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단기선교를 통해, 미국에 몽골인 교회가 개척되다 2023.08.20.설교녹취
금년 여름에도 여러분의 교회에서, 많은 나라의 선교지에 단기 선교팀들을 보냈는데
선교지로 떠나가 있는 분들만 사역하는 단기 선교가 아니라
이곳에 함께 앉아서 예배하는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후원으로 함께 동참하고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의 사역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찬미할 때
이것이 거룩한 동역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동역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라고요.
정말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 인생의 한 주, 두 주
혹은 여러분 더 긴 시간을 할애할 수 있으면 몇 달~1년 정도 선교지에 가서
하나님께서 지금 어떤 역사, 어떤 일들을 행하시는지
여러분이 직접 경험하고, 여러분이 그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의 간증들을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선교 목사로 한인 교회들을 섬기는 중에
볼티모어 지역 교회에서 단기 선교팀을 훈련하는 중에, 저희는 몇 가지 룰을 정했어요.
해외 단기 선교팀이 준비하고 떠나기 전에,
반드시 그 나라 사람을 찾아서, 미국에서 12주 동안 언어 훈련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페루로 가는 선교팀은,
남미의 아무 나라나 골라가지고 스페인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반드시 페루 사람을 찾아서, 12주 동안 언어 공부를 해야 되는 거예요.
2002년도에 저희 교회에서 단기 선교팀을 파송하면서
다른 팀들은 다 언어를 가르쳐 줄 현지 언어 교사를 찾았는데
몽골로 가는 단기 선교팀은 언어 조력자를 찾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저희 교회가 있는 워싱턴-볼티모어 지역에는, 몽골인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제가 선교 목사니까, 몽골 선교팀이 제게 와서
'목사님, 몽골어 가르쳐 줄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좀 찾아주십시오'
그래서 저도 수소문을 하다가 보니까
교회 집사님 한 분이
그 지역에 일식당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식당에 그릇 닦는 친구가 몽골 사람이라는 거예요.
제가 부탁을 드려서 '그분에게서 좀 몽골어를 배울 수 있겠느냐?' 말씀드렸더니
일식당 주인 집사님이 '그럼 제가 토요일 날 2시간을 페이하는 조건으로,
그를 교회로 보낼 테니까, 그 시간에 몽골어를 배우십시오!'
이 몽골인 친구가 와서 한 주, 두 주 몽골어를 가르쳐주다가
우리가 몽골로 단기선교 간다고 그랬더니
'어디로 가십니까?'
'울란바토르로 갑니다'
'그러면 제가 가족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싶은데, 선교팀 편에 보내도 되겠나요?'
'그럼 보내도 됩니다. 다음 주에 가져오세요' 그랬더니
이분(몽골어 교사)이 큰 이민 가방으로 2개를 가져오셨어요.
그리고 물품 리스트하고, 수령인 이름을 쭉 적어왔는데
가족 친지들 뿐만 아니라, 친구와 동네 주민들까지 다해 가지고
한 50명의 리스트를 가져왔더라고요.
그래도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가져가야죠.
그래서 이민 가방에 든 선물을, 우리가 기꺼이 전달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문제는 그 다음 주에 발생했습니다.
그 언어교사가, 그 이야기를 자기 주위의 몽골 친구들에게 자랑해 가지고
다른 7 명의 몽골 분들이, 그 다음 주에 각자 이민가방 2개씩 해서 14개를 가져오신 거예요.
몽골에 가시는 인편에, 좀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죠.
과거에는 많이들 그렇게 했습니다. 왜냐면 택배 개념이 없었고,
또 항공편 소포 운임은 매우 비쌌거든요.
저희가 궁금해서 '아니 도대체 이 이민가방이 어디서 났냐?
이거 미국에는 안 팔고, 한국에서만 파는데...'
이분들이 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다가, 미국에 오신 분들이에요.
그래서 이민가방 도합 16개를 받아들고, 저희 교회 몽골 단기선교팀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헌옷가지, 신발, 약품 이런 것들을 갖다주기 위해서 다 준비를 해놨는데,
짐이 너무 많아져서, 도저히 모두 다 가져갈 수가 없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올해는 딜리버리 미션을 하자. 이것을 배달만 하는 것도 큰 선교니까...'
그래서 우리가 가져가기로 계획했던 물품은 거의 다 포기하고,
그분들이 부탁한 이민가방 위주로, 몽골로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또 미국에서 일하시는 몽골인 여덟 분을 모셔서 캠코더로 비디오 영상을 찍고
몽골 가족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다 찍고
또 이민백 속에 든 물품 리스트를 받아서, 선교팀들이 가지고 가서,
결국 몽골로 다 가져갔습니다.
▲우리 팀은, 울란바토르에서 현지 선교사님과 현지 교회의 도움을 받아서
토요일 오후에, 몽골인 물품 수령자들을 다 교회에 오시도록 초청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8명의 몽골인들이, 선물을 보낸 현지인 명단이 약 280명이었어요.
한 사람당 35명 정도에게 선물을 보낸 셈이죠.
그래서 우리가 선물 수령자 분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로 결정하고,
300명분 식사를 저희가 후원하고,
초청을 했는데, 보니까 한 500명이 오셨어요.
물품 수령인들이, 자기 주변에 있는 분들까지 다 얘기해서 함께 온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찍어온 영상편지들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선물을 찾아서 나눠드렸어요.
영상 하나가 딱 뜨면, 수 십 명이 벌떡 일어나가지고 다 앞쪽으로 나오시면,
(1인당 평균 35명에게 선물을 보냈으니까)
저희가 선물을 일일이 주인을 찾아서 나눠드렸어요.
이분들이 너무 고마워가지고, 막 절을 하고 껴안고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렇게 선물을 다 나눠주고, 현지 선교사님이 복음 메시지를 전하고,
또 같이 갔던 단기선교 팀원들이 몽골어 찬양을 하고, 콜링을 했는데
참석자 중에 거의 한 60여 명이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일어나셨어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다시 초청했습니다.
'내일이 주일인데 여러분들 교회에 나오십시오. 우리가 같이 예배하고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다 흩어졌습니다.
선교사님이 '60명이 일어났지만 아마 한 2백~3백 명 올 수 있으니까
식사를 넉넉하게 준비하십시다.' 그렇게 말씀하셔서
우리가 식사를 한 200인분 준비했는데
그 다음날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제 오셨던 500명이 그대로 또 다 오셨어요.
그래서 함께 식사하면서, 저희가 함께 예배드리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더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 분들이 그냥 온 게 아니라, 미국에 보낼 물건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오신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몽골로 갈 때는 이민가방이 16개인데,
미국에 돌아올 때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민가방 22개 정도를 운반해야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말고기 말린 것등, 여러 가지 식품을 가져오셔서
그런 거 다 골라내고 뺐습니다. 공항에서 식품류는 반입이 안 되니까요.
(몽골인들이 제일 힘든 것 중 한 가지가, 전통 음식이 반입이 안 되거나,
공항에서 압수 당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물품들이죠)
그래서 몽골 단기선교팀이, 그 운임 비용(오버 차지)을 부담해서 미국으로 가져왔습니다.
비행기 1인당 반입 한도를 초과한 물품은, 적지 않은 비용(오버 차지)을 지불했던 것이죠.
▲또 미국으로 오기 전에, 거기서 가족별로 비디오로 영상편지를 다시 다 찍고요.
워싱턴-볼티모어로 돌아와서는, 이 여덟 분 몽골인들을 초청하면서 *물품 수령자들
'여러분만 오실 게 아니라, 여러분 주변에 있는 몽골분들을 다 초청해서 오십시오.'
미국에 사는 몽골 분들이, 아직 신분 문제도 해결 안 된 분이 많으니까
저희 워싱턴 지역에서 일하시는 변호사 장로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들에게 이민 상담도 해 주고,
또 앞으로 영어 공부도 좀 해야지 미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으니까
우리가 영어 공부하는 클라스도 만들어서 '친구들 다 데리고 오십시오' 그랬더니
몽골인 27분을 데리고 함께 오셨어요.
그래서 8+27분이랑 다같이 몽골에서 찍어온 캠코드 비디오 영상을 보여줬는데
분위기가 정반대였습니다.
(*지금은 핸드폰이 보편화 되어서, 이런 수고가 필요없지만, 2002년도에는 이게 필요했죠)
비디오 영상을 틀면,
몽골에서는 아주 축제 분위기였는데, 미국에서는 그냥 눈물바다예요.
9년 만에 훌쩍 자란 아들을, 미국에서 영상으로 처음 본 거예요.
그러면서 그 아들과 부모님, 친구들, 가족들 모습을 비디오로 보면서 함께 울고...
그 8분이 함께 온 27분과, 몽골에서 보내준 선물을 같이 다 나눠가지고
그렇게 아주 정말 감동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이 27분이 영어로 성경공부 배우는데 오시겠다고 해서
영어 클래스는 요한복음으로 진행이 되니까
성경을 공부하고, 몽골어 예배를 드리는 예배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제가 2004년도에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받아서 캄보디아 사역을 하고 나서
2010년도에 시카고의 트리니티 신학교에 선교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어서
그곳에 가서 어떤 논문을 보게 되었는데요.
<미국에 있는 몽골 교회의 역사와 현황>을 연구한 논문이었어요.
그 논문을 보니까, 당시 북미주의 몽골 교회가 13개 교회가 있는데
이 모든 13개 교회는 미국의 한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2003년도에 워싱턴에서 시작이 되었다'
이런 논물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즉 요한복음 성경공부를 한 이후에, 계속해서 교회가 개척되었던 것입니다.
연도를 볼 때, 또 지역을 볼 때, 그 몽골 단기선교 이후로 이루어진 열매였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2002년 몽골 단기선교를 통해, 벌어진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었지요.
그 다음에 단기팀이 미국 워싱턴-볼티모어로 돌아와서,
이곳 몽골인들에게 몽골에서 보낸 물품을 전달해 주면서
그 일을 계기로, 여기서 영어로 요한복음을 공부하는 일이 시작되었지요.
한 주간의 짧은 단기 선교였지만, 몽골에서의 사역이 미국으로까지 연결되어서
물품 전달을 계기로, 30여 분의 몽골 형제자매들 중에
몇 명이 모여서 작은 교회를 이루게 되었고요.
이곳의 몽골인 한 분이 콜로라도 덴버로 이사가면서
덴버에도 몽골인 교회가 개척이 되고,
또 시카고로 이주하면서 시카고에 교회가 개척되고,
그렇게해서 북미 지역에서 13개의 교회가 개척됐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