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JtCp-TePcrU
◈주님 안에 거하는 자의 기도 요15:7 ☞ ▣ 임재, 교제
내 안에 거하라 series #10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놀랍게 응답하셨습니다.
(2017년 8월) 이번에 캐나다에 가게 된 이유는,
임현수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큰빛교회 부흥회 때문입니다.
근데 그 교회에서 부흥회 요청을, 예전에 몇 번 해 오셨어요.
근데 제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워서 그 동안에는 섬기지를 못하다가
작년 2016년에 토론토 큰빛교회에 집회를 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임현수 목사님 석방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큰빛교회 교우들에게는 얼마나 큰 기도제목이겠는가요.
그래서 '그 교우들하고 함께 임현수 목사님의 석방을 기도해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들어서
제가 부흥회로 섬기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임현수 목사님 사모님이, 저희 교회 나오고 계셨는데, 그때 그 말씀을 드렸어요.
'우리가 그때 (2017년 8월에) 큰빛교회 부흥회를 할 때,
임현수 목사님도 그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이 시기는 1년 전
근데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부흥회가 있기 바로 전 주에 석방이 되셔서, 2017.08.10.
임현수 목사님이 캐나다에 도착을 하셨고,
제가 부흥회 인도하러 가서 임현수 목사님을 만나 뵙게 되었어요.
그런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가 응답이 되었다는 기쁨입니다.
'아 정말 기도가 응답이 되는구나'
우리가 이렇게 매일 기도하고, 매주 기도하고,
1년 반 동안이나 우리가 공개적으로 기도를 해왔던 그 (석방 기원) 기도가
그렇게 응답이 되는 것을 보고 너무너무 감격스러웠어요.
석방되신 것도 너무 귀하고 기쁘지만,
'기도 응답에 대한 체험이 참 이렇게 귀하고 좋은 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임현수 목사 간증 ▣ 임현수 목사
▲그런데 '기도했기 때문에 임현수 목사님이 석방되었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믿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게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다 뒤에 이면에서 물밑 작업이 진행돼서 석방이 된 거지,
기도했기 때문에 꼭 석방이 된 거는 아니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기도를 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임현수 목사님의 석방을 위해서 실제로 기도한 사람은
'아 이거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이구나!' 그런 마음이 조금도 의심 없이 일어납니다.
근데 실제로 기도를 안 한 사람은, 하나님이 역사하신 일이 일어나도
'이게 긴가 민가?' 하면서 계속 자기 마음이 흔들려요.
하나님이 지금도 놀랍게 일하시지만, 그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사람이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우리가 임현수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를 하지만,
'그분이 정말 석방될 것이라고' 믿고 기도를 했는가요?
이번에 제가 토론토 큰빛교회에 가서 보니까,
마치 베드로가 옥에 갇혀서 순교하게 직전까지 갔을 때
온 교우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를 했었습니다. *행12장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천사가, 베드로를 옥에서 풀어내셨죠.
그리고 정말 기적과 같이 멀쩡하게, 성도들이 기도하던 다락방으로 베드로가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는데... 거기서 기도하던 성도들이 믿지 않았어요.
여종이 나와서 보니까, 문밖에 베드로의 음성이에요.
그러면 빨리 문을 열어 줘야 되잖아요. 여종은 너무 놀래서 다시 들어갔어요.
기도하던 성도들에게 '바깥에 베드로가 왔다'고 소식을 전하자,
'다들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하면서 믿지 않았어요.
석방을 위해서 기도는 그렇게 하고 있으면서도... 성도들은 실제로 믿지는 않았던 거예요.
▲이번에 제가 토론토 큰빛교회에 가서도, 거기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석방을 위해 기도를 간절히 해놓고, 우리 교회보다도 훨씬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지요.
그런데도 막상 임목사님이 석방돼서, 캐나다 토론토에 건강한 모습으로 도착하는 것을 보고는
다들 '꿈꾸는 거 같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기도도 응답을 받는 건가요?
기도를 하면, 믿음으로 기도를 해야 응답을 받는 거잖아요.
그런데 믿지도 않는 기도...
기도를 하긴 하지만, 정말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도 못하는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을 하신 걸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근데 그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믿음으로 기도한 것이니라'
제가 '아니 석방될 것이라고 믿지도 못했는데요?'
다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다들 깜짝 놀라워하고 있더라고요.
기쁨은 충만하지만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다들 그러고 있는데...
그때 제 마음에 성령님께서 깨우쳐 주신 것이
'석방될 것이라고는 믿지 못했지만,
그들이 계속 주님 안에서 기도를 해 왔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다'라는 거예요.
만약에 진짜 믿지 않았다면, 임현수 목사님이 북한에 억류돼서
'그렇게 기적적으로 석방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믿었다면
기도도 안 했을 거라는 거죠.
석방될 것이라고... 이렇게 선뜻 마음에 믿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계속 기도한 것 자체가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게 무슨 믿음입니까? 주님 안에 있는 믿음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도무지 우리 사람의 생각으로는 어떤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아요.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이 안 돼요.
그런데 주님 안에 있으면, 자꾸 그 기도를 (주님이 감동해서) 하게 하세요.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기도를,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은 기도를 계속하게 돼요.
우리에게 이런 기도가 많습니다...
▲실제로 저희 교회가, 임현수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를 시작을 했지만,
기도가 한 1년 반 정도 이렇게 지나면서
매주일마다 예배 마무리 즈음, 우리 하나님 앞에 결단하는 기도의 시간에
임현수 목사님과 북한의 억류된 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거 언제까지 기도해야되는 거지?'
기도할 제목이 여러 가지 많잖아요.
'그런데 이 기도를 꼭 빠뜨리지 않고 기도를 해야 돼?'
교우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교우들은 이제 더 이상 이런 기도에 대해서 식상하지 않을까?'
'응답되지 않는 것 같은 기도를 계속해야 될 이유가 있을까?'
매일 합심 기도문에, 그 임현수 목사님의 이름을 거기에 기록할 때,
그때마다 '이 기도는 언제까지 계속해야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이 제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래서 기도제목에서 뺄까?' 이렇게 생각하면,
주님께서 '계속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성도들이 이제는 이 기도에 좀 지겹게 생각할 것 같으다...'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주님은 '기도를 계속해라!'
그래서 우리가 주 안에서 사실 계속 기도한 겁니다.
제 생각으로, 제 판단으로는 '뭐 이만큼 기도했으면 됐지, 언제까지 이 기도만 붙잡고 갈 거야?'
그럴 수도 있었는데,
주님 안에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계속 기도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주일마다 우리가 기도했고,
그리고 매일 '기도방 톡'을 통해서 기도해 왔습니다.
'어떤 응답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지 못했지만
주님 안에서 기도해야 되는 거구나...' 그것도 큰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15: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러니까 기도의 놀라운 응답의 약속에는 전제가 있는데,
그 전제가 뭐냐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 기도 제목을 정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럴 듯 하고, 내가 판단하기에 이 기도가 응답될 것 같고...'
'그렇게 응답되면 좋을 것 같고...' 이런 우리 생각으로 무슨 기도를 하고, 안 하고 하면
반드시 기도에 좌절이 옵니다.
기도의 제목이 우리에게서부터 나오면 안 된다는 거예요.
기도의 제목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때는 도무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기도를 하게 되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하게 되는 거예요.
주님께서 나에게 기도의 부담을 계속 주시니까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 중에도
아마 그런 기도 제목을 가지고, 마음에 갈등하고 있는 분이 있으실 거예요.
또는 기도를 하다가, 이미 중단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아휴 그 기도는, 더 이상 계속할 기도가 아닌 거 같아.
내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웃을 거야...'
오늘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계속 기도하라고 하시는지, 아니면 주님이 기도를 그만 내려놓으라고 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것에 대한 분별을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1907년에 우리 한국의 성령의 대부흥이 임해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흥하게 되었죠.
물론 그 시작은 1903년 하디 선교사님으로부터 시작된 회개의 부흥이
1907년에 평양에서의 대부흥으로 역사가 이어졌는데,
그때 당시에 계셨던 스왈론 선교사님이 평양에 계셨는데 William L. Swallen
그분이 그 평양대부흥에 대해서 쓴 글이 있습니다. 그 글에 보면,
「그때 당시에 선교사님들은 '한국교회 부흥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더 기도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대부분 다 중국과 한국을 같이 선교를 했습니다.
중국과 한국을 오고 가시면서 선교를 했고, 두 나라 선교사님들 사이에 교류도 많았고요.
그런데 중국교회보다 한국교회가 훨씬 더 전도가 빨리 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선교사님들 사이에 중국 교회와 이렇게 비교해 보니까
한국교회는 이미 충분히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세요.
그래서 선교사님들 마음에, 특별하게 한국 교회를 위해서
뭘 더 역사해 달라고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의 기도가 없었어요.
그게 1906년 중반까지의 일입니다.
그런데 1906년 9월에, 뉴욕에서 하워드 에그뉴 존스톤 선교사님이 서울에 왔습니다.
그분이 오셔서, 한국에 선교하시는 선교사님들 모인 모임에서, 인도 이야기를 하셨어요.
1905~6년에 하나님이 인도의 카시아 지방에 엄청난 부흥을 주셨어요.
그래서 그 부흥의 기간 동안에 8,2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일도 일어나고,
그리고 인도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는 큰 부흥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때 한국에 있던 선교사님들의 마음에
'아니, 우리들이 사역하고 있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큰 부흥이 인도에서 일어난' 것을 알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인도에서 일어난 그 놀라운 부흥이,
우리가 사역하는 한국에서는 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선교사님들과,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우리 하나님 앞에 더 큰 부흥을 구합시다.
중국교회에 비하면 이미 조선교회는 굉장히 부흥된 교회이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이 정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인도 카시아 지방보다, 한국을 하나님이 덜 생각하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인도 카시아 지방에 그런 부흥을 주셨다면, 한국에도 그런 부흥을 주십시오!
이렇게 우리가 매일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회를 가집시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이 모여서, 평양에서
감리교, 장로교 선교부에 소속된 20명 이상의 선교사님들이 모여서
한국 목회자들과 함께 '정오 기도회'를 시작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을 기도했어요.
그때 한 형제가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우리가 약 한 달을 기도해 왔으나, 아무것도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 기도회를 여기서 마무리합시다. 언제까지 계속 기도만 할 겁니까?
이제 우리가 우리 사역지로 돌아가서, 거기서 편리한 시간에 계속 기도하면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정오마다 이렇게 모여서 하는 기도회가, 이제는 한 달이 지났으니까
여기서 이제 마칩시다. 역사가 일어나지도 않는데, 언제까지 모여서 기도만 할 겁니까?'
이런 제안을 했어요.」
사람의 생각으로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죠. 아마 우리도 그렇게 하기가 쉬웠을 거예요.
한 달 동안 작정 기도를 했는데, 특별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근데 그때 여러 선교사님들의 마음에
'아 그렇구나. 이제 우리가 흩어져서 각자 알아서 기도하고,
이제 더 이상 함께 모이는 기도회는 하지 말자'
이런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에는, 자꾸 불편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면서 어떤 선교사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계속 정오 기도회를 모였는데, 그래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기도회로 한번 더 모입시다. 하루에 한 번 더 모여서 (두 번 모여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계획이, 절대로 인도보다 한국을 하나님이 덜 생각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인도에 그런 부흥을 주셨다면, 한국에도 반드시 하나님이 부흥을 주실 거 아닙니까?
근데 매일 정오 기도회를 한 달 동안 했는데, 별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가 한 시간을 더 모여서 기도합시다.'
근데 그 제안을 하시는 선교사님의 말에, 많은 선교사님들이 다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그렇게 합시다!'
그래서 조금 전에 '그만 중단하자'고 이야기가 되었던 것이,
하루 1시간 더 기도회로 모여서 기도회를 했고,
그리고 1907년 평양대부흥이 임한 거예요.」
1907년 평양대부흥이 임하기 전에, 그런 스토리가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기도를 계속 해요, 말아요?' 이거 누가 결정하는 거죠?
주님 안에서 거하는 가운데,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거죠.
기도회로 모이기에는 너무 힘드니까, 여건이 어려우니까,
뭐 잘 안 모이니까... 충분히 인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건들이 있지만,
그 결정은 주님 안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기도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렇게 금요성령집회로 모이셔서, 정말 기도할 제목들이 많겠는데
오늘 여러분들을 기도하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서, 늘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이 계속 기도하라는 부담을 주시는 거예요.
그런게 있는지 없는지는.. 기록해 보시면 알아요.
생각만 하지 마시고요.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기도할 제목을 부어 주시는지,
그냥 스치듯이 지나가는 생각도... 여러분이 잘 붙잡을 수 있어야 돼요. (기록해 보세요)
그러면 '아~ 일관되게 주님이 내게 이 기도를 계속하게 하시는구나'
매일 합심 기도문을 우리 교우들에게 보내기 위해서,
전에는 하지 않던 일을, 1년 넘게 지금 지속하고 있습니다. 기도 제목을 (단톡에) 쓰는 거죠.
전에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기도했어요.
근데 돌이켜 보니까, 지난번까지는 기도가 계속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렇게 기도했던 것 같아요. 기도가 조금 더 진전되어 나아가지 않는 거죠.
그런데 기도문을 써 보니까... 기도 제목이 쭉 나아가요. 진전돼요.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것을 알게 되요.
여러분도, 여러분의 기도 제목을 써 보시기 시작하면,
그러면 '주님 안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기도를 부어 주시는지, 무얼 기도하게 하시는지를'
여러분이 알게 됩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주님은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즉 주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 시작하면,
그러면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850명의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영적 대결을 벌이죠. 제단에다가 송아지를 각을 떠서 올려놓고, 절대 불을 쓰지 않고
자기가 믿는 신에게 각각 기도해서,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서 그 제물을 불태우는 영적인 시합을 한 겁니다.
근데 그때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엘리야의 기도가 차이가 나요.
완전히 뚜렷한 차이가 나요.
이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은, 얼마나 기도를 강하게, 열정적으로, 많이
거의 온종일 기도했습니다. 나중에는 자해하면서까지, 자기 몸을 스스로 해치면서까지
자기가 믿는 신에게, 발광을 하면서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전혀 불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이젠 엘리야 차례가 됐어요. 엘리야는 혼자예요.
기도도 여러 많은 사람이 하면, 기도소리도 뜨겁고, 또 기도의 힘을 얻기도 하는데,
엘리야는 혼자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간단하게 기도했어요.
엘리야가 돌을 주워모아서 제단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다가 물을 붓고,
그리고 하나님께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사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옵소서' 왕상18:37
그거 하나예요.
'하나님 여호와가 진짜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시고,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오게 해 주옵소서'
제단 위에 불이 확 임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단순히 많이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기도는 뜨겁게 해야 되고, 서로 연합해서 해야 되고, 정말 강하기 기도해야 되는게 분명히 옳지만,
그보다 더 훨씬 중요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주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만 붙들고.. 하나님 앞에 많이 오래 기도한다고
기도의 역사가 일어나는게 아니더라는 거예요.
(응답이 안 되면) 오히려 기도에 대한 좌절만 커지는 거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은
주님 안에 거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다급한 문제가 있어서 오늘 금요 철야 성령집회에 오신 분이 있습니까?
오늘 정말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먼저 붙잡을 때...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기도의 위기
한국 교회의 위기는, 정말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대단히 큰 위기예요.
기도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기도가 되어 버렸어요.
예수님 당시에, 그때 예수님께서 기도하던 바리새인들의 잘못됨을 지적하셨는데
마6:5절입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이것이 예수님 당시 때 바리새인들의 기도였어요.
예수님이 보시니까 기가 막힌 거예요.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을 의식하기보다, 사람을 의식해서 기도를 하는 거죠.
이게 전형적인 외식하는 기도, 율법주의적 기도죠.
근데 한국교회가 점점 그런 경향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기도가.. 정말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께 드리는 기도이기보다는
사람들을 의식해서 하는 기도가 되었어요.
영국의 소설가 허버트 웰스라는 사람이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단편소설을 썼는데요.
「아주 경건하고 기도 많이 하기로 아주 유명한 대주교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교회에서 아침 저녁으로 오랜 시간 기도를 했어요.
그분이 기도를 시작하는 것은, 아주 딱 정형화 되어있었습니다.
"오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그러면서 계속 오랜 시간을 기도했어요. 아침과 저녁으로.
주변에 있는 분들이 다 '참 저분은 기도 많이 하시는 분이다' 라고 존경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대주교가 늘 해오던 기도를 합니다.
두 손을 들고 "오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그런데 그날 하나님이 응답을 하셨어요. 하늘에서부터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내가 듣고 있다.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 봐라"
대주교가 얼마나 놀랐는지... 뒤로 자빠져서... 그만 죽었어요.」
물론 풍자적인 얘기죠.
얼마나 당시에 성직자들이 형식적인 기도,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기도,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기도를 드리는가를 풍자하는 소설이지만,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교회 안에서 기도를 하다 보면,
때때로 이분이 진짜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건지,
우리들 사람에게 들으라고 기도하는 건지... 모를 정도의 기도가 했어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정말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우리가 용서해야 된다는 걸 깨닫게 해 주시고,
우리가 전도해야 된다는 걸 깨닫게 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해야 된다는 걸 깨닫게 해 주옵소서!"
이미 자기가 다 깨달았으면서...
우리가 전도해야 되고, 헌신해야 되고, 사랑해야 되고, 용서해야 되고...
자기가 다. 깨달았으면서, 뭘 또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요?
그 분은, 지금 기도를 통해서, 설교를 하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 들으라고, 설교를 하고 있는 거죠. 기도를 통해서!
이렇게 우리가 기도하면서도, 때때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주목하지 못하고,
그리고 기도를 함께 듣는 사람들을 의식해서.. 기도를 하고, 기도문을 쓸 때가 있어요.
대표기도를 할 때, 보통 기도문을 종이에 써서 하죠.
기도문을, 아주 명문으로, 성경구절까지 넣어가면서
그렇게 정말 기가 막힌 문장을 쓰는게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기도를 못해요.
꼭 그게 나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때는 기도할 때,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분도 있어요.
하나님 앞에 성경 구절을 왜 인용해요?
정말 주님만을 의식하면, 기도가 벌써 말이 다르고 내용이 달라요.
그 기도를 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처럼 안타깝게 말씀하셨어요.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기도는 골방 기도예요.
마6:6 '너는 기도할 때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 들어가라는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을 의식을 해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다 함께 모여서 기도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골방 기도'를 드릴 수 있어요.
'내가 기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지 않겠나?'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여러분이 주목해서 바라보게 되면,
지금 이 예배당에 여러분이 앉으신 자리가 그대로 골방이 됩니다.
초점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에요.
이것이 바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중에 가장 고독하신 분이, 저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주님께 간구하지만
실제로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 그분을 원하는 마음보다는,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이 더 클 때가 있어요.
기도하는 사람들의 문제 중에 가장 큰 문제가,
기도를 들어 주시는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기보다는,
내가 해결 받아야 될 문제에 더 사로잡혀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은 외면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가장 무시당하시는 거죠.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주님께 간구하지만,
우리 가운데서 주님이 어쩌면 가장 무시당하시는 분입니다.
담임목사는 저는, 이렇게 주의 이름으로 강단에 섰는데,
그래도 성도들의 환영도 받고, 저를 섬겨주시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으시죠.
'그런데 그만큼 예수님도 주목을 받으실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니까,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주님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가 있어요. 이렇게 주님은 무시당하고 계십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하는 찬송가가 있지요. Sweet Hour of Prayer
이 찬송가의 작사자는 영국의 월포드 (William W. Walford, 1772-1850) 목사입니다.
근데 월포드 목사님은 맹인이세요.
앞을 보지 못하지만, 기도하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웠어요.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받게 하시니
(기도하는 그 시간이 정말 즐겁다)'
이게 진짜 기도예요. 연애하는 거죠.
'골방 기도를 드리라'는 말은, 주님과 연애하는 기도예요. 이게 예수님 안의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먼저 전제가 돼야 되는 것은
우리가 오직 주님을 바라고,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시는 제목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주님이 말씀하세요.
여러분이 먼저 주님을 바라보고, 여러분이 주님 안에 거하기만 힘쓰면
정말 오늘 주님과 연애하는 시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이 역사하시죠. 내가 더 이상 뭘 달라고, 뭘 해결해 달라고
주님께 구하지 않아도... 주님은 이미 다 알고 계세요.
마7:8절에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다 보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이거 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라는 조급한 마음이 싹 사그라질 겁니다.
기도를 안 하는게 아니고, 완전히 주님께 맡기는 겁니다.
더 이상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거죠.
이게 기도하는 분들이 누리는 특별한 은혜 중의 하나입니다.
마음에 두려움도 없어지고, 무겁게 느껴지는 십자가도 너무나 가볍게 느껴지고,
불평하던 입에서 찬송이 나오고,
'이제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그런 기도가 나와요.
기도하지 않을 때는, 절대로 그런 기도가 안 나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가운데 기도하고,
그리고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요15:7
그러면 평소에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기도가 나와요.
즉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내가 져야 될 십자가는 너무나 가볍게 느껴집니다.
'이거 해 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하는 조급한 마음은 다 사라져 버려요.
욕심도 다 사라져 버려요.
대신에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나 기쁘고...
그리고 주님이 다 이루셨다.고 하는 확신이 생겨요.
이것이 오늘 기도 중에 여러분 안에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강하게 이끌어 가세요.
생각지도 않았던 기도 제목들을 주세요.
평소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문제를 향하여 간절히 기도하게 하십니다.
◑먼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순간순간 주님 안에 거하면 된다
제가 이번 토론토 집회 중에, 어느 날 아침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그냥 번개 같이 주셨어요.
그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처럼 인도하심을 구하라'
이미 독일에서도, 토론토에서도 일정이 다 짜여져 있었어요.
설교할 내용도 다 준비했어요.
만나야 될 사람들도 다 약속되어져 있었어요.
뭐 이제 하나님 앞에서 일정을 위해서 구할게 없어요.
이미 한국을 떠나기 전에 다 스케줄 짜 놓고, 설교도 준비해 놓고,
그리고 만나야 될 사람도 약속하고... 그리고 한국을 떠났어요.
그런데도 '앞을 못 보는 맹인이 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그날 아침에 주님이 제게 주셨던 생각이에요.
제가 그걸 풀어서 써 보니까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여러분 이게 얼마나 두려운 순간입니까.
혹시 여러분이 기도회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요.
근데 차를 운전해서 도로로 나가야 됩니다.
'세상에 이거 정말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때 하나님이 제게 마음속에 깨닫게 하신 것은 이사야 30:21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내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그때 비로소 제가 깨달아졌어요.
스케줄을 다 준비했고, 전할 말씀도 다 준비한 것 같아도,
'나는 한치 앞을 모르는 형편에 지금 있구나'
그러고 보니까 예상치 못했던 일도 있었고, 또 예상치 못한 만남도 있었고,
또 말씀을 전하려고 하면, 준비해간 설교를 다 덮어버리고,
완전 새롭게 말씀을 준비해야 되는 순간이 계속 이어졌어요.
'아~ 내가 어떤 자세를 기도를 해야 되는가?
앞을 보지 못하는 가운데, 운전을 해야 되는 심정으로
주님 저를 인도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야 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자세입니다.
기도조차도 그래요.
기도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입을 열어서 하나님께 구하는게 아니고
'주님, 제 기도를 인도해 주세요. 제가 뭘 구해야 합니까, 어떻게 구해야 합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임현수 목사님을 만나 뵈었더니, 석방되기 15분 전까지 그 사실을 모르셨대요.
15분 전에서야, 임현수 목사님은 자신이 석방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캐나다에서 온 정부 특사를 만나고, 그리고 공항으로 가게 된 겁니다.
15분 동안 일어난 일이에요. 한치 앞을 못 보는 거예요.
우리도 똑같아요.
우리 민족의 운명도 똑같고... 우리는 정말 앞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나라도 그렇고.. 민족도 그래요. 이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지요?
우리가 할 일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끝까지 기도할 수 있어요.
임현수 목사님이 인터뷰 중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님과 밥 먹으면서 대화하고.. 노동하면서 기도했다고..'
2년 반 동안 북한의 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식사 시간 때마다 주님과 대화하고,
그리고 그 꽁꽁 얼어붙어 있는 땅을 파야 되는 노동을 하면서,
그러면서 주님께 기도하고,
이렇게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그 매 순간 순간으로 충분한 겁니다.
'내가 언제 여기서 나가나?
아 내가 여기서 얼만큼 있었는데, 내가 또 얼만큼 여기에 더 있어야 되나?'
아마 이런 생각을 했으면 무너졌을 거예요.
그렇지만 매 순간 그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으로 기뻐했어요. 그리고 감사했어요.
그러다가 석방되기 15분 전에 통보가 왔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정부 관리와 함께 31개월만에 캐나다로 돌아온 거죠.
아마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도, 저는 그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실 며칠 뒤에 일어날 일도, 한 마디도 말씀을 안 해주세요.
우리가 무슨 힘으로 그러면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거죠?
주님 안에 거하는 기쁨 밖에 없어요.
'내가 지금 주님 안에 거하고 있다'는 확신!
그것 때문에 그저 오늘 이 순간을, 내가 이겨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기도제목을 부어 주시고,
한국 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우리가 매일 기도하잖아요.
▲한국교회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순간순간 마음에 좌절과 절망이 옵니다. 도무지 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한국 교회를 위해서 뭘 어떻게 해야 되나?
내가 뭐라고 도대체 한국교회를 개혁할 수 있겠나?
한국교회가 정말 새로워지고, 정결해지고, 성령으로 충만한 그런 역사가 진짜 일어날까?'
근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네가 섬기는 교회만이라도 잘 개혁되도록 하라!'
'아 그렇구나, 한국 교회를 개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
내가 할 일은, 우리 교회만이라도 제대로 목회를 하는 것이구나...'
그런데 또 좌절이 와요.
'내가 도대체 이 교회 교인들을, 또 이 규모의 교회를 어떻게 바로 인도할 수 있는 거지?'
'하나님, 저는 이것도 도무지 못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도 제대로 잘 개혁하고, 또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를 목회한다는게
제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근데 그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주님 안에 거하는 자를 세우라!'는 거예요.
교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세우라)
전부 다를 한꺼번에 세우려고 욕심내지 말고,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 깨닫고 그렇게 정말 따라오는 사람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라도, 정말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
주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아 듣는 사람을 세우라!'
그런 사람을 계속 세워나가다 보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가 온다는 거죠.
'그리고 그런 교회를.. 한 교회, 한 교회씩 (세워나가라)'
조급한 마음 갖지 말고, 그 규모가 작든지 크든지
정말 주님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그렇게 세워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엔 하나님이 하신다는 거죠.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 대해서 답답하십니까?
그건 여러분의 능력과, 또 여러분에게 맡겨진 영역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어요.
그냥 여러분이 주님 안에 거하기를 계속 힘쓰는 거예요.
어느 순간에나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지고, 늘 익숙하고,
그리고 주의 말씀이 늘 여러분의 마음 속에 거하고...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힘써 나가시면,
그 다음엔 하나님이 하세요.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깨닫고 보니까
우리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이 더 간절하십니다.
우리 개인적으로나, 우리 교회나, 한국 교회나, 전 세계 열방이나...
하나님이 새 부흥을 주시는 일에, 더 마음이 간절하세요.
근데 문제는 준비된 사람이 없어요.
정말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준비된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 그래서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사람이 너무 적은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역사를 못 하시는 거예요.
준비된 사람이 생기면, 역사가 일어나는 걸 봅니다.
오늘 이 밤이 그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님, 제가 정말 주의 마음을 품고
제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제 안에 거하는... 요15:7
제가 그런 사람으로 서기를 원합니다!'
'지금 제가 현재 처한 형편과 환경에 대해서
제가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저는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그렇게만 바랄 것입니다.
제 눈을 열어서 주의 영광을 보게 해 주시고
제 귀를 열어서 주의 음성을 듣게 해 주옵소서!
제가 그런 사람으로 꾸준히 서 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제 주변에 그렇게 믿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한 사람 두 사람씩
제가 함께 믿음으로 서로 연결해서 세워 가겠습니다.
우리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런 가족으로 이렇게 세워 가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하세요. 정말 놀라운 일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