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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LNCK 2024. 3. 25. 14:39

2024-03-24 주일예배 //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youtube.com)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눅16:1~9

◑서론

누가복음 순서에 따라 오늘은 눅16장  말씀을 나누게 되는데,
본문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입니다.   

먼저 눅16장의 개요를 살펴보면, 크게 세 부분입니다.
16:1~9 :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오늘 본문
16:19~31 :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16:10~18 : 이 양쪽의 비유를 염두에 두시고, 예수님께서 '신실함'과 관계된 교훈들을 주심.

눅16장의 두 개의 비유가 공통점이 뭐냐면, 
둘 다 재물과 관계되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재물에 대해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사용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재물을 잘못 사용하게 될 때 맞이하게 되는 파괴적 결과를 교훈하시죠.

▲본문의 줄거리    
줄거리는 다 아는 내용이라서  생략합니다.

여러분, 이 비유가 좀 혼란스럽지 않나요?
첫 번째 드는 생각은, '청지기 진짜 나쁜 놈이네.. 공금 횡령하는 것도 모자라서,
아니 주인의 재산인데, 자기 마음대로 채무자의 부채를 경감시켜 줄 수 있나?' 

또 혼란스러운 것은, '주인이 청지기를 지혜롭게 행했다'고 칭찬했다는 점입니다.
비난받아야 마땅한 청지기를, 주인이 또한 예수님이.. 칭찬하는 식으로 본문이 전개됩니다.

'이 비유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하고 의아스럽게 돼죠. 
제가 여러 주석들을 참조해도, 명쾌한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 제가 미국의 신약학자 케네스 E. 베일리의 책을 좀 읽게 됐는데  Kenneth E. Bailey
이분은  중동에서 40년 이상을 사셨습니다. 
미국인이지만 거기에 사시면서 '이 성경이 원래 기록된 지역이었던 중동에서 
지금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를  연구했습니다.

서구인의 눈으로서가 아니라, 중동 사람의 입장에서
이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분이 이 비유에 대해서 굉장히 복잡한 설명을 했는데 
제가 한번 인내심을 갖고 그분 설명을 쭉 따라가다가 
정말 제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와~ 이런 뜻이 있겠구나' 

제가 생각할 때는, 베일리의 이해가
본문의 본래 의미에 대해서 그래도 가장 근접한 해석을 제공하는 것 같아서 
오늘 제가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16:1절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또한'

우리말 성경은 '또한' 이라고 시작하는데 
원래 원어 그대로 번역하면 '그리고 또한' 입니다.        *δὲ καὶ

'그리고'가 왜 중요하냐? 
'그리고'는 15장과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겁니다. 

본문 16장의 가르침이, 15장과는 단절된 가르침이 아니라, 
15장과 연관된, 15장에 연속된 가르침이다.. 라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됩니다.

15장의 마지막은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를,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그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리고 또한' 이라고 16:1절이 시작하죠.
이 접속사 '그리고'는
15장의 주제였던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본문 16의 비유에도 가장 기저에 흐르고 있는 주제이다.. 이걸 먼저 기억하셔야 됩니다. 
즉 본문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관계된 가르침' 입니다.

▲한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을, 주인이 동네 사람들을 통해 듣게 됐습니다.  

본문에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는 청지기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동떨어져서 보면, 그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는 청지기는 어떤 사람이죠?

우리와 연관을 짓는다면, 우리 각자가 그 청지기입니다.
부자가 불의한 청지기한테 그 재산을 위임하고 맡긴 것처럼, 
하나님은 그분의 부와 소유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다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냐? 하나님의 부와 소유에 대해서, 주인이 아니고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인데, 
우리가 관리하는 부와  재산을, 우리에게 맡기신 주인인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고, 
자신 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 그 사람이 누군가 하면 
본문에 등장하는 불의한 청지기와 같은 사람입니다. 먼저 이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소유를 낭비한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1   *디아스코르피조, waste
15장에서 똑같은 단어가 한번 등장했습니다.    

눅15:13절에,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디아스코르피죠)'  

탕자가 아버지 재산을 낭비했고,
청지기도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죠.
그런 뜻에서 15장과 16장의 비유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의 청지기는, 마치 탕자처럼, 그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이 주인에게 들렸다는 겁니다.   

◑16:2절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주인은 청지기를 부르고 사실 확인을 한 후에, 결국 그를 해고시킵니다. 
근데 재밌는 말은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셈하라'는 '회계장부를 정산하라 account'는 뜻입니다. 

이 청지기는, 소작농들에게 받았던 채무관계라든가 
여러 가지들을 다 기록하고 있는 회계장부를 갖고 있습니다.
그 회계장부를 다 정리해서 가져오게 하고, 그를 해고시키게 됩니다.

◑16:3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청지기에게는 이제 짧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회계장부를 넘기면, 더 이상 그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게 되죠.

'속으로 이르되'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청지기가 속으로 혼자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앞장 15장에도 한번 등장했는데  
15: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탕자가 '비로소 정신차렸다'는 뜻입니다.

청지기의 '속으로'와

탕자의 '스스로 (돌이켜)'가 헬라어로는 같은 표현입니다.   주1)

즉 탕자처럼, 이 불의한 청지기도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속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3절은 고민의 내용이죠.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는데,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이전까지 청지기는 떵떵거리면서 살았겠죠.  
주인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 받은, 그런 사람으로서  
또 주인의 재산들을 몰래 횡령도 하고, 유용도 하면서
이 청지기가 얼마나 풍족하게 살았겠습니까? 

근데 한순간에 그는 해고당하게 됩니다. 
고대사회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게 명예였습니다. 그러니 못 빌어먹는 거죠.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 청지기가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그러면서 이 청지기가 속으로 계속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4절에서, 그에게 불현듯이 한 생각이 떠오르는 거죠. 

◑16: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뭔가 불현듯이, 섬광같이, 어떤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는 거죠.
'내가 이 이대로만 하면,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아도,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할 것이다'
'이 사람들이 내 미래를 책임져 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 걸까요?

◑16:5~7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기름 백 말이니이라' :6
'말'은 '바트'입니다.
기름 백 말은, 현 시세로 환산하면, 노동자의 3년 연봉에 해당합니다.
좀 적게 잡으면, 오늘날로 치면 1억이죠.
청지기는 그의 빚을 기름 50말로 탕감해 줍니다.

'밀 백 석이니이다'
밀 백 석은 노동자 10년 연봉치 입니다. 
그 사람한테는 '여기에다가 80석이라고 적어라' 
약 2년치 연봉 정도를 감해 주는 겁니다. 경감, 조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장부를 주인한테 갖다 주었습니다.

◑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주인은, 금액이 바뀐 회계 장부를 보고서
'이 나쁜 놈, 끝까지 나한테 폐를 끼치고 나가는구나'  하지 않고,
'야, 너는 참 지혜롭게 행하는구나' 오히려 칭찬했습니다.
이 말은, '인마는 정말 잔머리 잘 굴리네' 뭐 이런 뜻이죠.

 

그러면서 이렇게 청지기를 칭찬합니다. 
'이 세대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라'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
예수님이 이런 표현을 쓰신 것은 '재물이 가지는 위험성'입니다. 
재물은, 마치 하나님처럼, 사람의 마음을 차지할 수 있는 바로 위험성을 가졌기에 
'불의의 재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맘모나 아디키아스

여러분, 돈은 하나님처럼 여겨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죠.  
그래서 '불의의 재물'로 어떻게 해야 되나? '친구를 사귀라!' 

'그렇게 하면 그 재물이 다 없어질 때, 지금 청지기가 해고당할 때처럼, 
바로 '불의의 제물로 사귀었던 친구가 너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석 및 교훈

 

지금 청지기가  주인으로부터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근데 아직 그 주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아직 회계장부를 청지기가 갖고 있잖아요.  

 

지금처럼  SNS나 통신수단이 발달이 안 됐기 때문에, 
주인은 그에게 해고선언을 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해고 당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회계장부를 아직 주인에게 건네주기 전입니다. 

지금 이 청지기는, 완전 해고까지 남은 시간(장부를 정리할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근데 그가 했던 행동은... 채무자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각자의 채무를 확실하게 경감시켜줬습니다. 

▲근데 제가 한번 질문을 드리자면, 
지금  청지기가 채무자들을 소환했을 때,

-채무자들은, 주인이 자기를 불렀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청지기가 독단적으로 불렀다고 생각했겠습니까? 

당연히 주인이 불렀다고 생각했겠죠. 왜 이 사실이 중요하냐면,
결국 채무자들은 '주인이 자기 빚을 탕감해 준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주가와 존경도가 올라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청지기가 '지혜롭게 행했다'고 칭찬한 것입니다. :8

저는 이걸, 이전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 비유가 해석이 안 된 거죠.

청지기는 채무자를 불러놓고 이렇게 얘기했을 것입니다.
'야, 내가 주인한테 네 이야기를 잘 했다. 네가 성실히 사는데, 흉년이 져서 빚을 못 갚았다.
네가 네 부모님도 잘 봉양하고, 일도 성실하게 열심히 한다고.. 주인에게 네 말을 잘 해 줬다.
그래서 (내 의견을 듣고) 주인이 네 채무를 깎아줬으니까,
나중에 네가 먹고 살만해지면, 내 호의를 좀 기억해 다오!'

이게 더 상황에 맞지 않습니까? 케네스 베일리가 이걸 이야기한 겁니다. 

여러분, 청지기가 이런 식으로 부채를 감해 줬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채무자들은, 
'청지기가 해 준 걸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주인이 삭감해 준 걸로 이해를 했기 때문에, 거기에 같이 도장 찍었다는 거죠. 
만약에 주인이 하지 않고, 청지기가 독단적으로 행한 것이라면... 청지기와 같이 잡혀가죠.

리스크가 도리어 커지죠... 그래서 채무자들은 주인이 경감해 준 것으로 알았다는 거죠.
 
▲이제 채무자들이 집에 돌아가서 뭐라고 했겠습니까? 집에 가서 잔치를 벌였겠죠. 
'야 정말 오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주인이 내 채무를 절반이나 감해 주셨다'
하면서 증서를 보여주는 거죠.  

'야 우리 이제 살만 해.  조금만 노력하면 부채 다 정리하고, 
우리가 허리 펴고 당당하게 살 수 있어!' 하면서 동네 잔치가 벌어졌겠죠. 

'야 정말 우리 주인 참 멋있는 분이시다. 참 너그러운 분이시다.'
그러면서 사람들마다 그 주인에 대한 칭송들이 자자했겠죠.  

▲이제 청지기는 회계장부를 주인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주인이 경감된 회계장부를 보는 거죠. 
그걸 봤으면,  주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1) 첫 번째 선택은, 되물리는 겁니다.
'이 나쁜 놈, 마지막까지 서류를 조작했구나.' 

그러면서 채무자들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계장부를 원상 복귀시키려 시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하면, 돈은 되찾을 수 있는데, 
문제는, 사람들의 주인을 향한 칭송이, 한순간에 분노로 바뀌게 되는 거죠. 
'그럴 줄 알았어.. 이게 무슨?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은혜가 어딨서?' 
그러면서 바로 주인을 향해서 가졌던 그 칭송과 기쁨은, 분노와 좌절로 바뀌게 될 겁니다. 

2) 그렇지만 주인의 또 하나 선택 가능성은,
주인은 '야~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나를 칭송하고.. 내 너그러움을 존경하니,
이왕 엎질러진 물, 내가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야 되겠다'

돈이 아주 많은 부자는, 그렇지 않겠어요? 돈보다 귀한 것이 민심이라는 것을 아는 거죠.

이 부자는, 그래서 재물은 손해를 봤지만, 민심이 자기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그 청지기가 지혜롭게 하는 것을 보고' 칭찬했습니다. 

◑청지기의 믿음

 

그러면 마지막 한 가지 질문이 남았는데 
'도대체 이 청지기가, 뭘 믿고 이런 계획을 꾸몄나?'
'도대체 뭘 믿고, 이런 얼토당토 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이런 일을 벌였나?' 라는 질문이죠.

케네스 베일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2절에, 주인은 청지기가 공금횡령 하고 있다는 거를 알았습니다.  
청지기를 불러서 해고 통보를 하죠.

만약 여러분이 주인이면, 여러분의 그 재산을 몰래 유용하고 횡령한 청지기를 적발했습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우아하게 '그래, 그만둬!' 하고  끝내겠습니까? No

그럼 어떻게 끝내시겠어요? 

고대 정서로 하면,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주인이 모든 것 믿고 맡겼는데, 딴짓을 하고, 공금을 유용하고 횡령을 했으니까 
엄청난 꾸지름과 냉혹한 처벌을 해야 되겠죠.  

그리고 손해 금액을 환수하려 하겠죠.
환수가 제대로 안 되면, 그를 감옥에 보낼 것입니다. 이게 정상적인 주인의 반응이잖아요. 

근데 여러분 바로 이때, 이 청지기가, 주인이 해고 통보를 받고서, 
자기 살 길이 막막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나 생각하다 보니까 
그가 하나 무엇을 깨닫게 되느냐? 
'주인이 자기를 대해 준게, 이게 뭔가 좀 수상하다'는 겁니다. 

분명히 정상적이었다면, 그 주인은 나를 꾸짖고  또 피해금액을 다시 환수시키고, 
 그를 감옥에 넣는 벌을 주는게 당연한데, 그저 해고 통보만 했다는 거죠. 

거기서 청지기가 깨닫는게 무엇이냐? 
생각보다 우리 주인이, 의로운 분이실뿐만 아니라, 
그분이 참 너그러운, 관대한 분이시구나... 하는 것을 그가 깨닫게 됐다는 거죠. 

마치 탕자가, 아버지의 관대함을 어디서 깨닫습니까? 
정말 자기가 품꾼이 되어서 돼지를 칠 때, 
그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무엇이냐? 
아버지 집에 있는 품꾼들이었어요. 
'내 아버지 집에 있는 품꾼들이 얼마나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의 마음에 '아버지의 관대함'을 다시 기억하는 거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관대함' 16장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주인의 관대함' .. 이것이 본문의 주제, 키워드입니다.


지금 본문에 등장하는 청지기도, 
자기가 해고 당해서 미래를 걱정하다 보니까 

지금 자기를 대했던 주인의 태도가, 정말 남다른 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분은 나한테 해고만 명했지, 나에 대해서 꾸중을 한다거나, 벌을 준다거나, 
또 피해보상을 요구한다던가... 이런 거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거죠.  

'야 우리 주인은, 생각보다 정말 너그럽고,  참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구나'
라는 것을 그가 깨달았을 때,

그의 인생, 그의 미래를.. 어디에 맡기기로 결심하냐면, 
자기의 노력이 아니라,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의 미래를, 그 너그러운 사랑, 

한없는 자비와 너그러운 사랑을 갖고 계시는 그 주인, 
그 주인의 너그러운 자비와 사랑에, 자기 인생을 맡기기로 결심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죠? 바로 빚을 탕감해 주는 일을 벌인 거죠.

쉽게 말하면, 주인의 너그러움을 동네 방네 선전하고, 소문 내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무엇이냐? 바로 주인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어요. 

그 너그러운 주인은, 바로 자신의 이름을 빛내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부채의 짐을 지고 있는 채무자들을, 
그들의 부채를 경감시켜주는 이런 행동을, 청지기가 주인의 이름으로 했을 때, 
주인은 얼마든지 커버해 주신다는 거죠. 

'주인은 정말 한없이 너그럽고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시다'라는 것을 
그가 믿었기 때문에, 청지기가 이런 도전을 할 수가 있었다는 거예요. 


▲적용

이 해석을 제가 발견을 나서는, 제 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어요. 
'바로 이런 뜻이 있었구나!' 

지금 불의한 청지기는 삶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갑갑한 상황입니다. 그는 어떻게 돌파했습니까? 

바로 주인의 그 너그러움과 무한한 자비와 사랑에, 그 능력에 
바로 자기 인생을 맡기는 거죠.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한테 
주인의 이름이 빛내지는 길을 선택을 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무거운 짐(빚)을  들어주면서 결국 어떻게 합니까? 

구제는 무엇이죠?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갖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 도와준 거죠.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죠.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이 말씀을 마무리 하면,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와  재산은 하나님이 맡기신 겁니다. 
우리는 소유주가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먼저는 꼭 기억하셔야 돼요. 
우리는 부에 대한 주인이 아니고, 청지기입니다. 

두 번째 기억하셔야 되는 것은 무엇이냐? 
심판의 날이 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에게, 심판의 날이 주어졌죠. 
바로 그가 공금을 횡령하고 유용하는 것을, 주인이 알고, 
그가 해고당하는 심판의 날이 온 것처럼, 

여러분들에게도 심판의 날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계할 날이 있는 거죠. 
지금 우리는, 바로 그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회계장부를 넘겨주지 않은 짧은 시간이 뭐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이 부와 재물을, 
비록 이때까지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가 깊이 생각하면서 깨달아야 되는게 무엇이냐?  
하나님은 비롭고 한이 없이 너그러운 분이시다..는 사실입니다
 
능력과 사랑이 한이 없으시고, 그분은 정말 너그러운 분이시다.. 라는 것을 기억하고  
내 인생을, 나의 능력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 그분의 사랑, 그분의 너그러우심에 
나의 인생을 맡겨 드리는 거죠. 

그러면서 매 순간마다,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서부터 
하나님을 향한 칭송의 소리가 높아지도록  

또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 원래 의도대로,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돕고 섬기면서 살아갈 때 

바로 주님께서는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에게 복을 주시지만,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날, 바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게 됩니다. 

마25:34절, 40절이 이 장면을 묘사하는데,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오른 편에 서 있는 사람한테 임금이 말하죠.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사람들아,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영원한 천국을 상속 받으라'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를 40절에 설명하죠. 
'임금이 대답하되 내가 진실로 이야기하는데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여러분, 주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작지만 우리가 친구를 사귀게 될 때, (구제할 때) 
불의의 제물로 친구를 사귀게 될 때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정리하면,
이 말씀 제가 공부하고 나서, 마치 수수께끼 같았던 이 본문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또 저한테는 정말 너무 생생한 도전이 됐습니다. 

인생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때로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가정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거나... 그래서 이제는 내 인생에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그때 저는 그냥 공식처럼.. 기록을 해 두었습니다.

"내 인생에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그때는 바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무한한 능력에 나를 맡긴다"

무한하신 사랑, 그 무한하신 능력에 내 인생을 맡기고..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바로 매 순간마다, 아무것도 없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살아가리라.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이지만, 이 작은 것을 가지고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면서 살아가리라.

옛날에 그런 말이 있었잖아요. 
'얻어먹을 구걸할 능력이 있어도, 그게 바로 주님의 은혜다.' 

여러분 '할아버지 이야기' 있잖아요. 
넝마를 줍는데 보니까 유리를 다 줍고 계셨어요.  

그분 구걸하시는 분이시지만, 유리를 줍는 그 할아버지... 
'왜 그렇게 하십니까?'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죠.
우리한테 구걸할 만한 능력이 있어도,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남을 위해서 거창한 일은 못해도,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유리조각들을 주워서, 사람들을 복되게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잖아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 무한하신 하나님의 자비,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 무한하신 하나님의 그 능력에
우리들 자신을 맡기고, 우리가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을 참 영광스럽게 하고, 빛나게 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가장 복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이 어디겠습니까? 
바로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이 고난 주간 동안, 특별 새벽기도를 할 텐데 
여러분이 한번 이런 계기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 
부활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한번 기억하고  
인생의 기초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 그 사랑에 우리들의 인생의 기초를 세우고,
이 믿음 가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고, 주위 이웃들을 복되게 하는 성도들의 삶이 되어서 

우리가, 천국과 같은 삶을 이 땅에서 누릴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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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비로소 정신차렸다'는 뜻입니다. 
16: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16:3의 '속으로'는            *에이스 헤아우투 to himself
15:17의 '스스로 (돌이켜)'가 헬라어로는 같은 표현입니다.   *엔 헤아우투  in him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