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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하나됨의 기쁨과 축복

LNCK 2024. 4. 30. 07:36

https://www.youtube.com/watch?v=9D4FDFee3kg

선교적 하나됨의 기쁨과 축복         요17:21~23                <로잔 운동>

누군가 제게 '로잔 운동에 참여하면서 어떤 변화, 혹은 유익을 얻었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이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첫째는, 한 지역교회의 목회자로 사역하지만 
전 세계 교회를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목회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어느 지역교회 혹은 기관.. 그러한 (자기 사역지) 에만 우리가 몰두하다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 이라는 우리의 사역 대상, 
우리가 어떤 지역, 어떤 목표로 부름을 받았는지 
궁극적으로 우리의 목회는, 전 세계적인 목회이어야 하고 
전 세계적인 교회의 흐름에 대해서, 교과서적인 교회사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는 세계 교회의 변화에 대해서 우리가 깨닫고, 

세계 교회의 상황에서 우리 한국교회, 또 나의 목회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시각, 
그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 중심'이어야 한다는데,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 중심이 도대체 뭐냐?' 라고 할 때 
개 교회를 뛰어넘어 전 세계 교회를 함께 협력화 해야 한다는 그러한 소명 의식을 갖는 것,

또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바라볼 때, 
교회 만이 아니라, 일터, 세상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성도들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러한 (로잔 같은) 운동에 참여하지 않고는 
우리가 목회 할수록 너무 좁아지는... 그런 것을 많이 봅니다. 

수십 년 우리의 목회 여정을 마무리할 때 
'과연 우리는 얼마나 더 하나님 나라의 시각을 가지고 목회했었는가?' 
또 '얼마나 목회를 시작할 때보다 시야가 더 넓어졌는가?'

그것은 세계선교의 비전이, 우리 마음 속에 얼마나 가득하게 되는가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한 교회가 전 세계를 다 책임져야 된다는 뜻은 아니죠. 
그래서 연합이 필요한 것이고, 또 함께 동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두 번째로 제 자신이 경험한 것은, 로잔운동의 여러 문서들, 
로잔언약부터 시작해서 마닐라 선언, 또 케이프타운 서약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문서들이 
우리가 지금 목회하고 있는 이 목회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흐름에 대한 
어느 정도는 중요한 가이드를 해주고 있다는 것을 제가 발견했습니다. 

저희 교회는 장로님들과 격주마다 운영위원회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케이프타운 서약을 한 두 챕터씩 계속 읽습니다. 

경건회로 제가 말씀을 전하지 않고, 대신에 케이프타운 서약을 읽은지
한 5년 됐습니다. 지난 번에 읽은 그 다음 챕터를 계속 읽어나가는 거죠.
제가 운영위원회에 참석을 못 해도, 운영위원들 끼리 함께 읽고, 
그러면서 깨달은 점은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 신앙 고백은 
'더 이상의 새로운 신앙고백이 필요할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각 교단에서 작성한, 또 지금까지 역사 속에 나온 그 신앙적인 교리 고백은 
너무나 정교하고 섬세하게... 교리적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저는 (신앙고백서가) 거의 완성의 단계가 아닌가? ..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물론 각 교단적으로 일부 대립되는 부분은 있지만 
그것을 우리가 서로 인정 한다면, 
더 이상 신앙고백이 분명하지 않아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 시대 속에서 일어나는 그런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올바르게 복음적으로 응답할 훈련이 
교회 지도자들이 안 돼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목회자들 부터! 

그래서 주일 날 모여서 우리가 말씀을 듣고 예배 드리지만 
사회를 보는 시각은, 전부 유튜브를 따라가는 거예요. 

자신이 즐겨보는 유튜브, 그 유튜버의 시각으로 
어떤 사회 현상과..  정치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들을 
유튜버들이 전해주는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사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괴리 현상, 신앙고백 적으로는 너무나 복음적인데  
사회 현상에 대해서 서로 대화를 하면,                
양극화가 되고, 서로 대립이 되고, 도저히 하나 될 수 없는 그러한 일들이 왜 생기는가? 

그것은 복음적인 시각으로 이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응답 해온 이런 로잔 문서와 같은 그런 운동에 
한국 교회가 너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등한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닌가? 

▲존 스토트 목사는 이미 수십 년 전에 
현대 사회 이슈에 대한 그런 복음적인 응답을 하려고 
런던 인스티튜트 에서 그런 세미나를 하고, 책으로도 펴냈고, 
그런 시도들을 끊임없이 해와서, 
결국 그것이 로잔 운동의 그런 신학과 운동으로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과연 우리가 처한 이 한반도와 한국사회, 
또 이런 동북아 질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우리가 복음적으로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가? 

그래서 교회와 세상이 점점 갭이 심해지는 현상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어떤 주제를 강의한 것이 아니라, 
케이프타운 서약을 챕터 바이 챕터로 그냥 당회로 모일 때마다 
쭉 읽어나가는 가운데, 장모님들의 생각이 하나가 되고 
그 문장을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장로님들이 케이프타운 서약을 
본인 돈으로 사서 주변 분들에게 나누어 주는... 너무 좋은 유익을 얻었고, 

어떤 때는 첨예한 사회 이슈에 대해서 우리가 결정을 내려야 될 때 
그 결정에 대한 적합한 가이드라인이 되는 그런 경도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로잔 운동을 어떤 이벤트나, 
또 저는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 처럼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런 것으로 
이제 영향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지도자들의 의식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 중심적이 될 건가?' 
또 '세계 기독교의 시각에서 우리 한국 교회를 볼 건가? 또 나의 목회를 볼 건가?' 

또 '교회와 세상이 점점 괴리되어 가는... 
그래서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는 성경과 신앙고백으로 신앙생활 하면서 
사회 생활은 세상에 떠도는 유튜버들의 소식을 듣고 판단하는... 
그런 걸 어떻게 우리가 통합할 수 있는가?' 

이것을 극복하게 하는데, 로잔운동이 저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운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5년 동안 케이프타운 서약으로 우리 장로님들과 함께 계속 나눴는데 
'이 4차로잔대회를 우리가 섬겨야 하는 그러한 부르심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제안 했을때 
모든 장로님들이 한 분도 반대하지 않고 기쁨으로 
'어떠한 헌신이 요구되더라도 우리가 이거는 해야 되겠다' 
그러한 부르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대체사장의 기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것은 미래의 예수를 예수님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요, 또 선교의 기도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이 기도를 하고 계신다고 믿고 
또 우리도 이 기도에 참여하도록 초청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복음이 전해져서 믿게 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됨을 통해서 믿게 된다'는 말씀을, 이 기도 속에 포함시키셨습니다. 

요17장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무엇 무엇과 같이'라는 원리를 설명하는데 
4가지 하나됨이 나타납니다. 

1) 첫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됨 입니다. 

요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여기에 보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기도하십니다.

여기 본문에는 성령님은 나오지 않지만 
성삼위 일체 하나님의 하나됨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고, 우리에게 구원이 임했습니다. 
이 하나됨이 없었다면, 창조도 없었고, 구원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됨이, 바로 선교의 출발인 것입니다. 

2) 두 번째 하나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의 하나됨 입니다.

요17:22~23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 두 가지 본성이 완벽하게 하나되는 것,
성육신 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분의 신성과 인성이 완전히 하나 되었기에 

우리가 그 분을 믿음으로써 그 분과 하나 될 수 있는 
그러한 문을 여신 것이죠. 

이 하나됨은 세 번째 하나 됨으로 연결됩니다. 

3)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에게 속한 이들의 하나됨 

머리 되신 그리스도, 그 분안에서 
우리 모두가 연합해서 그리스도와 하나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하나됨'입니다.  :22~23

예수님께서 여러 번 이렇게 기도 하셨습니다. 
'그들도 모두 하나가 되게 하시고,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세 번째 하나됨은,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서 우리 모두가 
그분과 연합하여 하나 되는 하나됨 입니다. 

4) 네 번째 하나됨이,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마지막으로 기도 하신 
'예수님을 머리로 한 성도들, 즉 그리스도 인들의 <교회의 하나됨> 입니다. 

어떤 조직적인 하나됨도 아니고, 획일적인 하나됨도 아닙니다. 
교파적인 하나됨도 아닙니다. 교회의 하나됨입니다.

첫 번째 두 번째 하나됨은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된 공동체 안으로 우리를 부르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성도들이 교회 안으로 우리가 들어올 때 
그 성도들과 하나 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면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이 연합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 됨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저는 로잔운동에 참여하면서, 이 하나됨의 기쁨, 축복 
그리고 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교단과 교파의 문제를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교단 교파가 얼마나 소중 합니까 
우리가 속한 각 교단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그런 교리적 순수성을 우리가 지키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 또 연합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 교단이 선교적으로 하나 되지 못할 때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는 일이라는 그 목표로 하나 되지 못한다면 

로잔 운동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세계 복음화를 위한 예수님의 이 기도가 이루어지는 하나됨에 
우리가 참여 한다는 것은 
이 시대에 우리의 목회에 얼마나 큰 축복인가! 

저는 제가 지금의 현재에 한국로잔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고 
이런 대회를 또 섬기지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 

저는 아무 타이틀이 없어도, 로잔운동의 한 어느 한 구석에서 
계속해서 참여하고, 또한 나누고, 배우고, 또 동참하는 그런 일이 
나의 목회 여정에서,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직책이 있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직책이 없을 때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순수합니까? 

또 그러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십니까? 

저는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에게, 그런 소망과 감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조직을 만들어서 하려고 하지 않았어도 

여기 계신 한 분 한 분이, (로잔 같은) 세계복음화를 위한 이 선교적 연합 운동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함께 자리해 주시고 
또 여러 모양으로 함께 해주신 것이, 한국 교회의 희망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