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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제사

LNCK 2024. 4. 11. 03:2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고난주간    <순종>

순종의 제사 | 히 5:8-9 | 이규현 목사 | 수고난주간특새 | 24.3.27 - YouTube


순종의 제사             히5:8~9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만.. 십자가를 질 수 있으며, 
그렇게 순종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 가장 고상한 인생이라는 주제! 

◑도입 : 십자가를 더 깊이 알아가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고난 주간에도 우리가 이렇게 십자가를 살펴보지만 
십자가가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나, 유익이 되나? 

십자가를 통해서 내가 받는 은혜...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십자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좀 더 충분히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하죠.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뭘 하느냐,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구원이 무엇인지, 십자가 무엇인지... 그 자체를 제대로 아는게 중요합니다. 

그걸 알면, 그 다음에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지.. 이게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없이 그냥 우리는 뭔가 우리가 뭘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하는 이런 태도는, 굉장히 위험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한 열심은, 나태보다 더 위험한 것입니다. 
잘못된 열심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죠. 

한국 교회 안에 그런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여정은 굉장히 긴 여정이죠. 
일평생 우리의 열정으로는, 이 신앙의 여정을 걸어갈 수가 없어요. 

우리의 열정으로, 우리 안에 있는 열심으로는 하나님에게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여정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는데 
그 하나님이 행하신 게 무엇인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것이 우선이죠. 

십자가도.. 그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겁니다. 
저도 이제 고난주간에, 십자가에 관련된 책들도 많이 읽고 하는데 
또 옛날에 안 읽었던 새로운 신간도 읽고 하는데,

'야~ 이 십자가가 어디까지 가는 거지?' 
이거 뭐 이렇게 한 1년 12달 다루어도 다 알아갈 수 없는 깊은 거죠. 
우리의 평생에 십자가를 알아가야 되는 그런 주제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대로 알면,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도, 우리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제 알게 되죠.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면, 그 안에서 나오는 그 어마어마한 것들이 흘러나오니까 
그게 이제 나를 이끌어 가는 거죠. 

그렇게 신앙생활은 십자가의 은혜가 나를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인데, 
그거 없이 내가 뭘 스스로 하려고 하면, 쥐어 짜내게 되어 있습니다. 
막 쥐어짜내다 보면, 얼마 못 가서 지치게 되는데요...
 
또는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보면, 하나님의 그 풍성한 사랑을 만나는 거에 익숙해지는 거죠. 
여러분 익숙해지면서 피상적으로 행하는 겁니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거죠.
 
십자가를 피상적으로 생각하고, 뭐 십자가 그러니까 
2천년 전에, 그 죄수 사람을 죽이는, 정말 참혹한 그 형틀.. 그게 십자가잖아요. 

그게 요즘 여자분들은 목걸이로 하고 다니는데, 그 죄수 형틀을 달고 다니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의미가 완전히 이제 달라져 있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십자가를 이제 좀 더 깊이 들여다 보아야 되는 거죠. 

◑순종이 빠져버린, 형식에 그쳐버린 구약의 제사 제도

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구약의 제사 제도입니다. 

유대인들이라면 이 제사에 익숙합니다.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통로로, 제사 제도가 만들어졌고
제사 제도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 주신 어떤 호의죠. 

죄 많은 인간이 도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게, 제사제도죠. 

이게 너무나 큰 축복이죠. 이게 없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니까요. 

레위기에 다양한 제사 제도들이 나옵니다. 
그 제사를 통하여 숱한 제물들이 바쳐지는 것들, 
셀 수 없는 희생의 제물들이 이렇게 죽임을 당하는 이런 규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위기는 정말 복음적인 내용이 꽉 차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 흘리심의 십자가가, 그 제사 제도 안에 꽉 차 있습니다. 

자 근데 유대인들에게는, 이 제사가 익숙한 일상이에요. 
매일 드리는 제사도 있고, 또 매월 드리는 제사도 있고, 
1년에 1번씩 드리는 절기 제사도 있죠.

이런 반복되는 제사에, 유대인들이 이력이 나버리는 겁니다.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거죠.
그리고 제사장들은 끊임없이 제물을 바치고요. 
그래서 제사장의 이 직무는 굉장히 험한 직업입니다. 
막 매일 피가 낭자하고... 짐승을 도축하는 일은 쉽지 않죠. 

그들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열심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문제는 뭐냐면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백성들의 제사를 싫어하시는 장면들이 나와요. 

유대인들이 드리는 그 제사의 문제가 있었던 거죠. 
오래 반복해서 드리다 보니까, 이 제사 제도가 오염된 것입니다. 

그리고 흠 없는 제물을 드려야 되는데, 흠이 좀 있는 것도 버리듯이 드리기도 하고, 
말라기 1:8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약하지 아니하냐' 

벡성들이 온전한 제물을 드리는 걸 아까워하는 거죠. 
이왕 태워 없앨 것, 버리는 것을 골라서 드렸다는 거죠.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자꾸 하다 보니까, 마음은 없고, 제도만 남는 거죠. 
형식은 있는데 내용이 빠져 버린... 

그래서 하나님이 나중에는 그러죠. 
'성전문을 닫아라. 더 이상 성전 예배를 더 받고 싶지 않다.'

시편 50:13절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그게 나에게 필요하겠느냐?'는 거죠.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제사제도를 줬는데 
너희들이 왜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리느냐?
그 형식적 제사에 내가 질렸다.. 억지로 드리는 그런 제사를 나는 받고 싶지 않다.'

미가서 6:7절에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천천의 숫양,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쏟아 부어도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렇게 선지자들이 책망이 계속 늘 따라다녀요. 
너희들의 제사는 끊임없이 드리지만, 마음은 두드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마음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성이 빠진 제물 말고, 내가 원하는 건 너희들이다. 너희들의 마음을 받고 싶다.' 

그래서 제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하는 제사예요. 
삼상15:22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의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 

구약시대 끊임없이 제사를 드려지던 그 시대 속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죠. 
'제사를 골백번 드려도 그 의미가 없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여서 끊임없이 제사를 드렸지만,
제사 드린 것 자체로, 자신 스스로 만족하고 끝난 거죠.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들의 만족으로 끝났다 거죠.

오늘날 우리 예배도 마찬가지죠. 우리의 만족이 아니에요. 
예배에 와서 우리가 만족하고 끝나는게 아니고,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 그것이 순종이다, 
그 순종이란 어떤 순종인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한 순종이어야 된다는 거죠.

▲자 그러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을 입증해준 사건이 하나 있어요. 
그게 바로 갈보리 언덕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완전한 순종으로 드려진 제사, 완벽한 제사입니다.
아들 예수는 아버지의 요구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 놓으신 분입니다. 
기꺼이! 이 말이 중요해요. 
하나님이 당신 마음대로 사용하시도록, 나 자신을 내어놓는 겁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강제적으로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랑 안에서 순종을 원하시고, 아들은 사랑 안에서 아버지께 기꺼이 자신의 몸을 맡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제물을 바치는게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 제물을 기꺼이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셔야 
마침내 그 제물은 드려진 바 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 사건, 이 예수님의 순종은... 아버지를 기쁘시게 한 사건입니다. 

히5:8~9절 '그가 아들의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그랬습니다. 

 

순종해서 기꺼이 지는 십자가


'주님은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 이렇게 말씀하는데,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순종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에 응답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요구한 것을 받아들인 거죠. 그게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준 최고의 레슨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순종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순종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죠. 
그리고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순종은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죽음까지 가는 겁니다. 

아들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죠.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에 값을 치름으로써,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온전한 순종을 이루신 것입니다.

길어서 중략

▲척 콜슨이 미국의 백악관에 보좌관으로 있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고, 그 감옥 안에서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 화려한 성공가도를 가던 사람이, 갑자기 백악관에서 감옥으로 갔으니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어요? 근데 거기 감옥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니까 
엄청나게 깊은 은혜를 받으면서, 거기 교도소 안에서 전도를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즐거운 거예요. 

교도소 안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예수를 만나고 나니,
그 안에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출소한 후에는 재소자들을 위한 선교회를 만듭니다. 
이게 국제적인 단체가 돼요. 어마어마한 국제적인 단체가 되는데,

주님을 만나니까, 그 감옥 안에도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고, 
감옥을 나와서도 이제 평생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다가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척 콜슨은 억지로진 십자가 아니죠. 그죠. 
기꺼이 순종해서 지는 십자가예요. 
그 십자가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요. 또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이전에,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를 지신 이후는 달라졌어요. 십자가의 의미가 바뀌어 버렸어요. 
예수는 즐거이 아버지께 순종했습니다. 

아버지를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그분을 위해 내어드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만족보다, 하나님의 만족이죠. 그게 진정한 순종입니다. 

아들이 십자가에 당신의 몸을 맡기는 것은, 아버지를 만족시키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나의 원함이 아니에요. 나의 만족이 아니고,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거죠.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늘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아직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인도를 받아 따라는 다니는데 수동적이에요. 
원래 따라다니는 사람이 불평할 가능성이 많아요. 왜요?
이끄는 사람은 모든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 따라오는 사람은 그 뜻과 의미를 잘 모르는 거예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잘 모르니까, 왜 우리가 여기 있는지 모르니까 
불평을 하는 거죠. 모세는 그걸 분명히 알거든요.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신앙생활 하면, 그 복음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그냥 나와요. 
십자가를 제대로 경험하면, 십자가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가 확인되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해지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는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겁니다. 

헷갈리는 이유가 없어요. 십자가를 정확하게 발견하면 
내 인생에 사는 이유, 죽어도 죽는 이유... 바울 사도의 모습이 그대로 나옵니다.

여러분 예수님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거부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왜냐면 그거는 진노의 잔이니까! 
온 인류의 죄의 찌꺼기를 다 담아 놓은 그 진노의 잔을 마신다는 것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선택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이었죠.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알고서, 
우리 주님은 당신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게 순종이죠!

그래서 이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의 순종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결국은 승리의 주가 되십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십자가에게는 분명히 험난합니다. 좁은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 당장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고 
미련한 결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약싹빠른 사람들은 십자가 길을 거부합니다. 거리를 두고 싶어 합니다. 

십자가에 길은, 현실의 삶에서 보면 실패로 보여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확인할 것은,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봅시다. 

여러분 예수의 십자가, 십자가의 예수는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결국은 승리의 주가 되십니다. 

십자가는 여러분, 승리입니다. 무엇이 승리입니까?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승리입니다. 

승리의 기준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길이 승리의 길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게 승리에요.
이 세상에서 영광을 누리고, 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성공하는게.. 승리가 아니고 
그건 잘못된 승리주의죠. 기독교 안에 잘못된 승리주의가 들어온 거죠. 

그래서 복음이 물을 탄 복음이 되고, 형통의 복음이 들어오고, 
세속적인 성공의 개념이 자꾸 들어와서, 십자가 복음을 오염시켜 버렸어요. 

복음이 오염됐으니까, 우리의 신앙에 타락이 온 것이고 
오늘날 교회 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복음은 굉장히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죠. 

우리는 계속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 십자가는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 길은 우리가 원하는 길이 아니지만, 그 길은 아버지가 원하십니다. 
근데 그 길을 가면, 세상적으로 보면 실패처럼 보이지만 실패가 아니요. 
결국은 승리의 길이라는 거죠.

▲어떤 사람은 여러분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자신을 자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징징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막 원망을 쏟아냅니다. 
'내가 이렇게 주를 위해 일평생 살았는데, 왜 내 삶은 이러느냐? 
왜 술술 풀어 주시지 않느냐?' 

선교지에 가서도 탄식하는 선교사님들도 일부 계세요. 
때로는 자식들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나는 주를 위해서 평생을 바쳤는데, 왜 내 자식은 잘 풀리지 않죠?' 하고 딜레마에 빠집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길은, 그 자체는 겉으로 보기에는 영광스러워 보이지 않아요. 
고난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십자가는, 아무나 겪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바울은 그 고난마저도 특권으로 알았던 거죠. 

그래서 여러분, 내 삶이 더 나아졌는지, 내 형편이 좀 더 풀렸는지 
그것에 너무 괘념치 마십지오. 바울은 그것을 묻지 않았어요. 

바울은 자기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인가? 
하나님이 지금 나를 사용하시는 거냐는 거죠. 

여러분, 순종이 뭡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지시는 그 순종이 뭘까요? 
그 순종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예요. 그게 순종입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의 역사에 내가 통로로 쓰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거죠. 
중요한 것은, 내가 져야 할 십자가,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사람들마다 너무도 다양해요. 
각자가 지고 가는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심으로써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십자가를 지고갈 때,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받으신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는 정말 부족하고 연약해요. 
우리의 자격 유무를 따진다면, 우리가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뭘 대단히 잘 갖추어야 사용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런 자격을 갖춘 적도 없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순종이 뭡니까? 우리의 마음이에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지가 담겨 있는 마음이 중요해요. 
우리가 잘하냐/ 못하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꺼이 순종하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시지 않아요. 
하나하나의 행동만 보면, 부족 투성이죠. 실수가 많죠.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것은 
우리의 어떤 하나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의지를 보시는 거예요

행동은 참 못 미더워 보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걸 기뻐하시고, 그를 사용하시는 거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온전한 순종을 보이신 아들은, 
결국 죽음으로 증명해 내시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셨어요. 
그것이 우리가 본받아 꼭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으면, 신앙의 절정으로 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보다 더 높은 차원의 복음은 없습니다. 

십자가 부활의 은혜보다 더 큰 은혜도 없습니다. 
그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깨달으면, 우리는 신앙의 절정에 놓여지는 겁니다.

그때 우리를 흔들어 놓을 수 있는게 없습니다. 여러분, 바울 사도를 보십시오. 
그가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그를 흔들어 놓을 수 있는게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로마서 8장에서 구구절절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마음을 명확하게 우리에게 드러내신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는게 십자가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마음이 어떠한가를, 충분히 드러내신게 십자가예요.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분명해진 거예요.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이 삶의 일상의 삶에, 어떤 기적을 바라는게 아니고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기꺼이 
그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고 걸어가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 볼 일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귀중하게 여기고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가는 그것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고, 묻혀버릴 수도 있고, 
고난이 될 수도 있고, 세상적으로는 형통이 보이지 않,고 성공과 반대되는 길이라 할지라도 
매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하나님의 그 뜻을 향하여 내 삶의 방향을 정조준하고 
십자가에서 시선을 놓치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죠.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주님이 가신 길보다 더 나은 길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길의 끝에만 영광이 있다는 거예요. 영광!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이 있습니다.
이 부활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몰라요. 

여러분 그 십자가를 통한 부활이 주어지는 그 길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는 거잖아요.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의 길은 선택이에요. 
순종의 삶은 선택이에요. 나의 의지적 선택도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의지를 담은 선택이 중요하다는 거죠.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걷다 보면,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삶의 환경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십자가로 다시 돌아가야 되는 이유가 그것이죠. 
때로는 십자가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때가 중요해요. 순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힘든 순간 어려운 일이 있어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발견한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최고의 가치, 
그 십자가의 길을 내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고 싶은 길로 이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우리를 안내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것이 최상의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배워가야 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 앞에 고분고분해지는 겁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세요.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을 받았던 그 초기에, 
창12장부터 긴 세월을 가면서, 결국은 22장에 아들 이삭을 바치는...
이 단계는 뭐예요? 완전히 고분고분해진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으로 채워질 때 
그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이고, 그게 십자가의 길이죠. 

내 고집대로 사는게 아니라, 내 마음과 의지를 다해 
하나님 앞에서 그 뜻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 올려놓는, 순종의 제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가 사셨던 삶이고, 우리에게 보여주신 레슨이에요. 

그래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여기에 '너희 몸'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적 개념에서 '산 제사'는, 내 몸이 가면 모든게 다 가는 걸 말하는 거예요. 
단순히 제물만 바쳤던, 형식적 제사를 드렸던 구약시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제사, 즉 너희 몸, 너의 삶 전체를 하나님 앞에 드리라!
이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한 백성들만 드리는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산 제사로 드리라.. 이 말은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하라, 기쁨으로 하라, 믿음의 분량대로 해라,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마음을 다 하여 예수를 섬겨라! 

저도 목회를 하면서 부족함이 많아요. 너무 부족함이 많은데 
마음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거죠. 기쁨으로 순종하는 거예요. 

저는 뭐 모든 것이 다 기뻐요. 그냥 기뻐요. 
매일 교회 올 때도 기뻐요. 새벽에 올 때도 기뻐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막 흥얼거리며 찬양이 나와요. 새벽에 비몽사몽간에. 

설교하는 것도 기쁘고, 목회하는 것도, 성도를 섬기는 것도, 
사역하는 것도... 저는 너무 좋아요. 

순종을 하되 인상을 쓰면서 하지 마십시오.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 전심을 다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위대한 역사에 참여시키고 싶어 하시는 거죠. 
이제 우리는 자유인이에요. 
이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도망쳐도 되고, 아무것도 안 할 자유도 있어요. 

그 말은 뭐예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말은, 우리의 수준을 끌어 올려 주셨다는 거예요.
우리는 아직도 구약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번도 없으리라고 믿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은, 더 이상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거예요. 

그래서 도망을 치고 싶어도, 도망을 못 치는 거예요. 갈데도 없어요. 
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기쁨이요 가치인 것을 내가 알고 
십자가만큼 영광의 길로 가는 길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 고난주간은, 무슨 예수님의 죽으심을 애도만하면서 보내는 기간이 아니에요.
이미 승리하셨어요. 십자가 자체가 승리예요. 승리! 이미 승리를 거두셨어요. 

이제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에, 주님과 함께 승리의 삶에 동참하는 거예요.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그 길을 
억지로가 아니고,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게 아니라 
기꺼이, 즐거이,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백성들이 억지로 그냥, 형식적으로,
제물을 질질 끌고가면서 하나님의 눈을 속이려고 했던 그 부담스러운 예배자가 아니고 
내 생명 모든 걸 다 드려도 아깝지 않는, 그 십자가의 은혜를 발견한 자들로 살아가십시다.

주님이 그 무거운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지 아니하시고, 
기꺼이 즐거이 지고가신 모습을 본받아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온전히 순종하신 그 아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기쁨으로 즐거이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십자가의 그 사명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