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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광야의 세 가지 교훈 출16:1~12 2014.12.14.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재 ‘멤피스’라고 하는 ‘라암셋’에서 출애굽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숙곳’으로 갔는데, ‘숙곳’은 ‘짐승의 우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짐승을 기르는 지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숙곳에서 광야 끝 ‘에담’이라는 곳으로 이동해서 진을 쳤다가,
북동쪽으로 열흘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은 남쪽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비하히롯 앞 바알스본 맞은 편 홍해 앞에 서게 되었고,
진을 치고 있다가 홍해가 6km나 갈라지는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따라오던 애굽의 군대가 모두 수장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원수들을 멸하시는 분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수르 광야를 거쳐 3일 만에 도착한 곳은 ‘마라’였습니다. ‘마라’는 ‘쓰다’는 의미였습니다.
룻기를 보면 나오미라는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 이름의 뜻은 ‘즐거움, 기쁨’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방 땅 모압으로 이민 간지 10여년 만에 남편을 잃고, 두 아들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말했습니다.
마라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갈증이 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의 물이 써서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세를 향해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무 하나를 가져다가 쓴 물에 던지라고 하셨고,
곧 물이 달아져 많은 사람들이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라를 지나 엘림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곳은 물 샘이 열 두 개가 있는 오아시스였고,
70그루의 종려나무가 서 있었기에 안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지는 엘림이 아니라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형편이 조금 좋아졌다고, 그 곳에 계속 머무르고자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는 엘림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이 우리의 목적지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내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신 광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 여정에서 중요한 세 광야가 있는데,
첫째가 수르 광야, 둘째가 신 광야, 셋째가 시내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 신 광야에서도 불평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불평을 들으시고 두 가지를 내려주셨습니다.
첫째는 저녁에 내리는 메추라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출16:13
(*그런데 만나만 계속 먹었지, 메추라기는 계속 먹지 않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둘째는 아침에 내리는 만나였습니다. 아침에 이슬이 내린 후 마르면 희고 동글동글하고
꿀 섞은 과자와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그 히브리 발음이 “만후?”였습니다.
그래서 칠십인역을 만든 장로들이 이것을 ‘만나’라고 번역하였던 것입니다.
시78:25절에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하나님이 식물을 충족히 주셨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만나를 ‘천사의 음식’이라고 불렀습니다.
출 16장 35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는데, 고혈압이나 당뇨에 걸린 사람도 없고
말라 죽은 사람도 없었던 그야말로 천사의 음식이었습니다.
또 생긴 것이 갓씨와도 같았던 이것은 요6:32절에 ‘하늘에서 내린 떡’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 6:32).
‘갓’은 ‘고수’라고도 하는데, 베트남국수에 들어가고 특유의 향을 가진 미나리과에 속한 풀입니다.
그 씨가 갓씨인데 희고 동그랗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200만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만나를 하루에 한 오멜씩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출 16:16).
오멜을 환산하면 2~3리터가 되는데, 이를 계산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에 먹은 만나의 양은 4,600톤이 됩니다.
1톤 트럭 4,600대가 공급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40년 동안이나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며
분명한 세 가지 교훈을 주시고 가르치셨습니다.
◑1.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공급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도해서 받은 것도 많이 있지만,
기도하지 않고 받은 것이 더욱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것은 전부 기도해서 받은 것들은 아닐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미리 아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받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서 만나를 먹기 시작한 것은 출16:1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이라”
‘두 번째 달 십오일’부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나고 15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라암셋을 발행한 지 45일 된 것입니다.
이 때는 애굽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온 식량들이 다 떨어지게 된 때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던 자원이 떨어지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공급이 시작됩니다.
시편 68:7~10절에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 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산업이 곤핍할 때에
견고케 하셨고 주의 회중으로 그 가운데 거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식량이 떨어져 가난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주의 은택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미리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들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십니다. 기도하기 전에도 다 아십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마6:8절에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분이 있다면,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공급해 주시는
친절하고 다정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많은 염려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투명한 장래에 대해, 자녀들의 진로에 대해, 앞으로 이루어질 통일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다 아시고 미리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세가 내려준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준비해 주신 것인데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도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출 16장 2~3절에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모세와 아론, 너희들 때문에 광야로 와서 굶어죽게 되었다”,
“죽어도 애굽에서 고기 먹고 죽는 편이 훨씬 좋을 뻔했다”는 불평입니다.
우리말 속담에도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때깔이나 좋게 죽어야 하는데 비쩍 말라 죽게 되었다며 계속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 없는 불평의 말을 들으시고도 징벌하지 않으시고
인내와 은혜를 베푸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비로운 분이시고, 친절하신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육신적인 필요만 채워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4: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우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필요가 채워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필요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요6:31~33절에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요6:35절에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육신적인 필요로 만나를 내려주신 것은
하나의 예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사람들에게 영적인 필요를 공급해주신다는,
영원한 생명에 관한 진리를 예표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생명도 필요하지만 영적인 생명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 땅에서 7~80년 살다가 죽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으로 끝이라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인생의 윤리는 무슨 필요가 있으며 바르게 산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 왜 교회에 나와야 하고,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의 인생이 7~80년으로 끝이라면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할 아무런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영생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영생을 누리며
천국에서 살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는 7~80년의 세월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현세를 바르게 사는 우리에게 내세에서 하나님은 큰 복과 상급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삶의 윤리가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내려주신 생명의 떡을 먹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
육신의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이런 은혜를 주실까요?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육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이유는 착한 일을 넘치도록 하며 살아가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노회 목사님 한 분의 아들이 혈액암에 걸려 억대의 치료비가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 드렸었는데, 한 권사님이 5백만원, 한 장로님이 1백만원을 전달해달라고 전해주셨습니다.
또 금요철야예배를 드리며 모아진 특별헌금도 잘 전달해 드렸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남의 자식일지라도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돕는 착한 일을 행한 것입니다.
모든 치료비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큰 도움이 되었고, 큰 위로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착한 일을 행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들이 해야 할 사역을 가르쳐 주셨다.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의 종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종들이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모세는 만나가 무엇인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 것인지,
만나를 어떻게 거두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해 줄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출16:4절에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16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정확하게 한 오멜만 거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 가운데는 욕심을 부려 더 많이 가져가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침까지 남겨두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고 집안 위생만 나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만나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지 안 하는지를
시험하는 테스트’라고 하였습니다. 22절에 “제육일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두목이 와서 모세에게 고하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안식일에는 들에 나가도 만나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육일 째는 두 오멜씩 거두어 이틀을 보관해도 썩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일부는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나갔다가
도리어 하나님의 책망만 들었습니다. 28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만나 요리법도 알려주셨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출 16:23).
만나는 구워 먹어도 되고 삶아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의 사명은 하나님이 위에서 내려주신 만나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이 가진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일을 행하셨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부지런히 설교하는 것입니다.
설교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나이시고, 기록된 말씀도 만나입니다. 살아계신 말씀,
기록된 말씀이 만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주신 말씀을 잘 풀어서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종이 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해야 될 두 번째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짓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경고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셨을 뿐만 아니라 은혜도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라에서 원망할 때에도 은혜를 주셨고, 신 광야에서 원망하고 불평할 때도 참으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괜찮다고
모두 용인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불평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불평이 신속합니다. 홍해가 6km나 갈라져 물벽이 서 있던 것을 본 것도,
그 사이 마른 땅을 건너온 것도 3일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고도 그들은 다시 물 때문에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불평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물로 인해 불평한 것도 모자라 음식으로 인해 또 불평합니다.
둘째, 이들의 불평은 비논리적입니다. 홍해(물)로 기적을 이루신 하나님이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실 능력이 없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물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물이 쓰다고 불평을 합니다. 비논리적인 불평입니다.
셋째, 이들의 불평이 표면적으로는 모세와 아론을 향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 즉각 움직여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습니다.
이 짧은 구절에 이와 같은 구절이 다섯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출 16:2,7,8,9,1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했다는 말을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다섯 번씩이나
언급하였습니다. 모세가 그 말이 얼마나 듣기 싫었으면 이렇게까지 말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신 광야에서 그들의 원망과 불평을 들으시고 인내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점잖은 신사의 모습으로
그들의 불평을 다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도 계속되면 하나님이 그것을 참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 모세는 더 이상 불평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해도 하나님이 계속 복을 주시더라고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다. 지금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하실 때 들어야 합니다.
“예수가 무슨 생명의 떡이냐? 영생이 어디 있냐? 천국이 어디 있냐? 가봤냐?” 하다가는
때를 놓치고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이미 지옥에 떨어져 울며불며 영원토록 고통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좋은 말로 할 때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신 광야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종은 만나를 잘 설명하고 백성들에게
죄를 짓지 말 것을 경고하는 설명의 책임과 경고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3. 하나님이 안식일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셨다.
많은 사람들은 안식일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안식일이 처음으로 제정된 것은 ‘모세의 율법에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며 제정하신 창조의 법입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루를 쉬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6일을 일하면 하루는 쉬라는 것입니다.
출 16장에서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지 말고 쉬라고 하신 것은
모세가 율법의 두 돌비를 받기 이전의 일입니다. 시내산보다 신 광야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출 16장은 창조의 원리를 실천하도록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둘째, 율법의 제4계명에 기록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을
하나님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정하셨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단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의미가 아니라 6일을 일하고 하루는 쉬어야 한다는 원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기념해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안식일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일요일이 안식일로 바뀐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날을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리가 중요한 것이지 토요일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안식일의 주인이
바꿨다고 해도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안식교도입니다.
토요일에서 주일로 안식일이 바뀐 것입니다. 토요일이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이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면서 주일을
안식일로 정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황제라도 안식일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까?
그것은 신약교회가 이미 해오던 일을 인준해준 것입니다.
결코 새롭게 제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심히 일하고 주일은 안식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안식일은 인간을 귀찮게 하는 날이라고 오해합니다.
“또 주일인가? 또 교회 가야 되나? 아, 귀찮아!”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귀찮은 날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에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6일 동안 일을 하고 하루 동안 쉬라고 하신 것은
우리 좋으라고 하신 일이 아닙니다.
출16장의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사람이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7일 모두 일한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는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놀다가 주일만 되면 학원을 간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옳지 않은 행동입니다. 주일에도 쉬지 않고 계속 일하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 것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7일 동안 일하면 복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사람에게 해롭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복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6일 동안 일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습니다. 7일째까지 일하면 썩고 냄새나고 벌레가 생깁니다.
창조하신 이후로 안식일을 참으로 지키도록 하신 것이 출 16장입니다.
제6일에는 만나를 두 배로 거두게 하셨고, 안식일에는 만나가 썩지 않도록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사는 문제 때문에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하나님이 명하신 이 법을 잘 준행할 때 우리 대한민국은 복된 땅이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
모세는 자손들로 하여금 이 세 가지 교훈을 잊지 않도록 당부하고 가르쳤습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과 하나님이 말씀으로 경고하실 때 청종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한다는 것을
후대의 자손들이 잘 기억하고 지킬 수 있도록 실물로 교육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오멜 항아리에 넣어 보관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언약궤 속에 두 돌비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가 담긴 오멜 항아리를 함께 넣어두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먹는 육신의 양식과 영의 양식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