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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LNCK 2024. 6. 9. 08:40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영적전쟁

 

20240528  /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 행 13장 1절 ~ 12절 (youtube.com)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행13:1~12                 

본문 사도행전 13장은, 사도행전 전체의 흐름 가운데 중요한 변화, 큰 전환이 일어나는 지점입니다. 

1~12장까지는 예루살렘 교회 와 사도 베드로가 중심에 서 있었다면, 
이제 13장부터 ~ 마지막 28장까지는 안디옥 교회 와 사도 바울이 그 중심에 서게 됩니다.
이렇게 중심의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또 복음을 받는 대상에 대해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죠.
12장까지는 주로 유대인, 또는 유대인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면, 
13장부터는 복음을 듣는 대상이 완전히 이방인으로 바뀝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여있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가 선교여행을 떠나고, 또 거기에서 복음을 전한 이유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인 것이죠. 그러니 대상도 바뀐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이 특별히 세워지고, 
성령께서 그 두 사람을 보내시는, 바울의 1차선교여행이 시작되는 지점인데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먼저는, 우리는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다. 
두 사람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이전에는 예수께서 사도들을 부르시고 세우셔서 보내셨잖아요. 
오늘 본문은 이제 성령께서 그 일을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 일을 하시는 거죠.

13:1~2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안디옥 교회에 지도자 급인 5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이 두 사람을 따로 세우게 하셨고, 

13:3~4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1.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에서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에 온 교회가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냈다' 라고 말씀합니다. :3 

그러니까 선교로 보냄받은 사람은, 성령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온 교회가 안수해서 보냈다.. 라는 것입니다.
'성령과 교회가 함께 세워서 보냈다'는 의미입니다. 

 

사울과 바나바 역시, 안디옥 교회 성도들과 동떨어진 자들이 아니라,
안디옥 교회의 대표로, 그들과 한 몸으로 사역하는, 동기화된 자들이었다는 것이죠.
즉 보냄 받은 자나, 보내는 자들이나.. 똑같은 선교사인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게 '안수'하여 보낸 의미라는 것이죠.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안수를 할 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제사하는 자가 제물에 안수를 합니다. 
이건 제사하는 자와 제물이 동일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교회가 그들에게 안수해서 보냈다는 것은 
이 두 사람을 임명해서, 이 두 사람만 따로 보냈다(선교사로 임명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사람과 온 교회가 동일시가 되었다는 거예요. 요즘말로 '동기화'가 됐다는 겁니다. 

이 두 사람이 특별히 보냄을 받았지만, 나머지 성도들도 모두가 다
이 두 사람들과 함께 보냄을 받았다... 라는 의미입니다

 

▲2. 또한 '교회가 그들 두 사람에게 특별히 안수했다'는 말은 
단순히 세움받은 그 두 사람을 선교사로 임명했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봐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복음을 위해서 따로 두 사람을 세우셨고 
나머지는 다 그냥 남겨두셨으니까, 특별한 사람만 복음을 전해야 된다.. 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장면은, 모든 사람이 함께 안수함으로 인하여, 모두 다 보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선교사와, 나머지 교회는 보내는 선교사로 동일시, 동기화 되었다.. 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에 남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 
세상을 지금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고, 특별히 세상을 보호하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역에 동참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일터로, 직업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그리스도 인들의 직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스도인들의 직업은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께 동참하기 위하여서 
자기 직업으로 일터로 보냄을 받았다 라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온 세상을 경영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을 먹이시고, 필요한 것들을 생산해내시고, 이것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십니다. 

그래서 이 일, 하나님께서 세상을 경영하고 있는 이 일에, 
각자의 은사대로 쓰임을 받고 있는 거예요. 각자의 직업으로요. 

어떤 사람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어떤 사람은 공산품을 생산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운반하고, 판매하는 등 이런저런 일들을 통해서,
이런 모든 하나님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역에, 우리가 동참하여서 
우리는 각자 직업이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동참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편지로, 그리스도의 향기로, 또 보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윤을 남기는 직업일 수도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주부, 가정을 돌보는 주부,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자라게 하시는 일에 동참하고, 보냄을 받았다는 거죠.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직업,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그저 돈벌이 수단, 먹고 살기 위한 생계 수단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격하시키고, 
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그 일에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많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접촉점 contact point 이 되어지고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그 일에 동참하는 그 부르심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편지로 보내셨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에서 돈 벌기 위하여 직장생활하고, 
그냥 주일에 한 번씩 교회 나오는 것으로, 그냥 그렇게 만족해 버린다는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본문 이제 1차선교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 지점에서 
우리 모두가 다 세상으로 보냄받은 자다... 라는 인식을 새롭게 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텐트 메이커였습니다. 천막을 지었어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고 계시는 세상의 경영에 동참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만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또 한편 그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도 동참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정체성, 
하나님의 편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저와 여러분이 다 세상으로 보냄받은 자다.. 라는 사실을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그게 직장생활이든, 사업이든 뭐든, 그게 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또 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그 일에 우리가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의 편지'로, 그렇게 보냄받았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울과 바나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다.. 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때, 연합군이 승리했던 이유 중 하나로,

군인 1명에 15명의 시민이 달라붙어, 군수품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다큐에 나와 있습니다.

 

또한 독일이 2차대전 때, 러시아 모스크바 진격을 코 앞에 앞두고 패배한 이유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군수품이 부족했거나, 군수품 보급로가 차단되어, 결국 얼어죽거나 굶어서

후퇴하거나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1명의 선교사가 나갈 때는, 적어도 15명의 후방지원부대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들이 기도와, 물질과, 사랑으로 계속 보급품을 공급해야,

전방에서 영적 전쟁가운데 싸우는 선교사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물질적 군수품, 보급품이 끊어지면, 전방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펀 글)


◑2.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 두 번째는 
우리는 다 영적인 전쟁을 하는 자다, 영적인 전쟁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이들이 보냄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지 않아요. 
'어디로 가라. 몇 시쯤에는 어디에 누구에게 가라'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아요. 
그래서 먼저는 이들이, 바나바의 고향이었던 구브로 섬으로 갑니다. 

 

안디옥 교회 구성원의 일부가 이곳 출신의 사람들이었죠(11:20). 
따라서 첫 선교지로 구브로가 선택된 것은, 
바나바와 구브로 출신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고향이 구브로)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바울의 고향이었던 길리기아 쪽으로 그렇게 다시 옮겨가는데 
(길리기아로 간 게 아니고, 길리기아 위쪽인 밤빌리아, 비시디아로 갔음. 그 방향으로 갔다는 것임)

13: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일단 그들의 목적지가 구브로 섬의 바보가 되었어요.
본격적으로 1차선교를 시작하는 이 지점 바보에서, 
바예수 라 하는 유대인 거짓선지자요, 마술사를 만났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1차선교여행에 있어서
사울과 바나바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된 사람이... 바로 마술사 바예수였습니다.
1라운드부터 '영적 전쟁'(영적인 싸움)을 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는 아들이라는 뜻이고, '예수'는 구원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러니까 바예수는 '구원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죠. 물론 가짜 구원이죠.

그런데 6절을 보시면 그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거짓 선지자, 마술사' 

구브로 섬에는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이 있었습니다. 
바예수는 그 총독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소위 '궁중마술사'로서, 그의 영적인 멘토, 조언자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고, 올바른 결정을 해야 되는데,
점쟁이 같은 사람을 곁에 두고, 조언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마술사 바예수의 영향을 받아서, 정책을 결정하고 있는 거예요. 

'마술사'는, 과거 개역성경에 '박수'로 번역했는데, *마고스
이는 마술적 또는 주술적 치료 행위릍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여기에 거짓 선지자라고 덧붙여진 점으로 보아 자칭 하늘의 계시자로 행세하면서 
동시에 주술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치료한 것으로 보입니다. 동방박사도 마고스 였죠.

그가 유대인 출신으로 '거짓 선지자'라는 것은, 
그곳 유대교 신자들이, 그를 유대교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방 사술로 별점을 치며, 신유도 행했으니까요. 그런데 총독의 보호를 받았던 것 같아요.

어쨌든 바예수는,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잘못된 영향력을 주고 있었고, 
서기오 바울은, 무슨 정책을 결정할 때, 바예수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3:7~8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엘루마'는 마술사(마고스)인데, 그 말의 아람어 또는 아랍어로 추정합니다.
그런데 그의 본질이 드러났는데요. 
바예수는 이제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썼습니다.'  :8

그런데 이제 본격적으로 이방 땅에 복음이 전파될 때, 누구를 만나게 하셨는가 하면, 
복음이 전파되는데, 그것을 막아서고 있고, 믿지 못하게 만들고 있고, 
어둠으로 가리고 있는 대적을 만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교지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인 거죠.
우리는 이 영적 세력의 본질을, 본문을 통해, 파악하고 기도로 준비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도록 순순히 그냥 놔두는 것이 아닙니다.
악령과 악령의 조정을 받는 자들은(본문의 바예수 마술사처럼)
복음을 막아서고, 믿지 못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눈을 어둠으로 가리는 대적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이라는 거죠.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빛이, 복음의 진리의 빛이 비치지 못 하도록 
애를 쓰고 훼방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우리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 사람 왜 이렇게 안 믿노? 저 사람 왜 저렇게 주께로 못 돌아오노?' 

사단이라는 존재가, 그 복음의 빛과 광채가 그에게 비치지 못하도록 애쓰고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13: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세상에는 그리스의 복음의 빛이 비치지 못하도록 하는 존재가 있단 말입니다. 
사단과 그리고 그의 자식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13: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그래서 (사울과 바나바가 바보에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뭐부터 하는 거예요? 
어둠의 세력과 영적인 전쟁부터 하는 거예요. 그를 먼저 묶는 거예요. 
그리고 난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3: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총독 서기오 바울은 이때 완전히 회심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보고 믿었다'고 말하고 있고, 
기적같은 것을 보고 놀란게 아니라, '주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기니라' 
진리와 말씀에 반응했던 거예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각자 직업인으로서 
하나님의 경영에 보냄을 받기도 했지만,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우리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보냄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서 우리가 전하는 그 복음의 광채를 가리려고 하는 존재들이 있고 
우리는 그 존재들과 영적인 전쟁을 하는 자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왜 기도하는 겁니까? 
물에 들어가기 전에 운동하는 것처럼 그렇게 형식적으로 하는게 아니에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전에 기도하는 이유는, 
이 일이 영적인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영적인 전쟁 가운데서 승리해야지, 실제적인 열매가 생겨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도 이 영적인 전쟁을 위하여 무장을 해야 되는 거예요. 
엡6:11절부터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때, 전신갑주를 입고 나가야 돼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 복음의 대상자와 대결하기 전에, 
그 복음의 대상자를 둘러싸고 있는 영적인 세력과 싸우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전신갑주를 입어야 됩니다. 

엡6:12~17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6:18~19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항상 영적전쟁 가운데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전신갑주를 취하고서, 이 현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는, 이 영적인 싸움, 영적 전쟁이 함께 가야 된다는 거예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해야지만, 실제적인 열매가 나타나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출17:11에 보면,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와 여호수아가 함께 싸웠던 거예요. 
영적인 전쟁과, 산 밑에서 칼을 들고 싸우는 실제적인 전쟁이 함께 일어났던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모세만 기도했다고 이긴 것도 아니고, 
모세의 기도 없이, 여호수아만 싸웠다고 이긴 것이 아닙니다. 
둘이 함께 갔었고, 먼저 기도에서 승리했을 때,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여호수아가 실제 전투에서 이긴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현장에서 영적인 전쟁을 함께 수행하는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도록 역사하는 이 일과 함께, 
그들을 묶고 있는 악한 영과의 싸움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늘 깨어 기도하면서 먼저 이 영적인 전쟁을 수행해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20년 전에, 어느 일본 목회자가 한국에 와서 설교 중에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자기가 교회를 개척해서 사역하는 중에 한 두 번 실패했는데,
그것은 새신자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 교회가 대부분 고만고만 하고 성도 숫자가 많지 않은데,
새신자가 한 사람 들어오면, 온 교회가 놀라고, 기뻐하고, 좋아한다는 것이죠.

근데 6개월~1년이 지나면, 이 새신자가 교회에 잘 정착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기존교인 2~3명을 데리고, 함께 교회를 떠나버린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이 새신자는, 교회에 들어오기 전에, 수 십 년간 귀신에 지배를 받아 살다가,
전도를 받고서 교회에 구경하고 알아보는 차원에서 들어왔는데,
과거의 귀신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지요.

그 가운데서, 오히려 교회에 있던 연약한 심령들, 
믿음이 굳세게 뿌리 내리지 못한 심령들과 쉽게 연합이 되고, 
결국은, 그들이 힘을 합쳐서 교회를 빠져나가는 일들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래 숫자도 많지 않은 교회에, 두 세 명 빠져나가 버리니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던 것이죠.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은 그 목회자와 교회는, 
그 후로 한 명의 새신자가 들어오면, 굉장한 영적인 전쟁을 치른다고 합니다.

온 교회가 열심히 기도하면서, 그 새신자의 악령이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그 새신자가 악령으로부터 놓임 받고, 성령을 받도록...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새신자 때문에, 교회가 깨어지더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씀사역과 성령사역 비교 (강추) https://rfcdrfcd.tistory.com/15972921

​바울이 1, 2, 3차 선교 여행중에 방문했던 모든 도시들의 경우를 다 살펴보면,

말씀사역은 모든 도시에서 100% 있었던 반면

성령사역 (축사, 신유, 예언, 방언)은 그 절반 가량 있었으며 (모든 도시 아님)

그래서 바울의 선교사역의 중심은, 말씀사역이었지, 은사 사역은 아니었다는 주제의 글.

 

본문에서 바울이 구브로의 바보에서 서기오 바울을 전도한 것도,

둘 다 있었지만, 결국 그가 말씀을 듣고 회심했다는 점과 일맥상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