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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알게 되면

LNCK 2024. 6. 2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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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든 만족의 열쇠다 | 2024-0616 - YouTube 정리

 

하나님을 알게 되면       엡3:18~20

 

※ 3단락, ‘◑3. 하나님을 아는 유익’이 하이라이트입니다.

 

오늘부터 “하나님 탐구”라는 주제로 시리즈 설교가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요?

 

‘하나님 탐구’ 이 주제의 말씀은 너무나 우리의 삶에 중요하고 굉장히 감동적이고

흥미롭고 힘든 주제입니다.

 

잠2: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이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해야 하는 그 의미를 기록하고 있는

보석 같은 말씀입니다.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보물을 찾는 것처럼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처럼

하나님을 찾으면,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은 보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보배를 숨겨진 채로 그냥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하나님에 대해서 발견하고,

그 하나님이 얼마나 귀한 보배인지를 깨달을 때

우리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이 변화되는 그런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하나님은 모든 만족의 열쇠다’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우리에게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우리들의 삶에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상태인가요?

-나는 뭔가 모자란 것을 느낀다. 삶에 결핍을 느낀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까봐 걱정된다.

-나는 항상 내 기대에 못 미친다.

-나에게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나는 외로울 때가 있다.

-나는 걱정이 많다.

-나는 무력감을 느낀다.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즐기지 못한다.

-나의 생활은 지루하다.

-나는 하나님과 멀게 느껴진다.

 

이게 바로, ‘삶의 만족이 없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위 현상이 모두 반대로 나타납니다.

 

-나는 삶에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나는 행복하다.

-나는 항상 내 삶에 만족한다.

-나에게는 스트레스가 없다.

-나는 외로울 때가 없다.

-나는 걱정이 없다.

-나는 무력감을 느낄 때가 없다.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즐긴다.

-나의 생활은 지루하지 않다.

-나는 하나님과 가깝게 느껴진다.

 

이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

즉 하나님을 누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결핍과 모자람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결핍, 부족, 질병이나 아픔, 괴로움, 절망,

염려 걱정, 슬픔, 이런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치료할 수 있는

약이나 치료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네, 치료법이 있습니다!

 

▲그 치료법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그 치료법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한 번에 고칠 수 있고,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고,

이 모든 것에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마치 부부가 서로를 알 듯이 ‘친밀해짐’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유일한 열쇠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9주 동안

① 하나님은 모든 만족의 열쇠다.

②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③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④ 하나님은 여기 계신다.

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⑥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⑦ 하나님은 통치하신다.

⑧ 하나님은 변치 않으신다.

⑨ 하나님은 선(good, 좋으신 분)하시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의 속성이 성경에는 참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살펴보면서 우리들의 삶이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지만, 우리의 삶이 많이 변화되거나 강력한 능력의 삶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 말씀이 우리의 머리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내려오고 우리의 삶에 적용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이 내 삶에 적용되고 나를 변화시키게 해주십시오.’

이런 마음을 가지고 9주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상고하기를 원합니다.

 

또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이미 알고 있지만

왜 이것이 우리들의 삶에 강력하게 역사하지 못하는가?

우리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하나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내가 맞추고 생각하는 하나님이기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에 대한 굉장히 다양한 반응들을 합니다.

 

‘하나님 섭섭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으로 나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우리의 삶의 태도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내 생각 안에 가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만들고, 자기의 생각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자기 생각을 초월하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생각의 BOX를 부서뜨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한계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던 내 지식, 나의 지혜, 나의 사고, 나의 이성, 나의 이해력,

이 모든 것을 다 깨뜨리고 진짜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때 우리들의 삶은 변화될 것입니다.

 

◑1. 우리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사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다릅니다.

 

“네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르다. 네가 생각하는 그 하나님이 내가 아니야.

나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내 생각은 높아.”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이해력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이성들, 그 모든 것을 다 합한다 해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두뇌를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가 있고,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경험할 수 있는가 그 말입니다.

 

예를 들면 달팽이에게 ‘내가 누구인지 너에게 얘기해 줄 테니까 네가 좀 이해해라’.

이렇게 자기 자신을 달팽이에게 소개한다고, 달팽이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전혀 모르지요.

 

왜냐하면 달팽이와 우리 사이에 그 지적인 능력과 이성과

그리고 생각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우리가 하나님 바라보면서

그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하신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네 힘으로는 나를 이해할 수 없지만,

내가 네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나를 만나도록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주겠다.

나를 너희들에게 나타내 주겠다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드러내 보여주시고, 우리 안에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조정하시고, 만들어 주시고, 개념을 주시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암4:13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만물을 지배하시고 통치하시는 그분이

자기의 뜻을 사람들에게 보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그만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어떻게 스스로 계시하시는가? (드러내시는가?)

 

▲1. 창조물을 통해서(일반계시)

 

시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시는 세 가지 도구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창조물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만물이 하나님이

누구이신 것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입니다.

자연 만물들이 하나님이 누구시라고 소리치고 노래하며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는 이 계시를 일반계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창조물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별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크신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나뭇잎이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는 걸 보여주는데

뿌리를 통해 영양분이 줄기를 타고 잎사귀까지 전파되고

햇빛을 통해 탄소동화작용을 하면서 성장하는 과정들

이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정확하시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숲, 꽃들, 자연들, 절벽, 파도, 바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을 찾아서 그 자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우리들을 향하여 외치는 소리 혹은 속삭이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말씀을 통해서(특별계시)

 

히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

신 하나님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도무지 우리들의 생각과 우리들의 한계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드러내시되 자연을 통해서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드러내신다고 오늘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데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노래로, 때로는 시로,

또 어떤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역사를 통해,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심지어 비참한 이야기 또는 범죄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작가이십니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독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잘 만질 수 있을까?’

온통 독자들만 생각하면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작가입니다.

 

우리 위대하신 작가이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잘 이해할 수 있는지를 아셔서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가까이하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3.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요1:12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것을 보여주셨는데

사람들이 그 말씀만 듣고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되었을 텐데,

하나님의 사랑을 잘 모르니까,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최후의 수단으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빌립이 ‘예수님, 하나님 좀 보여주세요.

아버지 좀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창조물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아는 유익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오늘, 이 말씀을 결론짓는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주제인 하나님을 알 때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세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세 가지는 에베소서에 나와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쓴 책입니다.

감옥에서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심을 알고 그 자기가 아는 그 하나님을

감옥 밖에 있는 에베소 교회 성도 너희들도 하나님을 알기를 원한다.

내가 감옥에 있지만 내가 하나님을 아니까

내가 이런 기쁨과 감격 속에서 매일매일 살아간다.

그러니 너희들도 하나님을 알기를 원한다. 이런 마음으로 쓴 성경이 에베소서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17절)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하나님 탐구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그 계시의 영(성령)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을 잘 알게 하기를 원한다. 그 원하는 것이 얼마나 크냐면

“아버지 앞에 내가 무릎을 꿇고 비노니”(엡3:15)라고 기도하면서

저들이 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사도 바울의 기도를 보면 우리가 계시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다는 사실인데 그렇게 알게 될 때

우리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1. 내 안에 (변화의)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전에는 몰랐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능력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미 나는 굉장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것을 알지 못해서 굉장한 사람으로 살아가지를 못하고 있는데

이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그의 능력이 어떤 능력인가요?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20절)

이런 어마어마하고 또 위대한 능력이 너희 안에 있음을

알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왜 우리에게 왔을까요?

 

그 능력을 얻을 자격이 있어서 그 능력을 얻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그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을 얻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그 능력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착하게 산다고, 교회에 와서 뭘 바친다고 그 능력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 능력을 얻는 자격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으십

니까? 그렇다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할렐루야 우리는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능력이 있지 알았어, 그리고 머릿속에 두고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내 가슴으로 내려오고 내 삶에 작동해야 합니다.

 

이 능력이 어떤 능력인지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시고, 어마어마하시고, 대단하시므로

사도 바울은 그 하나님의 능력을 묘사하는 부사 형용사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 능력의 위력과 크기에 대해 영어 성경은 굉장히 많은 단어들을 표현하고 있는데

Great Power 위대한 능력, Incomparable Power 비교할 수 없는 능력,

Mighty Power라고 그랬어요.

 

이렇게 굉장히 많은 형용사와 부사들을 사용하면서 우리에게

그 능력이 너희에게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의 삶에 적용될 때

우리들의 삶에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절망을 이길 수 있는 능력,

그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

질병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

삶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며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 능력,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이 능력만이 진정한 능력입니다.

 

이 세상이 이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용서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은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쟁을 향하여 달려가고, 분열을 향하여 달려가고,

멈춰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살아갑니다.

 

화해의 능력이 없고, 용서의 능력이 없고,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계속해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변화된 사람의 간증 이야기

제가 목회하면서 만난, 수없이 많은 변화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예수 믿기 전에 저 삶은, 정말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그런 악한 삶이었고,

세상에 어떤 것도 어떤 것도, 내 삶을 수십 년 동안 바꾸지 못했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를 이렇게 바꿨습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변화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내 삶이 변화된 것은 예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이렇게 변화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이렇게 간증합니다.

 

“오늘은, 제가 술을 끊은 지 29년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자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기쁨으로 울기 시작했어요.)

 

때로는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가진 문제, 그가 가진 그 엄청난 문제들,

그 괴로운 문제들, 그 어려움들 다른 사람들도 겪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겪은 고통을, 여러분들도 한번 겪어 보세요’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요.

‘내가 잃어버려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고

나를 그냥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절제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능력과 성령의 충만을 주시는 그런 능력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이것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도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얘기합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공문서를 받아 가지고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났어요. 나를 이렇게 변화시킨 그 하나님을 당신들도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바로 그 문제,

어두움의 문제, 절망의 문제, 우울증의 문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문제,

용서하는 문제, 원수 갚는 문제 등 내 삶의 어려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이 능력이 나에게 있어요.

 

▲2.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

 

엡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잘 모르면,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내 생각대로 내 삶이 이루어지지 않고 어려움들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사도 바울은 우리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알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 사랑의 이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그림으로 그렸는데

그 그림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 네 가지

그 사랑의 크기를 다 담고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의 사랑은 너무너무 커서 그 예수님의 사랑에 들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고,

그 예수님의 용서에 해당하지 않을 용서가 없고,

그 예수님의 사랑과 그 능력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까지 미쳐서 2천 년을 계속해서 그 길이가 길어지고 길어져

오늘 우리에게까지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그 길이는 늘어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깊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역사는 그 깊이가 지옥에 닿을 정도의 깊이입니다.

 

우리는 지옥에서 영원토록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예수님 사랑의 손이 지옥까지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높은지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거기서 끄집어내서

높이 하나님 나라 천국까지 우리를 높이 올리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의 깊이와 높이, 이것을 깨닫게 하기를 사도 바울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자상하고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는 아빠가 굉장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이러면 하나님께서 또 노래를 불러주세요.

아니다. 아니다. 이때 우리들의 삶에 무슨 일이 생기는 줄 아십니까?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시기를 구하노라.”(19절)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채워진다. 근데 이미 우리 안에 충만한 것들이 있어요.

돈으로 충만한 사람, 돈에 대한 욕심으로 충만한 사람, 뉴스로 충만한 사람,

유튜브로 충만한 사람, 하루 종일 그것만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짓, 분노, 괴로움, 원한, 자기 생각, 자기의 정욕, 자기의 목적 이런 것들로

충만한 사람 이제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없어지면서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그 역사를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탐구하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사람이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훈계, 교육, 징계, 당근과 채찍... 이런 것으로 별로 효과 없습니다.

어떤 외형은 잠시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내면은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그 용서를 깨달을 때입니다.

그때 사람은, 완전히 내면이 새로워지고, 그야말로 새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3. 나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엡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이것이 우리의 가능성입니다. 우리가 가

지고 있는 것보다, 그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주실 그 가능성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알수록 우리는 그 가능성을 더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것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한한 가능성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그 가능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신다고 지금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모습이

여러분들의 최고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더 주실 것이고 더 풍성하고 더 위대하게 만드실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가지는 축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가지는 유익입니다.

 

마치는 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어떤 사람이 발견하고

그 밭을 사기 위해서 자기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보화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보화를 캐내 갈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자기 있는 것을 다 쏟아부었어요.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샀습니다.

우리에게 오늘, 이 교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았다면,

우리는 이 보화를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보화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환해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투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투자해야 할까요?

 

여러분 이제 돈 가지고 오세요. 그렇게 우리에게 소리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에 공간을 만드십시오. 여러분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그것들 이제 팔아야 해요.

 

그것들 다 내려놓고 시간을 따로 확보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날 시간, 성경을 읽을 시간, 하나님을 묵상할 시간

 

이번 주에 여러분 시간 내서 북한산 자연 속에도 한 번 올라가십시오.

여러분 시간을 내서 자연 속에 한 번 들어가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시간을 내서 여러분들이 그것을 위해서

여러분들의 시간을 팔고 시간을 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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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직접 만드신 포도주는 이전 것의 연장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완전히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그렇습니다. 주님은 새로운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새로운 삶이 됩니다. 이전 삶의 연장이 아니라 새 것이 됩니다.

이 땅의 삶에는 새 것이 없습니다. 새해가 되어도 새롭지 않습니다.

달력만, 연도만 바뀐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도다”라고 말합니다(전1:9).

 

하늘 아래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은 거기서 거기라는 뜻입니다.

예수를 진짜 만나면, 예수가 내 안에 찾아오시면 새로워지게 됩니다.

새롭게 되었다는 말은 존재론적인 변화, 근본적인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물과 포도주는 전혀 다른 물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를 진실로 믿으면,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고 삶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일어난 사건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며, 돈을 버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모든 게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약간의 개조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찾아오실 때 이런 변화가 일어나야 정상인 것입니다.

 

내가 변화면 모든 게 바뀝니다. 가족도 새로워 보이고 교회도 새롭습니다.

예배의 포맷을 바꾼다고 예배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변하면, 내가 새로워지면 달라집니다.

 

♣시몬 비젠탈(Simon Wiesental)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몬 비젠탈은 2차 대전 때 아유슈비츠에서 아내와 부모와 자녀를 모두 잃습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이 수용소에서 살아만 나간다면 나찌들에게 반드시 복수하리라’

결심하고 절치부심(切齒腐心) 하면서 하루 하루를 견딥니다.

 

그러다가 1945년 독일이 항복함으로써 2차 대전이 끝나게 되지요.

전후(戰後)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동족들이

그렇게 많이 학살됐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연합군측으로부터 자료를 넘겨 받은 후에야 약 600만에 달하는 동족이

희생됐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답니다.

 

그때로부터 이 비젠탈을 비롯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아직 살아남은 독일 전범(戰犯)들을 찾아서 복수하려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시몬 비젠탈은 이곳 비엔나와 린쯔에 ‘전범 기록 연구소’라는 연구소를 만들고

유태인을 학살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모으기 시작하지요.

 

물론 히틀러는 자살해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 아래 아주 중요한 전범들 상당수는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배에 금괴를 싣고

남미의 브라질이나 칠레,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로 가서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원수들을 찾아서 복수하는 게 비젠탈의 일이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1960년 5월, 이 비젠탈은 전 세계 사람들이 놀랄 만한 일을 터뜨리죠.

 

유태인 학살에 가장 앞장 섰던 나찌의 제 2인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하게 됩니다.

 

당시 전쟁이 끝난 지 15년이 된 시점에서 아이히만은

변장을 하고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히만이 잡혔다는 소식이 뉴스를 타고 전 세계에 알려지자

유대인들 사이에는 “저 아이히만은 죽일 놈이다 히틀러보다 더 나쁜 놈이다”

그러면서 그의 처리에 대해 논란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왜 안 그랬겠습니까?

아마 돌로 쳐 죽이거나 찢어 죽이거나 아니면 생매장을 한다 해도

유대인들의 분노는 삭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 비젠탈이 웬일인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주 유명한 말인데.. 우리도 일본을 향해서 가끔 이 사람의 말을 인용하지요?

“용서하자! 그러나 절대로 잊지는 말자!” 그럽니다.

 

그리고 이 처리는 인간적 감정으로 복수할 게 아니라

정당한 재판 절차를 거쳐서 처벌을 받도록 하자고 호소합니다.

 

결국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아이히만은 재판에 회부됐고,

체포된 지 2년 만에 뉘른베르크의 전범 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형 집행을 당해 죽습니다.

 

비젠탈이 쓴 책 중에 ‘나는 아이히만을 사냥했다’ 라는 책이 있는데

그 얘기는 영화로도 나와서 저도 아주 오래 전에 본 기억이 납니다.

 

왜 비젠탈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전 생애를 다 바치면서 잡은 원수를

자기들이 처리하지 않고 그렇게 국제 사회의 재판정에 세웠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오늘 드릴 말씀과 연관해서

비젠탈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선조들의 뜻을 일부 따른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과실치사자들을 위한 도피성의 원칙을, 살인자인 아이히만에게도 적용해서

오히려 동족들로 이 사실을 더 오래 동안 기억하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살인자가 정당한 재판을 받을 때까지 도피성에서 기다리는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