 칼 바르트에게

"신학에서 제일 강조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었습니다.

 

칼 바르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성령이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교황 요한 (아마 바오로 2세) 이 임종을 얼마 앞두지 않고 있을 때

누가 "오늘날 우리 교회의 교리 중에서 제일 재강조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물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은 "성령에 대한 교리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동차에서 제일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제일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배터리입니다. 배터리는 시동이 걸리게 하고, 혼 horn 을 울리게 해줍니다. 빵빵 하고요.

헤드라이트를 켜주고 라디오도 듣게 해줍니다.

 

배터리에 이상이 생기면, 차는 정말 꼼짝을 하지 못 합니다.

교회에서 성령은 바로 이 배터리와 같습니다.

 

성령은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줍니다.

저희 교회 올해 표어가 "영적 예배를 드리는 교회"인데

영적 예배는 온전한 헌신이 있는 예배입니다.

동시에 말 그대로 성령이 함께 하는 예배가 영적 예배입니다.

 

성령은 선교를 하게 합니다.

성령은 성도들 사이에 진정한 교제가 있게 합니다.

 

자동차의 배터리가 다 소모되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데,

다른 데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무익한 것이 됩니다.

아파트에 세워둔 차가, 어느 날 아침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90%는 배터리 문제입니다.

배터리가 방전되어, 엔진에 붙은 스타트 모터를 돌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부진한 것이 있다면, 그 원인을 성령에서 찿아야할 것입니다.

성령은 교회를 태어나게 했고, 교회를 성장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의 정황을 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해서 120문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사회적으로도 그리 인정 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4:13절을 보면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학문 없는 범인(凡人)으로 알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쉽게 이해되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죽은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렸다" 받아 들일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이른바 대표적인 유언비어입니다.

 

사람들은 놀라고 의심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새술에 취했다"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 났습니까?

 

예루살렘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묻습니다.

3천 명이 하루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 났습니다.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성령의 역사로 상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던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의 본문에 기록된 일은, 그 뒤에 세계 여러 곳에서 반복됩니다.

 

110여 년 전에 한국에 복음이 들어 왔습니다.

한국은 이교적인 바탕이 강한 나라입니다.

한국을 숲에 비유한다면, 전통사상인 샤머니즘의 잡목이 우거져 있습니다.

 

불교와 유교가 거목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습니다.

큰 사찰이 있는 곳에 가면, 그 지역사회 전체가 불교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경상도나 전라도에 이런 곳이 많지요.

큰 사찰이 있는 지역은,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불교적입니다.

그리고 석탄일에 연등행사도 하고, 작은 도시 전체가 아주 성탄절 저리 가라할 정도로

떠들썩하게 석탄일을 지냅니다. 불교연합 찬불대도 가세해서 도시가 시끌법적합니다.

큰 사찰이 그 배경입니다. 그 문화 전통에 다들 녹아서 이제껏 살아왔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제일 약한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경상남도 합천군입니다.

전체 인구의 4.4%만이 기독교를 믿습니다. 왜 그런지 잘 아실 것입니다. *합천 해인사

 

경상남도 양산에 가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통도사, 해인사

여기에 기독교라는 묘목이 심어졌습니다. 이 묘목은 잘 자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 묘목의 가지를 자르고,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뽑으려고 한 세력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전통사상이 그랬고,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가 그랬고, 공산당의 박해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 묘목은 힘있게 자랐고 계속 분양을 해서

지금 한국이라는 수풀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정원으로 자꾸 이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성령께서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는 교회는 놀랍게도 중국의 교회입니다.

1949년에 80여만 명, 1979년에 300여만 명, 지금은 6천만 명 이상의 교인이 있습니다.

곧 1억이 넘을 것으로 예견됩니다. *1998년 경 설교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교회는 여러 가지 제약을 받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오랜 신앙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보다

여러 가지 제약이 강한 중국의 교회가 왕성하게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대답도 같습니다. 성령께서 그 지역에서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깨닫게 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령께서 함께 해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A라는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B라는 회사의 직원에게 애프터서비스를 받으면

만족한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 제품의 성능과 취약점과 어떻게 수리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과

수리에 필요한 부품들을 A회사의 직원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깨닫게 하는데 필요한 것들은,

성경을 기록하게 한 성령을 통해서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기도의 문을 열어 줍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고 기도의 줄이 잡히지 않을 때의 답답함을

여러분은 많이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성령은 성숙한 기도를 하게 합니다.

 

"수능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내가 원하는 전공,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필요한 기도입니다. 절박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어 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게 해 주세요!" 성숙한 기도입니다.

 

"주님, 많이 배워서, 더 많이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더 성숙한 기도입니다.

 

"주님, 주님의 뜻대로 인도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인도하소서!"

가장 성숙한 기도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은 선택이 아닙니다. 이것은 필수입니다.

모든 성도가 반드시 성령충만 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것은 특정한 사람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특별한 체험이 아닙니다. 보편적인 체험입니다.

 

성도 모두에게 가능한 일이며, 성도 모두에게 허락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입니다.

 

빌리 그래함은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영혼의 생명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이 건강을 얻지 못합니다.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열매 맺기 위해서 성령이 충만해야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있지 아니하면

대신 음란과, 호색과, 이기심과, 방탕이 우리를 채우게 됩니다.

 

이 세상에 성령이 있지 아니하면,

지옥의 것들이 대신 이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내 마음 밭도 마찬가지이고요.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요즘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병 가운데 하나가 동맥경화증입니다.

여러 가지 노폐물과 기름기가, 심장으로 가는 혈관을 좁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막아서 생기는 병입니다.

 

동맥경화증에 걸리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계단을 제대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빠른 걸음으로 걷지를 못합니다. 때때로 심한 통증이 찿아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이것을 체험한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심장에 맑은 피가 제대로 공급되고 있습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오는 통로가 막혀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을 막는 것은 죄입니다.

교만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성령충만하기 위해서는 이 죄와 교만을 제거해야 합니다.

 

성령충만 받기 위해서는 고백해야합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고백해야합니다.

내가 교만했음을 고백해야합니다.

 

내가 성령을 갈구하고 있음을,

성령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고백해야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혼을 해야지 결혼이 이뤄집니다.

내가 먼저 청혼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것 같아서, 청혼을 하지 않거나

그러면 결혼생활 하는데 약점 잡힐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청혼을 하지 않으면,

결혼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께 청혼하고, 초청하고, 환영하고, 맞이해야 합니다.

"성령님, 내가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내게 와 주세요!" 해야합니다.

 

병원에 가서 아무 말도 말도 하지 않고, 의사가 다 알아서 고쳐주기를 바라면 손해입니다.

여기는 이렇게 아프고, 저기는 이렇게 아프다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영혼의 병원인 교회에 와서 고백하지 않고

하나님이 알아서 다 고쳐주고 채워주기를 바라는 성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믿음이 강해집니다.

담대해 집니다.

 

불을 받습니다.

믿음의 불을 받고, 기도의 불을 받고, 감사의 불을 받습니다.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전도하게 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려고 합니까?

성령이 함께 하기를 구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렸습니다.

성령 받고 구원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은 한주간이 새롭게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이 주간이 성령이 함께 하는 주간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새 날을 맞이할 때도

성령이 동행하는 하루가 되도록, 아침에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이 성령입니다.

 

▲후지야 마쓰요 장로 일화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했을 때

이 작전을 일선에서 지휘한 일본공군 지휘관은 후지야 마쓰요 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이 350대의 폭격기를 지휘해서 진주만 기습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이 사람이 1950년에 전역을 하고 한가하게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길에서 어떤 사람이 전도지를 주면서

‘오늘 저녁 어디에서 전도집회가 열리니까 꼭 와달라’고 했습니다.

 

마쓰요는 호기심이 생겨서 가보겠다고 했습니다.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분들이 겪는 애로가,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고, 교회에 나오라고 하면

웃는 얼굴로 "생각해 보지요" 또는 "가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합니다.

그러면 올 줄로 알고 기대하면서 기다리면.. 오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일본 사람들은 성탄절에는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석탄일이 되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절에 가서 예불을 드립니다.

일본의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본 사람들의 이런 심성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후지마 마쓰요는 군인답게 가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전도집회에 갔더니 미국인 선교사가 설교를 하는데

이 미국인 선교사는 전에 미국 공군 전투조종사였다고 했습니다.

 

후지마 마쓰요는, 자기와 같은 직업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느끼고 경청을 했습니다.

선교사는 자기가 일본을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1942년에 동경을 폭격하기 위해서 오다가,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비상탈출했는데,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서 3년 동안 온갖 고생을 했다고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석방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간 이 전투조종사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찾아와서

일본복음화를 위해, 일본 선교사로 자원해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습니다.

 

8년 전인 1942년에는 동경을 폭격하기 위해서 폭탄을 품은 비행기를 몰고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폭탄을 들고 왔는데, ‘복음의 폭탄’을 들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폭탄이 훨씬 더 위력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후지마 마쓰요는, 그 미국인 선교사가

5년 전까지 적국이었고, 자기에게 모욕을 주고 고통을 준 나라(일본)를 위해서

다시 찾아 온 그의 열정과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일본이 미군 포로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대했는지는

군인인 후지마 마쓰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그는 예수를 믿었고, 후에는 오사카 사카이 교회 장로가 되었습니다.

1972년에는 우리나라에 와서 이 간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공군 조종사야말로 매력적인 일이고

폭격이야말로 현대 작전에서 가장 효과적이며 힘 있는 방법이라고 믿고

전투조종사 생활에 생명을 걸었던 그가,

이제 장로가 된 다음에 하는 말은,

‘성령의 폭탄, 말씀의 폭탄이 화약 폭탄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성령이 폭탄이 성도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서 폭발하기를 바랍니다.

저희 교회 한가운데서 폭발하기를 기원합니다!

 

성령은 미워하던 사람도 사랑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미국인 선교사로 하여금 정말 자기를 그토록 핍박한 나라,

원수였던 나라를 다시 찿아오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지금 중국에 이관숙이라는 장로교 목사님이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직접 선교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분은 장애인들을 돕는 일을 통해서 간접선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 자신이 다리가 하나 없어서 의족을 사용하고 있는 지체장애인입니다.

625 때 군인의 신분으로 참전했는데 중공군이 매설한 지뢰에 다리를 잃었습니다.

 

이 분이 "중국은 내 다리를 뺏어 갔지만

나는 중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특히 중국의 장애인들을 사랑해서 여기 와서 일하고 있다"고 하면,

듣는 이들이 모두 감동을 받습니다. 선교 효과가 아주 큽니다.

 

정말 자기 다리를 뺏어가서 평생을 장애인으로 -예전에는 불구자, 병신이라고 했습니다- 만든

나라를 다시 찿아가게 하는 이는 누구입니까? 성령입니다.

 

▲지금은 성령이 폭발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컬컬함(답답함)이 있습니다.

지금 IMF 위기가 있습니다. *1998년 설교

 

1907년에 한국교회에 성령폭발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이전부터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1905년에는 을사조약이 맺어져서 나라를 빼앗겼고,

그런 가운데서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1907년에 성령이 폭발했습니다.

 

그 때와 비슷합니다. 이미 그런 징후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이제 성령께서 역사하셔야겠습니다!" 하는 공통된 기도가 있습니다.

"결론은, 성령입니다." 하는 인식을 가지고

성령의 임재와 동행을 간구하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연말이 되어서 잘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는 때입니다.

제자들이 열흘 전에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하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저들이 열흘 동안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오늘이 여러분 각자에게, 교회에 또 하나의 오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바람처럼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이 자리에 강하게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바람, 얼마나 강합니까? 태풍이 불어온다는 예보가 나오면

우리가 얼마나 긴장하며 두려워합니까?

태풍은 파괴하지만, 성령의 바람은 건설합니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을,

우리 모두 보고 각 사람 위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결론은, 성령입니다!" 이 사실 위에서 다시 출발하는

여러분과 저, 그리고 컴퓨터를 통해 이 설교를 대하는 모든 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하시는 기준

사람을 평가할 때 여러 가지로 평가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지식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신분을 가지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지위를 가지고, 또 물질을 가지고 평가하기도 하고

학력으로도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사이는 또 외모로 평가를 많이 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학점으로 인해 평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을 여러 가지로 이렇게 나누어서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 사람을 여러 가지로 나누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성경이 보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나냐, 하나님의 성령이 같이 하나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이냐, 하나님의 영이 떠났느냐?>

모든 것을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받으니까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나냐, 안 하나냐

이것이 성경이 결정적인 우리 인간을 보는 하나님의 눈이요, 하나님의 평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제아무리 약하고 신분이 낮고,

학력이 부족하고, 외모가 부족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경제적으로 채우는 것도 어렵지 않고,

옷을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고, 지위를 높이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는 아무것도 어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오히려 이런 세상적인,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 다 C학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들을 인류 역사에 또한 영원히

위대한 인물들로 다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 여기에 우리 인간의 가치와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잘 되고

하나님이 떠나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가 있어도, 인간의 문제는 영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것이지

육적인 치료는 극히 부분적이고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모든 문제는 영적인 문제요, 영적으로 터치할 때,

영적으로 이 모든 일을 처리할 때, 인간의 문제는 완전히 말끔히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축복을 받아야 하나냐? 영적인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우리가 하는 이유도,

 

십년, 이십년 신앙생활 해도, 별로 복 받은 것이 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영적인 축복이 참 된 축복이고, 영적인 은혜가 가장 영원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

교회는 우리의 다락방입니다. 교회 와서 말씀을 들으면 성령이 충만해 집니다.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평가를 건물이 얼마냐, 예산이 얼마냐,

교인이 얼마 모이느냐, 목사가 누구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교회 위에 성령이 역사하지 아니하면 이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우리 교회를 객관적으로 평가할지라도,

그 안에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자랑할 거 아무것 없을지라도, 우리 교회 위에 성령이 함께 하시면

우리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요, 살아있는 교회요, 축복 받은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교만’하면 떠오르는 이야기

우리는 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한다고 말하면서도, 종종 속을 때가 있습니다.

백설공주 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계모는 항상 거울을 보고 이렇게 묻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우리가 지금 ‘계모처럼’ 그렇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의 재주에 취해 있다는 것입니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지금 예수 제일 잘 믿니?”

‘바로 너!’ (자기가 거울 대신 마음속으로 자문자답 하죠.)

 

“거울아, 거울아, 누가 지금 제일 좋은 교회니?”

‘바로 우리 교회!’

 

“거울아, 거울아, 누가 노래(지휘, 반주, 성가대)를 제일 잘 부르니?”

‘바로 너!’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현명하게 설교 잘 하니?”

‘바로 너!’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훌륭한 구역장이니?”

‘바로 너!’

 

바로 이런 생각이 드는 그 순간, 우리는 마귀에게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장난 그만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령님과 동행하지 못할 때, 마귀의 미혹을 받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넘어질 수 있는 성도이고,

우리는 항상 넘어질 수 있는 교회입니다.

 

성도가 가질 올바른 생각은,

‘항상 부족합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