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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LNCK 2024. 7. 10. 10:33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출애굽기

https://blog.naver.com/karamos/220103384453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출33:12~17       2012.01.08.

 

※본문에, 모세는 중재자 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 냅니다.

이는 중보자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는, 이런 중재자로서의 귀한 사명을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분쟁과 반목을 푸는 데는, 중재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된, 화해자, 중재자, 그리스도의 사신들입니다. 엡6:20

 

그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앞장서서 잘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갑자기 '나는 더 이상 너희들 하고 못가겠다. 갈 테면 너희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삐치셨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삐치셨다, 토라지셨다, 섭섭해 하셨다’는 말이

하나님께 대해서 경건치 못한 표현이지만, 알아듣기 쉽게 세상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렇습니다.

 

‘나는 더 이상 너희들과 상종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너희들이 해도 너무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 한두 번도 아니고 나도 이제 지쳤으니

차라리 지금 여기에서 헤어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단단히 삐치신 것입니다. 금송아지 숭배 사건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장 난감했던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모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짝 긴장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옛날에도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기도 했지만, 그때는 금방 풀어지셨는데

이번에는 사태가 심각합니다.

 

옛날처럼 한 번 화를 내고 그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만 결별하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철이 없고 생각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출33:4절 이하에 보면,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라고 했습니다.

 

또한 33:5절 말씀을 보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내라’고 말하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 장신구를 떼어내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긴장감이 맴도는 시간입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매달려 빌기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세상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 때, 누군가 중간에서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집안에서도 어른이 화가 나시면, 누군가 중간에서 말리는 사람이 있어야

사태가 조금 더 쉽게 수습 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경험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모세가 화가 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계자 역할을 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했으니, 일단 이스라엘 백성에게 장신구를 다 떼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가서 용서를 빕니다. 중보적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가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이 중보적 기도의 역할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제사장이 중보적 기도의 역할을 하였지만

오늘날은 교회가 죄인 된 우리들과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중보적기도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나라를 위해서 중보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나라가 방탕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이 보실 때 화가 나고 불편하실 때

교회가 나서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중보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본문 출33:12절 이하를 보면 모세가 하나님에게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이제껏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것이 전부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이제 하나님께서 동행하시지 않겠다고 하시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

홍해바다를 건너게 한 일, 목마를 때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한 일,

굶주린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이신 것이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손을 떼겠다고 하시면 어찌하겠습니까?’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13절에서는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라고 했습니다.

 

지난 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해냈던 것처럼 계속해서 은총을 내려주십시오.

지금 하나님이 떠나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떻게 이 백성을 이끌어 갈지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13b절에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못나고 잘 나고 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버린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고 못난 백성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십시오.’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자식을 길러보지만, 자식과 평생 살 수 있는 것은 자식이 잘 해서가 아닙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지금 하나님 앞에 제발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지 말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실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떳떳하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매달려 있는 것,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가장 소중한 기도가

바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주1)

   *예수 기도  rfcdrfcd.tistory.com/15972188

 

사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릴 기도는 이 말 한 마디 뿐입니다.

모세가 지금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신22:15절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이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 투정하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가지 않으시면 우리도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가야 소용도 없고, 하나님이 없으면 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가시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들에게도 가지 말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가시면 우리들은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으니

우리를 보내지 말라고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모세가 참으로 지혜로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모세의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모세가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비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께서 화가 나시고 섭섭해 하시고 삐치셨던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드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섭섭해 하시고 삐치시고 토라지셨을 때

우리도 하나님께 빌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는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빌었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의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 대해서 얼굴을 돌리시면,

우리 인생이 엉망이 되고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방법을 쓰든지 하나님께서 화를 푸시게 해야 합니다.

모세가 간절히 기도했더니 풀어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다

 

33:14절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가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만 가나안으로 행진을 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사히 광야길을 걸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겠습니까?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지 않으시면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모든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이지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너무 화가 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혼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섭섭하시고 화가 나셔서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결국 모세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면서도,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섭섭하셔서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곧은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백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섭함을 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듣고 싶어 하십니다.

 

제가 지난해 외손주들을 위해서 작은 보험을 하나 들고 일 년 동안 부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아이들이 왔기에 보험을 일 년 동안 부었더니 얼마가 모였다고 했는데도

이 녀석들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아이들이야 어려서 그런 말을 못한다고 해도

부모들은 감사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섭섭한 마음에 ‘내년에는 부어주지 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누구에게 은혜를 입혔다고 생각하면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마음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감사하다고 표현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새삼스럽게 무슨 감사냐고 생각하지 말고 한 가지 한 가지 빼놓지 않고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해(1/2분기)를 보내면서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감사를 드리셨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섭섭해하실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면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잘 자라게 해주시고, 건강도 지켜주시고, 사업도 번창하게 해주셨는데

감사하다는 표현이 없으면 하나님께서도 신이 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또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마음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모세는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섭섭했던 마음을 푸신 것입니다.

 

노인이 화내신 것 푸는 것은 간단합니다. 알아드리면 됩니다.

하나님도 그런 분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한 없이 약하신 분입니다.

 

화가 났어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면 슬그머니 화를 푸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진멸하겠다고 하시다가도 화를 푸시고 ‘같이 가자’고 하시는 분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섭섭한 마음을 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섭섭해 하신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섭섭해 하시면 오늘처럼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고 심술을 부리시기도 하십니다.

손을 떼겠다고도 하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모른다면

하나님께서도 신이 나지 않아서 우리를 떠나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손을 떼면 우리 모두는 제대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우리가 인생을 잘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든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가시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인생길에 동행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섭섭했던 것 있으시면 푸십시오.

우리가 살아왔던 것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섭섭한 것 푸시고

하나님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여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내 힘으로 안 됩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셔서 나를 대신해서 싸워주셔야

우리 앞에 당하는 모든 어려운 인생길을 잘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걸어갈 때 홍해 바다와 같은 큰 어려움이 우리에게 닥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면 육지처럼 건너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셔야 우리가 배고플 때 만나를 내려주시고,

목마를 때 반석에서 물을 내셔 우리가 마시게 하실 것입니다.

 

금년 한해 혹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섭섭하셔서 혼자 가시겠다고 하시면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저와 함께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금년 한해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귀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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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또 제 기도생활에 일어났던 큰 변화가 오늘 이 본문의 기도입니다.

이거는 '예수 기도'라고 알려진, 교회사에서 유명한 기도입니다.

 

제가 유학기간 동안 영성 신학을 공부를 했는데,

그 영성 신학에 자주 '예수기도 Jesus Prayer' 이런 표현이 나오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이게 주기도문인 줄 알았습니다. 근데 그게 아니고,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게 바로 '예수 기도'입니다.

 

이 '예수 기도'는, 주기도문 다음으로

우리의 기독교 역사상 가장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했고

가장 많은 성도들이 사랑했던 기도문이 바로 이 표현입니다.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가 영성 신학 공부하는 동안 이 기도를 제가 배웠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이 이렇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이게 가능합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는게, 실제로 해 보면, 쉽지 않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면... 잘못하면 죽죠.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를 그럼 과장법이라고 이해해야 되나요? No

저는 젊었을 때,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는가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예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거는 '교회 역사상 수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실천했던 방법이었다'는 거예요.

매순간 무엇을 하든지, 매 순간 마음으로 기도하는 거죠.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로 마음으로 이 고백을 드리면서, 일을 하고, 그리고 또 쉬기도 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마다 마음으로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기도하면, 쉬지 않고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기도를 처음 접하고, 제가 사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유학생활동안 뭐 영어를 잘 못하니까 참 고생했는데,

그때마다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고 또 논문 쓸 때도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고 자녀들이 또 거기 미국 생활을 힘들어할 때도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고 그때 제 미래가 걱정이 될 때도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아마 그때 정말 이 기도 가지고

제가 유학 생활을 버텨냈던 것 같아요. '주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