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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길 살후2:14~15, 마5:17 2014.01.12.
◑하나님은 영적인 계승, 바턴 터치를 이어가십니다
지난 일주일간 신년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영적인 계승>에 대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넘나들고 시대를 뛰어넘어, 믿음을 이어간(계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이야기를 통해, 해방과 가나안 정착의 연결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엘리 대제사장과 사무엘의 이야기를 통해 “아들이 전부가 아닙니다”는 고백으로
혈통을 뛰어넘는 대제사장직 계승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무엘과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외모나 조건이 아니라
중심의 아름다움으로 사역이 이어지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를 통해
갑절의 영감을 사모하여, 스승의 사역을 이어받는 영적인 계승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이야기를 통해
바울이 개척하고, 디모데는 개척한 교회를 돌면서 목양하는 계승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에 갇혀서 잘못된 전통만 고집하다가 교회의 촛대를 옮겨,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펼쳐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한 인물에 의해 끝나는 것도 아니고,
한 교회에 의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람을 통해,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계승시키고,
발전시키고 전승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이 복음은, 하늘에서 어느 날 떨어진 것이 아니라
눈물로 순교로 이어온 산물입니다.
대대로 전해진 이 복음을 받았고, 이 복음을 대대로 전해할 사람들입니다.
공동체는, 복음에 대한 공동 기억을 후대에 전승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전승시켰고,
이제는 민족과 문화를 뛰어넘는 교회를 통해 복음 전승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또한 공동기억을 대대로 전승시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회는 전통을 부정하면서 출발했습니다.
종교개혁이 시작되기 전 가톨릭교회는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발행하고,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면 성전에 참여하는 것으로 부추겨
잘못된 공로 신앙과 보속신앙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직분을 돈 주고 매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도덕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종교개혁을 주장하는 자들은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출발했고, 오직 성경만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하여 개신교회는, 전통은 마치 복음과 상반되는 것으로 비춰졌고,
전통을 부정해야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가톨릭교회가 이단이다’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 한 사람들은, 이것을 마치 진리인양 믿고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가톨릭교회가 이단이라고 단정하면,
종교개혁 이전 1천5백년 동안의 교회의 역사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1천 5백이라는 역사를 이단이라고 잘라내버리면, 개신교 신앙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입니까?
개신교회는 가톨릭교회의 면죄부와 잘못된 성상숭배와 건물우상주의와 세속적인 욕망을 버려야 했는데,
면죄부와 성상 숭배만 버리고, 건물우상주의와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버리지 말아야할 1천5백년 동안 이어온 전통과 예전을
모두 다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침례교는 유아세례마저 가톨릭교회에서 내려온 전통이라 하여 부정해 버렸습니다.
커서 자기 믿음이 생길 때, 입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유아세례 받은 사람도 성인이 되었을 때, 세례를 다시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이름이 anabaptist, 재세례파라 불려졌습니다. 침례교의 기원이죠.
신앙을 가진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의식에 참여시키고
신앙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예전을 버리고, 전통을 버렸습니다.
동시에 역사마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니, 예전과 전통 속에 있는 신앙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있습니다.
과거의 전통과 예전을 부정해서 출발했기 때문에
전통과 예전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역사성(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자세는, 전통과 예전 속에 담긴 가치를 상실해 버립니다.
이것은 비단 침례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회 전체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역사상 과거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아름답게 정리한 역사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두 개의 국가 national anthem 가 있답니다.
-하나는 “디 스탬, 남아프리카의 외침”이고,
-다른 하나는 “앵코시 세케레레,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입니다.
2013년 12월에 작고한 넬슨 만델라가 1994년 흑인 최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뿌리 깊은 인종 차별에서 벗어난 흑인들은, 과거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만델라 대통령이 제일 부딪친 문제는 국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흑인들은 백인들이 만들어서 부르던 “남아프리카의 외침”을 부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흑인들 사이에 오랫동안 불리던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로 바꾸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 제안을 들은 만델라 대통령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죄송하지만 전 여러분의 생각과 다릅니다. 디 스탬은 오랫동안 백인들이 불러온 국가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없애고 흑인들만의 노래를 부른다면
우리도 백인들과 똑같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백인만의 나라가 아니듯, 흑인들만의 나라도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국가를 바꾼다면, 미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걸어갈 길인 백인과 흑인의 화합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회의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만델라의 말에 동의하였고,
이렇게 하여 백인이 좋아하는 국가와 흑인 좋아하는 두 곡의 국가를 함께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화의 사도답게, 골이 깊은 양 진영을 화해시켰습니다.
◑저는 제도 바꾸고, 프로그램 바꾼다고 해서 그것이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개혁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본질과 어긋나 있다면, 그것은 고치고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걸어가고 있는 길이 본질에 충실하다면,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구약성경에서 ‘전통’에 대해 무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유월절에 대한 기사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할 때 사건입니다.
어린 양을 잡아 좌우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집에는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어린의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애굽 사람의 집에는
맷돌 가는 여인의 장자부터 바로의 장자까지 죽음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과 이 역사를 기념하는 절기를 지켰는데 바로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사건이 과거의 어느 한순간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적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매년마다 기념하고서 대대로 영원히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절기를 전통으로 만들어서 지켜왔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을 때에는. 유월절 전통과 예배를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우상숭배를 할 때는. 유월절 전통과 예배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히스기야와 요시야 임금은
버렸던 유월절 전통과 예배를 다시 회복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예배를 지킬까요, 지키지 않을까요?
이 사건이 일어난 지 3천5백년이 지났는데, 그들은 아직도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1995년 미국에 있을 때, 신학교에서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드리는 유월절 예배를 참관하고서 리포트를 써오라고 했습니다.
3월 초순 정도 되었는데, 유대인 회당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랍비 한 분이
강단 앞에서 나와서 유월절 예식을 그대로 재연했습니다.
눈가에 이슬이 맺혀서 종살이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들을 젊은 세대들에게 들려줍니다.
3천 5백 전의 이야기와, 3천 5백년 전의 사건을 회상하는 데, 오늘의 사건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유월절 예배를 참석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몰려왔습니다.
과거 3천 5백년 전의 사건을 이야기 하는데,
유월절 예배에 참여한 사람들은 3천 5백전의 사건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종살이 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해방을 생각했습니다.
옛날 사건인데, 오늘의 의미를 전해주었습니다.
전통은 유대인들이 지키고,
유대인은 전통이 지켜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천 5백년 동안 나를 잃었던 민족이 나라를 되찾은 힘이
바로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전통’이라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당시 전통을 붙들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심한 논쟁을 벌입니다.
어쩌면 3년의 공생애 동안 전통과 율법에 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제시한 길이 무엇입니까?
저는 이 길을 갈릴리교회와 함께 걸어가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마5:17
예수님은 획기적으로 짠 하는 무언가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오래된 새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래 되었지만 본질을 붙들고 있는 그 길,
익숙하지만 낯선 그 길,
오래 되었지만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그 길을 걸어가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전통을 새롭게 하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길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대대로 이어나가야 할 전통을 지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통을 지키라’ 살후2:15
특별히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살전1:3
이런 전통을 굳게 지키라고 힘주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교회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오래된 새길,
우리교회가 지난 28년이라 역사 속에서 만들어놓은 본질을 따라서 줄기차게 걸어왔던 길은 어떤 길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걸어가야 할 길이 걸어가야 할 오래된 새 길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우리가 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길은 우리가 28년 동안 걸어왔던 오래 된 길이고,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새 길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길을 말할 줄 알았는데, 실망하신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걸어가야 하는 전통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길입니다.
사실 이 땅의 수많은 교회와 많은 교인들이,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당하고, 교회가 교회 구실을 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은
기독교의 가장 으뜸 되는 진리인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모이기는 수천 명이 모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일번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보다 세속에 있는 물질적 가치를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합니다.
또한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한 도움을 받으려고,
자식이 잘 되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교우들 중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른 그 마음을 둘러엎어야 합니다. 변질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 결과로서 하나님의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자식을 잘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때 결과적으로 우리의 자식들도 잘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죄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축복받기 위해 신앙생활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년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한국교회분석리포트”라는 설문조사를 내놓았습니다.
500페이지 정도 되는 두꺼운 책입니다.
1998년과 2004년 그리고 2012년에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 실태 조사를 했습니다.
질문 조항 중에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섯 가지 답이 있는데,
1번 마음의 평안,
2번 구원과 영생,
3번 건강 재물 축복
4번 가족 권유
5번 친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답변 중에 3번 건강 재물 축복이
1998년에는 6.5%,
2004년에는 7.1%
2012년에는 18.55로 나왔습니다.
반면에 2번 구원과 영생은
1998년 47.1%,
2004년 45.6%,
2012년 31.6%로 나왔습니다.
한국교회의 신앙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졌다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세속의 가치 물질의 가치를 좇아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갈릴리교회의 자랑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1번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게 실천하며 살아가는 신앙의 삶이, 갈릴리교회가 28년 동안 지켜온 신앙의 전통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 굳게 서서 살아가며
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며 살아가야 하는데
돈을 자식을 명예와 권력을 더 사랑하는 삶을 살았던 것을 애통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갈릴리교회가 지나간 28년 동안 한결같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지켜왔던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입니다. 저는 이 신앙의 전통을 목숨 걸고 지켜나갈 것이고,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는 전 세계 어떤 교회보다 보수적 신앙을 가진 교회입니다.
이 신앙의 전통을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신앙의 전통은
우리 교회가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교회는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거침없이 응답한 진취적인 교회입니다.
자신이 믿는바 신앙에 대해 자신이 없으면 배타적이 됩니다.
자신이 믿는 진리에 자신이 있고 확신이 있으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없기 때문에 독선이 되고 배타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확신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교회이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세상을 향하여 겁 없이 나가는 교회입니다.
이 길은 우리 28년 동안 걸어왔던 오래 된 길이고,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새 길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역사 속에서 인권이 박탈당한 노동자들과 함께한 교회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사람 취급받지 못할 때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 저들을 형제로 받아 주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보여준 교회입니다.
또한 캄보디아와 베트남 그리고 아프리카의 가나까지 몽골의 황량한 사막까지
이주노동자를 통해 교회를 낳아 땅 끝까지 거침없이 나가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국민들의 피를 흘리게 한 아픔을 조금이라도 씻어야 되겠다고
아무 연고 없이 가난한 농민들에게 희망의 씨앗 되는 송아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이 닫혀져 있다면 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모르는 다른 종교의 사람들까지도 만나서
의미 있는 역사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당에 여러분을 가두어 놓는 것이 아니라
교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세상을 향하여 나가도록 하는 교회입니다.
문이 열려져 누구든지 들어오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이 확실해서 우리가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우리 교회의 문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거침없이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안팎으로 활짝 열려진 문을 가진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진 교회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 된 가족과 같은 공동체라는
아름다운 전통을 지닌 교회입니다.
이 길은 우리 28년 동안 걸어왔던 오래된 길이고,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새 길입니다.
저는 매번 설교 할 때마다 마지막에 ‘사랑하는 갈릴리 가족 여러분!’ 으로 마칩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육신의 가족들보다 더 끈끈한 하늘나라 가족입니다.
몇 천 명이 보이는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갈릴리정신을 잃고 가장 조화로운 교회를 지향해 나갈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KTX 열차를 타고 부산을 내려가는데
뒷자리에 낮은 여자 분이 꾸벅 인사를 하더랍니다.
전혀 면식이 없는 사람인데 엉거주춤 인사를 받았답니다.
나중에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 목사님이 담임하고 교회의 김 집사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의 모든 성도들, 아이들 이름까지 외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자가 양의 이름을 모르고, 양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다면 과연 목양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교회가 예산의 50%를 선교비로 사용하고 있는데,
선교와 교육 목양의 가장 조화로운 지점은 어디일까 생각합니다.
예산이 15억 정도 되면, 선교뿐만 아니라 교육과 목양에서 가장 조화로운 교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 2부 본당을 채우는 숫자만 되면, 가족 같고, 가장 역동적인 교회, 선교와 교육에 조화를
이루는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교회가 28년 동안 지켜왔던 오랜 길, 앞으로 나가야 할 갈릴리교회의 새 길입니다.
함께 모여서 속 시원히 우리의 가슴을 털어놓기도 하고
부담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돕고 찾아다니고 위로하고
한 형제처럼 한 집안처럼 지내는 그런 모임이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가족 이기주의에 함몰되고, 자기만 아는 냉엄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하늘나라 가족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꿈입니다. 때로는 세상을 거슬러 살기 힘들 때
믿음의 동지가 되어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 수 있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가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갈릴리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인 갈릴리교회는 지난 28년 동안 걸어왔던 오래된 길,
앞으로 걸어가야 할 새 길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길이요,
하나님과 역사 앞에 거침없이 응답하는 길이요, 가족처럼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길입니다.
28년 동안 걸어왔던 이 길을 새 길처럼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