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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희귀한 시대

LNCK 2024. 4. 13. 07:14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말씀

 

https://blog.naver.com/karamos/80048813268 정리

 

말씀이 희귀한 시대           삼상3:1~7

 

삼상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도입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은 분명히 2천 년 전, 또는 3천 년 전에 기록된 문서인데

어쩌면 오늘 우리의 형편에 대해서 이렇게 정확하게 말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특별히 그렇습니다. 연대를 계산하면 이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3,060년 전쯤의 일인데 1절에서 3절까지는 지금의 형편과 너무 똑같습니다.

 

말씀은 희귀하고 이상은 잘 보이지 않고

제사장, 종교인들은 눈이 흐려져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그나마 그 제사장은 지금 잠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다고 했는데

이 말은 곧 꺼질 것 같이 위태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문자적으로 등불은, 성소 안 메노라 등불을 뜻함. 은유적으로는 기도 또는 성령)

 

당시에 실로에서의 제사 제도는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과의 만남은 없었습니다.

 

특별히 그 가운데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삼상3:1

이 말이 저희들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님께서 말씀을 해 주시는 일이 드문 것을 말합니다.

3:1절은 ‘그때’는

주께서 말씀을 해 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제사장 엘리의 시대에는 예언운동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벌 가운데 하나가 침묵입니다.

내가 잘못을 했는데 상대방이 아무 말 하지 않으면

그것은 큰 소리로 꾸짖는 것보다 더 큰 압력이 됩니다.

 

어제 어느 신문에 '당신이 분명히 실수를 했는 데도 부장이 아무 말 하지 않으면 조심해라.

그것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신호이다'라는 기사가 삽화와 함께 실렸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말씀은 많으나 말씀다운 말씀은 드문 것을 말합니다.

 

바다에서 난파당한 배는 물위에 떠 있기는 하지만

배에 물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목이 말라 고통을 겪습니다.

오늘날의 형편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말씀의 외형적인 풍년입니다.

교회들도 많고 말씀을 전하는 매체도 여럿입니다. 시각매체,

청각매체, 시청각 매체, 카세트, 인터넷,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저도 말씀 전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 퍽 조심스러워집니다만

그 가운데 말씀다운 말씀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을 종종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 "무엇은 많지만 무엇은 없고" 시리즈가 유행한 일이 있습니다.

"학교는 많지만 교육은 없고,

교사는 많지만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지만 제자는 없고" 이런 것입니다.

 

오늘날 강단의 현실을 이 시리즈에 맞춘다면

"말씀은 많지만 말씀다운 말씀은 적고" 이렇게 될 것입니다.

 

▲2.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말씀은 많지만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이 드문 것을 말합니다.

 

올해 쌀이 풍년인데, 쌀을 먹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져서

농민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는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삶으로 설교의 내용을 보여 주어야하고,

설교를 듣는 분들이 설교의 내용대로 사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들려주는 설교, 듣는 설교는 많아도,

자기 삶으로 복음을 보여주는 설교는 적습니다.

 

아까 "무엇은 많지만 무엇은 없고" 시리즈를 다시 한 번 적용하면

"설교는 많지만, 설교대로 살려는 사람은 적고" 이렇게 됩니다.

 

오늘날 복음전파에 힘이 부족한 것은, 삶의 뒷받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복음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면,

단순한 설교의 말 몇 마디도, 파워가 실려서 전달됩니다. 자기가 그대로 살아봤거든요.

그러나 자기가 살아보지 못하고 전하는 말씀은, 말은 맞는데 파워가 없습니다.

 

예외가 있겠지만, 대체로 맞는 말인데,

가난한 성도나 목회자가 복음대로 살기가

부유한 성도나 목회자보다 쉬운 면이 있습니다. 어드밴티지가 있는 거죠.

부유한 성도나 목회자가 복음대로 살려면, 정말 바늘구멍 들어가기처럼 쉽지 않죠.

 

그런데 가난한 목회자가 복음대로 살지 않는다면, 이중으로 억울한 게 됩니다.

가난해서 억울하고, 복음의 파워가 없어서 억울하고... 이중으로 억울한 거죠.

그때는 차라리 부유하고, 복음의 파워가 없는 것이 낫겠습니다.

 

주님이 성도나 목회자를 가난하게 하심은,

궁핍하지만 믿음에 부요한 자를 만들기 원하심인데,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계2:9

오늘날 이중으로 억울하게 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복음은 말로 전하기 이전에, 먼저 몸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단락 펀글)

「2018년 여름에 제가 단기선교 선교팀을 이끌고 케냐로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선교팀과 더불어서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해서, 케냐 남부에 말린디 라는 곳까지

차로 오랜 시간을 이동하여 갔더니, 선교사님 계신 곳에 이를 수가 있었어요.

 

마침 저녁식사 시간에 우리가 도착했기 때문에,

선교사님 댁에서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고 되었고,

그때 선교사님께서 선교 팀원들에게 귀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제가 아직도 기억이 나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케냐에 처음 와서, 큰 기대로 선교사역을 시작하려 할 때

주님께서 제 마음에 너무나 명확하게 주신 마음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선교지가 바로 너의 마음이다. 너의 삶이고, 가정이다!'

그때 제(케냐 선교사)가 고꾸라졌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삶이 먼저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충만히 누리기 원하시는구나'

그래서 그 힘으로, 지금까지 선교 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번 선교 여정을 통해서, 여러분이 먼저 주님을 분명히 만나기를 바랍니다."

 

진짜 정말 그랬습니다. 여러분 먼저 우리가, 살아계신 주님을 분명히 만나고,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우리가 먼저 누려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주님을 드러내게 되고, 즉 삶으로 증거하게 되고,

우리의 삶도, 세상 가운데서 살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3.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말씀은 많지만

힘을 가진 말씀은 적은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은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힘,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오늘날 말씀은 이 힘을 잃었습니다.

 

설교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설교를 듣고 나면, ‘에이 C!’ 라는 말이 회중의 입에서 나와야 합니다.

간혹 설교를 듣다가 참지 못하고 벌떡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사람도

한 사람쯤은 있어야 됩니다.

간혹 설교를 듣다가, 청중이 설교자를 노려보면서 ‘너나 잘 하세요’하는

안티들도 생겨야 됩니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이 생겨서,

설교를 듣고 나면, 결단하게 되고, ‘그렇게 말씀대로 살아야지’ 결심하게 된다면

그게 힘이 있는 설교죠.

긍정적인 반응이든, 부정적인 반응이든.. 반응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겁니다.

 

세례요한의 설교는 듣는 회중의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눅3:10

 

오늘날 전투적인 설교를 하는 메신저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계속 오래 지속되면, 엘리 제사장이 되고 마는 거죠.

그리고 주님은 그에게서 ‘촛대를 옮기실’ 것입니다.

 

▲4.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면 어떻게 됩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異象)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3:1

 

'이상'은 계시 vision 를 말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초자연적인 나타남이나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상은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고 미래를 아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잠언서 29장 18절은 "묵시 vision 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이 보이지 않으면 백성은 교만해집니다. 제 마음대로 행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병리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여기 있습니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많고 범죄가 많고

인간의 교만이 하늘을 찌를 듯 하고, 이 시대가 목표와 구심점을 잃었습니다.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는 살아있는 말씀을 선포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모스는 아모스서 8:11~14절까지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식량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육신적인 기갈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말씀이 없어서 겪는 영적인 기갈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은 팔십육 세에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 다음에 구십구세 때까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대화를 나눈 일이 없습니다.

 

창16:16절에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그 다음 절인 17:1절에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다시 말씀이 시작됩니다.

 

13년 동안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었습니다.

일종의 절교상태 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사라의 권유에 따라 사라의 여종 하갈과 동침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을 꾸짖는데 하나님께서 침묵으로 꾸짖은 것 같습니다.

 

이 13년 동안 아브라함이 흉년을 만났다든가

이방부족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든가 하는 기록은 없지만

이 13년은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없는 시기,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지 않는 시기, 무미건조한 시기,

무의미한 시기, 무색투명한 시간들, 참 답답한 시간들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생애에서 공백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그 13년 동안의 일을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희귀한 시대는 이와 같이 비극적인 시대입니다. 위기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사무엘의 이야기는 말씀이 희귀한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지켜야합니다.

 

삼상3:3절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었더니"

 

하나님의 등불은 성소에 켜 놓는 불을 말합니다.

출27:20~21절에는 이 등불에 대해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3절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었더니"라고 한 것을 보아

사무엘은 성전에서 지내면서, 이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도 맡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레위지파

 

우리도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등불의 불침번입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 레이더를 보면서 하늘을 감시하는 일을 했습니다.

레이더 부대의 표어가 ‘삼천만의 불침번’이었습니다.

 

일등병의 군대생활은 몹시 수동적이고 시간이 흐르기만 바라는 그런 면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삼천만의 불침번이다" 하는 사명감을 느끼고

근무를 잘 해야하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사흘에 한 번씩 미드 나이트 근무라고 밤 열두 시에서 아침 일곱시까지

밤을 새우며 근무하는데 조는 일이 있습니다.

아침에 내려오자마자 졸았다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불평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의 불침번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잘 지켜야합니다.

 

나가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작은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가 276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길이 길이 빛나니"를 잘 아실 것입니다.

 

유명한 부흥사 무디(Dwight L. Mody)선생이 설교를 하면서

한 번은 클리브랜드 항구 항로표지등들의 불빛이 꺼져서 난파당한 배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 클리브랜드 항구로 들어오는 항로의 표지등들이

어찌된 일인지 모두 꺼지고 등대 하나만 켜 있었습니다.

 

이 항구로 들어오는 배의 조타수가 애를 많이 썼지만 끝내는

배가 암초에 부딪혀 많은 승객이 죽은 일을 소개하고서,

 

주님은 등대이고 우리는 작은 등대가 되어서

세상에서 안식의 항구를 찾는 사람들은 인도해야 한다는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를 들은 찬송인도자 필립 블리스(Philip Bliss 1838~1876)가

이 은혜를 받고 작사, 작곡한 찬송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등대 길이 길이 빛나니

우리들도 등대되어 주의 사랑 비추세

우리 작은 불을 켜서 험한 바다 비추세

물에 빠져 헤매는 이 건져내어 살리세

 

죄의 밤은 깊어가고 성난 물결 설렌다

어디 불빛 없는가고 찾는 무리 많구나

우리 작은 불을 켜서 험한 바다 비추세

물에 빠져 헤매는 이 건져내어 살리세

 

너의 등불 돋우어라 거친 바다 비춰라

빛을 찾아 헤매는 이 생명선에 건져라

우리 작은 불을 켜서 험한 바다 비추세

물에 빠져 헤매는 이 건져내어 살리세」

 

이 찬송가는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사명을 잘 감당해서,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작은 등불이 되어 말씀이 희귀한 이 시대를 극복하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교회로 달려와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릅니다. 사무엘은 엘리에게 달려갔습니다.

'내가 잘못 들었겠지'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들리는 것 같은데 에이, 귀찮다, 그대로 누어 있어야하겠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마다 일어나 엘리에게 갔습니다.

세 번을 그렇게 했습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첫 번째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아까도 허탕을 쳤는데 이번에도 제사장님을 깨웠다가

야단을 맞을지 몰라' 하기 쉽습니다.

 

세 번째는 더욱 그렇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두 번을 허탕쳤는데 이 번에 또 그러면 제사장님이

'너 미친 모양이로구나!' 하거나 '너 같은 아이는 성전에 있을 수 없다.

날이 밝는 대로 보따리를 싸거라!' 하기 쉬워. 모르는 척해야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엘리에게 쫓아갔습니다.

엘리는 결함이 있는 제사장이었습니다.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는 아들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어느 부족에 기강이 해이해져서 남의 것을 강탈하는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추장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앞으로는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은 손목을 자른다',

이 명령이 선포된 후 남의 것을 강탈하다가 첫 번째로 잡혀 온 사람이

추장의 아들이었습니다. 추장은 눈물을 머금고 아들의 손목을 잘랐습니다.

 

그 부락에서는 이제 다시 남의 것을 강탈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엘리에게도 이런 결단력이 필요했는데 그는 유야무야(有耶無耶) 했습니다.

 

이렇게 결함이 있는 제사장이지만 사무엘을 바르게 지도했습니다.

"내가 너를 부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너를 부르시는 것이니 이렇게, 이렇게 해라"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부족함이 있더라도

성도들을 바르게 지도하기 위해서 힘을 씁니다. 가서 지도를 청해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무엇인가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 같다'고 느껴집니까?

 

교회로 달려오시기 바랍니다. 한 번 그렇게 했다가 허탕을 쳤다고 실망하지 말고

두 번 세 번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하시기 바랍니다.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사무엘도 그 때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에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 번을 이와 같이 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하게 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는 동안에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까?

한밤 중 조용한 시간에 부르셨습니다.

모두들 잠들고 하나님의 등불이 가물거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분위기를 보면 새벽녘이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고’ :3

아침이 되면, 성소의 등불은 껐거든요.

 

낮의 복잡하고 시끄러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들끓었고 제물로 바쳐지는 제물들의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제사장의 아들들은 제물로 바쳐지는 고기를 빼앗기에 바빴고

한 걸음 더 나가서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까지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아니고 한 밤의 조용한 시간에 사무엘은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기독교 출판사들 가운데 '한 밤의 소리사'라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감리교 장로님이 사장으로 있습니다. 이 출판사는 자기 건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 건물의 이름이 한소빌딩입니다.

 

한 밤의 소리를 줄여서 '한소' 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 밤에,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 일을 생각하며

출판사 이름을 이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조용한 시간을 갖고 계십니까? 영어로 QT라고 하지요.

Quiet Time, 조용한 시간, 주님과 나만의 시간을 갖고 계십니까?

이렇게 조용한 시간을 가질 때 하나님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요즘 저희 교회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숫자가 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는 청년들이 여러 명 참석했었습니다. 더 많아져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이 시대에 조용한 시간을 갖는 가운데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교회로 두 번, 세 번 달려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기 바랍니다.

 

▲셋째, 자기가 들은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엘리 집안에 임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엘리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였노라 하셨더라" :14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11절 끝에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고 했습니다.

두 귀가 울린다는 것은 귀가 멍멍해진다는 뜻인데

우선 사무엘의 귀가 멍멍해졌을 것입니다.

 

제사장 엘리가 말합니다. "하나님이 네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느냐?

내게 숨기지 말고 말해다오"

 

여러분 같으면 그 말을 그대로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사무엘도 그것을 엘리에게 알리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15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여기 "아침까지 잠들었다가" 하지 않고 "아침까지 누었다가" 한 것을 보면,

놀라운 말씀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대로 전합니다.

:18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숨기지 않고 자세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숨기지 않고 바르게 말해야 합니다.

이 성경말씀을 바르게 선포해야 합니다.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듣기 좋은 부분만 가려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예전에 이발사 한 분이 때때로 대통령의 머리를 깎아 드리기 위해

청와대(그때는 경무대라고 했습니다)에 들어가는데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이 "당신, 대통령께서 물어보시면

그저 '잘 되갑니다'라고만 대답해야 되! 다른 소리하면 혼 나!" 엄포를 놓았습니다.

 

대통령이 이발을 하면서 "세상 어떻게 되어 가는가?"

"네 잘 되어 갑니다",

 

"자네, 요즘 살기가 어떤가?"

"네, 잘 되어 갑니다",

 

그러다가 4․19가 일어났지요.

4․19 뒤에 이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되어 나왔는데

제목이 "잘 되 갑니다"였습니다.

 

5․16 때 기록을 보면 서울로 들어오는 해병대가 한강 인도교에서

헌병들과 총격전을 벌이느라고 총성이 요란하게 일어났습니다.

 

이 사실이 당시 국정책임자인 국무총리 숙소에 보고되었는데

경호책임자가 신속하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몇 번 전화를 받고서야 총리를 깨워서 총소리가 들리는데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고.. 군인들이 술 먹고 싸우는 것 같다고 보고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버렸다고 합니다.

 

이번에 콜레라가 왜 이렇게 빠르게, 그리고 넓게 퍼지고 있습니까?

설사 환자가 생겼는데 빠르게 보고하지 않고, 또 보고를 받고서도

빠르게 조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설교 팜플렛을 종종 보내오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이라는 설교를 시리즈로 보내주는데

표지 뒷면에는 "한국교회여 일어나라!

신앙양심 있는 목사들이여 일어나라!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자!"고

큼직하게 인쇄해 놓았습니다.

 

종종 받기 때문에 '응 또 왔구나!'하고서 잘 읽어보지는 않고그저 책꽂이에 꽂아 놓습니다.

어제도 받아서 책꽂이에 꽂으려고 하다가 무심코 열어보았더니

하고 싶은 소리를 꾸밈없이 직설적으로 한 설교들이 실려 있어서

제가 그 자리에 선 채로 한참 읽었습니다.

 

주로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들인데

‘목사들은 명예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한국목사들의 정신무장은 공산주의자들 보다 못하다,

목사들은 깨끗한 인격과 사랑과 저의의 실천을 보여주어야 한다,

거짓 없는 깨끗한 양심을 고백해야 한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잡혀갔는데 수사관들이 새벽 7시에 출근해서

밤 10시 넘어 퇴근하는 것을 보고 자기는 주님께 이렇게 충성했는지 회개했다,’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단소리만 해서는 안 됩니다. 쓴 소리도 해야합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할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말씀이 회복되는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자기를 나타내시기 시작했습니다.

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3:1에서 ‘말씀이 희귀하던’ 위기가, 완전히 해결된 것입니다.

 

오늘날은 말씀이 희귀한 시대입니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비극적인 시대입니다. 위기의 시대입니다.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등불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작은 등불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들리는 것 같으면 교회로 달려와 그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해 힘쓰기 바랍니다.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 바랍니다.

 

그와 같이 해서, 말씀 기근을 극복하고, 말씀이 회복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