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1 / 베드로가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 YouTube
◈애니아와 다비다를 고친 사건 행9:32~43
◑서론1 / 사도행전은 행1:8절 약속의 성취와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이렇게 약속하셨죠.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셨던 이 1:8절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가 하는 것을, 증명하고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먼저 예루살렘의 부흥에 대해서 기록을 한 거예요.
그냥 좋은 일, 놀라운 일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
이 1:8절의 약속이 이렇게 성취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누가는 예루살렘의 부흥에 대해서 먼저 기록을 합니다. 1~7장
성령이 강림하시던 그 오순절 날에 교회가 탄생했고
그 교회에 의해서 예루살렘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통하여, 온 유대가 복음으로 뒤덮여지는 역사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누가는 먼저 예루살렘과, 온유대의 부흥에 대하여 기록하였고,
그리고 그 이후에는, 사마리아의 부흥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행8장
큰 박해가 일어났고 그것으로 인하여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넘어서
사마리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빌립의 전도와,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를 통하여
사마리아에도 부흥이 일어났고, 거기에 복음이 충만했다 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9장)에는, 사마리아에서 땅끝을 향해 나아가려고 초읽기에 들어간...
이 복음을 들고 이방으로 나아가서 사역할 사람을 준비시키는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바로 사도 바울을 준비하셨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면서
그가 회심하고,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박해자에서 전도자가 되었다... 그렇게 준비가 되었다 라고 전개하고 있죠.
그래서 9:31절은 이렇게 일단락을 시키고 있습니다.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서론2 / 행9장에 바울 이야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베드로 이야기로 옮겨간 이유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 갈릴리까지
평안히 교회가 서 가고 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그 약속의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가지고 나아갈
복음의 일꾼 사도 바울도 준비되었다... 라고 이렇게 말해요.
자 그러면 그 다음에 이어져야 될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의 선교 여행이 연이어 나오면 됩니다.
근데 느닷없이 9:32절부터 보면, (오늘 본문)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이렇게 베드로가 등장하고 있어요.
이제 바울도 준비되었겠다.. 그러면 열방으로, 땅 끝으로
바울이 복음 들고 들어가는 이야기를 계속하면 될 텐데
왜 갑자기 여기서 베드로의 이름이 나오고, 베드로의 기적 사건이 나오는가요?
▲1 그 첫 번째 이유는,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베드로거든요.
마16:19절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너한테 준다.
네가 땅에서 무엇인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땅에서 무엇인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 나라를 여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하나님 나라를 열었던 사람이 누구예요?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대단했기 때문이 아니고,
베드로를 통해서, 베드로가 하늘 문을 열었고,
예루살렘의 하나님 나라가 거기에서 열려졌던 것이죠.
그리고 사마리아에도, 빌립이 복음을 처음으로 전했지만
그러나 베드로가 내려가서 안수함으로 인해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내리심으로 인해서
사마리아에 천국도 베드로가 열었던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방인 최초의 집단개종사건,
고넬료 집에서 부흥이 일어나는 것,
이것 또한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는 베드로를 통해서 일어나죠.
그래서 그가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늘을 여는 자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였기 때문에,
이제 땅끝을 향하여 복음이 나아가려고 하는 이 순간에,
베드로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죠.
▲2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기서 베드로의 이름이 등장하는 이유는
땅끝으로 복음이 흘러가기 위해서, 사도 바울을 준비시키셨던 하나님이
이제 예루살렘과 유대인들도 준비시키기 위해서, 베드로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유대인들과, 사도들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이 이방을 구원하신다'는 것에 대해 아직까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전히 그들은,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고, 더럽게 여기고,
함께할 수 없는 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여기에 베드로를 등장시킴으로 인해서
열방을 사랑하시고, 땅끝을 사랑하시며, 이방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하여 가르치시고,
또한 그들(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이방인 교회를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 베드로 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해석
그래서 이제 이 베드로의 이야기가 행9:32절 본문에서부터 12장까지 이어지는데요.
이 12장까지 이어지는 이 베드로의 이름이 시작되는 이 지점에서
베드로가 2가지 놀라운 기적을 펼쳐낸 것을 보게 됩니다.
-룻다에서 애니아 라는 중풍병자가 일어난 기적과 9:32~35
-욥바에서 다비다가 죽었다가 살아난 기적 9:36~42
그래서 본문의 이 2가지 기적 사건을 통해서,
성경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첫 번째는 <예수님이 계속 역사하신다>를 보여주기 위함
이 두 기적사건을 통해서, 본문은
'바로 예수님이 역사하신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9:32절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아마 핍박으로 흩어진 교우들을 돌보기 위해서,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녔을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룻다 라는 곳에 갔습니다.
룻다는 오늘날 이름은 루드(Ludd)이며 예루살렘 북서쪽 40km 지점에,
또한 해안도시 욥바로부터 동쪽으로 약 18km에 위치한 곳입니다.
베드로가 룻다에 복음을 전하러 갔다기보다는,
거기 있는 성도들을 돌아보기 위해서 심방갔던 것 같아요.
거기서 '애니아'라는 한 남자가 있었어요.
*헬, 아이네아스 ('애니아' 라고 하면 여성형으로 들림) '칭찬받는 자'라는 뜻
그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8년 동안 중풍병에 시달리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33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이제 베드로가 조금 옮겨서, 18킬로라고 했죠.
욥바에 가서 죽은 다비다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이 기적을 통해서,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뭘 말씀하시려는가요?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베드로를 통해서 일어난 기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역사하신다.. 라는 것을 당시에 그들 성도들이,
또한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 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신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베드로의 기적을 통해서 우리는 뭘 봅니까?
베드로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대로 다시,
그 역사를 다시 한번 그대로 보게 돼요.
그가 지금 8년 동안이나 중풍병에 시달렸던 자를 고친 이 사건은
눅5:17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한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그 사건을 지금 재현한 거죠. 그 목적은?
'예수님이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거예요. 베드로를 통해서!
당시 성도들은,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던 것과 같은
그러한 똑같은 역사를 고스란히 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다비다 여인을 살리는 사건도, 눅8:49절 이하를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이 다시 살리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죠.
저자 누가가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를 통해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사건을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를 통해서... 똑같은 일을 기록하고 있어요.
그래서 당시 성도들은, 지금 베드로의 모습 속에서
예수 그리스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고 있는 거에요.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셨죠. 눅5:24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행9:34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에게 '아이야 일어나라' 명하셨죠. 눅8:54
베드로가 다비다에게 '다비다야 일어나라' 예수님과 똑같이 명했습니다. 행9:40
그래서 룻다에서, 욥바에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대로 지금 재현해내고 있는 거예요.
일부러 어떤 의도를 갖고서, 고의적으로 그렇게 연출한 게 아니라,
우연히 비슷한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 때, 베드로는 과거에 예수님이 행하셨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그대로 따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애니아야, 내가 너를 낫게 한다'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뭐라고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라!'
그래서 지금 베드로가 뭘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살아계시며 예수님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다' 이걸 지금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40절을 보시면, 죽은 다비다를 살릴 때도
베드로가 사람을 다락에서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죠. :40
예수님도 죽은 아이(야이로의 딸)를 살릴 때, 불필요한 사람들은 다 내보내셨어요.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눅8:51
그래서 지금 이 두 가지 이적을 통해서, 베드로의 능력이 아니라
지금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통하여, 즉 베드로를 통하여 지금도 역사하신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2 두 번째는, 예수님이 지금도 죄를 사하시고, 사망을 몰아내신다...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그냥 '네 병이 나았다. 침상을 정리해서 들고 걸어가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눅5:23~24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단순히 중풍병자의 중풍병을 고쳐주신 게 아니라
'네 죄가 용서되었다, 그리고 네 중풍병이 나았다' 를 보여주셨죠.
그러면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눅5:24
그걸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베드로가, 룻다에서 중풍병자를, 예수님과 똑같이 고쳐준 사건은
'지금도 주님의 역사하시는데, 죄를 용서하시고, 죄를 사하시면서 역사하신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일으키셨던 죽었던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지금 베드로가 죽었던 다비다를 살리는 사건을 통해서
예수께서 지금도 역사하시는데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사망을 몰아내시고, 생명을 주시면서 역사하신다...라는 것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분은 죽은 우리의 영을 살립니다.
그리고 날마다 부패로 죽어가는 우리의 마음이, 계속 새 마음이 되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을 몸을 다시 부활하게 하십니다.
죽은 영을 이미 살리셨고,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살리고 계시며,
그리고 장차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 지금도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분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베드로의 이 갑자기 생뚱맞은 것 같은 등장과
그리고 그의 두 가지 놀라운 기적 사건은
1)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신다.
2) 예수님이 지금도 죄를 사하시며, 생명을 주시면서,
사망을 몰아내시면서 역사하신다' 라는 것을, 그들에게 (또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은,
베드로와 관련해서는 이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가르치신다> 라는 것입니다.
지금 본문에, 베드로가 그때 사방으로 두루다니면서 룻다 라는 곳에 갔다가
그 다음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장소가 <욥바> 입니다.
9:38, 42, 43절에 '욥바'가 계속 등장합니다.
9: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그래서 지금 베드로가 욥바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욥바 하면 누가 떠오르세요?
구약의 요나 선지자가 떠오르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너는 니느웨로 가라' 이방인에게로 보내셨어요.
거기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어요. '너희는 회개하고 돌아와야 된다. 안 그러면 망한다.'
복음을 전하게 하셨거든요. 그런데 요나가 니느웨로 가기 싫은 거예요.
그는, 이방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리고 또한 이방인과 자기가 엮여져야 하는 것이 싫었어요.
그래서 그가 내려갔던 곳이 욥바 라는 곳이에요.
욘1:3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그래서 욥바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요나,
그리고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고, 더럽게 여기고, 부정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사람(요나)이 머물렀던 곳이에요.
그런데 오늘 베드로가 있으면서, 똑같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려고 했을 때, 베드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방인에게 가지 않으려 했어요.
하나님이 환상을 세 번이나 보여주셨는데도, 이방인을 무조건 '부정하다' 여깁니다.
그러니까 행1:8절의 약속을 받았잖아요.
'너희가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간다'
즉 이방인에게까지 갈 것이고, 이방인에게도 증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 교회와 하나가 될 것이다... 이미 약속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이방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하여
베드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 하나님께서 왜 베드로를 욥바로 부르셨나요?
그냥 단순히 다비다를 살리는 기적을 일으키려고 한 것이 아니고,
욥바에서 누구와 연결됩니까? 이방인 고넬료!
최초의 이방인 집단 개종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그 현장으로, 곧 연결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베드로는, 거기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거기에다가 이방인을 부정하게 여기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이 베드로를 가르치시는 거예요. 베드로를 여기 욥바에 데리고 오세요.
그리고 고넬료와 만나게 하세요.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치시고,
이방인들이 부정하지 않다는 것과,
그래서 지금 여기 나오는 이방인들을 보세요.
선행과 구제... 유대인들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유대인들만 깨끗한게 아니다. 너희만 그런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사람들이고, 하나님은 이방인을 사랑하고 있으면,
너희도 그들을 받아들여야 된다' 라는 것을 지금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 전에, 주님이 청년 사울의 눈을 뜨게 해서 다시 보게 했던 것처럼,
이제 베드로의 눈을 떠서 다시 보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베드로를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
여러분 8년 된 중풍병자를 고치고, 죽었던 사람을 살리는 것이 보통 일입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요.
지금 자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몰라요.
하나님께서 지금 뭘 하고 계시는지,
내가 이방인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지... 그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위대한 역사를 일으켰는데 말이죠.
그런데 주님이 어떻게 하시죠?
그를 가르치시고, 그를 바꿔 가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하셔서
사도 바울울 다시 보게 하셨던 하나님이
베드로도 다시 보게 하시면서
그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실 뿐만 아니라 선생이신 예수님께
우리는 언제나 배워야 합니다.
요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