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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와 같이 되기를

LNCK 2024. 6. 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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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와 같이 되기를        행26:24~32     2007.08.19.  

 

도입 /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일화                주1)

 

▲여러분, 인간은 각각 소원도 많고, 생각도 많고, 욕망도 많고, 욕심도 꿈도 많습니다.

이것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행복한 자가 되느냐, 아니 성공한 자로서 사는 길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재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감에 있습니다.

그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에요.

 

본문에 바울이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행26:29

바울은, 현제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있으므로, 그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 내가 있으니까요.

 

뭐 좀 아픈 일도 있었고, 고통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니 나를 괴롭히던 그런 사람들까지 그분들에게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왜요?

 

그분이 있어서 오늘 내가 있으니까.

과거에 후회가 없고, 또 미래에 대해서도 항상 확실합니다.

 

내 앞에 있는 약속된 미래,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에 만족합니다.

이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여러분, 우스운 얘기지만 무당이 자기 아들딸이 무당 되는 것 절대로 원치 않아요.

점쟁이가 점을 친다고 하지만, 자기 자식이 점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목사님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식들이 다 목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고생스러워도, 자기 일에 만족감이 있다는 뜻이지요.

 

제가 처음 자식을 낳아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 아들이 목사가 되게 해 주세요."

 

아들이 장성한 후에, 제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손자가 쌍둥이로 태어났을 때, 앞으로 얘들이 어떻게 되길 바라느냐고 물었더니

"둘 다 목사 되게 하렵니다." 그랬습니다.

그러겠지요. 가장 행복하다는 것은 바로 이 한마디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 비즈니스 스쿨에서 나오는 중요한 논문 중에 특별한 이론이 있습니다.

한번 쯤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일반화할 수 없어서,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패밀리 비즈니스 Family Business>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첫째는 본인 자신도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업도 성공도 이것을 자식에게 물려 주려 합니다.

(자신의 일이 소중하고 행복하니까,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거죠)

 

물려주고 또 물려받는 것, 이거 아주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물려주는 마음, 물려주려는 기쁨, 그리고 물려받는 행복,

물려받고 소중히 여기며 또다시 행복한 것입니다.

 

이런 사이클을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합니다. 이걸 좀 더 확실하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연구 하나만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거예요.

적어도 CEO가 될 수는 없다. 왜냐면 한 사람의 노력만 가지곤 안돼요.

DNA가 좋아야 돼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있어야 돼요.

 

이것이 있고, 거기다가 내 노력이 합쳐질 때 성공하는 거예요.

물려받은 건 없는데, 나 혼자서 몸부림쳐 봐야 당대에는 잘 안 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적어도 3대를 이어가야 된다는 거죠.

할아버지부터 DNA가 물려지고, 지혜가 물려지고, 라이프스타일이 이어지고,

물론 신앙적 세계관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그 노하우가 이어지고, 체질이 이어지고, 경험이 이어집니다.

거기에다 자기 노력이 합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요즘 우리는 기업 승계니 계승이니 하는 말을 종종 씁니다만

‘패밀리 비즈니스’ 그러니까 조상적부터 물려받은 그것이 있고,

또 내 수고가 있고, 그래서 후대로 이어지면서

그러면서 비로소 훌륭한 성공이 열린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당대에 나 하나의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물려받고 물려주고 이어받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도 그런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계속 이어갑니다.

 

그리고 오늘 내 하나님이요, 내 후손들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행복도, 진정한 성공도 있다는 것입니다.

 

, 이런 문제를 놓고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뿌리,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느냐?

자기만족에 있습니다.

나의 만족, 나의 행복,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현재적 만족에 있습니다.

 

이 큰 축복의 유산이 자손에게 이어지면서

다시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란다'는...

여기까지 확대되고 확실해 질 때, 거기에 성공도, 행복도, 축복도 있는 것이올시다.

 

▲발명왕 에디슨(Thomas A. Edison)은 청력이 약한 것으로 다 알려져 있습니다.

12살 때, 지금 막 출발한 기차를 타려고 달려가니까, 승무원이 애를 잡아줘야겠는데

팔을 잡아서 올려놓았어야 되는데, 귀를 잡아 기차에 올려놨어요.

 

얼마나 단단히 잡았던지, 그래서 왼쪽 귀가 나빠졌어요. 그때부터 청각을 잃었어요.

그 후에 오른쪽 귀도 나빠져서, 그는 청각이 아주 나쁜 가운데서 한평생을 살아갑니다.

(시각이나 청각은, 한 쪽을 잃으면 다른 쪽도 덩달아 잃게 된다고 합니다)

 

그는 그후로 ‘귀가 어둡다’ 하는 핸디캡을 가지고 살았습니다만

그는 그 핸디캡을 오히려 장점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까, 자신만의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열심히 책을 볼 수가 있었어요.

 

여러분, 차를 타고 다니면서 책을 가끔 보십니까? 일본이나 미국에서 종종 보죠.

그 시끄러운 데서도 딱 집중하는 사람이 있어요. 게다가 귀머거리면 더 좋을 거예요. 그죠?

 

이거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쓰고 있어요.

'나는 못 듣기에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책도 볼 수 있었고, 연구도 할 수 있어서... 오늘 내가 되었다'고요.

 

여러분, 우리가 가진 작은 핸디캡이나 혹은 불행,

그 속에 오히려 큰 성공의 비밀이, 행복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우린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말합니다.

 

행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저는 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여러 번, 수십 번, 수백 번 읽으면서 늘 감격해 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기를 바랍니다.

내가 여기 감옥에 갇혔다는 이 물리적 현상 말고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랍니다.

내 생각과 같기를 바랍니다. 내 믿음과 같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란다!’ 얼마나 굉장합니까?

이것이 선교요, 전도요, 교육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자기만족이 없거든, 누구에게 입을 열지 마는게 좋습니다.

자기만족이 없이 지껄이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거예요.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육이 안 되는 거예요.

(교수는 자기 만족이 있어야 되고, 자부심이 있어야 돼요)

 

자기만족은 없으면서, 남에게 강요하는 거는.. 잔소리가 되버립니다.

‘나는 공부 못했다. 너는 좀 잘 해라.’ 이렇게 되기 때문에 문제예요.

‘내가 잘못 살았다. 너는 좀 바로 살아다오.’ 될 거 같죠? 이게 안 됩니다.

이런 네거티브 방법으로는 교육이 이루어지질 않아요. 아시겠습니까?

 

▲저는 목회하면서 별의별 장면을 다 봅니다만,

언젠가 한번 교인 하나가 세상을 떠나게 됐다고 그래서 임종예배를 드리러 갔어요.

 

병원도 아니고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 남편은 술을 너무 좋아했어요.

언젠가 한 번 심방을 가보니까, 달력에 빨간색으로 동그랗게 표시해 놨더라고요.

 

그래서 저게 뭐냐고 물으니까 술 먹고 들어온 날이래요.

달력이 전부 다 빨개요.

 

다 큰 자녀들이 그렇게 달력에 표시했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술 먹고 들어오면 너무 시끄러우니까,

제발 술 안 먹고 들어오길 바라며, 이렇게 마킹을 했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안 믿고 온 집안이 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들이 셋이에요.

임종 때에 제가 보았는데,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가면서 쭈욱 돌아보더니

"내 한마디 할 테니까 잘 들어라. 술 먹지 마라." 그 유언 한마디 하고 죽었어요.

 

아, 그러면 이 아들들이 술을 안 먹어야 될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교회에 잘 다니는 그 맏아들이 있었어요. 잘 다녔어요.

그런데 언제가 한번 비가 막 오는 날... 지금도 제 눈에 선합니다,

 

우리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어요. 문을 열고 보니까 비를 맞으면서

그 아들이 서 있어요. 술이 만취 되 가지고 들어왔어요.

 

"목사님, 아시다시피 우리 아버지가 술독 아닙니까?"

"그래서 너희 아버지가 술 먹지 말라고 유언하지 않았느냐?"

"그랬죠. 그런데 유언 가지곤 효과가 없는가 봐요."

 

잘 들어두세요. 유언 가지곤 안 되더라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술을 안 먹기로 맹세를 했는데, 이 혈통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부정적인 본으로는 가르칠 수가 없어요.

'나는 못했으니 네가 하라.’ 이거는 안 됩니다.

 

내가 먼저 안 먹어야 되요. 내가 하고 나서 ‘나를 따르라’

이것만이 교육이고, 이것만이 효율이 있는 거예요.

 

▲요즘 뭐 많은 분들이 사회를 바로 잡겠다고 해서, 어두운 면을 쑤셔요.

남의 부정과 뭐 과거를 자꾸 쑤셔서 어떻게 합니다만... 해 보세요 되나?

고쳐지는 거 없다고요. 그건 소용없습니다.

 

그러면 Positive로 선회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 보세요.

자기가 본을 보이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만족이 없는 사람은

입만 열면 불만과, 실망과, 불평과, 후회와...

뭐 이런 것들을 통해서 사회를 바로잡고 자식을 바로잡겠다고 합니다만,

이건 안 됩니다.

 

이제라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다시 시작합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때가 와야 됩니다.

'나와 같기를 바라노라. 나와 같기를 바라노라.'

 

그래서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재판을 받는 시간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랍니다."

나의 믿는 바에 대한 만족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믿습니다. 복음을 믿습니다.

갈라디아 1장에 보면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말합니다. 절대적 신앙, 절대적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믿기를 원합니다. 또 내가 아는 바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알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식이라는 건 한번 지식을 가졌다가도

세상에 살다보면 좀 더 나은 지식이 있어요.

또 다른 지식이 생기면, 과거의 지식을 부인하게 됩니다.

‘아, 그때는 잘못 알았다. 이게 맞다.’

 

그러나 진리는 그렇지 않아요.

'전에 알았던 거 역시 옳은 말이야. 그 진리가 옳아. 옛날 그 진리가 옳아!’

그러면서 세월이 갈수록, 그 진리를 더 확증해 나가는 거예요.

 

살면서,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계속 확증해 나가는 것처럼 행복한 건 없어요.

그런고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아는 진리를 너희도 알기를 바란다.’

또 내가 행한 바가 있어요. 내가 살아온 길이 있어요.

 

그리고 나의 업적이 있고 실적이 있어요.

‘내가 살아온 것처럼 너희들도 살기를 바란다.

내가 목적한 것처럼 목적하고, 내가 사는 라이프 스타일을 너희들도 닮아 주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야에 말씀하십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이제 곧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만, 예수님은 후회 없습니다.

'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를 따르라고,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바울은 지금 그 감옥에서 사슬에 묶인 상태입니다.

언제 죽을런지 몰라요. 언제 죽어도 상관없어요. 깊은 곳에 충만함이 있습니다.

자기만족이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능력이 있는 겁니다.

 

은혜 안에 감사하고, 은혜 안에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해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것이 다 하나님의 경륜(경영) 속에 있기에...

 

그래서 '나의 당한 일이 복음의 진보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바라노라.' 빌1:12

바울은 자기의 수감이, 계속적으로 복음에 진보가 될 것을 확실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오늘도 간증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자식은 물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보면서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란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

여러분은 충만한 생을 살 수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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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고대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는 그의 철학적 연구로 유명했지만

그의 라이프스타일이 너무나 특별해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입니다.

 

속이 텅 빈 나무통 큰 것을 하나 구해서, 이걸 데굴데굴 굴리며 다니다가

밤이 되면 그 속에 들어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잡니다.

아침이 되면 그 나무통에서 나와서 아침 햇살을 쪼이곤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찾아가서 그로부터 철학을 배웁니다. 많은 사람에게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모습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소문이 점점 퍼지게 되어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이 그 이야기를 듣고

꼭 한번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말을 타고 물어물어 디오게네스가 있는 그 시골로 갔습니다.

 

말에서 내려 그를 보니 정말 기인 중에 기인이요,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문제는 그 얼굴입니다. 얼굴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요.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행복감이 얼굴에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소원이 뭐요? 내가 한 가지 소원은 무엇이든지 들어 주겠소!"

라고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에게 말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조금만 비켜 서 주세요. 내가 햇볕을 쬐고 있는데

당신이 가리어서 몸이 추워집니다. 조금만 비켜 서 주세요." 그는 의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떠나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 이건 참 유명한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