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작은 구름, 큰 비 소리

LNCK 2024. 4. 14. 07:02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청년, 젊은이>      ▣임재, 교제, 친밀 

 

https://www.youtube.com/watch?v=aJiX6JNIpns

작은 구름, 큰 비 소리        왕상18장 41-46절         2024.02.01.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청년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더 분명하게 열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가장 중요한 변화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정말 바라보게 될 때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 가지 삶의 변화의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확실한 여러분의 인생의 변화는 
여러분 안에 오신 예수님을 정말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모두는, 다 사실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에게, '모름지기 기독 청년은 공부를 잘해야 된다'고 한다면 
아마 벌써 탈락한 분들이 많으시고, 

'인물이 좋아야 된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은 통과될 것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전혀 나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집안이 좋아야 된다. 사람을 잘 만나야 된다. 몸이 건강해야 된다...' 
이런 세상적 요건이 여러분의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 
아마 여러분 중에는 희망이 없는 사람도 있으실 겁니다. 

근데 '내 안에 오신 예수님 그분을 바라보아야 된다' 한다면, 
아마 여기 오신 여러분 중에 한 사람도 낙심할 분이 없으실 거예요. 

문제는 예수님이 아주 선명하게 바라보아지고,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분도 있을 거고,
여전히 멀리 계신 분 같고, 너무 막연하게 생각되느냐 그 차이인 거예요. 

여러분에게 예수동행 일기를 쓰시라고 권해 드리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일기 자체를 쓰는게 뭐 특별해서가 아니에요. 

주님을 정말 살아계신 주님으로, 나와 함께 계신 주님으로 믿음의 눈이 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매일 신앙 일기를 쓰는 건데, 그 매일 일기를 쓰려면 
나눔방이 있어야 잘 써집니다. 

혼자서 결심해서, 혼자서 일기 쓰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고요. 
어떤 고3 여학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기를 써서 
고3 지금까지 일기를 계속 써오는 자매도 있긴 하더라고요.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나눔방이 있고/ 없고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칭찬을 많이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저를 자랑하기 위해서 그런게 아니고, 제가 가지고 있는 사실 아픔입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로서, 그리고 또 제가 목사가 되어야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의 칭찬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목사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목사가 되어야 될 사람이라는 것, 
이게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평판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된 거예요. 

여러분들에게도 다 칭찬 받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저에게는 거의 목숨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칭찬받는 일에 거의 전문가였어요. 

그 말은, 제가 착하고 칭찬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는 뜻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내가 칭찬 받을 수 있을까?' 거기에 어려서부터 눈이 뜨였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거의 매일 수건을 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꼭 조회 시간 전에,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기 직전에, 제가 꼭 교탁을 닦았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청소하는 모습을 늘 보셨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제가 선생님 눈에 보기에 정말 착해 보였겠어요? 

'저렇게 열심히 청소하는 아이가 있구나..' 
저는 '아 이렇게 하면 칭찬을 받는구나, 요렇게 하면 어른들이 좋아하시는구나.. 
요렇게 하면 사람들이 다 나를 아주 훌륭하다고 인정해 주는구나' 그런 것에 일찍 눈이 뜨인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칭찬 받도록 살았어요. 그게 저 자신의 생존의 어떤 법칙이기도 했어요. 
칭찬을 받으면 제가 사는 보람을 느끼는 거고, 
만약에 누구로부터 야단 맞으면, 저는 제 존재감 자체가 무너지는... 
그건 한편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두려운 일이에요. 

▲끊임없이 사람들의 칭찬을 요구하면서 살아야 되는 제가 
이제 담임목사가 되고 난 다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담임목사가 되고도 여전히 제 마음속에는, 사람들의 칭찬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설교를 잘한다. 목회를 잘한다. 성품이 좋다...' 그런 칭찬이 듣고 싶은 거예요. 
모든 사람이 그러할 거예요.

목사도 그런 칭찬이 굉장히 중요하죠. 
근데 이제 담임 목사가 되고 나니까,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을 칭찬해야 되는 입장에 서 있는 거죠.

부목사님을 칭찬하고, 전도사님을 칭찬하고, 교인들을 칭찬하고, 
나보다도 좀 더 나이가 어린 목사님들을 칭찬하고... 이렇게 칭찬을 해야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여전히 제가 칭찬을 받으려고 했어요. 
근데 칭찬은 본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겁니다. 

근데 저는 아랫사람으로부터도 칭찬을 받으려고 했던 거예요.
부목사님이 나를 칭찬해 주기를, 전도사님이 나를 칭찬해 주기를, 
교인들이 나를 칭찬해 주기를... 

그런데 그게 실제로는 제 마음에 진정한 만족이 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거의 아부 수준입니다. 

그건 사실 진짜 칭찬 받을 만 하니까 칭찬 받은게 아니고, 
아랫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냥 위의 사람을 칭찬하는 거예요.

아무리 칭찬을 들어도 더 이상 내게는 만족이 안 되는 거예요. 기쁨도 안 되고... 
굉장히 심각한 문제죠. 
저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삶의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인데 
'이제는 누가 나를 칭찬해 주나?'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교회에서는 이제 담임 목사가 되었고, 
서서히 이제 나를 칭찬해 줄 사람이 없어지는 거예요.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 주님을 바라보는 일기를 쓰면서부터 였어요.
'예수동행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님의 칭찬이 저에게, 저의 삶을 놀랍게 바꾸기 시작했어요. 
주님이 아신다는 것,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거죠. 

물론 처음에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도 
처음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칭찬에 계속 갈급해 했었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나에게 분명한 실제 reality 가 아니셨기 때문에요. 

내가 예수님을 안 믿는 건 아니에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고 분명히 그렇게 알아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까 
내게 위로도 되고.. 힘도 되고.. 하지는 않았어요. 

보이지 않으시는 예수님, 막연하게 믿는 예수님은 
나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않았어요. 
여전히 사람의 칭찬과 평가에 연연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놀랍죠. 주님을 계속 바라보면서, 그걸 매일 일기를 써 가면서,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에 대한 믿음이 놀랍게 바꿔지기 시작했어요. 

지난 14년 동안에 제게 일어난 엄청난 변화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오늘 당장 일기를 쓴다고, 
예수님이 분명히 믿어지는 역사가 오늘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것 때문에 '동행일기'를 쓰는 일을 그렇게 권해도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그만둬 버립니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쌓여지는 일이, 한 달이 가고, 1년이 가고, 3년이 가고, 5년이 가고... 
이런 아주 긴 기간 동안의 변화를, 요즘 시대 사람들은 못 견뎌 해요. 
당장 클릭하면 반응이 나와야 돼요.

오늘~내일 사이에 뭐가 역사가 즉각적으로 일어나야 돼요.
지금 굉장히 무서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 

우리는 엄청난 자극이 강한 시대를 살고 있어요.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지난 2000년 동안,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이후로 지금까지 인류에게 이런 시대가 없었어요. 
여러분이 상상도 안 되는 엄청난 자극적인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매일 일기를 쓰면서 막연히 주님을 생각한다... 
이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 견뎌 하더라고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는 거죠. 
언제 주님의 (나를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하냐는 거죠.

근데 저는 지난 한 14년을 영성 일기를 써오면서,

오늘 꼭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고 싶은 이 메시지를 
정말 제가 실제로 경험을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예수님 한 분의 칭찬으로 충분해지더라고요. 
심지어 사람들이 나를 욕을 해도 좋아요, 돌을 던져도 좋아요. 
주님만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주님이 그것을 기뻐하신다면, 
그게 실제가 되기 시작하니까, 욕먹고, 나를 비난하고... 그런 말을 들어도 괜찮아요. 

이건 저에게 엄청난 변화에요. 제 삶 전체를 바꾸는 거예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갈 때는, '이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대가를 지불할지라도 '감사하다' 그런 믿음이 있어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을 갈 수 있어요. 
그럼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요.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이에요. 
진짜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것을 진짜 알게 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갈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청년 집회를 하게 된 거예요. 청년 때에 이 눈이 열리게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여러분 때에는 그래도 '연습'이라는 것이 허용되는 시기예요. 이것도 굉장히 짧게 지나갑니다. 
'실패'라는 것도 허용되는 시기이에요. 

젊었다는게 좋은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러나 여러분도 곧 실패하면 안 되는 순간이 와요. 
실패가 정말 무서운..  삶을 무너뜨리는.. 그런  때가 여러분에게도 옵니다. 

여러분이 준비 안 되면, 훈련이 안 되면, 
그때 가서 훈련을 하려고 하면, 두려워서 하지도 못해요. 

예수님만 믿고 사는 것, 이건 엄청난 일이에요. 이 시대에! 
근데 청년의 때에 연습을 해 봐야 돼요. 

결혼만 놓고 봐도, 배우자 문제가 걸려요. 
아이가 생기면, 자녀 문제가 걸려요. 
연습하기 진짜 어려워져요. 그래서 살아오던 삶을 그대로 살 수밖에 없어요. 

이게 청년 여러분들에게 '예수동행운동을 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든 거예요. 
준비하고 훈련해야 되는 일이 필요한 거예요.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이 정말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것에 눈이 뜨이면, 
이 자리에 나올 때 여러분의 마음과 
마치고 돌아갈 때 여러분의 마음이 달라진다고 믿어요. 

그건 아주 작은 변화로 다가 올 수도 있어요. 
우리가 워낙 자극이 강한 시대에 사니까, 뭐 올 때나 갈 때나 별 차이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주목해야 돼요. 
여러분에게 일어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생명의 변화를! 


▲오늘 엘리야 이야기를 본문에서 읽었는데 
오늘 이 본문의 내용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도전이 굉장히 큽니다. 

엘리야가 살던 시대는 영적으로 굉장히 암울했어요.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이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어요. 

요즘 대통령은 옛날에 왕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그런 존재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크잖아요.

이 시대는 비교가 안 되는 큰 권력을 가진 왕이에요. 
왕과 왕비가 완전히 악령에 사로잡히고... 그들의 영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어요. 

그 상황에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선지자 일을 감당해야 했던 거예요. 
엘리야로서는 정말 감당이 안 되는.. 그런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형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그 비슷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실제로 담대하고 확신있게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영적으로 눌려서 그런 거예요.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갈멜산에서 영적 싸움을 합니다. 
무려 850대 1이에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가 850명, 
하나님의 선지자는 엘리야 한 사람이었어요. 

850명이 갈멜산에서 제단에 제물을 올려놓고, 불을 쓰지 말고, 
하늘에서부터 불을 내리게 해서, 제물을 불태우는 바로 그 신이 참 신이다... 영적 싸움을 한 거예요. 

여러분도 이미 다 아는 성경의 내용이라서, 그냥 간단히 그렇게만 설명하고 넘어갑니다. 

엘리야의 제단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요. 진짜 어마어마한 영적인 승리죠. 
바알 선지자들을 골짜기로 끌고 내려가서 거기서 다 죽입니다. 

자 이와 같은 엄청난 승리가 있었지만, 엘리야로서는 아직 할 일이 있었어요. 
3년 반 동안 가뭄으로 비가 내리지 않는 이스라엘에 비를 내리게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합과 이세벨을 징계하시려고,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려고, 비가 오지 않게 했습니다. 

아합은 그게 엘리야 때문이라고 그랬어요. 
엘리야가 다시 비가 내리게 해야 하는 그런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갈멜산으로 다시 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해요. '자기 머리를 무릎 사이에 두었다'고 했는데, 
이건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가를 말하는 거예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비가 내리기는 커녕, 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일곱 번을 기도해요.
일곱 번째 그렇게 기도했을 때, 그때 종이 '저 바다 끝에 조그만 손바닥 같은 구름이 보입니다' 
그런 보고를 해와요. 

그때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급히 사람을 보냅니다. 
'속히 내려가소서' 늦으면 빗물이 불어나서 못 내려간다는 거죠.

지금 저 바다 끝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하나 올라온 거예요. 
근데 '곧 엄청난 비가 올 거니까, 조금만 지나면 마차가 못 내려갑니다...'
엘리야는 그 손바닥만한 구름 속에서, 큰 빗소리를 들을 거예요. 

그리고 정말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엄청난 비가 쏟아집니다. 
3년 반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에 비가 쏟아져요. 

▲자 오늘 이 기사 내용이, 예수님과 동행하려는 청년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져야 될 말씀인 거예요. 
주님께서 지금이 시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엘리야는 상상이 안 되는 엄청난 기적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우리가 그와 다를 바가 없어요. 야고보가 그렇게 말씀했죠.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요' 약5:17

엘리야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지금 우리 안에 계세요. 
우리가 이 사실을 정말 믿고,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실제적인 삶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보았던 것처럼, 
손바닥만한 구름에서 큰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려야 돼요

그 점이 지금 현재 우리의 문제예요.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우리는 그 일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요. 

예수님을 영접했으니까, 예수님을 자기 마음에 모시고 살면서도...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잖아요. 오늘 여기 집회자리까지 여러분을 오게 하셨잖아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그렇게 고백하는 일이 우리 안에 일어나고 있잖아요. 
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세요. 
2000년 전, 그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와 계세요. 

이런 엄청난 일이 내 안에 일어나고 있는데도, 
나 자신이 별로 거기에 놀라지가 않아요. 이건 심각한 문제죠.                       

우리는 주님의 역사를, 너무 큰 것을 통해서만 확인하려고 합니다.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통해서만 확인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이에요. 

만약에 진짜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는 어떤 사람이, 
안수기도 받고 그가 벌떡 일어나는 그런 큰 기적을 우리가 눈으로 목격했을 경우, 
반응이 완전히 달라져요. 우리는 어떤 기적이 일어나면 반응을 해요. 
'와 진짜 하나님의 살아계신가 봐,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기적이 일어나네!' 
마치 안 믿었던 것처럼.. 반응을 해요. '와 진짜네, 정말 놀랍네!' 그렇게 반응합니다.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날 때만 반응하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의 역사는 '크냐 적으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크면 주님의 역사고, 작은 것은 주님의 역사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게 주님의 역사냐/ 아니냐.. 그게 중요한 거죠. 
작아도 주님의 역사라면 엄청난 일인 거예요.           

지금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에요.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떴어요. 
근데 이게 주님의 역사예요. 하나님의 역사예요. 
그러면 지금 엄청난 비가 쏟아질 것의 징조라는 거죠. 엘리야는 그렇게 믿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요. 

▲제가 선한목자교회에 부임했을 때, 초창기에 
청년들, 또는 중고등부 학생들 여름 수련회를 가면 
그러면 <거지순례 전도>를 해마다 했습니다. 

그건 뭐 <거지순례 전도>를 할만큼, 우리가 믿음과 또 성령의 충만함이 있어서 그랬느냐?
뭐 아주 그걸 부인하기는 어려운데, 거지순례 전도를 누구나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담임목사였던 저로서는 참 마음 아픈 것이 
교회 재정이 없어서... 
이왕 여름 수련회 때, 좀 시설 좋은 곳에 가서, 그렇게 수련회를 해주고 싶지요. 

근데 당시에 너무너무 교회에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어요. 
예배당 건축도 쉽지 않고, 또 부채도 너무 많이 남아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좀 수련회 답게 수련회도 해야 되겠는데... 

교회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어쨌든 한 3일 동안, 그냥 전라도로, 충청도로, 경상도에 가서 이렇게 전도하고 돌아오는 거예요. 

담임목사로서 제 마음이 얼마나 아픕니까?
이 거지순례 전도 같은 수련회만 이렇게 보내는 것이... 무척 마음이 아팠죠.

'이제 끝나고 돌아올 때, 그때는 좀 맞으러 나가 줘야 되겠다... 얼마나 고생했겠나?' 
그래서 제가 이제 로비에 나가서 거지순례 전도를 끝내고 들어오는 우리 청년들, 학생들을 맞이하는데, 
진짜 꼴이 거지더라고요. 한 3일 동안 거지전도 생활하고 돌아오니까요. 그런 모습이에요. 

근데 깜짝 놀랐어요. 눈빛이 다른 거예요. 그들의 눈빛은 평소에 보던 우리 학생들, 청년들이 아니었어요. 

그때 제 마음속에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충격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이 우리교회 <젊은이 교회>를 세우고 부흥시켰던 주역들이 되었어요. 

그때 거지순례전도를 나갔던 그 청년들, 그 학생들이 
그들이 3일 동안 진짜 주님만 의지해서, 
'주님이 우리를 먹이고, 재워 주실거다. 우리는 전도만 열심히 하면 돼!' 
그렇게 나가봤던 그 친구들입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 
'돈이 있고/ 없고 그런 거 이제 따지지 말자. 
여건이 된다/ 안 된다 그런 거 중요하지 않다. 
오직 어떤 상황이든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자. 
주님이 역사하실 만한 그 일을 하자' 

그래서 그때 거지전도여행은
선한목자교회를 목회하면서, 하나님께서 제 안에 엄청난 믿음을 일으킨 일 중의 하나였어요. 

우리에게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아주 작아 보여도 진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제대로 분별하라는 거예요. 
큰 것만 기대할 필요가 없어요. 

'예수님을 믿지만, 주님은 내 안에 계시지만, 그게 뭐 지금 세상에 무슨 힘이 되겠어?' 
절대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엘리야가 아무런 응답이 없는 상황에서, 일곱 번 기도했다는 거예요. 
얼굴을 두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한 마음으로 일곱 번 기도했어요.
다시 말하면 끝까지, 응답 올 때까지 기도했다는 거죠.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엘리야에게는 반드시 비가 온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하나님이 비를 내리게 하신다'하는 그런 분명한 믿음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는 기도했던 거예요. 끝까지! 

우리도 기도는 해요. 엘리야처럼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문제는, 기도를 한두 번 하다가, 역사가 안 나타나면 그만둬 버린다는 거죠.
'이번에는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지 않나 봐, 이게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봐' 
간절히 몇 번 기도하고 그냥 포기해 버려요. 

여러분, 기도의 승리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믿음이에요. 
여러분이 뭔가 소중한 물건을 잊어버렸다고 합시다. 
그런데 반드시 이 방에 있어요. 지금 당장 찾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이 방 어딘가에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 끝까지 뒤져서 찾을 거예요. 있다고 확신하니까요!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있다고 확신하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 끝까지 찾는 거예요. 
근데 확신이 없으면... 좀 찾아보다가 포기합니다. 
마찬가지로 확신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기도에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갈 때, 아합왕을 보고서, 
기도하기 전이에요. 산에 올라가기 전이에요. 

엘리야는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큰 빗소리를 들었어요. 
'비가 온다!' 진짜 믿었어요. 이유가 뭐죠? 하나님이 이미 말씀해 주셨어요. 

18:1절에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미, 갈멜산에서의 영적인 싸움을 할 때 
'내가 비도 내려 줄 것이다'하고 말씀을 주셨어요. 

엘리야는 '하나님이 비를 반드시 내려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엘리야처럼 이렇게 확신이 생기는 것은 굉장히 드문 경우예요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믿지를 않아요. 
하나님이 말씀을 안 하셔서, 우리에게 믿음이 없는게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마28:20절에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항상 나와 함께 계시리라' 그걸 실제로 믿고 사는 사람은 아주 드물어요. 거의 없어요. 

내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나 혼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은밀한 죄에 무너지고, 두려움에 무너지고, 염려에 무너지고 합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아니 분명히 성경에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셨는데도 
사람들은 안 믿는 거예요. 

요7:38절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다 아시는 말씀이잖아요. 
근데 내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정말 믿고 사십니까?

여러분이 그 말씀을 정말 믿어서, 집에 가서 말합니다.
'엄마 아빠,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내 속에서 생수의 강에 흘러 나올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엄마 아빠는
'너는 항상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얘기만 하더라' 하고 핀잔을 줄 거예요.
사람들은 말씀을 실제로 믿지 않는다는 거죠.

요14:12절에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일을 나도 할거다.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이렇게 안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내가 어떻게 예수님이 하신 일을 나도 할 수 있겠어?' 
우리가 말씀을 들어도, 다 믿는게 아니에요. 

그런데 엘리야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거예요. 
이게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너무 중요해요. 

여러분 엘리야가 처한 현실은, 사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때였어요. 
지금도 우리가 온전히 주님을 믿고 사는게 쉽지 않은 시대에요. 
그렇지만 절대로 그거 핑계 대지 마세요. 

▲엘리야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걸 믿었는데,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말씀을 주실 때, 막 천둥 번개가 치는 것처럼 해서 
엘리야가 막 깜짝 놀라서 기절할 정도로.. 너무 강하게 그렇게 말씀을 주셔서.. 
그렇게 확신을 가졌을까요? 

뭐 그 일에 대해서 성경에 자세한 기록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엘리야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 같지는 않아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 
그리고 하늘에서 비가 다시 내리게 하는 엄청난 일을 행하고, 오히려 낙심에 빠집니다. 
이세벨이 이빨을 갈아요. '내가 엘리야를 반드시 죽일 것이다' 

그런 엄청난 기적을 행했는데, 이세벨은 조금도 그 마음이 꺾여지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엘리야가 오히려 질리는 거예요. 

 

이런 엄청난 기적을 행했으면, 이세벨이 회개하고 돌아오든지, 
적어도 엘리야를 무섭다고 여겨야 되잖아요. 

'야 나는 이제 저 여자는 감당을 못 하겠어' 
엘리야가 오히려 광야로 도망을 가요. 

그리고는 하나님께 '하나님, 나 빨리 데려가세요. 나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갑자기 엘리야가 이렇게 꼬꾸라집니다. 
하나님이 그 엘리야를 데리고 호렙산으로 데려가세요. 거기서 엘리야를 만나 주십니다. 

근데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크고 강한 바람 속에 나타나지 않으시고 
땅이 흔들리는 지진 속에서도 나타나지 않으시고, 불 속에서도 나타나지 않으시고, 
세미한 소리로 엘리야에게 임하세요. 

'너 혼자만이 아니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7천면을 내가 남겨 놓았다'
이제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세미한 소리로 들렸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18:1절에 '비가 있으리라' 하신 것도, 세미한 음성이었을 가능성이 큰 거죠.
엘리야는, 그 세미한 음성을 흘려버리지 않고, 확실히 믿었고요.

그 말은, 엘리야 나 우리나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듣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님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으로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확신을 못 가진다'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여러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때, 그때 크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모인 무리들 가운데 임했다고 그랬습니다. 
큰 바람 소리가... 

이 예배당과 같은 이곳에, 갑자기 큰 태풍 같은 소리가 들린 거죠. 
그 말은 '하나님의 호흡'을 느꼈다는 것.. 그렇게 해석하는게 좋겠어요. 

마치 누가 여러분의 귀에다 대고, 옆에서 뭐라고 말을 하면.. 느낌이 오지요. 
친한 친구나 또는 부모님이나 또는 누가 여러분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말을 속삭이면 
그 느낌을 알지요, 그 호흡이 느껴지지요? 

우리는 똑같이 느껴야 됩니다.
'하나님이 지금 내게 말씀하신다. 주님이 정말 나에게 임하셨구나' 

근데 크고 강한 바람 소리처럼 임하는 것이나,
아주 세미한 소리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크고 작은게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음성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죠.

우리는 자꾸 큰 것, 분명한 것, 확실한 것, 놀라운 것... 이런 기준으로만 
자꾸 하나님의 역사냐/ 아니냐를 따지려고 하는데 
꼭 크고 놀라운 것만 아니라 
세미한 소리로도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귓속말을 하실 때도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어느 날 여러분의 마음속에 갑자기 '기도해야지... 
내가 진짜 하나님 앞에 엘리야처럼 그렇게 기도해야 되는데...' 그런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그러면 여러분의 귀에, 하나님의 호흡이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더 이상 이렇게 은밀한 죄에 빠져서 살면 안 되지' 
어느 순간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하나님의 호흡을 느낀 거예요. 

▲오늘 여기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호흡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제가 단언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여기 집회에 오게 된 것도, 아마 하나님의 호흡을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소리가 컸느냐/ 작으냐가 아니고 
'그것이 진짜 주님의 말씀이었느냐, 주님의 인도하심이었느냐?'는 것을 분별하는 것, 
그게 중요한 거예요. 

우리는 어떤 성공이나 또는 부유함을 부러워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그 성공이나 부유함이 우리를 더 깊이 좌절과 허무에 빠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성공한 것, 또는 부유하게 사는 그 순간만 봐요.
뉴스로 보기도 하고, 또 영상으로 보기도 하고... 
근데 그 사람의 그 뉴스에 나온 이후의 삶은, 누구도 이야기해 주지 않아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실제로 그런 어떤 부유함과 성공을 경험해 보고 나면, 
그제야 '이게 전부가 아니구나.. 오히려 이것이 나를 해롭게 하는구나'를 경험하게 될 거예요. 

어떤 강력한 체험, 그건 우리를 정말 영적으로 확 깨어나게 만들지요. 
그러나 이런 어떤 강력한 체험은, 우리를 영적으로 기복이 너무 심하게 만들어요. 

그런 체험이 있을 때는, 마치 하나님이 너무나 분명히 이 세상에 살아계신 것처럼 믿어지다가도, 
그런 체험이 없을 때는, 갑자기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나님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시고 늘 함께 계신데도, 
내 느낌은, 체험만 의존하는 믿음은, 나를 영적으로 완전히 널뛰기를 하게 만들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크고 강한게 아닌 거예요. 
한결같이 변함이 없는 확신! 그게 우리에게 중요한 거예요.  

그게 뭐냐면, 작아 보여도, 진짜 손바닥만한 구름이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거구나, 하나님의 역사구나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에게 동일기를 쓰시도록 권해드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예요. 
여러분이 매일 여러분의 하루를 주님 앞에서 기록해 보기 시작하면 
여러분의 하루를... 여러분이 알게 될 거예요. 
주님이 나와 늘 함께 계시다는 거예요.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일이 잘 될 때나/ 안 될 때나 
어떤 엄청난 역사가 일어날 때나/ 또는 정반대로 혼란스러운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 때나 똑같아요. 
주님은 여전히 내게 말씀해요. 

▲어제 어느 목사님의 예수동행일기예요. 
제가 어느 목사님이라고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새벽 기도 때 마가복음 10장을 읽고, 예수님의 제자의 삶에 대해 교인들과 나누었다. 
예수님의 제자는 섬기는 자이며, 자기 십자가를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임을 설교했지만 
나 스스로도 그렇게 살지 못하여, 담대하게 전할 수가 없었다. 

성도들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아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도 솔직히 힘든 일임을 고백하고, 
우리 같이 오늘 하루를, 힘써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순종해 보자고 권면했다. 

오늘 참가해야 할 세미나에 조금 늦어서 부지런히 운전하며 달려갔다. 
가다보니 어정쩡하게 가는 차와, 끼어드는 차로 인해 화가 났다. 

그러다가 '아차 나의 십자가를지고 가자고 했는데...' 하는 마음이 들어서 주님께 죄송했다. 
어렵게 참석한 세미나의 강사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나마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이 있어서, 강의 진도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 
마음이 불편해지며, '계속 이 세미나에 참석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섬기는 자가 제자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하루가 그렇게 갔지만, 주님의 은혜가 분명한 하루였음을 깨달았다. 
내일도 주님과 동행함을 기대한다.」 

진짜 평범한 일기예요. 운전하다가 화낸 거나, 
또 세미나에 갔다가 강사에게 실망한 일... 뭐 그런 일을 쓴 거예요. 

근데 저는 이 목사님의 동행일기를 읽으면서, 참 귀한 은혜를 제가 받았어요. 왜요? 
그 목사님과 함께 계시는 주님의 역사에 대해서 느끼기 시작한 거예요. 

그게 중요한 핵심이에요. 우리가 만약에 이와 같이 살면서 
그렇게 한 달을 살아보고, 그렇게 1년을 살아보기 시작하면 
그러면 여러분들이 주님을 의식하고, 주님의 역사하심에 눈이 열리는 것이.. 놀랍게 달라져요. 

이걸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거예요. 
어느 날 한순간에 내게 그런 눈이 열리고, 그런 귀가 열리기를 기다리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안 되는 거예요. 
'주님은 나와 같이 계시는데, 나는 왜 그게 안 믿어지나?' 
'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시는데, 왜 내 삶 속에는 그런 역사가 안 나타나나?' 
그렇게 하다가 인생이 끝나요. 

주님은 같이 계셨는데, 여전히 역사하시는데... 
주님의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러면 아주 작은 손바닥 같은 구름이, 우리의 삶 속에 얼마나 많이 나타나는지 몰라요.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손바닥만한 구름 같은 것 밖에 안 보입니까? 대단한 일이에요. 
엘리야는 그때 큰 빗소리를 들었어요. 

저도 여러분과 만약에 시간이 되어서 일대일로 만날 수 있다면,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여러분이 깨달은 손바닥만한 구름, 
내 삶 속에 주님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 
그런 일들에 대해서 나에게 조금만 나누어 주신다면, 
저는, 주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놀랍게 쓰실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거예요.
손바닥만한 구름은 큰 비를 가져오게 돼요. 그게 주님의 역사라면! 

▲지난 월요일, 2024년 1월 29일, 이사야 53장 묵상하고서 쓴 제 동행일기 내용이 이렇습니다. 

 「이사야 53장을 묵상하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졌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그동안 왜 죄를 지을 때마다, 그에 합당한 벌을 받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저 지나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르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대신 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나 대신 벌금을 내고 있었다 해도, 감당하기 힘든 일일테고 
누군가가 나 대신 감옥에 갔다 해도, 그 부담감이 말할 수 없이 클 텐데,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그 벌을 주님이 다 당하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그 주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데, 어찌 다시 죄에 기웃거릴 수 있겠습니까. 
하루 종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지냈습니다. 
내 삶을 변화시키는데, 성경 한 구절이면 충분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한 달 동안만, (한 번 동행일기를 써 보세요)
여러분의 삶 속에 '이건 진짜 주님의 역사야' 
그걸 큰 것으로만 분별하려고 하지 마세요. 

갑자기 떠오르는 내 생각이라도 '아 이건 주님이 주시는 거야' 
여러분의 삶 속에 진짜 우연처럼 부딪혀 오는 어느 한순간의 어떤 사건이 

'이건 주님이 내게 주신 메시지야' 
'주님이 이렇게 만나게 하셨어, 주님이 이렇게 가게 하셨어'
그런 내용들을 한번 진짜 기록해 보세요. 여러분의 동행일기에! 

손바닥만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그 속에서 
앞으로 하나님이 엄청난 큰 비를 쏟아 부으시는 역사를 보게 될 거예요. 
그걸 붙잡으셔야 돼요. 청년회 때에 그걸 붙잡으셔야 돼요. 

너무 크고, 놀랍고, 엄청난 것만 좇아다니지 마세요. 
그건 세상이 주는 자극에 영향을 받아서 (세상은 큰 거 좋아함) 
하나님의 역사도 그래야만 그게 뭔가 좀 하나님이 일하신 것 같다... 그렇게 착각하는 거예요. 

그건 오히려 우리를 더 영적으로 힘들게 만들어요. 
건강하게 주님과 동행할지 못하게 만들어요. 

주변 사람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 속에도 
우리는 알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여러분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은 실패의 순간에도 
여러분이 동행일기를, 그날 하루를 써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놀래요. 
'주님이 오늘도 나에게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고, 말씀하시는구나'

우리가 다음 달 3월 7일에
그때 우리 <청년예수동행 집회>에 우리 함께 모이면 
그때 여러분의 얼굴 표정이 완전히 다 달라져서 모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이번 한 달 동안 진짜 주님과 동행했어요. 
제 삶 속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오른 일이 너무나 많았어요.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간섭하고 계시는 것이 확실해요. 
하나님이 저를 정말 붙드신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정말 그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진짜 승부는, 지금 현재 여러분이 겪고 있는 그 일로 판단할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의 상황은, 우리를 굉장히 두렵게도 만들 수 있어요. 
나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어요. '내가 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진짜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 자신의 능력에 달려 있는게 아니에요.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께 달려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 주님께, 정말 믿음의 눈을 뜨고, 주님께 반응하기 시작할 때 
주님이 함께 계신 것을 진짜 놀라워하고, 감사하고, 그 주님을 더욱 사모할 때 
비로소 엘리야를 쓰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나타날 거예요. 
그것은 한국 교회를 향한 축복이에요. 우리 민족을 향한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게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