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행13:1~12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1~12장은, 사도행전의 전반부입니다.
13~28장은, 사도행전의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행전 13장이죠. 사도행전에 후반부가 시작되는 장입니다.
그래서 이 13장을 기점으로 몇 가지 변화가 생깁니다.
1) 첫 번째 변화는, 선교의 대상이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선교의 대상이 주로 유대인이었습니다. 주로 유대인에게 복음이 증거되었습니다.
그러나 13장부터는, 선교의 대상이 유대인에서 → 이방인으로 바뀝니다.
2) 두 번째 변화는 선교의 중심 인물이 변합니다.
1~12장은 베드로가 중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13장부터는 베드로가 사라지고, 베드로가 사라진 자리에 바울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유대인의 사도였다면,
이제는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증거하는 이야기가 13장부터 나옵니다.
선교의 중심 인물이 베드로에서 → 바울로 바뀝니다.
3) 세 번째 변화는, 선교의 중심지가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선교의 중심지가 예루살렘 교회였죠.
그러나 13장부터는 선교의 중심지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 안디옥 교회로 바뀝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이방인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이방인 선교가, '땅끝'까지 나아가는 선교가 시작됩니다. 1:8
◑1. 안디옥 교회는 '보편적 교회' universal church
오늘 본문 13장은, 안디옥교회 이야기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이방인 선교를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누가는, 안디옥 교회의 핵심 리더들을 소개합니다.
그 명단이 1절에 나오는데요.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여기 보면, 안디옥교회를 이끄는 영적인 지도자가 5명이 나옵니다.
그 중에 두 사람인 바나바와 사울은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이름이죠.
나머지 세 사람은, 우리가 잘 모르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사실 우리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이들은 여기서만 나옵니다. 앞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굳 이 세 명의 이름을, 우리가 알거나 기억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누가는 굳이 이 세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누가의 다분한 의도가 있겠죠.
여러분, 이 명단을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게 있습니다.
굉장히 다채로운 사람들로 교회가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 제일 먼저 바나바가 나오는데요. 13:1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의 레위 족속입니다. 레위 족속이니까 유대인이죠.
2) 이어서 니게르 라는 시므온
니게르는, '니그로, 검다' 는 뜻입니다.
오늘날은 '니그로'라는 말을 쓰면 흑인 비하, 인종차별로 몰릴 수 있습니다. 주1)
오늘날은 쓰면 안 되는 말이죠. 그런데 과거에는 '흑인'이란 뜻이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니게르 시므온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시몬으로 봅니다.
그러면 '니게르 시므온'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 흑인은, 대부분이 거의 다 노예였습니다.
3) 구레네 사람 루기오
구레네는, 오늘날 북아프리카 리비아를 말합니다.
그러니 루기오는 이방인이었겠죠.
그러니 '니게르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둘 다 구레네 출신입니다.
그런데 안디옥에 최초로 이방(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사람들입니다.
11: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그래서 안디옥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안디옥교회는 무명의 성도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라고 봅니다.
그런데 11:20절의 '구레네 사람'과 주2) '구레네'
본문 13:1의 '구레네 사람'을 동일인으로 봅니다.
이렇게 볼 때, '니게르 라는 시므온' 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안디옥에서 최초로 이방인들에게 전도한 사람들이며,
안디옥 교회의 설립 멤버이며,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5인에 포함된 것으로 봅니다. 그럴 개연성이 아주 높습니다.
4) 이어서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여기 헤롯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헤롯 안티파스를 말합니다. *헤롯 안디바
이 헤롯은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이죠.
그리고 예수님을 심문하고 빌라도에게 넘겨준 헤롯입니다.
'젖동생'이라는 말은, 유모의 젖을 함께 먹고 성장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마나엔은, 헤롯 안티파스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신분이 당연히 귀족이나 왕족이겠죠.
5) 사울 .. 잘 아니까 설명을 생략합니다.
▲그러니까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5명의 면면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다양하다 못해 사실은 대단히 이질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당시에 굉장히 파격적인 조합인데요. 인종부터가 다양합니다.
-바나바, 사울은 유대인
-니게르 시므온, 구레네 루기오는 아프리카인, 그 중에 시므온은 흑인
-마나엔은 비유대인
더군다나 여러분 유대인들은, 굉장히 인종차별주의자들 아닙니까?
그런 유대인의 입장에서 흑인은 비천한 인간 이하 취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에는 유대인부터 흑인까지, 다양한 인종이 하나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그 흑인이, 지금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있습니다.
2) 뿐만 아니라 신분적으로도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흑인이라는 그 당시 노예 계급부터
-그 당시 사회적으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가장 높은 귀족까지
신분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가난한 사람부터 부유한 사랑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조합은 신분계층의 구분이 명확했던 당시로는 굉장히 파격적인 일입니다.
'상전과 종이 함께 예배한다' 이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성찬에서 '겸상한다' 이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3) 무엇보다 감정적으로도 서로를 용납하기 힘든 조합입니다.
헤롯의 젖동생은.. 세례요한을 죽인 자(헤롯 안티파스)의 친인척입니다.
우리 교회에 역적 이완O의 친인척이 나오는 겁니다. 물론 그와는 다른 사람이지만요.
사울은.. 교회 성도들을 투옥시키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담한 인물입니다.
그 교인들 가운데는, 자기 가족이나 친구가 사울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적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 사울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교회의 지도자로 모시고 따른다는 것은... 정말 하나되기 어려운 조합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그 어려운 하나됨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발전하게 된 이유를, 사회학자들은 Melting Pot 으로 드는데,
인종, 계층, 피부색, 성별 차이에 관계 없이 다 함께 녹아져 이민으로 잘 어우러진데서
미국의 파워가 나왔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2천년 전에 그걸 이루었죠!)
*관련글 : 다문화교회라야 산다 https://rfcdrfcd.tistory.com/15973386
▲적용 '보편적 교회를 꿈꿉니다!'
그런데도 지금 너무나도 이질적인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를 함께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누가가 보여주는 안디옥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신분과 다양한 문화를 초월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된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안에는, 당시 세상에서 통용되던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서로 상종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데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교회를 우리가 <보편적 교회>라고 부릅니다.
보편적 교회란, 인종, 학력, 출신에 상관없이, 남녀노소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위한 교회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고 세우려는 교회가, 바로 '보편적 교회'이죠.
사실 오늘도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도신경을 고백했습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the holy universal church'
이때 공교회가 '보편적 교회'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고 세우려는 이 땅의 교회는, 차별이 없는 보편적 교회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차별 없이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부와 세리, 부자와 거지, 창녀와 강도, 남녀노소,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차별 없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도,
차별이 없는 보편적인 교회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라면 누구든지 교회에 문턱을 넘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기꾼도 들어올 수 있어야 하고요. 술주정뱅이도 들어올 수 있고요.
강도도 들어올 수 있고요. 거지도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회개를 지향하며
여러분 정치적으로 파란 당을 지지하든, 빨간 당을 지지하든, 녹색 당을 지지하든
여러분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 걸로 교회 안에서 절대로 호불호가 갈리면 안 됩니다.
제가 청년 때 들었던 얘기가 있는데요.
'높은 사람을 보려거든 강남에 어느 교회를 가면 되고,
돈 많은 사람을 보려거든 강남에 어느 교회를 가면 되고,
지식인을 보려거든 어느 교회를 가면 된다'는 얘기들이 돌았습니다.
(아주 일부이지만) 어떤 교회는, 특정 정당만 지지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모습들은,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가 보편적인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그건 참된 교회의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고 세우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참된 교회의 모습은, 차별이 없는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교회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차별 없이 부르셨듯이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한데 어우러지는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자 그래서 하나님은, 이방인 선교를 시작하는 동시에
안디옥교회를 통해서 이 보편적인 교회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앞으로 세워져야 할 이방인 교회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거죠.
너무나도 다른 5명의 이질적인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한 교회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 아래서는 도저히 하나 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조합이
그런 하나됨이, 이 땅에 교회를 통해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런 보편적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미리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보편적인 교회가 주님의 참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도 이런 보편적 교회로 계속해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이 사도신경의 고백이, 우리 교회에 진정으로 구현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말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정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누구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존귀하게 대할 수 있는
그런 보편적인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중략
◑2. 공예배 때 하나님의 음성이 주어집니다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이 그들에게 응답을 하십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불러 세우라고 하십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여기서 '때'라는 말을 눈여겨 봐야 됩니다.
'섬겨'는 말은,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선교사로 보내라'는 말씀을 주신 때가 언제이죠?
주를 섬겨 금식할 때라고 했는데, 즉 예배 때에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원리는,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 때 임합니다.
우리가 삶에 중요한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 때에, 주로 설교를 통해 말씀을 주십니다.
물론 우리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보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공예배 가운데, 특히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여러분 똑같은 이 자리에서,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그 똑같은 말씀이
나에게는 한 줄기의 빛처럼, 나에게만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내 사정을 아시지?
어떻게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런 말씀을 나에게 주시지?'
그러면 그때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생깁니다.
'아 이게 하나님의 응답이구나, 기도의 응답이구나, 하나님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
여러분, 그런 경험들이 다 있으시죠?
그 말씀(음성)을 주시는 자리가 어디인가요? 바로 예배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그리고 인생의 고난을 만났을 때,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가 예배의 자리입니다.
본문의 안디옥 교회도, 예배의 자리에서, 그때에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성령이 이르시되 바나바와 사울을 택하여 따로 세우라'고 하십니다. 13:2
◑3. 구브로 섬에서 생긴 몇 가지 중대한 변화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이요. 1차선교여행을 떠납니다. 13:3
그런데 첫 선교지로 보냄받은 곳이 구브로 입니다. 13:4
안디옥에서 구브로 섬으로 가려면, 실루기아 항구로 나와야 됩니다.
안디옥에서 실루기아까지는 26KM 인데요, 중요한 건 아니지만 참고로 하세요.
실루기아 항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 섬으로 가는 거죠.
구브로는 제주도 보다 5배 정도 큰 섬입니다. 그러니까 작은 섬이 아니죠.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첫 선교지로 바나바가 자신의 고향으로 간 거죠.
이 섬의 살라미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이제 선교를 시작합니다. :5
▲1. 마가요한의 합류
이 살라미 지역은, 구브로에서 특히 유대인들이 밀집한 지역이었어요.
그러니 당연히 유대인 회당도 있었겠죠.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이 한 사람을 수행원으로 썼습니다.
바로 마가라 하는 요한입니다.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5
그러니 마가는, 안디옥에서부터 같이 출발한 게 아니라, 살라미에서 조인한 것입니다.
앞서 바나바는, 마가를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데리고 온 적이 있었죠. 12:25
자기 조카라서, 자기 고향인 구브로 섬에서 지내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바나바와 마가의 친척들이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에 많았겠지요.
어쨌든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라는 말은, 살라미에서 요한이 조인했음을 뜻하죠.
'수행원'이란 말은, '서기, 기록원'이란 뜻인데,
로마군대가 원정을 갈 때는, 이 '수행원(기록원)'을 꼭 대동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하죠.
그래서 기록의 은사가 있는 마가를, 1차선교여행 때 동참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버가에서 중도 하차하게 됩니다.
▲2. 총독 전도와 바예수를 다룸
바울의 선교팀은 살라미를 떠나 바보로 갑니다. :6
약 147KM 정도의 거리라고 해요. '섬 가운데로 지나갔다'고 했으니, 걸어간 것이죠.
걸어서는 5~6일 정도의 거리입니다.
바보는 구브로 섬의 행정 도시입니다. 행정 도시니까 로마의 총독이 거주했고,
그의 이름은 서기오 바울입니다.
그런데 총독은, 자기 옆에 유대인 마술사 바예수를 두고 있었습니다.
바예수란 '구원의 아들'이란 뜻이죠.
여기서 마술사는, 오늘날의 손장난을 통해서 눈속임을 하는 그런 마술사가 아닙니다.
헬라어로 마고스 인데, 동방박사들도 마고스 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쓰고 있습니다.
별을 보고 미래 일을 예측하거나 점을 치는 점성술사를 뜻하는 말입니다.
별의 위치나 운행을 보고, 나라의 운명에 대해 점을 치던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총독의 운명을 조언해주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래서 이 사람을, 서기오 바울은 항상 자기 옆에 두고 있었습니다.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이 사람의 조언을 듣고 결정을 했던 거죠.
자 그런데 바예수 마술사가, 어떤 짓을 하고 있습니까?
총독이 바울 팀의 전도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니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대적해서, 총독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했어요. :8
여러분 그 이유가 뭐겠어요? 총독이 예수를 믿으면,
자기 자리가 즉시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겠죠.
그거를 보고 사울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11: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3. 사울에서 바울로 이름이 바뀌고, 바울과 바나바로 서열이 바뀜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9
사울은 유대식 이름이죠. 사울왕과 같은 이름이죠.
그러나 이 시점(13:9절)부터, 사울이란 이름 대신에 '바울'로 사도행전에 계속 등장해요.
우리가 미국에 가면 영어 이름을 쓰듯이,
사울은 유대에서 유대 이름을 쓰다가, 헬라 세계에 나와서 헬라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사울에서 바울로 이름이 개명한 게 아니죠.
보다 중대한 변화는, '바나바와 사울'에서 → '바울과 바나바'로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서열이 바뀐 것입니다.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울이 선교팀의 대표자로 최초로 나옵니다. :구브로
13:43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누가가 이 시점부터 '바울과 바나바'로 쓰기 시작하죠. :비시디아 안디옥
예수 안에서 하나된 형제들에게, 사회적인 서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울이 방문하는 도시들마다, 자기 적극적인 성격 때문인지, 앞서 치고 나갔다는 겁니다.
바울이 앞장 서서 나가고, 바나바는 뒤에서 서포트 하는 역할을 했나 봅니다.
그래서 실제로 구브로를 떠나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도 바울이 설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바나바의 조카 마가가 돌아가버렸다는 '설'도 있죠)
◑4. 전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13: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그 선포의 말씀대로 즉시 마술사가 맹인이 되어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죠.
그 결과가 12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총독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저자인 누가는, 첫 번째 선교여행을 우리에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이죠. 뭐든지 첫 번째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누가가 하고(쓰고) 싶은 말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누가는, 모든 이야기를 다 일일이 기록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그 가운데서 딱 한 사람이 회심한 사건만 들려주고 있습니다.
로마의 총독 서기오 바울이 회심하는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여집니다.
그 과정에서 복음을 대적했던 마술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누가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본문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선교의 이야기는 <영적인 전투>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현장마다, 복음이 들려지는 곳곳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인 전쟁이 있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영적인 전쟁'은, 단순히 선교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번 달 추천 도서가 <일상의 영적 전쟁>이라는 책인데요.
그 책에 보면 저자의 간증이 하나 나옵니다.
저자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요. 예수를 제대로 믿은 건 26살 때였대요.
그때 이제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때 친구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자기가 강력한 죄인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성령님께서 그의 친구의 말을 통해 역사를 하신 거죠.
그래서 그 순간부터 자기가 그때까지 지었던 모든 죄들이
자기 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래요.
그래서 저자가 순간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지?'
그러자 친구가 에스겔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겔3:25~26절인데, 한마디 '정결케 해 주겠다. 새 마음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때 사탄이 자기에게 대놓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탄이 에스겔서 말씀에 대적하며 (내적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너무 더러워, 소망이 없어, 하나님은 절대로 널 받아주질 않을 거야!
네가 그리스도에게 가면, 네가 그분을 더럽히게 될 거야!'
이때 저자는, 두 목소리 사이에서 자기가 치열한 전투에 휘말려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꼈다고 합니다. 하나는 약속의 목소리, 성령의 목소리죠.
다른 하나는 어둠과 적대감의 목소리였습니다.
사탄이 이 사람(저자)을 끝까지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던 거죠.
어떻게든 그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대적했던 것입니다.
이때 친구의 조언으로,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눅18:13절이었는데요.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죄인이로소이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했을뿐입니다.
여러분 이게 진짜 영적인 전쟁에 우리가 승리하는 비결이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러자 자기 안에 들리던 악마의 목소리가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이 24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을 통하여서, 처음으로 저자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그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깨닫지 못했던, 굵은 진리를 하나 깨달았는데요.
자기가 강력한 대적에 맞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바로 사탄과 영적인 전투였죠.
그 전까지는요. 자기가 교회를 다녀도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실체를 인지하지 못한 거죠.
그러나 복음을 믿을 때, 분명하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가 경험을 한 것이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기가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지금까지 나를 방해한 영적인 실체가 내 옆에 있었구나.
그리고 그 영적인 전쟁이 우리가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우리의 일상 가운데 여전히 계속되고 있구나...'
그래서 그분이 쓴 책이 <일상의 영적 전쟁>이라는 책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사탄의 작용이, 지금 예배를 드리는이 현장뿐만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 곳곳에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혈기를 타고 들어오고요, 중독으로 들어오고, 물질로 들어오고,
음란으로 들어오고, 험담으로 들어오고, 게으름으로 들어오고...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께 집중하지 못하도록
얼마나 우리를 지금 이 시간에도 방해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게 누가가 알려주고자 하는 핵심 포인트인데요.
여러분, 예수를 믿는 성도의 뒤에는 누가 계십니까? 주님의 손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11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11절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주님의 손이 네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마술사를 친 건 바울이 아닙니다. 바울이 마술사와 싸워서 이긴게 아닙니다.
바울 뒤에 누가 있다고 말하죠? '주님의 손이 네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힘으로 마술사를 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이 마술사를 쳤습니다.
이 주님의 손이, 총독 서기오 바울을 붙잡고 있었던 흑암의 권세를 깨뜨려
그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그를 흑암의 자리와 사망의 자리에서 건져낸 것입니다.
그 주님의 손이요. 우리 또한 사망의 자리에서, 어둠의 권세에서 구원해 내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골1:13~14절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Jesus 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으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우리가 그 결과로 회심하고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주님의 손'이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13:11
그 주님의 손이 오늘도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 받아야 할 자를 구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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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미국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한국인 한 분이 후배에게 말하면서
'니가 말이야, 니가 그래서 안 돼! 니가 잘 해야지..' 하고 말하며 언성을 높혔습니다.
즉시로 옆 좌석에 앉은 흑인이 '니그로 라고 말하지 말라!'며 항의했습니다.
잠시 후에 서로 오해를 풀었는데,
한국인이 사투리로 '니가, 니가' 하니까, 그게 옆 좌석 흑인에겐 '니그로'로 들렸나 봅니다.
주2) 구레네는 옛 그리스 식민지였으며, 당시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었죠.
그곳에는 유대인의 회당(시나고그)도 있었고,
유대인의 축제일에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도 많았다고 합니다. 6:9
6: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자유민 (自由民 the Freedmen)이란, B.C. 63년경 폼페이우스에 의해
로마 군대의 포로가 되어 부역(負役)으로 끌려갔다가 해방된 유대인들의 후손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