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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마리아를 기다리셨다

LNCK 2024. 3. 31. 11:51

 

◈예수님은 마리아를 기다리셨다     요20:1    부활절 아침묵상

 

부활절 이른 아침에 찬송가 160장을 불러보았습니다.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 주

Low in the grave He lay, Jesus my Saviour!

Waiting the coming day Jesus my Lord!」

 

이 찬송가를 부르다가, 문득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무덤에 머물러 예수님이 기다리셨다고?’

 

우리말 찬송가 가사에는, ‘새벽 기다렸네’ 하고 나와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시각을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와있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개연성이 있는 거죠.

예수님이 부활주일 새벽에 일찍 부활하셨는데,

무덤에 머물러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영어 가사에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새벽에 일찍 부활하셔가지고,

무덤에서 아침이 동트기를 기다리고 계셨다고요.

Waiting the coming day Jesus my Lord!

 

그럼 예수님은, 정말 아침이 동트기를, 찬송가 가사처럼, 기다리셨던 것일까요?

추측이지만, 더 정확하게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이셨던 그 무덤으로, 올라오기를 기다리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이 트기를 일부러 기다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동이 트기를 기다리신 이유는,

제자들이 동이 트야, 무덤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그때는 가로등도 없었고, 캄캄한 밤에는 다니기가 어려웠겠죠.

아마 들짐승도 있었을 것입니다.

 

등불을 켜서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렇게 다니기보다는

제자들도, 새벽 여명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움직였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새벽 여명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예수님 시신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았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요20:1

막달라 마리아는 새벽 미명에, 지평선이 파랗게 물들었을 때에 움직였나 봅니다.

 

이 글의 요지는, 예수님이 제자 중에 누가 무덤으로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가 찾아온 시점에, ~ 하고 부활하신 게 아니라,

 

예수님은 새벽 어느 시점에 아주 일찍 부활하셨는데,

무덤에 머물러 기다릴 수밖에 없으셨던 것은,

아무도 무덤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아와 주지 않으니, 그 캄캄한 새벽 시간이라서,

예수님은 기다리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여명이 물러가고 먼동이 터오기를 기다리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증언하고 증거해줄 증인들이 필요하신데,

그 증인들이 무덤으로 올라올 때까지, 예수님은 무덤에서 기다리실 수밖에 없으셨다는 겁니다.

 

약간 조바심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아무도 안 올라오면 이거 어떻게 하지? 그러면 난처한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사흘만에 부활한다고 미리 예고를 하셨지만,

그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은 제자들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왜냐면, 곧이곧대로 믿었다면, 부활절 날 새벽에, 무덤에 가서 기다렸을 터이지만,

막달라 마리아를 제외하면, 아무도 무덤에 가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 일행도, 부활을 보려고 찾아간 것이 아니었죠.

예수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고, 향품을 갖고서 무덤에 올라간 것입니다.

 

막16:1~2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그들은 가면서 걱정을 하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줄까?’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가 보니, 무덤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벌써 무덤의 돌돌이 굴러져 있었다, (돌을 둥글게 바퀴처럼 깎아놓아서 굴려서 열고 닫음)

 

마태는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아있었다고 기록했으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였다고 기록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가

어디론가 냅다 도망가 버렸을 것입니다.

 

이 묵상글의 주제는,

‘만약에 막달라 마리아가(여인 3인의 대표) 그 날 새벽에 무덤에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무덤에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아무도 무덤에 올라오지 않았다면,

과연 누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증거해 줄 수 있었을까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아무도 무덤에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무덤 속에서 뭘 하셨을까요? 크게 난처하지 않았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만약 아무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맞이하러 오지 않았다면

‘내가 괜히 부활했나?

이러자고 내가 부활했나?’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부활의 증인들’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부활의 증인들’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이, 하마터면 알려지지 못할 뻔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중에,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찾아오셔서

당신을 나타내시며, 부활을 알려주셨겠지만,

그 자리가 얼마나 서먹서먹하고, 서운했을까요?

‘너희들, 내가 부활했는데, 한 놈도 무덤으로 찾아오지 않았구나...’

 

▲부활도 중요하지만, 부활의 증인도 중요합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에 따라서, 교회들은 부활절이 되면

새벽에 일찍 모여서 예배드리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흰옷을 입고 모였습니다. 부활절 새벽에, 도시 내 교회들이 함께 연합해서 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의미를 모르니, 점점 그런 전통들도 빛바래 가고 있습니다.

 

오늘 부활절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맞이하지 않은 성도는... 스스로 반성해야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중요한 역할을 하셨지만,

‘부활의 증인들’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들’이 제대로 증거하지 않으면,

세상은 예수님의 부활을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즐겁고 놀라운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에,

‘내가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까?’

한 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성묘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모습

 

▲참고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곳,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은

오래 전부터 그곳에 성당을 세워서, 기념해 왔습니다.

 

‘성묘 교회’라고 부릅니다.

성묘 대성당 (Basilica of the Holy Sepulchre)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또는 단순히 성묘 (Holy Sepulchre)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동방 기독교인들은 또한 그것을 부활의 교회 또는 아나스타시스의 교회라고 부르며,

아나스타시스는 그리스어로 부활을 의미합니다.

 

위치는, ‘예루살렘 구시가지’로 불리는 예루살렘성(城) 내부의 서쪽 언덕에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와 바로 옆이라고 합니다.

‘비아 돌로로사’에는 14개의 기념 처소가 있는데, 성묘교회는 마지막 10~14번 처소를 품고 있죠.

 

 

성묘교회 사진

https://www.npr.org/sections/parallels/2017/03/20/520846214/tomb-of-jesus-is-restored-in-jerusalem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방문했고,

블라디미르 푸틴도 수년 전 방문했습니다.

푸틴은 성묘교회 인근에 있는 성삼위일체 대성당(성 알렉산더 네브스키 교회)에 대한

통제권을 러시아에 넘겨 달라고 지난해 이스라엘 정부에 요청,

다시 한번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고 하죠.

 

영국 왕실은 찰스3세 국왕의 대관식에 사용할 성유(聖油)를

성묘교회에서 종교의식을 통해 만들었는데, 찰스3세를 위해 예루살렘 동쪽의 감람산에서

채취한 올리브에다 식물성 향을 섞어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

 

20장 말씀을 묵상하는데

한참을 기도해도 말씀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식사 시간이 되어 일어나려고 하는데 , 여기 있어!” 하는 소리가

내 속에서 들리는 듯 했습니다.

 

, 예수님이 우리 몸 속 성전 안에 계시는데

내가 한 시간 동안이나 다른 곳에서 찾았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 여기 있어!” 하시던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두 요양병원에만 전도 및 예배 인도를 다녔지만

지금은 대원들이 열심히 활동해서 일곱 개의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가서 노인들을 만날 때마다 , 여기 있어!” 하시던

예수님의 음성을 떠올리며 더 기쁘게 다녔습니다.

 

병원 마당에 벚꽃이 만개했는데,

그늘 진 쪽에는 아직 꽃이 필락 말락 하고 있습니다.

 

햇볕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매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받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는 얼마나 큰 차이가 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교회 마당에 꽤 큰 정원이 있는데,

오후에 풀을 뽑고 과꽃씨와 봉선화꽃씨를 뿌리고 옥잠화 꽃을 심으면서도

, 여기 있어!”하시던 음성을 떠올립니다.

 

그러자 일이 더욱 재미있습니다.

작년에 심은 백합도 싹이 나오고,

다른 꽃들도 아기 손가락만큼 싹이 나와 있었습니다.

 

작업을 끝내고 나니 몸이 피곤해서 잠깐 쉬었습니다.

누워서 , 여기 있어!” 하시는 예수님을 느껴봅니다.

 

기도하면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조금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 안에 머물지 않으면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시간을 허비하다

결국은 아무 열매가 없어서 후회하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늘 내 곁에 계시고, 또 내 안에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선한 일을 추구하면서 찾아가면 됩니다.

 

과거의 원망스러운 일 억울한 일에 묶여 있으면

지금 예수님께서 부르셔도 못 알아듣고

과거에 묶여서 슬프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 지나칠 정도로 미래만 보고 살아도

현재를 기쁘게 살지 못합니다.

 

현재를 살아도 순간적인 쾌락과 즐거움만 추구하며 살면

훗날 내 인생이 뭔가?”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꾸준히 기도하면서 주님 안에 머물면

주님 은총의 힘으로 죄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마리아야!”하고 부르십니다.

이렇게 주님은 가까이에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럴 때 하고 응답하면서 그분의 뜻에 따르게 되면

그분의 임재를 더 가까이 느끼게 됩니다.

 

오늘 이 예배 중에 , 여기 있어!” 하시며

가까이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구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