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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LNCK 2024. 4. 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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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youtube.com)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8:4~25         2024.04.21.

◑도입 / 사마리아에 행1:8절이 이루어지다

 

오늘 말씀은 사마리아 땅에 복음이 전해진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복음의 증인이 되리라' 하셨는데 
행7장 스데반 사건까지 모든 일들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납니다. 
아직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제 행8장에 왔어요. 복음이 사마리아로 공식적으로 전해지는 거예요. 
어떻게 전해지는가요? 
교회가 모여서 '자 이제 때가 되었으니, 우리가 사마리아로 갑시다.' 
그렇게 회의하고 방향을 정한게 아니라 

스데반의 순교 후에, 바로 그가 순교한 그 날부터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고 했어요. 8:1
사실은 도망간 거예요. 계획 없이 그냥 간 겁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8:2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8:3
이런 무시무시한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8:4~5
이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맥락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갈려고 간게 아니라, 핍박을 받아서 간 김에, 이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사마리아 전도입니다. 
그 전에 교회는 예루살렘에 그냥 머물러 있었습니다. 

◑고립되어 있으면 ... 망합니다. 자꾸 담을 넘어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라고 명령하셨는데, 성령 충만한 공동체였는데 
왜 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까요?

게을러서 그랬나요? No
두려워서 그랬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당시 그분들은 정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고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의 일을 분별하고 순종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었는데,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고, 유대와 사마리아에 나아가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사람이 담장을 넘어서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교회가, 선교적 교회가 되는게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경계,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사마리아는 본래 이스라엘의 일부였지만, 이때는 유대 지역과 적대감이 강했어요. 
가깝고도 먼 지역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가 어디입니까? 예, 북한이죠. 
그런데 북한은 굉장히 가까운데,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장 먼 나라입니다. 그렇죠. 
아프리카도 가고, 브라질도 가고, 러시아도 가는데... 우리가 북한은 못 가요. 

<지리의 힘>이라는 베스트셀러가 있는데, 이 책을 보면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될 건가 비교합니다.

이 책의 핵심은 '중국은 미국에 견줄바가 못 된다. 
왜냐하면 미국이란 나라는 지도를 보면, 양쪽에 대서양과 태평양이 열려 있잖아요. 
밖으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밖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거는 지리적으로 엄청나게 좋은 조건이라고 하는 거죠. 

반면에 중국은 꽉 막혀 있습니다. 바다로 나가려고 그래도 남중국해의 대만에 막혀 있습니다. 
지금 대만 문제로 굉장히 복잡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보면 한국은, 정말 답답한 나라입니다. 
여러분 유럽에 가보면, 차를 타고 하루에도 몇 나라를 지나갑니다. 
그만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쉽게 오가고, 섞이고, 친구가 되고 그럽니다. 

그런데 한국은요, 지리적으로 보면 딱 갇혀 있는 나라입니다. 
생각이 좁을 수밖에 없고, 그냥 우물한 개구리 되기에 딱 좋은 그런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이만큼 얼굴 내밀고 살 수 있는 것은
진짜 기적 같은 일이에요. 

한국이 경제발전하면서 '우리는 수출 안 하면 못 먹고 산다' 발버둥 쳤잖아요. 
그 이면에는 625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625에 한번 호된 경험,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 나서는, 
'우리가 힘을 기르지 않으면 북한에게 잡아먹힌다' 하며 체제 경쟁한 거죠. 
죽기 살기로 달렸습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생각을, 시야를, 세계로 넓혔기 때문에,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여러분, 사람은 위기가 와야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그냥 뭐 등 따습고 배부르면... 발전이 없습니다.

여러분 한국의 옛말에 가장 복 받은 사람이 '문전옥답'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자기 집이 있는데, 대문 앞에 나가면 기름진 논밭이 있으면, 그게 최고 복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좀 달라요. 
스데반이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는데 
발 붙일 땅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돌아다닌 거예요. 나그네의 삶을 산 거예요. 
그래서 크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그랬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 줄 알면서도 
당장 한 걸음 넘어서 사마리아로 가는 것도 너무너무 부담됐습니다. 
못하고 있었어요. 

핍박으로 흩어지고 나서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마리아 전도가 이제 시작된 겁니다. 
시작한 게 아니고, 시작이 된 거예요. 
계획하지 않았는데... (능동적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그렇게 된 거예요)

8:14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뉴스로 들은 거예요)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내매'

그렇죠. 교회가 계획해서 시작한게 아니고, 그냥 우연히 시작된 거예요. 
하나님이 주도해서 하신 겁니다. 

'아~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통하네?
그렇지 예수님이 말씀하셨지!' 
그제서야 깨닫고 머릿속에 지도가 바뀌는 겁니다. 

※과거에 '신학적 순수성, 보수 정통 신학'을 표방하며

다른 신학교 출신을 교수로 임용하지 않았던 신학교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지켜 볼 일입니다.

 

◑머리 속에 지도가 바뀌어야 됩니다

 

여러분 사람이 변화되고 성장되는 것은, 머릿속에 지도가 바뀌는 거예요. 
이제부터 사마리아가 내 생각 속에,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 거예요. 

중략   주1)


문화적 지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미국이 먼 나라입니까, 가까운 나라입니까? 거리상으로 아주 멀죠. 

그런데 내 아들이 유학 가 있거나, 딸이 미국에 시집가서 살면요. 
심리적으로 가까운 나라가 돼요.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심리적 거리'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 포항에서 부산이 멀죠. 멀다하면 먼 길입니다. 
근데 어떤 젊은이에게 부산 여친이 생겼어요. 그러면 부산으로 매일 갑니다.
멀게 안 느껴집니다. 그게 심리적 거리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는, 대단히 먼 나라였습니다. 
우리하고는 관계없는 사람들, 상종할 수 없는 사람들...  

그러나 이제 복음 안에서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도성이 된 것입니다. 
이게 뭔가요? 머릿속에 지도가 바뀐 거예요. 

여러분 지도가 바뀌면, 인생이 바뀌고, 내 행로가 바뀝니다.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 

 

8:5~7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 귀신이 떠나가고, 병자가 낫고, 못 걷는 사람이 낫는 
엄청난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초대교회 때 기적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모든 세대에 기적이 있었지만, 특별히 사도행전 내에서 봐도
기적은 어떤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적도 하나님의 역사이고,

일상에서 승리도 똑같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여호수아서에서 가나안 땅에 많은 성들을 정복할 때, 
기적적인 방법으로 무너진 성은 단 하나뿐입니다. 맨 첫 성인 여리고 성입니다. 
나머지 성은, 전쟁해서 빼앗았어요.

이게 첫 성이라는게 중요합니다. 이렇듯 처음에는 기적이 잘 일어납니다.
그 이유는, 그 사건은, 그 가나안 땅도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러나 늘 기적으로 일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곳도 사탄이 다스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딱 한 성, 여리고 성이 그렇게 기적으로 무너지고 나서, 
그 다음에는 전부 다 '너희들이 전쟁하라 너희들이 싸워라' 그러신 거예요. 

싸울 때는 뭐가 필요한가요? 창과 칼이 필요하죠. 
방패가 필요하고, 병기가 필요하죠. 

근데 여러분 더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가나안 땅도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이다' 하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할렐루야! 

아무리 많이 갖추어도, 믿음이 없으면, 싸워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그래요. 신념이든 믿음이든 뭔가 있어야 돼요. 

▲갈렙이 85세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갈렙이 무려 85세 때 말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내가 그냥 그 앞에 가서 딱 서면, 그냥 확 무너져서, 그냥 나에게 선물로 주세요' 그거 아니잖아요. 
내가 싸우겠다는 겁니다. 내가 싸워서 차지하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성을 그냥 빙빙 도니까 확 무너졌다' ... 그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나가서 전투하고 전쟁했다'... 그거는 우리가 한 일이다... 아니죠.

-아이 성 이후의 전투처럼, 싸워서 취해야 할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한 것인 줄 믿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니' 행7:48
이 말씀은, 하나님을 건물에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고, 
그 곳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확실하지만 
거기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시지만, 
기적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게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을 기적에 제한하지 말라는 거죠. 

우리의 병을 기적적으로 치유하시는 일은, 오늘도 여전히 가능하고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기적에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그래요. 하나님이 때로는 아주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방법으로, 우리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채워 주시고, 
해결해 주실 때가 많이 있어요. 이런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하나님이 어떻게 아시고, 그렇게 딱 채워 주시는지...' 

그렇지만 (반대로) 내가 성실하게 일하고, 한 푼 두푼 모아 가면서, 
그렇게 재산을 늘여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인 줄 믿습니다. 

신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물을 주신 게 아니라,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게게 재물을 직접 기적적으로 주시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물질의 축복을 주시는데, 
오늘 밤에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서, 내일 로또 당첨되어 대박 나게 하시는게 아니라,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는 거예요. 

즉 열심히 일할 터전과, 건강과, 성실한 마음을 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병중에 있는 분들이 많으신데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님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기도로, 은혜로 고칠 수 있습니다. 

또한 의사를 통해서, 약을 통해서, 고치시기도 합니다. 
어떻게 언제 고치실까는 하나님께 맡기시고요. 

그래서 환우를 위해 기도하실 때, 
(기적적으로 단박에 낫는 치료가 아니라) 만약 치료에 긴 시간이 걸린다면, 
병마와 싸워야 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면, 
'싸울 수 있는 인내심과 믿음을 주소서 
갈렙이 싸우듯이, 능히 싸울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투병하는 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이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이 땅(현실)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거예요. 
가나안 땅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몸의 주인도, 우리 건강의 주인도, 우리 사업의 주인도... 일상도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취업하려고 애쓰는데, 그 자녀 인생의 주인도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다스리신다는 믿음!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마리아 부흥의 핵심은, 말씀을 통한 부흥

 

8:14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여러분 만약에 이걸 요즘처럼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 그러면, 
이 보고서 안에 많은 내용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즉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이런저런 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뭐 사업이 잘 됐습니다...' 뭐 많은 기적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보고서의 타이틀이 뭔가 하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 귀에 반짝하는, 우리 눈을 뜨이게 하는 그런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는 겁니다.  :14

예나 지금이나 원리는 똑같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그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따라오는(부수적인) 거예요. 
다른 기적들은, 하나님이 필요할 때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 안에 치유가 있고, 말씀 안에 화해가 있고, 
말씀 안에 회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 안에 능력이 따라오는데, 
말씀 없이, 
예수에게 능력이 있는데, 예수가 아닌 능력만 사랑하고, 능력만 탐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입니다.

8:9~11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여러분 시몬이란 사람은 '사마리아' 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문입니다. 
시몬 이란 사람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지금 이때 사마리아는 시몬의 땅입니다. 시몬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10
그냥 시골 촌부들부터 귀족들까지, 사회 상위층 지식인들까지 
전부 지금 시몬에게 다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입니까? 
최근에 나온 영화나 드라마 이런 거 보면요. 
'야 한국에 무속이 그렇게 강하구나'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심지어 정치에도 많이 관여하고 있다'라는 말이 공공연이 나돌잖아요. 
이런 무속이 성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허약하고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 무당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어요. 
시몬 정도 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낮은 자부터 높은 자까지' 전부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그 사회가 문제라는 겁니다. 

▲요즘 굳이 무속뿐만 아니라요. 
사회에 인플루언서 라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건전한 유튜브 인플루언서들도 있지만, 
특히 정치 분야에 있어서, 여기에 좋은 영향력이 많이 없어요. 

무속이 아니어도 얼마나 많은 가짜 뉴스를 조장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자극적인 선동들을 마구 유포시키고, 
그런 저급한 유튜브들이 막 조회수가 많이 나오고 
그래서 돈도 많이 벌고, 스타가 되고요... 

그들이 인플루언서가 된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 컨텐츠들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정신을 막 흔들고 있어요. 

예나 지금이나 영적인 세계가 있어서, 
인간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마술 등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 그랬어요.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로의 궁전에 갔을 때 
바로의 마술사들이 있었습니다. 

출7:10~1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세상 마술사, 무당의 대부분은 눈속임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소수는, 정말 귀신의 능력이 있는 경우가 있어요. 
초자연적인 어떤 그런 현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얻으면... 무너지는 거예요. 
그때 마술은 도망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 현상이 지금 사마리에서 일어납니다. 
'오랫동안 그 마술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1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2 

시몬도 믿었어요. 놀랍죠. 시몬도 세례를 받습니다. 
시몬은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습니다. :12

그렇게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사람(마술사 시몬)을, 빌립이 놀라게 합니다. 
여기서 '전심으로 따랐다'는 말은, 진심으로 순수한 동기로 따랐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열심으로 딱 붙어서, 어떻게 해보려고 딱 붙어 다녔다는 말입니다. 

그러던 중에 이 소문이 예루살렘에 들리고, 사도들이 내려옵니다.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 받는 것을 보자, 시몬이 완전히 매료됩니다. 
와!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성도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유산, 분깃, 상속, 지분이 있습니다

19절에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이 도에는 네가 분깃이 없다... 자기 몫이 없다는 말이에요.

바꾸어 말하면, 이 말은,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 나라의 그 엄청난 영광 안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분깃이 있고, 자리가 있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스데반 이 세상에서 핍박 당하고, 오해받고, 돌로 치는데도 
천사의 얼굴을 하고 하늘을 바라봤잖아요. 여러분 왜 그랬겠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세상은 아니지만, 하늘에,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영광 중에 받아 주시고 
거기에 나의 분깃이 있음을 아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 
그 종말론적 백성이 된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이 있는데... 그거를 시몬은 알지 못하는 거예요. 

그것을 알지 못하니까, 타락하고 엉뚱한 짓 하는 거예요. 
세상 것을 자꾸 탐하는 거예요. 

◑사도행전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

 

오늘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8:15~17절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여러분 이 구절이, 많은 주석가들이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라 그럽니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았는데, 기적도 막 일어났는데, 
아직 성령을 못 받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두 사도가 가서 안수할 때, 그제야 성령이 임했다 라는 것은,

왜 그랬을까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가? 
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짧게 말씀드리면, 사도행전에서 회개와 성령 받는 것
세례와 성령 받는 것은 하나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을 때, 세례 받을 때.. 성령도 함께 같이 받는다는 거죠.

 

근데 본문은, 빌립이 전도해서 예수를 믿었는데, 

성령을 그때 즉시 받지 않고,

나중에 사도들이 내려와서 안수했을 때, 성령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 '믿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주실 것이다.' 약속을 했거든요. 2:38등

사도행전에 계속 그렇게 갑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나누어져요. 믿고 회개했는데... 성령은 나중에 받았어요.

여러분 바울도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

예수로 주로 고백하는 것,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이 약하던 강하던 관계없이 성령이 하시는 일이고, 
세례를 받았으면 이미 성령의 사람이 된 것이에요. 

근데 여기서는 왜 세례를 받았는데, 빌립이 세례를 주었는데, 
성령이 임하지 않고 있다가 
사도들이 와서 안수할 때까지 기다렸는가? 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사역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됩니다. 
아무나 가서 그냥 내 마음대로 사역하고 
내 마음대로 세례주고, 내 마음대로 교회 세우고... 
그러면 처음에는 좋아요. 잘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상하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국교회 역사에도 그런 분이 많았습니다.
예전에 어떤 권사님, 어떤 장로님이
병 고치고, 능력을 행하고, 막 집회하고 막 엄청 인기를 끌었는데요. 
조금 가다가 이단이 돼 버린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시몬과 같이 돈이 관계된 경우가 많죠. 
예수의 능력으로 출발했는데, 능력을 사모하다 보니까
예수는 어디 딴데 가고 없고, 예수의 복음은 없고, 
능력의 과시만 남아 버린 경우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사마리아라는 땅은
문화적으로 처음부터 워낙 많이 달라요. 
그래서 연결이 되어 있지 않으면, 예루살렘과는 다른, 
모교회와는 다른 변종이 생길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함께 가는게 중요하다는 거죠. 
여러분, 해외 선교도 그렇고요. 교회 사역도 그렇습니다. 

※다른 해석으로,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을 때

성령이 내주하신 것은 맞습니다. (성경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런데 사도들이 내려와 안수했을 때,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내주충만의 차이가 있다는 거죠.

 

16절 '그때까지 그들이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성령이 내리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령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세례를 받았는데 성령은 받지 않은 걸까?' 
그런 질문이 마음속에 생기시는 분이 계실 거예요.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도 서로 다른 해석들을 합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성경도 이것을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전체 흐름을 보면, 사마리아에서 세례를 받았을 때 
세례를 받은 그 순간에, 성령의 강한 역사가 드러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적으로 성령은 내주하기 시작하셨을 거예요. 그렇지만 외적인 강한 역사가 없었던 거죠.)

이후에 사도들이 사마리아 땅에 와서 안수할 때 
그들이 성령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외적인 증거들이 강하게 드러나고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역사했다... 이렇게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중략        주2)


에베소서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4:3
성령은 교회가 하나되는 방향으로 역사하십니다. 
질서에 순종하고 조화를 이루는 거예요. 

엡4: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성찬의 하나됨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와서야, 비로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교회 역사 속에서 '하나의 세례'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다 아버지이신 거예요.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다 우리 아버지시니까
이 큰 아버지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한 형제 자녀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엡4:7절에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다 다르다는 거예요. 
여기 앉아 있는 사람은 다 다릅니다. 
다 다른데, 각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의 분량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 다른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 믿으면, 머릿속에 지도가 바뀝니다. 
옛날에는 사마리아가 굉장히 멀다고 생각했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우리하고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별로 안 달라요. 

하나님을 같은 아버지로 섬기면, 먼 나라가 가까워지고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 <연결된 고통>이라는 책 북토크 하는데 
이기병 교수님,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에서 
한 3년 정도, 공중보건의로 일했던 경험들을 책으로 썼습니다.

그 뒤에 의료인류학 쪽도 공부를 하시고요. 참 귀한 책입니다.
이 책에 보면 조선족 노동자들, 네팔인 청년들, 에티오피아인들 
갖가지 다른 사람들이 막 병이 나서 의사선생님 방에 찾아오는데 

여러분이 병원 가시면 주로 의사 선생님을 어떻게 만나십니까?
한 3분~10분 만나시죠. 대부분 의사선생님들은 그냥 컴퓨터만 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 몇 마디 '어디 아파요. 어디 아파요' 하는 가운데 
정말 많은 인생의 고백들, 다양한 이야기들, 하나의 세계가 담겨 있는 거예요. 
그 세계를 만나면서 했던 경험들... 

제가 이 책을 읽고 너무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작년엔가 제가 여러분께 상세하게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 '연결된 고통'이란 말이 무슨 말이에요? 
니고통 내고통 따로 있는 거 같이 보이는데, 실제로 하나라는 거예요. 
실제로 같은 인간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기 때문에, 만유의 아버지시기 때문에 
그 한 분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 모두가 형제요, 가족이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 사마리아가 그렇게 멀지 않은 거예요. 
장애인이 우리하고 그렇게 다른 삶이 아니라는 거예요. 

조금 다르지만, 그 다르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고, 축복이 되는 겁니다.
그 담을 넘었을 때, 내 평소의 경계를 넘었을 때, 
반드시 거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이 담을 넘어서, 사마리아 성에 복음을 전했더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8:8
이 말씀이 우리의 삶에 실현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큰 기쁨이 있더라' 
'우리 선교회에 큰 기쁨이 있더라' 
'우리 가정에 큰 기쁨이 있더라'
'도시 포항에, 우리 대한민국에 큰 기쁨이 있더라' 

우리가 경계를 넘었을 때,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장애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다르지만 다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장애인 사역 같이 하면서 참 은혜 많이 받습니다. 간증들이 막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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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중략된 부분

 

우리가 어릴 때부터 많이 봤던 지도를 보면, 러시아가 굉장히 크죠. 캐나다가 엄청나게 크죠. 
근데 실제로 면적을 따져보면, 
러시아는 저것밖에 안 됩니다. 
캐나다도 물론 그 큰 나라지만 그만큼 크진 않아요. 

그러니까 남반구는 더 작게 돼 있죠. 
아프리카는 거의 그 크기대로 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우리가 보는 크기 그대로입니다. 
영상으로 표시하면 이렇습니다. 예 요게 실제 크기예요. 속았죠. 

이게 지도를 만들 때, 구 위에 있는 지도를 평면에 펴려다 보니까 이런 방법을 쓴 거예요. 
속이려고 속인게 아니죠. 

여러분 세상에 정확한 지도는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지도는 낡은 지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도를 만들어서 인쇄해 놓으면, 
이미 그 사이에 새로운 길이 생기고, 상황이 바뀌어요. 

 

 

주2) 중략된 부분

 

지난 주일에 우리 교회 청년부 목사님이 사임하고 떠나셨는데 
가면서 저에게 말했어요. '목사님,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가급적이면 청년들이 자율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창조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청년들은 어른들과 다른 방식으로 예배하고 싶죠. 
음악도 그렇고, 행사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중요한만큼, 영적인 일치는 더 중요합니다. 
자유롭게 사역하려면, 중요한 부분에서 '함께 가는' 것이 확보되어야 됩니다. 
그 이야기를 지금 사도행전에서 하는 거예요. 

초대교회 중에서 아주 자유로운 교회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였죠. 예배 때 은사도 많이 나타나고요. 그런데 골치 아픈 교회였습니다. 
그 자유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말씀 함께 읽습니다. 
고전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무질서한 교회였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교회였습니다. 
무질서의 반대가 화평, 샬롬이에요. 
여러분 샬롬이 있으려면, 그 안에 질서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