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회 2022-09-25 주일예배 //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라 - YouTube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라 (골20강) 골4:2~6
◑골3~4장 문맥 흐름 설명 주1)
여러분, 골3장에 나온 교훈들을 쭉 생각해 보면
아마 모든 성도님들 마음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게 살면 좋을 것 같아...'
그러니까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우리는 늘 새사람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바울이라면, 마지막으로 무엇을 교훈하겠습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새사람으로 살아가라!
그런데 마지막에 무슨 교훈을 하고 싶습니까?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교훈을 합니다.
◑4:2절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기도를 계속하고'
골3:1절부터 계속 이어지는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마지막 교훈은 <기도에 대한 교훈>입니다.
근데 제가 여러분들과 말씀을 나눌 때,
문맥으로, 앞에 나오는 내용, 또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 등
이렇게 문맥을 설명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항상 이렇게 문맥을 통해서 성경 말씀을 대하셔야만
제일 정확하게 본문을 이해하실 수 있고,
또 자기 자신한테 잘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아야 된다' 이게 머리로는 다 동의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머리로 안다고 해서, 이것이 우리들의 삶이 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청년 시절에, 배움에 대한 욕구가 강할 때
성경 말씀을 대하면,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새로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
말씀을 깨달으면, 저는 자동적으로 살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말씀을 깨닫기만 하면, 그냥 자동적으로 저는 말씀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 보니까
내가 말씀을 깨닫더라도, 머리로는 말씀을 알더라도
그것이 내 삶이 되기까지는, 내가 그 말씀에 순종하기까지는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정말 간격이 있다 라는 것을... 제가 깨닫게 됐습니다.
아마 성도님들도 좀 느끼실 텐데, 교회 성도님들이 머리로는 아는게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의 생활로 표현되고, 나타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간격을 메워 줄 수 있는게 무엇이냐? 바로 기도라는 겁니다.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무엇이 꼭 필요한가?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3:1절부터 성도가 교회에서,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종들이, 상전들이
각자 자기가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배운 말씀이 머리에 이론으로 머물지 않고, 삶에서 순종하는 말씀이 되려면,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4:2
'기도를 계속하고' 4:2
우리말 번역에는 '기도를 계속해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 Continue in prayer
그런 말도 되지만, 또 '전념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속한다는 것은, 전념하니까 계속하게 되는 거죠.
'기도를 계속해라', 즉 '기도에 자기 자신을 헌신하라!'
대부분 영어 번역은 '기도에 자신을 헌신해라'로 나옵니다. Devote yourselves to prayer
본 절과 똑같은 단어가 성경에 다른 곳에 여러 번 사용되었는데,
거기에는 무슨 표현을 썼느냐? '기도에 힘쓰라' 라는 뜻으로 대부분 번역이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아가려면, 기도에 전념해야 된다는 거죠.
여기에 '전념하라'는 것은 현재 시제입니다.
헬라어에서 '현재 시제'는 계속과 반복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한 번 전념하라는게 아니고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기도에 전념해야 된다... 이렇게 바울은 도전합니다.
'기도의 전념하는' 것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바 초대교회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행1:14절에, 오순절 성령강림이 주어지기 전에, 그때 120문도가 무엇을 했냐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프로스카르테레오
'힘쓰니라'가 본문 골4:2절의 '계속하다'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프로스카르테레오
즉 120문도가 기도에 전념했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자신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가 역사 가운데 등장하게 됩니다.
행2:42절을 보시면 그 초대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지금의 설교가 되겠죠.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늘날 교회의 친교모임이죠.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똑같은 단어입니다. *프로스카르테레오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행1:14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2
'기도를 계속하고' 골4:2
초대교회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 그들은 어떤 공동체였나?
기도하기를 힘쓰는 공동체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급성장하면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사도들은 일곱 리더(집사님)들을 세우게 됩니다.
일곱 리더들을 세워서, 그분들에게 재정과 구제에 대한 일들을 맡깁니다.
행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힘쓰리라' 똑같은 단어입니다. *프로스카르테레오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힘쓰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게 됩니다.
사도바울도 롬12:12절에서 이렇게 권면을 하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프로스카르테레오
사도바울도 로마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권면했습니다.
여러분 로마서 12장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가장 압축적으로 묘사한 성경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너희 몸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라'로 시작하죠. 12:1
그러려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라'
그 다음에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섬기고,
교회 가운데서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라.
그 가운데 성도들이 이 땅을 살 때 피할 수 없는게 환난이죠.
환란 중에 인내해라, 소망 중에 즐거워해라,
그러면서 이것이 올바로 작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기도에 항상 힘써라' 롬12:12
그래서 성도들이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에 항상 힘쓰는 것입니다. 골4:2
▲예수님께서는 똑같은 단어는 사용하지 않으셨지만, 비슷한 말로 같은 교훈을 주셨습니다.
눅18:1절에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 비유의 내용은 불의한 재판관이 있는데,
한 과부가 찾아가서 끈질기게 부탁을 하니까,
그 재판관이 들어주는 비유를 드시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된다'
이 말씀의 전제는, 성도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 억울한 일들이 너무너무 많다는 겁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억울한 일들이 너무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성도들이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냐?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도전을 합니다.
우리가 가정, 일터, 교회에서 새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첫 번째 기억해야 되는 것은 '기도에 전념해야' 됩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4:2
그런데 기도에 대해서 두 가지를 덧붙입니다.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
여기에 '깨어 있는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나중에 에베소서 6장에도 같은 내용들이 나오는데
거기도 '깨어 있으라'고 권면하죠.
'깨어있다'는 말이 신약 성경이란 24번 정도 나옵니다.
그런데 3가지로 대충 사용이 됩니다.
1) 24회 중 절반 12회 정도는, 재림과 관련해서 깨어있으라고 권고합니다.
살전5:6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려라'
살전5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깨어있으라'는 권면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텐데, 우리가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갈 때, 깨어서 살아가야 된다는 거죠. 깨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매 순간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
깨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 마26:41절을 보시면 유명한 구절이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이거는 종말론적인 상황이 아니죠. 지금 제자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져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목전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베드로를 포함한 세 명의 제자들이 같이 동행했습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당부하셨어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왜 깨어 있어야 됩니까? 지금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엄중한 순간이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된다는 거죠. 깨어있지 못하면, 시험에 든다는 거죠!
그런데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결국 깨어 있지를 못했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정말 그 삶의 가장 큰 오점이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치명적인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깨어 있어야 됩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순간, 이 상황이
너무나도 중요한 순간이고, 엄중한 순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쭉 해오시면서
가장 큰 은혜는 무엇이냐? 우리들의 삶에도 참 긴박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또 우리들의 삶에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시기가 있었을 때,
'그때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깨어 있어서 올바른 판단을 했는가?'
그렇지만 내가 때로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엄중한 순간인데, 그 엄중한 상황을 알지 못하고... 그냥 잠들어 있는 거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가 처한 상황이 엄중한 순간인데,
잠들어 있으면 어떻게 되나? 정말 교회는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도전하는 이유가
성도들이 지금 엄중하고 중요한 순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기도에 깨어 있으라'는 거죠. 기도에 전념하고, 기도를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골4:2
3)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분이 누구시죠? 바로 베드로 사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라'
이렇게 당부했지만, 깨어 있지 못했던 베드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거죠.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구절 속에는 베드로의 자기 경험이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 그가 깨어 있지 못했을 때, 대적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다가
자기를 물어 버리는... 그래서 치명적인 실패를 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을 경험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깨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는 깨어있게 됩니다.
또 깨어있으면서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에 준비하기 위해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순간이 너무 귀중하고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우는 사자가 바로 나를 삼키려고 두루 다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깨어서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바울은 권면합니다.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 4:2
여러분들이 골로새서를 다시 한번 쭉 보시면
골로새서의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가 "감사" 입니다.
1장에,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마지막 제목이 무엇이냐?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고,
그 아들 안에서 우리는 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12
2장에 가면, 2:6~7절에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받았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행해야 됩니다.
그분의 교훈에 뿌리를 내리고 터가 견고해져서 감사가 넘치게 하라'
3장에 와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들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그리고 감사하는 자가 되라' 3:15
3:17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17
여러분, 감사는 무엇이냐?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대해서,
그리고 자기 인생에 대해서 가지는 근본적인 태도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셔야 돼요.
여러분, 나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분이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을 때,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누군가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환란과 마귀와 죄가 나를 무너뜨리려고 해도
성령님께서 나의 삶을 주장하셔서, 마침내 합력해서 선이 되게 하시고,
나를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지금도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바울이 이야기합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 4:2
바울은 4:2절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자신을 위해서 기도에 전념할 것을 도전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4:3~4절을 보면,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그는 성도들에게 요청합니다.
◑4:3절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바울 같은 분도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 이렇게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 '전도할 문을 열어 주시도록'
다시 말하면 '말씀의 문을 열어 주시도록, 복음을 전할 문을 열어 주시도록'
그래서 말씀의 문을 열어 주시면 바울은 무엇을 할 것이냐?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말씀의 문을 열어 달라고... 이렇게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겁니다.
3절 마지막 바울은 자신의 현재 처한 상황을 설명합니다.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다'
여러분 골로새서는 옥중서신 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가택 연금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매임을 당한 상태에서 풀려나도록 기도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달라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렇게 기도해 주면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서 이 복음의 비밀을 나타낼 것이다'
여기서 '문'이라는 표현은
사도행전이나 바울의 글들을 종합해보면 굉장히 인상적인 표현입니다.
결국 문을 열어 달라는 것은, '효과적인 기회'를 얻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행14:27절은, 바울이 1차전도어행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와서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이렇게 표현을 하죠.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여러분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방인들에게
바울과 바나바를 주님이 사용하셔서, 믿음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즉 놀라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열매 맺게 되는
그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했습니다.
고전16:9절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근황을 설명할 때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다' 무엇을 위한 문이겠습니까?
복음 전파를 위한 문!
그 복음 전파를 위한 광대하고 great, 유효한 effective
즉 정말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그 문이 내게 열렸다...
그런데 대적하는 자도 많다...라고 자신의 상황을 표현을 합니다.
고후2:2절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는 겁니다.
그것을 통해 놀라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문이 열렸다.. 라고 바울은 도전을 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기도요청을 했습니다.
'말씀을 위한 문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요.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비밀'
'그리스도와 관련된 비밀'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골1:27절에서 바울이 이미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진행해 오셨던 그 구원 계획을 '비밀'이라는 단어로 사용했는데
그 비밀은... 바로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영광의 소망이시다.
즉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중심이라는 겁니다.
2:2절에도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또한 교회의 설교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 저들에게 말씀의 문을 열어 주십시오.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 될 내용은 말씀의 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의 문을 열어 주셨을 때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담대히 알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선교사님들, 목사님들을 위해 기도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저는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
이것은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런 지역에만 새로운 그런 문을 열어 주시는 그 내용뿐만 아니라서,
저는 이렇게 기도를 하게 됐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 말씀의 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래서 이 말씀이 헛되지 않고, 이 말씀이 그대로 우리 영혼의 새겨져서
놀라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그 말씀의 문을
우리 성도들의 영혼 가운데 열어 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기도를 드리는 것은,
제가 지금도 청년집회나 교회 부흥회 청빙을 받아서 설교를 하러 갑니다.
그러면 저희 집사람이 한 번씩 묻죠. '이번에 가서는 무슨 설교합니까?'
여러분, 제가 뭐 다른 교회 부흥회나 수련회 가서 새로운 내용을 설교하겠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설교하던 것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내용인데,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내용을
다만 다른 청중들에게 설교하는 거죠.
그러면 제가 설교하면서 제 스스로도 '야~ 이상하다' 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수십 번 설교한 내용인데, 어떤 교회에 가면
입이 떨어지질 않아요. 입이 열리지 않아요.
에베소서에서는 '입을 열어 주사'라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엡6:19
정말 말이 안 나와요. 정말 설교를 힘들게, 힘들게 이어갈 때가 간혹 있습니다.
주님이 입을 열어주시지 않고, 복음의 문을 열어주시지 않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듣는 성도들도 '복음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회자들,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입을 열어주시도록, 복음의 문을 열어주시도록' 하는 기도가 꼭 필요한 거죠.
근데 또 어떤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해보면
이분들은 마치 스폰지처럼 말씀을 흡수하는데, 쭉쭉 빨아들이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그냥 그분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듯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여러분, 그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내용을 설교하는데, 차이는 무엇이냐?
바로 성도들이 얼마나 기도를 통해, 그 마음속에 말씀의 문이 열려지도록 기도했는가?
바로 그 차이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는 어떨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은 전자에 가깝습니까, 후자에 가깝습니까?
저희 교회에 부목사님들이 새로 부임해서 설교를 하면, 제일 놀랄 때가 언제냐?
부목사님 자기가 설교하려고 하는데, 성도님들이 모두 다 볼펜을 꺼내 가지고
막 적는 것을 보는데... 그러면 설교자 부목사님이 갑자기 긴장이 팍 된대요.
다른 교회에서는 별로 필기 하는 모습을 못 보다가,
우리 교회에서는 습관적으로 필기를 하니까요...
근데 제가 두 가지를 놀라죠.
첫 번째는 성도님들이 다 펜을 꺼내 가지고 전원 필기를 하시니까 놀라고,
두 번째 놀라는 거는, 우리 성도님들이 절대 '아멘!'을 안 하기 때문에 놀라워요.
제가 한 번씩 외부 강사들이 오시면, 좀 초조할 때가 있어요.
너무 아멘이 안 나오니까요. 그거(아멘)는 여러분들이 인격적으로 하시면 되는 거긴 합디다만..
또 이런 일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서울에 소위 말씀이 풍성하다고 하는
유명한 목사님들이 사역하는 교회에 가서 제가 한번씩 설교를 합니다.
설교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정말 스폰지처럼 빨려 들어가는듯한 그런 설교를 할까요?
저는 제가 거기서 말씀을 좀 전해보면, 가끔 이런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꼭 내가 설교 품평회에 나온 것 같아요.
제가 설교를 하면, 거기 성도들은 '역시 우리 교회 목사님보다는 급수가 한 수 낮군.
우리 교회 부목사보다는 좀 나은 거 같아.. 뭐 들을 만한 거는 있는 것 같아'
이런 표정들인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잘못 본 것이겠지만요.
그래서 제가 꼭 '설교 품평회'에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니까요...
제 포인트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자칫 잘못하면 이런 위험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말씀이 풍성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판단하는 교회가 아니라요.
그런데 여기에 '기도에 전념하는', 기도의 뒷받침이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말씀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그래서 설교를 판단하도록 만들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판단하다가 집에 돌아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삶 속에 놀라운 변화를 주셨던 목사님의 설교가 있는데
그 중에 위대한 목사님들, 위대하다 라고 평가받는 목사님들의 설교도 있지만,
여러분 정말 무식하고, 또 아주 일방적이고, 막 고압적이고,
청년들이 볼 때는 혐오할 수 있는 그런 분의 설교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저의 태도와 삶을 완전히 바꿔 놓으셨던 적이 가끔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어떤 분이 설교를 하시던간에,
하나님이 말씀의 문을 열어 주셔서,
이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될 수 있도록...
어떤 분이 강사로 오셔도, 그 분의 삶을 통해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 흘러들어올 수 있도록 기도하셔야 돼요.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딱 한마디로 요약이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
여러분 이것 밖에 없어요. 목사를 믿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착하게 살라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이냐?
'주 예수를 믿으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위대한 사역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죠.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여러분이 지금 굳게 붙잡게 되면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놓여져 있더라도
바로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의 삶을 구원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바울은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요청을 했습니다.
◑4:5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5절과 6절은 외인들, 공동체에 바깥 주님을 알지 못하는 외인들과 생활할 때
어떻게 해야 되나요?
결론적으로 요약을 하면 5절은 행동을 통해서,
6절은 말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라...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여기서 지혜는 머리 좋은게 아닙니다. 영적인 지혜입니다.
1:9절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바울이 성도를 위해 기도할 때 첫 번째 제목은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바로 여기 사용된 지혜입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면
우리는 주께 합당하게 행하고,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1:10
이런 뜻에서 는 외인들을 대할 때,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로, 바로 그분들의 대하는 것입니다.
지혜란,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는 영적인 능력입니다.
여러분이 지혜가 우리들의 삶 속에 흘러들어오려면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되는 거죠.
이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어떻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셨는지... 생생한 가르침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또 한 가지,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또 하나는 순간순간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외인들을 상대할 때마다,
항상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를 구해야 돼요.
위로부터 난 지혜에 대해서 야고보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약3:17절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위로부터 난 지혜를 야고보는 이렇게 첫 번째로 '성결하다'
여러분 우리들의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런데 거룩하며 무슨 문제가 생깁니까?
안 믿는 사람과 대화가 안 되는 거 같잖아요.
그런데 위로부터 난 지혜는, 두 번째 '화평하고'
즉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준다, 평화를 만들어 낸다는 겁니다.
'관용하고 양순하며'
관용은 무엇인가 하면, 양보하는 겁니다. 남한테 기꺼이 양보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조카로 롯에게 양보한 것처럼 '관용하고' 즉 양보합니다.
그러니까 평화가 만들어지죠.
'양순하며'는
남의 입장과 의견을 귀담아 듣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과 의견을 귀담아 듣고 배려해 주는 것, 이것이 '양순'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성령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게 되면, 관용하고 양순합니까?
내가 스스로 복을 챙겨서, 내 삶이 복된게 아니라
하나님이 복을 주실 때 우리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는 양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난 지혜 속에는,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은혜를 받으면 가장 달라지는게 무엇이죠?
'사람은 불쌍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불쌍히,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폼잡고 화려하게 사는 것 같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쌍한 존재입니다.
그들을 향해 깊이 공감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즉 '긍휼히 여기고'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편견은 일방적으로 치우치는 겁니다.
거짓은 무엇이냐? 위선입니다.
여러분 이런 지혜를 누가 주실 수 있느냐? 성령님이 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나?
'성도들은 외인들에 대해서 성령이 주시는 지혜를 지혜대로 행하고' 4:5
▲ '세월을 아끼라' 4:5b
여기서 '세월'은 카이로스 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그 속에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이죠.
'아끼라'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그래서 '속량하다' 라는 단어로 성경에 사용됩니다.
즉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을 돈으로 사서, 그 노예 상태에서 풀어주는 것을 뜻합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이런 뜻을 담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순간을 구원해내라는 겁니다.
죄의 노예로 살고, 욕심의 노예로 사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이 유익을 위해,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으로 '구원해내라, 속량해내라' 이런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월을 아끼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으로 만들어라.
또 이런 뜻도 가능합니다. '다 사버려라!'
이게 무슨 뜻이죠?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라!
대부분 영어번역은 후자 쪽의 번역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다 사버려라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라'
여러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떤 기회로 활용해야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는 기회로, 이 시간을 만들어 버려야 된다는 겁니다.
자 정리하면, 사도 바울은 외인들에 대해서 행동으로
첫 번째는,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여 지혜로 그들을 대하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구원해 내어서 (속량해 내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뜨리는 기회로 최대한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이 기회를 흘러부내 버리지 말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는 기회로 최대한 활용하십시오! ... 이렇게 바울은 도전합니다.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너희 말을 첫 번째는 항상 은혜의 가운데서 해라'
'소금으로 맛을내는 것처럼 말해라'
우리가 말할 때 내용도 중요하죠.
그렇지만 내가 바른 말을 했는데, 관계가 오해가 되고, 뒤틀려지는 경우 얼마나 많습니까.
바울은 외인들과 말할 때 '은혜 가운데 말해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말해라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오해와 아픔들을
정말 많이 경험을 했어요. 여러분 말을 할 때,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말해라...
이 은혜는 사람의 은혜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뜻이 되느냐?
'호의 가운데 친절하게 말하라'는 뜻이 됩니다.
그럼 저는이 두 가지를 종합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외인들과 말할 때, 사람들과 말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호의 가운데 친절하게 말해라.
냉담하고 적대적이 아니라, 호의를 가지고 친절하게 말해라!
왜요? 저분들도 예수 믿으면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이죠.
▲두 번째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말해라.
여러분 고대에는 소금은 맛을 낼 수 있는 대표적이고 유일한 향료입니다.
당시에는 맛을 내는 조미료가 그렇게 많지 않았잖아요.
여러분 소금으로 맛을내는... 여러분 대화에 적용하면 무엇이겠습니까?
그 대화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소금으로 양념을 친 것처럼 맛있어서
또 듣고 싶고, 너무 매력적이고, 다시 기억나고...
여러분 그게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대화, 너희들의 말을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서 한마디 한 마디가
소금으로 맛을내는 것처럼... 그렇게 말을 하면,
외인들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아마 가장 큰 고민이 말에 있었습니다.
저는 아마 고등학교 때까지는, 제가 말을 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소위 '싸가지 없다'는 말을 가끔 들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바른 말을 했는 거 같은데, 주변이 영 분위기가 싸늘하고 안 좋았어요.
그래서 '나는 왜 이렇게 말을 할 줄 모르나?
왜 이렇게 고지식하고, 그런 말 밖에 할 줄을 모르나?'
저는 사실 교회 속에서 자라면서, 또 어른들이 말하는 것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참 말을 못한다. 왜 저렇게 밖에 말을 못하나?'
그런데 제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놀라게 된 것은 뭔가 하면
'야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리고 성경에 있는 가르침을 따르게 되면
내 입에 말도 달라질 수 있겠구나...' 이거를 저는 발견한게
제 삶의 정말 큰 발견 중에 하나였어요.
저는 잠언을 공부하면서 정말 제 입에 말을 많이 고쳤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서 '내가 모든 태도로,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배웠습니다.
저는 지금도 성도들과 심방하다보면, 성도들과 말이 안 통할 때가 있잖아요.
동문서답처럼, 제가 하는 말과 성도님이 하는 말이.. 엇갈리고, 기차의 트랙이 다른 거예요.
제가 청년들을 섬겼던 때도, 정말 청년들과 말이 통하지 않았던 적이 종종 있었어요.
그러면 제가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가서 한번 세수를 하고
거기에 앉아서 제가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말 좀 통하게 해주십시오. 제게 지혜로운 말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나와서 말하면
갑자기 막혔던 대화가 풀리고, 말이 통하게 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성도들은 어떻게 말해야 되나? 여러분 은혜를 의지해야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서 호의를 가지고 친절하게 말해야 돼요.
또 어떻게 해야 되느냐?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처럼 대화를 해야 돼요.
우리가 말 한마디 할 때, 이렇게 경건하게,
정말 소금으로 정성을 다해 음식에 양념하는 것처럼,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을 위해 양념하는 것처럼 말한다고 하면,
여러분 얼마나 그리스도인의 대화가 매력적이 되겠습니까?
저는 과거에 집에서 정말 말 때문에 아내와 한 번씩 다투어요.
한 번씩 다투고 나면, 은혜로 떨어지고 또 자책감도 들죠.
그래서 제가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아내가 뭐라고 제게 말을 하면
제가 '선지자의 말씀이니라!' 이 말을, 아내의 말 끝에 꼭 덧붙입니다.
더 심하면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덧붙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게 아내에게 비꼬는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아무리 아내가 잘못된, 틀린 말을 하더라도,
혹시 그 속에 선지자의 음성이 들어있을 수도 있으니까,
제가 그냥 '선지자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아내의 말을, 듣겠다는 자세로 나가면,
아무래도 아내와 다투는 일이 사그러들게 되는 거죠.
(아내가 나에게 언성을 높여도) '선지자의 말씀이니라!' (그래서 내가 듣겠다는 거죠)
여러분 가정에서 말 한마디 잘못해서 얼마나 싸우고 다투고 합니까.
저는 예수 믿으면 가장 달라질 수 있는 거는, 우리의 말이 달라진다고 봅니다.
저는 성도들이 가정에서 일터에서 은혜를 의지하고
소금으로 정말 맛을 내는 것처럼
정말 좋은 음식 대접하기 위해서,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처럼 여러분이 말을 하게 되면,
또한 행동하게 되면
여러분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나게 퍼트려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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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골3~4장 문맥 흐름 설명
본문 골4:2~6절은
골3:1절부터 시작된
<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마지막 그 교훈입니다.
첫 번째는 '위의 것을 찾고 생각해라' 3:1
두 번째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라' 이렇게 교훈을 했습니다. 3:2
또 우리들은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입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 생활에서 입어야 할 것이 중요하죠.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참음으로 옷을 입어라' 3:12
또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감사하고,
그리스도의 평강, 그리스도의 말씀이 충만하고,
말에나 일에나 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라' 3:13~17
이렇게 바울이 교훈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가정에 대해서 바울이 교훈할 때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 3:18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기억하면서,
그 권위 아래에 자기를 두는, 자발적인 복종을 하고,
또 남편은 아내들에 대해서 아가페의 사랑,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희생과 사랑으로
아내를 대해야 된다 라고 교훈했습니다. 3:19
또 자녀들은 부모들에게 순종하라. 3:20
아비들,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마라' 3:21
낙심하지 않도록 노엽게 하지 마라 이렇게 교훈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일터로 옮겨가서
종들은 '눈가림만 하지 말고, 성실한 마음, 즉 한마음으로 섬기되
그 중심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한마음으로 주인을 섬겨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러면 주님께로부터 기업의 상을 받게 될 것이다. 3:22~25
또 육신의 상전들은, 의와 공평으로 종들을 대하고 4:1
에베소서의 교훈을 빌린다면, 종들을 위협하지 말고
자신에게도 하늘의 상전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라... 이렇게 바울이 교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