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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가 아닙니다

LNCK 2024. 4. 27. 22:10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행복한 가정

 

https://blog.naver.com/karamos/220155394235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가 아닙니다      마12:46-50     2011.05.08.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취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아래 구절을 읽어 보십시오.

 

마12:48~50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제가 70년 가까이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 생각해보면

'참으로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겪으면서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또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저는 어렸을 때 제가 이렇게 좋은 차를 타고 다닐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0리, 20리를 걸어 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큰 차를 타고 다닐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1년에 한번 추석 때, 아버지가 장에 가서 사 오시는 검정고무신을 신고 한해을 지냈는데

요즘에는 좋은 구두를 신고 다닙니다.

 

또한 사글세, 전세, 반지하에서 살던 시절에,

오늘날처럼 이렇게 넓고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하얀 쌀밥을 마음껏 먹고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한 평생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제가 겪은 변화는 이것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것도 있지만

특별히 식구들과 함께 사는 가정도 여러 번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농경시대의 대가족 속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뿐만 아니라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도 함께 살았고 결혼한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와

그 사이에서 난 사촌들과도 함께 살았습니다.

 

출가하지 않은 고모도 같이 살았고, 형제까지 합쳐 30-40명이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아버지도 결혼하면 바로 옆 동네로 분가해서

수시로 집안에 드나들어 끼니때마다 가마솥에다 밥을 해서

30-40명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어려서 그렇게 자라서 저는 지금도 혼자 밥을 먹지 못합니다.

김장을 해도 수백 포기를 합니다. 저는 그런 대가족 사회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이런 대가족제도 하에서 철저하게 어른 중심, 남성 중심, 장손 중심의 질서 속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습니다. 저는 그래도 장남이어서 많은 특혜가 있었지만

맛있는 것을 보면 할아버지가 드신 후에 어른 순서로 먹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어른 중심’이더니, 이제는 어른이 되어 대접을 받으려나 했더니

이제는 ‘어린이 중심’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산업사회가 되면서 대가족주의가 무너지고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주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핵가족주의가 되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녀들은 도시로 떠나고 연세가 드신 부모님들은 대부분 농촌을 떠나지 못하고

아직도 농사일을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를 하던 전통이 갑자기 무너져서

당황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자식에게 의지할 수 없고 혼자 살게 되면서

많은 정신적,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었습니다.

 

당연히 대가족 질서가 무너지고,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새로운 가정 질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자녀중심의 가정 질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자녀들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두 명의 자녀를 낳으면서

자녀중심의 가정 질서로 가속화되었고,

 

그동안은 남성중심의 가정질서

지금은 아내 중심, 어머니 중심의 가정질서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질서의 변화로 가정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남편,

아버지의 심리적 충격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이것은 또한 사회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대가족제도의 붕괴로 말미암아 졸지에 홀로 외롭게 살아가게 된 노인들의 문제

그리고 아내와 자녀중심의 핵가족 제도로 가정에서 아웃 사이더가 된 아버지들의 문제

심각한 가정의 문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이라고 말하는 가정은, 어떤 모습의 가정입니까?

급변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은 아직도 대가족의 가정을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핵가족의 가정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는 산업화시대에서 탈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로 변화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2011년 설교

 

(*요즘은 ‘4차산업혁명’ 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4차산업혁명이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돼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차세대 산업혁명)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가정 질서 또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가족제도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불가피하게 변화되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변화는 우리 가족 제도의 변화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주제

 

이와 같은 가족제도의 변화는 가족의 구성원의 관계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농경시대의 대가족제도 하에서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핵가족시대에 똑같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가족제도의 관계로, 핵가족제도 안에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족제도가 바뀌었으니, 우리의 관계도 생각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대가족제도 안에서는 어른 중심, 남성 중심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 같은 질서가 핵가족시대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족의 제도가 바뀌었는데, 우리의 생각은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식구들과 같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옛날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옛날 우리가 겪었던 대가족 제도의 남자, 어른의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 같은 할아버지는 옛날 할아버지가 받았던 대접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할아버지가 ‘아이들이 왜 어른 대접을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옛날 시어머니 노릇을 지금도 하려고 하면 절대로 대접받지 못합니다.

그런 생각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아내들에게 군림하던 남편처럼

‘물 떠와라, 반찬이 싱겁다, 어디를 다니느냐?’ 하는 말을 했다가는

가정에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변화된 세상 속에서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마음을 바꾸는 지혜가, 우리들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대가족주의의 가족 질서 속에서 자라 핵가족시대에 적응하기에 힘들었지만

지금 포스트 산업사회를 맞이하면서, 또 다른 모습의 가정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가족 제도를 잘 살펴보고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식구들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준비해야

우리의 가정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발표된 우리 사회에 가정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지표들을 보면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앞으로 우리의 가정이 지난 날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을

짐작하게 하는 여러 가지 지표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OECD국가 중 최하위입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혼율도 세계 최고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누구라고 하면 다 아는, 팔십이 가까운 원로목사님의 사모님이

계속 이혼하자고 해서 목사님께서 곤혹을 치르고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제도, 아니 얼마 전에 핵가족제도도

얼마 안 가서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몇 년까지만 해도 1가구 구성원이 4.5명이었습니다.

한 가구의 수가 4~5명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서 2.76명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부가 살고, 아이가 한 명이 있는 가정도 있고, 없는 가정도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제도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국 가구의 평균 가구원수는

1970년 5.2명에서

1980년 4.5명,

1990년 3.7명,

2000년 3.1명,

2010년 2.7명,

2022년 2.2명으로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지표는 2011년 정부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소위 ‘나홀로 가구’가 4백3만 가구라고 합니다.

이것은 전체 가구 수에 23.3%에 해당되는 숫자로

우리나라 네 가구 중에 한 가구는 혼자 사는 집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30년 전에는 5%였고, 20년 전에는 9%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20년만에 14.3%가 증가한 것입니다.

*2022년 나홀로 가구는 750만 가구. 전체 가구의 34.5%

 

그리고 이와 같은 증가추세라면 앞으로 10년 후면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나홀로 가구가 50%에 육박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체 가구 수의 반이 혼자 사는 가구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나홀로 가구는 농촌에서는 더 말할 것 없이 노인들입니다.

자녀들은 다 도시로 가고 노인들이 혼자 사는 가구가 약 1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삼백만 가구는 대개 도시에 사는 30-40대의

이혼을 했거나 독신으로 사는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은 식구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입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가정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지금 식구들이 함께 모여 사는 장소라는 가정의 개념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같이 모여 사는 것이 가정인데, 홀로 사는 가정도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가정이라는 개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나홀로 살지는 않고 모여 살기는 하지만

외형적인 모습일뿐, 같이 살면서도 실제로는 각각 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같이 모여 살지만 실제로는 나홀로 가정인 것입니다.

 

같이 살기는 하지만 편의상 그렇게 하는 것뿐이고

전화도 따로, 텔레비전도 따로, 음식도 따로 먹습니다.

 

물론 잠도 따로 자고, 취미도 다르고, 돈도 따로 관리합니다.

생각도 다르고 이념도 다릅니다. 그러니까 한 집에 살기는 하지만 동거 개념일뿐

실제로는 나홀로 가정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개탄하고 세상이 말세라고 뒷짐 지고 바라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라는 개념이 바뀌었는데 계속해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고집할 수 있는가?,

부부의 관계를 고집할 수 있는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또한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가정의 기초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로서

이 ‘가족 문제’에 대한 신앙적인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본론

 

우리는 교회에서 가정의 회복에 대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부간에 사랑하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가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는 말들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회복’이란 말이, 옛날 대가족 제도로 돌아가자는 것입니까?,

아니면 핵가족제도로 돌아가자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강요해도 돌이킬 수 없는,

구호로만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저는 실제로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오히려 사람들에게 죄책감만을 주는 것은 아닌지,

사람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하고, 갈등하게 하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말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계속해서 시대의 흐름을 모르는 말을 주장한다면

사람들을 교회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어떤 사람도 시대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가정의 질서 안에 내가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자녀로서

가족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살아갈 것인가? *성경적 원리의 테두리 안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이혼한 사람이 결혼 주례를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 생전에 언젠가는 동성애자가 찾아와 결혼 주례를 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동성애자들이 교회에 등록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가정에 대해서 구체적인 직접적인 교훈의 말씀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물론 구약에는 아브라함의 가정, 이삭의 가정, 야곱의 가정 등 여러 가정이 나오지만

고대 중동 지방의 가정은 참고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 중 바울의 편지 에베소서 6장의 유명한 말씀도 있지만

오늘 본문 마태복음 12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중요한 말씀으로,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에도 기록된 말씀입니다.

 

저는 사실 이 말씀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이를 본 제자 중 한 사람이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마12:47

 

그랬더니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12:50

 

아무리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지만,

유교적 사상에서 살아온 우리들에게는, 쉽게 용납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세상 사람들이 조상들에게 제사도 지내지 않는 상놈이라고 했는데

 

어머니와 형제가 찾아왔는데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기독교를 더욱 배척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목사님들은 직접적으로 이 말씀으로 설교하지 못하고 돌려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정을 아주 우습게 여기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14:26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어머니와 자식들을 다 버리라’고 했습니다.

 

또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말에, 그냥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효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유교적 가정제도에 살아온 사람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2000년 후의 우리의 상황을

정확하게 내다보시고 꼭 맞는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교훈하는 바가 참으로 많은 말씀입니다.

가족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족은 누구입니까?

누가 여러분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까?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가족이 저 멀리 부산에서 있고 미국이나 호주나 외국에서 살기도 합니다.

 

가족은 늘 만나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슬플 때 눈물을 흘리고 내가 기쁠 때 같이 웃고

내가 아플 때 찾아와 위로해 주는 사람이 가족입니다.

 

제가 친손녀가 하나 있는데 이 아이를 태어나서 세 번 보았습니다.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보았고 백일 때 가보았고

엊그제 돌이라고 해서 갔는데 15분 있다가 나왔습니다.

 

할아버지가 되어 손녀 재롱을 보고 싶어서 한번 안아보려고 했더니

'앙' 하고 울어서 그냥 15분만에 나왔습니다.

 

물론 바쁘기도 했지만 있을 수가 없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나오면서 내 손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혈연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 손녀는 교회 안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아이들은 뱃속에서부터 제 목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어서

제가 오라 그러면 와서 안기고 재롱도 떱니다. 이 아이들이 제 손녀입니다.

그런데 엉뚱한 데 가서 내 손녀라고 안으려고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며느리를 얻은 지 한참 되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니 잘 볼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며느리들이 얼마나 많은데

‘며느리가 나를 안 찾아온다고, 내가 섭섭해 하고 살았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오라고 한들 올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여기에 많은 며느리가 있고 손자 손녀가 있습니다.

우리 집 사람이 아프다고 하니까, 우리 교회의 며느리들이 다 찾아왔습니다.

이게 식구입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별 게 아닙니다.

 

▲우리가 옛날 대가족이든, 핵가족이든, 가족 중심의 혈연을 버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라면 지켜야 하지만

거기에 매여서 우리 인생이 어려워져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의 형제들 식구들이, 아프다고 한들 한국에 나올 수 있습니까?

혹시 돌아가셨다고 하면 급히 비행기 표 구해서 입관할 때나 올 수 있을지..

마지막 얼굴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지막 뒷바라지를 해줄 사람이 누구입니까?

옛날에는 싫으나 좋으나 자식들이 다 간호하고 대소변 받아냈습니다.

 

요즘은 현실적으로 직장을 다니는데 그만두고 와서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간병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제가 죽을 때 대소변을 받아낼 사람 좋은 사람(간병인) 만나게 해주십시오’ 기도합니다.

그도 나의 가족인데,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기대하는 마음도 있고,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어버이날인데, 다른 사람들 자식은 다 오는데 너는 왜 안 오느냐

섭섭하고 속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가족제도가 변했습니다.

 

성경의 사도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아들이 두 명이 있었습니다.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 된 디모데와 디도가 바울의 아들이었습니다.

 

육신의 어머니는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믿음의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졌던 구레네 시몬의 어머니가

사도 바울의 믿음의 어머니였다고 로마서 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롬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우리는 믿음 안에서 믿음으로 맺어진 새로운 식구와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내 인생과 관계가 없는 멀리 있는 혈연이 아니라,

아프다고 하면 찾아가서 위로하고 기쁨을 함께 하는 믿음의 식구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예배가 끝난 뒤에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하십시오." 하면서 드리는 말씀이

이 분들이 여러분이 죽었을 때 문상 올 사람들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서로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다.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가족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 후에 이런 세상이 올 것을 미리 아시고

믿음으로 한 가정을 이루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직도 옛날의 혈연 중심의 가족관계에 매달려 내가 낳아야 내 피가 섞여야 내 자식이고

내 손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와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내 인생에 하나님께서 새로 주신 식구들입니다.

 

이런 식구들과 함께 더불어서 서로 사랑하며 돕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의 교제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고 풍부하게 하여 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자식들,

재롱을 떠는 것을 볼 수 없고 손녀라고 안아볼 수 없는 것 때문에

속상해 하지 말고 믿음의 식구 안에서 기쁨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쓸쓸하게 살아갈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교훈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에 새로운 가족의 관계로 여러분의 삶에 행복이 넘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