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일터의 주님,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 (골19강)

LNCK 2024. 3. 21. 10:34

2022-09-18 주일예배 // 일터의 주님 -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 - YouTube

◈일터의 주님,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      골3:22~4:1      ▣ 복음과 직업

가정의 교훈에 이어서, 오늘 본문 3:22~4:1절까지는 초점이 '일터'로 옮겨지게 됩니다. 

 

◑전체 주제 / '직장 일도 주께 하듯 하십시오!'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위 22절을 보시면 '종들에게' 가르침을 주면서, 
중간쯤 보시면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주는 큐리오스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주께 하듯 하고'
종들이, 오늘날의 말로 직장인들이,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고 권면합니다.
'주'라는 말이 계속해서 몇 번 더 나옵니다. ↙

3: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상을 주께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보상을 집주인, 회사 회장에게 받는 것이 아니고, 주(큐리오스)께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또 후반부에는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직장에서 직장 일하는 것인데, 그 일도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포함된다는 것이죠.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상전들에게 가르치면서 '너희에게도 하늘의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여기 '상전'은 큐리오스, 바로 '주님'입니다. 
'상전인 너희도 하늘에 주님이 계신 것을 알지어다'

이렇게 짧은 다섯 구절 속에, '주님'(큐리오스)이라는 표현이 무려 5번이나 등장합니다. 
결국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가정의 주인이실뿐만 아니라, 일터에 주님이 되시는 분이시다.' 
라는 것을 바울은 강조합니다.   

◑절별 해석 3:22절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당시 로마시대 전체 인구 중에 절반 정도가 노예 였습니다. 엄청난 숫자죠.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 중에 다수가 종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종들에게는 4구절, 그러나 상전들에게는 1구절 밖에 없습니다. 
이거는 차별이 아니라, 그만큼 초대교회에는 종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강조점에 맞추어져 있죠. 

종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육신의 상전들' 
4:1절의 '하늘의 상전'과 대비되죠.

이 땅에서 종에게 주인은, '육신의 상전'들이지만 
또 누가 계시느냐? '하늘의 상전'이 계십니다.  

육신의 상전들에게는 한마디로 '순종하라!' obey 
이 말은 '복종하라' 보다 훨씬 더 강한 표현이라고 지난 시간에 공부했습니다.  3:18

'모든 일에'
그러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해라! 

 

'종이 상전들에게 순종해야 된다' 
이것은 그 당시 그리스-로마 사람들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부분을 가르치면서, 특별히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순종하는데.. '어떻게 순종해야 되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세 가지로  교훈합니다. 

1) 첫 번째는 '눈 가림만 하지 말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눈 가림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 가림'이 뭐겠습니까? 
KJV 에는 eye service 로 번역되어 있어요. 

NIV 는 좀 풀어서 번역해 놓았는데 'not only when their eye is on you' 
'주인이 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일하지 말고' 라는 뜻이죠.

NASB는 'not with external service' 
'겉으로 열심히 하는 척 하지 말고' 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주인이 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일하지 말고, 
겉으로 열심히 일하는 척 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일하라는 거죠.

「서구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단락 펀글)
한국 교회의 발전과, 한국 신자의 열심있는 신앙생활에 감탄하고 놀라워한다.
한국 교회는 살아 있으며, 아시아의 선교는 한국 교회가 맡아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과연 우리 한국 교회는 살아있고
아시아의 선교를 떠 맡을 만큼 성숙한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비록 유럽 교회가 잠자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내가 만나 본 유럽인들의 심성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적인데 비하여

한국 교회는 겉으로는 크게 발전한 것 같지만
안을 들어다 보면 왠지 미성숙하고, 그리스도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유럽인들은 생각하는 사고가 그리스도적이고,
몸에 벤 생활 자체가 그리스도적이고, 그네들의 문화가 그리스도적이다.
그네들의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가 그리스도적이다.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 온 것은 불과 140년이 조금 넘었다.

그 중에서도 초기에는 박해와
외국 선교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적인 신앙 교육을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받을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은 본래 종교적인 심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쉽게 받아들였지만
유교, 불교적인 문화를 가지고 살아온 우리들의 사상이나 마음까지
완전히 복음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열심하고 희생적이고 생명을 바쳐 순교까지 하는 열성은 있지만
그것은 소수일 뿐, 일반적으로는 복음이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신앙은,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느낌이고
우리의 심성에까지 촉촉이 적셔주지를 못하고 있다.

많은 신자들이 지금도 복음보다는 불교적인 가르침, 공자의 가르침이
더 많이 마음에 와 닿고 쉽게 이해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현실이다.

한마디로 우리들의 신앙은 어설프고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고
왠지 급조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제는 우리가 골로새서를 공부하면서, 
우리 자신부터라도, 직장에서, 세상에 나가서, 
모든 일을 주께 하듯이 섬김으로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내가 실제로 살아내고, 또한 자연스럽게 세상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2
'성실한 마음'은 '눈가림'과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성실한'이라는 말은, 착실한, 꾸준히 열심내는 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원어로는 '하나로 singleness, 단순한 simplicity' 이라는 뜻이죠.  *하포테스

즉 사람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한 마음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해라.. 
이게 '눈가림'과 대조되는 편이죠.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는 동기가, '주를 두려워하여' 
이것은 앞에 나오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과 대조되는 표현이죠.

이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니까, 눈 가림만 할 수 있지만,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결같이 행동하게 된다... 
이렇게 바울은 교훈합니다. 

그래서 존 칼빈은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거룩한 부름에 의한 거룩한 직업'이라고 가르쳤죠. *직업소명설
종들이, 오늘날의 직장인들이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동기는
'그 직장 일에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셨다'는 '직업적 소명감'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고후7:1절도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렇게 산다는 거죠.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그래서 바울은 종들에게 권면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만 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한 마음으로(성실하게) 살아가라.. 

◑3:23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 구절은 외우셔야 돼요. 
여러분, 그 당시에 고대 노예들은 인구의 절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전쟁 포로들이었어요.
그 중에는 정말 능력이 있는.. 과거가 화려했던 분들도 많이 있겠죠.  

종들이었지만, 어떤 분들은 육체적으로 험한 일을 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또 정말 능력이 있고,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상류층 자녀들을 교육하고 가르치는 일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종들도 천차만별의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든지' :23

블루칼라의 일이든지, 화이트 칼라의 일이든지 
그 강조점은 '마음을 다하여야' 합니다. '주께 하듯 하라'고 가르칩니다.

'마음'은 22절에도 나오고, 23절에도 나왔어요. 그런데 원어는 다릅니다.  
22절에 나온 '마음'은 카르디아,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23절에 나온 '마음'은 푸시케 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번역을 하느냐? 

예수님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해라' 하실 때, 막12:30
여기서 마음은 카르디아 heart, 목숨은 푸시케 soul 입니다. 

그러니까 23절의 '마음을 다하여'는
'혼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서' 라는 뜻이죠.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아래 24절은 그렇게 혼을 쏟아부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3: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우리가, 눈가림만 하지 말고,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고 혼을 쏟아부어서 
주께 하는 것처럼 일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1)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주님으로부터 기업(내가 받을 유산)의 상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정말 성실히 혼을 불어넣어 일하면,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고, 요령을 피우는 사람이 더 빨리 잘 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리 삶의 의로운 심판가 되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기업의 상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실히, 혼을 다해서 일한다는 것입니다.

2)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섬기느니라' 헬라어로 '둘류오' 입니다.  3:24
종은 '둘로스' 명사죠.    3:22

'너희 둘로스(종)들은, 주님을 둘류오(섬긴다)'는 말을 바울은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종이기 이전에, 하나님을 둘류오 serve 하는 둘로스 servant 들이라는 거죠.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본문의 바울의 이 권면을, 당시 성도님들이 들었을 때, 
당시 성도들의 대다수가 종들이라 그랬잖아요.
그들의 가슴이 뭉클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고대 종들은 기업이 없습니다. 종도 천차만별이라서 월급 받는 종은 있었대요.
그런데 보통은, 고대의 종들한테, 기업(유산)을 안 물려주죠.
기업(유산)은 자녀나 양자들이 물려받죠.

그들은 이 땅에서 어떤 것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바울은 그들에게 이야기하죠. 
'너희가 상전들을 주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할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기업의 상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 말은 두 가지 뜻인데 
-하나는 여러분의 섬김에 대해서 정당한 보상을 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바로 의로운 심판가 되시기 때문에, 
여러분(우리)들의 섬김에 대해서 정당한 보상을 해 주실뿐만 아니라, 

-또 하나 중요한 뜻은, 여러분 고대의 기업은 누구만 가질 수 있습니까? 
바로 아들과 딸들만 가질 수가 있습니다.
기업을 주신다는 말은 뭔가 하면, 바로 '너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죠.

이 땅에서는 종우로 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주님이 준비하고 계시는 그 기업을, 너희들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다르게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3: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주님이 상을 주실 뿐만 아니라 :24
또 주님이 불의에 보응을 하시기 때문에 :25
우리는 육신의 상전을 섬기지만, 주께 하듯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상벌 규정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24~25
성도는, 직장생활을 할 때도, 주께 하듯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불의'
앞에서 나온 말씀과 연결해서 보면 '불의'는 눈가림으로 살아가는 거죠. :22
눈가림, 요령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불의에 대한 보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신앙생활 하시면서, 자기 삶을 크게 바꾸어 놓은 그런 요절 말씀들을 
하나 정도는 갖고 계실 근데, 제게도 있습니다.

제 일생에 가장 큰 충격을 주었고, 제 삶을 가장 크게 뜯어고친 말씀이 
골로새서 3장 23절 말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라' 
제가 이 말씀을 대학교 2학년 때 받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할머니가 저를 극진히 키워 주셨어요.
아버님이 장남이시고, 또 제가 큰아들이니까,  
어머니가 계셨지만, 할머님이 정말 저를 극진하게 저를 돌봐 주셨어요.  

정말 저는 손에 물 한번 안 묻히고, 집에서 자랐습니다. 
때때로 일할 게 있으면, 동생들이 다 했죠.

제가 대학을 서울로 유학갔는데, 1학년 때는 기숙사에 있었으니까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2학년 되니까, 학교 규정이 기숙사에서 나와야 되고, 
그래서 반년 정도는 제가 입주 과외를 했습니다. 

거기서 나오게 되어 가지고, '또 어디를 가야 되나?' 물색하다가 
근데 그때 제가 다녔던 내수동 교회 공동체 대학부에서
교회 같이 다니는 형제들이 함께 자취해서 사는 공동체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저보고 '같이 살자'고 저를 초청을 했어요. 

아 근데 정말 제가 그때 갑갑했습니다. 
저는 뭐 손에 물 한 번 묻혀보지 않았는데, 자취하게 되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이거 다 해야 돼잖아요. 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또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들 하더라고요.
'가장 친한 친구들하고는 같이 자취하는게 아니야!' 
왜냐하면 가장 가까운 친구라 하더라도, 같이 자취하면 원수가 되어서 갈라지니까요.  
그런데 제가 교회 형들과, 자취를 하게 된 것이죠.

그때 밥솥도 없어 가지고, 석유 곤로에 밥하고  *그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자취방에 연탄불을 땠기 때문에, 연탄도 피워보고... 
또 그때는 세탁기가 없었으니까, 열심히 손으로 빨래를 하고...  
제가 처음으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해봤어요. 

그때부터 자취를 제가 한 7년을 계속 했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자취생활이 힘든 게, 일도 일이지만, 참 제가 곤란했던게 뭔가 하면,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거죠.  

나중에는 8명이 같이 살게 되어서, 주말이 되면 지인이 찾아와서, 한 15명씩 같이 잠을 잤습니다. 
이거는 뭐 수용소 수준이죠. 

그런데 거기서 같이 사는데,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애들인데,
같은 자취생 형제들이, 교회에 같이 가면, 앞에 나와서 마이크 잡는 겁니다. 찬양인도도 했죠.

얘들이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멘트 하잖아요.
그러면 또 앞에 있는 자매들, 특별히 후배들은
또 감동을 받아서 눈물기 머금은 얼굴로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를 천사같이 생각을 하더라고요. 

근데 이 '천사'하고, 자취방에서 제가 같이 살아보니까, 완전 악당이에요. 
완전 미꾸라지처럼.. 조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미꾸라지 싹싹 빠져나가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는데, 계속 이게 반복이 돼요. 

그러다가 이 형제가 교회에 가서 찬양인도할 때 '여러분, 사랑합시다. 서로 섬깁시다'
이렇게 멘트를 날리면, 다른 형제자매들은 막 감동받아서 '아멘, 아멘!' 하는데,
옆에서 같이 듣고 있는 저는 미칠 것 같았어요. 
'저 못된 놈, 말이라도 못 하면 밉지라도 않지...'

저는 그 형제와 자취방에서 같이 살면서 
'도대체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밖에서, 가정에서, 학교나 직장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고민하고 있을 때, 제가 성경을 쭈욱 보다가, 이 구절(골3:23~24)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서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라 
'(주께 하듯 섬기면) 기업의 상을 주님께 받을 줄 앎이라'

정말 이건 저한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말씀이었어요. 
제 시선이, '그 형제'를 주목하던 것에서 '주님'께로 시선의 방향이 돌아가게 된 것이죠.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구나!'  
그때부터  제가 한번 흉내를 보기 시작했어요. 
밥을 하면서 '하나님, 제가 주님께 밥해 드리는 마음으로 밥을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솥뚜껑을 붙잡고 기도도 해보고, 

빨래 하면서도 '하나님, 정말 주님께 제가 빨래해 드리는 것처럼 제가 빨래를 하겠습니다.' 
청소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긴 이후로, 제 자취생활에, 또한 그 이후로 사회 생활에,
완전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어요.

그 이전에는, 교회와 관련된 일만 언제나 '주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지만,
그때 이후로는, 모든 일을 '주님께 하듯이' 하게 된 것입니다. 

즉 '지금 내가 함께 살고 있는 형제들을 위해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이 모든 것까지도 
바로 주님의 일이구나..' 이 사실을 깨달으면서, 제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저는 소위 펜 대만 굴렸던 사람이죠. 공부만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외 궂은 일은, 죄송한 말씀인데, 아랫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거죠.
어떻게 보면 유교적인 사람이었어요. (고향 경북에 유교 서원이 많습니다. 도산서원, 소수서원 등)

그런데 '말씀을 통해서, 그게 아니라 정말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뿐만 아니라, 
먹는 것, 마시는 것, 청소하는 것 등 온갖 궂은 일들까지도 
이게 바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일이구나...' 
이거는 제 삶에 말 그대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열심히 자취하면서... 관록이 붙어서, 지금도 양말 개는데는 도사입니다.
여러분, 자취생 8명이 일주일만 지나면, 양말이 56켤레 나옵니다. 

그런데 빨래를 미루다 보면, 양말 한번 빨면 100켤레입니다. 
그런데 빨래하는 것보다 더 힘든게 뭐냐면, 양말 짝을 맞추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말 100켤레 짝을 한번 맞춰 보시죠. 제가 양말 짝 맞추는 건 제 전공이거든요. 
제가 워낙 양말 짝을 많이 맞췄기 때문에요...

여러분 그때 제가 느꼈던게 뭔가 하면, 
'교회와 관련된 일만 주님을 섬기는게 아니구나..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서 주께 하듯 하면, 주님께서 내게 상을 주시는구나!' 

▲그런데 제가 이 설교말씀을 준비하다가, 관심을 갖게 된 인물이 클레이튼 커쇼 입니다. 
왕년에 그가 LA 다저스 있을 때, 정말 부동의 1선발이었죠.

두란노에서 만든 퐁당 앱이 있는데, 그 퐁당에 '인플루언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운동선수들 가운데, 예수님과 관련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일종의 다큐멘터리를 거기에서 소개해 주는데,
거기에 클레이튼 커쇼가 소개되어 나오더라고요.

그의 별명이 뭐냐? '주님의 선발 투수'입니다. 야 진짜 멋있지 않나요? 
커쇼를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생각한다는 거죠. 

그 퐁당 컨텐츠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보니까 또 책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클레이튼 커쇼에 관한 책을 제가 사서 보게 됐어요. 

거기 보니까 첫 번째 이야기가, 커쇼가 중3 때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합니다. 
'내 꿈은  미국의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 선생님이 (크리스천 선생님이셨던 것 같아요)
'커쇼, 냉정하게 생각해! 
미국에서 야구하는 청소년들 중에 프로선수가 될 확률은 백만 분의 1이야.'

100만명의 어린 야구선수들 중에, 소위 메이저리그 선수가 될 확률은 1명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 선생님 계속 뭐라고 얘기했느냐? 
'커쇼, 1백만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춰! (백만명에 주눅들지 말고)
너가 그 주인공이 한번 되어 봐!' (너는 네 소명에만 집중해 봐)

그래서 커쇼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커쇼가 정말 야구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 책을 쭈욱 읽으면서 커쇼의 모습을 보니까,
우리 교회 착한 고등부 학생을 보는 것 같았어요.

정말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 하고 모범생으로 살고, 
교회 동기 자매를 사귀는데, 이 자매가 정말 신앙이 좋은 자매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 사이에 잠비아에 단기 선교사로 가서 섬깁니다. 

그러면서 계속 교제해서, 23살 정도에 결혼을 합니다. 미국은 그 나이에 결혼을 하죠.
결혼하고 나서 커쇼는, 1년에 한 차례씩 부부가 함께 잠비아를 방문해 가지고 
거기 고아원도 돌아보고, 거기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도 정말 왕성하게 사역을 하고, 
또 선수 생활 틈틈이 간증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커쇼의 삶에 좌우명과 같은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말씀이 뭔가 하면, 
바로 골로새서 3장 23~24절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님께 받을 줄 앎이라'

여러분 고등학교 2학년 때 커쇼가 이 말씀을 듣고 보게 됩니다. 
그때 그의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야 정말 마음을 다해야 되는구나.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서 주께 하듯 해야 되는 거구나'

여러분 야구선수 투수가 공만 던지면 될 것 같지만, 
그 투수가 되기 위해서는, 무명일 때부터 온갖 허드레 일부터 다 해야 되잖아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메이저 리거가 되는 거지,
그런 과정 없이, 낙하산 타고 메이저 리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무명일 때부터, 팀을 위해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연습할 때도,
주께 하듯이 커쇼는 최선을 다 하는 거죠.
그리고 시합을 할 때도, 경기가 마칠 때까지,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자기가 공을 던진 후에도 계속 덕아웃에 남아서, 다른 선수들을 격려 cheer up 해주었다는 거죠.

그리고 커쇼는 욕을 할 줄 몰라요. 
그러니 자연히 다른 선수들하고도, 아무 마찰 없이, 우애하며 잘 지내는 거죠.
선수단 측이나 감독이 봤을 때는, 믿음직한 선수가 되는 거죠.

그래서 커쇼는 야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영 상'을 3번이나 받습니다. 2011·2013·2014년
(뉴스를 보니, 2024년 미국 메이저리그 개막식이 한국에서 열리는데,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 선수는 서울의 개막전에 참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최근에 어깨 수술을 했고, 지금은 재활 중이라서 한국에 오지 못했다고 하네요.)

커쇼가 고등학교 2학년인데, 오늘 본문의 이 말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
그러면 기업의 상을 주님이 주신다.' 골3:23~24
이 말씀을 굳게 붙들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시골에 있는 고등학교 야구 선수였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바로 주님께서 바로 상을 주신다.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 
그러면서 그 인생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자기 인생의 미래는 하나님께 맡기는 거죠. 

그러면서 시골에 있는 고등학교 졸업한 커쇼가, 나중에 드래프트 해가지고 
LA 다저스 마이너로 들어가고, 그 다음에  메이저로 들어가게 된 거죠.
커쇼는 '이거는 하나님이 해주신 거다' 하고 간증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한 사람의 성공 스토리를 이야기하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저는 교회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는 이런 모습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정말 교회에서는 천사이지만, 집과 일터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그 모습들 중에는, 저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기도 했죠.
여러분,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23
화이트 칼라 일을 하든지, 블루 칼라 일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혼을 불어넣고 ('마음을 다하여' :23) 
생명을 불어넣어서 한마음으로('성실한' :22) 일하게 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겁니다. 기업을 주신다는 겁니다. :24

어떤 분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나는 이미 나이가 많은데,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연세가 되셨다 하더라도, 
지금부터 내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쏟아붓는 삶을 살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신 일들을 통해 
우리의 후손들에게, 또 우리들을 통해 교회 가운데 
어떤 놀라운 변화를 만드실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어라' 
상전은, 당시에 교회 가운데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의'는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종들을 대하시는 것처럼, 너희들도 종들을 대하라' .. 이게 '의'입니다.

'공평'은 무엇이냐?
정당한 대우를 해 주라는 것입니다. 

고대의 노예들에게 일만 시키지 말고, 그들에게 필요한 의식주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라는 겁니다.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어라'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죠. 
'너희에게 하늘의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오늘날의 공직자들도 꼭 명심해야 합니다. 
'내 위에 아무도 없다' .. 이러면 꼭 망하는 인생이 됩니다.
'내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 분이 나를 판단하시고 심판하신다.
내가 하나님이 판단하실 때, 상 받는 자가 되어야 되겠다'는 각오를 할 때, 
그는 존경받는 고위 공직자가 될 것입니다. 

병행구절 엡6: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위협을 그치라'
과거 개역에는 '공갈을 그치라'고 번역했죠.
'너 잘라 버릴 거야' 이런 공갈이나 위협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면 '하늘의 상전이 계신다. 그 분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다.' 
즉 '종이나 상전이나, 하나님 보시기엔 똑같이 평가하십니다. 
종이라고, 상전이라고, 하나님은 다른 기준이나 잣대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한국 교회에도 점점 상전(고위직, 기업 임원)의 지위에 올라가 계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기억하셔야 돼요. 

정말 그리스도인 상전을 모신 사람들 가운데, (직장 상사가 크리스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저는 청년들을 섬겼기 때문에, 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하는 상전들 때문에, 
그들 청년들이 겪는 혼란과, 아픔, 분노를 저는 많이 접했어요. 

상전들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하늘의 상전이 계시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공갈치고 위협하지 않고, 
의와 공평을 베풀어서, 하나님께 상 받는 자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찬송가 595장을 부르겠습니다.
성도님들이 가정에서, 일터에서, 꼭 이 찬양을 불러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거는 보통 임직식 때 가장 많이 부르는 찬양입니다. 

1 .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이고
뭇 영혼구원 얻도록 잘 인도함이라

2 . 부르심받들어서 내 형제 섬기고
구주의뜻을 따라서 내 정성다하리

3. 주 앞에 모든 일 잘 행케 하시고
이 후에 주님 뵈올때 상 받게 하소서

4. 나 항상깨어서 늘 기도드리며
내 믿음변치 않도록 날 도와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