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laedGTzod40
◈기도는 상황을 바꾼다 행12:1~12 2024.06.23.
◑본문 배경 설명
자 오늘 사도행전 12장을 살펴봅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나오는 장면입니다.
교회에 대한 핍박이 굉장히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개인적 핍박이 아니고, 정치적 압박이 시작됐는데
헤롯 왕(헤롯 아그립바 1세) 의 탄압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행26장엔 헤롯 아그립바 2세
종교적인 핍박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굉장히 갑자기 급박하게 늘어나니까 그렇게 된 것이죠.
지금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헤롯은 정치적 기반이 약합니다.
로마의 눈치도 봐야 되고, 또 유대의 백성으로부터도 별로 존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적 제스처로 교회를 탄압하고,
교회를 탄압하는 것이 유대(교)인들에게는 기뻐하는 일이니까,
백성들의 눈치를 보면서 교회를 핍박하는데,
그 일환으로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순교를 당합니다. 칼로 목베임을 당합니다. 12:2
굉장히 핍박의 분위기가 확산되려는 조짐이 보이죠.
야고보의 순교에 이어서 베드로까지 투옥됩니다. 교회 지도자들을 탄압을 하는 거죠.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있는 스토리인데 굉장히 철저한 감시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안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앞서 행5장에서, 사도들이 한 번 기적적으로 옥에서 풀려난 일이 있었기 때문에, 5:23
이번에는 철저하게 베드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또 헤롯이 반드시 베드로를 죽여야 되겠다는 결심이 반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4명의 병사가 한 조가 되어서, 4개 조가 교대로 감시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양쪽에 두 명의 병사가 베드로와 함께 쇠사슬을 묶여서
꼼짝 못하게 지키고 있는 거죠. 주석에 그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감옥이 그렇듯이 2중, 3중의 감옥문이 있어서,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그렇게 철저히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굉장히 위협적인 상황 속에 있고
야고보처럼 죽을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면서 딱 카메라로 장면을 옮기면, 이제 교회의 모습을 우리가 보여줍니다.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이렇게 교회가 대항을 할 수 있는 힘은 없죠.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기도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물리적인 힘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이게 힘이 되는 게 아니고,
우리는 싸울 수 있는 무력적인 힘을 교회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혹시 가지고 있어도, 그 무기를 쓰면 안 됩니다.
교회는 언제나 십자가의 방식이죠. 세상 사람들처럼, 힘과 힘의 대결이 될 수가 없죠.
헤롯과의 힘의 대결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당시 권력을 갖고 있는 헤롯과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도입니다.
위급함을 느끼면서 여기 보니까 '간절히 기도했다'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다
다시 장면을 카메라로 옮깁니다. 베드로가 갇혀있는 감옥입니다.
6절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메어 누워 자는데...' 무슨 일이 나죠?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 베드로가 두 쇠사슬에 메어 누워 자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잠이 올 상황이 아니죠.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데,
내일 아침에는 죽을 처지인데, 지금 편히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리고 복음서를 보면 베드로는 매우 예민하고 겁쟁이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베드로는 다른 모습이죠.
7절에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10절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병사들이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굳게 닫혔던 문이 그냥 자동적으로 열립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얘기하죠.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기적을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비상개입' 입니다.
하나님이 비상개입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놓은, 헤롯의 군사들이 만들어놓은 방어병을 뚫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베드로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 강조되는데
그게 강조될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더 드러나죠.
아무리 꽁꽁 그 감옥을 우겨 사고 있어도, 하나님과는 게임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냥 쉽게 풀어버리신 거죠.
여러분 이게 바로 하나님의 비상개입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감옥문이 그렇게 몇 개가 저절로 열리게 돼나요?
마치 자동문처럼 열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묶고 있던 쇠사슬도 저절로 다 풀려버리고
또 감옥을 나가는데도, 경비병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천사가 인도하는 대로, 감옥을 나온 것입니다. 이게 기적입니다.
기적이 5초간 순식간에 일어난 게 아니고, 감옥을 빠져나오는게 5~10분 걸렸을 것입니다.
그 동안 계속 기적이 연속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믿음 생활의 묘미 중에 하나는 일은 '깜짝 반전'이에요.
기적이 일어나는 거죠. 예기치 못한 순간에 뜻밖의 일이 일어납니다.
제가 최근에 선교사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선교지는 기적이 너무 흔하게 일어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전하는 그 현장에, 기적이 얼마든지 일어나는 거예요.
지금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시고, 하나님이 비상개입하시면
반전이 일어나고, 역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드라마가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도 그런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의문이 있어요. 그게 12:1~2입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야고보가 헤롯 왕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질문을 해야 돼요.
'하나님은 왜 야고보는 살려주시지 않았습니까?
왜 그때는 비상개입이 없었는가요?'
베드로는 지금 옥에서 이렇게 기적을 통해서 빼내주셨는데
야고보는 왜 죽게 내버려 두셨는가요?
정확한 대답은 천국 가봐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유추하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거라는 거죠. 하나님의 섭리!
성경 전체에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는데,
그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어요.
이것은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 교회 안에서도 그렇죠. 어떤 분은 믿음이 너무 좋은 분이에요. 너무 신실해요.
너무 기도 많이 해요. 그런데 기도가 응답이 안 되고
고난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분들이 계세요.
어떤 분은 좀 믿음이 신통치 않은 것 같은데.. 사업도 잘 되고, 어려움도 없이 잘 되고,
자녀도 잘 되고... 그러니까 기도하는 분의 삶은 안 풀리고... 물론 풀리는 분들도 많죠.
그런데 세상적으로 잘 안 풀리는 분들도 계세요.
이런 현상을 보면,
어떤 때는 믿음이 작동이 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안 통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 기도대로, 우리 믿음대로, 현실이 다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거나 믿음으로 사는 것과 별개로 돌아가는 게 있다는 거예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요?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상황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간다는 것이죠.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의 결론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과 기도는 만능은 아닙니다. 만능이 되어도 안 됩니다.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그분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애송하는 구절 중에 하나가 롬8장 28절의 말씀이죠.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너무 우리가 사랑하는 구절이에요.
근데 이 구절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될 부분이 뭐냐면,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즉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우리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위에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뭐냐?
그 뜻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일치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나의 문제가 해결되느냐/ 아니냐가 핵심 주제는 아니에요.
물론 우리는,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빨리 해결되기 원합니다.
얼마나 그게 절실합니까! '하나님 이루어주십시오!'
내 기도 제목처럼 절실한 게 없어 보여요.
근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의 입장에서 감옥에 갇혀있지만
베드로 자신이 풀려나겠다고 기도한 흔적은 없어요. 오히려 푹 자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나오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게 없어 보이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출옥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행16장으로 넘어가면, 바울과 실라도 복음을 전하다가, 베드로처럼, 감옥에 갇힙니다.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고 기도하는데 옥문이 거기서도 열립니다.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려버렸습니다.
여러분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이, 옥문이 열리면 그냥 도망가야죠. 근데 안 갑니다.
오히려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간수장이 자기 몸을 자결하려고 하니까
바울이 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16:31
그러니까 감옥에서 나가는 기적이, 그들에게 주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죽느냐 사느냐가 주제가 아니라는 거죠.
만약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가는 기적에 목을 매었다면
야고보가 순교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해주셔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기적을 너무 좋아합니다. 주를 위해 살았더니
역시 하나님이 기적을 이루어주셨다는 간증으로 끝맺고 싶어요.
물론 그런 일들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안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만약 기적이 강조된다면, 처음부터 베드로가 감옥에 들어가지 않아야 맞아요.
베드로를 잡으려고 하는 군인이 갑자기 눈이 멀어진다든가... 넘어진다든가...
감옥에 아예 안 가게 해야죠.
감옥에 집어넣어놓고 또 옥문을 열어서 풀어주고... 이거 뭡니까?
병 주고 약 주시는 겁니까?
중요한 것은, 기적도, 탈옥 사건도 아니에요.
주님의 뜻이, 주님의 구원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살아갈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어떤 고통은 일평생 사라지 않고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기도했잖아요. 자기의 육체에 찌르는 가시를 위하여 간절하게 세 번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천국이 아닙니다.
악이 번성하고, 악한 자들이 득세를 하고,
헤롯 왕이 펼치는 세상에서 백성들은 고통받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장 뒷부분을 보면, 기근이 일어납니다.
기근이 일어나면 신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러분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을 보면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뭘까요?
이 구원의 복음,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
그 나라가 임할 때까지,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 속에 우리가 남겨진 이유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적이 있든지, 없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하는 큰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너무 현미경으로만 들여다보면 답을 얻지 못해요. 시험에 듭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큰 그림을 가져야 돼요.
작은 퍼즐 조각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답이 없습니다.
우리는 전체 그림을 본 사람이에요.
그래서 구약의 요셉이 바로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형들에 의해서 팔려가고, 노예가 되고, 감옥에 들어가고...
뭐 이 정도면 거의 정신병에 걸릴 정도죠. 그냥 악재 위에 악재가 덮친 겁니다.
그러나 그는 큰 그림을 보죠. 불운한 가족사로만 보지 않아요.
그 배후의 역사시는 하나님을 보죠. 그래서 가해자인 형들의 행위보다,
하나님의 행위에 더 주목을 하는 거예요.
그게 창50:20절의 유명한 말씀이잖아요.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자기 하나 잘 살고/ 못 사는 게 핵심이 아니라는 얘기를 지금 하는 거예요.
가만히 보니까 나는 감옥에 들어가고... 노예 생활도 하고...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걸 깨닫는 거죠.
여러분, 내가 아는 만큼 보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고,
그 섭리를 알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막 보이는 게 있는 거예요.
여러분 고난이 힘들지만, 고난이 해석이 되면, 고난의 피해자가 되지 않아요.
나의 고통만 들여다보면 답이 없습니다. 시험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 삶의 여정에서 기적이 일어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전혀 일어나지도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요셉의 생애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냥 그에게 밀려오는 고난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 고난이라는 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그때까지
요셉은 기다리고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모든 고난을 통해서 피해자 의식이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큰 구원, 형들의 그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그 손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윗을 보세요. 다윗의 인생에 기적이 몇 번 없습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현실은 더 어려워져가고 험란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보면 그야말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걸 다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인생 자체만 보면, 부러워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의 인생에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이 하나 있다면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 찾아오신 거죠. 기적은 늘상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의 일상에 하나님은 늘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다윗의 인생 속에 떠난 적이 없어요.
고난을 통과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다윗이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현실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힘든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면
그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로마서 5:3~4절에 바울이 이 비밀을 알리는 겁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도대체 이걸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용어입니까? '환란 중에도 즐거워한다?'
이 환란이, 환란으로 한 토막만 그냥 딱 떨어져 있으면, 그 환란은 환란입니다.
그런데 그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는 이유는,
이 환란은 그냥 하나의 조각으로만 남아있는 게 아니라,
무수한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게 뭐예요?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 소망까지 연결되니까, 그 소망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
이 환란이 있는데,
그래서 이 환란만 보는 게 아니라, 환란을 넘어 이루어질 완성된 그림을 보니까
나는 그날(소망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환란종에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 공부를 왜 하느냐? 또 기도 생활을 왜 계속 해야 되느냐?
우리가 성경 공부를 자꾸 하고, 기도 생활을 자꾸 하다 보면, 눈이 열려요.
눈이 조금씩 조금씩 열려요. 그러니까 이전에 안 보이는 게 보이는 겁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보고 싶은 걸 보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내가 보고 싶은 걸 보면요, 소망이 없어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걸 봐야 돼요.
그게 믿음이란 말이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보니까, 고난이 재해석된단 말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의 꿈만 바라보고 살면.. 낙심해요.
세상에 자기 꿈을 모두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의 좌절을 맛봅니다.
아니, 꿈이 이루어졌다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여러분들 본 적이 있습니까?
세상의 꿈은 '한여름 밤의 꿈'입니다.
사람들을 보세요. 자세히 보면 다들 자기 감옥에 갇혀 있어요.
욕망이라는 감옥, 자신이 스스로 감금했습니다. 풀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망상을 깨워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지금 자신의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에요. 그 꿈을 위해 살다가, 감옥에 들어온 거잖아요.
베드로의 설교가 이미 행2:16~17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이 주신 꿈입니다. 그 꿈을 안고 살다가, 감옥 안에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지금 베드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감옥에서 풀어내신 겁니다. 그를 살려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헤롯의 손에, 베드로의 생명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살리기로 하시면, 죽을 일에 놓여도, 안 죽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으면, 죽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죽을 일이 있어도, 살리셔서 복음을 전할 일이 있으면 살리시기도 하시고,
죽고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핵심적인 주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사 라는 거죠.
▲여러분 한 120여 년 전에 호주 빅트리아 장로교회 소속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가 인천에 도착해서,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가운데,
그때는 KTX도 없고, 차도 없고, 그냥 걸어서 내려오는데
아마 한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런데 이 호주 출신의 젊은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기도 전에, 선교를 펼치기도 전에
부산에 도착해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폐렴과 천연두에 걸려서 죽습니다.
이 조선 땅을 밟은 지 6개월 만에! 그때 그의 나이가 34세입니다.
안타깝죠...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복음을 위해서 이역만리, 천리만길을 와가지고
고생고생해서 도착했는데, 그 폐렴과 천연두에 걸려 죽게 하십니까? 그것도 34세 나이요!
*Joseph Henry Davis 선교사 https://rfcdrfcd.tistory.com/15974053
어떻게 보면 불운한 인생처럼 보이고, 하나님의 일이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좀 살려주시지...
근데 여러분 그의 죽음의 소식이, 호주 장로교단에 전해지자
수많은 젊은이들이 감동을 받고
'우리가 헨리 데이비스를 위해서 대신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고 해서
그 데이비스 선교사의 죽음을 통하여 선교단체가 세워지고
거기에 도전을 받은 호주의 젊은이들이 그 당시에 78명의 선교사가 조선 땅을 밟고
부산 경남 지역에 복음을 전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역분배로, 부산 경남은 호주 장로교회가 선교를 전담하기로 함)
해방 이후까지 합하면 120명의 선교사들이 조선 땅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헨리 데이비스의 죽음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항상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는가?'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시는가?'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계획은 무엇인가?'
여러분 '나중심적인' 질문을 던지면 혼란스러워 집니다.
세상은 나중심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따라 돌아갑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자라야 합니다.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기도가 자란다는 걸 의미합니다.
기도가 성숙해지면서, 신앙이 성숙해지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하는 거죠.
여러분 기도를 하다 보면, 시야가 점점 넓어져 가야 됩니다.
자칫하면 육신적으로 흐르기가 쉬워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만을 위해 기도가 동원되는 것은
성숙한 모습은 아닌 거예요.
기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적인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살아가다 보면, 기적은 흔하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동시에 복음을 전하다가, 병에 걸려 죽기도 하고,
악한 자들의 손에 죽는 일들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 고난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없애주시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고난 속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도 하십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복음이 전진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세상을 통치하시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돌아가고 있고,
역사의 끝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마무리될 것임을 믿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편히 잠을 잘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에요.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 세상은 하나님이 돌리고 계신다는 거예요.
역사의 물레방아를 하나님이 돌리고 계실 뿐만 아니라
정확히 그리고 곱게 빻고 계십니다.
만사가 우리의 뜻대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인간의 손에 역사가 맡겨져만 있다면, 그건 얼마나 아찔한 일이겠습니까?
악인들의 손에만 역사가 맡겨져 있다면,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나라도 보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해석이 안 되는 나라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
정치적 소용돌이들과 남북의 대치 상황들,
지금도 한반도에 벌어지고 있는 위기의 상황들...
이 정치적 분열과 대립, 그리고 요즘은 급기야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절벽까지...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안 될 것 같아 보이죠.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이 나라 이민족 가운데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참 신기한 나라입니다. 안 될 것 같은데 돌아가고 있습니다.
1991년도에는, 한국이 구제를 받던 나라에서 구제를 하는 나라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컴페션, 월드비전 이런 단체는
한국의 고아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국제 구호단체예요.
그런데 이제는 구호를 받던 나라가, 이제 세상 가운데 온 지구촌을 돕는 일에
우리나라가 쓰임받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무엇보다 한국교회를 통해
세계 선교에 헌신한 나라로 세우셨습니다.
피선교지였던 이 나라를, 선교하는 나라로 세우셨습니다.
1980년도에는 1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989년에는 1,000명이 되고요.
2002년에는 1만 명을 돌파합니다.
2013년에는 2만 명을 돌파하고요.
2023년 말 기준으로는 174개국에 2만1917명의 장기선교사와
451명의 단기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믿는 것은, 대한민국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 가운데서도 온 세계에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선교 강국으로 만들어주신 거예요.
하나님은 당신의 크신 뜻을 지금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복음은 지금도 계속 어디론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과 열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하고 계신다는 거죠.
그 일을 아무리 인간의 도모로 막으려고 해도
하나님은 그 일을, 그 섭리를 이루어 가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뜻 안에 살고 있는가, 내가 복음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미래는 하나님께 맡겨도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베드로는 감옥 안에서 편히 잠을 자고 있는 거죠.
▲자 감옥을 나온 베드로가 즉시로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갑니다.
그곳은 알려진 곳이에요. 12절에 보니까
'깨닫고 마가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지금도 기도하고 있는 거예요. 베드로는 이미 출옥했습니다.
그리고 대문 밖에서 노크를 했어요. 아마 비밀경찰들이 닥쳤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14절에 보니까,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로데 라는 아이가 베드로의 음성을 알아들은 거예요.
문을 열어주어야 되는데 문을 열지 못하고,
너무 기뻐가지고 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서 있다'
15절에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지금 로데가 '베드로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말은,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했으니까, 그 기도 응답이 됐다는 걸 알리는 거였어요.
그런데 기도한 당사자들은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너 미쳤다' 그랬어요.
여러분 놀라운 게 하나 있습니다. 기도했지만 믿지 않아도 응답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기도했는데도 안 믿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응답이 된 거예요.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의 믿음이나 기도와 상관없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
그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 이거예요.
16절에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것은 뭡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하심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그냥 살다가 사라져가는 인생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구출받는 얘기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펼쳐놓으신 무대에, 우리를 등장시켜주셔서 다양한 역할을 맡기시고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
베드로의 출옥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잖아요.
앞으로도 별일이 다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벌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벌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역할을 맡겨주실 때, 우리가 가지는 담대함이 이런 거죠.
그 맡겨진 역할 때문에, 그 역할은 결코 작지 않고,
그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거죠.
▲마6:33~34절의 말씀이에요. 그런데 이 두 구절은 떨어져 있으면 안 돼요.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여러분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사십시오' 아무리 얘기도 안 돼요.
먼저 33절이 있어야 되는 거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거죠.
그러면 내일 일은 염려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얘기예요.
여러분 기도는 상황을 바꿉니다. 믿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만듭니다.
악인에 의해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기적이 있든/ 있지 않든, 믿음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현재 나의 삶에 펼쳐지는 상황으로 인하여 일희일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고,
그분은 전능하시고, 그분은 신실하시고,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행12장 끝은, 헤롯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23절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헤롯이 안개처럼 사라져버립니다.
12장 앞부분에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던 그 헤롯이
한 방에 그냥 죽어요. 그러니까 죽이려고 했던 자가 죽고,
죽임을 당하려고 했던 베드로는 살아있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죠.
그러면서 24절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진리는, 그 누구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25절에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돌아오니라' 하면서
바나바와 사울의 출연을 알리면서
이제 베드로의 시대를 지나, 바울이 새로운 선교의 바턴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살아가는가를, 이제 슬며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렇게 12장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주시는 꿈을 안고, 당신의 손에 이끌려
갈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신자의 담대함은 다른 데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두려워하지 말라' 누가 아무리 말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게 될 때
그분의 목적을 따라 우리가 살아가게 될 때,
그 목적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내 인생이 일치하는 겁니다.
그게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일이에요.
그 일에 우리의 삶을 올려놓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담대하게
이 세상 가운데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그 바울의 인생을, 우리도 살아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또 살아계신 그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그분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어 살아갈 때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인생 가운데 기이하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