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ZDFI94WtwtI
◈기도의 정석 막14:32~42
*기도는 현실 도피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라는 주제입니다.
설교문 후반부에 나옵니다.
자, 그리스도 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기도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기도하러 금요철야로 모였습니다.
근데 여러분이 기도 한다고, 모두가 기도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는 경우도 많아요.
기도할 때 우리가 눈을 감습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자는지, 기도 하는지.. 다른 사람은 알기 어려워요.
자는 것과 기도하는 게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눈 감고 있으니까요.
눈을 그냥 감고만 있는 건지, 기도하는 건지... 이거는 본인만 아는 거예요.
또 엎드린 자세로 기도하기도 하죠. 그러면 더 알 수가 없어요.
그러면 진짜 기도하는 건지, 엎드려 주무시는 건지... 정말 알 수가 없어요.
오늘 굉장히 중요한 게 뭐냐면 '깨어 기도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자주 강조하신 말씀이죠.
막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여러분, 이 시간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목전에 둔 시점이에요.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습니다.
사실 의미 심장한 시간에요. 보통 기도의 시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러 가자'고 해서, 그들을 데리고 간 거잖아요.
제자들에게 당부 하시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예수님은 사투를 건 기도를 드리고 계셨습니다.
▲근데 예수님이 기도하시다가 다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보니까
제자들이 다 졸고 있는 거예요.
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건 '깨어있음'이에요. 깨어있어야 된다는 거죠.
기도하는 건 중요하지만, 깨어 기도해야 됩니다.
깨어있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여러분 깨어있다는 건 뭘 의미하죠?
잠을 안 자는 것, 그걸 말하는 게 아니죠. 육체적 잠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영성'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많이 쓰는데
'영성'이란 뭐냐하면 깨어있음 이에요.
'영성이 깊다'는 말은 뭐냐면, '항상 깨어있음'이에요.
늘 영적으로 깨어있다는 거죠. 영이 깨어있어야, 영적인 삶을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 그 깨어있음은 뭐냐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 있는 거예요. 오픈 돼 있는 거예요. 접속이 돼어 있다는 거죠.
여러분 기도가 뭡니까?
기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 이거든요. 이건 엄청난 거예요.
초월자이신 하나님과,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통로로
기도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거거든요. 이거는 어마어마한 거예요.
기도라는 게 어마어마한 거예요. 우리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죠.
그래서 여기에서 중요한 건 뭐냐면 '깨어있어라'는 거예요.
그냥 가끔이 아니고, 항상 깨어 있는 삶!
여러분 이게 오늘 설교의 핵심이에요.
깨어있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같이 붙어있어야 됩니다.
기도하는데 끼어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깨어 있는 상태에서 기도하는 거예요.
▲여러분 '종교 생활'이 뭐예요?
종교 생활은, 깨어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의식적인 기도를 하는 거죠.
의례적인 기도를 한단 말이죠.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러나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왜 그런가 하면, 항상 깨어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한 시간도 기도할 수 없느냐?'
길게도 아니고 한 시간!
여러분, 한 시간이 길 수도 있고 짧은 시간일 수도 있어요.
경건훈련, 기도훈련이 안 된 분은, 한 시간은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에요.
기도해 보시면 알잖아요.
아무리 기도했는데, 십 분 지났어요. 굉장히 오래 기도한 것 같은데 이십 분...
그러나 기도훈련이 된 분에게는 한 시간 기도는 짧아요.
그냥 휙 하고 지나가 버리는 거예요.
근데 훈련이 안 된 분에게는, 이 한 시간이 너무 너무 긴 거예요.
한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에요.
여러분 지금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세요.
'한 시간도 기도할 수 없느냐?'
딴 사람이 아니고, 제자들 입니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닌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제자반 수료 날짜가 임박했어요.
이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이 기도하는 모습을, 계속 보며 지내왔습니다.
예수님은 일상에서 기도를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무엇을 귀중하게 여기시는 지를, 제자들이 곁에서 봤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굉장히 위급한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기 직전이기 때문에, 굉장히 긴박한 시간이에요.
스승이 지금 십자가에 매달리는 시간이 다가왔어요.
근데 제자들이 지금이야말로 기도할 때거든요.
다른 때는 몰라도, 지금은 기도해야 될 때예요.
여러분 '기도할 때를 안다'는 게 깨어있는 거잖아요. 기도할 때 기도해야 돼요.
근데 문제는, 기도할 때 기도를 해야함을, 느끼지를 못해요.
왜? 깨어 있지 않은 상태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할 때 기도하지 않아서, 나중에 대가를 치르는 거예요.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때를 알려주세요. 시그널로 알려주세요.
'지금은 기도할 때야!'
주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십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야, 잘 때가 아니야!' 시그널을 주신 거잖아요.
근대 그 시그널이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거예요. 그러면 그냥 자는 거죠.
왜 시그널을 예수님이 주십니까?
기도할 때를 왜 알려주시죠?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여러분, 계속 이 본문을 여러분이 보시면 '깨어' 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세요.
기도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깨어서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왜요?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기도할 때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드는 겁니다.
찾아오는 시험을 이기지 못해요.
우리의 힘으로 시험을 감당하기 어려운 거거든요.
그러니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깨어 있는 기도가 어렵다는 겁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은... 주로 자는 거예요.
변화산에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제자들은 잠을 자요.
자 기도해야 될 때, 잠을 잔 것입니다.
이건 뭘 우리에게 보여주냐면, 기도가 어렵다는 거예요. 기도 자체가 어려워요.
그리고 깨어 기도하는 건 더 어려운 거예요.
그리고 깨어 있지 않고는,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깨어 있어야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야 또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자, 깨어 있다는 걸 뭘로 말하는 거죠?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눈을 감고 손을 모으는 것입니까? 기도할 때 대체로 우리가 눈을 감습니다.
눈을 뜨고 기도 해도 됩니다. 그러나 눈을 감는 감고 손을 모으는 이유는 뭐예요?
그게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기도는 하나님에게 집중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는 산만함을 좀 차단하는 거잖아요.
기도는 하나님께로 집중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기도에 집중력을 가지거나, 영적 몰입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마음이 집중 안 될 때가 많아요. 몸이 따라 주어야 하는데, 몸도 따라주지 못하는 거죠.
여러분, 한 시간 동안 영적인 몰입을 하는데, 몸도 훈련이 돼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엉덩이가 자꾸 건질 건질해요. 자꾸 일어나고 싶은 거죠.
때로는 몸이 너무 피곤해요. 그러면 빨리 눕고 싶죠.
그래서 몸과 마음이 다 하나님께로 향해야 되요. 그게 훈련이 돼야 되는 거죠.
훈련은 여러분 어렵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요.
꾸준히 지속적으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할 때도, 이제 10분부터 시작을 하는 거죠.
10분 동안 앉아서, 고유하게 하나님께 집중하는 거죠.
아직 훈련이 안 된 사람은, 10분도 잠념에 시달리다가 끝내버려요.
하나님의 임재 속에 진입이 안 되는 거요. 훈련이 안 돼 있으니까 10분도 만만치 않아요.
딱 기도하려면 '가스불에 뭐 올려놓고 온 것 같은데...'
'오늘 버스가 끊기는 거 아닌가?'
'내 옆에 인간은 누가 앉아 있지?'
'앞에 분은 파마가 예쁘게 됐네...'
처음에는 10분부터 시작을 하는 거예요.
10분 동안 기도에 집중하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10분에서 20분으로 늘여가고,
20분에서 30분으로 늘여가고, 그래서 점점 한 시간까지 늘여가는 거죠.
지금 제자들이 3년 동안 따라다녔는데, 1시간 기도에 실패했잖아요. 그냥 자버렸잖아요.
여러분, 한 시간이 가능하지 않는데, 두 시간 기도 할 수 있겠어요? 못 해요.
깨어 기도 하는 가운데, 영적 몰입이 되면, 놀라운 일이 나요.
하나님과 만나서 한 시간을 교제하면.. 그게 매일매일 쌓이면,
이건 상상을 초월하는 은혜가 있죠.
우선 여러분, 이런 기도가 계속되면
영적인 민감성 sensibility 이 높아지는 거예요.
영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에서 기도를 계속하다 보면
영적인 민감성이 높아지는 거예요.
'영적인 민감성이 높아진다'는 그 말은 뭐냐면
평소 같으면 그냥 스쳐지나갈 일들에 대해서, 뜻밖에 깨달음을 얻어요.
작은 사건 속에서도 큰 교훈을 얻어요.
이게 영적으로 민감해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니까
아주 작은 사건,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사건을 통해서도... 큰 메시지를 얻어요.
영적으로 둔감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요? 깨달음이 없어요.
큰 사건을 당하고도, 교훈을 별로 못 얻어요. 지나쳐 버리는 거예요.
왜 그래요? 둔감한 거예요. 깨달음이 없는 거죠. 깨달음이 있어도, 너무 더디 오는 거죠. 민감성이 없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죠? 결국 미련한 인생을 사는 겁니다.
시험이 오는 걸 인식하지 못해요. 깨어있지 못하니까 마귀에게 그대로 당하는 것입니다.
자, 영적으로 민감하면 할수록, 고도의 분별력이 생깁니다.
'분별력이 생긴다'는 말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게 있어요.
한 시간 동안만 기도하는 동안도, 하나님이 별 걸 다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말씀들이 생각나게 하시고, 소위 말하면 깨달음의 정진(발전)이 일어나요.
깨달음, 깨달음, 깨달음이 계속 더해지는 거죠.
▲예수님을 보십시오. 마귀가 유혹을 할 때 구약의 말씀들이 생각이 나죠.
'기록되었으되' 그랬잖아요.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마4:4
마귀가 시험할 때, 그 말씀이 생각났어요.
물론 암송도 하셨겠지만, 평소에 깨달은 말씀이에요.
이와 같이 우리는, 평소에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을 깨달아야 돼요.
그래야 마귀가 시험할 때, 그 말씀을 검으로 사용해서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거죠.
대개는 말씀이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깨어있지 않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깨어 있는 상태가 되면, 자기가 시험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거죠.
여러분, 깨어서 하나님과의 교재가 깊어지면 삶이 풍성해 집니다.
삶의 결핍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결핍에서 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지면, 삶의 결핍들이 사라집니다.
하나님 안에서 배부름이 오는 거죠.
여러분, 우리는 세상적인 것들이 없어서 결핍을 느끼는 게 아닙니다.
진짜 결핍은, 영적인 원인에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을 보십시오.
우리가 늘 확인하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이게 만족이 안 되잖아요.
근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이 만족도, 포만감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목말라 하는 게 없어지죠.
그러니까 하나님께 민감해지면, 세상에 대해서는 좀 둔감해져요.
그러면서 세상의 것들에 의해서 내가 휘둘리지 않고 살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기도라는 게 뭘까요?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누구이십니까?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이 '아빠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아빠 아버지'께 기도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겟세마네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모든 걸 다 맡겨요.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가 되십니다. 이게 여러분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통하여,
아마 예수님은 지금 세 번의 반복된 기도를 보면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는 걸로 보여져요.
그래서 아빠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그 존재를 지금 확인하고,
그 기도를 통하여 자기 안에 영적인 포만감을 느끼시고
이제 아버지께 모든 걸 내어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우리의 인생에 가장 큰 문제는 뭐냐하면
그 하나님에게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왜요? 산만함이 너무 많다는 거죠.
산만해서 5분도 집중이 힘들어요.
그래서 요즘 여러분, 핸드폰에 '짤, shorts, Tik'
동영상마저도 짧은 거가 대세입니다. 세상의 산만함을 알려주는 거예요.
시선이 고정되지 않는 거죠. 초점을 잃어버리는 거죠.
이렇게 해서 '주의력 결핍 장애' 증세가 어른들에게 많아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거예요. 너무 너무 그냥 산만한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해도, 집중력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집중력!
영적 세계에도 말할 것도 없어요. 영적인 세계는 집중력입니다.
여러분 눈을 감고, 매일 한 시간 씩을, 깊이 몰입도 높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만 있다면, 매일 한 시간 동안 깨어 기도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란 존재와, 한 시간 동안 접속되어 있다면 무슨 일이 날까요?
이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사실 십자가 라는, 이 엄청난 사건 앞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금 집중하기 어려워요.
참혹한 십자가 사건이 지금 눈 앞에 있는데,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사건이 눈 앞에 터지기 직전인데,
깨어 기도한다는 게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너무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34절에 보니까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예수님의 마음 상태를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소위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몸을 입고 계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그 수난을 앞두고
너무 너무 괴로우신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몸도 마음도 기진해 있는 겁니다. 이 때는 집중하기 힘들어요.
깨어 기도하는 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깨어 기도하고 계시는 거죠.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언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까? 위기의 순간이잖아요.
절망의 순간,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깨어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문제는 그런 상황이 밀려오면, 기도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현실의 거대한 문제에 짓눌려서, 그 문제만 들여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 문제와 씨름하다가, 정작 기도를 놓쳐 버리는 거죠.
여러분 무엇이 위기 입니까? 기도의 집중력을 잃은 상태가 위기예요.
주님은 괴로워 죽을 지경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 예수로서
그 십자가를 맞이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육체를 입고 계신 주님은, 거대한 시험 앞에 지금 있는 거예요.
주님은 당신의 심경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는 괜찮다...'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거대한 문제의 파도 앞에 휩쓸리지 않으시고, 고도의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계시는 거죠.
그럼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었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게 비밀이잖아요.
이 어마어마한 문제 앞에서,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고도의 기도의 집중력을 가질 수 있었던 힘, 그 비밀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막1:35절에 있어요.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은 평소에 깨어 기도하셨어요. 일상에서 늘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사셨어요.
위기의 순간에 깨어 기도 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었느냐?
평소의 주님은 새벽 미명에, 아직 밝기 전에 예수께 일어나서
한적한 곳을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는... 이게 일상이었다는 거죠.
십자가 앞에서 기도에 집중하신 것, 이게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위협적인 일이 일어 나면, 그냥 거기에 파묻혀 버려요.
문제의 파도가 닥치면, 우리는 거기에 휩쓸려 버려요.
그러니까 그때는 기도를 못 하는 거예요.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 문제에만 휘말려 있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그냥 기도의 자리만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의무적인 기도 생활로는 환난 날을 이겨낼 수가 없어요.
물론 의무적이고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하는 건 필요해요.
그러나 '영이 깨어 있는 규칙적인 기도 생활'의 축적이 없으면
거대한 문제 앞에 맞딱뜨렸을 때, 깨어 기도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자들은 그 훈련이 아직 안 되어있는 거예요.
그들은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잠들어 있어요.
주님이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그들을 깨우셨어요.
근데 도무지 몸을 가누지를 못해요.
그래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잠들어 있는 거에요.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시대입니다.
이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상태란, 감각이 없는, 영적 마비 상태를 말하는 거요.
엡4: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여러분, 사단이 가장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무뎌져 있는 사람이에요. 영적으로 무뎌져 있는 사람,
그게 심하면 '감각이 없는 상태'가 돼죠.
여러분, 오늘날 세상은 우리를, 이런 환각의 세계로 많이 이끌어요.
환각이라고 해서 뭐 꼭 마약을 뜻하는 것은 아니에요.
술도 마찬가지고... 이게 다 환각적인 거잖아요.
여러분 왜 술을 먹습니까? 경험하신 분은 좀 얘기해 보세요.
왜 한 잔만 먹겠다고 하다가, 자꾸 취하도록 마시는 거죠?
사실은 취하려고 먹는 거예요.
그냥 술 취한 상태로 살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왜요? 현실이 너무 어려우니까. 환상, 환각, 판타지를 원하는 거예요.
부딪혀 오는 상황이 너무 공포스러운 거예요.
그러니 그냥 취한 상태로, 몽롱하게 살고 싶은 거죠.
그냥 깨면 현실이 너무 힘드니까요.
이렇게 환상, 환각, 판타지에 빠지는 것은, 현실 도피, 현실을 잊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어딘가 빠지는 거죠. 그게 술 일 수도 있고, 마약 일 수도 있고,
사이비 이단에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광신적 신자들 보세요.
광신적 신자들의 특징이 뭐예요? 어떤 극단적인 현상이나 논리에 빠져 들어가는 거거든요.
여러분 언제나 극단적인 거는 위험해요. 지나치게 거기에 빠져 있어요.
그래서 여기서 '깨어있다' 라는 이 말을 우리가 잘 이해해야 돼요.
깨어있다는 것은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의 영혼이 깨어있어서, 현실과 부딪혀야 돼요.
그리고 이게 이제 중요한 부분이에요.
우리가 이제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을 때도,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야 돼요.
이단 광신 집단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게 하고, 현실을 도피하게 만들어 버려요.
그러니까 베드로와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인지하고 있는 거거든요. 예수님이 평소에 자꾸 십자가에 죽으러 가신다는
얘기를 하셨으니까요.
그리고 스승이신 예수님이 지금 피땀흘리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거예요.
그 십자가 라는 엄청난 처절한 현실이 바로 앞에 딱 있는데
주님은 그 십자가의 고통을 직면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피땀 흘리는 기도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힘겹게 싸우고 계시는 거죠.
근데 주님은, 다른 도피처를 찾고 있지 않아요.
현실 도피를 하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여러분, 십자가는 환상이 아닙니다. 비현실적인 일도 아니에요. 현실 중에 현실이에요.
주님은 그 십자가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으셔야 했다는 거죠.
주님은 그걸 잘 알고 계신 거죠.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깨어 있는 기도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깨어 기도한다는 말은,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에 적응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거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왜요?
그 현실은 너무 어마무시한 일들이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현실을 즉시 할 때,
그 현실에서 밀려오는 그 어려움이 너무도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그걸 직면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도피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에라이, 자자. 자 버리자' 그리고 안 깨어나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 어려운 문제를 만난 분들 가운데
오늘 이 철야기도회에 오신 분들이 계실 거예요.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러 오신 거죠.
그건 너무 너무 당연한 일이에요.
근데 철야기도회를 현실도피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기 위해, 철야기도회에 나오신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해요? 기도로 승부를 거는 거죠.
여러분, 마약을 복용하는 것은, 현실도피의 욕구가 있는 겁니다.
엑스타시를 경험하고, 멍해진 상태에서 현실의 고통을 잊고 싶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신경안정제 같은 약을 계속 투약 받고, 주사를 맞는 분이 있대요.
물론 병원에서 안 해 주지만, 억지로 요구하는 거예요.
여러분, 철야기도에도, 현실을 직시하고, 직면하고,
현실을 끌어 안고, 그 현실의 당면한 문제를 붙들고,
이 문제를 내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해결하려고 하는
바로 이런 자세가, 올바른 철야기도인 거죠. 그런 기도는, 간단한 기도가 아니라는 거죠.
기도를 하고 나서, 이 고통스러운 현실로 들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도피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피하려고 해서는 안 돼요.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죠.
정면돌파 하는 길이, 가장 바른 길이요, 해결의 지름길 입니다.
근데 그게 쉽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자꾸 자는 거예요.
그냥 자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피하고 싶은 거예요.
예수님이 자꾸 죽는다고 그러니까...
예수님 옆에서 자기도 한 자리하고, 뭐 출세하고 성공하려고 했는데,
예수님이 자꾸 죽으려고 하니까, 베드로는 계속 그걸 부정 하잖아요.
그 십자가를 부정 해요.
그러니까 베드로와 제자들이 자는 게, 그냥 육체적인 이유만이 아니고,
그들은 현실을 부정, 도피하려고 하는 거예요.
(학생들이 내일 시험공부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자버리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다른 게 아니에요. 현실을 직시하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지금 깨어 기도하시는 건 뭐냐면,
십자가 라는 현실에 직면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 하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 제자들에게 다가올 혹독한 시대를
미리 예견하고 준비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깨어 기도하면... 현실이 보여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잖아요.
진짜 제대로 믿음 생활을 하려고 하면, 현실에서 숱한 시련, 시험과 마주치게 되어있어요.
그걸 다 이겨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러기 위해선 깨어 기도해야 되는 거죠.
▲여러분 드디어 때가 왔어요.
14: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주님이 세 번째 오셨어요. 계속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거죠.
때가 온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잡혀서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십니다.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이게 어디로 가자는 것입니까?
지금 현실로 가야 된다는 거죠.
믿음의 길이란 것은 몽상가적 삶이 아닙니다.
현실의 십자가의 격전지로 가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준비되든, 준비되지 않든, 치열한 현실로 내몰리는 겁니다.
전쟁터로 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서 커지는 것입니까?
피하고 싶은 현실과 부딪히는 가운데 믿음이 자라납니다.
힘든 현실을 자꾸 피하면, 믿음은 자랄 수가 없는 거예요.
쉽게 쉽게 살고자 하면, 결국은 믿음도 자라지 않고, 자기 삶은 더 어려워집니다.
세상은 무균실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고통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늘 전쟁터와 같고, 믿음으로 살고자 할수록, 더 치열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깨어 기도하면, 현실이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는 겁니다.
마귀의 공격이 이제는 보이게 됩니다.
여러분 전에는, 마귀의 공격이 눈에 안 보였어요.
마귀 하고 같이 걸어 가면, 마귀는 내 눈에 안 보여요.
깨어 기도하면서, 마귀에 맞서서 싸워야... 마귀의 궤계가 보이는 거죠.
주님의 제자로 오병이어 사건 이후에, 그들의 삶은 좀 몽환적이에요.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그냥 청중들이 몰려오면,
드디어 자기들이 출세, 성공할 기회가 왔다고 여기고 있었겠죠.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따라가는 길을, 꽤나 꽃길로만 생각한 거예요.
가시같 길, 십자가의 길로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 후유증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잠든 그 대가가 결국 처절하게... 실패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현실은 부정을 해도 다가오게 되겠습니다. 부정할 수록 더 가혹하게 다가오게 돼 있어요.
결국 제자들이 참패하게 되는 겁니다. 혹독한 시험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는 깨어 있어야 돼요. 무엇보다도 깨어 기도해야 돼요.
깨어 있을수록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때 고개를 돌리고 싶은 현실이지만,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버리면 어떻게 하나?' 베드로는 한사코 현실을 부정하죠.
그러나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성취됩니다.
그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라는 현실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깨어 있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은, 그 주님이 가시는 길이 보인다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가 보여야 된다는 거예요.
십자가는 미련한 길이 아니라는 겁니다. 십자가의 길은 망하는 길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보여져야 돼요.
여러분 우리가 현실 속에서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즉시 그 현실이 너무 어려워보여요. 그래서 피하고 싶은데
피하면 안 되는 이유가, 그 어려움과 고통의 현실을 직시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보면
그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뤄질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세요. 여러분, 십자가는 결코, 십자가 라는 현실은
실패가 아니라는 거예요. 겉으로 보이기에는 실패처럼 보이지만
그 십자가를 통과하고 이루어질 하나님의 그 계획들과 그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그러니까 깨어 기도하면, 그게 보이게 돼요.
주님은 십자가를 통과한, 십자가 이후에 주어질 부활의 영광을 보셨겠죠.
십자가 다음에 주어질 영광이 보여야 돼요.
왜 기도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보여야 합니다.
내가 내 힘으로 개척해서, 내 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어려운 현실만 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어 기도 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고,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고, 답이 보이는 거죠. (그 길은 내 십자가의 길입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