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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동역자들 (골22강)

LNCK 2024. 5. 23. 20:05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골로새서

 

내일교회 2022-10-09 주일예배 // 사도 바울의 同役者들 (youtube.com)

바울의 동역자들                      골4:10~14                    

◑개요

골4:7~9절까지는 골로새서 서신을 골로새 성도들에게 전달해 줄 
두 사람 두기고와 오네시모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소개, 추천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골4:10~14절까지는 사도 바울께서 로마의 감옥에 갇힌 상태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가택연금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일정 부분은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들과 같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바울과 함께하는 동역자 특별히 6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 에바브라, 누가, 데마

'이 6명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같이 문안한다' 라는 게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근데 이 6명의 동역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4:10~11절은 3명의 동역자인데, 이들은 유대인들입니다. 
3명의 유대인 동역자들이 문안 인사를 드리는 내용이 나오게 되고,  

4:12~14절까지는 3명의 동역자들인데, 이분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이방인 출신의 3명의 동역자들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문안을 하는데 

 

특별히 12~13절은 골로새 교회를 개척했고, 또 골로새교회를 섬겼던 에바브라, 
그런데  골로새교회에 거짓 교사들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생겨났을 때 
에바브라는 정말 멀리 떨어져 있는 그 로마까지 가서 
사도 바울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가 쓰여지게 되죠.  1:7~8    주1)

그러니까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골로새교회에 사역자이지만 
지금은 바울과 함께 있는 영적인 지도자 에바브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바울이 칭찬하고 격려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14절은, 나머지 두 명의 이방인 사역자들, 사랑받는 누가와 데마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바울은 혼자 있지 않고, 공동체 팀을 이루면서 지금  로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그룹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들을 나누면서 설교를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마가는.. 신약성경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나바의 생질(조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어 번역을 보면 이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바나바의 조카로 번역하기도 하고 
-어떤 영어 성경들은 커즌, 사촌으로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조카든지, 사촌이든지 바나바와 굉장히 밀접한 인적 관계에 있었던 거죠. 

그러면 소개할 때 첫 번째 나오는 인물이, 대부분의 겨우 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아리스다고가 첫번째로 소개되는데요.
행19:29절에 아리스다고가 처음 등장합니다.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을 통해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을 때, 

그때 핍박과 박해가 일어나게 되는데, 주로 누구를 통해서냐?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섬기는 일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바울과 세워진 교회를 향해 핍박하고 반대하게 됩니다. 

그 장면인데요, 행19: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이 자리에 사도 바울은 계시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우상을 섬겼던 사람들이, 대신에 두 명을 붙잡은 거죠. 가이오 와 아리스다고

아리스다고, 그는 '바울과 같이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그 에베소 사람들이 볼 때 
항상 아리스다고 와 가이오는 바울과 같이 다녔기 때문에, 
그들을 알아보고, 그들을 먼저 체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리스다고는 처음 등장할 때, 에베소에서 바울과 같이 다니다가, 
에베소에서부터 붙잡혔던 사람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행20:4절을 보면, 두기고 와  드로비모가 나옵니다. 
그런데 20:4절에 나오는 7명의 사람은 누구냐? 

사도 바울이 에베소 사역을 마무리를 하고, 
더 큰 핍박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항해에 동참했던 7명의 동역자들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 지난주 살폈던 두기고가 있고, 또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가 나오죠.

근데 제가 앞에서 아리스다고는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데살로니가 출신의 유대인입니다. 

데살로니가 출신의 유대인 아리스다고가  예루살렘으로, 바울과 함께 갑니다.  
거기서 많은 핍박을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은 27:2절입니다. 
27: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결국 투옥되고 
가이사랴에서 감옥 생활을 하다가, 이제 황제에게 상소를 해서 로마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행27장은 로마를 향해 바울이 배를 타게 되고 
이어서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나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바로 로마로 가는 그 배에도 누가 동참합니까?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가 함께 했다고 했습니다. 27:2

그러니까 아리스다고 라는 사람은 
-에베소에서도 바울 대신에 감옥에 갇혀 있었고  
-3차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도 바울과 같이 가서 거기서 함께 고난에 참여했고  
-나중에 로마로 갈 때도 함께 동참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본문 4:10절에 아리스다고 앞에 이런 수식어가 붙어 있죠.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 

이거는 나머지 여섯 사람도 비슷한 처지일 수 있는데, 
그래도 가장 바울과 함께 감옥생활을 동행했던 동역자가 바로 아리스다고 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다' 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이거는 '나처럼 그리스도께 붙잡힌 사람' 이렇게 번역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께 붙잡혀서 감옥에 가는 것까지도 기꺼이 감당했던' 
그래서 변함없이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했던 사람이 바로 아리스다고 였습니다. 
그래서 이 '아리스다고가 문안한다'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4:10~11

▲두 번째 인물은 마가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는데 
초대교회 최고의 금수저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행12:12절에 '마가'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성경에 등장하는데요.
'(천사가 기적적으로 베드로의 옆구리를 차서 깨워서 감옥에서 풀어주셨음을 베드로가)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헤롯이 베드로를 죽이기 위해서 감옥에 가두었는데, 죽기 바로 전날 
베드로는 천사에 의해 기적적으로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어디를 가느냐? 
바로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찾아갔죠. 
그 집에는  초대교의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거죠.  12:12

그래서 대부분 학자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이 일어난 곳을 
'마가 요한의 다락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행1~2장에는 마가 요한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12:12)에 근거해서, 아마 초대교회가 탄생하고 성장할 때 
가장 중심적인 장소를 제공했던 곳이 바로 이곳, 
즉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입니다.  12:12

그러니까 당시 120명 이상의 성도들이 모여서 같이 예배를 드릴 정도면,
집이 얼마나 부유했겠습니까, 얼마나 크고 넓었겠습니까? 

그러니까  마리아는 굉장히 부자였던 거 같고,  
복음을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했던 사람이고, 마가는 그 집의 아들입니다. 

마가는 아마 스펙도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서기(기록자)로서' 로마에서 베드로와  바울을 적극적으로 도와줬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헬라어에도 능통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마가는, 스펙도 좋고, 집안도 좋고, 신앙도 좋고, 
그래서  행13장을 보면, 그가 바울의 1차선교여행에 동참합니다. 

행13:5절은 첫 번째 세계선교 여행이 시작되는 거죠. 
지도자는 바울과 바나바였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과 바나바가 지도적으로 수행했던 1차전도여행에 
마가 요한이 바로 수행원이었습니다.

당시는 로마의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두 개의 이름을 가졌어요. 
로마식 이름과 유대식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마가'(마르코스)는 뭔가 하면 로마식 이름입니다.  
'요한'은 유대식 이름입니다. 
그래서 마가 요한은 같은 인물입니다. 

 

그는 첫 번째 선교 여행에 수행원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에 로마부대는, 어디를 가든지 서기를 수행시켜, 꼭 기록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발생을 했습니다. 

이렇게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선교여행이,
밤빌리아 라는 곳에서 마가는 낙오하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주2)

그러니까 아마 마가 입장에서는 쓰라린 실패죠. 
정말 의욕을 가지고 헌신된 마음으로 1차 전도여행에 참여했다가 
얼마 되지 못해서 환란과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가지고 그는 낙오를 하게 됩니다. 
1차전도여행은 마가가 없이도 잘 마무리가 됐습니다. 

얼마 지나서  바울과 바나바가 2차전도여행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15:36절부터, 사도행전에 나오는 가장 안타까운 사건이 나옵니다. 
바로 바울과 바나바가 헤어지게 된 사건이죠.

바울이 바나바한테 이야기하죠. 
'우리가 1차여행 때,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세워진 교회가 잘 성장하고 있나 살펴보자' 해서 2차전도여행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15:37절을 보시죠.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자는 겁니다. 
그러니까 참 바나바는 격려해 주는 사람입니다.
바울을 소위 기독교 역사에 데뷔시킨 사람이 바나바잖아요. 

여차여차해서
정말 가장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심히 다투어 가지고 피차 갈라서게' 됩니다. :39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해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즉 각각 다른 지역으로 
2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15:40~41

그런데 오늘 본문에 놀랍지 않습니까? 바로 그 마가가, 
지금 바울과 함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 가택연금에서 골로새서를 쓰고 있는데,
그 옆에 있어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 마가가 그 후에 회개를 했고, 또  바울은 그 마가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마가는 그 후에 어떻게 되나요?  

이 때는 골로새서를 쓴 시점보다 한 4~5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골로새서는 바울이 로마에 첫 번째로 투옥되었을 때고  *가택연금
4~5년이 지난 이때는 바울이 (로마 시 화재 이후) 진짜 로마 감옥에 투옥된 때입니다. *2차 투옥, 순교

딤후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러니까 참 초대교회의 아름다움이죠. 
낙오해서 실망을 끼치기도 하고, 이 마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고,  
갈라서게 되고... 이런 원인 제공을 했던 마가까지도 어떻게 됩니까? 

바울의 선교팀에 합류하게 되고,  
바울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한테 정말 너무 유익한 사람이다' 
이렇게 바울이 마가를 향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마가는 바울에게만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 
베드로에게도 매우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를 마무리하면서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벧전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여기서 '바벨론에 있는 교회'는 로마 교회입니다.
당시 네로의 핍박이 시작 되어서, 함부로 '로마 교회'라고 쓸 수 없었죠.

베드로는 '내 아들 마가도 그러하다' 하면서,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가복음의 대필자

그래서 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바울에게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있었던 것처럼 
베드로에게는 믿음의 아들 마가가 있었다. 

여러분, 어떻게 마가라는 사람이 첫 번째 복음서, 
기록 시기적으로는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가 마가복음입니다. 

어떻게 마가가 이 복음서를 쓸 수 있었겠느냐? 
그 이유는 바로 베드로에게 '믿음의 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그래서 그 사랑 속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고, 어떻게 사역하셨고, 어떻게 말씀하셨고...' 
그것을 그 아들이었던 마가에게 다 쏟아부었겠죠. 가르쳐 주었겠죠. 

그러니까 마가는, 베드로의 증언을 기초로 해서
마가복음을 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예친 모임에도, 이런 분들이 좀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청년들을 섬기면서 보니까, 한 번씩은 쓰라린 실패와 낙오를 경험하는 친구들을 참 많이 봅니다. 

근데 그들을 정죄하거나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그들을 붙잡아 주면 어떻게 되는가요? 

마가처럼.. 나중에는 베드로에게도, 바울에게도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을 수 있는 귀한 인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골4: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세 번째로 유스도가 나옵니다. 
행1:23절에도 유스도가 나옵니다. 
행18:7절에도 유스도가 또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골로새서 본문에 나오는 유스도는, 다른 인물, 동명이인 입니다.
지금 여기 골로새서에 나와 있는 유스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기에 등장합니다. 
마가 같은 경우는 그 이름이 유명하잖아요. 아리스다고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유스도라 하는 예수'는 딱 한번 기록되고나서 사라집니다. 
 
그런데 혹자는 유스도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유스도는 교회에서는 무명했지만 
하나님 나라와 지옥의 세계에서는 유명한 사람이었을거다.'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 속에서는 어쩌면 무명이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지옥의 세계에서는, 그는 참 유명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참 이런 분들이 많아지면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교회도, 저처럼 이렇게 앞에 나서는 이런 사람들도 역할이 있겠지만 

성도들의 눈에 감추어진 무명의 분들, 
그러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지옥의 세계에서는 
설교자인 저보다도 더 유명한 많은 분들 때문에 
주님의 몸된 교회가 이렇게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중간 정리하면, 유대인 동역자 세 사람  *'그들은 할례파이나' 4:11
-아리스다고는 끝까지 복음을 위한 고난의 참여했던 사람, 
-마가는 낙오했다가 회복된 사람  
-유스도는, 무명이지만 하나님 앞에 충성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이 세 사람에 대해서 11b절을 보시죠. 
'그들은 (복수입니다. 3명) 할례파이다'

위 3명이 유대인 사역자라는 거죠.
그런데 참 인상적인 말을 바울이 덧붙입니다. 
'이들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들이다'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4:11b 

여러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주셨던 율법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외면했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 때문에, 참 복음을 외면했습니다.  

나중에 로마서 9~11장에 보면, 유대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이 
거기에 구구절절 나와 있어요.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가장 큰 아픔과 고통을 주었던 것은 자기 동족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마음에 안타까움이 많았겠습니까. 그때 바울이 이야기합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이들뿐인데, 이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4:11 

지금 우리나라도 정말 좌우 진명,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있고, 
그로 인해 교회들도 얼마나 큰 아픔을 치르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도 보수주의자죠. 
그렇지만 보수의 가르침이 모두가 성경과 부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보수의 입장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보수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되셔야 돼요. 

그 보수를 바꾸어 가고, 더 아름답게 다듬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셔야 되고, 
또 교회 가운데 진보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저도 청년 시절 때는 진보 그룹에서 잠시 활동을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만 진보를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 할 수가 없습니다.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신 분들도 무엇을 위해서 일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일하는 자들이 되셔야 되죠. 

그래서 보수 쪽에 있는 분들도, 그 가치들이 하나님 나라의 부합될 수 있도록 
잘 다듬어 가야 되고, 
진보적 성향이 있는 분들도, 그쪽 가르침이 
하나님 나라에 부합되는 가르침으로 갈 수 있도록 잘 만들어 주셔서 
결국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지도록 
서로 협력하고, 서로 바뀌어져가는 노력들을 할 수 있어야 돼요. 

저는 참 저 자신이 그런 많은 혼란과 아품을 겪었기 때문에 
여러분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여러 가지 운동에 참여하는 분들은 
정말 이 말씀을 기억해야 됩니다.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자들이다' 4:11
라고 하나님으로부터 평가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바로 이런 분들이 어떻게 되느냐? 
사도 바울과 주님께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죠. 

이렇게 바울은, 유대인 동역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12절부터는 이방인 동역자들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골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에바브라
그는 골로새 교회를 개척했고, 골로새 교회를 지도했고,  
그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골로새 교회 문제 때문에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까지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 에바브라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에바브로디도 와는 다른 인물

'그리스도 예수의 종'
'그리스도 예수의 종'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다 라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바울은 이 표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을 누구한테만 적용했느냐? 
사도 바울 자신에게만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같은 데를 보시면,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은'
여러분 바울이 자기를 소개할 때, 가장 즐겨 사용했던 호칭이 '그리스도의 종 바울' 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뜻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 
-또 한 가지 뜻은 무엇이냐? 복음을 전파하고, 세워진 공동체를 잘 섬기라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이들을 표현하는 말이 '그리스도 예수의 종'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호칭을 누구한테 적용시켜 주느냐? 
에바브라에게 적용시켜 주죠. 4:12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다' 

이건 최고의 찬사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위해서 온전히 헌신하는 에바브라는 
바울 자신과 같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다.  

그 근거, 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요?
에바브라는 지금 골로새 성도들을 떠나서, 바울과 함께 있습니다. 
그는 지금 떨어져 있지만 '그는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고 있다'  4:12

'애서' 라는 말은, 운동 경기에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그 운동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그는 항상 너희를 위해서, 승리자가 되기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며, 그는 기도하고 있다. 

근데 그의 기도 내용이 무엇이냐? '너희가 굳게 설 수 있도록'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이것은 바울이 골1장에서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던 내용이잖아요.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서   
여러분이 하나님께 합당히 행할 수 있도록'   1:9~11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던 첫 번째 제목이죠. 
그것처럼, 바로 이 에바브라도 항상 기도하는데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 굳게 서 있을 수 있도록'  4:12

그런데 에바브라는 두 가지 표현으로 기도합니다. 

1) '완전하고' 
이거는 여러분 골1:28~2:2절을 꼭 한번 읽어보십시오.

이건 바울의 사역입니다. 바울의 사역 목표가 뭐냐? 
'그리스도를 전파해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는 것' 
거기에 사용되어진 단어입니다. 

'온전하게 하나님의 뜻 가운데 굳게 새길 수 있도록 기도한다'는 거죠.

2) '확신있게 서기를 기도하나니'

이거는 정말 잘 믿어지지 않는데, 억지로 믿으려고 확신하려고 
막 노력하고 세뇌시키는게 아니라 
여기에 확신은 전제가 무엇이냐 '확실한 이해'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풀어 주셔서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면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바브라는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바로 이들이 굳게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굳게 설 수 있도록, 
전적인 헌신과 흠이 없이 완전하고 
성령님이 그들에게 확실한 이해를 주셔서 바로 확신있게 함께 설 수 있게 해달라' 
이렇게 에바브라는 기도했습니다. 

◑골4:13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거기에는 리쿠스 라는 계곡이 있었는데, 거기를 중심으로 꼭 삼각형처럼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3개의 큰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3개의 도시 가운데 교회를 개척하고 섬겼던 사람이 에바브라죠. 
그래서 에바브라가, 골로새 뿐만 아니라 라우디게아, 히에라볼리 에 있는 자들을 위해 
그다음에 인상적인 표현이 나오죠.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한다' 

여기서 '수고'는, 헬라어로는 '격렬한 고통'입니다. 
정말 에바브라는, 지금 너희와 몸은 떨어져 있지만 
너희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성도들을 위해서 격렬한 고통을 지금도 치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증언한다' 이게 무슨 뜻이죠. 
'내가 눈으로 봤다. 이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바울은 이 에바브라를 소개해 줍니다. 
여러분 결국 이 내용은 무엇이죠? 에바브라를 높이 칭찬해 주는 거죠. 

▲저는 이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참 놀라운 것은 
바울은 사람을 잘 칭찬했어요. 동역자들을 잘 칭찬해 줍니다.

이 가르침을 통해서 결국 바울이 도전하는 것은 무엇이죠? 
골로새 성도들에게 '여러분의 사역자 에바브라를 정말 귀하게 여겨라. 
에바브라는 참 귀한 사람이다!' 라는 거죠. 이렇게 세워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성도님들과 모여서 어떤 대화를 나누십니까? 
그 대화의 중심은, 이렇게 바울처럼 사람을 세워주는 겁니까? 
아니면 사람을 깔아뭉개는 겁니까? 

저는 참  한국교회가, 언제부터 성도들이 모이면, 
정말 이렇게 사람을 세워 주는게 아니라, 
사람을 폄훼하고, 사람을 뭔가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버린  
그런 만연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이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부족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무엇이냐? 
그가 완전할게 아닙니다. 그의 속에 계신 주님이 그를 바꾸실 거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그를 신뢰하고 높여줄 수가 있는 거죠. 

▲저는 목회하면서 저한테 큰 도전을 줬던 분이 수영로교회를 개척하시고 
원로목사님 되셨다가 소천하셨는데, 정필도 목사님이 목회자 세미나에 오셔서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여러분 목사님들이 설교 준비할 때, 누구를 염두에 두고 설교를 준비하십니까?' 

그러면서 이분이 성도들 가운데 A B C 그룹이 있다고 가정할 때,
A그룹은 보기만 해도 너무너무 기쁘고 좋은 그룹이고 
B그룹은 보통 
C그룹은 목사님을 보면 짜증내는 이 3개의 그룹이 있다 그러면서  
정필도 목사님은, A그룹을 염두에 두고 설교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C그룹을 염두에 두고 설교를 합니다. 
왜냐면 그분들을 설교로 가르쳐서 바꿔야 되니까.

정목사님도 본인이 그렇게 해봤다는 거죠.
C를 염두에 두고, 막 그분들을 바꾸기 위해서 설교를 했는데, 
해보니까 결과가 어떻게 됐나? 

C가 A로 바뀐게 아니라, 오히려 A가 C가 되어 있더라는 거죠. (설교를 같이 들으니까)
C는 자기한테 이야기하는 줄도 모른대요. 

그런데 A는 '아니 우리가 이렇게 목사님 하자는 대로 잘하고 충성하는데도 
이렇게 우리들을 향해 목사님은 열불이 나 있구나' 
그래서 A가 C로 바뀌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정목사님이  회개를 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했느냐? 
A를 염두에 두고 설교를 하셨다고 해요. 

그러니까 A 성도들을 염두에도 설교하니까, 
설교자 자신도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래서 이분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게 설교하다 보니까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C가 A로 변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에 C를 향해 설교했다는 것은.. 주로 책망, 경책하는 내용이었고,
나중에 A를 향해 설교했다는 것은.. A는 잘 하는 사람들이니까, 주로 격려하는 내용이었죠.

C들은 '야, 내가 이렇게 목사님을 싫어하고 속을 썪여도
목사님은 강단에서 늘 저렇게 좋아하시는구나' 그 태도를 보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만 더 좋아지는게 아니라, C도 바뀌어져 가더라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강단에서는 격려와 칭찬을 위주로 하고,
책망과 경책은, 개인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하는 것이... 분위기가 나아지죠.

저는 정말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다분히 C를 염두에 두고 설교를 오랫동안 했어요. 
그러니까 항상 제 설교는, 뭔가 공격적이고, 책망하고, 바로잡고, 
소위 개혁 선지자적인 설교였습니다. 

근데 해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A가 C로 다 바뀌어요. C는 절대로 안 바뀝니다. 
그 설교를 통해서, 잔소리와 책망을 통해서...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목사님 말씀을 듣고 
저도 우리 성도님들을 A라고 생각을 하고 말씀을 전해 보니까 어떻게 되나? 
분위기가 완전히 변해 버렸습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사람은 책망을 통해 바뀌는게 아니라, 격려와 사랑을 통해서 바뀌는 거죠. 

바울이 볼 때, 에바브라에게 부족한 점이 없었겠습니까? 있었겠죠.
그렇지만 그를 향해,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적용했던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다.' 
'정말 그는 너희를 위해 항상 기도한다.'  
'그는 너희를 위해서 격렬하게 수고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를 참 귀하게 여겨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깔아뭉개는 곳은 천지사방에 가득합니다. 
정말 여러분 교회는 어떤 곳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부족하지만 그분들 속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되고, 
격려해 줄 수 있어야 되고, 기대해 줄 수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골4:14절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마지막  14절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 와 데마 두 사람인데요, 참 재밌습니다.  

몬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위 구절과 본문 4:14절을 비교해 보면,
본문에는 6명이 나오는데, 그 중에 에바브라와 유스도가 빠지고,
나머지 4명이 그대로 빌레몬서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데마와 누가가 같이 있습니다.  

또 딤후4:10~11절을 한번 보시죠.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여러분 데마와 누가는 항상 같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감옥에 갇혔던 바울, 그의 오른쪽에는 누가, 그의 왼쪽에는 데마가 있었다.' 

여러분 참 이런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누가, 데마는 그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던 바울에게는 
마치 좌청룡 우백호와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끝이 완전히 다른 거죠. 
4~5년 세월이 지나고, 바울이 두 번째 감옥에 갇혔을 때  
그리고 순교의 위험 속에 놓였을 때, 누가는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지만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서, 결국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게 됩니다. 

이 가르침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데마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바울의 신실한 사역자였던 데마가, 왜 세상을 사랑해서 떠나게 됐을까? 

근데 이거는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에 떠올랐던 단어가 
'헌신의 후유증'이라는 단어였어요. 

여러분들이 교회를 위해서 한번 충성하셨던 분들, 
시간과 물질과 모든 힘을 기울여서 하나님을 섬겼던 분들의 마음에는 
여러분 후유증이 남아 있습니다. 

그 고난의 대가 지불이 참 아프거든요. 정말 힘이 듭니다.  
또 주위를 바라보면, 나처럼 이렇게 요란스럽게 섬기지 않아도 
잘 나가고,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정말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이렇게 마음 한 구석에는 부러움이 있습니다. 

이게 저는 '헌신의 휴유증' 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저도 항상 제 마음에 이게 있었습니다.

저는 참 나름대로, 주님을 위해서 젊은 날에 저도 헌신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때 제가 포기했던 것들이 많았고, 내가 잡지 못했던게 너무 많았고, 

그렇지만 나처럼 이렇게 요란 떨지 않아도, 
적당히 예수님 믿으면서도 잘 나가고 칭송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지금 바보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지 않나?' 
이런 어떤 고민과 갈등을 혼자 참 많이 했습니다. 

근데 여러분 이런 후유증이, 하나님 앞에 제대로 치유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두 번째 바울이 갇혔을 때, 데마는 세상을 사랑해서 데살로니가로 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어요. 
-믿음을 저버렸다 라는 뜻도 되지만 
 사역자였던 사람이 어떻게 믿음을 포기하겠습니까? 

-그것보다는, 데살로니가는 로마와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핍박이 덜 했을 거고, 
대도시였고, 그곳 교회 분위기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사역자로 살면서도,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이렇게 고난을 안 당해도 
오늘날로 말하면 '대접 받고 살 수 있는 사역자의 길'을 그는 선택한 거죠.  

여러분 데마는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누가는 어떻게 했습니까? 끝까지 바울의 곁을 지키죠. 

행16:10~11절 한번 보시죠.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위 구절에, 사도행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16:9절까지는 '바울과 바나바'가 주어입니다.  *아직 누가가 조인하기 전이라서
그런데 16:10절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1인칭 복수잖아요. 
'우리' 속에는, 이 사도해전을 쓰는 누가가 포함이 되었다는 겁니다. 
사도행전에 누가가 최초로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거의 다 동의를 합니다. 
2차전도여행 중에, 드로아에서 빌립보로 가는 도중에 
누가가 바울의 선교팀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는 거죠.  

21:17절에, 더 큰 고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갈 때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누가도 함께 있었다는 거죠. 

27:1절, 로마를 향해 갑니다. 유라 굴라 광풍을 만날 때, 누가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때도 '우리가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가기로 작정되매'   

28:1절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유라굴로 속에서도 누가도 동참했습니다.

마지막 28:16절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누가는 2차선도의 선교 여행 후에 빌립보로 가는 길에서 합류해 가지고 
그 이후로 로마로 들어가기 까지 (16장 중반에서 28장까지 계속)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바울의 첫 번째 투옥뿐만 아니라, 두 번째 투옥 때에도 
바울의 곁을 누가는 꿋꿋이 지켰습니다. 

여러분, 누가라고 해서 헌신의 후유증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누가는 데마와 다른 선택을 하죠. 

여러분 바울과 함께 2차선교여행 때부터 시작해서 그 모진 고생을 다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헌신의 후유증'에 빠져서 주님을 버리는 자리에 서지 않고, 
그때 가졌던 기록을 가지고, 후에 사도행전을 쓰게 됩니다.  

그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바울이 체포되고 
가이사랴에 이송되어 1년 반의 시간을 보낼 때, 
이때 누가는 무엇을 했을까요? 

학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면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만나면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생생하게 자료를 수집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쓸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게 됩니다.  

여러분 똑같은 섬김과 헌신의 기회였는데 
데마는 헌신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해서 결국 주님을 떠나는 자리에 있었다면, 

누가는 그 헌신과 고난의 기회를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이 고난 가운데, 이 세상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글로 정리하면서 
바울보다도 더 많은 분량의 신약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누구냐? 누가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합친 것이, 
사도바울의 전체 서신보다 분량이 더 많아요. 양적으로만 계산하면 그렇죠.

누가는 정말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놀라운 기록을 남기게 되는 거죠. 
저는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여러분도 정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셨는데  
아마 우리 마음속에는 다 후유증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그렇지만 여러분 이거 그냥 두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두 번째 우리에게 이런 복음을 위한 고난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주님을 떠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데마의 선택을 하지 않고, 
우리들이 고난 속에 놓여졌을 때, 최고의 영광이 뭐겠어요?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 고난의 현장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 어떤 모든 정보와 기록들 잘 정리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으면, 
정말 그들을 어떻게 됩니까? 그 다음 세대에게 살아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죠. 

말씀을 마치면서, 저는 우리 성도님들, 혼자 신앙생활 하시면 안 돼요.
'예친'과 같이 아셔야 돼요. 
그래서 모든 성도가 아리스다고처럼 복음을 위해 변함없이 충성하되 
낙오된 마가가 있으면 일으켜 세워주고  

우리 성도 중에 누구도 데마의 길을 가지 않도록,  
또 전문적인 여러 가지 능력이 있으면 
마가와 누가처럼 정말 그들을 잘 격려해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고,  

지도자들, 순장님과  모든 교역자들은 
에바브라처럼 그리스도의 예수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주1) 골1:7~8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주2) 마가가 낙오한 이유
구브로 섬에서 밤빌리아로 가는 뱃길에서 풍랑을 만나서 죽을 뻔 했다가 
겨우 살아났는데, 마가가 그 일로 충격을 받아서 예루살렘 자기 집으로 돌아갔으리라 추측합니다.

그 곳은 평소에도 풍랑과 파선이 잦은 곳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