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적인 변화 가능한가? | 롬 12:2 | 24.5.17 - YouTube
◈계속적인 변화 가능한가? 롬12:2, 엡4:22, 눅22:39
◑변화, 가능합니다
자 오늘은 로마서 12:2절의 말씀, 아주 유명한 구절이에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굉장히 중요한 구절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여정에서 늘 붙잡아야 될,
구원받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항상 붙들어야 될 그런 말씀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늘 우리에게 질문을 하나 해야 됩니다.
그게 뭐냐면 '사람이 과연 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진정 변화될 수 있는가?'
'어쩌면 늘 같은 모습은 아닌가?' 이렇게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어떤 분은 그냥 껍데기만 변한 거에요.
여러분 우리 신앙의 아주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가 "변화"이에요.
다르게 표현하면 "성숙"이죠. 변화와 성숙!
근데 어떻게 보면, 변화하고 성숙해 가는게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요.
나를 봐도 그렇고, 내 주변을 봐도 그렇고...
늘 그저 실망하고 낙심할 때가 많거든요.
예수를 그렇게 오래 믿어 왔는데, 어느 날 보면, 그냥 그 자리에...
옛날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 같은...
아니 옛날보다 더 못할 못해진 것은 아닌가...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예수를 처음 믿을 때보다 지금 어떻습니까?
뭐가 달라졌어요? 변했다면 뭐가 달라진 것입니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셔야 돼요.
교회를 안 다니다가 이제 다니게 된 것,
그런 거는 변화라고 얘기할 수 없어요. 겉모양만 변한 것이니까요.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성장, 또 영적인 성숙... 이것은 필수예요.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로 잊지 않고 자라가야 되죠.
어린아이가 부모의 도움을 받고, 공급을 받고 자라가는 것도 좋은 일이죠.
근데 여러분 어린아이로만 계속 있다면,
어른이 되어서 누릴 수 있는 그 세계를 모르는 거죠. 여러분, 그건 불행한 것이죠.
자 여러분 우리가 피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의 신앙이 깊이가 없이, 그저 단순하게 그냥 교회를 다니고
뭐 그런 걸로 끝나버릴 수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말하는 이 변화는 롬12:2절
근본적인 변화 transformation 를 말하는 거예요.
<성도는 그 변화가 가능한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변화를 확신해야 돼요.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돼요.
▲어떤 목사님은 목회를 하는데, 너무 교인들이 안 변하는 거예요.
제자훈련도 시키고, 뭐 말씀도 열심히 준비해서 자기는 한다고 하는데
교인들은 까딱도 하지 않고, 안 변하는 거예요. 그래서 실망을 한 거예요.
십년 이상 목회를 했는데, 교회는 더 어려워지고
더 쪼그라들고, 교인들은 더 강박해지고, 더 사나워지고, 서로 싸우고...
목회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날 저보고 묻더라고요. "목사님, 사람은 절대 안 변하는 거 맞죠?"
제 동의를 구하더라고요.
그분은 내가 보니까 '사람이 안 변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계시더라고요.
그 믿음이 굳세요. 절대 안 변할 거라는 거죠.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은 분명히 변화가 일어나요. 이 변화는 어떤 것입니까?
'너희는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성경에 변화를 약속했잖아요...
▲바울은 먼저 뭘 '너희는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거예요.
이 세대에 동화되지 말라는 겁니다.
이 세대의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이 세대를 닮지 말라는 거죠.
이 세대에 내가 동화되어 버리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는 거죠.
우리가 똑같아지니까!
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아지니까.
이 세상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는 거예요.
'변화를 받아라'는 말은,
우리가 이 세대에 동화되지 않고, 우리가 변화되어져야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죠.
내가 예수를 믿고 변화되어져야, 내 가족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죠.
내가 변화되어야, 이 세상 속에 들어가서 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죠.
만약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동화되어 버리는 거죠.
이 세상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럼 우리는 있어야 될 존재의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불러내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우리를 불러 내신 목적이 뭐예요?
변화된 우리를 통해서, 세상 속에 오염되지 않고, 속화되지 않고,
거기에 변질되지 않고, 동화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된다는 거죠.
이게 오늘 우리와, 오늘 한국 교회,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맞이한 큰 과제죠.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었는데, 10년 20년 지났는데도,
남편이 보면서 '너는 안 변했어, 너는 나하고 다른 게 없어!'
이러면 나는 안 변한 거예요.
여러분, 내가 직장이 갔는데 동료가 '너나 나나 똑같다' 이러면 나는 안 변한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냐면
우리가 변화되어져야 되는 겁니다.
나의 그 변화를 통해서, 내 주위 사람들이
오늘날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당신의 삶은 우리와 다르다. 왜 다르지?'
'아무리 봐도 당신이 사는 걸 보니까 우리하고 다르다. 차원이 높아!
그 이유가 뭐야? 알고 싶어' 이런 질문을 받아야 돼요.
근데 요즘 이런 질문이 없어진 거예요.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질문하지 않아요.
'너 교회 다닌다면서.. 근데 뭐가 나하고 달라?'
'너는 주일날 교회 가는 거하고, 나는 교회 안 가는 거 하고
그거 밖에 디프런트 한게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의 독특성이 도대체 뭐니?'
'너는 교회 1년 다니더니, 진짜 많이 변했다.
사는 게 나하고는 좀 다르네? 궁금해지네?
그 이유가 뭐냐, 그 비밀을 알고 싶다!'
이 얘기를 안 들으면, 난 안 변한 거예요.
자 오늘 철야기도회인데, 설교 주제가 좀 무겁습니다. 그죠.
이게 우리가 지금 고민을 안고 기도를 해야 되는 거예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 본받지 말라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변화를 받지 않으면, 이 세대를 저절로 본받게 되는 거예요.
이 세상을 카피하는 거죠.
우리가 카피하고 바라봐야 될 것은 그리스도인데,
이 세상을 닮아 버리는 거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그랬어요.
그래서 오늘 '변화'를 얘기하는데, 무슨 변화죠?
마음의 변화를 얘기하는 겁니다.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된다는 거죠.
여러분 마음이 달라져야 돼요. 속사람이 변화되어야 됩니다. 껍데기가 아니에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닮는다고 할 때, 그리스도를 닮는다는게 뭘까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져야 된다는 거죠.
우리의 마음이 죄의 지배 아래 있었거든요.
이전에는 우리가, 죄의 지배 아래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있었고,
그 죄의 지배 아래서 가졌던 그 마음에 어떤 습관들이 있어요.
사실은 우리의 마음 안에 세팅되어 있는 어떤 마음의 습관이 문제예요.
겉으로 드러난 습관, 행동보다 더 무서운게
마음에서 행동이 나오는 거기 때문에
마음에 만들어져 있는 어떤 습관들...
근데 '변화'는 뭘 말하냐면
그 마음의 습관이 바뀌는 거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마음이 변해야 돼요.
◑변화되려면.. 습관이 고쳐져야 하고, 새습관이 길러져야!
자 그것을 에베소서 4:22절에는 이렇게 말씀해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옛 사람,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
구습은 옛날의 습관이죠.
그게 뭐예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죠.
죄의 유혹에 쉽게 굴복하는... 그것이 내 삶에, 내 몸과 마음에 익숙해져 있는 거죠.
근데 이 '구습, 습관'이라는 말은, 오늘 설교의 중요한 키워드 입니다.
이 습관은 하루 아침 만들어진게 아니에요.
오랫동안 계속 조금씩 조금씩 쌓여져 가면서, 완전히 익숙해진 거죠.
이걸 쉽게 생각하면 안 돼요. 여러분 우리가 쉽게 하나의 행동을 하는데
그 행동이 작은 행동이 아니고, 그 행동은 나의 오래된 묵은 습관에서 나온 거예요.
오랫동안 축적해 온 습관이라는 것이죠. 거대한 덩어리가 있는 거죠.
그 거대한 덩어리(습관, 구습)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거죠.
그거는 쉽게 다룰 수가 없어요.
마음만 먹으면 해결될 수 있는게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어떤 때는 눈물 콧물 흘렸는데
변화되지 못하고, 옛날 상대로 그대로 돌아가는 것은 뭐냐면.. 구습이라는 거죠.
그래서 늘 이전에 방식으로, 용수철처럼 되돌아가 버리는 거죠.
그러다가 이제 어느 날 보면 '아이~ 사람이 안 변하는가 봐. 이대로 살다 가는 거지 뭐...
인생도 짧은데 대충 살지 뭐...' 스스로 체념합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사람은,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삶을 살도록, 성경은 요구하고 있어요.
명령하고 있어요. 물론 이것은 하루 아침에 바뀌어지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 변화는 빨리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아까 설교 서두의 그 목사님도, 너무 빠르게 생각하면 안 돼요. 길게 생각해야 돼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변화는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져야 돼요.
복음이 들어가면, 말씀이 들어가면, 성령의 역사하시면... 바뀔 수 있는 거잖아요.
새로운 습관을 가지게 될 때, 그 새로운 습관이 형성되어
성도는 제2의 본성을 가지게 되는 거죠.
오리지널한 본성, 죄의 지배를 받았던 그 본성 따라 살아가던 삶이
이제 성령 안에서 새로운 습관이 만들어져서
제2의 본성이 만들어지는 거죠.
처음에는 변화가 어렵지만,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하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전의 습관과 이전의 삶의 모습들이
조금씩 이제는 어색해지는 거죠.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늘 여기 에베소서에서 '옛 사람을 (옷처럼) 벗어 버리고' 그러잖아요.
옛날에 그 옷을 입었던 때는 굉장히 편안했어요.
그런데 이제 점점 변화가 되다 보니까, 그 옷은 더 이상 나에게 안 맞는 거예요.
어색한 거예요. 왜냐면 새로운 습관이 들어온 거죠.
예를 들면, 이전에는 우리가 높아지고자만 했어요.
늘 높아지려고 하고, 어디를 가도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 경쟁하고 싸우고...
여러분 세상 문화가 그런 거잖아요.
우리 안에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이기려고 하는 마음,
막 경쟁을 하고, 막 그 사람을 밟고서라도 내가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 있는...
그래서 언제나 긴장감이 돌고, 언제나 혈압이 오르고...
여러분 세상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얼마나 사람들의 자존심 대결이 심각합니까.
뭐 별거 아닌 거 가지고 키재기 하고, 경쟁하고, 다투고, 허영심이 일어나고...
이게 여러분,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게 아니라, 낮게 여기는 거죠.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 이런 것들이 우리를 굉장히 피곤하게 하는 거죠.
그러다가 내 마음에 안 들면 좌절감에 빠지고, 우울해지고...
자기 원하는 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고...
여러분 이런 배경에 뭐가 있어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그런 옛 습관, 죄의 지배를 받는 구습이 자리잡고 있는 거죠.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내 안에 굳어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는 죄 아래 살면서 형성된 습관들이 많아요.
이 잘못된 습관들이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이 습관을 고쳐나는 길이에요.
구습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이 과정,
근데 그 안에 중심에는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마음은 뭐예요? 마음은 우리의 삶의 중심부를 말하는 거죠.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결국은 우리는 옛 삶으로, 옛 습관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습관이 참 중요해요.
▲식습관도 그렇잖아요. 나쁜 것인데도 끊지를 못하는게... 습관이 돼 있으면 그래요.
이 세상은 조작된 맛이 많거든요. 굉장히 케미칼한 맛이죠.
이 세상에서 만들어내는,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것은
굉장히 우리의 입맛을 그냥 유혹하는 거잖아요.
구미가 당기게 하고 자극을 주면서
'한 번만 탁 먹으면 그냥 톡 쏘면서 단짠단짠 하는 맛을 느끼게 하죠.
그래서 한번 먹으면, 그냥 계속 당기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위 말하면 '습득된 입맛'이에요. 그게 길들여진 맛이 되는 거예요.
이제 그걸 포기 못하는 거예요. 그것을 추구하게 만드는 거죠. 습관이 되는 거죠.
그러면 어느 시점이 되면, 그게 자꾸 당기는 거죠.
오늘날의 문화는 뭐예요? 맛있는 게 뭐냐, 맛있는게 어디 있느냐?
그걸 찾아다니다 보면, 더 맛있는 것, 더 맛집을 찾아다니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계속 자극, 자극을 원하는 겁니다.
결국 어때요? 몸을 망쳐버리고 말죠.
단순히 이거는 먹는 문제가 아니에요. 먹고자 하는 욕구를 다스리지 않으면,
이런 잘못된 식습관도 나를 끌고 가고, 결국은 내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 입맛도 길들여야 돼요.
여러분 그것도 습관이거든요. 달달한 것을 못 참는 그거.. 습관이에요.
근데 여러분 우리가 화학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들을 좋아해야 됩니다.
여러분 물 맛이 얼마나 맛있어요? 근데 물에 자꾸 뭣을 타니까
자극적이 되니까 나중에 물을 마셔도, 맛이 없어져 버리는 거죠.
근데 물이 최고죠. 사실은 물보다 더 좋은 건 없잖아요.
근데 우리는 다른 것에 길들여져 있는 거죠. 이게 습관이라는 거죠.
▲언어도 습관이잖아요. 입에 익숙해져 있는 거죠.
습관화되어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계속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비판적인 말, 부정적인 말.. 그것을 계속하면
그 언어가 내 삶을 지배해 버리는 거죠.
언어도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내가 사용하는 말이 내 인생이에요.
그 말에 내가 지배를 받는 거죠.
처음에는 내가 말을 하지만, 차츰 그 말이 나를 지배하고, 나를 구속해 버린다는 거죠.
습관이 무서운 거예요. 여러분,
재능이 아무리 많아도, 잘못된 습관이 있으면,
그 재능을 얼마든지 망가뜨릴 수 있어요.
신앙도 습관입니다. 좋은 신앙의 습관을 쌓아가는 거죠.
신앙생활 하고 있으면, 구습이 우리를 사로잡아요.
그래서 우리는 낡은 옷을 벗어야 되죠. 그렇지 않으면
이 구습이 내 삶의 굴레가 되니까요.
그래서 옛습관은 일종의 감옥입니다.
내가 나중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가 없는 거잖아요.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바뀌기는 너무 어려운 거예요. 아는데 안 되는 거죠.
아는 거는 계속 쌓여져 가는데, 순종과는 거리가 먼 겁니다.
결국은 우리의 삶에 실력이 되는 것은, 그 행동, 그 순종의 반복
그게 축적이 될 때, 그게 능력이 되는 거잖아요. 작은 순종이 쌓여가는 거잖아요.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 부족해요. 여러분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되는 건데
그 행동으로 한 번에 옮김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그 행동을 옮기면서
그게 내 삶에 익숙해질 때까지, 즉 습관이 될 때까지... 계속 행해야 됩니다.
습관의 힘이 무서운 겁니다. 좋은 습관이 쌓여 있으면 복된 삶을 살 수 있어요.
여러분 성숙한 신자들을 보세요. 좋은 습관들이 몸에 익어져 있어요.
습관이 되어 있어요.
▲근데 여러분, 좋은 습관이 어떻게 만들어지죠? 좋은 경험의 반복입니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신앙의 좋은 경험이 축적되어야 된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제일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어린 시절에 좋은 습관의 경험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녀들이 그 가정에서
좋은 추억, 좋은 기억, 좋은 경험, 좋은 습관이 축적되게 하면
그게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어요. 여러분 아무리 뭐 다른 걸 다 해줘도
아주 좋지 않은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으면,
그게 자녀의 인생을 부정적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좋은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험이 우리의 습관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거죠.
여러분 교회를 딱 떠올리면, 내 안에 막 굉장히 좋은 그 추억들, 경험들이 막 떠오르는 사람은
복된 거예요.
근데 옛날에 다녔던 교회, 막 싸우고 난리가 나고... 그런 추억들만 있으면
그게 내 내면 속에 내장되어 있다가, 그게 부정적으로 내 인생을 몰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와 관련해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관점에서 해석해 버려요. 이게 불행한 거죠.
▲여러분 오늘 철야기도 같은 이런 곳에 참여하는 것은, 신앙에 너무도 좋은 경험이죠.
아마 중고등부 학생들은 지금은 모를 거에요.
나중에 이 시간이 엄청나게 너무너무 좋은 경험이 되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지금 철야기도회만 참여하는 게 아닙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공동체를 경험하고 있는 거죠.
혼자 기도하는게 아니라, 함께 기도하고 있는...
이 철야하는 분위기를 보세요. 얼마나 밝고 축제적인 분위기인지요!
여기 뭐 장례식 분위기가 아니잖아요. 그죠. 얼마나 축제적인 분위기에요?
그리고 모든 세대가 다 참석하잖아요.
모든 세대가 환대 받고 있는 분위기...
베이비들도 막 춤을 추면, 전부가 함께 웃는... 이게 뭐예요?
우리가 다 한 공동체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 의식을 느끼잖아요.
얼마나 놀라운 거예요?
이거 다른 분들에게 얘기하니까 "그게 사실이에요? 진짜예요?" 뭐 이렇게 되묻더라고요.
'그런 일들이 있느냐?' 그러더라고요.
여러분 이런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한 방향으로 집중되는 거잖아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몰입되는 경험,
이런 철야기도회는 우리의 영적 세계에서 좋은 경험이 담겨지는 시간이에요.
이런 반복들이 우리의 신앙의 틀, 그리고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는 거죠.
▲제임스 스미스 박사님이 쓴 <습관이 영성이다> 라는 책이 있어요.
굉장히 중요한 주제예요. 습관이 영성이라는 거예요.
근데 이 책의 원작은 영어로 You Are What You Love 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라는 것이 당신 자신이라'는 거죠.
내가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느냐, 무엇을 갈망하고 있느냐, 무엇을 원하고 있느냐?
그게 나의 정체성이라는 거죠.
그리고 습관도.. 내가 원하고,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을 좇아가다 보면
그게 자연스레 내 삶의 습관이 된다는 거죠.
'내가 원하고 있는 그것이 곧 나 자신이다'
우리의 삶이 갈망하는 것,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게 매우 중요하다는 거죠.
우리 모두에게는 갈망이 있어요. 그리고 그 갈망은 강렬한 것이죠.
여러분 갈망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 안에 있는 거거든요.
갈망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그것을 성취하는 법은 없어요.
'내가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가?'
내가 갈망하고 사랑한 게 뭐냐는 거죠.
그 갈망하고 사랑한 것에, 내가 사로잡히게 되어 있어요.
그것을 좇게 되어 있고, 거기에 내 에너지와 내 삶을, 열정을 다하게 된다는 말이죠.
어떤 사람은 돈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나는 돈을 벌어야 돼요. 돈을 벌어야 돼요. 돈 돈 돈...'
그냥 그 마음 깊은 곳에 돈이 가득 들어있는 거예요.
철야기도회에 나왔어도 그냥 '돈 돈 돈'하면서 기도합니다.
돈에 대한 환상이 자기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는 거죠.
그러면 어때요? 자기 행동과 마음이 그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어요.
겉으로는 하나님을 부르는데, 사실은 하나님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도구요, 돈이 최종 목적이에요.
▲여러분 기도하는 습관, 예배하는 습관...
여러분 이게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데,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는, 우리의 삶의 습관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거잖아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나는 무엇을 갈망하는가?'를 가장 잘 표현하는 곳이 예배의 자리입니다.
'내가 세상을 섬기지 않고, 돈을 우상으로 삼지 않고,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은 우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 당신을 내가 예배합니다. 당신을 내 삶의 가장 첫 자리 모셔드립니다.'
이게 예배 속에서 나타나는 거죠.
그런 예배를 통하여, 내 삶의 가장 중심부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거죠.
이게 반복되면 어떻게 돼요? 그것이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끊임없이 우리는 예배를 드리잖아요.
그래서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본성이 결정돼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는 프라이어리티 중에 priority 예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게 예배라는 거예요. 왜 예배가 중요해요?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마음과, 모든 것들의 중심이
하나님이 되게 하는 거거예요.
우리의 본성대로 그대로 두면, 우리는 세상을 좇을 수밖에 없고
자기의 세상 욕망을 좇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욕망하는 것들을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로 돌려놓는 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에 실패하면 안 돼요.
그래서 예배 시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천성, 새로운 습관이 생겨야 되는 거죠.
전에는 죄의 지배를 받아서, 그 아래서 살던 우리가
선을 행하려고 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새로운 어떤 성향, 새로운 마음, 새로운 습관.... 이런 것들이 생겨야 됩니다.
그래서 갈5:16절에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행하는게 뭘까요? 육신의 욕심에 저항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 안에서 만들어진 습관'이 있어야 돼요.
복된 삶의 그 좋은 습관, 거룩한 습관들이
우리 안에 잡혀져야 됩니다.
그래서 변화된 삶을 살려고 하면, 가장 먼저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의 롤모델은 그리스도예요.
그래서 우리의 신앙의 핵심 중에 하나는 뭐냐면, 그분을 본받아 가는 거죠.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고전11:1절에 보니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려고 했어요.
자 그러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무엇을 본받고자 했는가요?
뭐 그의 서신서에서 굉장히 많이 나오지만, 빌립보서서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해요.
빌2:3~5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 뒤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겸손의 실체를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신 거예요.
어떤 마음이죠? 여러분, 겸손한 마음이에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거,
여러분 남을 낫게 여기지 않으면 어때요?
그게 다툼과 허영의 삶이잖아요?
왜 사람들과 다툼이 자꾸 일어나죠?
우리 안에 그런 허영이 있는 거죠.
여러분 주님의 마음은, 늘 낮은 곳을 향하신 거죠.
주님의 삶은 온전히 낮은 자로 오셨어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것은, 다툼과 허영으로 하지 말라는 거죠.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예수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관계가 왜 불편해져요? 왜 관계가 자꾸 뒤틀려요?
이 예수의 마음을 가져야 돼요. 낮아지는 마음이에요.
나보다 남을 낮게 여기는 마음!
여러분 언제나 주변의 사람들을 나보다 낫게 여기려고 하는 거, 이게 쉽지 않아요.
나이가 적어도 내가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아요.
우리는 뭔가 조금만 나한테 남보다 나은 게 있으면
막 그냥 그걸 얼마나 드러내려고 그러잖아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새로운 습관이,
내 안에 새로운 천성이 돼야 된다는 거죠.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이전에는 그렇게 살아왔다면,
이제는 낮아지고자 하는 마음, 섬기려고 하는 마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온전히 종의 모습이었잖아요.
▲저는 오늘 우리에게 그 주님이 가지셨던 그 마음이
우리에게 새 마음이 되어야 하고,
그 마음이 우리의 삶에 중심부에 자리잡아야 하고,
새로운 천성이 돼야 되고, 새로운 삶의 패턴과 성향과 습관이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더 부유케 하시고, 풍성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관계예요.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모든게 관계잖아요.
불행은 어디로부터 오는 거예요? 관계가 깨어지는데서부터 오잖아요.
왜 관계가 깨어지죠? 오늘 이 예수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빌립보서 2장의 말씀은 너무나 중요해요.
그래서 우리는 그 마음을, 내 마음에 품기 위해서
예수의 마음이 우리 안에 완전히 채워질 수 있도록
날마다 성령께 의지하고, 그 마음을 닮아가는 여정이
여러분들 안에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 주님께 우리가 본받아야 될 게 있어요.
주님은 좋은 습관을 가지고 계신 분이에요.
눅22:39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여러분, 예수님의 뚜렷한 습관이 뭐예요? 감람산에 가신 거예요. 습관을 따라가셨습니다.
기도하시러 가신 거죠.
'습관'이란 단어가 굉장히 중요해요.
예수님의 1층은 습관입니다.
막1:35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것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여러분 주님께는 경건의 삶이 습관화 되어 있어요.
주님은 그냥 되는대로 하신 분이 아니에요.
우발적으로 행동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냥 충동적으로 기도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어떤 분은 기도하는데... 충동적이에요. 그냥 변칙적이에요.
기도가 습관은 안 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이 있으면, 그제야 기도하는 거죠. 사고가 터지면 비로소 기도하는 거죠.
문제가 없으면 기도 안 하고....
그래서 어떤 교회 목사님은, 새벽기도 안 나오던 분이 나오면
'저 분은 무슨 일이 생겼나,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느냐'는 거예요.
평소에 오는게 아니고, 어쩌다가 나오는 거예요.
어떤 분이 막 갑자기 그냥 나와 가지고 막 '주여!' 하고 부르짖고 막 기도하면요.
'보통 큰 일이 아니구나' 하고 목사님은 염려하게 돼죠.
다니엘은 규칙을 가지고 있었어요. 영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뜻을 정한 거죠.
그러면 여러분 그게 자기 삶의 중심에 있는 겁니다.
그러면 혼란스럽지 않아요. 떠밀려 다니지 않아요.
그 규칙과 그 결정이, 자기 삶을 움직여 가요.
이게 여러분 하루 이틀 쌓이면 어마무시한 위력을 발휘해요.
규칙적으로 여러분 습관을 따라 1년, 5년, 10년, 20년, 30년, 이게 쌓이면
이게 메가톤적인 능력을 발휘합니다.
들쑥날쑥은 10년 해도 소용없어요.
기도를 위시해서, 삶의 규칙을 가지라는 거죠.
여러분 왜 일정한 원칙을 정해야 됩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습관을 가졌다는 것은, 원칙이 분명히 서 있는 거예요.
왜 우리의 삶의 방해꾼이 늘 나타나는 거죠?
바쁜 일은 늘 생기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살다 보면, 기도 못 하는 이유 100가지를 찾아낼 수 있어요.
오늘도 여러분, 철야를 안 나올 10가지 이유를 대라면, 댈 분들이 많아요.
-밤에는 위험하다.
-나는 건강을 위해서 잠을 챙겨야 된다.
-누가 밤에 다니다가 소매치기 당했다 하더라 .. 등등
그러면 철야기도회에 못 나오죠.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는 일정한 원칙을 정해야 돼요.
우리의 본성에 우리의 나태함이 있어요. 우리는 쉽게 게을러져요.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고 싶은 거죠.
여러분 늘 기도하는 마음이 생기는게 아닙니다.
영적인 것을 늘 추구하지 않아요.
잠시라도 방심하면 우리를 옛 삶으로 금방 돌아가요.
기도 안 하는 삶이, 우리의 옛 삶의 방식이에요.
내 생각과, 내 재주와, 내 능력과, 내 힘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삶의 성향,
누구에게도 자존심 굽히지 않고, 내 힘으로, 내 잘난 맛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것이
우리의 삶의 본성이라고요.
그래서 옛날에 그랬잖아요. 우리가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는 사람들 보고는.. '이상한 광신자'라 그러고,
철야기도 하는 사람을 보고는.. '저 모자라는 사람들!' 이랬거든요.
근데 여러분 우리는 기도 안 하는게 우리의 옛 삶의 본성이에요.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본성!
웬만하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막다른 골목에, 완전히 코너에 몰려서... 기도해요.
기도원에, 여러분 건강한 몸으로 올라가는 분은 별로 없어요.
요즘은 기도원에 아예 가지도 않지만,
옛날에 기도원 갈 때도 보면, 다 이렇게 지팡이 짚고, 깁스하고...
이렇게 문제가 있어서 다 올라갔어요.
여러분 영적 생활에 우리는 언제든지 방심이 찾아오거든요. 방심!
우리는 죄를 짓는 쪽으로 흐르기가 쉽습니다.
기도 안 하고 사는게 훨씬 더 쉬워요.
그러나 기도하는 삶에는 노력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스스로 원칙을 정해야 되는 거죠.
'습관을 좇아' 이 말은, 삶의 중요한 중심 원리가 되는 거예요.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기도한다'
기도가 왜 어려워요? 본성적이지 않다니까요. 본성적이지 않아요.
기도는 그래서 삶의 중요한 원칙을 정하고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아직 밝기도 전에, 새벽 오히려 미명에 기도하러 가신 거예요. 막1:35
기도시간을 정해 놓으신 거예요.
여러분 기도하는데, 영적인 어떤 루틴을 가져야 돼요.
즉 여러분들이 정확한 시간을 정하셔야 돼요.
되는 대로 하려 하면... 기도가 안 돼요.
오늘 현대사회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아요.
정확하게 기도시간을 정하고요.
내 신앙의 삶과 패턴에 대해서 원칙을 정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난 예배는 이렇게 드릴 거라는 거죠.
-난 기도는 이렇게 할 거라는 거죠. 등등
여러분 예수님의 일상에서 삶의 중요한 원칙을 가지고 사셨다는 거예요.
우리는 주님을 모방해야 돼요. 주님을 통해서 배워야 돼요. 본 받아야 돼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따라야 돼요.
그래서 지금 누가나 마가나.. 성경을 기록한 기자들이
예수님의 삶의 그 단상들을 스케치를 한 거잖아요.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이렇게 써 놓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예수님의 모습을 캐치한 거예요.
새벽에, 아주 이른 새벽에,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아직 어둑컴컴할 때, 한적한 광야로 나가서 기도하시거나
예루살렘으로 오실 때는, 감람산으로 가서 기도하신 거예요.
작성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