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지다 행18:1~11
본문은 바울이 1년6개월을 고린도에 머물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까
고린도 교회가 세워진 이야기입니다.
◑18: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바울서신 중에 고린도전후서가 있습니다.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이죠.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고린도전후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고린도 교회가 실제로 세워진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은 2차전도여행 중에 고린도를 방문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린도 교회가 세워진 최초의 현장으로 함께 가보겠습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1
그리스 지역은, 크게 북부 마게도냐와 남부 아가야 지방으로 나뉩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에게 해를 건너와서, 먼저 마게도냐에 도착했죠.
거기 마게도냐 에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를 개척합니다. 행16~17장
이제 배를 타고, 마게도냐에서 아가야 지방으로 내려옵니다. (아래 지도)
그리고 제일 먼저 아덴을 방문해서 전도하고, 다음에 고린도에 도착합니다.
고린도는 아덴에서 80킬로 떨어져 있습니다.
걸어서는 3일 정도 걸리겠죠.
고린도 도시는 그 당시에 세계적인 무역도시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고린도에는 2개의 항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개의 항구를 끼고 있었습니다.
위 지도를 보면, 고린도는 레케움과 겐그레아 라는 항구를 주위에 갖고 있었죠.
레케움 항구는, 이오니아 해 - 지중해로 이어지고 (서쪽)
겐그레아 항구는, 에게 해 - 지중해로 나가는 항구였습니다. (동쪽)
그런데 동쪽 바다(에게 해)에서 서쪽 바다(이오니아 해 - 지중해)로 가려면
엄청 뱃길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발칸반도 남단을 쭈욱 돌아가야 했었죠.
그러면 항해 시간이 많이 걸렸죠.
항해 시간만 많이 걸린 게 아니라, 이 뱃길이 무척 험했다고 합니다.
가는 길에 풍랑이 잦아서, 배가 남파되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고린도 사이로 운하를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지도에서 고린도 바로 위)
그런데 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 뚫었느냐? 19세기에 운하를 뚫었습니다.
아래가 오늘날의 고린도 운하 모습입니다.
사도행전 당시에는 이 운하를 뚫지 못 했습니다.
뱃길로 돌아가기는 힘드니까 어떻게 했을까요? 고린도 육지를 이용한 겁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동쪽 바다에 있는 겐그레아 항구에 정박된 배를
그 당시 고린도 사는 노예들이 끌어서 육지를 통과시켰는데 그 길이는 6.3킬로입니다.
아래 사진은 노예들이, 소를 동원해서 배를 끄는 모습인데요.
이 당시의 고린도 노예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노예들이 배 밑에 동그란 통나무를 깔아서
반대편 항구까지 육지를 통과시킨 겁니다. 그러니까 '육지 운하' 인거죠.
그런데 이 길을 지날 때, 통행료 toll 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 항구에 정박할 때 정박료를 받았습니다.
또 화물을 내리거나 올리면 화물 승하 비용을 받았고요.
또 화물을 운반하는 비용까지 받았습니다.
이 비용을 전부 다 고린도 시가 받았습니다.
자 그런데 단순히 배만 왔다 갔다 한 건 아니겠죠.
배를 탄 사람들도 함께 왔다 갔다 했겠죠.
그 사람들도 어쨌든 이 고린도 육로를 지나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냥 지나 가겠습니까? 숙박도 하고, 밥도 사 먹고, 여행도 하고, 술도 마셨을 겁니다.
그러면 거기서 생기는 수입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도시가 고린도 였습니다.
그래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 크게 번성을 누렸던 세계적인 대 도시가
고린도였습니다.
더군다나 고린도에서는 격년으로 이스트미아 제전이 열렸습니다.
고린도 근처 들판에서 열렸습니다.
오늘날 올림픽과 같은 개념입니다.
그런데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열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이스트미아 제전은, 2년에 한 번씩 열렸습니다.
그러면 또 많은 돈을 벌었겠죠.
그래서 이래저래 고린도는 굉장히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로마, 에베소와 함께, 로마제국 3대 도시로 불린 곳이 고린도였죠.
인구도 굉장히 많이 살았습니다. 당시 고린도 인구가 70만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아덴의 인구는 2~3만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가 70만이니, 아덴보다 수 십 배 컸던 도시가 고린도였습니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부유하고 풍요한 도시가 고린도 였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만큼 또 도덕적으로 타락한 도시가 고린도 였습니다.
당시에 가장 타락한 도시가 이 고린도 였습니다.
고린도는 항고 도시라고 했었죠. 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은, 뱃길의 안전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는 많은 신전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유명한 신전이 아프로디테 (비너스) 신전이 있었고요.
이 신을 섬기는 신전에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항해 다녀올 수 있도록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 신전에는 여자 사제들이 있었습니다.
여자 사제들은 사실 매춘부 였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고 나면, 이 여자 사제들 하고 성관계를 가진 거죠.
그런데 이 여자 사제들이 그 아프로디테 신전에 1천명이나 상주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매춘이 일어났겠습니까?
온갖 음행이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고린도 도시는, 음란하고 방탕한 도시로 소문이 자자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린도전후서에 보면, 성도가 된 이후에도
고린도 교회에 성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는 양면을 가진 도시였던 거죠.
한편으로는 가장 부유한 국제 도시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당시 고린도를 가리켜서 '유럽의 라스베가스' 라고 부릅니다.
돈과 쾌락과 욕망이라는.. 육신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고린도에 집약되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고린도는 타락한 곳입니다.
▲자 이런 곳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사실 소망이 없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정말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그걸 우리는,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바울은 혼자 고린도에 도착 하죠.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마게도냐(데살로니가 혹은 베뢰아)에 남아 있습니다.
누가는 빌립보에서 교회를 돌보고 있었고요.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 고린도에서 사역을 하려면 동역자가 필요했습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이 미리 보내어 주신 동력자가 있었습니다.
◑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본도에서 난 유대인'
남편 아굴라는 본도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본도는 터키 북부, 흑해와 인접한 지역이죠.
베드로전후서도, 바로 이 본도에 사는 성도들에게 보내지기도 했죠. 벧전1:1
그의 아내는 브리스길라 였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그녀는 로마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브리스길라'라는 이름 자체가, 로마식 이름이요, 귀족 가문의 이름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아굴라가, 로마에 가서, 브리스길라를 만나 결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부는 원래 고린도가 고향이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던 거죠.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그 당시에 글라우디오 로마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에 사는 유대인들은, 전부 다 로마를 떠나야 했습니다.
당시 문헌에 따르면, 유대인들 안에 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과, 믿지 않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종교적 격변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분 확인 요
로마 황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골치가 아팠겠죠.
'아휴, 저 유대인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그냥 유대인들을 몽땅 로마에서 추방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때가 AD 49년 경이었는데요.
이때 이 부부도 로마에서 추방을 당해 고린도로 이주해 온 겁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이 고린도에 오게 되었는데 *2차전도여행 중
이때가 AD 50년 경이 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고린도에 오기 전에,
하나님은 이 부부를 먼저 고린도에 옮겨 놓으신 겁니다.
자 그런데 기가 막힌 게, 고린도에서 이 부부가 천막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바울 역시도 천막을 만드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가정 교육에는, 어려서부터 무조건 기술을 하나씩 배우도록 했습니다.
적어도 생계수단은 하나 가지고 있으라는 거죠.
바울이 태어난 다소 라는 곳은, 천막 만드는 기술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어려서부터 천막 만드는 기술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바울은 이 부부를 찾아간 것 같습니다.
같이 천막제조업 동업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생활비를 이제 바울이 스스로 충당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서로 연결이 되었는데, 알고보니까
그들은 서로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마 로마에서 예수님을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바울과 직업이 같습니다. 또 믿음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혼자있던 바울에게, 동역자들을 붙여주셨던 것입니다.
너무나 기막힌 하나님의 섭리 아닙니까?
자 바울은 혼자 쓸쓸히 (아덴에서) 고린도로 왔습니다.
자 그런데 이 타락한 도시에, 하나님이 동역자를 미리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이 믿음의 부부를, 고린도로 보내셔서 자리를 잡게 하셨습니다.
자 그래서 혼자 온 바울을 돕도록 하십니다.
본문 3절에 '함께 살며'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부부의 집에 함께 살았다고 나옵니다.
아마 바울이 얹혀 살았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싱글이니까
부부의 집에 얹혀 살면서, 이제 식사 문제와 주거 문제가 동시에 해결된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바울의 사역을 도왔습니다.
바울이 사역을 하는 동안 평생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로마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롬16:3~4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이때 브리스길라 부부가 로마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아굴라 부부에 대해 뭐라고 소개하죠?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그러니 이 부부가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고린도같이 어렵고 척박한 땅에서, 마치 봄날의 햇살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자 덕분에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평일에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동업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동업을 통해 이제 바울은 자기 생활비를 충당을 했을 것이고요.
그리고 틈 나는대로,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그런데 이들만 만난 게 아니었습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또 다른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실라와 디모데입니다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실라와 디모데는, 마게도냐에서 개척한 교회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들이 고린도로 내려와 바울과 합류한 것입니다.
그들은 고린도로 내려올 때, 바울의 생활비를 가지고 왔습니다.
고후11: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죠. *3차전도여행 중
이 편지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했던 당시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2차전도여행 중
그 편지에서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형제들이 본문 5절의 실라와 디모데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올 때,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선교헌금을 가지고 왔다는 말입니다.
마게도냐 형제들이 헌금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바울은, 주중에 텐트를 만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생활비가 충당 되었으니까요.
그 결과 바울은, 본격적으로 사역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자 이때부터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고 말합니다. :5
이때부터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헌신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했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분위기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찬물을 끼얹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여러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늘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먼저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거죠.
그리고 믿게 된 유대인들을 연결 고리로 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너무나도 적대적 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지역들에서도 적대적인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믿는 유대인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는,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저항을 했습니다.
얼마나 저항을 했느냐? 6절을 보겠습니다.
◑18: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들(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여'
대적은 헬라어로 '안티타쏘' 라는 단어인데요. *oppose, 전투에서 전열을 정비하다
이 단어가 사도행전 안에서 유일하게 여기에만 나옵니다.
그러니 고린도의 유대인들에게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전투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조직적으로, 집단으로 전투를 하듯이 덤벼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굉장히 과격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6
여러분, 이런 바울의 표현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다른 지역에서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No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반대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도 있었죠.
그런데 바울이 이런 반응(:6b)을 보인 것은, 고린도가 유일합니다.
옷을 털었다고 나옵니다. 먼지가 있어서 턴 게 아니겠죠.
'나는 이제 아예 너희와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옛날에 조선시대 사극에 보면, 도포 자락을 탁 털어 버리는 장면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이제는 너네하고는 끝이다' 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피는 죽음을 말하죠. '이제 너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거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일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는 거죠. 그러니 심판에 대한 책임은 너희에게 있다는 겁니다.
바울이 생각할 때는,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노선을 바꿉니다.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로 노선을 바꿉니다.
여러분 이때 바울의 마음이 어떠 했겠습니까?
고린도는 너무나 타락한 땅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조직적으로 전투를 벌이듯이 *'대적하여' 안티타쏘 :6
바울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바울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 고린도는 정말 안 되는 곳인가 보다. 이곳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땅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만 해야겠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다...
여기는 정말 라스베가스 인가보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이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갑자기 예수님을 믿게 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18: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디도 유스도 라는 사람이 예수를 믿습니다.
디도 유스도는, 고전1:14절에도 나옵니다.
고전1: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여기 나오는 '가이오'가, 오늘 본문의 디도 유스도와 동일한 인물입니다.
(왜냐면 지금 본문 행18:7~8 에는, 디도 유스도와 그리스보만 믿었다고 했고,
고전1:14절엔, 그리스보와 가이오가 나오니까, 두 구절을 겹쳐서 보면...)
이 디도 유스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 말은 '이방인인데 유대교를 믿는 자'라는 뜻의 관용어 입니다.
그러니까 디도 유스도는 회당을 다니던 자입니다.
회당 안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갑자기 바울이 회당을 떠나려 하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혀 안 믿었는데, 이방인 유대교 신자가 복음에 반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낙심한 바울에게 위로의 열매를 주신 거죠.
자 그래서 드디어 고린도 교회가 세워 집니다.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고린도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8:7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에서 고린도 교회가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이 뿐만 아니라, 회당장 그리스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회당장이면 적군의 수장이죠.
그렇게 바울을 핍박을 했던 그 회당의 우두머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놀라운 기적 아닙니까!
자 그리스보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도 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고린도 사람(이방인)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낙심한 바울에게 위로를 주시는 거죠.
참 어려운 고린도에서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사역이 참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사역을 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바울도 그런 번 아웃을 느낀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땅은 참 전도가 어려운 땅입니다.
여전히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고린도에서 처참할 정도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격의 모욕을 당할 정도로 고생을 했습니다.
바울이 설교를 열심히 전했는데, 듣는 고린도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 복음 앞에 반응한 게 아니라, 바울의 언어를 가지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언어가 어눌했다'는 겁니다.
이게 실제로 고린도서에 나옵니다.
'(바울을)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고후10:10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고후11:6
그러니까 바울이 설교하는 게, 얼마나 위축되고 두려웠는지 잘 알 수 있죠.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여러분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한 경우가 언제 있었나요? 없죠.
바울은 고린도에 있을 때만 '내가 약했다. 두려워 했다. 심히 떨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만 해야겠다. 고린도를 떠나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이 그런 바울을 찾아와 주십니다.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하나님이 바울을 붙잡아 주십니다. 세 가지 말씀을 주시는데요.
-두려워하지 말라 .. 바울이 두려워 했다는 거죠.
-침묵하지 말라 .. 침묵했다는 거죠. 더 이상 말씀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죠.
-말하라 .. 바울은 선교를 그만두고 싶었으니까, 떠나고 싶었으니까, 아무 전도의 말도 안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머물러 말하라. 사역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주시는 주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 약속이 10절에 나오는데요.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구원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이, 아직도 많이 고린도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붙잡아 주신 겁니다.
그 결과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렀습니다.
이제까지 바울의 전도여행 중에, 1년6개월은 굉장히 오래 머문 기간입니다.
여러분 다른 도시에서는 3개월 이상을 바울이 머문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 3차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3년을 머뭅니다.
2차전도여행 때는, 여기 고린도에서 1년6개월, 제일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이때 고린도에 머물면서 쓰게 된 편지가, 데살로니가 전후서 입니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오늘 본문의 고린도 교회 였습니다.
◑적용
이제까지 고린도 교회가 세워진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본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명하게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붙드시고,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보게 됩니다.
그 어느 도시보다 타락하고 어려운 도시가 고린도 였습니다.
자 그만큼 바울도, 낙심했던 도시가 고린도 였습니다. :9
자 그러나 바울은 1년6개월간 고린도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1
바울의 남다른 열정과 비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 도시보다 고린도에 더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그때마다 붙잡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교회가 고린도 교회입니다.
'바울이 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바울이 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고린도에 필요한 동역자인
믿음의 부부를 앞서 보내 주셨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믿음의 부부를 바울에게 붙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고린도에서 판을 깔고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실라와 디모데를 보내주셔서, 바울이 복음에만 전념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고린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 빌드업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회당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회당을 다니던 디도 유스도를 갑자기 믿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회당장인 그리스보가,
그렇게 바울을 핍박했던 유대인들의 우두머리 격인 그가 예수를 믿고 하십니다.
낙심한 바울에게 하나님은 위로를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계시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바울은 벽에 부딪혀서, 고린도를 아예 떠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이 직접 바울을 찾아와 주셨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평생을 살면서, 예수님을 만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 것 같습니까?
성경의 기록만 놓고 보면, 정말 몇 번 없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갈 때 예수님이 바울을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게 예수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바울에게 언제 나타나셨는지 아십니까?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시도행전에서 지금까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이 장면에서, 바울에게 나타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뒤에 보면,
예수님이 바울에게 직접 나타난 장면은, 딱 한 번 밖에 더 나오지 않습니다.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행27:23
그러니까 특별히 주님은 고린도 교회를 세우실 때, 바울에게 나타나 주셨습니다.
그만큼 바울이 낙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찾아와서는, 그런 바울에게 위로를 주시고, 확신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그래서 바울은 1년6개월의 긴 시간 동안, 고린도에서 머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그래서 고린도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교회라는 것입니다.
모든 과정의 첫 출발부터 마지막 과정까지가
다 하나님의 작품, 하나님의 빌드업(점점 세워감)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교회가 고린도 교회입니다.
왜냐면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려고 했으니까요.
'그만하자' 하고 툭툭 털어버리고 떠나가려고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바울을 붙드시고, 교회를 세우고 계셨습니다.
▲자 그래서 바울의 유명한 고백이 있지 않습니까?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오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여러분 이 바울의 유명한 고백이, 어디서 고백됐는지 아십니까?
고린도 교회를 세울 때 고백된 말입니다. 고린도전서에 나오니까요.
고린도 교회를 세울 때 바울은, 어떤 도시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선명히 경험했던 것입니다.
자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고린도 교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왜 이 말을 하는지 아십니까?
사실 지상의 모든 교회가, 고린도 교회 처럼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참된 교회는, 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입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게 아닙니다.
다른 교회들은 평범한 교회여서, 대충 그냥 일반적인 은혜를 주신 게 아닙니다.
여러분 큰 교회들은 특별한 은혜를 주시고,
그냥 작은 동네 교회들은 일반적인 은혜를 주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이름 없는 교회들,
우리처럼 '당신은 어느 교회 다닙니까?' 라고 물으면
'그냥 집 앞에 있는 교회 다닙니다.' 라고 얘기하는 그런 교회들에게도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 땅의 교회는, 성도가 많건/ 적건
이름이 있던/ 없던
모든 교회가 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세운 교회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목양하는 목사들을 붙들어 주고 계십니다.
마치 바울을 붙잡아 주셨듯이, 목사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목사 뿐만이 아니겠죠. 지금도 하나님은 누군가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성도들이 헌신하도록 하십니다. 마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요.
그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교회를 통해, 영혼을 구원해 내고 계십니다.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으니'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교회로 친히 보내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믿음도 친히 주십니다. 누가요? 하나님이요.
그래서 함께 교회를 세워 가도록 붙여 주십니다.
마치 디도 유스도 와 회당장 그리스보 처럼요.
그렇게 교회에 필요한 벽돌 한 장 한 장이 쌓여 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친이 빌드업 하십니다.
한편으로는 목사를 붙들어 주시고, 한편으로는 성도들을 붙여 주시고
하나님이 직접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주시는)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로, 쉬지 않으시는 그 분의 신실하심으로
오늘도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
제가, 다른 교회의 목사님이나, 다른 교회에 다니는 성도님들과 대화를 하면
꼭 느끼는 게 있습니다. 저마다 다 교회에 대한 간증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세우기 까지, 그리고 그곳에 자리를 잡기 까지,
그리고 이렇게 지금까지 사역을 하기까지, 하나님이 이렇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는 간증 들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간증이 없는 곳은, 한 교회도 없습니다.
모든 교회들이 기가 막히게, 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교회 뿐만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가정과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요. 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간증들이 있습니다.
가정마다,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들이, 때마다 시마다 다 있었습니다.
각 개인의 삶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고비마다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여기까지 붙잡혀 온 것 아닙니까.
사실 오늘 고린도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들이
우리 교회의 고백이고,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삶에 대한 고백입니다.
사실 우리가 또 다시 한 주간을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붙들고 있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바울이 고린도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도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에게 찾아 오셨던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도 찾아 오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9~10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교회와 가정과 삶 가운데도 들려지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우리가 낙심하고 지칠 때마다
우리를 붙드시고 위로하시는 이 하나님의 은혜로
한 주간도 넉넉히 승리하며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